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559화 (558/1,132)

< -- 559 회: 파트 6. 신께서 쥐신 검은 튜울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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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병들과 함께 도크로 달려 나오는 유시프 장군의 모습에 검문관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는 조금 전까지 살펴보고 있던 은색 컨테이너 박스를 차량에 실으라며 급히 손짓을 보냈다.

“당장 모든 작업 정지하지 못해!”

우비조차 입지 못한 채 급히 달려온 유시프 장군이 악을 쓰며 소리쳤지만 쏟아지는 빗물, 그리고 크레인과 화물차의 요란스런 소음 속에서 그의 외침은 얼마 가지조차 못했다. 도크를 돌아본 유시프 장군은 선단 제일 후미에 있던 배가 정작 도크에는 제일 먼저 접안했음을 깨달았다. 그 배에서 내린 5개의 은색 컨테이너들이 그새 차량에 실리고 있었다.

유시프 장군의 불안감이 드디어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빨리! 빨리 출발해!”

검문관은 아직 채 고정도 되지 않은 두 번째 차의 꽁무니를 쾅쾅 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4개의 컨테이너를 실은 2대의 차가 헌병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의 컨테이너만을 궁색하게 실은 차가 다급히 그 뒤를 쫓았다.

“저 차들 당장 세워! 검문관 저놈도 당장 체포해!”

아직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유시프 장군으로서는 더 이상 실체를 확인한다며 시간을 끌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절차 따위보다는 순전히 직감에 의존한 빠른 행동만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상황이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당황한 검문관은 처음에는 짐짓 태연한 얼굴로 응대하려 했지만 당장 하역작업을 중단하라며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그의 모습에서 상황이 생각처럼 잘 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했다. 안절부절못하던 그에게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제기랄!”

검문관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동댕이치며 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전의 컨테이너를 실은 2대의 차량 역시 멈출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계속 전진했다.

“쏴!”

3명의 보안국 헌병들이 석궁을 뽑아들어 달아나는 검문관의 등 뒤를 겨누었다. 직할군 병영이 있는 곳으로 필사적으로 달리던 그는 어깨와 엉덩이에 석궁이 명중당하며 큰 소리와 함께 바닥에 뒹굴었다. 유시프 장군이 몸을 날려 쓰러진 검문관의 뒷덜미를 꽉 붙들었다.

“차! 차를 세워!”

검문관을 일단 저지한 유시프 장군이 차를 가리키며 악을 썼다. 다른 보안국 헌병 몇 명이 막 빠져나가는 3대의 화물차를 저지하려 했지만 그들은 활짝 열려있는 하역장 출입문 쪽으로 계속 돌진했다. 보안국 헌병들이 출입문의 위병들에게 문을 닫으라며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아크반 가와 결탁한 그들은 눈치를 보기만 할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속셈이 뭐냐? 이번에도 또 한판 건져먹으려고?”

거세진 빗물을 흠뻑 뒤집어쓴 유시프 장군이 검문관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쉰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쓰러진 검문관은 ‘아직 상황을 전혀 모르는’ 그를 돌아보며 모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새, 도크를 빠져나간 차가 포구 출입문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이 새끼가!”

후미에 있던 사에나 쉐너 중랑은 막 방향을 틀려 잠시 속도를 늦춘 화물차의 옆에 몸을 날려 급히 매달렸다.

“세우라는 말 못 들었냐! 이 십새끼야!”

쉐너 중랑은 열린 창 틈새로 석궁을 들이밀고는 상대의 눈에 들이댔다. 당황한 운전수가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상대가 얼마나 대담한지를 미처 생각지 못한 그의 판단착오였다. 사에나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우악!”

석궁에 눈을 관통당한 운전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방향을 잃은 차는 포구를 출입문을 지키는 위병소를 향해 계속 돌진했다. 무식한 방법으로나마 1대의 차를 저지한 쉐너 중랑은 재빨리 몸을 날려 바닥에서 한 바퀴 굴렀지만 차는 그렇게 무사하지 못했다. 위병소로 돌진한 차는 회피장치가 작동하면서 급회전해 펜스를 대신 들이받고야 멈췄고, 급한 나머지 제대로 고정되지 않았던 컨테이너 박스는 짐칸에서 떨어지며 큰 소리를 내고 바닥을 굴렀다.

“응?”

차에서 떨어진 쉐너 중랑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 접질린 다리를 붙들고 잠시 신음했지만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던 사에나는 바닥에 떨어진 컨테이너 안에서 들려온 심상치 않은 소리에 움찔했다. 그 역시 지금까지만 해도 고작해야 ‘밀수품 반입’ 혹은 물자를 빼돌리려는 부패한 직할군들의 수작 정도만을 생각했었다. 유시프 장군이 배의 입항을 막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컨테이너 안에서 들려온 건 틀림없는 남자들의 굵은 비명소리였다.

