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85 회: Part 1. 두 그루의 월계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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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경계에서 있었던 기습전에서 낙오한 두 명의 기병이 보벤 경의 손에 끔찍하게 참살당했다는 보고를 전해들은 카렐은 줄곧 굳은 표정이었다. 보병도 아닌, 귀족인 기병 포로를 공개석상에서 불에 태워 죽였다는 건 그간 제국 전통으로 보아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사건이었다.
“둘 다 마지막 순간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떡해서든 그 둘의 시체를 찾아와라.”
“......알겠습니다.”
우베가 즉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둘의 계급이 어찌되는가?”
“모두 말단 기병입니다. 황실군이니 제후군보다 1품계 높은 10품에 해당합니다.”
“그 둘을 7품 중랑에 추서하고 유가족에게는 그에 따른 예우를 해 주도록. 북부길드에 연락해 그 가족들을 안전한 샤레이나 킨자이로 탈출시키도록.”
페로가 카렐의 파격적인 지시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겨우 말단 기병 두 명의 죽음에 황제인 카렐이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것은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전사자에게 무려 3계급 특진까지 부여하는 건 이번 사건을 카렐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확실했다.
“적들에게 공식적으로 시신인도협상을 요구하고, 그들이 마지막까지 귀족 기병으로서 명예를 잃지 않았다는 것과, 그 훈공으로 중랑에 추서되었다는 것을 피아 모두에 공개적으로 밝혀라. 시신수습비도 중랑급 지휘관에 준해 지급한다고 말해라.”
페로가 보일 듯 말듯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카렐의 노림수는 아마도 아군이 아닌 적군에 있을 터였다.
“북부 출신의 슬레이프니르 기병이 동부 요동 출신의 기사단 전우를 구하던 중 그 참변을 당했으니 어찌 가슴 아프지 않겠는가. 두 부대는 이 사실을 명심하고 각 부대에 널리 알리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제네르와 베아트릭스를 위시한 두 부대의 연대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우리도 보복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메샤 스펜타 사령관 케레사스 솔로스 경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적들이 먼저 도발했으니 명분은 충분합니다만. 인질로 잡고 있는 이바카 슈트란을 이참에 처형하는 것이......”
카렐이 손을 치켜들며 딱 잘라 대답했다.
“보복은 좋지만 동부기병들을 자극하는 것이면 곤란해. 그네들도 지금 가뜩이나 뒤숭숭해져 있을 텐데 쓸데없이 맞불을 놓을 필요는 없지. 기병 둘 때문에 그런 귀한 인질을 내 손으로 내버릴 필요는 없잖나. 쇼나 한판 벌리게. 보벤 그자에게 거열형을 선고하고, 그자의 목을 베어오는 용사에게 내 친히 큰 포상을 내릴 것이라고 말이야.”
* * *
사오시안트 별궁으로 베흔을 찾아온 칼림 플레렌 경은 시작부터 제롬의 잔소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별궁 30층의 거대한 응접실에 불려 올라온 서부 사절단은 제롬과 수우, 베흔의 앞에 일렬로 꿇어앉아 무릎이 발이 되도록 사죄했지만 제롬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를 않았다.
“허,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쇼? 댁의 그 잘난 아쉬드 하지즌지 하는 놈이 카렐 그놈 떼거지하고 같이 우리 선발대를 기습했단 말이요! 어떡할 거요? 당신네 정신나간 양아들을 어찌할 거냐고!”
“그게.......일단 놈들에 대한 모든 지원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지휘관들을 대상으로 개별적으로 귀환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니......”
“허, 그 잘난 학장 놈이 그 가짜황제 놈한테 제 손으로 옥패까지 바쳤는데 그 광신도들을 어떻게 설득하려고? 그리고 지원을 차단하면 뭐하냐고? 발 가하고 샤디 가는 완전히 그쪽으로 돌아버렸는데!”
흥분해 언성을 높이는 제롬을 베흔이 일단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칼림과 함께 온 라바니 세호 경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황제령에 도착하자마자 샤드니에게서 쫓겨났던 라바니 경은 이번에도 ‘중립’을 취하겠다고 밝힌 세호 가를 대표해 이곳에 와 있었다.
“라바니 경. 내 지금 지금 세호 가를 가장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겠소?”
고개를 묵묵히 숙인 라바니 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가짜황제 놈이 주페의 딸이라 하니 바로 그대의 친손녀요.”
