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90 회: Part 1. 두 그루의 월계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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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 황제의 즉위식이 끝났다는 소식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던 남-동부연합군 병사들에게는 이제부터 끔찍한 행군이 시작되리라는 행군나팔소리와 마찬가지였다.
수우의 대관식을 끝내고 셔틀을 타고 서둘러 나이만 분지로 돌아온 제롬과 샤자한 공은 즉시 1번 도시 영내로의 진격을 명했다. 남부연합군의 주공인 1군은 전투병만 해도 남부연합군 중장보병 7만과 경보병 2만, 샤자한 공의 동부기병 3만까지, 무려 12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외에도 2만의 사역병과 3만의 종군노예, 2천대의 수송차량까지 포함된, 17만의 어마어마한 대 행렬이 동북쪽의 황궁을 향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별 것도 아니군.”
남쪽으로 조금 내려온 제롬의 눈에 거대한 욱리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폭만도 40스타디아가 넘는 이 어마어마한 강을 타고 쭉 올라가면 ‘가짜황제’ 카렐 놈이 버티고 있는 황궁 바로 건너편에 도착하게 될 터였다.
“북동쪽으로 간다!”
행렬의 선봉을 맡은 헤즈 경이 남부연합군의 파란빛 거대한 군기를 치켜들었다. 자연방벽인 강을 오른쪽에 끼고 수송부대와 사역부대, 노예들이 제일 안쪽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 바깥을 감싸듯 2천의 대대단위씩을 이룬 남부보병대가 행군대형으로 자리 잡았고, 샤자한 공이 지휘하는 3만의 동부기병대가 가장 외곽에서 적의 기습을 대비해 보병들과 속도를 맞춰 나아갔다. 이 17만의 대 행렬은 ‘황제령 1번 도시권역’이라는 거대한 이정표 옆을 지나쳐 위풍당당하게 그 안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막강한 남부보병과 동부기병의 조합이라면 2차 혼란기의 북-동부연합군 이후 그간 제국의 많은 제후들이 꿈꾸어왔을 말 그대로 최강의 궁합이었다.
“대단하군.”
말에 오른 동부최고제후 샤자한 공이 어마어마한 남부보병들의 위용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한번에 진격하는 병사들의 숫자가 숫자니만큼 그 대오의 길이만도 100스타디아가 훌쩍 넘었다. 하루에 12시간씩, 300스타디아를 행군하는 게 목표였다면 후미의 부대는 선두의 부대보다 적어도 3시간의 시차를 두고 늦게 출발해야 하는 셈이었다.
“오늘 진격로는 안전할까요?”
옆에 함께 가던 손자 보벤이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물었다. 지난번 전투에서 다리가 으스러지고 목이 어긋난 그는 요동으로 돌아가 있으라는 할아버지의 권고에도 이번에 ‘전공’을 반드시 세워 이름값을 하겠다며 바득바득 우겨 이 원정을 따라와 있었다.
“정찰대 보고에 오늘 진격로는 아주 좋다는군. 이렇게 많은 병력이 가는데 반격할 엄두나 내겠냐. 놈들도 우리를 최대한 안으로 깊이 끌어들여 결판을 지으려 하겠지.”
노장 샤자한 공이 전방 좌우를 빙 둘러보았다. 서쪽으로는 해발고도가 40스타디아가 넘는 어마어마한 흥안령 산맥이, 동쪽으로는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폭을 지닌 욱리하가 버티고 있었다. 1군의 진격로는 그 둘 사이, 100스타디아 정도 좁은 폭의 하안 분지를 타고 죽 이어져 있었다.
“우리만 지나가면 적들이 바로 후방을 틀어막아버리겠군.”
“기병 2,3천만 동원하면 되겠는걸요.”
“듣자하니 하지즈 장군이 낙타병 3천을 거느리고 강 건너 백암성에서 기다리고 있다는군. 이 길은 일단 후방 보급로로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될 거다. 제롬 저놈이 이암성을 뚫어서 욱리하 수로를 이용해서 보급로를 확보하겠다는 게 틀린 말도 아니지. 주류성만 뚫으면 보조할 육상 보급로도 일단 확보될 테고.”
“적 초소 같습니다.”
