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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429화 (428/1,132)

< -- 429 회: Part 2. 석류꽃 속에는 핏빛 씨앗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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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시안트 별궁에서 수우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까맣게 모르는 제롬은 도하 지점을 향해 기분 좋게 북진해 나가고 있었다. 진격로 동쪽에는 1번 도시에서 가장 큰 파란기스 호수가 새파란 물빛을 반짝였다. 이 호수가 끝나는 곳, 강 건너편에 황도 아케메니안 시가 있을 것이고, 강을 건너 그곳만 점령하면 이 전쟁은 사실상 끝이었다.

‘장태자라.......내 자식이 장태자라......“

자신의 피를 이은 자손이 제국의 제위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만 하면 그는 과할 정도의 의욕이 가슴 속에서 마구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하나로 충분할까?”

제롬이 뜬금없이 혼자 중얼거렸다.

‘까짓 대여섯쯤 더 낳게 해서 아예 황실 피를 물갈이해버려?’

잠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던 그는 곧 생각을 접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 한심한 동생 수우에 대해서 몹쓸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가슴 속 조그마한 양심 때문에 바로 머리에서 지워버리곤 했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전쟁에서 이기면 이 우라질 호수 이름부터 바꿔야겠어.”

제롬이 함께 가는 릴라크에게 낄낄대며 말을 건넸다. 그의 뜬금없는 말에 릴라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왜요? 이름 좋지 않습니까?”

“오르마즈 그 놈이 지은 이름이라지? 원래는 다하카르 호수였고.”

“누가 지었던 간에 이미 수백 년 동안 굳어진 이름인데......”

“샤미르 리쿠 어미 이름 아냐?”

“예, 그렇죠. 죽은 오르마즈 경이 샤미르 총통의 어머니였던 파란기스 카이의 이름에서 따서 지었다죠.”

“따져보면 황실에 피 한 방울도 남기지 못한 여자 아냐? 그런 여자 이름을 황도 바로 옆의 호수에 붙여도 되는 거야? 차라리 우리 어머니 이름을 붙이는 게 낫지. 네페티 호수 어때?”

제롬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릴라크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비록 남부 가문에 시집을 와서 어쩌다가 남부연합군에 소속되기는 했지만, 그의 타고난 핏줄은 중앙귀족가인 예리노프 가와 라자루스 가문의 것이었다.

“글쎄요, 지금 상황을 봐선 당사자께서 그리 내켜하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릴라크의 비꼬는 듯한 대꾸에 제롬이 살짝 눈을 흘겼다.

“근데 저게 뭐야?”

강을 타고 생각없이 북진하던 제롬은 전방에서 벌어진 이상한 광경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함께 진격하던 동부기병 2천여명이 한곳에 모여 자기들끼리 웅성대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잔뜩 부아가 난 표정의 샤자한 공이 그 한쪽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뭡니까?”

제롬의 물음에 샤자한 공이 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3제후 하크로딘 가에서 온 기병들이요.”

순간, 상황을 눈치챈 제롬이 마찬가지로 얼굴을 찡그렸다. 자기들끼리 무언가 대화를 주고받던 기병 장교들은 결국 의견을 굳힌 듯 샤자한 공에게 다가왔다.

“장교들과 상의를 해 본 결과.......”

“그래서 뭐?”

샤자한 공이 두 눈을 부릅뜨며 위협조로 물었다. 그의 태도에 움찔했던 2명의 중랑장들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가문 평의회장이신 샤르바누 하크로딘 부인의 명을 일단 따라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17, 20연대 전투병 2천명과 예하 지원대 요원들은 이곳에서 철수해서 가문의 명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뭐?”

샤자한 공과 제롬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기병 2천이면 하크로딘 가에서 온 5개 연대 5천의 기병 중 절반에 육박하는 숫자였다. 샤자한 공의 뒤에 있던 보벤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나이만 분지의 전투에서 자신이 샤르바누 부인의 장남 카베에게 누명을 씌웠던 결과가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돌아오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야심만만한 샤르바누 부인에게 종권을 노릴 빌미를 준 것이었다.

“너희 지휘관들의 의견을 모두 모은 것이냐?”

보벤이 할아버지 대신 앞으로 나서며 두 명의 중랑장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사뭇 긴장된 얼굴로 대답했다. 보벤이 입가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내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중대장급 이상 지휘관들을 모두 불러 와라. 네놈들의 말이 틀린 것이라면 내 너희 두 놈의 목을 손수 쳐 버리겠다.”

