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376화 (375/1,132)

< -- 376 회: Part 1. 두 그루의 월계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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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라스에서 출발한 샤드니와 12만 대군이 황제령에 도착한 건 11일 저녁 무렵의 일이었다. 제후군의 황제령 진입을 제일먼저 선언한 건 남부연합군이었지만 그것을 빌미삼아 황제령에 가장 먼저 발을 들여놓은 건 정작 카렐의 편의 서부연합군이었다.

이곳 도착 직전, 장병들에게 코리온이 카렐의 손에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탈라스에 남아있던 플라칼 가 중장보병대 만 명이 카렐 휘하의 동부기병대에 무참히 전멸했다는, 그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 줄 말도 잊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발 가 근위장군인 베나지 나하스입니다. 평민출신입니다.”

수송선에서 내려선 샤드니에게 먼저 와 있던 나하스 장군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발 가에서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온 이 자그만 체구의 평민출신 무장은 지난해 플레렌 가가 코리온의 명령으로 메디스 시를 공격했을 때만해도 카렐과 함께 싸웠던 일개 수비대장에 불과했던 인물이었다. 물론 이젠 더 이상 적이 아닌, 동지로서 대해야 할 사람이었다.

조금은 우스꽝스럽지만, 한때 서부의 ‘이단아’였던 발 가는 이제 서부의 ‘선구자’라며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잘 오셨습니다.”

이곳에 주둔 중이던 3만의 전사단 중장보병대를 지휘하는 가디언 조페가 샤드니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프라임 지역과 타르서스, ㅤㅋㅞㄹ크를 나누는 경계이기도 한 이곳 트라이앵글 지역은 성전의 해는 물론이고 그 이전의 내전에서도 가장 많은 전투가 벌어졌던 요충지였다.

이곳의 북쪽, 대사막 건너에는 프라임 지역의 남단도시인 3번 도시와 페로 관이 마치 카렐을 위한 요새처럼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가면 근위대의 남방 전진기지인 수에니 반도가 프라임 지역을 파고들어온 페로 관과 장군멍군하듯 타르서스의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반면 서쪽에는 ㅤㅋㅞㄹ크 정글지역이 북동부를 장악한 제파 휘하의 근위대 토벌군 2만을 정글의 거친 풍토로 들볶으면서 카렐의 영향권으로 건재하게 남아있었다.

“빨리 황궁에 가봐야겠군.”

코리온을 다시 만날 생각에 잔뜩 상기된 샤드니가 북쪽을 올려보며 중얼거리자 베나지가 즉시 대답했다.

“저희 종장이신 사우드 부인께서는 이미 가 계십니다.”

“그럼 우리 가문을 대표해 내가 가고, 세호 가를 대표해 사르키스 자네가 가야겠군. 4제후 알리 경도 함께 가고 하지즈 장군은 여기 남아 베나지 나하스 장군과 함께 새 숙영지를 만드는 일을 책임져주게. 당장 내일이면 남부연합군이 몰려올 테니 최대한 빨리 완료해야 할 걸세.”

대관식에 참석할 각 가문 대표들을 서둘러 불러모은 샤드니는 뒷일을 하지즈 장군에게 맡기고 서둘러 셔틀에 뛰어올랐다.

“휴, 대단하군.”

하지즈 장군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적도가 지나가는 고원인 이곳 트라이앵글 지역은 타르서스의 육괴와 프라임 지역의 육괴가 부딪히는 거대한 습곡산맥을 축으로 북쪽의 대사막과 남쪽의 사바나 지역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만약 이곳에서 물러선다면 등뒤에는 끝도 없는 사바나와 황량한 타르서스 사막, 아니면 ㅤㅋㅞㄹ크의 정글이 버티고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전사단 동맹군의 주둔지는 이곳 트라이앵글 지역 북부의, 만년설이 쌓여있는 거대한 산맥을 틀어막고 세워져 있었다.

하지즈 장군이 베나지에게 물었다.

“여기 모인 보병전력은”

“내일 정도면 1번 도시 장악을 마친 전사단 보병대 중에 2만 정도가 이곳에 합류할 겁니다. 그리고 황궁에 2만, ㅤㅋㅞㄹ크에 2만,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3만이 있으니 전사단에서만 총 9만의 보병대가 이곳에 모일 겁니다.”

“그러면 우리와 합친 총 보병전력은 전사단 보병대 9만에 서부 장갑보병 2만, 경보병 9만, 에키트 경보병 5천까지 20만 5천이 되겠군.”

