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13 회: Part 15. 밀집꽃을 짓밟지 말지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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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령 프라임 지역을 공격해 황궁을 폐허로 만들면서 제국을 경악하게 한 북부제후연합의 대표 카파키 가문은 원래 군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대신 이 가문은 돈냄새를 맡는데만은 제국에서 알아주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TSG의 초기항쟁은 물론이고 성전의 해, 1차 혼란기의 내전기간을 거치면서 ‘전쟁특수’를 이용해 긁어모은 피냄새나는 돈으로 일약 제국의 최고 갑부로 뛰어오른 터였다.
돈을 번 과정이야 어쨌든 장사꾼 가문답게 사교적인 매력으로 유명한 이 카파키 가에서도 단연 최고로 사람을 끄는 인물은 오르마즈였다. 다만 오르마즈가 사람을 ‘끈다’는 것이 공적인 분야에 한정되지만은 않으면서 언제부터인가 콜로니 최고의 바람둥이에 절륜아로 명성아닌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훤칠하게 큰 키에 날렵하게 뻗은 몸매, 매혹적인 그레이오팔 눈동자와 남녀를 모두 사로잡는 흠잡을 데 없는 미모는 이 소문난 바람둥이의 가장 큰 무기였지만 이것만으로 그가 ‘명성’을 얻은 건 결코 아니었다. 사실 오르마즈는 연인을 사로잡는 달변가라기보다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군중을 휘어잡는 웅변가 스타일이었고, 나중에 파예드의 학장이 될 누구처럼 사람 넋을 쏙 빼어놓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의 주인공도 결코 아니었다.
그는 그다지 여자답지 못한 탁하고 갈라진 목소리에---물론 한참 후에 태어날 쌍둥이같이 닮은 누구에 비한다면야 청아하다고 해도 손색이 없겠지만---딱딱 끊어지는 북부식의 굵고 거친 발음을 고칠 생각도 하지 않았고, 나긋나긋하고 상대의 기분을 잘 맞춰주는 성격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의 얇은 입가엔 특유의 고집까지 잔뜩 어려있어서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는 위압감마저 들게 하는 인상이었다.
이런 그가 외모와 함께 사람을 끈 가장 큰 무기는 ‘뻔뻔스러움’이었다. 그는 상대에 대한 자신의 호감을 감추려들지도 않았고, 이런저런 미사여구로 포장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지칭하는 ‘바람둥이’ 혹은 ‘철면피’라는 표현에 그다지 거부감도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을 ‘거쳐간’ 사람들과도 대놓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소문난 술꾼인 그였지만 유곽 같은 곳에는 곤드레만드레 취해 업혀간 때 빼고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고, 그가 ‘눈독을 들이는’ 사람은 어느 수준 이상을 갖춘 정숙하고 단정한 남녀들 뿐이었다. 완벽한 매너와 절제된 태도는 기본이었고 옷차림새나 몸치장에도 꽤 신경을 쓰는 건 물론이었다. 덧붙여 만나는 사람마다 세심한 선물과 배려도 절대 잊지 않아서 그와 만나 본 사람치고 최소한 ‘인간적인’ 면에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돈을 헤프게 써대다 보니 장사꾼가문 사람답지 않게 저금이나 투자 따위는 고사하고 매번 남의 돈이나 꾸러 다니기가 일쑤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오죽하면 항상 텅텅 비었다는 뜻의 ‘오르의 금고’ 라는 신조어가 제국에 나돌았을 정도였다.
이렇게 금전감각은 빵점에 가까운 그다보니 평생의 꿈인 ‘잘 나가는 술집 주인’이 되려는 시도를 이미 세 번이나 실패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보니 그는 자신의 재능이 ‘술집주인’으로서가 아니고 장군이나 정치가로서 더 어울린다는 사실에 걸핏하면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
어쨌든 이 ‘바람둥이’는 10만이 넘는 민병대를 수족처럼 지휘했던 강력한 권위과 놀라운 무용은 물론이고 남극성당 수석졸업생으로서의 지성과 황실 내무대신이라는 지위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으니 그를 싫어하는 사람조차도 그의 바람기마저 ‘탁월한 재능’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별궁 예정지에 우두커니 서서 주변을 둘러보던 오르마즈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세나우스 2세 황제에게 있어 타르서스 별궁은 단순히 머무를 궁전의 의미가 아니었다. 그건 아직 황실이 죽지 않았다는 권위의 표현이었고, 그 많은 피를 흘려 세운 콜로니, 아니 제국을 자칭 제후들의 손에 호락호락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르마즈는 황제가 거의 폐허가 되어버린 프라임 지역의 주궁터에 새로 세울 170층 규모의 ‘진짜 궁전’을 이미 머릿속에 구상중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있었다. 이 많은 공사를 다 수행하려면 제국민들의 고혈을 얼머나 많이 짜내야할지도 물론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옛날의 위대한 유적들 또한 정작 지어질 당시에는 민중들의 피와 땀을 혹독하게 거두어들인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이제와서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다는 것, 바로 그것이 황제의 뜻이었다.
