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42 회: 파트 8. 해바라기가 앞을 가로막거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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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그런 모습에 그를 따르는 30여 에키트 족들 역시 마치 조건반사처럼 도끼를 빼들었다. 베레트라가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저길 공격하시려고요?”
“우리가 시간에 쫓겨 보루들을 당장은 공격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 본보기로 하나쯤 때려잡아 줘야지. 그리고 저기만 빼앗으면 산줄기에 이어진 나머지 보루들을 공격하기도 쉬워져. 내게 제대 하나만 빌려주게. 그리고 1개 제대만 동원해서 놈들이 북쪽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차단하고 시로에게 연락해서 가디언 20명만 보내달라고 해.”
“맡겨만 주시면 소장이 직접…….”
“중랑장님께선 빨리 시가지를 접수하시지요.”
장난스레 대답한 카렐이 30명의 에키트 족에게 뒤를 따르라며 손짓했다. 황제가 직접 앞장서는 것을 아는 그들은 사뭇 고무된 표정으로 성큼성큼 그 뒤를 따랐다.
베레트라는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할룩스를 빼들었다.
“29제대, 당장 지휘부로 이동해서 ‘소라브 추장’의 지휘를 따라라. 30제대, 알로 언덕의 북쪽을 차단하고 언덕의 보루에서 도망치는 적병들은 모조리 사살해라. 명심해라. 포로는 없다. 모두 사살해라.”
도끼를 쥐고 알로 언덕을 향해 성큼성큼 걷는 카렐의 손등에 어느새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늦은 겨울의 찬바람이 그의 얼굴을 때렸지만 온몸에서 샘솟는 테스토스테론과 엔돌핀 때문인지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오랜만에 다시 맡은 전장의 피비린내를 어느새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후, 서쪽에서 달려온 에키트 족 예비대 보병 130여명, 그리고 가디언 20여명이 합류하면서 그의 뒤를 따르는 병사들은 어느새 150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눈앞의 ‘알로 언덕’은 북쪽으로는 낮은 고개가 북쪽의 판 산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야트막한 언덕이, 그리고 서쪽으로는 가파른 절벽이 누런 바위의 속내를 드러낸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곳에 대한 공격은 남쪽과 동쪽에서만 가능해 보였다.
겁먹은 민간인들이 모조리 집 안으로 숨어서인지 한밤의 길거리는 쥐죽은 듯 조용했지만 너무 조용한 것이 도리어 전사들의 신경을 잔뜩 자극하고 있었다. 오래된 2층, 3층 건물이 줄줄이 이어진 골목이 큰길의 좌우로 미로처럼 뻗어 있었고, 적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는, 어디서 석궁이라도 쏘며 기습을 해 올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너희는 동쪽과 남쪽을 차단하고 오른다. 내가 서쪽을 맡는다.”
카렐이 그 긴 팔을 휘두르며 각각의 부대에 지시를 내렸다. 바로 그때, 조금 앞쪽의 건물에서 근위대 병사 2명이 튀어나와 골목 사이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금껏 저곳에 숨어 동맹군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다가 가디언들의 접근에 놀라 도망치려는 모양이었다.
“저놈들 주둥이를 막아.”
카렐이 가디언 한 명에게 둘 중 하나를 가리키고는 다른 쪽을 향해 손도끼를 힘껏 던졌다. 적당히 도망쳤다고 생각했는지, 무심코 뒤를 돌아보던 근위대 병사의 이마에 빡 소리와 함께 손도끼가 깊숙이 박히면서 뒤로 붕 날아가 떨어졌다. 그리고 단번에 3조각이 나 버린 투구가 즉사한 주인의 시체 옆에 툭 떨어졌다.
“근위대를 감춰 준 집은 불을 지를 예정이다. 안에 근위대가 함께 있다면 민간인은 당장 튀어나와라! 안 그러면 집을 날리게 될 거다!”
동맹군 장교들의 통고인지, 협박인지 알 수 없는 확성기 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이들의 목적은 2가지였다. 가망이 높지는 않지만 정말로 자진해 신고를 해 주던지, 아니면 숨어있는 근위대 병사들이 민간인을 단속하느라 주의력이 흐트러지는 것이었다.
“잡았다!”
반대편에서 도망치던 근위대 병사도 가디언의 눈을 오래 속이지는 못했다. 동료가 죽는 모습에 놀라 공포에 사로잡힌 그 병사는 급한 나머지 민가의 창을 뜯고 들어갔지만 놀란 집주인의 비명소리에 바로 들통이 나고 말았다. 뒤쫓아 들어간 가디언은 겁에 질린 가족들의 눈앞에서 근위대 병사의 머리를 단칼에 몸통과 떼어놓았다.