두 명의 중랑장들이 조금 겁에 질린 듯 서로 마주보았다. 보벤과 함께 온 5백여기의 슈트란 가 근위기병들이 그들 주변을 어느새 에워싸고 있었다.

“관례대로 연합군에 배속된 제후군 병력은 본가의 방침에 따라 철수할 수 있으니......”

“누가 안 보내준다고 했나! 알았으니까 당장 중대장급 이상들을 불러오란 말이다!”

보벤이 입에 침을 튀기며 고함을 버럭 질렀다. 분위기에 짓눌린 그들 중랑장들은 마지못해 할룩스를 작동시켰다.

“허, 저 새끼 제법인걸.”

뒤에서 이 기묘한 내분을 구경하던 제롬이 당장 잡아먹을 듯 날뛰는 보벤의 기세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잠시 후, 이 두 연대에 속한 20여명의 기병 장교들이 조심스레 모여들었다. 그들이 다 모이기가 무섭게, 5백여의 슈트란 가 근위기병들이 그 주변을 일제히 에워쌌다. 그리고 남아있는 17, 20연대 하크로딘 가 기병들 양옆에도 슈트란 가 기병들이 일제히 자리를 잡았다.

“무,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중랑장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눈치챈 두 연대 장병들이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관례대로라면, 가문의 내분이 있어 고급장교들의 합의 하에 연합군에서 자진 철수하는 병력은 막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그 뒤에 받게 될 불이익은 나중 문제지만.

보벤이 장교들 모두를 무섭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 중 부대 철수에 동의한 장교들은 모두 손을 들어라. 연대장들이 너희 모두가 동의했다고 했으니 확인해야겠다.”

사뭇 서슬퍼런 분위기에 장교들이 섣불리 손을 들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 손을 들지 않는다면 그들의 직속상관인 두 연대장들의 목이 달아날 판이었다. 이도저도 못하고 우물거리던 장교들 중 몇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에 힘을 받았는지, 다른 장교들도 뒤이어 차례대로 손을 들었다. 하지만 딱 2명의 장교들만은 주변들 둘러싼 슈트란 가 근위기병들에 압도당했는지 결국 손을 올리지 못했다.

“이 새끼!”

보벤이 연대장 중 한 명의 가슴을 들입다 걷어찼다. 가슴을 얻어맞은 연대장이 흙바닥을 사정없이 굴러 나동그라졌다. 자신들의 지휘관에 얻어맞는 광경에 다른 장교들이나 멀리서 지켜보던 다른 하크로딘 가 기병들이 일제히 술렁이기 시작했다.

“네놈이 누굴 속여! 손 안 든 두 놈은 뭐냐! 감히 합의했다고 거짓말을 해? 나한테?”

“그것이 아닙니다! 저흰......”

“닥쳐! 이 새끼야!”

보벤이 쓰고있던 투구를 벗어 연대장의 뺨을 꽝 소리가 나도록 후려쳤다. 얼굴이 찢길 정도로 타격을 입은 연대장이 그 치욕감에 순간 이를 갈며 파르르 떨었다. 보벤이 쓰러진 연대장의 얼굴을 마구 짓이기며 입을 열었다.

“내 지난번 카베인지 뭔지 반골 새끼를 그 자리에서 안 죽이고 살려준 게 이런 화가 되었구나! 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야 없지. 근위병! 이 두 놈하고 방금 손을 든 18명을 이 자리에서 목을 쳐 버려!”

“저, 저거 너무한 것 아닙니까?”

이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던 릴라크가 당혹스런 얼굴로 제롬을 돌아보았다. 제롬 역시 장병들을 유난히 가혹하게 다루는 보벤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지 입가를 살짝 씰룩거렸다.

“동부 놈들 일이니 지들끼리 알아서 하는 거지 내가 왜 끼어들어.”

무책임하게 돌아선 제롬은 다시 북쪽으로 혼자 길을 재촉했다.

"어차피 황성 함락이 머지않았으니까 그때까지만 부대를 잘 건사하면 돼. 제후들이건 누구건 결국은 이기는 쪽으로 줄을 서게 돼 있으니까 별 상관없어."

