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381화 (380/1,132)

< -- 381 회: Part 1. 두 그루의 월계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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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황도 성벽의 수비병력은 아메샤 스펜타 크샤트라 연대 5천과 전사단 중장보병 2만, 전사단 경보병 1만까지 합해 보병 3만 5천입니다. 가디언은 크샤트라 연대에 배속된 초급지휘관 가디언을 제외하면 대공 각하의 가디언 2천과 전사단 가디언 5백까지 총 2천5백입니다. 성 외곽의 슬레이프니르 7천과 슈로 기사단 8천도 모든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황제령 지역의 총사령관을 맡은 총리대신 페로 자이센 대공은 황궁의 방어책임을 맡은 제네르 하크로딘 상장군의 보고에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총리라는 지위상 어쩔 수 없이 총사령관을 맡고 있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이것 말고도 할 일이 태산이었고, 실무적인 지휘는 각 지역군 사령관---프라임 지역을 맡은 제네르와 트라이앵글, ㅤㅋㅞㄹ크, 타르서스를 맡은 샤드니, 그리고 탈라스를 맡은 2제후 제르베 경과 4제후 나람 부인의 손에서 처리되고 있었다.

황성 동북쪽의 큰 망루에서 아침부터 열리고 있는 작전회의에는 황궁에 주둔한 각 단위부대 지휘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바로 어제 대관식장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베아트릭스도 평소처럼 먼지가 잔뜩 앉은 검은 갑옷을 입은 채 다른 지휘관들과 함께 앉아있었다.

시로가 지도를 내보이며 말했다.

“황궁 주변을 둘러싼 6개 요새에도 전사단 중장보병 1만 5천과 경보병 1만이 분산 배치되었고, 서부 장갑보병 1만과 서부 경보병 2만이 추가 배치될 예정입니다.”

말없이 서류만 보고 있는 페로 대신 제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께서 건강문제로 한동안은 친히 지휘를 하지 못하시니 지휘계통부터 확실히 하겠다. 수성의 총지휘관은 내가 맡을 것이나, 내 이곳 사정에 그다지 익숙지 않으니 황궁 방어체계에 지식이 풍부한 시로가 나의 부장이 되어줄 것이며, 유사시엔 내 지위를 대신한다.”

자신의 전사나 중상을 뜻하는 ‘유사시’라는 표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로가 대뜸 입을 씰룩거렸다. 그런 시로를 못 본 척, 제네르가 말을 이었다.

“1시간 후에는 트라이앵글에서 서부 사역부대 1천 명 정도가 올 것이다. 방어진지 구축과 전자장비 설치엔 제국 최고의 전문가들이니 그 친구들 조언을 얻어 보강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리고오.......황궁경비는?”

“아샤 연대 3천과 근위대 가디언 5백이 황궁 경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샤 연대장이 이끄는 나머지 2천은 도시 내 치안과 불순분자 색출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황궁의 최종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신임 보안국장 루토가 냉큼 대답했다. 문득 고개를 든 제네르는 도시성벽을 한번 빙 둘러보았다. 총 연장 120스타디아 정도에 달하는 합금 코팅성벽은 그 높이만도 가장 높은 곳은 무려 7층 건물 높이에 해당하는 70척이었고 에너지장벽과 자기와이어에 의해 탄탄히 보호되고 있었다. 그리고 성벽 밖으로는 어젯밤부터 설치를 시작한 무수한 함정과 장애물들, 부비트랩이 이미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적의 공격이 시작되지 않았으니 성벽에 주둔한 보병은 3조로 나누어 하루 3교대로 각자의 위치를 지킨다. 하루 8시간은 경계업무에, 4시간정도는 방어설비 설치에 투입되며, 12시간은 푹 자고 잘 먹어둬라.”

“그러고 싶은데, 아침부터 배고픈 사람 잡아두고 꼭 회의를 해야 되남.”

아니나다를까, 네피가 꼬르륵 소리가 나는 뱃가죽을 어루만지며 투덜거리자 자리에 잠시 웃음이 오갔다.

