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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415화 (414/1,132)

< -- 415 회: Part 2. 석류꽃 속에는 핏빛 씨앗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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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납이 이끄는 40척의 보트들은 적 보트 양옆으로 개미떼같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더 빨리! 속도를 늦추지 마! 적의 배가 높아서 선제공격을 당하게 된다! 가디언들이 먼저 뛰어올라 위치를 잡거든 그 때 보트를 배 옆에 대라!”

뱃머리를 꽉 붙든 자이납이 키잡이에게 속도를 더 올리라며 악을 쓰고 외쳤다. 뱃머리에서 튀어오른 물보라로 그의 몸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준비!”

마주오는 적군 배와의 거리를 가늠하던 자이납은 함께 탄 페로 가디언과 함께 상대방 뱃머리를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공격!.......어, 엉?”

배를 가득 채우고 있을 가디언들을 생각하며 배 위로 확 뛰어올랐던 자이납은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배 위에 타고 있는 건 고작 키잡이와 몇 안 되는 정규군 보병들, 그리고 나머지는 갑주를 입혀놓은 나무인형뿐이었다.

“뭐야!”

당황해 고개를 번쩍 치켜든 자이납은 후미에서 달려온 20여대의 보트들이 굉음을 울리며 옆을 스쳐 지나는 광경을 빤히 지켜보며 순간 아연실색했다. 선두 보트들과 정규군들은 자이납 일행을 잡아두기 위한 미끼일 뿐이었다. 정규군들 잡아 죽이느라 시간을 끌 여유가 없었다.

“제기랄! 4소대만 놔두고 모두 저 보트를 쫓아!”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자이납은 주변을 빙 돌아 되돌아온 자신의 보트에 다시 뛰어올랐다. 하지만 이미 정규군들과의 싸움에 말려든 가디언들은 쉽사리 그곳을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빨리 내버려두고 나오란 말이다!”

자이납이 뒤처진 수십 대의 보트들에게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그 사이 앞서지나간 적군의 다른 보트들은 자이납의 보트보다 한참 앞서서 다리를 향해 돌진해가고 있었다.

“녀석들 보기 좋게 물었군.”

아리엘이 따라온 부하들에게 한쪽 손가락을 번쩍 치켜들어보였다. 이번에 보트를 타고 돌진해 온 부하들은 저 미덥지 않은 정규군 병사들이 아니었다. 갑주 쪼가리조차 걸치지 않은 이들 400여 용사들의 손목에는 하나같이 황금빛의 가디언팔찌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들은 아리엘의 손짓에 미리 가져온 리프트장치를 일제히 뽑아들었다.

“10대씩 갈라진다. 난 북쪽을 차단하겠다. 너희는 댐이 있는 남쪽을 차단해라. 구름다리를 남북 양쪽에서 끊고 중간에 낀 놈들은 몰살시켜버려.”

구름다리에는 아직 적 보강병력들의 모습은 보이지조차 않았다. 아리엘과 그 무리가 탄 20여대의 보트가 남북 양쪽으로 갈라져 돌진했다. 이곳에 남아있던 십여대의 동맹군 보트들이 반격해왔지만 이들 모두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뭐 이렇게 빨라!”

구름다리 중앙까지 달려나온 네피가 어느새 다리 바로 밑까지 쇄도한 적들을 내려다보며 소리를 꽥 질렀다. 다리를 지킬 보강병력과 가디언들도 이제야 막 성 밖으로 모습을 나타낸 차였다.

“빨리! 빨리!”

네피의 악을 쓰는 고함소리가 허망하게 공기 속을 울렸다. 그리고 아리엘과 4백여 가디언들이 동시에 쏘아올린 리프트가 구름다리 측면에 일제히 고정되었다.

“리프트 잘라! 빨리!”

네피가 도끼를 뽑아들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경비병들의 마지막 발악도 기껏 십여명의 운 없는 가디언들을 물에 빠뜨린 정도가 고작이었다. 무려 4백의 가디언들이 배를 놔둔 채 공중으로 일제히 솟구쳐 올랐다.

“이놈!”

배의 키를 직접 잡고 이곳까지 필사적으로 쫓아온 자이납이 리프트를 붙들고 막 공중으로 솟구치는 근위대 가디언의 목을 뒤에서 다짜고짜 끌어안았다.

“뭐야!”

