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60 회: 파트 9. 하나의 가지, 다른 색의 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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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들고 3일이 지났지만 오르마즈는 여전히 병석에 누워있었다. 볼트에 맞은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치명적이었고 회복도 그다지 빠르지 못했다. 그는 3일이 지나서야 어렵게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걷는 것은 엄두도 낼 형편이 아니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자신이 있는 이 ‘대신관 처소’의 다른 공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문은 항상 굳게 닫혀있었고, 그가 외부와 통하는 매개체는 저녁 무렵 하루 한 번씩 들어와 한 시간 정도 말벗을 해 주는 나즈라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외과가 아닌 내과의였고 상처를 직접 보아줄 처지는 아니었다.
“이럴 때는 내가 외과의였다면 좋았으리라 생각이 드네요.”
팔에서 피를 뽑는 나즈라의 모습을 지켜보던 오르마즈는 짐짓 무표정하게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르마즈는 자신을 위해서도, 이 남자를 위해서도 이젠 정을 끊어야 한다고 백 번도 넘게 스스로에게 다짐했지만 정작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옛 일은 잊어달라’는 말이 혀끝에 걸려 더 이상 나오지를 않았다. 대신 쓸데없는 심술로 일부러 그의 속을 긁어놓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즈라는 오르마즈의 붉은 피가 가득 담긴 튜브를 창의 햇볕에 비춰보며 입가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왜요? 마시려고요?”
오르마즈의 내내 곱지않은 태도에도 나즈라는 여전히 다정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즈라는 피를 뽑아낸 주사자리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주며 다시 오르마즈에게 입술을 가져갔다. 오르마즈가 고개를 뒤로 빼며 쏘아붙였다.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게…….”
나즈라는 무어라 말하려는 오르마즈의 입술을 자신의 두 입술로 살짝 물어버렸다. 무심결에 배에 힘을 준 오르마즈가 찢는 듯 통증에 얼굴을 찡그렸다. 나즈라가 그런 그의 깊은 상처 위를 손바닥으로 살며시 눌렀다.
“딱 한 번만이라도 느껴보고 싶으니 제발 참아 줘요.”
중환자가 이래도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르마즈도 이번은 그의 다소 거친 키스를 피할 수가 없었다. 나즈라는 오르마즈의 목과 머리를 한 팔로 받치고 이 옛 연인의 마르고 부르튼 입술, 따뜻한 혀끝을 천천히 만끽했다. 처음의 긴장이 풀리며 잔뜩 움츠러들었던 오르마즈의 어깨도 조금씩 풀려갔다. 누군가의 이렇게 따뜻한 손길과 입술을 느껴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날 여전히 사랑하나요?”
첫 만남에서처럼, 오르마즈의 짧은 물음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돌아온 나즈라의 대답은 훨씬 따뜻했다.
“그때보다 더 간절하게.”
나즈라가 오르마즈의 움푹 팬 여윈 뺨에 다시 입을 맞추었다. 뺨과 귓가, 목과 어깨를 계속 더듬는 그의 입술을 느끼며 오르마즈가 이를 갈았다.
“내가 저 앞에서 찢겨 죽어야 한다면 어쩌려고요?”
오르마즈가 창밖의 처형장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그는 임무에 실패하고 포로가 되었던 동료들의 끔찍한 죽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시체조차 제대로 건사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고문을 당했고, 내장이 발겨진 채 대로에 걸리거나 숨이 붙은 채로 굶주린 개들에게 먹이로 던져졌다.
“아니, 곧 그렇게 될 텐데.”
갑자기 울컥 해진 오르마즈가 몸을 비틀며 억지로 일어나려 했다. 나즈라가 깜짝 놀라며 오르마즈의 어깨를 살짝 내리눌렀다.
“움직이지 말아요. 아직 봉합이 덜 나았을 테니…….”
“어차피 죽을 걸 터지건 말건.”
오르마즈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세상일이란 건 모르는 거죠. 당신한테 이렇게 특별히 대하는 걸 보면 해치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건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가능하면.......”
나즈라는 잠시 말을 멈춘 채 자리에서 머뭇거렸다.
“교단에서 날 치료하라는 명령 말고 회유 공작하라는 지시까지 받았나요?”
오르마즈가 눈을 부릅뜨며 매섭게 노려보았다.
“당신의 그 잘난 대신관이 왜 ‘남극의 도살자’가 되었는지 알기나 해요?”
“이번엔 당신이 나한테 공작을 하는 건가요?”
나즈라의 조금은 핀잔 섞인 대꾸에 평소같았다면 발끈했을 오르마즈였지만 이상하게 지금만은 그렇지를 않았다.