“가디언들은 뒤를 깨끗이 하고 내 뒤를 따라와라. 난 에키트 족들과 앞장선다.”
뒤에 남은 가디언들에게 지시를 내린 카렐은 알로 언덕의 서쪽 절벽으로 무조건 돌진했다. 시가지에 흩어진 근위대들을 하나하나 따지며 시간을 끌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의 앞에는 70도 가까이 기운 가파른 경사의 10척(30m) 바위절벽이 올라올 테면 와 보라는 듯 버티고 서 있었다. 물론 그 위에는 이런저런 장애물이 가득 놓여 있었고, 철조망과의 사이에 수비병 2개 분대 20명 정도가 있었다. 이곳으로 공격하는 것을 이미 눈치 챘으니 곧 빠르게 보충될 것이 뻔했다.
“바로 올라간다.”
복잡한 고려도, 자질구레한 지시 따위도 없었다. 뒤로 조금 물러났던 카렐은 최대한의 속도를 받아 그대로 가파른 경사의 절벽을 서슴없이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온몸에 털가죽을 뒤집어쓰고 어둠 속에서 돌진하는 이 덩치 큰 ‘추장’의 모습은 마치 맹수처럼 보일 정도였다. 황제가 앞장서는 것을 아는 에키트 족 경호원들이 괴성을 지르며 뒤를 따랐지만 쫓아가기는 어차피 무리였다.
“보병은 물러나! 물러나!”
상대가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근위대의 가디언 분대장이 재빨리 앞으로 튀어나왔지만 그 새 이 괴물은 바닥에 깔아놓은 장애물들을 붕 날아올라 훌쩍 넘어버렸다. 보통 병사들의 점프력에 맞춰 설치해 놓은 몇 겹의 와이어 장애물들은 그의 앞에서는 그냥 뛰어 건널 수 있는 도랑 정도에 불과했다. 근위대 병사들이 새로 지급받은 석궁을 꺼내 쏘아 볼 여유조차 없었다.
“꺼져!”
카렐이 등에서 확 뽑아든 건 베흔에게서 빼앗은 플람베르주였다. 손잡이에 가죽 끈을 칭칭 동여매고 날에 검은 칠을 했지만 웬만한 어른 키에 육박하는 긴 날에서 뿜어나오는 무시무시한 위력만은 그대로였다.
“이게 얼마만이냐!”
붕 소리를 내며 공중을 한 바퀴 가른 날은 앞장서 나와 있던 가디언의 어깨와 그의 옆에 있던 다른 보병의 가슴을 동시에 조각내고는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질척질척한 땅바닥을 퍽 소리를 내며 후려쳤다.
“모여! 함께 덤벼!”
어깨가 잘린 채 쓰러진 가디언 지휘관이 단말마의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지만 도리어 잘못된 지시였다. 바닥을 후려쳤던 그 거대한 검은 바닥을 쓸어내듯 확 스치며 주변에 모여들던 병사들의 얼굴에 흙과 눈이 뒤섞인 진흙탕물을 확 흩뿌렸다.
“뭐야!”
본능적으로 주춤거리는 그들의 앞으로 카렐이 다시 플람베르주를 들고 쇄도했다. 악 소리를 내며 휘두른 그의 칼놀림 한 번에 마치 도살장 같은 끔찍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토막나버린 3명의 병사들 살점 조각이 동료들의 공포어린 얼굴 위로 튀어올랐다.
“추장님을 지켜!”
카렐을 따라 절벽을 뛰어오른 30여명의 에키트 족 전사들이 절벽 위에 막 도착한 건 그때였다. 먼저 오른 카렐이 번개같은 기습으로 수비병들을 온통 휘저어 놓은 덕분에 그들은 별다른 반격도 받지 않고 전원이 무사히 언덕 위를 밟을 수 있었다.
“가디언은 이미 쓰러뜨렸으니 마음껏 죽여!”
에키트 족의 거친 억양 그대로, 카렐의 고함소리가 언덕 위를 울렸다. 순간 에키트 족 전사들은 마치 그가 정말로 자신들의 용맹한 추장인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도끼와 원형 방패를 든 거구의 전사들은 이미 혼비백산해 있던 수비병들에게 달려들었다. 굳이 카렐이 아니어도, 황제를 경호하기 위해 특별히 선발한 거구의 야만족들은 근위대들에게 재앙에 가까웠다.
그들과 근위대 수비병들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지는 사이, 카렐은 앞을 막는 2명의 정규군 병사를 짓밟아 목을 비틀어버리고는 철조망으로 돌진했다. 철조망 안쪽에서는 ‘서쪽 절벽이 뚫렸다’는 소식에 몰려나온 근위대 병사들, 그리고 시가지에서 이곳으로 피신했던 펜지켄트의 치안군 병사들 30여명 정도가 허겁지겁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젠장!”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카렐은 온몸의 힘을 실어 철조망에 힘껏 돌진했다. 우지끈 소리를 내며 철조망의 철제 기둥이 기울었지만 한 번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뒤로 물러났던 그는 이미 기운 철조망을 향해 다시 온 힘을 다해 들이받았다.