자이납에게 목을 붙들린 가디언에 그의 팔을 풀어내려 버둥거리는 와중에도 그의 허리띠에 감긴 윈치는 강력하게 회전하며 이 둘을 구름다리 위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4백여 근위대 가디언들은 동맹군 보병들과 가디언들이 장악하고 있던 다리 위에 순식간에 발을 들여놓았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전사단 출신 가디언들이 막 구름다리에 뛰어오르던 근위대 가디언들의 목을 사정없이 후려치면서 이암호에 첫 번째 핏자국이 그려졌다.

“성에서 곧 지원군이 온다! 조금만 버텨!”

네피가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며 덤벼오는 나이어린 가디언의 정수리를 힘껏 도끼로 내리찍으며 악을 썼다. 적들은 성과 연결되는 북단, 댐과 연결되는 남단을 순식간에 장악하고 중앙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이 좁은 다리의 양쪽 끝단이 순식간에 막히면서 얼떨결에 중앙에 낀 네피가 잠시 우왕좌왕거렸다.

“무슨 소리지?”

그때, 교각 북쪽에서 웬 귀를 찢는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린 네피가 발견한 건 이 구름다리의 케이블을 절단하고 있는 적들의 모습이었다.

“썅! 놈들이 다리를 끊지 못하게 해! 성에서 나오는 놈들은 뭐 하는 거야!”

네피가 성 쪽에 있는 병사들과 가디언들에게 악을 썼지만 그들 역시 근위대들에 가로막혀 전진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도끼를 든 네피가 적들을 향해 급히 달려갔지만 무려 3명의 근위대 가디언들이 그의 앞을 재빨리 막아섰다.

“비키란 말이야! 씨발!”

네피가 그들 중 한 명의 칼을 도끼로 힘껏 내리찍어 박살을 내버렸다. 칼과 함께 팔이 잘려나간 그 젊은 가디언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도!”

다급해진 네피는 옆에서 칼을 내질러오는 다른 가디언의 턱을 팔꿈치로 힘껏 후려치고는 무작정 케이블을 향해 달려갔다.

“지겨운 것 같으니!”

1초가 다급한 그의 앞을 이번엔 제법 노련해 보이는 다른 가디언이 또다시 가로막았다. 네피가 급한 마음에 도끼부터 휘두르며 달려갔지만 상대는 그런 네피의 공격을 옆으로 살짝 비켜내며 바로 칼끝을 그의 목을 향해 돌렸다.

“으익!”

급히 자리에 멈추려던 네피는 그만 중심을 잃으며 뒤로 잠시 휘청거렸다. 순간, 상대 가디언의 칼끝이 뒤로 반쯤 넘어진 네피의 턱을 베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악!”

턱뼈까지 깊숙이 잘려나간 네피는 다리 난간에 등을 요란스레 부딪치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그때, 찌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다리 한쪽이 기울기 시작했다.

“이런!”

네피의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다리를 지지하는 4개의 케이블 중 동쪽의 2개가 이미 끊어서 있었다. 케이블의 인장력에 기대 세워진 이 구름다리의 한쪽이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반대편 2개마저 끊어진다면 이 다리 중앙부는 상판과 함께 물로 곤두박질치고 말 터였다.

성에서 이곳 다리로 오려던 지원병력들은 이 위험천만하게 기운 다리를 차마 넘어오지 못하고 반대편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다리가 기울며 부서진 난간들이 100척 아래, 까마득한 물속으로 마치 종잇장처럼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반대편 케이블에 매달려서라도 오란 말이야!”

네피는 중상을 입었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다시 도끼를 치켜들고는 눈앞을 막아선 이 골치아픈 가디언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오호! 네피 이놈 걸렸구나!”

순간 멈칫하며 옆을 돌아본 네피는 자신을 향해 치켜든 아리엘의 무시무시한 프레일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놈! 1대1도 모르냐! 난 바빠!”

평소 같았으면 아리엘에게 무작정 싸우자고 덤볐을 네피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리엘은 그렇게 룰을 제대로 지켜가며 싸우는 신사적인 가디언은 결코 아니었다.

“상관없어! 이 새끼야!”

네피가 나름대로 힘껏 내리찍은 도끼가 다른 가디언의 칼에 막히며 잠시 멈춘 순간, 뒤에서 공격해 온 아리엘의 철퇴가 네피의 왼쪽 뒷덜미를 정확히 내리찍었다.

“아......학........”

비틀거리는 네피를 향해, 앞에 있는 가디언과 뒤에 있는 아리엘이 동시에 무기를 치켜들었다.

“이놈을 내가 잡는구나!”

