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82 회: Part 1. 두 그루의 월계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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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령에 내려서자마자 ‘성대한 환영식’을 받게 된 연합군 선발대들이 크게 놀라 급히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1번 도시권역 경계를 넘어 수천을 헤아리는 기병들이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건기의 끝머리라서인지, 기병들이 일으키는 누런 흙먼지가 거의 하늘까지 뒤덮고 있었다.
카산드라 부인이 릴라크에게 물었다.
“저놈들이 슈로 기사단?”
“슈로 기사단과 슬레이프니르입니다!”
릴라크가 즉시 대답했다.
“전열에 경기병 5천, 후열에 중장기병 5천입니다!”
릴라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참모장님! 기병대를 일단 분지 안쪽으로 피하게 하십시오! 기병으로는 저들을 당할 수 없습니다! 보병대로 분지 입구를 틀어막고 기병들은 일단 언덕 위로 피한 후에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근위대에 구원요청을......”
“4만 5천군으로 시간만 끈다고? 미쳤나? 근위대 놈들 오기 전에 저 새끼들 피떡을 만들어놔야겠어.”
카산드라 경은 기습군이 적의 핵심부대인 슈로 기사단과 슬레이프니르라는 사실에 갑자기 욕심이 동했는지 함께 온 3만의 중장보병과 1만의 경보병, 5천의 중장기병대에게 바로 진격명령을 내렸다. 릴라크의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만 같았다.
“보병대는 건드릴 필요 없다! 기병대만 노려라!”
슈로 기사단 선두에 나온 라손이 창을 들고 선두에 서서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이번 기습은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도 목표였지만 이번에 대폭 증강된 두 기병대의 신병들에게 감각을 익혀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분지 입구를 빽빽하게 막아선 3만의 남부 중장보병들 정면에서 5천의 적 중장기병 선발대가 한참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1차로 돌진해 들어간 건 베아트릭스가 이끄는 슬레이프니르 5천이었다. 궁기병대인 3연대 1천 700명이 멋모르고 돌격해오는 적 중장기병대에게 첫 번째 투창공격을 날렸다.
“뭐야!”
이쪽의 투창공격에 대해 미리 사전교육을 받고 온 남부기병들이었지만 실제 대하는 건 그것과는 또 별개의 문제였다. 첫 번째 공격에 수백의 기병들이 낙마하자 기세등등하던 그들 남부기병들의 기세가 순간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채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이번에는 1, 2, 3연대가 날린 5천여발의 투창이 약 2, 3초 정도의 시간을 간격으로 3무리를 이루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기본진형인 쐐기꼴을 이루어 돌진해오던 남부 중장기병대 5천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사격에 거의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런 이들의 앞으로 5천여 슈로 기사단이 창을 세우고 매섭게 돌진해 들어왔다.
“돌격!”
이미 집중력을 잃은 남부 중장기병들 대오를 무섭게 뚫고 들어간 슈로 기사단은 적 5천여 기병대의 중앙부를 마치 추수하듯 쓸고 지나갔다.
“상관없다! 밀어붙여! 놈들을 묶어 놔!”
이를 악물며 소리치는 카산드라 경의 옹고집에 릴라크는 지금 이 여자가 제정신인가 싶었다. 박살나고 있는 기병대를 눈앞에서 빤히 지켜보면서도 그는 뒤따라오고 있는 3만의 중장보병대와 1만의 경보병대에 적 기병대를 향해 계속 진격을 명령하고 있었다.
“기병대를 속히 퇴각시키심이......”
입이 바싹바싹 말라들어간 릴라크가 다시 말했지만 카산드라 경은 듣고 있지도 않았다. 그 때, 카산드라 경의 부장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남동쪽에서 동부 수송선입니다!”
릴라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카산드라 경의 입가에 그제야 약간의 미소가 번졌다.
“함정?”
릴라크는 방금 전까지도 미친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이 여자를 홱 돌아보았다. 적 기병의 기습을 미리 예상한 이 여자가 미리 ‘함정을 판’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남부 중장기병 5천은 저들을 묶어두기 위한 미끼였다.