입을 다물어버리리라 생각했던 나즈라는 오르마즈의 아픈 배를 쓰다듬어주며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잘못 알고 계세요. 알고 보면 정이 많은 분이시죠.”
“허.”
오르마즈는 아름다운 수평선과, 해안가, 그리고 그 한쪽에 기괴하게 펼쳐져있는 종교재판소 처형장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그곳에는 아직 덜 썩은 시체와, 타고 남은 재가 을씨년스럽게 군데군데 널려있었다. 바로 이틀 전에도 30여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줄줄이 교수형을 당해 죽는 광경을 오르마즈는 창밖으로 구경만 해야 했다.
“무슨 말씀 하시려는 것인지 알아요.”
오르마즈의 시선이 창밖을 향하고 있는 것을 눈치챈 나즈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분을 바라보는 당신과 내 시선은 어차피 다를 수밖에 없죠. 당신에겐 공포의 대상일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주변 사람들에게는 속정 깊은 지도자이고 다정한 아버지이시죠. 매번 권력다툼에 열을 올리던 마구스가문의 위계를 엄히 잡았고 시민들 고혈만 빨아먹던 부패한 콜로니 의회도 신성이 깊고 현명한 사람들로 정화시키셨죠.”
“그만 해요.”
오르마즈가 이를 드러내며 쏘아붙였다. 다시 차가워진 오르마즈의 표정에 당황한 나즈라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흐트러진 오르마즈의 단추를 채워주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오르마즈의 몸에 순간 힘이 바싹 들어갔다. 나즈라는 그런 오르마즈에게 진정하라며 손짓을 보냈다.
“부르셨습니까.”
“흐읍.”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머리를 깨끗이 삭발한 한 여자 성직자였다. 오르마즈가 그 성직자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자신이 임무에 실패한 그 끔찍한 순간을 다시 되새겨야 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오르마즈를 향해 그 여자가 반짝이는 두 개의 그레이오팔 눈동자에 묘한 눈웃음을 지었다. 바로 지난번 아프라시아 관 지하에서 괴이한 의식을 치르던 바로 그 ‘알몸의 여인’이었다.
당시 ‘의식’을 대신관의 첩이 되는 결혼식이라거나 인신공양의식 정도로 생각했던 오르마즈는 자신의 생각이 심각한 과대망상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생각보다 일찍 왔군.”
나즈라가 조금은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병상 옆의 의자를 가리키며 자신의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들었다. 여자 성직자가 오르마즈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밀리타입니다. 다하카르 교단 소속으로 정신과와 병리학분야 박사입니다.”
오르마즈가 침을 꿀꺽 삼켰다. 교단 의사라면 2개 분야에 학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지만 동시에 그건 상당한 지위에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의사 성직자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자 오르마즈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이런 성직자를 완전히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대신관 주치의 나즈라의 위치가 어느 정도 높은지 실감하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했다.
나즈라가 오르마즈의 뺨을 다정하게 짚으며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내가 종일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대신 여기 있는 밀리타가 곁에서 수발을 들 테니 나처럼 생각하고 편히 대하도록 해요.”
“설마 내가 정신병자라고 여기는 건가요?”
오르마즈가 퉁명스레 대답하자 나즈라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뒤에 선 ‘밀리타’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신과 의사라 생각하지 마시고 그저 병수발하는 간병인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나즈라 대신 밀리타가 냉큼 대답했다.
오르마즈는 지난번 그 ‘의식’에서 보이던 이 여자의 반쯤 광기어린 모습과 지금의 단정하고 이지적인 모습을 연결시키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난번 그 ‘의식’이 무엇이었는지도 의문이었다. 게다가 이 여자가 자신에게 윗사람처럼 대하는 이유 또한 알 수가 없었다.
오르마즈는 자신을 쳐다보는 여자의 번들거리는 시선에서 문득 불안함을 느꼈다.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서 오래 있어주지 못하겠군요.”
나즈라는 자신의 여자를 쳐다보는 그 의사의 끈적한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소까지 지으며 오르마즈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오르마즈의 입에서 가지 말고 같이 있어달라는 말이 빙빙 맴돌았지만 어쨌든 그는 포로 신분이었고, 다른 사람까지 있는 이 자리에서 그런 말은 적당치 않았다. 그는 병상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채 문을 나서는 나즈라의 뒷모습을 무기력하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좋은 분이시지요. 정도 많고.”
