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22 회: 파트 5. 떡갈나무처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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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쪽으로 근위대 후속병력의 진입이 늦어지면서 가장 곤경에 처한 건 제일 먼저 들어간 셈과 그를 따라간 50여명의 상등급 가디언들이었다. 좁은 복도를 가로막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십여명의 페로 가디언들을 한참만에 어렵게 물리치고 성벽 옥상으로 올라갈 길을 힘들게 확보한 셈은 계속 들어와야 할 추가병력이 오지 않자 계속 나아가야할지 말아야할지를 잠시 갈등해야만 했다.
“빌어먹을, 아까 그 보병놈들만 아니었어도.......”
자신의 발을 붙들어 넘어뜨렸던 그 원수같은 동맹군 보병을 머리에 떠올리며 셈이 이를 갈았다. 그들만 아니었어도 페로 가디언들에게 저지당하지도 않았을 테고, 그렇다면 적들이 미처 준비를 마치기 전에 성벽 위로 올라가 후방을 헤집어놓을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쯤 성벽 위의 적들도 어느 정도의 준비를 마쳐놓고 있을 터였다.
올라갈지 말지 머뭇거리고 있던 셈은 그가 지나온 복도 뒤쪽에서 들려온 찢어지는 비명에 얼른 뒤로 돌아섰다.
“뭐야? 원군이 오는 거야? 아니면 놈들이 반격을 시작한 거야?”
바로 그때, 무언가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그가 디디고 있는 바닥이 요란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지진이야?......아니면.......”
또다시 바닥을 울리기 시작한 강력한 충격에 놀란 근위대 가디언들이 옆에 있는 문이니 벽을 반사적으로 붙들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나가! 나가! 안에 있지 말고!”
당황한 셈에게는 이제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황성 안쪽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허둥지둥 달려나가야 했다. 새파랗게 질린 셈이 성벽 안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그가 지나온 복도, 아니 거의 50척 길이에 해당하는 성벽 전체, 심지어 그가 성벽 위로 올라갈 때 디뎌야 할 계단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 굉음을 내며 붕괴하기 시작했다. 복도 안쪽에서부터 뿌연 흙먼지가 마치 돌풍이 몰아치듯 뿜어 나오면서 후미의 가디언들은 앞을 볼 수조차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런 제기랄!”
계속해 옆으로 무너져 내리는 성벽에 놀란 셈은 성벽 위로 오르는 것을 포기한 채 급히 바닥으로 뛰어내려야 했다. 과정이야 어쨌든, 그 역시 베흔처럼 황도 안쪽을 무사히 디디기는 한 셈이었다. 뿌연 먼지, 그리고 안쪽에서 튀어오르는 돌덩이 파편에 셈과 그를 따라온 가디언들이 급히 얼굴을 가렸다. 계속해 날아드는 파편과 지독한 먼지에 그들은 성벽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만 했다. 그들은 얼굴을 가린 채 동맹군의 보급품 적치장을 가로질러 안쪽으로 급히 달려들어갔다.
잠시 후, 무너질 만큼 다 무너졌는지, 어색할 만큼의 묘한 정적이 주변에 깔렸다.
“뭐야? 다 나온 거야?”
셈이 물었지만 그를 따라 빠져나온 가디언들은 4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적어도 10명은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무너지는 성벽에 휩쓸려버린 모양이었다.
“손실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셈을 뒤따라온 가디언 한 명이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쓴 머리칼을 털어내며 셈에게 말했다.
“성벽이 무너졌으니 놈들도 이제 끝장이군요.”
“글쎄, 그런가.”
셈이 이를 갈며 성벽 안쪽면을 올려보았다.
“그런데 여기가 무너졌으니.......우리 공성탑도 무너졌을걸.”
“으음.......”
놀란 근위대 가디언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셈이 얼굴을 찡그리며 무너진 성벽을 다시 올려보았다. 황성 안쪽으로 일단 들어오기는 했지만 성벽 안쪽 벽에 설치된, 성벽 위로 통하는 올라가는 외부계단도 성벽과 함께 무너지면서 그들이 이곳을 통해 위로 올라갈 수는 없는 지경이었다.
“어쨌든 성벽 위로는 못 올라가게 되었으니 우리도 동북문 쪽으로 가서 베흔 대장을 도와야겠다. 성벽이 무너졌으니 이제 여기로 우리 정규군들이 몰아닥치겠지. 이거 슬슬 끝이 보이는 것 같은데.”