릴라크는 2대의 수송선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남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 악명 높은 동부기병이 남부의 편에 서서 출현할 차례였다.
“훗, 역시 폐하 예상대로였군.”
남동쪽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수송선을 보고받은 베아트릭스가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그 휘하의 5천여 슬레이프니르들은 이미 붕괴상태에 접어든 적 기병대에 계속해 투창공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어떤 수송선이지?”
“동부 수송선으로 보입니다.”
“동부기병들인가?”
내심 불안해진 베아트릭스가 얼굴을 찡그리며 스코프의 배율을 조정했다. 적들이 역습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상대가 하필 동부기병들이라면 만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들 동부 수송선은 1번 도시권역과의 경계 부근, 아군의 퇴로 한중간을 딱 가로막으며 수천의 기병을 우루루 토해놓기 시작했다.
“중장기병 4천! 경기병 6천! 총 1만 기입니다!”
“지휘관은?”
“.......분석중입니다.......깃발을 보아 보벤 슈트란 경 같습니다!”
갈라크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남부 선발대를 기습한 1만의 동맹군 기병은 남부와 동부 병력 사이에 꼼짝없이 끼어버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베아트릭스는 별로 놀라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말을 돌리며 후방의 동부기병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남부 기병대는 라손에게 맡겨 두고 슬레이프니르는 모두 나를 따른다!”
1만여기의 동부기병을 거느린 보벤 슈트란 경은 남부연합군 선발대를 기습한 적의 후방으로 기세등등하게 돌진했다. 그렇게 나아가던 보벤 경이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기까지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번 도시권역 내, 적 기병들이 지나오면서 일었던 뽀얀 흙먼지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뒤에서 몰려오는 ‘또 다른 후속병력’이 있는지에 있었다.
“이런!”
1차 기습한 1만의 동맹군 기병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보벤은 흙먼지 속에서 또다시 튀어나오는 기병들의 형상에 기겁을 했다. 자신들처럼, 적들 역시 병력을 쪼개서 차례대로 들여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이 건기의 짙은 흙먼지 속에 교묘하게 숨어서. 저 흙먼지 속에 얼마나 많은 적병들이 더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열세라 생각했던 적들이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나오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터였다.
“보벤 네놈! 잘 걸렸다!”
제2진에서 3천의 슈로 기사단을 이끌고 모습을 나타낸 상장군 제네르가 그답지 않게 살기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슈로 기사단 2진과 함께 나타난 루코프의 2천여 경창기병들이 특유의 날렵한 속도를 과시하며 동부기병대의 측면을 빙 돌아 서쪽을 파고들었다. 바로 투창, 사이클롭스를 지니지 않은 슬레이프니르 4연대, 순수 경창기병대였다. 지닌 것이 적은 만큼 다른 경기병들보다 좀 더 탄탄하게 무장했고, 속도 또한 한수 위였다. 그들의 대담한 우회기동에 남부기병들과 동부기병 사이가 순식간에 단절되었다.
서쪽으로 베아트릭스의 슬레이프니르, 동쪽으로 슈로 기사단 2진 사이에 끼어버린 보벤의 1만여 동부기병대가 크게 당황했다. 그 사이 라손이 이끄는 5천의 슈로 기사단 1진은 여전히 남부 중장기병들을 신나게 짓밟고 있었다. 적에게 함정을 놓으려던 연합군이었지만 적이 시작부터 쏟아낸 어마어마한 물량공세에 역으로 함정에 걸린 셈이었다.
이번 첫 공격은 그들이 생각했던 그냥 ‘기습’이 아닌, 동맹군 기병들의 ‘총 공세’였다.
그리고 동쪽 도시 경계선 너머에서 또 한 무더기의 모래먼지가 일기 시작하자 보벤의 얼굴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저건 또 뭐야! 도대체 적군에서 몇 놈이 나온 거야!”
“서부 낙타병부대 7천입니다! 적 기병이 총 출동한 것 같습니다! 이건 기습 정도가 아닙니다!”
창백해진 보벤은 남부 중장보병대 쪽을 바라보았지만 저 둔중한 중장보병들이 이쪽까지 도착하려면 오려면 적어도 10분은 걸릴 것이 확실했다.
