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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334화 (333/1,132)

< -- 334 회: Part 16. 내 아버지 곁의 고결한 소나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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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동부가?”

플라칼 가 제후군 정도는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며 나름대로 자신감에 넘쳐있던 샤드니는 무려 4만에 달하는 동부연합군이 기지 외곽에 기습 상륙했다는 말에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남부제후군에서 자기와이어 작동 시작했습니다!”

장교의 보고에 샤드니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지고 말았다.

“저희도 에너지장벽과 자기와이어 2중 방어망 작동시킬까요? 4000급이니 뚫는 데 시간 꽤나 걸릴 겁니다.”

라바니 경이 일선에서 들어온 정보들을 긁어모으며 말했지만 샤드니는 대뜸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 그게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놈들도 들어오지 못하지만 우리 역시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나!”

사령실 안에 순간 싸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사르키스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숙부 라바니 경의 얼굴을 휙 돌아보았다. 비행체의 추진장치를 무력화시키는 이 강력한 자기와이어 장치는 원래는 적의 기습적인 근접강습을 막는 정도의 용도였겠지만 양측의 기지가 이렇게 딱 붙어있는 상황에서 ‘내 장치’의 작동은 바로 옆에 위치한 상대방의 이동까지 막을 수 있는 막강한 수단이 될 수도 있었다.

바로 옆에 주둔한 플라칼 가에서 먼저 이 장치들을 작동시켰다면 셔틀, 혹은 수송선을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서부제후군은 지금 이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샤드니는 자신이 이곳까지 끌고 온 코리온마저 함께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엄청난 후회에 휩싸이고 있었다.

“남부 놈들은?”

“집결한 채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기랄, 일단 우리 장치도 작동시켜! 어차피 놈들이 먼저 작동시켰으면 못 움직이긴 매한가지니......녀석들이 기습적으로 풀고 강습이라도 해올지 모르니까 일단 작동시키고......에너지장벽은.......”

샤드니가 머리를 싸쥐었다. 비행만을 저지하는 자기 와이어에 비해 에너지장벽의 역할은 물리적인 이동 자체를 막는 것이었다. 에너지장벽을 작동시킨다면 동부의 진입을 단 얼마간이라도 늦출 수 있겠지만 자신들이 비교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남부에 대한 선제공격 역시 포기하는 셈이었고, 작동시키지 않는다면 남부를 먼저 공격할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동부기병대의 노도 같은 기습을 그대로 받아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 결정 하나에 어쩌면 서부제후군 전체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자신의 연인인 코리온의 목숨까지도.

천천히 고개를 치켜든 샤드니가 결국 입을 열었다.

“에너지장벽은 포기한다. 남부를 선제공격한다.”

이제 샤드니의 기대는 단 하나였다. 동부가 합류하기 전에 플라칼 가 제후군을 무너뜨리는 그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빨리 나오십시오!”

문을 박차고 들어온 플레렌 가 장교가 안에 있던 코리온을 억지로 잡아끌었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냐는 말이다!”

“남부제후군이 쳐들어왔습니다!”

“뭐라고?”

코리온의 숙소 앞에는 차 한 대와 셔틀 한대가 각각 대기중이었다. 남부와의 싸움이라는 뜻밖의 사실에 얼떨떨해져있는 코리온을 차 안에 밀어 넣던 장교는 한쪽에서 달려온 다른 장교의 고함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잠깐! 잠깐!”

“왜!”

“차는 안돼! 안되니까 일단 셔틀 안에서 대기하고 계시라는 명령이야! 동부 유목민들이 사방에 쫙 깔렸대!”

“제기랄! 왜 이렇게 오락가락해!”

신경질을 부린 장교는 코리온을 다시 차에서 끄집어내 문을 열어놓고 대기중이던 셔틀 안에 밀어넣었다.

“별도 명령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절대 움직이시면 안됩니다!”