그는 주변의 병사들에게 입을 가려보이며 재빨리 수화를 취했다.

‘저 안에 누가 있다.’

컨테이너는 충격 때문에 문이 약간 열려 있었지만 경첩 부분이 찌그러져 쉽사리 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열까요?’

절단기를 들고 달려오려는 헌병을 사에나가 급히 저지했다.

‘조금 전 목소리 중에는 여자의 것이 없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나?’

바닥에 동댕이쳐진 컨테이너,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20여명의 헌병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최소한 수명개조 이후 세대라면, 성별 간에 체격이나 체력 차이는 무시할 수준이다 보니 보통의 정규군 부대라면 장병의 절반 가까이가 여자인 것이 정상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리를 절고 있는 그들의 지휘관 사에나 역시 여자였다.

상부에 ‘긴급 상황, 가디언 지원 요망.’ 연락을 보낸 사에나가 천천히 손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짓을 받은 헌병 세 명이 도크 한쪽에 있는 큰 기름통을 들고 달려왔다.

‘사격 준비.’

사에나의 지시에 헌병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각자의 석궁을 치켜들었지만 이번 상대에게는 어쩌면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비록 고장 난 문이 걸림돌은 되겠지만.

‘우리 가디언이 올 때까지 기다릴까요?’

‘어차피 놈들은 그 전에 나온다.’

사에나가 기름통을 든 헌병들에게 손짓으로 컨테이너를 가리켰다. 기름통을 든 헌병들이 긴장된 얼굴로 천천히 컨테이너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교의 예상대로, 안에 있던 ‘그들’ 역시 자포자기했는지, 떨어지면서 찌그러진 문을 안에서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직할군 병영이 있던 곳에서 큰 함성과 함께 불길이 확 솟아올랐다.

“반란이다!”

쓰러진 검문관을 붙들고 심문하던 유시프 장군, 그리고 컨테이너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사에나가 동시에 불이 난 곳을 휙 돌아보았다. 병영에 있던 타르서스 직할군 경비중대 병사들이 들통났다는 소식을 이미 받았는지 무장을 모두 갖춘 채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사에나는 반사적으로 컨테이너를 돌아보았다. 저들의 목표는 확실했다.

“조금 전 도망간 차 2대는 어떻게 됐어?”

사에나가 몸을 일으켜 멀리 남서문 쪽을 돌아보았다. 운 좋게 도망간 2대의 화물차는 4개의 컨테이너를 실은 채 뒤늦게 닫히는 남서문을 이미 통과해 황도 시내에 접어들고 있었다. 사에나는 불타고 있는 컨테이너, 그리고 도크 쪽에서 몰려들고 있는 수백의 타르서스 반란군들을 번갈아 돌아보며 이를 갈았다.

“뿌려! 이놈들이라도 잡아야 한다!”

얼굴에 계속 흐르는 피를 털어낸 사에나는 반란군들의 돌격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은 채 컨테이너를 가리키며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기름통을 든 3명의 병사들은 각각 출입문의 벌어진 틈, 그리고 컨테이너의 양쪽에 기름을 마구 흩뿌렸다.

“씨발! 뭐야!”

갑작스런 기름냄새에 컨테이너 안의 ‘정체불명의 적들’이 톤이 올라간 필사적인 고함을 지르며 문짝을 더 거세게 부수기 시작했지만 그들도 불길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사에나가 던진 라이터에서 불이 옮겨 붙으며 식료품이 들었던 그 컨테이너 박스는 순식간에 붉은 불꽃과 연기에 휩싸였다. 기름에 붙은 불 위로 쏟아지는 빗줄기가 더해지면서 불은 더 빨리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쾅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불붙은 컨테이너 문짝이 공중으로 확 솟구쳐 올랐다. 놀란 헌병들이 뒷걸음치며 석궁을 치켜들었지만 그 안에서 제일 먼저 나타난 형상은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비명과 함께 허우적거리는 웬 거구의 모습이었다. 확실치는 않았지만 등에 지고 있는 양손검, 그리고 그의 손목에 채워진 금빛 팔찌에서 헌병들은 지금 자신들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를 비로소 정확히 깨달았다.

“근위대입니다!”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뛰어나온 4명에 뒤이어 질식해 비틀거리는 가디언들, 그리고 얼굴, 혹은 사지에 불이 붙은 채 몸부림치는 가디언들이 끔찍한 모습으로 엉금엉금 정체를 나타냈다.

“불붙은 놈은 무시하고 조금이라도 성한 놈을 쏴!”

“반란군들이 몰려옵니다! 놈들이 포구 출입문까지 장악........”

헌병 한 명이 황성의 남서문과 연결된 포구 출입문을 가리키며 당황한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그의 말대로, 반대편에서 또다시 몰려온 거의 백여 명의 직할군 반란병들이 포구 출입문까지 어느새 몰려와 있었다. 이대로라면, 아케메니아 포구 전체가 사실상 반란군에 장악당한 셈이었다. 하지만 사에나는 요지부동이었다.