바닥에 엎드린 라바니 경은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황후가 되겠다고 나선 년 역시 그대 가문의 손녀이고, 황빈이 되겠다는 가디언 혼혈년 역시 마찬가지요. 아마 지금 제국에서 그 가짜황제 놈과 가장 많은 연관을 가지게 된 게 그대 가문일거요. 그러니 내 안심할 수 있겠소?”
“굳게 맹세드립니다. 세호 가는 절대 저 배신자와 손잡지 않고......”
베흔은 라바니 경의 변명에 입가를 잔뜩 찡그리고는 한쪽에 서 있던 쿠베를 눈짓해 불러들였다. 한손에 칼을 쥔 쿠베가 등 뒤에 똑바로 자리잡고 서자 겁에 질린 라바니 경이 바닥에 이마를 대며 필사적으로 울부짖었다.
“정말이옵니다! 저 가짜황제와 절대 상종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땐 멸족을 피할 수 없는 거지.......저 카파키 가처럼.”
자리에 오만하게 자리잡고 앉은 베흔은 자신의 새 플람베르주를 꺼내들며 그 날을 어루만졌다. 베흔이 또다시 눈짓을 보내자 쿠베가 라바니 경의 목 뒤를 향해 천천히 칼을 치켜들었다.
“멸족은 그때 가서 생각하는 거고.......지금은 가짜황제의 조부가 되신 그 책임을 지셔야 하겠소. 내 그대의 목을 손녀인 저 카렐 년에게 선물로 보내드리리다.”
“제발! 제발 자비를.......”
얼굴이 파랗게 질린 라바니 경이 필사적으로 목숨을 빌었지만 베흔은 본 척도 하지 않으며 자신의 칼만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칼림 역시 그 앞에서 사색이 되어 있었다.
겁에 질려있는 서부 사절단을 쌀쌀맞게 돌아본 베흔이 무표정하게 손짓을 보냈다.
“쳐.”
순간 기겁을 하며 쿠베를 올려본 라바니 경이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제발! 그년은 제 손녀가 아니옵니다! 근위대장님! 그년은 제 손녀가......”
라바니 경의 외침에 순간 화들짝 놀란 베흔이 갑자기 손을 들어 쿠베를 가로막았다. 칼림 역시 기겁을 한 얼굴로 라바니 경을 돌아보았다.
“지금 뭐라 그랬나?”
베흔의 질문에 라바니 경이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울부짖었다.
“주페 그놈은 제 아들이 아니옵니다! 제 친아들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제가 그자의 시체조각을 그래서 보내드리지 아니했습니까! 그자와 가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꽉 악문 베흔의 턱에서 힘줄이 불끈 솟아났다.
“네놈이 시체를 보낸 게 그 때문이었다고?”
“편지를 적어 동봉하지 아니하였습니까! 그런데도 저를 저 미친 가짜황제 년의 조부라 말씀하시다뇨!”
“편지 따윈 없었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베흔이 홀 안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베흔은 물론이고 제롬, 수우 역시도 이 뜻밖의 사실에 잠시 멍해진 얼굴이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베흔이 그 매서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그런데, 네놈이 그 아비 행세를 한 이유가 뭐지?”
“황후위였던 바, 바니샤드 대공께서 돌아가신 직후에.......세나우스 2세 폐하께서 어느 날 절 부르시더니 명하셨습니다, 제가 주페의 친부이니 그 이상 묻지 말고 그대로 행동하라고.......그분 태도가 워낙 단호하셔서 저도 그 이유를 여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그놈의 진짜 아비가 누구냐?”
질문을 던지는 베흔의 턱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라바니 경이 베흔을 올려보며 울먹이는 소리로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시체에서 채취한 유전자로 진짜 아비를 찾아내려 했지만 무슨 이유엔지 제국민 중에 일치하는 인물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서부 혹은 북부혈통이고 장신에 적색 혹은 갈색머리에.......뭐더라.......눈동자 색깔은 청색이나 다갈색, 녹색 같은 열성 형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밖에는 그 이상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당시 자료를 바치겠습니다!”
제롬이 베흔을 바라보며 귀엣말로 물었다.
“그럼 처음 알려졌던 대로 바니샤드 대공이 친부인걸까? 모든 게 딱 맞잖아? 바니샤드 대공이 돌아가셨을 때 불륜 어쩌고 해서 주페 태자가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었고, 아들의 짐을 덜어주려고 황제가 뒤늦게 아버지를 바꿔치기하려 했을 수도 있지. 유전자은행 특별보관실에 있는 사람들 자료는 어차피 데이터베이스에서 삭제되니 검색도 안 될 테고.”
