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561화 (560/1,132)

< -- 561 회: 파트 6. 신께서 쥐신 검은 튜울립 -- >

.

.

.

첫 번째 화물차에 타고 있던 타크마는 20명이나 되는 5소대 가디언들이 숨어있는 컨테이너 박스가 전복되는 광경을 눈앞에서 똑똑히 확인했지만 그로서도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빨리! 뒤는 돌아보지 말고 황도 안으로 무조건 달려!”

그는 운전석과 맞닿은 컨테이너 벽을 쾅쾅 두들기며 악을 쓰고 소리를 질렀다. 이런 기습을 미처 예상치도 못했던 남서문의 수비병들은 뒤늦게 방어 장치에 달려들고 성문까지 닫으려 했지만 속도를 받아 이미 코앞까지 돌진해 온 거대한 화물차량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돌파합니다!”

타크마 일행이 탄 화물차는 수비병들이 막 세우려던 장애물을 박살내고 황도 시내에 무작정 뛰어들었다. 민간인도 거의 떠나 유령도시 같은 빗속의 황도 시내를 무섭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길가의 가로등이나 조명은 모든 에너지를 방어시설에 집중하기 위해 모두 꺼져 있었고, 드물게 남아있는 민간인들 역시 첫 번째 공성전 이후로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있다보니 거리는 개 한 마리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됐어! 계속 가! 서지 말고! 씨발! 뒤는 보지 말란 말이다!”

일단 시내에 접어들고 적들을 떨쳐낸 타크마는 컨테이너 문을 조심스레 열고 뒤를 쳐다보려는 부하 가디언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차가 일단 시내에 접어든 것을 확인한 그는 급히 할룩스를 켜고 조금 전 전복된 컨테이너에 있던 5소대장을 호출하려 했다.

“너희는 어차피 들어오기 어렵게 되었으니 거기서 타르서스 직할군하고 합류해서 포구를 접수.......”

빠르게 말을 이으려던 타크마는 스코프에 나타나는 끔찍한 광경에 잠시 입놀림을 멈춰야 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무너지는 짐에 깔려 쓰러져 신음하는 가디언들, 그리고 밖에서 몰려드는 무시무시한 불길과 열기에 가디언들이 악을 쓰며 몸부림치는 컨테이너 안의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들의 강인한 체력도, 놀라운 감각도 이런 불붙은 조그만 박스 안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성을 찾으란 말이다!”

타크마가 소리를 질렀지만 몸에 불이 붙으면서 거의 이성을 잃은 그들에게는 공염불일 뿐이었다. 지직거리며 타들어가는 살점과 머리칼, 지독한 연기와 설점 타는 냄새가 타크마에게도 그대로 연결되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열기 속에서 타 죽어가던 가디언들은 반쯤 부서진 문을 때려 부수고는 동맹군 헌병들이 날리는 볼트가 마구 쏟아지는 바깥을 향해 무작정 달려 나갔지만 타크마는 그런 그들에게 어떤 지시도 내릴 수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그들에게서 관심을 끊고 할룩스를 끄는 것 뿐이었다.

“5소대는 어떻게 됐습니까?”

타크마와 같은 컨테이너에 탄 부하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타크마가 할룩스를 감추며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남아서 타르서스 직할군들과 함께 저항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타크마는 부하들에게 정확한 상황을 설명해주는 대신, 최대한 짧게 마무리했다. 아직 작전도 시작하지 않은 부하들에게 저 소름끼치는 상황을 굳이 설명해서 차가운 이성을 흐트러뜨려 놓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목표는 적들을 때려잡는 게 아니고 최대한 깊숙이 잠입해서 적의 숨통을 끊는 거야. 이 정도 일로 흔들릴 필요 없다.”

타크마의 한 마디에서, 몇몇 고참들은 뒤처진 동료들의 운명을 어렴풋이나마 눈치 챘지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5소대가 두 토막이 나 버렸는데 이대로 괜찮을까요? 5소대를 후방을 막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만.”

“이 정도 임기응변도 못 한다면 그게 가디언이냐.”

타크마는 조금 전 본 그 끔찍한 광경을 애써 머릿속에서 털어내며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지도를 꺼내들었다. 무려 20명의 가디언이 제대로 싸움조차 해 보지 못한 채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 정도로 모든 계획을 수정할 수는 없었다. 6세대인 타크마는 대다수의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1대1 싸움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철함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가디언이었다. 그리고 그런 냉철함은 순식간에 가디언 20명을 잃은 지금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같은 컨테이너에 있던 가디언 중 몇을 손으로 하나하나 가리켰다.

“각 소대에서 5명씩 차출해서 5소대를 보강해라. 남은 5소대 선임자가 소대장을 맡는다.”

“알겠습니다.”

“보안국 헌병들이 계속 쫓아옵니다!”

이 차를 몰고 있는 운전수의 할룩스 연락이었다. 문을 조금 열고 뒤를 내다본 타크마는 쫓아오는 보안국 차량들을 확인하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은 몇 안 돼. 하지만 곧 지원병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겠지.”