“이런, 젠장!”
철조망 한쪽이 쓰러지면서 중심을 잃은 카렐은 무너진 철조망 위에 엎어지고 말았다. 부러진 철조망 기둥에 긁히며 목덜미에서 욱신한 아픔을 느꼈지만 그저 찰과상 같았다.
“괜찮으십니까?”
급히 뒤따라온 에키트 족 호위대 대장이 그의 손을 잡고 힘껏 일으켜 주었다. 카렐처럼 무거운 사람을 단번에 일으켜 주는 것을 보아 힘이 엄청나게 센 사내임에 틀림없었다.
“별 것 아니다.”
카렐은 무안함을 얼른 감추며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는 시가지 주둔군들의 창고다. 장기간 항전을 대비해 쓸모 있는 물건들도 많이 보관해 두었을 테니 놈들이 불을 지르고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카렐은 자신을 일으켜 준 전사에게 안쪽의 창고를 가리키고는 다시 양손검을 들고 이번에는 안쪽에서 몰려나오는 적에게 돌진했다. 보루의 병력 대다수는 반대편 동쪽에서 공격해오는 다른 에키트 족 부대를 막기 위해 나가 있는 상태였다.
“저ㅤㄱㅣㅆ군!”
카렐은 이번에도 지원군들을 이끌고 선두에서 나오는 가디언 지휘관부터 바로 목표로 삼았다. 일단 가디언 지휘관만 쓰러뜨리면 에키트 족들이 나머지 근위대 정규군 병사들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상대방 역시도 가디언이 ‘추장’인 카렐을 노리고 제일 앞에 서 있었다. 조금 전 절벽을 막던 가디언이 당한 꼴을 아직 알지 못한다는 것이 카렐에게는 다행이었다.
“귀찮게!”
카렐은 30여명의 적병들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선봉에 서 있던 가디언의 얼굴과 목, 가슴이 그의 팔꿈치와 칼자루에 차례로 얻어맞으며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으스러져 버렸다. 무기력해진 가디언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지만 카렐은 이번에도 그를 죽이는 건 뒤따르는 에키트 족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물론 ‘가디언을 죽인 추장’으로 괜한 유명세를 얻는 것을 원치 않아서였다.
“너희들이 맡아!”
가디언을 돌파한 카렐은 양손검을 앞으로 똑바로 세우고 30명의 대오 사이를 파고들었다. 휭휭 바람 소리를 내며 공중을 가르는 큰 칼에 맞아 쓰러지는 병사들, 그리고 먼저 놀라 물러서는 병사들로 그들이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버렸다. 하지만 카렐은 이번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바로 어둠에 휩싸인 창고를 향해 달려갔다. 3채의 큰 창고건물 중 한 군데만이 문이 열려 있었다.
언뜻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돌진에 뒤따르던 에키트 족들까지 기가 막혀하며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여기냐!”
그는 창고에 도착하자마자 이번에도 바로 문부터 후려쳤다. 채 잠기지도 않은 채 있던 문은 당장 부서질 듯 휙 열렸고, 그 안쪽에는 이곳 수비부대의 제대장과 두 명의 병사들이 기름통을 들고 막 불을 붙일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악!”
상대가 미처 누군지도 파악할 시간조차 없이 구불구불한 칼날에 바로 가슴이 관통당한 제대장이 자리에서 부르르 떨었다.
“으앗!”
기름통을 내버리고 도망가려던 2명의 병사 중 조금 늦었던 한 명은 이 괴물의 큰 손에 뒷덜미가 붙들리며 바로 목이 으스러져 버렸다.
그나마 빨리 도망쳤던 병사 한 명은 동료보다 1, 2초 더 살 수 있었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쉿 하며 날아든 짤막한 손도끼는 도망치던 병사의 등 갑주를 양쪽으로 쪼개 놓으며 등 중앙의 급소를 찍어버렸다.
“휴우.”
카렐은 그제야 한숨 돌리며 제대장의 몸에 박혀 있던 양손검을 힘껏 뽑아들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워낙 정신없이 달려와서인지 몇 명이나 죽였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플람베르주의 날 끝부터 손잡이까지 온통 피와 찢긴 살점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것이 그가 뒤에 남기고 온 끔찍한 흔적을 짐작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지 바깥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카렐은 문이 확 열리는 소리에 뒤를 휙 돌아보며 칼을 겨누었다.
