< -- 307 회: 307회 정규연재 + 개인지관련 공지 하나 -- >
.
.
.
후방의 절벽 아래 바툴 가 종가가 기습당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란 샤자한 공은 근위대장인 가말라 카잔 중랑장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무슨 소리야? 적들이 몇이나 된다는 건가?”
“보병 5천에서 6천 정도로 추정됩니다. 지금 협로를 타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일단 근위보병 5백에게 협로 입구를 봉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녀석들 미쳤군,”
코웃음을 친 샤자한 공은 바툴 가 종가로 내려가는 협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기껏해야 4, 5명 걸어갈 정도의 폭이 고작인 저곳은 가파른데다가 험하기가 짝이 없어서 간 큰 바툴 가 사람들 외에는 거의 이용하지도 않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위쪽 입구에서 제대로만 틀어막는다면 5천명이 아니라 5만 명을 쏟아 부어도 돌파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바툴 가 종가가 크게 당한 모양입니다.”
“뭐, 어쩔 수 없지.”
샤자한 공은 그런 하급제후 종가 따위는 별 신경 쓰지 않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2제후 제르베 경이 투구를 집어들며 급히 나섰다.
“제가 나가 후방을 맡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저희 마랄루 결사대를 맡아 그 일대에 배치시키겠습니다.”
샤자한 공이 보일 듯 말듯 입가를 씰룩거렸다. 5천이나 되는 마랄루 결사대는 지금 동부연합군에서 가장 쓸만한 경보병부대였다. 굳이 이들까지 동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샤자한 공이었지만 가뜩이나 풀이 죽어있는 제르베 경에게 기를 살려줄 필요성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뭐, 그럼 경이 후방을 맡아 처리해주시구려. 대신 언제든 다른 곳에 출동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말을 타고 달려나온 제르베 경은 상황이 샤자한 공이 상상하듯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무광처리된 특이한 복합갑주에 묵직한 할버드, 양손검으로 무장한 저들은 틀림없이 서부의 최정예보병인 장갑보병들이었다. 그리고 불이라도 질렀는지 바툴 가 종가에서는 검은 연기가 매캐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샤자한 공! 적들이 종가에 불을 질렀습니다! 후방이 공격당한 것을 안다면 아군들이 크게 흔들릴 겁니다! 특히 카이두 경이 이끄는 궁기병대가 걱정됩니다! 미리 대비하십시오!”
슈트란 가에서 온 500명의 근위보병들이 좁은 협로의 입구를 막고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언뜻 보기에도 병사들 개개의 기량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병사들이 미리 준비시켜둔 바위와 통나무를 굴려 적들을 떨어뜨리려 하고 있었지만 사선 대형으로 굳건하게 스크럼을 짠 저들은 미리 준비한 방패와 장애물 등으로 교묘하게 절벽 밑으로 떨궈버리며 진격을 계속해오고 있었다.
“마랄루 보병대는 근위보병대 뒤에서 대기해라! 경계병들은 다른 곳도 살펴! 저들이 다른 곳으로도 침투를 시도할지도 모른다!”
제르베 경의 고함소리가 채 끝맺기도 전에 협로 북쪽 절벽 끄트머리에서 째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절벽 밑에서 서부 보병들이 갑자기 우루루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급히 달려가 절벽 아래를 바라본 제르베 경은 수천의 서부 장갑보병들이 수직의 절벽에 설치한 케이블에 기대 올라오고 있는 끔찍한 광경을 눈앞에 똑똑히 확인하고 있었다. 특수부대도 아닌, 보통의 보병들이 저렇게까지 공격할 수 있다는 건 제르베 경으로서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세상에!”
절벽을 지키던 몇 안되는 경계병들은 제일 먼저 이곳에 뛰어오른---당연히 저들 장갑보병 중에서도 선발된 최고의 용사일 것이 확실한--- 병사들의 손에 맥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마랄루 보병대! 1개 연대를 내보내서 협로와 이곳 사이를 지켜라! 당장 근위기병대를 이쪽으로 출동시켜!”
5천의 북부 용병대를 거느리고 후방에 대기하던 동부 4제후 나람 칼리 눌레딘 부인은 요즘 이래저래 뒤숭숭해진 기분을 전쟁 생각으로 잊어보려 나름대로 애쓰고 있었다. 120년 전, ‘남자가 장래성이 없다’는 종장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자신에게 그리도 매달리던 페로와 아기까지 지워가며 억지로 파혼했던 그였지만 정작 그 페로가 이제 총리대신의 지위에 덧붙여 곧 국구까지 된다는 사실에 그도 묘한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가장 착잡하게 하는 건 페로가 서부 3제후 발 가의 종장과 곧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나람 스스로도 이제 당당한 동부제후로서 5명이나 되는 남편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한때나마 자신을 그리도 아껴주었던 페로의 옛 모습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는 그로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의 말도 안되는 이기심이 원망스러워 본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부 장갑보병 7천여명이 바툴 가 종가를 초토화시키고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에게 다가온 용병대장이 북부인 특유의 굵고 거친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우리에게 별도의 지시사항이 있었나?”
