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505화 (504/1,132)

< -- 505 회: 파트 4. 아카시아, 창을 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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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덮인 나무 그루터기에 앉은 카나르 경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의 앞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박살이 나 버린 아기 이유식 통이 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근위기병들이 산을 넘어가는 길을 온통 다 뒤져서 찾아 온 건 이것, 그리고 몇 군데 눈이 없는 곳에 남아있는 유달리 많은 말발굽 흔적이 전부였다. 그 외에는 아들 부부의 흔적도, 아기의 흔적도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있을지도 모르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제롬 그놈이 관계된 게 틀림없어.”

카나르 경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딸 미노아 경은 조금은 과한 상상을 하고 있는 이 아버지를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그는 이렇게 책임을 떠넘길 사람이라도 없다면 아버지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카나르 경의 분노는 굳이 아들 가족이 행방불명된 것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명색이 2제후인 자신이 이곳에 왔는데도 한나절이 지나도록 안부인사 한 번 없는 제롬의 무관심, 그리고 대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보낸 ‘수색 협조요청’에도 변변한 답변 한 마디 보내지 않은 델루지 가 당국의 무성의함 때문이기도 했다.

카나르 경은 부서진 이유식통을 딸에게 넘기며 힘없이 일어섰다.

“여기는 네가 맡도록 해.”

“알겠습니다.”

“연합군이 슬슬 황도 쪽으로 진격하는 것 같으니 내 헤즈 녀석한테 한 번 가봐야겠다. 우리 군대는 잘 돌아가고 있는지.......그 잘난 최고제후님 낯짝도 한 번은 봐 줘야지.”

카나르 경은 투구를 꾹 눌러쓰며 말에 올랐다. 간만에 무장으로 돌아간 아버지의 모습에 미노아가 씽긋 웃음을 지으며 양쪽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어보였다.

“그래도 전장에 나오시니 젊은 모습 그대로 돌아가신 것 같네요. 역시 우리 가문 사람은 전쟁터에 있어야 제격이죠.”

딸의 조금은 과장된 찬사에 카나르 경이 마지못해 웃음을 지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황도의 장관을 지켜보며 제롬의 입가에도 빙그레 미소가 감돌았다. 어제 하루 종일 강을 건넌 연합군 1진 15만여의 병력이 1만여 동부기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비로소 공성전을 위해 황도에 접근하고 있었다.

“최고제후님! 최고제후님!”

누군가 헐떡이며 외치는 소리에 ‘두 최고제후’ 제롬과 샤자한 공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말을 타고 급히 달려와 소리를 지른 건 찰갑 차림의 동부기병대 장교였다. 그는 샤자한 공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며 힘있게 말했다.

“의무대에서 연락입니다! 행방불명되셨던 보벤 슈트란 경께서 의무대에 계신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온몸에 중화상을 입은 채로 의식을 잃고 계셔서 신분이 미처 확인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잠시 멍해졌던 샤자한 공의 표정에 일순간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정말? 보벤이 맞냐? 틀림이 없냐고!”

샤자한 공이 마치 소리를 지르듯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동안 자신의 후계자가 죽었다고 믿고 있었던 그에게 이만한 희소식이 없었다. 그는 함께 가던 제롬에게 양해를 구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급히 말을 타고 후방으로 멀어져갔다.

“훗, 지 새끼 귀한지는 아는 모양이지.”

제롬이 코웃음을 치며 함께 있던 보병사령관 마누엘 경에게 농담처럼 말을 건넸다. 보벤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제롬에게도 그다지 나쁠 건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말을 몰던 제롬은 누군가 옆에 다가오는 느낌에 문득 고개를 돌렸다.

“지 새끼 귀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유난히 굵은 그 음성은 제롬에게도 귀에 익은 것이었다. 제롬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오호, 오랜만이요. 카나르 플라칼 경. 내 경께서 오셨다는 말은 이미 들었으나 보다시피 사정이 워낙.......”

제롬이 능청스런 미소와 함께 카나르 경에게 상례적인 인사말을 던졌다. 카나르 경 역시 그런 그에게 태연한 웃음으로 답했다.

“아, 그러시겠죠. 저도 전장에서 평생을 굴렀는데 그 정도를 이해 못 하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이렇게 먼저 문안인사를 올리러 왔죠.”