동부 유목민들이 쳐들어왔다는 말에 코리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모든 정보가 막혀있던 그로서는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쉽사리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 남부가 왜 벌써 쳐들어왔는지, 그리고 동부 유목민들이 왜 남부와 함께 서부연합군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의 짐을 들고 쫓아온 라스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 풀죽은 주인 옆에 꿇어앉았다.

“옵니다!”

서부 낙타병들과 맞서고 있던 히르직스가 창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무려 5천의 중장 낙타병들이 사막을 빽빽하게 뒤덮은 채 4천의 1기사단의 정면으로 쳐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서부 제일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아쉬드 하지즈 장군이 큰 화극을 움켜쥐고 달려오고 있었다.

“쳇,”

히르직스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그를 향해 돌진해가기 시작했다. 그의 평소 스타일대로, 적 낙타병부대의 지휘관인 저 녀석만 무너뜨려 버리면 ‘버티는 시간’을 그나마 늘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거의 동시에 기사단의 등뒤에서 경기병대가 날리는 1천 발이 넘는 투창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지난번 나지크의 전투에서 슬레이프니르의 투창공격에 제대로 당했던 낙타병들은 그때의 그 위력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강력한 투창공격에 잠시 움찔했다.

“남부 궁기병은 소수다! 계속 돌격해!”

하지즈 장군이 부하들을 독려하듯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근거리 투창공격에 명중한 1백이 넘는 낙타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낙타에서 떨어졌다.

“측면에 아군 경기병들입니다!”

부장의 고함소리에 히르직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비교적 느리게 돌진하는 중장기병들의 측면을 X자로 가로질러 루코프의 2천 5백여 경기병들이 선두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저놈들이 미쳤나!”

히르직스가 소리를 꽥 질렀다. 겁에 질려있는 저들 남부 경기병들은 어느새 적의 측면까지 바싹 달라붙어 있었다. 궁기병들까지 모두 동원되어 창을 쥐고 돌진하는 저들에게 내려있는 황당한 명령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돌격!”

경기병단장 루코프의 거의 비명에 가까운 피맺힌 함성과 함께 2천5백여 경기병들이 적 측면 모서리를 향해 ‘자살공격’을 해 들어가고 있었다. 서부 낙타병들의 창에 꿰뚫린 경기병들의 시체와 살점이 공중으로 먼지처럼 흩날리면서 적 측면의 돌진이 그대로 멈춰섰다. 쓰러진 수백 구의 사람과 말, 낙타의 시체가 뒤엉키자 진로가 가로막힌 서부 낙타병들이 급히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낙타병들 사이에서 고함소리가 튀어나왔다.

“썅! 뭐야!”

이 ‘피의 장애물’을 미처 피하지 못한 낙타병들이 그 자리에 낙타와 함께 넘어지거나 안장에서 떨어지면서 정연한 예진을 이루어 돌격해오던 낙타병들의 대오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헤즈 저 새끼, 미쳤군!”

히르직스가 눈앞에 나뒹군 경기병의 시체를 급히 피하며 소리를 꽥 질렀다. 하지만 저들의 피의 대가로 적 낙타병들의 돌격진형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자신의 기사단에 기회가 온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10분만 잡아둬라. 1만의 동부 동맹기병들이 오고 있다.”

헤즈의 목소리에 히르직스는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유목민들까지 포함하면 무려 2만여의 동부기병들을 확실히 확보했으니 이제 경기병대는 더 이상의 필요성을 상실했다 판단한 모양이었다.

“적 낙타병 지휘관 하지즈 장군입니다!”

부장의 고함소리에 고개를 휙 돌린 히르직스는 마치 본능처럼 창을 쥐고 그를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이 가소로운 젖먹이새끼!”

큰 고함을 지른 히르직스가 매섭게 내지른 창을 힘껏 떨궈내며 하지즈 장군이 질세라 고함을 질렀다.

“이 간사한 남부 놈! 맛 좀 봐라!”