“그리고 전사단과 페로 경의 가디언부대 1만 3천이 있죠. 북극 푸엘 숲에 있는 아메샤 스펜타 3만이 있고. 타르서스 직할군 2만이 후방에 있으니 다 합치면 황제령의 우리 동맹군 보병은 총 27만 정도. 적 연합군에서 파견군이나 도시 주둔군들을 빼도 40만에 가까우니 좀 딸리지만 일단 맞설 만은 합니다.”

조페가 쓴웃음을 지었다.

“기병은?”

“오늘밤 탈라스에서 가말라 카잔 장군이 이끄는 중장기병 2천과 경기병 3천이 도착할 테고 슬레이프니르 7천과 슈로 기사단 8천기까지 합류하면 중장기병 1만에 경기병 1만.”

“그리고 우리 낙타병부대 2만과 타르서스 직할군 낙타병 5천까지 합하면.......4만 5천?......적은?”

“남부 중장기병 5만에 샤자한 공이 데려올 동부 중장기병 1만, 경기병 2만기. 총 8만.”

“어휴,”

4만 5천대 8만이라는, 2배에 가까운 기병 전력 차에 하지즈 장군이 머리를 싸쥐었다. 예르마크 경이 이끄는 남부 중장기병은 서부 낙타병으로 그럭저럭 상대한다고 치고, 샤자한 공이 데려올 악명 높은 동부기병 3만이 문제였다. 한때는 카렐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존재였지만 이젠 가장 경계해야 할 1순위였다.

“그래도 아주 나쁘지는 않습니다.”

조페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1번 도시권역, 트라이앵글지역과 ㅤㅋㅞㄹ크 동부, 타르서스, 대사막과 수에니 반도는 황궁에서 직접 방어권을 통제하는 직할방어구역입니다. 그리고 3번 도시는 페로 경께서 이미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 전 지역에 방어시스템 가동되었습니다. 여기도 서부 수송선이 돌아나가고 방금 가동되었고요. 이제 이 모든 지역들에서 일체의 비행수단을 사용할 수 없이 되었지요.”

조페가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전하께서 황궁을 차지하고 계신 이상, 이제 근위대 놈들이 여길 공격하려면 저 끔찍한 대사막을 육로로 건너와야 된다는 뜻이죠. 그리고 이 까마득한 트라이앵글의 산맥을 육로로 넘어야 타르서스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고. 적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적들은 이 모든 방어체계를 손에 쥐고 있는 황궁부터 탈환하려 들 겁니다.”

조페의 설명에 그제야 황궁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달은 하지즈 장군이 휘파람을 불었다.

“대단한 공성전이 되겠군.”

“하지만 그 대군이 황궁에 접근하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조페가 껄껄대고 웃음을 터뜨렸다.

“세나우스 2세께서 만들어두신 ‘황룡의 여섯 이빨’이 있습니다. 그 여섯 개의 성들과 댐들이 황궁으로 통하는 육로와 수로를 모두 틀어막고 있죠. 녀석들 지도부가 황궁에서 워낙 급하게 퇴각한 덕에 얼마 안 되는 그곳 근위대 주둔군들은 지원도 받지 못한 채로 꼼짝없이 고립되어버렸습니다. 6개 중에 신성, 건무성은 이미 항복했고, 탄현성, 백암성은 조금 전 함락되었고 이암성, 주류성도 내일까지는 함락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놈들이 황궁까지 접근하려면 피를 꽤나 흘려야 할 겁니다.”

*   *   *

샤드니의 배신과 코리온의 구출로 가장 난감한 입장에 처해버린 건 그의 양아버지 칼림을 비롯한 플레렌 가 원로세력들과 이들을 지지했던 서부제후들이었다. 이제 그들도 입장을 바꾸어 카렐을 지지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12만 대군을 이끌고 카렐 쪽에 덥석 붙어버린 샤드니를 서부의 배신자로 낙인찍어버려야 하는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물론 이 상황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다름아닌 코리온이었다.

“지금 미쳤소?”

차라리 카렐에게 붙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던 이스마엘 가 종장을 매섭게 째려보며 칼림이 대뜸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학장이 지지하고 분위기가......”

“분위기 따위는 어차피 재주좋은 놈이 이끄는 대로 옮겨다니기 마련이지.”