보벤이 망원경을 내밀며 말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을 먼 산맥 한쪽의 불쑥 나와있는 바위 위에 자그만 동맹군 초소가 보였다. 경갑주 차림의 보병 서넛이 망원경으로 연합군 행렬을 바라보며 저희들끼리 무어라 시시덕거리고 있는 모양이 괜히 얄미워보였지만 당장은 별수 없었다. 이곳 산맥을 따라 널려있을 저런 초소들까지 하나하나 다 때려잡을 수도 없고, 기껏 저런 초소를 하나하나 공격해봤자 쓸데없는 에너지소모일 뿐이었다. 어차피 저놈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산 속으로 바로 도망쳐버릴 테니.
“녀석들 재빠르군. 벌써 이곳에 초소까지 다 깔았다니......”
샤자한 공이 입을 삐죽거렸다. 머리에 자그만 깃털장식을 꽂은 분대장인 듯 싶어 보이는 병사가 망원경을 보며 무어라 연신 떠들어대고 있는 것을 보아 이곳 상황을 상부에 알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 앞에도 또 초소입니다.”
부장의 목소리에 샤자한 공의 얼굴에 불안감이 감돌았다. 그의 말마따나 방금 전 초소에서 30스타디아 정도 전방의 산맥자락 바위 꼭대기에 비슷한 규모의 또 다른 초소 하나가 보였다.
“용의주도한 놈들......”
초소간 거리나 주둔한 병사 수로 보아 기습을 위한 병력은 틀림없이 아니었다. 이곳을 지날 아군 후발대 기습과 후방 정보를 제공할 적군의 정찰 초소임이 분명했다.
“언제 저걸 다 설치했지?”
보벤이 이를 갈며 초소들을 노려보았다. 적들이 1번 도시를 차지하고 기껏 3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벌써 요지마다 빈틈없이 초소를 설치한 것을 보아 카렐 그자는 황궁을 기습하기 이미 한참 전부터 모든 것을 계획해 놓았음에 틀림없었다. 이래저래 샤자한 공의 머리가 복잡했다.
숫자로만 보면 남부 보병보다 훨씬 적은 3만의 기병을 데려온 그였지만 사실 기병 한 명은 따져보면 보병 열 명에 육박하는 보급이 필요했다. 말에게 먹일 압축건초는 물론이고 피로했을 때나 부상을 입었을 때 교체해줄 여분의 말들도 필요했다. 귀한 ‘군마’를 아무데서나 재울수도 없으니 매번 숙영지마다 푹신한 마구간도 지어야 하고 매일 일과 후에는 세심한 관리도 해주어야 했다.
게다가 귀족인 기병들에게 말똥청소나 막사 짓는 막일을 시킬 수도 없고, 20명씩 자는 보병막사 대신 5명이 자는 그럴듯한 막사도 지어줘야 했다. 그러다보니 보급품이 많아지는 건 물론이고 사역병과 노예들도 같은 숫자의 보병들보다 두 배 이상 더 필요했다.
그렇게 귀하신 군마들이다보니 기병들에게는 얼핏 쉬워 보이는 ‘행군’도 실상은 그렇지를 못했다. 중대장급 이하의 기병들과 하급지휘관들은 무기와 갑주를 말에 실은 채 말에서 내려 걸어서 행군해야 했다.
그나마 편한 기병들에 비한다면 그 안쪽에서 걸어서 행군하는 남부 중장보병들의 심정은 ‘죽겠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개인장비 비상식량이 든 배낭, 갑주와 투구는 말할 것도 없었고, 등에 짊어진 방패, 창과 허리에 찬 장검, 단검, 그리고 개인용 전자장비들까지 합치면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다리를 붙들기는 충분한 무게였다. 이런 상태로 푹푹 꺼지는 하안의 모래땅을 밟으며 나아가는 그들은 몇 시간 가지도 않았는데 이미 사방에서 죽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우기 전에 날짜를 맞춰서 도하할 수 있을까요?”
보벤의 질문에 샤자한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내 보긴 우기가 한 달쯤 늦어지기를 바라는 게 더 현실적이겠군.”
제롬보다 조금 늦게 본진을 출발한 연합군 2군 사령관 예르마크 세닉 경은 보병대보다는 조금 긴, 하루 4백 50스타디아씩을 행군목표로 삼고 북동쪽 주류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제롬이 이끄는 1군이 주류성 동쪽에 도착하기 하루 전에 주류성 서쪽에 도착해야 할 터였다. 이미 전군이 오늘의 숙영지에 도착했어야 할 시각이었지만 계획보다 늦게 출발한 탓에 저녁 9시가 넘어가는 이 늦은 시각까지 길을 재촉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번 연합군에 편성된 남부 중장기병은 총 5만 정도였지만 제롬의 근위기병대로 배속된 녀석들과 수송대 호위군으로 차출된 병력까지 이렇게 저렇게 빼고 나면 실제 그에게 배속되어진 기병은 7개 기사단 약 4만 3천 정도였다.