카산드라 경의 당초 생각은 기병들이 적들을 묶어두고 있는 새 강력한 남부 보병들로 끝장을 보는 것이었지만 남부 보병이 생각보다 너무 느렸고, 적들의 기병이 너무도 많았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보병이 도착하기도 전에 기병대가 먼저 괴멸당할 판이었다.
다급해진 보벤이 악을 쓰고 소리를 질렀다.
“저 보병 새끼들을 어느 세월에 기다려!”
“지금이라도 투항하는 자들에겐 황상의 자비가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의 확성기 소리가 이미 싸움이 붙은 곳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거의 동시에 제네르의 슈로 기사단 북쪽으로 아쉬드 하지즈 장군이 이끄는 7천의 서부 낙타병부대가 서부 특유의 괴성을 지르며 요란스레 돌격해 들어왔다.
대 기병돌격으로는 최강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그들의 모습에 동부기병들도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력한 돌파력에도 불구하고 느린 속도가 약점인 낙타병들이었지만 상대가 기병들에 발이 묶여있는 지금 이 상황은 바로 낙타병들이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타이밍이었다.
바로 그 뒤를 이어 제네르의 슈로 기사단 3천이 이번엔 남쪽에서 돌격해 들어왔다. 그 막강한 양면돌격에 거의 무적을 자랑하던 동부 중장기병대 한쪽이 맥없이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북서쪽! 북서쪽으로 돌파한다!”
양면에서 돌격을 받은 보벤이 말에 박차를 가하며 소리를 질렀다. 슬레이프니르가 지키는 서쪽이 그나마 제일 돌파하기에 만만한 상황이었다.
“중장기병! 중장기병이 앞장서 뚫어!”
방패에 투창이 박히면서 말에서 떨어질 뻔 했던 보벤이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동부 중장기병들이 치고나가자 그들 경기병들은 잽싸게 뒤로 도망쳤다. 그사이에도 뒤를 맹렬히 쫓아온 슈로 기사단과 낙타병 부대가 동부기병대 후미를 야금야금 무너뜨려갔다.
“네놈이 학장님을 죽이라고 사주한 그 보벤이란 썩을 놈이구나!”
중장기병대 선두에서 달리던 보벤의 앞에 백마에 오른 건장한 서부 전사가 확 뛰쳐들었다. 한손에 극을 든 그의 망토에는 플레렌 가를 상징하는 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아쉬드 하지즈 장군이 무섭게 올려친 화극에 보벤은 하마터면 목이 통째로 잘려나갈 뻔 했다. 그의 창을 힘껏 받아내 보았던 보벤은 단 1합 만에 자신이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릴라크 경! 릴라크 경!”
하지즈 장군의 창에서 가까스로 목만 건진 보벤이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도망쳤다. 지금 1대1로 싸워가며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었다. 그 사이에도 7천의 낙타병부대가 동부기병들의 중앙을 반토막내며 돌파해 들어오고 있었다.
“잘 걸렸다!”
보벤은 투구의 술이 딱 하며 잘려나가는 느낌에 다시 비명을 질렀다.
“네놈이 요동에서 우리 상장군님을 죽이려 들었던 그 꼬맹이 동부 놈이냐?”
마치 얼굴 구경을 하라는 듯 투구 비버까지 활짝 열어젖힌 채 히죽거리며 덤벼드는 웬 거한의 반짝이는 은발에 보벤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그가 말을 돌리려는 순간, 뒤통수에 작렬한 발리의 창이 그의 투구 한쪽을 짓이겨버렸다.
“으악!”
머리가 깨지며 안장에서 옆으로 미끄러진 보벤이 말 목을 결사적으로 껴안았다. 보벤은 말의 반대편 옆에 매달린 채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의 몸이 말의 몸통에 가려진 덕에 발리는 창을 어디에 찔러야 할지 잠시 멈칫거렸다. 그새 기회를 잡은 보벤이 말에 무작정 박차를 가했다. 꼴은 우습지만 일단 목숨만은 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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