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563화 (562/1,132)

< -- 563 회: 파트 6. 신께서 쥐신 검은 튜울립 -- >

.

.

.

“느려도 좋으니 조준 사격해!”

초반의 맹렬했던 기세는 바리케이드에 가까워져 사격이 더 정확해질수록 눈에 띄게 느려졌다. 기세가 오른 헌병들은 바리케이드 위에 줄줄이 서서는 다가오는 반란군들을 하나하나 맞춰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계속 가! 계속 가!”

반란군의 장교와 사관들이 뒤에서 병사들을 독려했지만 베흔의 앞에서도 놀라 달아났던 그들이 지금이라고 광기어린 용기를 내 줄 리는 없었다.

거의 절반 가까운 동료들이 쓰러지자 그들은 거의 코앞까지 다가온 바리케이드를 포기하고 일제히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달아나는 뒤통수를 향해 날아드는 볼트는 정면에서 날리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었지만 그런 것까지 따질 여유는 없었다.

“헌병대는 적을 쫓아라! 사관들은 쓰러진 반역도들을 확인 사살해! 직할군은 여기를 지켜!”

유시프 장군의 명령에 사에나는 마치 표범처럼 바리케이드를 앞장서서 훌쩍 뛰어넘었다. 상대가 뒤를 쫓아오자 놀란 반란군들은 비명을 지르며 걸음을 재촉하느라 쓰러진 동료들을 미처 추스를 여유조차 없었다.

“근위대! 근위대가 온다!”

제대로 된 군대라면 지원군이 온다는 말에 힘을 내어 적을 더 열심히 공격하겠지만 패잔병들은 도리어 근위대가 오고 있는 쪽을 향해 더 열심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 헌병대에 뒤이어 바리케이드를 넘은 수비병들은 얼굴, 손발에 볼트를 맞아 쓰러진 채 동료들에게 버림받은 반란군들의 목과 가슴에 칼을 힘껏 박아 넣어 목숨을 끊어버렸다.

“빌어먹을, 제기랄!”

쓰러져 있는 반란군 사관의 가슴에서 칼을 뽑아낸 유시프 장군이 빗속을 돌아보며 울부짖듯 욕을 내질렀다. 지금 그가 숨통을 끊은 자들은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의 명령에 따르던 수하들이었다.

“뭐 하나! 다 죽이란 말이다! 너희들도 반역자로 함께 매도당하고 싶나!”

유시프 장군은 쓰러진 반란군을 향해 칼을 든 채 머뭇거리고 있는 직할군 사관을 향해 화풀이를 하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가 직할군 사관들에게 이 ‘악역’을 맡긴 것도 저들이 다른 맘을 품을 여지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나름의 속셈이었다.

“첫 번째만 어렵다! 알았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던 그 사관들은 자신들 동족의 가슴에 칼을 박아넣으며 처절한 고함을 내질렀다. ‘프라임 사람’의 명령에 같은 타르서스인들이 서로 목숨을 빼앗아야 하는 비참한 상황 따위는 이제 중요치 않았다.

“근위대가 근접해옵니다. 2차 공격입니다. 퇴각해야겠습니다.”

전장에서 하는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그 밋밋하고 차가운 보고는 조금 전 반란군을 쫓아 달려갔던 사에나 쉐너 중랑의 목소리였다.

“알았다. 퇴각! 퇴각!”

쓰러진 반란군들을 모두 사살한 것을 확인한 유시프 장군은 함께 온 직할군 사관들과 함께 바리케이드 뒤로 다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무서운 적’을 맞아야 할 판이었다. 그때, 수비탑의 등대 불이 환하게 켜지며 첫 번째 작은 전투 동안 어두워 있던 주변을 다시금 밝혔다.

“우리 지원군이 온다!”

그는 고개를 들어 1번 도크 쪽을 쳐다보았다. 아메샤 스펜타 아샤 연대 경보병 120여명을 태운 선박이 수비탑 옥상, 등대의 관제를 따라 물속에 무수하게 설치된 장애물들을 교묘하게 피해 1번 도크로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유시프 장군은 수비탑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을 페나페를 향해 잘 했다며 손을 크게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지원군이 선착장에 내려 이곳에 와 줄 때까지 버티는 것이 문제였다.

“근위대가 몇 명인가!”

바리케이드 뒤로 다시 돌아온 유시프 장군이 사에나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현재 100여명 정도 됩니다만 뒤에서 계속 충원되고 있습니다. 가디언 20여명과 정규군 80여명입니다.”

여전히 밋밋한 음성이었지만 이젠 귀에 거슬리는 그의 음성 따위에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달아나는 반란군들을 정신없이 뒤쫓던 헌병들이 다시 방향을 돌려 수비탑으로 허겁지겁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수비탑을 향해 몰려드는 근위대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들 중 몇몇은 갑주를 입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아 가디언들임에 틀림이 없었다.

“모두 퇴각했나!”

퇴각하는 부대의 제일 후미에서 달려온 사에나는 다른 헌병들은 발로 짚고 넘은 5척(150cm) 가까운 바리케이드를 한 팔로만 짚고 훌쩍 뛰어넘어서는 바닥에 사뿐히 내려섰다.

