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74 회: 파트 9. 하나의 가지, 다른 색의 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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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토 역시 이트닌의 죽음을 확인했지만 공신의 죽음에 슬퍼하며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교단 헤네티들이다! 모두 공격해! 가디언에 맞먹는 자들이니 정규군들은 단독으로 맞서지 말고 가디언을 보조한다!”
카토가 칼끝을 고개 아래로 향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너희 군단장에게 연락해서 저지대에서 저놈들 퇴로를 차단하라고 해!”
카토가 베흔 곁에 있는 참모에게 고함을 버럭 질렀다.
“아, 알겠습니다.”
참모가 군단장 힐러와 연락을 하는 새, 카토는 베흔이 타고 올라온 말을 급히 집어타고 언덕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께 온 동맹군 가디언들도 군데군데 흩어져 있던 남부기병들의 빈 말을 재빨리 붙잡아 올라탔다.
근위대 가디언들과는 달리 카렐의 호위가디언은 특별히 추려 뽑은 상등급인데다가 워낙에 기마부대다보니 말을 모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언덕을 달려 올라온 헤네티들의 목표는 추격해 온 근위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동료들만 챙겨서 퇴각해! 빨리!”
야투 박사의 명령을 받은 그들은 베흔 일행 손에 죽은 동료 헤네티들의 시체 3구를 허겁지겁 챙겨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적을 뒤쫓던 카토는 저들이 왜 저리 ‘시체’에 집착하는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무언가 이상해.”
생각해보니 타르서스 별궁을 공격했던 헤네티들도 동료들의 시체를 남김없이 거둬갔고―다행히 사에나의 기지로 한 구는 빼돌릴 수 있었지만― 심지어 수나 마구스조차도 자신의 헤네티가 죽인 다른 헤네티의 시체를 재빨리 감추는 모습을 보였었다.
“놈들이 시체를 악착같이 거둬가는 게 무슨 목적이 있는 게 틀림없어! 시체를 진 놈들을 우선으로 잡아! 놈들은 석궁을 잘 쓰니 조심해라!”
카토가 허겁지겁 도망치는 헤네티들의 뒤를 쫓아 말에 속도를 붙였다. 그들 중 몇은 돌아다니던 말을 붙잡아 타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도보로 도망치는 중이었다.
“난 왼쪽에서 저놈을 쫓을 테니 넌 오른쪽에서 달아나는 저 늙은이를 쫓아!”
카토는 유난히 큰 검은 자루를 지고 가던 헤네티 한 명을 목표로 삼아 돌진했다. 자루가 무거운지 그 녀석만 동료들에 비해 조금 처지고 있었다. 그자는 자신이 쫓기는 것을 알면서도 등에 진 짐은 악착같이 내려놓지 않았다. 카토가 탄 말이 계속 거리를 좁혀오자 그자가 뒤를 흘끔 돌아보는 것 같았다.
“씨이! 귀찮게!”
녀석이 자루를 내던지며 뒤로 휙 돌아섰다. 이번에도 그자의 손에는 짧은 석궁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대 역시 그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으읍.”
방아쇠를 당기려던 헤네티가 움찔했다. 뒤를 쫓아오던 말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걸렸다!”
달리던 말에서 뛰어올라 자작나무 가지에 한 팔로 매달려 있던 카토가 표적을 잃고 머뭇거리던 헤네티를 향해 작은 손도끼를 힘껏 던졌다.
“이크!”
뒤늦게 방향을 읽은 헤네티는 나무를 향해 재빨리 방아쇠를 당겼지만 카토는 나무 뒤로 번개같이 숨어버렸다. 그 사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작은 도끼가 그 헤네티의 어깨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아악!”
위력적인 투척도끼에 어깨를 강타당한 헤네티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카토가 나무 위에서 바로 몸을 날려 쓰러진 헤네티의 가슴을 무릎으로 힘껏 강타했다.
“이, 이익…….”
가슴뼈가 부서진 헤네티가 몸부림을 치려했지만 카토가 재빨리 그자의 어깨를 누르고 급소인 관자놀이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맘만 먹으면 충분히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가능하다면 ‘헤네티 포로’를 하나쯤 잡는 것이 나중을 위해 나을 것 같았다.
“휴우.”
의식을 잃은 헤네티가 저항을 멈춘 듯 보이자 잔뜩 긴장했던 카토는 생각 외로 쉽게 포로를 잡은 데 안도하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는 포로의 손발을 묶기 위해 허리띠라도 풀려 했다.
“음?”
기절한 것처럼 보였던 헤네티의 손끝이 까딱거리는 것을 눈치챈 카토가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몸에 힘을 주었다. 그때, 무언가 번쩍 하며 불꽃이 그의 눈앞으로 확 솟구쳐 올랐다.
“이익!”