나즈라가 자리를 비워준 후, 밀리타가 오르마즈의 바이탈사인을 기록하며 다시금 미소를 흘렸다. 다른 성직자들처럼, 아니 오르마즈 자신처럼 이마 중간에는 사파이어로 만들어진 다하카르의 조각이 박혀 있었고 귀 밑에는 성직자를 상징하는 다하카르의 문장이 선명했다.
창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돌리려던 오르마즈는 여자의 입술이 귓가에 가까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날 위에서 저를 보고 계셨지요?”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움찔했던 오르마즈는 이 밀리타라는 여자의 눈동자를 잠시 응시했다.
“어떻던가요? 제가 매력적이던가요?”
자신과 똑같은 그레이오팔을 쳐다보는 오르마즈의 두 눈 사이에 바싹 주름이 잡혔다. 오르마즈는 자신이 제대로 움직일 수만 있었다면 이 여자 성직자의 목을 비틀어 쥐고 인질극이라도 벌였으리라 생각했지만 제 몸도 못 가누는 지금 상황에서는 쓸데없는 짓이었다.
“누군가 숨어서 보고 있다는 걸 생각하니 몸이 더 뜨거워지더군요.”
“그게 댁이었소?”
오르마즈가 짐짓 모른 척 차갑게 되물었다. 하지만 여자의 반응은 서늘한 미소뿐이었다.
“부인하지는 않으시는군요.”
오르마즈는 뺨을 만지는 여자의 손을 쳐내려 했지만 양 손목이 여전히 침대에 묶여있었다.
“밀리타 신관님. 잠시 부르십니다.”
누군가 문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오르마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신관’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이 여자가 최소한 서열 20위 이내의 고위급 성직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오르마즈가 알고 있는 다하카르 교단 20위 이내의 정식 ‘신관’ 명단에 이 여자는 없었다.
어쨌든 나름대로 긴장된 순간을 방해당한 ‘밀리타’가 짜증스런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는 오르마즈를 방에 혼자 놔둔 채 문 밖으로 사라졌다.
또다시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던 오르마즈는 이번에도 의사복장 차림의 누군가가 들어서는 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다.
“누구냐?”
오르마즈가 반사적으로 경계심을 보였지만 곧 상대의 특이한 외모에 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카파키 중령?”
막 들어온 의사가 급히 문을 잠그며 물었다. 이번에 들어온 남자는 중키에 은발, 마치 토끼처럼 붉은 눈동자만으로도 상대방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얼굴은 제법 동안인 것을 보아 특이한 은발과 저 괴상하게 소름끼치는 눈동자는 태어나며 물려받은 돌연변이 형질인 모양이었다. 머리를 기른 것을 보아 성직자는 아닌, 보통 의사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 짧은 와중에도 오르마즈는 조금 전 밀리타를 불러낸 목소리가 이 남자의 것과 어딘지 비슷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지도자께서 크게 실망하셨다.”
남자의 이 짧은 한 마디에 오르마즈의 몸이 순간 바싹 얼어붙었다. 어떻게 이곳까지 들여보냈는지는 모르지만, 지도자 파냐드가 보낸 사람임에 분명했다.
“날 제거하러 왔나.”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수액 파이프에 주사기를 가져갔다. 표적이 환자일 때 수액 파이프에 공기 중에서 바로 분해되는 휘발성 독극물을 주입하는 건 아무 흔적이나 증거도 남기지 않고 상대를 조용히 죽여 버릴 수 있는, 암살수인 오르마즈도 잘 알고 있는 깨끗한 방법이었다.
“……빨리 처리해.”
오르마즈는 아무 것도 못 본 척 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가 누군가에게 애원도 해 보고, 애타게 고대했던 바로 그 죽음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고대하던 순간을 맞이하면서도 그는 죽고 싶지는 않다는 가슴 저편의 본능과 스스로 씨름하고 있었다.
남자는 오르마즈의 혈관에 연결된 수액 파이프에 바늘을 재빨리 찌르려 했지만 손이 떨려서인지 첫 번째에는 전혀 엉뚱한 곳을 찌르고 말았다. 오르마즈는 이 남자가 제대로 훈련받은 암살수는 아닌 것 같다고 느꼈지만 암살수든 내부 첩자든 죽을 수만 있다면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더듬거리던 남자는 두 번째에야 그곳에 제대로 바늘을 꽂아 넣었다. 파이프 안으로 황금빛 독액이 번져나가는 것을 보며 오르마즈가 눈을 꽉 감았다.
그때, 누군가 문을 때려 부수듯 뛰쳐들어왔다.
“이 새끼가 감히!”
생전 처음 들어보는 거친 목소리를 내지르며 뛰어 들어온 건 조금 전 나갔던 나즈라와 2명의 헤네티 경비병들이었다.