“적의 상륙시점은 오늘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에도 근위대 단위부대의 기습이나 적 선발대의 예고 없는 기습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해라. 적은 틀림없이 우리보다 강하고, 초반부터 맹렬한 물량공세로 압박을 가해올 것이니 각오를 단단히 해 두어라. 오늘 적이 상륙하는 대로......”

제네르가 계속 겁주는 소리만 하면서 회의장의 기류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 챈 듯 페로가 제네르에게 조용히 하라며 매서운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좌중을 둘러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황상께서 이곳에 함께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라. 지금은 잠시 몸조리를 하고 계시지만 조만간 칼을 쥐고 그대들 앞에서 친정(親征)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친정을 하시는 건 그분께 제장들의 존재를 보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라는 것을 잊지 마라.”

‘친정’이라는 말에 무장들이 갑자기 웅성대기 시작했다. 사실 제국 역사상 황제가 ‘친정’을 한 일은 단 한 번뿐이었다. 테나스 황후의 복수를 핑계로 황제령을 침범했던 남부연합군을 막기 위해 세나우스 2세 황제가 친히 오르마즈와 베흔을 이끌고 수에니로 출병했던 것이 유일한 기록이었다.

당시 출병에 ‘친정’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실상 세나우스 2세는 전략전술에는 까막눈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전장에서 한 일이래야 휘하 무장들의 싸움을 산 위에서 지켜본 것뿐이었다. 그가 유일하게 잘 한 것은 스스로 무지함을 순순히 인정하고, 모든 전투를 야전사령관인 오르마즈에게 전적으로 일임하고 쓸데없이 참견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황제의 친정이라는 그 심리적 효과는 대단해서 지금의 아메샤 스펜타이기도 한 고작 3만의 병력으로 10만의 남부연합군을 거의 궤멸시키는 대전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대공 각하, 2번 도시에서 긴급전문입니다.”

밑에서 급히 달려 올라온 발리가 페로에게 전문 한 장을 내밀었다. 내용을 읽어본 페로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황상께도 이 전문을 보여드렸나?”

“아직 수침중이시니 조금 후에 알려드릴 겁니다. 오늘 무슨 일이신지 늦게까지 기침하지 않고 계십니다.”

“내용이 뭡니까?”

제네르의 물음에 페로가 어깨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이틀 후에 수우 녀석도 대관식을 한다는군. 후훗, 바야흐로 ‘두 황제 시대’인가?”

탈라스에의 선발대에 이어 이번에도 또다시 ‘선발대’라는 달갑지 않은 일을 맡은 릴라크는 입이 댓발은 튀어나와 있었다.

게다가 지난번 탈라스의 선발대는 최소한 위험한 일은 없었지만 35만 남-동부연합군의 선발대를 맡은 이번은 사정이 달랐다. 황궁이 있는 1번 도시와, 페로의 영향권인 3번 도시 사이에 위치한 5번 도시는 양 도시를 빼앗겨버린 지금 입장에서는 근위대 입장에서는 트라이앵글, ㅤㅋㅞㄹ크와 연결되는 ‘목구멍’과도 같은 중요한 결절점이었다.

물론 그건 적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적 역시도 이 도시를 빼앗으면 3-5-1번 도시를 연결하는 수평라인으로 프라임지역 남부를 완전히 관통하는 전선을 형성할 수 있게 되는 셈이었다.

“이 짓 끝나면 정말로 전역해야겠어.”

목에 걸고 있던 남편 루시도프와 아기의 모습을 꺼내 본 릴라크는 200여년 동안의 군 생활에 입에 붙은 말을 또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의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을 탐내 며느리로 삼은 이 호전적인 시가가 그를 그렇게 놓아줄 리가 없었다.

물론 입만 열었다하면 ‘화끈한 것’을 찾는 릴라크가 조용히 영지나 다스리며 살아갈 성격도 못 되는 것이 더 문제지만.