무서운 열기에 기겁을 한 카토가 얼른 뒤로 물러났지만 그의 바지와 왼쪽 소맷자락 역시 지직거리며 타들어가고 있었다. 당황한 카토가 얼른 바닥을 굴렀지만 불은 여전히 살아 그의 살갗을 태우고 있었다.
“뭐야!”
방염 처리된 특수한 군복이었지만 옷에 붙은 초록색 불꽃은 도무지 꺼지지를 않았다.
“뭡니까!”
뒤따라 달려온 근위대 가디언이 망토를 벗어 급히 그의 몸을 덮고 물을 뿌리며 한참을 두드린 후에야 이 끔찍한 불꽃은 비로소 사그러들었다. 그저 옮겨 붙은 불이었지만 카토의 팔과 얼굴, 다리도 속살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깊이 타들어가 있었다.
“제기랄! 무슨 이런 불이 다 있어!”
화끈거리는 고통을 참으며 고개를 든 카토는 눈앞에 펼쳐진 믿어지지 않는 광경에 입을 쩍 벌렸다.
“맙소사.”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헤네티가 엄청난 열기의 불꽃 속에서 어느새 잿더미가 되어 활활 타고 있었다. 사방을 휘감는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감히 접근할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카토는 상처의 고통도 잊은 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 광신도는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버린 것이었다.
“미친놈들이야……완전히 미친놈들이야.”
카토의 불을 꺼 준 가디언이 당혹스런 얼굴로 말했다.
“애당초 이렇게 훈련된 놈들 같습니다. 잘 꺼지지 않는 특수한 인화물질 같습니다.”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헤네티를 멍하니 쳐다보던 카토는 허겁지겁 할룩스를 들고 부하들에게 일렀다.
“사로잡을 때는 너무 접근하지 마라! 확실히 정신을 잃게 하던지 너무 접근해오면 욕심 부리지 말고 사살해라! 알았나!”
카토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골짜기 아래 어딘가에서 또다시 폭발하듯 불꽃이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기겁을 하고 일어서려던 카토는 다리의 화상 때문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부상자가 없나 살펴! 빨리!”
카토가 뒤따라오는 근위대 가디언들에게 악을 쓰며 불꽃 쪽을 가리켰다. 아니나 다를까, 마갑에 불꽃이 옮겨 붙으면서 말이 놀라 날뛰기 시작했고, 동맹군 가디언이 말 등에서 허겁지겁 뛰어내리고 있었다.
“제기랄!”
뛰어내린 가디언은 불타는 헤네티가 끌어안고 있던 시체 주머니를 창으로 급히 끄집어냈지만 덕택에 그의 몸에도 불이 옮겨 붙고 말았다. 근위대 병사들이 그의 몸과 시체 주머니에서 불을 끄려 했지만 이번에도 잘 되지 않았다.
“저기!”
가디언이 고함을 지르며 계곡 아래쪽을 가리켰다. 이번에도 또다시 불꽃이 확 솟구치면서 헤네티를 확인 사살하려 다가가던 근위대 가디언과 2명의 정규군 보병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는 모습이 보였다.
“동료들이 시체를 가져가지 못할 상황이라 저러는 건가.”
충격을 받은 카토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헤네티의 끔찍한 자살방법에 그들을 뒤쫓던 동맹군과 근위대가 놀라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도망치는 헤네티들과의 거리가 도리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근위대 지원군은 어떻게 된 거냐? 아래쪽에서 저놈들 진로를 막아줘야 할 것 아냐!”
말에 엉거주춤 기어오른 카토가 뒤쫓아온 4군단 참모에게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이번은 그 참모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었다.
“북쪽으로 돌아 접근하려다가 남부기병 무리와 조우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도망간 놈들인지, 아니면 그놈들을 도우러 오던 무리인지 모르겠지만 그놈들 때문에 지원군이 북동쪽에 발이 묶여 있습니다.”
“빌어먹을 남부 놈들은 여기저기서 다 속을 썩이네!”
카토가 답답함에 가슴을 쳤지만 일단은 여기서 할 수 있는 만큼 쫓는 수밖에 없었다. 근위대와 동맹군 가디언들이 도망치는 헤네티들의 뒤를 다급히 쫓았지만 헤네티들은 빼내 온 짐들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을 내버린 채 필사적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시체만은 절대 떨어뜨리지 않았다.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추격전은 어느새 자작나무 숲을 빠져나와 골짜기 아래 저지대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근위대 가디언이 달려와 그에게 알렸다.
“골짜기 밑에 웬 차들이 있습니다!”
“근위대 지원군인가?”
말을 몰고 본대의 뒤를 쫓던 카토는 급히 망원경을 들고 저지대쪽을 살폈다. 그의 말대로, 어둠 속에 3대 정도의 군용 수송차량이 보였다.