묘하게 가시가 돋은 카나르 경의 말투에도 제롬은 최소한 겉으로는 싱글벙글 미소만 지었다. 사실 황성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그에게 웬만한 일로는 기분이 망가질 것조차 없었다.

“안 그래도 황실의 운명이 걸린 공성전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경께서 오시니 이리 든든할 수가 없습니다.”

제롬의 속보이는 소리에 카나르 경이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소인 이미 군무는 아들 헤즈에게 모두 넘겼으니 그 일은 아들놈과 상의하심이 좋겠습니다. 이번에 온 건 싸움에 나서기 위함이 아니고.......”

“아, 그건 압니다만 이런 역사적인 공성전에 우리 남부의 제후가 직접 앞장선다면 그만한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헤즈 경이 뛰어난 무장인 것은 물론 잘 알고 있으나 감히 경의 경륜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수색작업은 우리 가문 근위기병들을 지원해 드릴 것이니.......”

제롬의 뜬금없는 억지에 카나르 경의 시선이 대번 의심으로 물들었다. 지금까지 수색작업에 델루지 가 근위기병대를 동원해달라고 몇 번이나 요구했지만 들은 척도 않았던 제롬이었다. 그런 그가 황제령에 나타난 카나르 경의 얼굴을 보자마자 요청도 없이 지원해주겠다며 나선 것이었다.

“이미 제가 데려온 가문 기병들이 수색 중에 있습니다. 더 이상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제롬의 속내를 눈치 챈 카나르 경이 딱 잘라 거절하며 말에 더욱 속도를 붙였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상황이 정 반대로 뒤집어지자 둘 사이에서 도리어 혼란에 빠진 건 앞뒤사정 전혀 모르는 보병사령관 마누엘 델루지 경이었다. ‘카나르 경이 직접 수색에 나섰다’는 첩보에 당황한 제롬이 어떻게 해서든 이 일에서 그가 손을 떼게 하려는 수작임을 그가 알 리가 없었다. 마누엘 경은 딱 보기에도 엉터리 생떼를 쓰는 제롬을 일단 말리려 했다.

“명색이 우리지역 2제후인데 체면이 있지, 공성전 일선에 내보내는 건 그렇지 않나. 그냥......”

하지만 제롬은 마누엘 경의 설득을 무시하며 집요하게 카나르 경에게 따라붙어 떼를 썼다.

“제가 오죽하면 이런 부탁을 드리겠습니까. 도하 과정에서 워낙 많은 인명손실이 있어서 가뜩이나 장병들의 사기도 좋지 않은데 공성전에서 용감히 싸워주기 위해선 제일 정예부대가 앞장서서 분위기를 잡아야......”

카나르 경의 눈매가 대번 사나워졌다. 그는 말을 멈춰 세우며 제롬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 말씀은 황도 공성전에서도 우리 가문 보병대가 앞장서야 한다는 뜻입니까?”

“우리 남부연합군에서 가장 믿을만한 부대가 플라칼 가 부대밖에 더 있습니까. 아시다시피 호지 가 보병대는 군기가 문란하고, 세닉 가는 중장보병보다는 투창병단에 더 힘을 주어야 하고.......”

“제일 숫자도 많은 델루지 가는요? 제 가문에서 쓸 만한 놈들을 모조리 데려가서 만드신 부대인데 이런 때 안 쓰고 뭐 하시려고요. 그네들은 머릿수 채우러 데리고 오셨습니까?”

제롬의 얼굴이 잠시 붉게 달아올랐다. 지금껏 2제후가 이렇게 대놓고 최고제후에게 ‘덤빈’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격분한 얼굴을 미소로 애써 가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가문 보병대는 이암성에서 너무 큰 타격을 입었죠.”

생각 없이 대꾸했던 제롬은 자신의 말이 실수임을 곧 깨달아야 했다. 카나르 경은 이암성 타령을 하는 제롬에게 기다렸다는 듯 대꾸했다.

“오호, 그 정도 손해로 공성전에서 뺄 정도라면 우리 가문 군대는 아예 철수해야 하겠군요.”

‘철수’라는 말에 머릿속이 아찔해진 제롬은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욕지거리를 일단 꾹 눌렀다.

“농담이 과하시군요,”

제롬은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애써 감추며 카나르 경에게 빙긋 미소까지 지었다.