보벤의 명령을 받은 슈트란 가 근위병들이 하크로딘 가의 연대장들과 방금 손을 든 장교들을 무장해제시키고 거칠게 끌어내 바닥에 동댕이쳤다. 얼떨결에 목이 잘리게 된 장교들만큼이나 창백해진 것이 겁에 질려 손을 들지 않았던 두 명의 중랑들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지휘관들이 당하는 말도 안 되는 참변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하크로딘 가 기병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사령관님! 한 번만 자비를........”

이번 이탈사태에 가담하지 않았던 하크로딘 가의 다른 연대장들까지 허둥지둥 달려와 무릎을 꿇었지만 보벤은 요지부종이었다. 손이 뒤로 묶인 채 바닥에 꿇어앉혀진 20명의 고급장교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던 보벤은 뒤에 대기하던 근위병에게 목을 치라며 눈짓을 보냈다.

“젠장, 샤르바누 부인 말씀이 맞으셨군.”

꿇어앉혀진 연대장이 마지막으로 남긴 한 마디는 간단했다. 이를 악물고 보벤을 쏘아보던 그 연대장은 뒷덜미를 내리찍어오는 근위병의 칼날을 느끼며 이를 꽉 악물었다. 뼈를 내리찍는 둔탁한 소음이 울리며 붉은 선혈이 바닥을 적셨다. 그리고 잘려나간 연대장의 머리가 흙바닥을 굴렀다.

“다 쳐버려.”

“예!”

근위병들은 버둥거리는 장교들을 강제로 붙들어 바닥에 내리눌렀다. 그들은 동료를 저버린 두 명의 장교와 보벤에게 마지막 저주를 퍼부으며 차례대로 목이 잘려 죽어갔다.

“사병들과 하급장교들은 어떡할까요?”

20명의 목을 모두 베어낸 근위장교가 칼의 피를 닦으며 보벤에게 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철수 준비를 하고 있던 그 2천여 기병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믿기지 않는 광경에 하나같이 멍해져 있었다.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놈들이다. 소대별로 쪼개서 우리 가문 기병대에 따로 배속시켜.”

“알겠습니다.

침을 퉤 뱉으며 돌아선 보벤이 참모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말에 올랐다. 샤자한 공 역시 장손자의 이 횡포에 별 불만은 없는 듯 조용히 말머리를 돌렸다.

아직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서둘러 달려온 베흔이 탄현성 맞은편, 근위대 진영에 도착한 건 첫 전투가 있고 난 다음날 늦은 오후의 일이었다. 탄현성에 대한 재공격 준비를 한참 갖추고 있던 제파는 서둘러 와 준 베흔을 반겨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목을 걱정해야 하는지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었다.

면목이 없는 듯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고 있는 제파를 노려보며 베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파가 보여준 건 수에보의 부서진 전차와 할룩스 파편이 전부였다. 흥분했을 때의 습관처럼, 베흔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무작정 제파를 나무랄 정도로 분별없는 그는 아니었다.

물론, 그의 속내는 측근인 수에보 대신 차라리 제파가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는 했지만.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지.”

베흔은 수에보의 전차와 그의 유품들을 치우라 눈짓을 보냈다.

“하루 늦어진 정도는 일단 괜찮다.”

베흔이 어렵게나마 표정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피해가 어느 정도지?”

“8백의 전사자와 2천2백의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1천5백 정도는 적의 포로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부상자 중 5백 정도는 이번 전투에 복귀시킬 수 있습니다.”

베흔은 늦은 오후의 햇살이 늘어지듯 내리쪼이는 하늘을 올려보며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제파 말대로 5백을 오늘 복귀시킨다고 해도 어제 하룻밤에 무려 4천의 전력을 잃은 셈이었다.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군.”

잠시 기분을 가다듬은 베흔이 숙영지를 빙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도 이곳까지 차량으로 이동해올 수 있었던 근위대 병사들은 행군에 지쳐 흐느적거리고 있는 남-동부연합군처럼 맥 빠진 모습들은 아니었다. 어제 치명타를 입은 22연대가 조금 침울한 분위기였지만 팽팽한 대치중에 물러난 1군단이나 가디언부대는 도리어 죽은 수에보의 복수를 하겠다며 조금 당기면 끊어질 듯 잔뜩 격앙된 모습들이었다.

“해가 막 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적은 우리가 밤에 공격을 개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모양이니 어두워지기 전에 기습적으로 공격할 예정입니다.”