“이런!”
깜짝 놀란 그 은발의 남자는 침대맡에 있던 육중한 금속제 스탠드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난입한 ‘적’들에게 휘두르는 대신 누워 있는 오르마즈의 이마 위로 치켜들었다.
“피해!”
나즈라의 애타는 고함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자신의 이마를 향해 꽂히는 스탠드 모서리를 내려다보던 오르마즈는 자신이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본능인지, 아니면 훈련받은 반사동작 때문인지 그는 고개를 급히 옆으로 돌려 내리꽂히는 스탠드를 피하고 말았다.
“아악!”
고개를 돌리던 오르마즈는 스탠드 옆쪽에 이마를 스치듯 얻어맞으며 무언가 아찔한 것을 느꼈다. 남자의 어마어마한 힘이 가해진 스탠드는 베개를 찢어내고 병상의 매트리스에까지 푹 박혔다. 오르마즈의 머리에 제대로 맞았다면 두개골을 완전히 박살내고도 남았을 엄청난 괴력이었다.
그새 오르마즈의 병상으로 몸을 날린 나즈라는 그의 혈관에 꽂혀 있던 바늘을 확 뽑아냈다. 조심스레 뽑지 못해서인지 혈관이 찢기며 피가 벌컥 솟구쳤지만 최소한 독액은 거의 스며들지 않은 상태였다. 그새 2명의 헤네티들이 달려들어 남자의 두 팔을 거칠게 붙들었다. 하지만 이 괴력의 사내는 악 소리를 지르며 대신관의 처소를 지키는 이 정예 헤네티 2명을 동시에 한쪽으로 튕겨내 버렸다.
“날 놔두고 가라고요!”
오르마즈가 이 혼란의 와중에도 자신의 팔뚝을 쥐고 급히 지혈부터 하려 하는 나즈라를 거칠게 밀어내려 했다. 했다. 이런 괴물 같은 사람은 그도 본 일이 없었다. 저런 괴력의 상대를 일개 의사인 나즈라가 당해낼 리가 없었다. 헤네티들을 떨쳐낸 그 남자의 우악스런 손이 오르마즈의 목을 덥석 붙들었다.
“이놈!”
피가 솟구치는 오르마즈의 팔을 놓고 벌떡 일어선 나즈라는 오르마즈의 목을 꺾으려는 이 남자의 턱을 한 손으로 꽉 움켜쥐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아읍!”
그 괴력의 남자는 턱을 잡힌 순간 온몸이 얼어붙은 듯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즈라의 매서운 갈색빛 눈동자를 올려보며 벌벌 떨기 시작했다. 나즈라는 한 손으로 이 남자의 목을 비틀어 천천히 바닥으로 내리눌렀다. 힘에서 밀린 것인지, 기세에서 눌린 것인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다 때려 부술 듯 날뛰던 이 은발의 남자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토끼눈처럼 시뻘겋던 남자의 눈동자가 회색빛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나즈라가 남자의 귀에 입술을 가져가며 굵고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누가 여기 들어오라고 했나, 아스탈.”
“하, 악…….”
남자는 바닥에 꿇어앉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즈라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차마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못했다.
“맙소사.”
그새 문 앞으로 달려온 ‘밀리타’가 방 안에 벌어진 난장판에 기겁을 하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나즈라의 살기어린 눈동자가 이번엔 그 여자 성직자에게로 향했다. 나즈라가 이를 드러내며 그를 노려보았다.
“너도 한패거리냐? 누가 자리를 비우랬나, 밀리타.”
“저, 절대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때, 나즈라의 손아귀에 잡혀 있던 아스탈이 더듬거리며 무어라 말하려 했다.
“미, 밀리타는…….”
“넌 닥쳐.”
나즈라의 주먹이 이 거친 남자의 뺨에 그대로 내리꽂혔다. 빡 하는 짧은 타격음이 울리며 턱이 부서진 아스탈이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다시 얼씬하면 더 이상의 용서는 없다. 끌어내.”
나즈라가 손을 털며 아스탈을 거칠게 차냈다. 바깥에 튕겨나 있던 두 명의 헤네티들이 쓰러진 이 남자를 질질 끌고나갔다.
“오르마즈? 오르! 오르!”
나즈라는 그제야 병상을 휙 돌아보았다. 머리를 다치고 많은 피를 잃은 오르마즈가 부서진 병상 위에서 몸을 떨며 신음하고 있었다. 나즈라의 갈라진 목소리가 이 작은 방을 째지듯 울렸다.
“젠장! 누구든 외과의사 데려와! 끌고 오든 잡아 오든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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