물 한 모금을 들이킨 릴라크는 35만 남-동부연합군의 후방 보급기지가 만들어질 이 널따란 황무지, 나이만 분지를 빙 둘러보았다. 3면을 둘러싼 보기 싫은 험한 민둥산 중간으로 제법 널찍한 분지가 펼쳐져있는 이곳은 남쪽의 평지만 꽉 틀어막으면 웬만한 대군으로도 뚫을 엄두도 내지 못할 요새지였다.

그리고 바로 100스타디아정도 전방으로,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적이 장악하고 있는 1번 도시권역의 경계선이 자리잡고 있었다.

“선발대병력이 탑승한 수송선 4대가 황제령 대기권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부장의 보고에 릴라크가 짜증스레 물었다. 35만이나 되는 그 요란스런 대군이 이제야 황제령에 코빼기를 들이밀려는 모양이었다. 적들은 이미 황궁까지 차지하고 웬만한 방어태세를 완결해가는 지금 시점에서야.

“어디 가문 놈들이야?”

“델루지 가 중장보병 2만, 세닉 가 중장보병 1만, 델루지 가 기동보병 1만과 호지 가와 이그나토 가의 중장기병 5천 기, 그리고 건설작업을 벌일 사역병 2만과 노예 2만입니다. 참모장이신 카산드라 호지 부인이 선발대장을 맡고 계십니다. 그리고 동부 기병대 1만 기도 오늘 중으로 올 것이라 합니다.”

“플라칼 가는 없어?”

릴라크가 대뜸 얼굴을 찡그렸다.

“휴식시간을 주는 차원에서 후발대로 올 모양입니다.”

“제에기랄, 누구네 기병대는 철공소에서 찍혀 나온 줄 아나보지?”

자기 신세를 떠올린 릴라크가 대뜸 불평을 늘어놓았다. 생각해보니 그와 그의 부대는 탈라스에서부터 지금껏 제대로 쉰 일이 없었다.

게다가 황제령에 함께 온 그의 기병들은 어제 아침 있었던 황궁의 유학자 폭동에서 이미 동료의 절반을 잃은 신세였다. 그곳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50여 부하들이라도 좀 쉬게나 해 줄 것이지, 꼴도 보기 싫은 제롬 녀석은 고작 50기로 이번엔 선발대가 상륙할 이곳 나이만 분지를 미리 점검, 수색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적 영역 코앞에 와 있는 릴라크는 혹시나 적의 기습이라도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느라 벌써 몇 시간째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실전 감각도 없는 놈들 제일먼저 들여보내 뭣 하겠다는 거야.”

5기의 분대별로 흩어져 일대를 수색하는 부하들을 바라보며 릴라크가 분통을 터뜨렸다. 샤레이, 탈라스에서의 실전으로 이미 ‘감이 오를 대로 오른’ 플라칼 가 군대에 비한다면 이번에 선발대로 온다는 놈들은 최근들어 한 번도 전투를 치러보지 않은 완전 풋내기 녀석들이었다.

문제는 지금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적 전사단 병력, 아니 스스로 ‘동맹군’이라고 부르는 카렐의 병력은 루쿠스탄과 샤레이, 탈라스에서 계속된 실전으로 다져질 대로 다져진 정예병이라는 사실이었다.

“곧 보벤 경의 동부기병도 올 테니 염려 마십시오.”

부장이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넸지만 릴라크는 여전히 계속 투덜거렸다.

“참, 나, 지금 믿을만한 놈들이 동부기병들 뿐이라니, 기가 막혀서.”

투덜거리며 하늘을 올려보던 릴라크는 북쪽하늘에서 보이는 검은 형체를 잠시 응시했다. 조금씩 커지기 시작한 그 형상은 반가운 남부 수송선단으로 모습을 바꾸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카산드라 호지 경.”

첫 번째 수송선에서 5천의 중장기병들과 함께 내려선 남부 3제후이며 연합군 참모장 카산드라 부인에게 릴라크가 가슴에 손을 가져가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2차 혼란기 당시, 샤레이와 요동의 민간인 학살극으로 악명이 높은 이 매서운 인상의 백전노장 제후는 릴라크의 경례에 오만하게 고개를 까딱 했을 따름이었다. 흠집 하나 없이 번쩍거리는 갑주를 차려입은 카산드라 부인의 모습은 흠집투성이의 갑주와 무기는 물론이고 온몸에 먼지까지 잔뜩 뒤집어쓴 릴라크의 모습과 꽤나 대조적이었다.