그리고 수송차량 2천여대와 사역병 2만5천, 노예 3만까지, 모두 합치면 총 10만에 달했다. 사역병도 때로는 기병을 따라 적 확인사살에 동원되기는 했지만 원칙적으로는 비전투요원이라는 점에서 전투병인 기병들보다 노예나 사역병이 도리어 더 많은 셈이었다.
“듣자하니 주류성은 서부 놈들이 맡고 있다죠?”
예르마크 세닉 경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 건 이번 연합기병대 3기사단장을 맡고 있는 장녀 루이제 세닉 리쿠 대군이었다. 바로 위의 오빠 코리온과는 대조적으로, 어머니를 닮아 떡 벌어진 우람한 체구의 루이제 대군은 성격 또한 학자인 그 오빠와는 완전히 딴판이어서, 다혈질에 머리 쓰는 일이라면 질색을 하는 그런 여자였다. 게다가 오빠에게 자기 몫의 품위와 지능을 넘겨주는 대신에 주색과 남색은 몰아서 물려받았는지, 걸핏하면 말술을 들이켜 대는 좋게 말하면 호방한, 나쁘게 말하면 대책 없는 주당이기도 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비슷한 점이라면 코리온은 6명의 아내가 있었다는 점이고, 루이제에게도 6명의 남편이 있다는 것 정도였다. 물론 그들 모두를 쫓아낸 누군가와, 지금껏 다 데리고 있다는 차이만은 극명했지만.
오죽했으면 그의 풍모를 따라주지 못하는 ‘머리와 품위’를 내심 아까워한 어머니 레곤 대공주가 ‘이놈한테 오빠 지능에서 딱 10분의 1만 떼어줬어도 내가 나오는 거였을 텐데.’하고 통탄해할 정도였다.
사실 대공주가 낳은 대군들 중에서 콜로니 아카데미도 졸업하지 못한 건 이 딸이 유일했다. 그래도 적성이란 게 따로 있기는 한 것인지, 단순하지만 사람을 끄는 호방하고 시원시원한 성격과 지칠줄 모르는 체력으로 사령관인 아버지 밑에서 세닉 가 중장기병대장으로 제법 인정은 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부와 싸워본 경험이 많으니까 그쪽에 배치한 모양이지.”
예르마크 경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선봉을 맡은 히르직스의 부대는 이미 숙영지에 도착해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는 연락이었지만 예르마크 경의 후미부대는 아직 30분 정도는 더 가야 할 터였다. 기병이다보니 보급이 유난히 많이 필요한 탓에 중앙에 위치한 수송대의 대오가 워낙 길게 늘어져 행군이 생각같이 빨리 되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쪽에 배속받은 사역병이나 노예들은 닭장같은 철깡통을 타고 움직일지언정 그래도 기병의 호위를 받으며 차로 움직일 수 있으니 보병대에 배속받은 것보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네 기병들은 별말 없냐?”
“별말 없긴요, 입이 댓발씩은 나왔죠.”
아버지의 질문에 너털웃음을 지은 루이제 대군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자기 부하들을 바라보며 냉큼 대꾸했다.
발빠른 적 경기병대의 원거리 기습을 생각하면 이쪽에도 그에 대항할 수 있는 경기병이나 투창병이 필요하다는 것을 예르마크 경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단거리 협박용 무기가 아닌 장거리 요격무기로서의 ‘투창’은 남부제후군, 아니 동부를 제외한 제국 전체에서 몇몇 엘리트병종의 전유물이었다. 그리고 기, 보병 모두가 투창에 능한 동부의 경우에도 경기병들의 특권의식과 비용상의 문제로 보병들이 투창을 집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무려 1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의 보병 투창병단을 키워낸 당사자가 바로 예르마크 경이었다.
이번 진격에도 예르마크 경은 자신이 키운 세닉 가의 투창병단을 2군에 배속시켜달라고 제롬에게 몇 번이나 요청했었지만 ‘투창병들은 마누엘 경의 3군에 이미 배속되었으니 근위병으로 몇 명 데려간다면 모를까 그 이상은 안 된다’는 단호한 거절의 대답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기동기병을 만들기 위해 제일 만만한 딸이 이끄는 7천명의 3기사단에게 ‘흉갑만 빼고 모두 벗어라’라는 청천벽력같은 명령을 내렸던 터였다.