타크마는 지도를 확인하고 운전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이야말로, 베흔이 말했던 ‘황도에 얼마나 익숙한지’ 여부가 성패를 가를 상황이었다.

“3스타디아 정도 전진하면 작은 광장에 있으니 그곳에서 왼쪽 급커브로 접어들도록 해라. 넌 그곳에서 속도를 최대한 늦추었다가 계속 전진해서 놈들의 주의를 끌어라. 1,2소대는 광장에서, 3,4소대는 골목 초입에서 모두 뛰어내려 2명 단위로 흩어지겠다. 5소대는 남아서 저놈들의 주의를 끌어.”

“알겠습니다. 그러면 전......”

운전수가 겁에 질린 얼굴로 무어라 물으려 했지만 타크마는 그에게 더 이상의 자잘한 지시를 내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다. 그는 운전수와 연결된 할룩스를 끄고 부하들을 향해 돌아섰다.

“집결시각을 15분 앞당기겠다.”

“예?”

타크마의 지시에 당황한 소대장들이 급히 되물었다.

“5소대에서 포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네들이 정보를 누설할 수 있으니 우리로서는 무리가 있더라도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만 한다.”

지휘관의 언뜻 무리해 보이는 임기응변에 소대장들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 이런 문제로 불만을 제기하며 끌 시간이 없었다.

타크마는 소대장들의 불만어린 표정을 못 본 척 빠른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집결 장소도 예비 집결지 2번으로 변경한다. 알겠나?”

“예!”

근위대 가디언들이 위장포, 그리고 각자의 무기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짙은 어둠에 덧대어진 굵은 빗줄기 때문에 바깥은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암흑에 휩싸여 있었다. 바로 그때, 광장에 접어든 차가 좌측으로 방향을 확 틀었다.

“내려!”

차에 실린 2개의 컨테이너에 올라 있던 180여명의 가디언들은 차가 추격자들의 사각(死角)에 접어들기가 무섭게 타크마의 지시대로 바람처럼 차에서 우루루 뛰어내려 어둠 속에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뒤쫓아온 보안국의 차들이 화물차의 뒤에 따라붙었을 때는 그 빠른 전사들은 이미 시야에서 모두 사라져버린 후였다.

마치 잠복중인 바이러스처럼, 그들은 곧이어 터질 어마어마한 혼란을 예고하며 어둠에 잠긴 황도 곳곳으로 흩어져 나갔다.

새로 고친 엘리베이터 1층에서 급히 뛰어내린 유시프 장군의 귀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누군가의 찢어지는 비명소리였다. 그가 고개를 휙 돌린 곳에는 보안국의 사에나 쉐너 중랑이 의자에 삐딱하게 앉은 채 바닥에 ‘동댕이쳐져 있는’ 근위대 가디언 포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원래 화상이 좀 아픈 법이야.”

사에나는 입과 눈을 제외한 얼굴 근육 전체가 얼어붙은 사람처럼 냉랭한 표정으로 아무런 톤 없이 중얼거렸다. 피와 진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포로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은 상급자인 유시프 장군까지도 잠시 소름이 돋게 만들 정도였다.

“지독하군.”

유시프 장군은 저 여자를 고작 부잣집에서 고이 자란 영애 정도로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을 모조리 갈아엎어야 했다. 유시프 장군은 내심 ‘보안국이 인물 하나는 제대로 뽑았네’하고 생각했지만 저런 자를 인간적으로 가까이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고문을 당했는지, 포로의 몰골은 쳐다보기에도 끔찍한 지경이었다.

“다른 곳에서 심문받는 네 동료 중 한 놈만 제대로 털어놓으면 네 필요성은 끝장나. 혼자 잘났다고 충성을 바쳐 봤자 개죽음이지.”

사에나는 화로 위에 올려놓았던 주전자를 집어들고는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을 포로의 몸 위에 조금씩 붓기 시작했다. 불에 깊이 데인 상처에 뜨거운 물이 닿자 포로가 또다시 비명을 지르며 몸을 거칠게 비틀었다. 아무리 가디언이라 해도 그 지독한 고통을 이길 수는 없었는지, 손발을 묶은 쇠사슬이 어느새 그의 살점 깊숙이 파고들며 또 다른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우읍.”

괴이한 냄새에 유시프 장군이 기겁을 하며 코를 막았지만 사에나는 마치 고급 향수라도 들이키듯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눈가에 미소까지 머금었다.

“아, 아아악.......제발, 제발.......”

울부짖는 포로를 내려다보는 사에나의 시선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마치 프로그램된 기계와도 같았다. 그는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채 몸부림치는 포로의 앞에 대뜸 기름병과 라이터를 들이댔다.

“먼저 털어놓는 놈이 목숨을 건질 확률이 제일 높다는 얘기를 이미 했던가?”

또다시 기름과 불을 본 포로의 눈가에 순간 고통을 넘어선 지독한 공포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는 깊은 화상으로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게 된 얼굴을 괴상하게 뒤틀며 몸을 꿈틀거려 불에서 최대한 도망치려 했다. 완전히 이성을 잃은 그 가디언은 주변에 선 보안국 헌병의 신발을 대뜸 물어뜯으려 했지만 그 뒤축에 얼굴을 무참히 짓밟힌 것이 전부였다.