셈이 히죽거리며 40명의 가디언들에게 뒤를 따르라며 손짓을 보냈다. 그를 따라온 가디언들은 이번 공성전에 투입된 가디언들 중 가장 등급이 높은, 근위대 가디언부대의 최정예 멤버들이었다.
살아남은 가디언들을 추슬러 막 달려가던 그는 갑자기 울리는 할룩스를 얼른 집어들었다.
“응?”
할룩스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5번 공성탑을 담당하던 가디언 장교의 것이었다.
“셈 대장님! 성벽 무너진 곳에 적 수괴 카렐입니다! 저희가 정면에서 칠 동안 뒤에서 협공하시면.......”
셈은 순간 기겁을 했지만 그 장교의 보고는 거기까지였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그 이상의 보고는 들어오지 않았다.
“카렐이 저기 있다고?”
셈은 방금 떠나 온 성벽의 폐허를 다시 돌아보았다. 적 황제인 카렐이 직접 나와 무너진 성벽을 지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놈이 거기 있으면 쉽사리 뚫기 어려울 텐데.......”
다시 갈등에 빠진 셈은 남쪽의 무너진 성벽과, 베흔이 판과 한참 사투를 벌이고 있을 북쪽의 동북문 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양쪽 모두, 적군에게는 ‘뚫리면 끝장’인 목구멍이었고, 셈에게는 지금 둘 중의 하나를 고를 자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무슨 이유엔지 자꾸만 무너진 성벽 쪽을 향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적의 황제가 그곳에 있었다. 자신의 가디언들이 뒤를 틀어막는다면, 아직 몸이 성치 않을 카렐을 잡는 것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승부도 난 거나 마찬가지인데......’
마음이 굳어진 셈은 남쪽으로 천천히 방향을 돌렸다.
“베흔 대장이 알아서 북동문을 열 테니 우리가 굳이 갈 필요는 없을 거야. 안 그래? 그럴 바엔 적 수괴를 잡든 묶어두든 하는 게 낫지.”
말로는 이렇게 표현했지만, 사실 그의 속셈은 베흔에게 가 봤자 ‘자신의 이름으로 거둘’ 공훈은 하나도 없다는, ‘상당히 현실적인’ 욕심이었다. 그는 뒤따르는 40여 가디언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날 따라와라! 적 황제를 지금 잡으러 간다! 지금 정면에서 정규군들이 덤벼들고 있을 테니 우리가 뒤에서 협공을 해서 때려잡으면 돼!”
어마어마한 목표를 얻은 가디언들이 무기를 치며들며 큰 소리로 함성을 올렸다. 그리고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무너진 성벽을 향해 급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성벽이 무너진 폐허를 필사적으로 기어오르는 근위대 병사를 힘껏 차낸 카렐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가빠오는 호흡에서 그는 자신의 몸이 아직 덜 회복되었다는 한계를 절감해야만 했다.
“폐하! 조금이라도 쉬심이......”
뒤로 물러난 베레트라가 휘청거리는 카렐을 와락 껴안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잠시 입을 막았던 카렐의 손에 묻어있는 선명한 핏자국에 움찔 놀라며 이 황제를 올려보았다.
“한눈팔지 마라.”
카렐은 가슴을 안은 그를 옆으로 휙 밀쳐내며 왼손에 들고 있던 손도끼를 힘껏 던졌다. 황제를 안은 베레트라의 등을 찌르려 막 달려들던 근위대 사관 한 명이 눈 사이가 단번에 두 조각나며 돌더미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 멀어져갔다.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던 베레트라는 옆에서 덤벼들던 다른 근위대 보병의 칼날을 허겁지겁 피하며 상대의 종아리를 망치로 힘껏 후려쳤다.
“감히 누구에게 접근하냐!”
베레트라는 다리뼈가 부서진 채 비명과 함께 휘청거리는 적의 턱을 악을 쓰며 올려쳤다. 턱에 구멍이 난 채 주저앉는 적을 힘껏 차낸 그는 다시 황제를 돌아보았다.
“이런 제기랄.”