“솔직히 꼴이 저게 뭐냐고요.”
루이제 대군이 자신의 부대원들을 가리키며 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제대로 된 경기병도 아니고, 회색의 중장기병 평상 군복 위에 묵직한 중장기병 투구와 흉갑만 두르고 마갑도 벗겨낸 말 위에서 창을 든 꼴이 루이제 말마따나 꽤나 우스꽝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생긴 꼴로 전쟁하냐.”
예르마크 경이 딸에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는 어둑어둑해진 사막 지평선 너머 서쪽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이 길로 진격하는 게 차라리 다행이구나.”
“왜요?”
“어쩌면 우리는 행군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거든.......”
“무슨 말씀이세요?”
루이제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지만 예르마크 경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행군시간이 길어지면서 병사들도 조금씩 늘어져서인지, 대오가 조금씩 길고 느슨하게 늘어져 있었다. 예르마크가 속한 2군 지휘부의 행렬은 그렇게 길게 늘어진 채 험한 바위언덕 옆을 천천히 지났다.
그때, 갑자기 들려온 웬 쉬잇 하는 소리를 예르마크 경도, 루이제도 그냥 하늘을 날아다니는 대머리 독수리들의 그 듣기싫은 울음소리로 알았을 뿐이었다. 예르마크 경은 그의 머리 옆을 날아가는 웬 섬칫한 느낌에 순간 몸을 움츠렸다.
“5시 방향! 저격병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예르마크 경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들며 스코프를 확대시켰다. 말로는 올라갈 수 없는 가파른 절벽 위로 누군가가 헐레벌떡 도망치고 있었다. 중장갑을 차려입은 근위기병들이 비호같이 달려와 사령관 예르마크 경의 사방을 재빨리 에워쌌다.
“근위연대장님이 맞았습니다!”
예르마크 조금 앞쪽에서 가고 있던 근위연대장 중랑장이 목에 짧은 투창이 관통당한 채 말 위에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모양으로 보아 이미 절명한 것이 확실했다.
“저놈 잡아!”
흉갑만 걸친 3기사단 병사들이 저격병을 쫓아 달려가려 했지만 적은 미리 치밀하게 준비한 듯 거친 절벽을 귀신같이 기어올라 멀어져가고 있었다. 절벽 앞에서 멈춰선 기병들이 잠시 추격로를 잃고 우왕좌왕거렸다.
“발사!”
순간, 누군가의 명령에 거의 백여발에 가까운 짧은 투창이 절벽을 향해 어둠 속을 날아올랐다.
“으익!”
절벽 밑에서 어슬렁거리던 기병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 많은 투창들 중 도망치던 저격병에게서 반경 10척 바깥으로 벗어난 것은 단 한발도 없었다. 잠시 ‘살았다’고 생각했을 적 저격병은 등에 온통 투창 세례를 뒤집어쓴 채 절벽의 거친 바위에 차례대로 부딪치며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내 직접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투창을 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예르마크 경이 근위기병들을 거칠게 밀치고 나가며 이를 갈았다. 200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근위병으로 함께 따라온 투창병단 중랑이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워낙 상황이 급박해서.......”
예르마크 경은 사죄하는 중랑의 어깨를 발로 힘껏 걷어차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시 말하겠다. 너희 부대는 적에게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절대 발사하지 마라. 포로가 한 명이라도 있어서는 안되니 전투에 뛰어들지도 마라. 다시 실수를 한다면 네놈의 목을 쳐 버리겠다!”
“명심하겠습니다.”
“젠장.”
예르마크 경은 뚱한 얼굴로 돌아섰다.
“기동기병들은 주변에 다른 저격병이나 정찰병이 있는지를 살펴라. 빨리!”
“이놈입니다.”
기병들이 바닥에 떨어진 적 저격병의 시체를 말에 질질 끌고왔다. 등 뒤로 수십발의 집중사격을 받은 시체는 보기에도 끔찍할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저격병의 너덜너덜해진 위장포를 걷어내자 그 안에 입고 있던 동부 바툴 가의 더러워진 군복이 드러났다.
“아버지를 노린 걸까요?”
루이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니.”
예르마크 경이 한숨을 내쉬며 바로 옆의 언덕을 올려보았다.
“탈라스의 저격수 정도면 저 거리에서 내 눈알도 맞췄을 거다. 나와는 싸우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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