등 뒤에서 들리는 아리엘의 기쁨에 찬 고함소리를 느끼며 네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순간, 그의 앞에 있던 가디언의 목을 검은빛 시미터 날이 날카롭게 스쳤다. 잘려나간 가디언의 머리가 잔뜩 기울어진 상판을 타고 굴러 다리 밑 호숫물로 멀어져갔다.

“네피 대장!”

다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목숨을 걸고 올라온 자이납은 이미 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목이 달아난 적의 시체를 밀치며 무작정 들이닥친 그는 쓰러지는 네피의 정수리를 향해 정확히 내리꽂히는 아리엘의 프레일을 있는 힘껏 옆으로 쳐냈다. 하지만 아리엘의 무지막지한 힘을 그래서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아악!”

목과 어깨가 으스러진 네피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는 하마터면 이 기울어진 다리에서 미끄러져 까마득히 아래 호숫물로 추락할 뻔했다. 자이납이 그의 팔을 낚아채며 뒤로 재빨리 물러났다.

“학, 학,”

공포에 질린 자이납의 거친 입김이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퍼졌다. 쓰러진 네피를 한 팔로 힘겹게 받친 그는 히죽거리며 선 아리엘을 향해 칼끝을 겨누었다. 그는 자신이 저 무시무시한 살인귀 가디언을 결코 상대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뒈져.”

아리엘은 궁지에 몰린 이 둘을 향해 프레일을 치켜들고 악 소리를 지르며 돌진했다.

“으익!”

그 순간. 서쪽 케이블 하나가 또 끊어지면서 다리가 무섭게 흔들렸다. 반쯤 잘려나간 단 하나의 케이블에 위험하게 기댄 다리 북쪽은 마치 울음소리처럼 소름끼치게 끼익거리며 당장이라도 무너질 기세였다. 다리가 흔들리면서 아리엘도 하마터면 자리에서 넘어질 뻔했다.

“쳇. 내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지.”

아리엘은 위태롭게 남아있는 마지막 케이블을 힐끔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자이납, 네피가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이 다리 북쪽은 곧 무너질 다리 상판과 함께 까마득한 아래, 호숫물 속에 떨어지며 끝장이 나 버릴 터였다. 아리엘이 침을 퉤 뱉으며 말했다.

“갈 테면 너희들이나 가. 난 아직 이승에 죽일 놈들이 많거든.”

자이납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교각 위쪽을 올려보았다. 마지막 케이블은 이제 거의 잘려나간 상황이었고, 교각 위에 있던 보병들과 가디언들은 남쪽의 댐으로 도망쳤던가, 모두 시체가 되어있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제 구름다리는 끝이었다.

자이납이 이를 갈며 아리엘을 노려보았다.

“그래? 나도 아직 많아.”

자이납이 피투성이가 된 네피의 건장한 몸을 품에 꽉 껴안았다. 그리고는 섬뜩한 높이의 다리 밑, 호숫물을 향해 몸을 힘껏 내던졌다.

“저년이!”

깜짝 놀란 아리엘이 달려가려 했지만 다리는 바람 한 점에도 마치 깃털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수면을 향해 내리꽂힌 자이납과 네피는 호수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그때, 퉁 하는 소리와 동시에 마지막 케이블마저도 끊어져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케이블이 끊어지면서 마치 물결처럼 출렁대던 거대한 다리 상판은 요란한 소음, 물보라와 함께 물 속으로 사라져갔다.

“놈들을 잡아내던가 시체라도 찾아내란 말이다!”

아리엘이 아직 호수 위에 있는 보트들을 향해 악을 썼다. 자이납과 네피가 떨어진 곳 바로 위로 상판이 떨어졌으니 어쩌면 상판에 맞아 즉사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자이납과 네피가 살았든 죽었든, 처음 목적대로, 이암성과 댐을 분리시키는 것만은 제대로 성공한 셈이었다. 아리엘은 할룩스를 집어들고 본대에 즉시 연락을 취했다.

“다리 철거 성공. 이제 서쪽 보조성을 공격해 이암댐을 장악하십시오. 우리는 이쪽에서 중앙성을 공격하겠습니다.”

아리엘의 보고와 함께, 호수 건너편 연합군 숙영지에서 와아 하는 우렁찬 함성이 터져올랐다. 연합군의 원정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거둔 완벽한 승리였다. 그리고 이제, 댐만 장악한다면 황도로 들어가는 연합군의 진격로 역시 훤히 뚫리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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