“누구냐.”
칼자루를 움켜쥔 오르마즈가 다리를 조금 벌리며 낮게 말했다. 그의 앞에서 한 명, 등 뒤에서 나타난 또 한명의 무사는 갑주 없이 장검으로만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던 오르마즈가 칼자루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X들이구나.”
오르마즈의 숨소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태도는 틀림없이 ‘적의’였다. 저들이 자신을 죽이려 온 녀석들이라는 것을 백전노장 오르마즈가 깨닫는데는 채 일초도 걸리지 않았다.
‘제기랄......‘
오르마즈는 이런 곳에 부주의하게 단신으로 나와있는 스스로를 뒤늦게 원망하고 있었지만 당장은 피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보통 사람으로서는 극한의 경지에 가까운 무공을 지닌 오르마즈였지만 두 명의 X들을 혼자 상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살을 내주고 뼈을 얻는다......앞놈은 오른손잡이.....뒷놈은 왼손잡이.......’
오르마즈가 계속 같은 말을 되새겼다. 그가 지금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건 적들의 급소가 아닌, 바로 자신의 급소였다. 그는 X들의 공격을 막으면서 반격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모든 건 단 한 합씩에 끝내야 했다.
그 순간 정면에 서 있던 X가 큰 기합소리를 내지르며 칼을 들고 내달려왔다. 왼손으로 칼집을 단단히 움켜쥔 오르마즈는 칼자루를 쥔 오른손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죽어!”
거칠게 칼을 내리치는 상대방의 유난히 큰 동작을 똑바로 노려보던 오르마즈는 왼손 엄지를 가볍게 튕기며 칼을 쫙 뽑아들었다. 정상적인 공격보다 30% 빨라진다는, 발도술 공격은 보통사람인 오르마즈가 반사동작이 훨씬 빠른 X들을 상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술중의 하나였다. 칼집에서 튕기며 솟구쳐오른 그 빠른 칼날은 순식간에 상대방의 턱 밑을 두동강내 버렸다. 그리고 녀석이 내리찍은 칼날 역시 오르마즈의 뺨을 대각선으로 가르며 한웅큼의 피를 공중에 흩뿌렸다.
“이익!”
왼발을 축으로 뒤로 왼쪽으로 휙 돌아선 오르마즈는 체중을 실어 있는힘껏 칼을 휘둘렀다. 그는 자신이 돌아설 때 이미 녀석의 칼에 등이 베였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왼손잡이인 녀석이 칼을 치는 방향과 함께 돌아 공격한다면 그 충격은 훨씬 반감되는 셈이었다. 덧붙여 상대방이 막는 동작을 취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훨씬 길어지게 되는 건 물론이었다.
“아악!”
오르마즈의 일격에 가슴이 대각선으로 동강나버린 X가 미처 반격을 해 보지 못한 채 거친 흙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오르마즈를 둘러싼 누런 사막흙은 어느새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제길......”
두번째 녀석을 쓰러뜨린 오르마즈가 맥없이 바닥에 꿇어앉았다. 뺨의 상처를 더듬던 오르마즈는 그 속에서 만져지는 자신의 턱뼈와 치아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뺨이 완전히 두조각났을 정도로 치명상임에 틀림없었다. 그의 손은 이미 덩어리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등의 상처 또한 볼 수는 없지만 이것과 별다를 바 없음이 확실했다.
“헉, 헉.....”
“허허.”
칼로 땅을 짚은 채 가까스로 중심을 유지하고 있는 오르마즈의 앞으로 누군가가 뚜벅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고맙군. 부대에서 항상 말썽만 일으키는 놈들이었는데. 자네가 치워줬으니.”
베흔의 목소리에 오르마즈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제 더 이상 싸울 수 없으니 저 망할 녀석의 손에 죽는 길밖에 없었다. 하지만 베흔은 그에게 상처를 막을 붕대뭉치를 건네주었을 뿐이었다.
“역시 대단하군, 시민 주제에 X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쓰러뜨리다니.”
“네놈도 꺾어줄까?”
칼을 짚은 오르마즈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오호, 사양하지. 우린 이제 동지 아닌가. 나도 생색을 냈고......저 늙은 구렁이가 날 의심하지는 않겠지.”
피를 흘린 오르마즈는 결국 한 손에 칼을 쥔 채 자리에 꿇어앉고 말았다. 그런 오르마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베흔은 갑자기 할룩스를 집어들며 어디론가로 연락하고 있었다.
“난 이만 가보겠네. 조금만 참고있으면 곧 구급대가 올 게야.”
쌀쌀맞게 중얼거린 베흔은 오르마즈를 그대로 놔둔 채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 태후가 있음을, 그리고 그의 명령을 받은 베흔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X들을 일부러 보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지독한 고통에 신음하는 그의 머릿속으로 구급대의 다급한 발소리와 고함소리가 웅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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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지 관련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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