제롬의 가슴을 덜컹 뒤흔들어놓은 카나르 경은 씽긋 웃음까지 지으며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

“어쨌든, 연초부터 계속 시달려 온 우리 군대가 더 이상 공성전을 전개할 여력은 없습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더 이상의 전쟁은 고사하고 이전 전력으로 복구하는 것만 해도 몇 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럼 아들 헤즈 녀석이 앞에서 기다리니 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제롬에게 고개를 까딱 해보인 카나르 경은 말에 박차를 가하며 선봉대에 있는 헤즈의 부대 쪽으로 향했다.

“뭣 하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난리야. 적당히 달래서 써먹던가 해야지.”

옆에서 둘의 대화를 지켜본 마누엘 경이 어느새 창백해진 조카 제롬에게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제롬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는 옆을 함께 가는 참모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놈이 혼자 왔나?”

“아뇨, 장녀 미노아 경과 함께 왔습니다.”

“히르직스 녀석 마누라 말이야?”

“네. 머리 돌아가기로는 보통내기가 아니죠. 지금 강 너머에서 수색작업을 직접 지휘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여자 임신 중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예. 배가 부른 몸으로 그냥 와 있는 모양입니다.”

제롬이 입가를 씰룩거렸다. 영광스런 승전을 코앞에 둔 지금, 지난번 자신의 위험한 선택은 앞뒤에서 그를 조금씩 조여오고 있었다.

“미노아 플라칼 그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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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59년, 병석에 앓아누운 샤미르에게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지면서, 민병대의 지도부는 또 한 번의 어마어마한 풍파를 앞두고 있었다.

사실 전해진 내용 자체는 절망적인 것이었지만, 민병대의 다수를 차지하는 강경파들에게 이 까탈스러운 지도자가 곧 죽을 것이라는 진단은 도리어 희소식이었다. 특히나 민병대 사령관이며 강경파의 지도자 굴부딘 헤크마 원수는 이 기회에 자신의 야심을 이룰 기대에 들떠 표정관리를 하느라 애를 먹을 지경이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군.”

헤크마 장군은 아케메니안 궁 대회의실을 빙 둘러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이 거의 모인 회의실에는 콜로니 각지에서 몰려온 200여명의 자칭 유지, 혹은 세도가들이 빽빽하게 모여 ‘다음번 지도자’의 탄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오후엔 바쁘시겠군요.”

보좌관의 말에 헤크마 장군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매서운 인상, 유난히 작은 키에 단단하고 야무진 몸을 한 이 타르서스인 사나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무장이라기보다는 경망스런 싸움꾼을 연상케 하는 인상이었다.

그런 작은 체구와 인상을 유독 의식한 것인지, 그를 뒤따르는 보좌관의 가슴에는 그 주인의 가슴 높이에 육박함직한 거대한 양손검이 유달리 두툼한 칼집에 싸여 안겨있었다. ‘민병대 사령관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타르서스의 명장에게 특별히 주문 제작했다는 이 위협적인 ‘플람베르주’는 그 요란스런 명목이 민망할 정도로 아직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쓰인 일은 없었다. 물론 그 어마어마한 크기와 무게 때문에 헤크마와 그 측근들 중 누구도 다룰 만한 사람이 없어서이기는 했지만.

“이봐, 할 말이 있는데.”

갑자기 자신에게 들려온 반말에 내심 불쾌해진 헤크마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곳에는 6척이 훨씬 넘는 큰 키의 미남자가 청록색 눈을 가늘게 뜨고 서서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시더라?”

헤크마는 그가 누군지 빤히 알고 있었지만 괜한 딴청을 부렸다. 상대 역시 그의 속내를 눈치챈 듯,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그는 헤크마가 자신을 궁금해 하건 말건,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차기 지도자 단독 후보로 나선 게 자네라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그대는 말버릇부터 고쳐야겠군. 바니샤드 플레렌.”

헤크마는 자신보다 반 뼘은 족히 큰 이 남자를 똑바로 올려보며 대놓고 신경질을 부렸다. 하지만 아켐의 유력가인 플레렌 가 출신 이 젊은 유학자는 전혀 흔들릴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대 같은 사람이 감히 유학자에게 할 말은 아닌 듯 한데.”

‘배운 것 없는 군벌’인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는 그의 도도한 태도에 더 화가 돋은 헤크마가 언성을 높였다.