웬만한 산전수전은 다 겪어 온 베레트라였지만 앞뒤 가릴 것 없이 적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이런 지독한 혈전에는 그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야 했다. 뿌연 흙먼지와 쓰레기, 부서진 골조와 거친 돌더미로 발을 디디기도 힘든 이 좁은 공간에서의 싸움은 언제, 어디서, 정규군이 올지, 아니면 가디언이 덤벼올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지독한 혼전이었다.
“보충병력! 보충병 어딨어!”
베레트라가 성벽 위를 올려보며 악을 썼다. 그의 명령에 화답하듯, 큰 도끼를 멘 20여명의 에키트 족 지원병들이 양옆에서 로프를 타고 무너진 성벽의 단면을 펄쩍펄쩍 뛰어가며 내려왔다. 그리고 그에 맞먹는 부상자들이 로프를 타고 신음하며 위로 끌어올려졌다.
“제기랄! 언제까지 오는 거야!”
적병 한 명을 돌더미 밑으로 굴려 떨어뜨리며 지친 베레트라가 자리에서 휘청거렸다. 정규군, 가디언들이 뒤섞인 수백, 아니 수천의 근위대들은 이 좁은 ‘골짜기’ 앞을 이미 새카맣게 채운 채 끝도 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쪽도, 저쪽도 이 좁은 공간에서 이 전쟁의 승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필사의 공격에 결사의 항전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적의 공격은 중앙에 선 카렐에게 온통 집중되었다.
“투창!”
누군가의 외침에 카렐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거의 50여발의 투창이 중앙의 그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저 새끼들 미쳤나!”
베레트라가 방패를 들고 카렐의 앞에 무작정 뛰어들었다. 자신들의 병사들이 뒤엉켜 혼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그들은 황제를 노린 원거리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등과 뒤통수에 아군 투창에 맞아 쓰러진 근위대 병사나 가디언 역시 이미 수십이었다.
“이런!”
투창 한 발이 이미 누더기가 다 되어버린 방패 모서리를 쪼개고 들어오면서 베레트라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등 뒤의 황제는 손에 들고있던 칼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2발의 투창을 산산조각내 공중에 흩어놓았다.
“내 몸은 지킬 수 있으니 지금은 자네의 안전을 더 챙기게.”
카렐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전사자의 방패를 집어 베레트라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베레트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언젠가, 아니 하임달의 결전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 황제와 꼭 닮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잠시나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전투 시작 무렵 느꼈던 묘한 거리감과 부담감은 이제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뒤에서 적 가디언들입니다!”
후미에 있던 가디언의 고함소리에 카렐이 고개를 휙 돌렸다.
“이제야 올 게 왔군.”
카렐이 뒤로 돌아서며 칼을 단단히 쥐었다.
“내 근위가디언들은 모두 내 곁에 붙어라. 내 뒤쪽을 맡을 테니 전면은 베레트라 자네가 맡게나. 에키트 보병대도 근위대처럼 사관급 이상은 가디언들이니까 얼마간은 버틸 수 있을게야.”
“알겠습니다.”
카렐은 30여명의 가디언들을 거느리고 황성 안쪽을 바라보고 섰다. 셈이 이끄는 40여명의 가디언들은 어느새 돌무더기에 거의 육박해 있었다. 카렐은 눈에 익은 그 얼굴을 확인하고는 잠시 입가를 씰룩거렸다. 셈이 이끌고 온 40여 가디언들은 정규군 사관급을 맡고 있는 하위 가디언들과는 다른, 하나같이 상등급의 정예 가디언들이었다.
“네놈이 여기 온 걸 반가워 해 줘야 하겠지?”
카렐과 눈이 마주친 셈은 잠시 움찔거렸다. 하지만 거칠게 헐떡거리는 카렐의 숨소리는 보통 사람이 그저 지쳤을 때 내뿜는 숨소리와는 많이 달랐다. 그리고 셈은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낼 정도의 눈치를 갖춘 사람이었다.
“명색이 황제 감투를 달았으면 황제답게 굴어야지 아직까지 고작 이런 데 나와서 먼지나 뒤집어쓰고 있다니.”
“아직 황제 노릇은 서툴러서.”
카렐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셈은 더 이상의 말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그도 자신이 적의 후방에 있음을, 최소한 지금의 그로서는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셈은 팔을 앞으로 향하며 뒤따르는 가디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다른 놈은 잡을 필요 없다! 저놈만 공격해라! 성한 상태가 아니다!”
카렐은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근위대 가디언들을 향해 오른손의 플람베르주를 앞으로 겨누며 자세를 낮추었다.