“아직 없습니다.”
“혹시 모르니 출동준비 갖추고 기다리도록 해라. 내 잠시 상황을 보고 올 테니.”
“알겠습니다. 모두 전투준비!”
용병대장의 명령과 함께 그들이 북부 문장인 현무가 새겨진 검은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북부와 인접한 농경계 가문으로 원래부터가 싸움과는 거리가 먼 눌레딘 가는 오랜 동맹지역인 북부에서 용병을 구해 외적의 침입에 대항해온 것이 전통이었다.
광공업지역인 북부의 곡창지대로 처음 개발되었던 킨자이 지역을 영지로 가지고있는 눌레딘 가는 거주민들의 혈통이나 문화 또한 북부와 동부가 절반씩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어서 제후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북동부제후’라고까지 불리고 있었고, 그렇다 보니 영지민들 또한 거친 북부인들을 특별히 뽑아 군인으로 쓰는 데 있어서 별다른 저항감도 없었다.
어쨌든 그 덕에 정작 북부제후군이 몰락해버린 이후에도 그 ‘북부식’의 전투방법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질적으로만 보면 제국 제후군 중 최강의 보병전력을 지닐 수 있었던 터였다.
사실 나람 부인에게 이 녀석들도 얼마 전 두통거리를 안겨준 일이 있었다. 눌레딘 가 전력의 핵심인 이 녀석들은 얼마 전 있었던 카렐의 장태자선언 직후 자신들도 전사단에 합류하겠다며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한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을 내보내면 당장 가문 전체의 군사력이 무너져버리는 그로서는 도저히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꽤 많은 선물과 함께 카렐을 직접 알현한 그는 ‘제발 녀석들을 좀 달래달라’며 사정사정해 ‘그대들의 충정을 익히 알고 있으니 동맹제후인 눌레딘 가에 힘을 보태도록 하라’는 내용의 친서를 받아낼 수 있었다. 카렐의 친서 덕에 일단 사태를 진정시켜놓은 것에 덧붙여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자신, 혹은 자신의 군대와 황제가 될 카렐과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든,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말을 몰아 협로 입구에 도착한 나람 부인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근위보병대를 돌파해 협로 입구를 이미 장악한 서부 장갑보병대는 제르베 경이 이끄는 마랄루 결사대를 남북 양쪽에서 조여들고 있었다.
당황한 나람 부인은 대기중이던 자신의 용병대에 즉시 명령을 내렸다.
“당장 이곳에 출동하도록 해! 빨리!”
후방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자욱한 연기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한참 접전중이던 동부제후군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들의 후방이 기습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동부병사들의 사기는 순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장교들이 그들에게 ‘아무 일 없다’고 외치고 다녔지만 연기의 규모로 보아 그 말을 믿을 바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물론 그 연기에 가장 소스라치게 놀란 건 궁기병대를 이끌고있던 카이두 바툴 경이었다. 급히 샤자한 공에게 연락한 카이두 경은 놀라움을 애써 감추며 물었다.
“각하! 어떻게 된 겁니까! 저희 종가 같은데.....”
“지금 서부 장갑보병들과 마랄루 결사대가 교전중이네. 곧 종가를 탈환할 수 있을 테니 자넨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자리를 지키고 있도록 해.”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샤자한 공은 전방에서 적군과 싸우고 있는 지휘관들에게 후방의 상황을 절대 알려줘선 안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다.
“하, 하지만.....”
“명령이야! 지금 2제후 병력이 교전중이라니까!”
샤자한 공의 엄포에 하는 수 없이 입을 꾹 다문 카이두 경이었지만 자꾸만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서쪽 하늘을 바라보던 카이두 경의 눈에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는 수송선이 들어온 건 그때였다.
나지크의 전장에서 적군을 몰아내고 이곳으로 보내진 지원군 1진의 지휘관은 베아트릭스였다. 슬레이프니르의 궁기병대인 3중대 1천명과 에키트 족 보병대 3천을 태운 수송선은 검은 연기가 자욱한 슈카른 계곡 부근에 저고도로 천천히 진입하고 있었다.
“저게 뭐야?”