“어차피 리쿠 가는 끝난 것 아닌가. 지도자의 형제들 중에도 별반 인물이랄 놈은 없어. 그놈들이 뭐 해 놓은 공적도 없고.”

“그래, 그러는 자네는 얼마나 대단한 공적을 남긴 인물이었던가?”

바니샤드가 히죽거리며 노골적으로 헤크마의 약점을 찔렀다.

“자넨 고작해야 제4공신 아니었던가? 리쿠 가가 TSG 세습 지도자가 되기 전까지 누가 지도자였더라? 까놓고 말해서, 공이나 능력을 기준으로 지도자감을 따진다면 창립자 타리프 카파키의 직계후손이고 제1공신인 오르마즈 녀석이 가장 가까운 것 아니었나?”

정곡을 찌르는 바니샤드의 말에 헤크마의 얼굴이 대번 빨갛게 달아올랐다. 바니샤드의 말마따나, 리 리쿠를 시조로 하는 리쿠 가가 세습 가문이 되기 전까지, TSG는 선출직의 지도자가 이끌었고, 그 마지막 ‘선출직 지도자’가 바로 바니샤드의 어머니인 파티마 플레렌이었다.

‘이 새끼가.......속셈이 뭐지.......“

샤미르가 죽어주기만 하면 공짜로 지도자에 앉을 줄로만 알았던 헤크마는 느닷없이 이빨을 드러낸 이 야심가를 노려보며 빠드득 이를 갈았다. 바니샤드가 기득권을 내세워 자신처럼 지도자 자리를 탐내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처럼 ‘명분 없는’ 사람은 반대하겠다는 속셈인지 헤크마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바니샤드가 적을 두고 있는 아켐 지역은 콜로니에서도 유학자들이 제일 많은 지역이다 보니, 헤크마로서도 단순히 무시하고 넘어갈 만한 세력이 결코 아니었다. 유학자들은 ‘사교를 절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들에게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는 세력이었고, 민병대의 열성 전사들을 움직이는 정신적인 힘이었다.

“내 아켐의 대표자로서 말하는데, 우리 유학자들은 자넬 별로 안 좋아해. 유학에는 쥐뿔만큼의 지식도 없고, 지금껏 우릴 이용해먹으려고만 하지 않았나. 내 그걸 알려주려고 자넬 부른 거야.”

바니샤드가 바로 발톱을 드러냈다. 헤크마는 순간 당황했지만 여기서 꺾일 수는 없었다.

그는 이곳에 모인 유지들의 머릿수, 자신이 가진 병력, 그리고 유학자들의 영향력을 머릿속에 섞어가며 복잡한 계산을 해 보아야만 했다. 유학자들이 TSG의 터줏대감이기는 했지만, 헤크마에게는 ‘봉건국가화 된 이후의 헤게모니’를 노리고 최근들어 그의 편에 가담한 수많은 지방 유지들이 있었다. 언뜻 생각해 보아도, 굳이 유학자들에 끌려 다니지 않아도 그의 세력에는 별 문제가 없을 듯 보였다.

“그래, 마음대로 해 봐. 어차피 내가 지도자가 되면 그 잘난 서생들도 알아서 고개 숙이고 들어올 테니.”

결론을 내린 헤크마는 일단 고집을 피워 보기로 했다. 유학자들을 대놓고 무시하는 헤크마의 언사에 바니샤드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정신이 나갔군.”

바니샤드가 성난 얼굴을 애써 감추며 혀를 끌끌 찼다.

“지방세력들이 언제까지 네 편, 아니 중앙정부 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당장만 들어주면 내겐 충분해.”

헤크마가 솔직히 속내를 털어놓으며 비웃음을 던졌다.

“동지들, 일어섭시다.”

뒤로 휙 돌아선 바니샤드가 자리에 앉아있던 유학자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그의 느닷없는 지시에 놀란 듯, 자리에 있던 60여명의 유학자들이 쭈뼛거리며 일어섰다. 대부분 옛 제니안 출신의 원로 유학자들, 혹은 아켐과 테나토, 푸스타트---이후 ‘서부’가 될--- 출신의 서생들이었다. 헤크마를 한 번 노려보았던 바니샤드는 그들 모두를 데리고 회의실에서 총총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이 사라진 직후, 회의실의 육중한 철문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소리를 내고 잠기며 외부와 이 회의실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분리시켰다.

“투표를 앞두고 있으니 이제 출입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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