“아마도 그럴 겁니다.”
제롬의 지적에 베흔이 한숨을 내쉬었다. 주페 태자가 ‘주페 플레렌 리쿠’에서 주페 세호 리쿠‘로 이름을 바꾸던 당시에도 비슷한 소문이 오갔던 것이 사실이었다. 라바니 경은 황제에게 총애받는 남자도 아니었고, 황제가 둘째아들의 친부를 일방적으로 바꾸어 발표한 그 민감한 시점부터가 사람들에게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리고 베흔이 알기에도 주페는 네페티 부인과의 ’친남매 같은‘ 관계를 죽는 날까지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베흔이 제롬의 초록색 눈동자를 돌아보며 낮게 속삭였다.
“하지만 이건 명심하십시오, 그럼 카렐 그년이 공의 사촌이 됩니다. 네페티 부인은 조카와 결혼하는 셈이 되고.”
카렐이 자신과 혈연이 된다는 말에 제롬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그럼.......지금 이게 우리한테 유리한 거야? 불리한 거야?
“바람을 피웠건 아니었건 바니샤드 대공은 황제의 유일한 ‘공식적인 남편’이었습니다. 황제께선 돌아가실 때까지 죽은 대공의 황후위를 폐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기랄.”
제롬이 낯을 찡그리며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불명예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던 바니샤드 공은 제롬과 수우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로서도 이 일을 거론하는 것이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 문제는 일단 묻어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뭇 굳은 표정의 베흔은 쿠베에게 뒤로 물러나라 지시했다. 그는 방금 전까지도 잡아먹을 듯 부라렸던 표정을 얼른 풀며 칼림과 라바니 경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대들의 충정은 내 잘 알겠소.”
칼림과 라바니 경이 그제야 살았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 푹 쉬시고, 15일에 이곳에서 세나우스 4세 수우 폐하의 대관식이 있을 것이니 서부를 대표해 참석해주시면 고맙겠소.”
칼림이 마지못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아가시는 대로......”
베흔이 두 사람을 살짝 째려보며 뜸을 들였다.
“서부의 잔여병력을 모두 모아 탈라스를 다시 공격해주시오. 내 두 분이 빼어난 무장이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가짜황제가 탈라스에서 기병전력 강화를 노리고 있다고 하니 어찌 그냥 둘 수 있겠소. 탈라스 공격은 서부인들에게 그럭저럭 명분도 있고 그곳의 적 병력은 많지 않으니 내부적으로도 별 문제 없을 것이요.”
“타, 탈라스 말씀입니까? 또요? 하지만......”
라바니 경이 기겁을 하며 물었다. 그가 그다지 공손치 못한 말꼬리까지 붙여가며 되물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필 코리온이 카렐 편에 붙어버린 와중에 서부 병사들이 그를 거스르는 탈라스 공격에 제대로 나설 리가 없었다.
“왜요? 학장 때문에?”
베흔이 입가에 씨익 미소까지 지으며 물었다.
“서부 정규군은 필요 없소. 탈라스의 그 빠른 기마병들을 상대하는데 어차피 서부 정규군 조직은 그다지 적합한 병종이 아니라오. 같은 놈들을 동원하시오.”
“예?”
“탈라스 유목민과 사촌지간인 수베르 유목민들을 동원해서 탈라스를 공격하시구려. 가난에 찌든 그 야만족들은 마누라와 자식들이 양을 칠 땅을 준다면 자기들 모가지라도 기꺼이 바칠 거요.”
“알겠습니다.”
머뭇거리는 라바니 경 대신 칼림이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군에 가담하라던지, 북부를 공격하라든가 하는, ‘눈에 보이게’ 학장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닌 이상 이 정도의 요구라면 그로서도 수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베흔이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저 가짜황제의 명을 받아 탈라스를 지키고 있는 7제후 카이두 바툴 경은 용장일지 모르겠으나 두 분 장군처럼 탁월한 정치, 외교 감각이나 전략적 재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 인물이요. 경들이 수베르 야만족들을 잘 선동해 주기만 한다면 그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요.”
“하지만 그들은.......”
뭐라 사족을 붙이려는 라바니 경의 옆구리를 칼림이 얼른 꼬집었다. 라바니 경이 유목민을 잘 아는 노련한 무장이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서슬퍼런 자리에서 자꾸 딴소리를 늘어놓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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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지 1차 발송 완료되었습니다. 예약게시판 http://vein/zio.to 로 가셔서 명단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