제파는 멀리 골짜기 입구 부근 언덕에 진을 친 동맹군 숙영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베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탄현성을 돌파해야 돼. 안 그러면 욱리하 건너편 연합군이 도하 일정이 뒤틀리게 된다. 적들이 기왕 요격을 나왔으니 다행이지. 오늘 적들을 최대한 빨리 밀어붙이면 골아픈 공성전 없이도 탄현성을 돌파할 수 있을 거다.”

“알고 있습니다.”

제파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동맹군들이 딴에는 시간을 끌겠다며 성 밖으로 요격을 나왔지만 이 상태에서 전면전이라도 붙게 되면 저들은 변변한 수성전조차 벌이지 못하고 성을 내주어야 할 터였다.

“예보관들 말이 5일 정도 후에 다시 큰 비가 올 거라는군. 지난번 비로 욱리하 수심은 이미 높아지기 시작했어. 이암댐을 차지해서 다행히 도하 자체에는 큰 영향은 없지만 비가 많이 오면 댐을 막는 것만으로는 무리가 있다는 걸 명심해라.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탄현성까지 적들을 밀어붙여 공성전 없이 무너뜨려야 한다.”

“알겠습니다.”

“내가 본대를 이끌 테니 네가 전차대를 이끌고 선봉을 맡아라.”

“감사합니다.”

지난 공격의 실패로 행여 이번 공격에서 제외당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던 제파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전차에 뛰어올랐다. 본대를 이끌 베흔 역시 함께 온 준마 척설오추의 등에 올랐다.

“직접 나서시려구요?”

제파가 걱정스런 얼굴로 베흔에게 물었다. 지난번 황궁에서 카렐에게 입었던 부상도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은 실전에 나서서 몸을 혹사시킬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다. 베흔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직은 후방에 있어야지.”

“알겠습니다. 명령을 주십시오.”

“전차대가 중군 선봉에서 돌격하도록 해. 물론 적 보병은 생각보다 훨씬 정예병이고, 가디언들도 포함되어 있으니 전차대의 돌격에 바로 무너지지는 않을 거야. 전차대가 전방을 흩트려놓아도 보병대 후속병력이 바로 뒤를 이어 궤멸시키지 않으면 적은 대오를 금세 복구할 거다. 그러니 보병대와 근접거리를 유지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돌격 준비!”

말에 오른 베흔이 손을 크게 휘저으며 좌우의 지휘관들에게 외쳤다. 각 연대에서 울리는 낮은 나팔소리에 급히 달려나온 병사들이 미리 정해진 대로 대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번 2차 공격은 조금은 성급하게 진행했던 지난밤의 공격에 비하면 나름대로 최상의 전열이 완비되어 있었다. 후발대로 도착한 발리스타 발사대도 20여대나 합류해 있었고, 낮 동안 휴식을 취하고 난 병사들의 체력도 그럭저럭 좋았다.

“전차대 1열로!”

제파가 손가락을 앞으로 향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번 공격의 선봉을 맡은 5백대의 가디언 전차가 제일 먼저 1선에 자리를 잡았다. 기병에 그나마 대항할 수 있다는 중무장 장창병도, 경무장한 투창병도, 발빠른 경보병도 그 어떤 병종이든 이 무서운 무기 앞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장갑으로 꼼꼼하게 보호된 4~6마리의 말은 웬만한 사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고, 장창병이 창을 내지른다 해도 이들의 육중한 돌격력에 받히거나 예리한 낫에 쓸려 몇 개의 열이 일시에 무너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눈에 확 띄게 잘 갈아.”

제파가 바퀴의 긴 낫을 갈고 있는 전차병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끝이 약간 구부러진 2척(60cm) 길이의 그 예리한 낫은 전차를 상대하는 병사들에게 가장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긴 길이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았다가는 자칫 같은 동료 전차끼리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것이 흠이었다. 때문에 이번에 돌격하는 선봉대 전차들도 거의 20척(6m) 정도씩의 긴 간격을 이루고 느슨하게 도열해 있었다.

“전차는 적 전방 1스타디아(150m)까지는 평보로, 50보(30m)까지는 속보로, 50보에서 전력 돌진한다! 2열 보병대와의 거리를 0.5스타디아 이내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한다! 알겠는가!”

“예!”

전차대 가디언 500명이 외치는 자신만만한 대답이 적인 동맹군을 위협하듯 언덕을 쩌렁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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