“사격준비!”

그는 비에 흠뻑 젖은 검은 코트를 한 번 툭 털어내며 석궁을 다시금 휙 돌렸다. 그의 날렵한 몸놀림에 유시프 장군은 내심 ‘언뜻 보면 가디언인 줄로 알겠군.’하며 내심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가디언들이 정면에! 헌병들은 2선에!”

사에나는 헌병대와 함께 온 십여명의 많지 않은 가디언들에게 제일 앞쪽을 가리키며 악을 썼다.

“적 선두에 가디언들입니다! 사격은 별 소용이.......”

“걸음이라도 늦추란 말이다! 발사!”

틱 소리와 함께 사에나의 석궁이 근위대 선발대의 선두에서 달려온 드루그를 향해 똑바로 날았다.

“썅! 뭐야!”

깜짝 놀란 드루그가 손에 들고 있던 양손검 날로 날아오는 볼트를 쳐냈지만 이상하게 몸이 둔했다. 찬 호숫물에서 나와서 미처 몸을 덥힐 사이도 없이 얼음장 같은 겨울비를 맞으며 달려오다 보니 몸이 아직 제대로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칼에서 튕겨난 볼트가 그의 오른팔을 깊숙이 찢고 조각나 날아갔다.

“최대한 빨리......”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던 드루그는 뒤따라오는 부하들 역시 자신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달았다. 눈에 띄게 둔해진 병사들, 가디언들의 몸놀림은 평소 날렵하던 근위대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이제 결판을 내야만 했다. 그들은 와아 하는 우렁찬 함성으로 빗속을 울리며 바리케이드에 일제히 달려들었다.

“헌병 1분대는 석궁으로 가디언을 쏘고! 나머지 분대는 백병전이다!”

뒤로 물러난 사에나가 석궁을 들지 않은 왼손에 작은 방패를 집어들며 부하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사이, 유시프 장군이 지휘하는 가디언들과 보안요원, 직할군들이 막 바리케이드를 넘는 근위대들에게 맹렬히 공격을 시작했다.

“이 새끼!”

선두에서 바리케이드를 넘은 드루그는 앞을 막는 동맹군 가디언의 얼굴을 그대로 짓밟고는 쓰러진 적을 향해 시미터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에게는 특등급 가디언으로서 처음 맞이하는 전투였다. 하지만 그의 ‘멋진’ 첫 사살은 한쪽에서 날아든 날카로운 볼트의 진동에 막히고 말았다.

“앗!”

움찔거리던 드루그는 재빨리 몸을 날려 도망치는 동맹군 가디언을 미처 붙잡을 수가 없었다. 장거리에서 큰 동작으로 날리는 투창공격과는 달리, 백병전이 벌어지는 바로 옆에서 작은 기계로 짧게 쏘고 빠져버리는 데다가 탄도 속도도 훨씬 빠른 석궁은 가디언들에게 더 귀찮은 존재였다.

바리케이드를 넘어온 근위대 가디언과 정규군들은 수비탑으로 통하는 이 좁은 통로를 지키던 수비병들과 사방에서 거친 백병전을 개시했다. 병사들의 비명소리와 무어라 지시를 내리는 장교와 사관들의 함성이 거친 빗속에서 알아듣기도 힘든 소음처럼 웅웅거렸다.

“이 새끼가!”

유시프 장군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근위대 상등병의 칼을 힘껏 쳐냈다. 하지만 상대는 사병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중심을 되찾으며 그에게 다시 칼끝을 내질렀다.

“이런!”

순간 머리털이 바싹 곤두섰던 그는 그 병사의 칼을 옆으로 재빨리 비껴내며 몸을 180도 휙 돌려 적의 뒷 목덜미를 칼 손잡이 끝 폼멜로 내리찍었다. 이 베테랑 사병 역시 상대의 변칙적인 공격을 바로 눈치챘지만 목을 얻어맞으며 이미 중심을 잃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가 쓰러지면서 발악하듯 반사적으로 휘두른 칼은 유시프 장군의 무릎과 허벅지 사이를 베고 빗속, 허공을 휙 돌았다.

“이놈이!”

유시프 장군은 이 만만치 않은 적을 힘껏 걷어차 쓰러뜨리며 재빨리 칼을 거꾸로 세우고 그의 등을 힘껏 내리찍었다. 공중으로 벌컥 솟구친 피가 그의 손과 등을 밟고 있던 발을 붉게 적셨지만 거센 빗물에 바로 씻겨나갔다.

“빌어먹을.......역시 근위대인가......”

십년감수했던 유시프 장군이 깊은 상처를 입은 다리를 꽉 움켜쥐며 끄응 소리를 냈다. 지금까지 저 많은 반란군들에게 둘러싸인 채 힘겹게 포구, 아니 수비탑을 사수해 낸 것만도 기적이었다.