상대를 극한까지 몰아붙인 사에나가 라이터를 끄며 갑자기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여전히 차가운 그 눈빛은 어딘지 어색한 그 웃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 폐하께서도 근위대 가디언 출신이시라는 건 알겠군? 근위대 가디언들은 전향만 하면 그 뒤로는 탄탄대로지. 보아하니 등급도 제법 되는데?”

내내 몰아붙이던 이 마녀 같은 여자가 느닷없이 ‘미끼’를 던지자 그 가디언이 잠시 움찔거렸다. 화상으로 잔뜩 망가진 가디언의 얼굴 표정이 조금씩이나마 흔들리는 것이 다시 몸에 불이 붙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이 여자의 미끼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그가 흔들리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많지도 않아. 딱 두 가지만 묻는다.”

사에나가 손가락을 치켜들며 눈을 부릅떴다.

“하나, 먼저 들어간 놈들의 목표가 무언지 말해라. 두 번째, 너희 말고 다른 팀이 또 있는지, 있다면 그들의 임무가 무언지 말하면 된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 가디언이 쥐어짜듯 물었다.

“혹시.......다른, 다른 친구가.......이미 말했습니까?”

이 가디언 역시 평소 같았다면 이런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알고 있었겠지만 판단력을 거의 상실한 지금 상황에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물음이었다. 물론, 그렇게 동료를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이 3명을 나누어 따로따로 심문하는 이유였다.

“글쎄, 그쪽을 맡은 놈한테 아직 보고가 없어서 모르겠는걸.”

사에나가 당연한 대답을 하며 뜨거운 주전자를 다시 집어들었다.

“그러니 먼저 대답하는 것도 좋지만 제대로 대답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 아니겠나?”

사에나가 가디언의 일그러진 얼굴 앞에 눈을 바싹 들이댔다. 웬만한 시민이라면 아무리 포로라 해도 가디언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댈 엄두를 내지조차 못하겠지만 이 간 큰 여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기이한 눈웃음을 던졌다.

“제가 말하면........나, 나머지 동료들도 살려주시는.......”

사에나의 웃음어린 눈가에 주름이 잔뜩 잡혔다. 기밀을 털어놓는 양심의 가책을 싸구려 동료애로 덮어버리려는 상대의 속내를 눈치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말없이 눈빛만을 반짝이고 있었다. 가디언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머, 먼저 들어간 팀은.......가디언 180명입니다.......”

“180명?”

순간 경악한 사에나는 눈앞에 쓰러진 포로에게 자신의 놀라움을 드러내지 않으려 최대한 애쓰며 더더욱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가디언 180여명이 황성 안에 난입했다는 건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상황이었다.

“목표와 작전시각은?”

“세, 세 시에.......황궁 남문이 목표입니다.”

“황궁?”

순간,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던 사에나의 입가가 얼음처럼 굳었다. 지금까지는 적들이 고작해야 황도 시내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하거나 성문을 후방에서 기습해 여는 정도를 시도하리라 생각했지만 상황은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지금 황궁이라고 했나?”

사에나는 물론이고 뒤에서 심문 광경을 지켜보던 유시프 장군까지도 움찔거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가디언이 진물이 흐르는 얼굴을 거칠게 저으며 말했다.

“황궁의 남문을 공격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 뒤엔?”

사에나가 침을 한 번 삼키고는 한결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모릅니다.......남문 위병소까지만 가면 황궁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방법은.......저도 모릅니다. 그 뒤는 타크마 대장하고 소대장들만 알고 있습니다.”

사에나의 피 묻은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는 마주보고 있는 포로에게 놀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의 눈짓을 받은 보안국 헌병이 급히 어딘가로 달려갔다.

“발각된 너희들 말고 다른 팀이 있는지 물었다.”

사에나가 쉴 틈을 주지 않고 상대를 계속 몰아붙였다. 그는 머뭇거리는 포로의 뺨을 찰싹 후려치며 대번 언성을 높였다.

“빨리!”

화상으로 망가진 피부에 다시 타격을 입은 포로가 몸부림을 치며 거의 울부짖듯 비명을 질렀다.

“베, 베흔 대장이 함께.......”

순간 사에나가 이를 빠득 갈았다. 그는 목소리를 다시금 낮추며 다시 물었다.

“베흔? 그자가 이곳에 들어왔나? 그자는 무얼 타고 들어왔지?”

“모, 몰라요! 입항하기 전에 1개 분대를 데리고 작은 배로 따로 빠져나갔습니다. 황궁 남문에서 다시 만날 거라고만 들었다고요! 정말로요!”

가디언 포로가 지독한 고통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를 질렀다. 포로의 타들어간 머리채를 대뜸 움켜쥐고 상대를 잠시 노려보던 사에나는 침을 퉤 뱉으며 그를 바닥에 거칠게 동댕이쳤다.

“치료해 줘라. 본부에 당장 연락해.”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