“다행입니다. 무사하셨군요.”
조금 전의 그 덩치 큰 에키트 족 대장이 도끼를 치우며 수염에 엉겨붙은 피를 털어냈다. 텁수룩한 수염으로 뒤덮인 시커멓고 큰 얼굴은 카렐과 맞먹는 어마어마하게 큰 키와 굵은 통나무처럼 떡 벌어진 상체 덕분에 언뜻 주먹만하게 보였다.
“바깥 상황은 어떠냐?”
“가디언들이 패잔병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 전사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비명소리에 어깨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카렐은 뒤따라온 에키트 족 전사들에게 기름통을 치우라고 눈짓을 보내고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물었군. 베레트라 알부르즈 중랑장이 에키트 족 이름은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하던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
“부지우루그우미드 야즈디기르드입니다.”
“뭐, 뭐라고? 부지……뭐?”
카렐이 귀를 후비고 다시 물었다. 에키트 족들의 이름이 길고 희한한 건 언뜻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발음하기조차 이름은 처음이었다. 베레트라가 왜 물을 필요가 없다고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부지우루그우미드 야즈디기르드라고 합니다, 전통대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에서 반쪽씩 물려받았습니다. 원래는 그 뒤로 또…….”
“됐어, 됐어. 부지우루구……에이, 젠장, 한쪽이라도 좀 짧았으면 좋았을텐데 정말 최악의 조합이군.”
혀가 꼬여버린 카렐이 짜증을 내며 손을 저었다.
“제 이름은 아주 긴 축에 속하는 것도 아닌데요.”
그 전사는 사나운 인상에 안 어울릴 정도의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새 바깥의 전투를 끝낸 에키트 족 호위병들이 창고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자잘한 부상을 입은 전사들은 몇 있었지만 중상자나 전사자는 한 명도 없었다. 도리어 목덜미에 난 카렐의 상처가 제일 큰 부상으로 보였다.
전투 자체를 숭상하는 민족답게, 바로 자신들의 눈앞에서 무시무시한 능력을 증명해보인 황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전과는 사뭇 달랐다.
‘부지우루그우미드’가 주머니에서 거즈를 꺼내 침을 퉤 뱉어서는 황제의 목덜미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감히 황제의 몸에 허락도 없이 손을 댄다는 것이, 심지어 침을 바르는 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중죄인지 이 야만전사가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카렐은 이 투박한 사내의 ‘응급처치’를 받으며 피식 웃음까지 지었다.
“자네 자식들도 이름이 그 모양이야?”
카렐이 ‘부지우루그우미드’에게 다시 물었다.
“다행히 마누라 이름은 약간 짧습니다.”
그는 누렇게 반쯤 썩은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아들놈 하나뿐인데 아직 어려서 자기 이름도 잘 모릅지요. ‘부지우루그파드 루스타미르드’입니다.”
“커도 외우려면 시간 좀 걸리겠군.”
황제의 대꾸에 당사자는 물론이고 다른 전사들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됐어, 앞으로는 락시라고 부를 테니까 자네인줄로 알아. 이름 읊다가 중요한 명령 까먹고 싶지는 않으니까. 알았나? 락시 대장?”
카렐은 즉석에서 머리에 떠오른 이름을 이 거인에게 멋대로 붙여버렸다.
황제에게서 이름을 하사받은 ‘부지우루그우미드’는 고무된 표정으로 한 발 물러나며 피묻은 도끼를 가슴에 가져갔다.
“영광이옵니다. 이 ‘락시 대장’ 목숨으로 폐……추장님을 지키겠나이다.”
카렐은 별 생각도 없이 붙여 준 이름에 그가 이렇게까지 감격하자 도리어 머쓱해졌다. 사실 그가 이름을 붙여 준 건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부르기 편한 호칭이 하나쯤 필요해서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전사는 아마도 그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그때, 그의 할룩스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 전투의 ‘공식적인 최고지휘관’인 대장군 베아트릭스였다.
“강 이북 지역을 사실상 모두 장악했습니다.”
베아트릭스의 보고는 평소처럼 짧고도 명료했다. 그렇다면 당초의 목적은 일단 달성한 셈이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카렐은 스코프로 가려진 얼굴을 살짝 드러내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황빈. 지금 막 알로 언덕의 보급품 창고를 차지했으니 내 지원단과 함께 여기에 계속 머무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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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연재입니다~ 추천수 10만이 넘어 더더욱 행복한 연재입니다. 내용도 빠르고 깔끔하게(?) 끝맺었고요. (뒤에야 어떻게 이어지건간에 ^^;;)
조만간 카페에서 출판본 2권을 걸고 10만 추천 겸 새해 기념이벤트도 할 예정입니다.
2007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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