그는 주변에서 이 무시무시한 근위대들과 사투를 벌이는 자신의 병사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그는 1번 도크 쪽을 다시 돌아보았다. 아샤 연대 120여명을 태운 소형 수송선이 선착장에 최대한 빨리 접근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마치 기어오듯 느리게만 보였다. 그에 비하면 바리케이드를 넘어오는 근위대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만 있었다. 그는 아켐에서 사막에 버려졌을 때보다 더한, 지독한 절망감에 두 다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포구, 아니 이 수비탑을 빼앗기면 황도는 사실상 끝이었다.

유시프 장군은 지원군을 싣고 오는 배를 다시 불러냈다.

“우리가 적군을 수비탑으로 유인하면서 퇴각하겠다. 적은 우리를 뒤쫓아 방파제 안쪽으로 깊이 들어올 테니 너흰 방파제 중간에 상륙해 놈들의 허리를 끊어라. 놈들도 뒤가 끊기면 물러날 수밖에 없을 테니.”

같은 시간, 목표를 놓치고 주변을 둘러보던 드루그는 후방에서 수비군들을 독려하던 유시프 장군과 정면으로 눈이 딱 마주쳤다. 그리고 그의 다리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엷은 핏줄기가 바로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저놈이다! 저놈만 잡으면......”

순간 어깨에서 힘이 솟은 그는 양손검을 번쩍 치켜들고 그를 향해 무섭게 돌진했다.

“누구 맘대로!”

카랑카랑한 여자 목소리가 옆에서 울렸지만 드루그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유시프 장군만 잡으면 다 되는 일이었다. 그의 칼끝이 미처 물러나지 못한 유시프 장군의 정수리를 향해 정확히 내리꽂혔다.

“죽어!”

머리가 쪼개지며 쓰러지는 상대의 모습을 머릿속에 막 떠올리며 칼을 치켜들었던 그는 왼쪽에서 누군가 바싹 돌격해온 것을 느꼈다. 그는 유시프 장군을 향해 굵고 육중한 오른팔만으로 양손검을 내리찍으며, 한편으로 건틀렛을 긴 왼팔은 두 번째 적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드루그에 놀라 뒷걸음치던 유시프 장군은 드루그의 옆으로 방패 하나만을 앞세운 채 체중을 실어 돌진하는 사에나의 모습에 ‘저 여자가 제정신인가’ 싶었다.

“뭐 하나! 물러나!”

유시프 장군이 손을 저었지만 자기 입으로 정규군 취향이 아니라던 그 여자는 거칠게 팔을 휘두르는 그 무시무시한 적을 향해 석궁의 방아쇠를 서슴없이 당겼다. 거의 동시에, 드루그의 칼날이 유시프 장군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우욱!”

건틀렛에 돋은 날카로운 칼날에 금속제 방패가 종잇장처럼 찢기면서 사에나가 팔에서 피를 흘리며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가 쓰러지기 직전 날린 볼트는 이 무서운 상대의 코를 비스듬히 베어내고 오른쪽 팔뚝 안쪽에 딱 소리를 내며 매섭게 꽂혔다.

“아익!”

팔에 부상을 입은 드루그 역시 유시프 장군의 투구만 조각냈을 뿐 머리에 치명상을 입히는 데는 실패한 채 잠시 옆으로 휘청거렸다. 그는 오른쪽 팔에 깊숙이 박힌 볼트를 급히 빼내려 했지만 촉에 걸려서 빠지지를 않았다.

“제길!”

드루그는 지금 이 순간 볼트를 뽑는 데 시간을 낭비할 애송이는 아니었다. 머리가 깨진 유시프 장군이 호위병들에게 질질 끌려 수비탑 안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귀찮은 놈!”

드루그는 아픔을 기를 쓰고 참으며 볼트를 손으로 꺾어 내던졌다. 그리고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물러나던 유시프 장군을 향해 한 팔로 칼을 휘두르며 번개처럼 그의 머리 위로 덮쳤다. 가디언 한 명이 장군의 앞을 지키려 했지만 노련한 특등급 가디언을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질긴 놈 같으니!”

앞을 막는 동맹군 가디언, 그리고 유시프 장군의 호위병까지도 단칼에 베어버린 드루그는 바닥에 쓰러진 유시프 장군의 가슴을 힘껏 찔렀지만 부상을 입은 팔, 그리고 상대가 때맞춰 몸을 비튼 덕분에 그의 두터운 갑주를 완전히 찢어낼 수는 없었다. 그가 내지른 양손검의 날은 유시프 장군의 가슴 옆을 깊숙이 베어내고 바닥에 틱 소리를 내며 꽂혔다.

“악!”

유시프 장군이 본능적으로 칼날을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드루그가 그를 발로 짓누르며 다시 칼을 뽑아내려 했지만 놓치는 것이 곧 죽음과 직결될 상황에서 유시프 장군 역시 순순히 칼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 새끼!”

격분한 드루그의 거친 발길질에 흉곽이 짓눌려 산산조각난 유시프 장군이 온몸을 부르르 떨며 칼을 쥔 손을 놓치고 말았다. 바로 드루그가 원하던 순간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