“이놈들을 살려두면 진압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모르나! 지금 저항불능일 때 한 놈이라도 잡으란 말이다!”

얼굴을 적신 빗물을 거칠게 털어 낸 사에나가 석궁을 앞으로 겨누고는 연기로 가득 찬 컨테이너 안에서 막 기어 나온 가디언의 목을 향해 한 발을 날렸다. 미처 자신을 지켜 볼 새도 없이 급소에 볼트를 명중당한 가디언은 찢긴 경동맥에서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차가운 빗물이 흥건하게 고인 바닥에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그냥 나가! 나가!”

컨테이너 안에서 찢어지는 필사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들 가디언들의 앞에는 안에서 타 죽을지, 아니면 빗속으로 무작정 기어 나가 헌병들의 볼트에 고슴도치가 되어 죽을지를 결정해야 하는 끔찍한 순간이었다.

그 사이, 기름통을 더 가져온 헌병들은 가디언들이 머뭇거리는 새 열린 컨테이너 문 안쪽에 다시금 힘껏 던져 넣었다. 잠시 후, 불꽃과 맞닿은 기름통은 폭발하듯 공기를 울리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공중으로 무섭게 솟구쳐 올랐다.

“악! 아아악!”

마지막까지 나오지 않고 버티던 몇 명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 결국 비틀거리며 나오자 헌병들이 놀라 흩어졌다. 하지만 그들 중 한 명은 가디언이라고 하기에는 체구가 너무 작았다. 불길 속에서 몸부림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노려보던 사에나는 그자가 어딘가 눈에 익다고 생각했다.

“배신자 중 한 놈이다!”

마지막 컨테이너에 근위대 가디언들과 함께 숨어있던 ‘배신자’ 디브 아크반 소대장은 결국 황궁 광장에서 찢겨죽는 대신, 자신이 힘겹게 도망쳤던 포구의 도크 위에서 온몸에 기름과 불꽃을 뒤집어쓴 끔찍한 몰골로 천천히 무너져갔다.

“퇴각! 퇴각! 남서문은 틀렸으니 수비탑으로 물러나! 어떡해서든 수비탑은 지켜야 한다!”

검문관을 질질 끌고 온 유시프 장군이 헌병들에게 손짓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들이 있는 도크와 황성의 남서문 사이 길목은 이미 타르서스 반란군들이 장악한 상태였고, 노동자와 노예들이 놀라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아케메니아 포구 전체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저놈을......”

디브 아크반에게 다가가려는 사에나에게 부하들이 다급한 고함을 질렀다.

“빨리 탑으로 퇴각해야 합니다! 그놈은 어차피......”

“놈들 계획이 뭔지 알아내야 할 것 아니냐!”

사에나가 옷을 벗어 불을 끄려 했지만 그 불운한 사내는 이미 숨이 끊어져버린 후였다. 당황한 사에나는 검댕이가 묻은 얼굴을 털어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완전히 불길에 휩싸인 컨테이너 안에는 생존자가 더 이상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안에서 나온 20명의 가디언 중 17명가량은 이미 죽은 것 같았다.

“아직 목숨 붙은 가디언 세 놈들은 포로로 데려가! 당장! 수비탑을 사수한다!”

명령을 받은 헌병들은 중화상으로 신음하는 3명의 근위대 가디언들을 한쪽에 있던 수레에 대강 올리고는 일단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크의 위아래를 모두 장악한 반란군들이 포구의 핵심 시설이 집결한 수비탑을 향해 몰려드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빗물에 흠뻑 젖고 검댕이까지 뒤집어쓴 헌병들, 그리고 반란군들에 놀라 몸을 피하는 포구의 노동자들, 동료들의 느닷없는 반란에 놀란 ‘선량한’ 직할군들까지 몰려들면서 포구의 수비탑은 순식간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로 꽉 차 버렸다.

“빨리! 빨리 들어와! 기간요원이 아닌 놈들은 무기를 모두 버려! 무장하고 오는 자는 저들과 한패거리로 알고 무조건 사살해라!”

도망쳐오는 ‘우군’들을 독려하던 유시프 장군이 포구 쪽을 돌아보며 악을 쓰고 울부짖었다.

“제기랄.......막판에 도대체 이게 뭐냐고!”

그의 얼굴이 절망감에 조금씩 일그러졌다. 타르서스 반란군들이 포구를 완전히 장악한다면 동맹군의 등 뒤에 비수를 들이댄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황도의 보급선이 끊기는 것은 물론이고 이곳을 통해 연합군 병력이 상륙하는, 끔찍한 상황까지도 벌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마지막 기댈 언덕, 포구의 모든 시설을 관제하는 수비탑이 아직 남아있었다.

“진압군이 올 때까지 탑을 사수한다! 어떡해서든 탑을 내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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