칼림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의 옆에 앉아있던 2제후 벨리크 세호 부인도 그간의 ‘중립외교’를 버리고 처음으로 어느 한 쪽을 택했던 결과가 이렇게 엉망으로 드러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흥분한 목소리의 칼림이 계속 언성을 높였다.

“남부연합군에, 동부병력에, 근위대까지 합치면 거의 60만에 육박하는데, 그놈들하고 싸우겠다는 게 지금 제정신이요? 그 새끼들 황궁 잠깐 차지하고 즉위식이랍시고 해봤자 어차피 얼마나 버틸 것 같소? 그런데 우리가 미쳤다고 그런 놈 꽁무니를 따라간단 말이요?”

“듣자하니 카렐 그놈이 친서를 보냈다던데?”

벨리크 부인이 물었다.

“읽어보시구려.”

칼림이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편지를 앞에 내놓았다. 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본 벨리크 부인이 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서부제후에게 보내는 문서답게, 단정한 해서체로 쓰인 그 고대어 문장은 샤드니가 데리고 온 대군을 고맙게 생각한다는 내용과, 앞으로도 변함없는 충성을 바란다는 감사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녀석도 바보는 아니니 우리가 학장을 죽게 내버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설마 정말로 감사한다고 이런 글을 보낸 건 물론 아니겠죠?”

“뭐, 우리 코를 꿰자는 수작이겠지. 잘못은 조용히 묻어줄 테니 자기 쪽에 붙으라고 말이요. 학장을 차지했으니 서부 분위기가 자기네 쪽으로 기울 줄로 아나보지.”

칼림이 여전히 신경질을 부리며 씩씩거렸다. 벨리크 부인이 찻잔을 들이키며 그 특유의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표현은 바로 하셔야겠소. 지금 우리 서부의 상황은 ‘분위기’라는 표현보다는 ‘서부식 의식’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거요. 분위기는 조작하기 쉽지만 의식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세호 가에서는 그놈을 지원이라도 하겠다는 거요?”

칼림이 따지듯 물고 늘어지자 벨리크 부인이 키득거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내 이런 말하긴 뭣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 상황에서 근위대 편들었다가는 가문 숨구멍 건사하기도 어렵다는 건 잘 아실 거요. 녀석은 지금부터는 ‘황손’이 아니고 그 잘나 빠진 학장이 공개지지하는 ‘황제’란 말이요.”

“지 말로야 황제가 아니라 옥황상제라고는 못하겠소?”

“우린 그냥 잠자코 분위기나 살피고 있는 게 상책일거요. 우리 가문 특기처럼.”

자칫 웃음을 터뜨릴 뻔 했던 이스마엘 가 종장이 칼림의 매서운 눈치에 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

벨리크 부인이 싱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샤드니 공이 데려간 12만의 서부 전사가 녀석들과 함께 싸우고 있으니, 저 무지몽매한 시민들은 우리가 으레 학장 뜻에 따라 그쪽을 지지하는 줄로 알 테고, 우린 한편으로는 근위대쪽에 손바닥이나 비비는 거죠. 속된 말로 양다리 걸치고 분위기나 살피는 게 지금같이 난처한 입장에서는 제일 확실하지 않겠소.”

칼림이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원리주의자 코리온이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카렐 녀석을 지지하고 있는 것인지 그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카렐은 원리주의 지지자도 아닐 뿐더러 지금까지의 언행으로 보아 강력한 황권강화와 중앙집권제를 추진할 것이 뻔한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근위대 편에 붙자니 벨리크 부인 표현대로 ‘서부식 의식’이 원수였다. 차라리 그 망할 학장이라도 확 죽어줬다면 어떻게 힘으로라도 짓눌렀겠지만 이젠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 산산조각난 동부처럼 서부 역시 완전히 분열되어버린 셈이었다.

“황당하군,”

칼림은 차로는 속이 풀리지 않는지 갑자기 술을 가져다가 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망할 샤드니 놈,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자신이 샤드니를 이용했다는 사실은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린 칼림은 그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만 연신 곱씹어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황제령에 좀 다녀와야 하겠소. 일단 근위대장을 좀 달래줘야 되겠으니. 일단 우리는 근위대장 쪽에 가깝게 붙어서 눈치를 좀 봐야 하는 수밖에 없겠소.”

막 일어서는 칼림에게 벨리크 부인이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이제 녀석들 즉위식 올릴 시간이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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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있던 황제령 지도는 유조아에서 그림을 지원하지 않게 된 관계로 팬카페 http://cafe.daum.net/TheIronVein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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