눈이 휘둥그레진 네피가 불타고 있는 바툴 가 종가를 가리키며 소리를 꽥 질렀다. 처참하게 폐허가 된 자신의 종가를 내려다보는 베아트릭스의 표정이 순간 얼음같이 굳어버리고 있었다. 한바탕 전화가 휩쓸고 간 종가는 널려있는 시체들과 불탄 겔의 잔해들로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종가에 뛰어내리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베아트릭스가 샤자한 공에게 연락을 보냈다.
“슬레이프니르 궁기병 1천 명과 에키트 족 보병대 3천명 도착했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사령관님.”
“뭐?”
하지만 샤자한 공에게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 꽤 싸늘했다.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궁기병 1천 명하고 보병 3천? 전하께선 지금 그것도 지원군이라고 보내신 건가! 지금 여기 상황이 안보여!”
며칠 전 있었던 황빈 상견례에서 카렐과 샤자한 공 사이에 그다지 좋지 않은 분위기가 오갔었다는 건 베아트릭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샤자한 공이 그 때문에 카렐에게 심사가 뒤틀려있다는 것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베아트릭스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금 전 1진입니다. 그쪽 정리가 끝나는 대로 전하께서 2진으로 슈로 기사단 1천기를 이끌고......”
“그래봤자 기병 1천밖에 더되냐고!”
“......어쨌든 도착했으니 명령을 주십시오. 대기중입니다.”
순간 통신을 끊어버린 샤자한 공 쪽에서는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부아가 치밀어오른 베아트릭스는 급히 카렐에게 연락을 취했다. 나지크의 현장정리로 정신이 없던 카렐은 베아트릭스의 설명에 크게 놀라고 있었다.
“샤자한 공이?”
“예. 어떡해야할지......”
한숨을 내쉰 카렐은 베아트릭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내 최대한 서둘러 달려갈 테니 일단 후방에 상륙하도록 해. 상황으로 보아서 적 장갑보병들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겠군. 지금 여기선 내 상황판단을 하기가 어려우니 현장에 있는 자네 재량으로 적을 측면공격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훗, 카렐이 댁을 어지간히 믿나보우.”
장난스럽게 중얼거린 네피는 그 큰 도끼를 꼰아잡으며 침을 퉤 뱉었다. 카렐로부터 현장지휘권을 부여받은 베아트릭스는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시선이 자꾸만 불타고있는 종가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자신의 사적인 감정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쪽이 급박하다는 객관적인 판단이 들어서인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자기와이어 영역 바로 바깥에 착륙할 테니 에키트 보병대는 바툴 가 종가를 탈환해 적의 퇴로룰 봉쇄하고 불을 끄도록 하십시오. 저대로 놔두면 동부연합군 전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슬레이프니르가 지원사격에 나서겠습니다.”
“알았다구.”
고개를 끄덕인 네피는 계곡하단에 내려선 수송선에서 에키트 족 병사들을 이끌고 뛰어내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 서부 장갑보병들이 돌파를 위해 뛰쳐 올랐던 그 길을 이제 네피가 이끄는 전사단 경보병대 3천명과 베아트릭스가 다시 되짚어 돌진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1천기의 슬레이프니르 경기병들이 그 뒤를 쫓았다.
바툴 가 종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사방에 불을 놓고 있던 1백여명의 장갑보병들은 자신들의 후방을 쳐오는 이 대병력에 크게 놀라 협로 위로 허둥지둥 달아나기 시작했다.
“원군이다!”
서부 병사들에게 사로잡힌 채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바툴 가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준 이 구원부대의 모습에 큰 환호성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선두에는 바로 자신들 가문 출신의 베아트릭스가 서 있었다.
“200명만 동원해서 사람들을 구해내고 당장 불을 꺼주십시오 나머지 병력은 곧바로 본대 후방의 적을 쳐야 할테니 제 뒤를 따라오십시오. 제가 길안내를 하죠.”
++++++++++++++++++++++++++++++++++++++++++++++++++++++++++
[개인지 출판관련 공지]
이번 출판본 3,4권 원고를 미리 접하신 교정 지원자분들의 의견을 종합해본 결과, 성년자에 한해 완본을 판매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3,4권 출판본 완본은 19세 이상(85년 이전 출생자, 85년생 포함)에게만 판매하기로 하고 생년-월 조사에 관한 공지메일을 보내드렸습니다. ^^
책을 이미 주문하신 분들께서는 주문시 적어주신 메일을 확인해보시거나
예약게시판(http://vein.zio.to)
에 들러 상세한 내용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
(1,2권을 이미 구매하신 분들과 3,4권을 이미 예약하신 분들 중 86년 이후 출생자분들께 한해 일단 편집본을 드리고, 이후 완본을 다시 무료로 드릴 생각입니다. 결국 2세트를 드리는 셈입니다. ^^;;;)
<코멘트와 추천은 저같은 아마추어 글쟁이에겐 비료입니다......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