제대로 상대를 만난 하지즈 장군 역시 화극을 단단히 겨누며 큰 고함을 올렸다. 남부와 서부, 양 지역의 최고 맹장들끼리의 대결에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아지고 있었다.

“이 배신자새끼야! 너 같은 놈도 전사냐!”

하지즈 장군의 묵직한 화극날이 겨드랑이를 스치자 순간 아찔했던 히르직스는 ‘제네르에게 당했던 놈’이라는 생각에 얕보고 덤벼들었던 스스로를 후회하고 있었다. 하기야 마랄루에서는 자신도 바로 그 제네르에게 자칫 당할 뻔했었으니. 하지만 제네르의 그 깜짝 놀랄 기마술만 접어둔다면 하지즈 장군의 힘있는 창술은 그 녀석보다는 틀림없이 한 수 위였다.

“이제야 수준이 맞는 놈을 만났구나!”

히르직스가 내려치는 창을 힘껏 올려 쳐내며 외쳤다.

“네 실력이 아까우니 투항한다면 남부에서도 중히 쓰일 수 있을거다!”

“내가 네놈 같은 배신자인 줄 아느냐!”

히르직스의 머리를 도끼날로 후려치던 하지즈 장군은 얼굴을 향해 뻗어오는 날카로운 창끝에 놀라 멈칫 하고 말았다. 히르직스의 매서운 창끝이 투구의 사이트를 부수며 옆으로 미끄러져 나가자 하지즈 장군 역시 이 슈로 기사단 출신의 무시무시한 무장의 진가를 뼈저리게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히르직스 역시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그 매서운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에익!”

도끼날에 한쪽이 찌그러든 히르직스의 투구에서도 소름끼치는 마찰음이 울러 퍼졌다.

“동부기병들이 오는구나!”

히르직스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멀리 나지막한 모래언덕을 넘어 한때 남부 기병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동부기병들이 그 특유의 괴성으로 대기를 뒤흔들며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즈 장군의 얼굴이 절망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양군 숙영지 중앙의 완충지대에 장갑보병들과 함께 나와있던 샤드니는 이제 무언가 결정을 지어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그의 앞에서는 정연한 대오를 이룬 남부 중장보병대와 서부 장갑보병대가 서로를 맹렬히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의 대결은 틀림없이 장갑보병들이 확실한 우세였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동부기병들이 이곳을 휩쓸기 전에 저들을 무너뜨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동부기병들의 출현을 보고받은 샤드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코리온이 있을 서부 숙영지 중앙을 문득 돌아보았다.

“학장님은?”

“셔틀에 탑승해 대기중이십니다.”

샤드니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라면 셔틀을 이용한 탈출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곳을 엷게 둘러치고 있는 유목민 기병들과 적들의 순찰셔틀 때문에 육로를 통한 탈출 역시 사실상 불가능했다.

“다 죽어도......학장님만은 탈출하셔야 한다......”

샤드니의 목소리에 사르키스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기지 내의 차들 수백 대를 몽땅 다 한번에 내보내면 어떨까요? 그 중에 한 대에 학장님이 타시고.....놈들이 그것들을 모두 다 쫓다보면......잘하면 빠져나가실 수도......”

“확률놀음에 학장님 운명을 맡겨야 한다니......”

샤드니가 얼굴을 찡그렸다. 사르키스의 얼굴을 문득 바라본 샤드니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갑보병 중에 결사대 지원자 50명만 모아라. 적 자기와이어 장치를 파괴하고 퇴로를 확보한다.”

“예에?”

“명령대로 해! 학장님과 서부 전체를 구하는 것이라 하면 앞다투어 지원할거다......사령관이고 최고제후인 나 샤드니 플레렌이 앞장선다 말해라.”

경악하고 있는 사르키스에게서 휙 돌아서며 샤드니는 붉어진 눈시울을 스코프로 급히 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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