“제기랄, 근위대 차는 아니야.”
형태나 차종을 보아 남부연합군의 화물차가 확실했다. 차에서 누군가 손을 내밀며 언덕 쪽에 대고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빌어먹을, 저놈들 패거리야.”
카토의 얼굴에 긴장감이 번졌다.
“남부에도 저놈들 프락치가 있는 건가?”
근위대에서 도망쳐 나온 이놈들처럼, 남부에도 이미 교단 세력이 손을 뻗치고 있었다면 황제의 말대로 지금의 상황 모두를 교단이 꾸몄다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사이, 제일 선두에서 도망친 늙은 신관에 제일 먼저 말을 버리고 차에 올랐다.
“근위대 지원군은! 이대로는 못 잡는다고!”
카토가 4군단 참모에게 다시 물었지만 지원군들과 막 할룩스로 통화를 하고 난 그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지원군을 저지하고 있는 것도 아무래도 남부기병 차림새를 한 사교도 놈들 같습니다. 지원군에도 피해가 막심하다고 합니다.”
카토와 근위대로서는 차례차례 차에 올라 도망치는 헤네티의 뒷모습을 허탈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목표대로 베흔을 구했고, 근위대 4군단과 연락하는 것도 성공했으니 그의 임무도 어쨌든 실패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불꽃을 뿜으며 타고 있는 3구나 되는 시체들에서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저 괴물 같은 존재들과의 조우가 이것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쫓아와서 저것들은 건졌네.”
카토는 불에 탄 헤네티가 떨어뜨린 2개의 검은 시체자루와, 저들이 군데군데 버려두고 도망간 박물관 소장품 자루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시체자루 중 하나는 반쯤 불에 탄 상태였지만 헤네티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될 터였다.
“대장, 쉬시지 않고…….”
4군단 참모의 목소리에 카토가 뒤를 돌아보았다. 몸에 두툼한 담요를 쓰고 발열팩을 껴안은 베흔이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많이 약해져 있었지만 눈에 이글거리는 무서운 살기와 복수심, 수백 년간 제국을 휘어잡아 온 강인한 권위와 위엄은 여전히 그의 얼굴에 깃들어 있었다.
“꼴 좋군.”
재만 남은 시체를 보며 베흔이 내뱉은 첫 마디는 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카토가 그에게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려 했다.
“포로로 삼았다면 더 좋았을텐데…….”
“안 뒈졌어도 내가 이 자리에서 태워 죽였을 테니.”
베흔의 차가운 대답에 카토는 온몸에 냉기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단순이 그의 잔혹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 새끼들을 잡아가서 무슨 소용이 있을 것 같나? 고문해서 정보라도 알아내게?”
베흔은 이 헤네티가 죽기 전 떨어뜨린 시체 주머니에 다가가 윗부분을 당겨 열었다.
“차라리 뒈진 놈이 다루기는 낫지.”
주머니를 확 벌리던 베흔이 순간 입술에 힘을 꽉 주었다. 뒤에서 안쪽을 함께 지켜보던 카토 역시 기겁을 하며 눈에 힘을 주었다.
“이게 도대체……누구냐?”
베흔이 뒤에 선 4군단 참모를 돌아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곳엔 베흔 자신의, 아니, 베흔과 똑같이 생긴 자의 시체가 아직 굳지도 않은 채 담겨 있었다. 바로 이번 혼란을 이끌어냈던 문제의 ‘베흔 시체’였다.
“야투 중랑장이 사역병들을 시켜 지하에서 가져왔다는 것밖에는 모릅니다.”
참모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시체를 멍하니 쳐다보던 베흔은 사람들 모두가 왜 그의 죽음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죽은 시체는 베흔 자신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시체에는 심지어 지난 황궁에서의 싸움에서 입은 자잘한 부상의 흔적까지도 똑같이 남아있었다.
“DNA검사까지 했다고 했나?”
“예. 군단 의무대에서 급한 대로 미토콘드리아와 Y염색체를 검사했는데 대장의 것과 일치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상염색체는 복제방지처리로 검사가 어려워서…….”
시체를 멍하니 쳐다보던 베흔의 시선은 자신의 목에 걸린 옛 캡슐로 천천히 움직였다. 생각해보니 동기 즈바크의 캡슐에는 세포가 든 튜브 2개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그의 캡슐은 텅 비어 있었다.
멍하니 앉아있던 베흔은 카토 쪽을 돌아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8개의 캡슐 상자는 너희가 가져갔나?”
“예. 우리 진영에서 안전하게 보관중입니다.”
“카렐……황제에게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철통같이 지키라고 알려라. 저놈들이 노리던 것이 그 상자들이었는지도 모르니.”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카토는 그제야 이 잔혹한 근위대장이 카렐을 처음으로 ‘황제’라고 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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