“나쁘지 않군.”

나이만 분지 일대를 둘러본 카산드라 부인이 중얼거렸다. 1차로 도착한 5천의 중장기병들이 새 기지 주변에 분대별로 엷게 산개하고 있었다. 카산드라 부인이 뒤따라온 사역병부대 장교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 산 능선을 따라 2스타디아 간격으로 보병 120명 제대단위 주둔 가능한 보루 하나씩을 세운다. 능선길이가.......”

“110스타디아 정도입니다. 분지 남쪽 개구부 폭은 30스타디아정도.”

스캐너를 살핀 사역병부대 장교가 재빨리 대답했다.

“펜스도 능선을 따라 세우고 남쪽 개구부에는 임시방벽을 쌓도록 해. 출입구는 표시된 대로 남쪽에 두개, 북쪽과 서쪽에 하나씩 만들고.”

공성, 수성전의 전문가답게 지형을 보자마자 세세한 부분까지 지적하며 명령을 내리는 카산드라 경의 모습이 그의 오랜 경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뒤이어 내린 수송선에서 중장보병 3만과 경보병들이 내려서고 마지막 2대의 수송선에서 경무장한 사역병들과 노예들이 우루루 내려섰다.

4만 5천이나 되는 아군 무장병력에 둘러싸인 릴라크는 그제야 조금 안심할 수는 있었지만, 주변에 산개한 기병들부터가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번들거리는 새 갑주를 뽐내며 주변에 산개한 저들은 무슨 소풍이라도 온 듯 잔뜩 들뜬 모양이었다. 겉멋만 잔뜩 든 그들의 모습이 릴라크의 눈에 어지간히 거슬렸다.

“저놈들 5천보다 내 부하 50놈이 낫겠군.”

자신의 곁으로 돌아온 50여명의 플라칼 가 기병들을 바라보며 릴라크가 혼자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흠집투성이의 더러워진 갑주에 낡은 창을 들고 있었지만 그간 동부기병들과의 싸움에서 잔뜩 달아오른 살기가 그들의 눈에서 번득이고 있었다.

수송선 쪽에서 급박한 연락이 들어온 건 그때였다.

“동쪽 100스타디아 외곽에 정체불명의 기병대 출현입니다!”

“동쪽?”

카산드라 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휙 돌렸다. 이곳 나이만 분지에서 동쪽이면 바로 적들의 영역, 1번 도시 권역이었다.

“젠장! 어쩐지 조용히 넘어간다 했지!”

릴라크가 즉시 창을 움켜쥐며 말에 뛰어올랐다. 카산드라 부인이 여전히 침착한 얼굴로 할룩스에 대고 다시 물었다.

“다시 확인해라. 적 기병이 맞나?”

“지금까지 확인된 병력은 경기병 5천, 중장기병 5천입니다. 황궁에서 대형차량으로 이곳까지 기동한 모양입니다. 1번 권역 안쪽 후미에 차량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고마울 정도로 귀찮게 해 주시는군.”

카산드라 경이 말에 뛰어오르며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무려 1만이나 되는 적 기병들, 그것도 대부분 동부와 북부 출신의 정예 기병으로 이루어진 카렐 휘하 ‘동맹군’ 기병의 기습이라면 놀랄 만도 했지만 그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듯, 입가에 키득거리는 웃음까지 지으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사역병과 노예는 분지 안쪽으로! 보병대 중앙에 5열 방진! 기병대 3열 장사진! 보병대 전면에 정열해!”

직접 창을 뽑아 쥔 3제후 카산드라 호지 부인과, 그를 따르는 기병들이 분지를 온통 모래먼지로 수놓으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남-동부의 ‘연합군’과, 카렐을 따르는 ‘동맹군’ 간의 황제령에서의 첫 번째 전투가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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