“기다렸던 바야.”
카렐이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그를 향해 단번에 몰려 올라오는 가디언은 양 옆에서, 그리고 정면의 셈까지 무려 3명이었다. 카렐은 왼쪽으로 다가오는 가디언의 머리를 향해 왼손의 도끼를 힘껏 던졌지만 이번의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칼을 번쩍 치켜든 그 가디언은 어렵사리 도끼를 막아냈지만 그 위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돌더미 밑으로 한참을 밀려나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시간이 내편이라는 건 아냐!”
재빨리 뒷걸음친 카렐은 빈 왼손으로 허리춤의 카타나를 번개처럼 뽑아들었다. 그새 카렐의 앞까지 쇄도한 셈은 카렐이 발도술 공격을 하려는 것으로 알고는 반사적으로 칼을 세워 방어 자세를 잡았다.
“응?”
카렐의 무시무시한 일격을 생각하고 몸에 잔뜩 힘을 주었던 셈은 상대가 잠시 움직이지 않자 지레 놀라 움찔거렸다. 하지만 한 숨을 쉬고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은 카렐의 카타나는 멈칫거리던 상대의 왼쪽 발등을 힘껏 내리찍었다.
“악!”
발이 단번에 두 조각난 셈이 비명을 지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제기랄!”
소리를 지른 건 카렐이었다. 칼을 어찌나 세게 박았던지, 날 끝이 돌덩이에 박혀 빠지지를 않았다.
“씨이!”
일단 칼을 포기한 카렐은 플람베르주를 두 손에 움켜쥐고 움쭉달싹못하게 된 셈의 목을 힘껏 후려치려 했다.
“대장!”
그새 오른쪽에서 달려든 다른 근위대 가디언이 셈의 목을 향해 꽂히는 카렐의 칼을 힘껏 쳐냈지만 힘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카렐의 칼끝은 상대의 칼을 단번에 두 조각으로 부러뜨리고는 공중을 붕 헛돌았다. 칼이 부러진 가디언이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채 한쪽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우읍.”
셈을 향해 칼끝을 돌리며 다시 기합을 주려던 카렐이 휘청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아 입을 막았다. 물론, 그의 손가락 틈새로 흘러나오는 핏줄기를 놓칠 셈이 아니었다.
“아아아익......”
셈은 지독한 고통을 참아내며 카렐의 칼에 꿰여 있던 발끝을 힘껏 뽑아냈다. 그의 발뼈와 인대가 어그러지고 끊겼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는 피가 뚝뚝 흐르는 발을 절룩거리며 다시 카렐에게 돌진해 양손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상대가 호흡곤란으로 집중력과 순발력을 거의 잃었음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남은 건 힘밖에 없구나!”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중심을 잃은 카렐은 그가 내리찍는 칼을 옆으로 어렵게 흘려내며 악을 쓰고 칼을 휘둘렀다. 셈의 말대로, 이제 그에게 남은 무기는 짐승의 피에서 물려받은 그 폭발적인 근력밖에 없었다.
“그럼 그거에라도 당해봐라!”
카렐이 입에서 한 움큼의 피를 뱉어내며 이 긴 칼끝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공격이 빗나가자 당황한 셈이 물러나려 했지만 그의 발 역시 성치 않았다. 카렐의 플람베르주는 막으려는 셈의 칼을 산산조각내고, 뒤이어 바닥을 딛고 있던 셈의 왼쪽 다리를 무릎 아래에서 그대로 잘라내고도 그 힘이 남아 공중을 붕 소리를 내며 날았다.
“아압!!!!”
다리가 잘린 셈의 비명소리에 귀청을 찢는 금속 마찰음이 더해져 이 좁은 돌더미 위를 쩌렁 울렸다. 셈의 다리를 베고 계속 날아간 카렐의 위력적인 일격은 돌에 박혀있던 카타나의 날 중간을 반쯤 찢어낸 후에야 비로소 멈춰 있었다.
“다리! 다리.......”
중심을 잃고 쓰러진 셈이 바닥에 삐죽삐죽 나온 파편에 차례대로 부딪히며 돌더미 아래로 멀어져갔다. 근위대의 특등급 가디언이 쓰러지는 모습에 동맹군들이 와아 하며 우렁찬 함성으로 이 무너진 성벽 주변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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