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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718화 (713/1,132)

< -- 718 회: 파트 10. 오팔에 핏빛이 드리울 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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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안에 있는 놈들 빨리 나와서 불부터 꺼!”

다급해진 아스탈은 베흔과 싸우고 있는 부하들을 일단 놔둔 채 허겁지겁 11번 창고 쪽으로 멀어져갔다. 베흔이 그를 쫓으려 했지만 ‘쌍둥이’가 휘두른 양손검이 머리 위를 붕 소리를 내며 스친 순간, 깜짝 놀라며 목이 제대로 붙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가긴 어딜 가냐!”

베흔 자신과 거의 비슷한 굵은 목소리가 쩌렁 하고 울렸다. 베흔이 재빨리 몸을 낮추며 어깨로 이 거구의 배를 힘껏 들이받았지만 어깨만 아플 뿐이었다. 적은 충격에 몇 발짝 물러났을 뿐 바로 칼을 휘두르며 반격을 가해왔다.

“이크!”

그자의 칼을 얼른 미끄러뜨린 베흔은 순간 어깨가 빠지는 것 같은 육중한 충격을 느꼈다.

“이 새끼, 힘 하나는…….”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난 베흔이 얼른 칼을 고쳐잡았지만 적은 자세를 가다듬을 새도 없이 바로 악 소리를 지르며 두 번째 공격을 해 왔다. 순간 기겁을 한 베흔이 옆에 있는 큰 통을 쓰러뜨려 굴리고는 재빨리 물러났지만 이 쌍둥이는 괴성을 지르며 통을 팔로 힘껏 후려쳐 옆으로 날려버렸다.

“저, 저 새끼 뭐야?”

그의 거친 반응에 베흔이 적이 당황했다. 사실 그는 잠깐 시간만 벌려는 속셈이었고, 통을 피하거나 뛰어넘어 다시 반격을 해 오리라 생각했던 참이었다. 하지만 저 녀석은 그런 ‘안전하고 정상적인’ 방법 대신, 통을 아예 박살을 내 버렸다.

“비겁하게 굴지 말고 제대로 덤벼 봐!”

쌍둥이 베흔이 악을 쓰며 다시 칼을 휘둘렀다. 그자의 무시무시한 일격을 받아낸 베흔은 한쪽으로 붕 날아가 벽에 부딪치고는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씨, 뭐 저 따위 놈이…….”

찢긴 팔을 붙들고 일어난 베흔은 일단 맞서지 않은 채 계속 뒤로 물러나며 상대를 살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자신보다 강한 카렐과 몇 번을 상대하고도 살아남으며 최소한 ‘상대의 상태’ 그리고 ‘도망쳐야 할 때’를 파악하는 능력만은 이제 확실히 몸에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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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도망만 치지 말라고!”

상대 베흔이 자꾸 물러나는 상대에게 버럭 화를 내며 다시 돌진해왔지만 베흔은 이번은 그의 공격을 받아내는 대신 옆으로 허겁지겁 몸을 피했다. 카렐과 싸울 때와 마찬가지로, 저런 놈과는 상대하는 것부터가 바보짓이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최소한 체력적으로는 강했지만 지나치리만큼 거칠었다. 단순히 힘 말고도 자신과 무언가 차이가 있음이 분명했다.

‘어려서 그런 거냐? 다른 이유가 있는 거냐?’

베흔은 지금까지의 상식 따위를 일단 접어두고 헤네티를 만들고, 다루어야 하는 교단 입장에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주인 입장에서 지금 존재하는 X, 그리고 자신의 ‘문제점’이 무언지를 머릿속에서 재빨리 따져보았다.

“덤비라니까!”

통을 박살낸 ‘쌍둥이’가 다시 악 소리를 지르며 베흔을 향해 검을 휘둘러왔다. 지금 밀리고 있는 쪽은 베흔이지만 이상하게 더 초조해 보이는 건 이 ‘쌍둥이’였다.

‘혹시…….’

베흔은 갑자기 등을 보이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아니나다를까, 또 다른 베흔이 고함을 지르며 그의 뒤를 쫓아왔다. 베흔의 걱정대로, 달음박질 역시 베흔보다 훨씬 빨랐고, 그자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이거나 끄고 쫓아와라!”

그리고는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 창고동 한쪽에 쌓여있는 폐지더미에 휙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얼른 돌아서며 쫓아오는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불이 문제’인 지금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그리고 자신이 우세라는 여유가 있다면 당연히 라이터부터 쳐 내고 쫓아와야 했지만 그자는 불 따위는 아예 돌아보지조차 않고 베흔만 노려보며 계속 달려들어왔다.

“이익!”

베흔은 그자기 휘두르는 일격에 또다시 밀려 뒤로 나동그라졌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넌 나한테는 안 되겠구나.”

베흔은 입에 머금은 피를 퉤 뱉어내며 또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쪽에서 2명의 헤네티와 어울려 힘겹게 싸우고 있던 부하 가디언에게 고함을 질렀다.

“상대 바꿔! 네가 이놈을 맡아라!”

“예?”

베흔의 엉뚱한 명령에 가디언이 크게 당황했다. 상등급 가디언인 그도 2명의 헤네티들과 악전고투하며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지만 저 ‘가짜 베흔’은 이 둘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강해 보였다. 뜬금없이 그런 상대를 맡으라고 하니 그로서도 막막했지만 일단 싸우던 헤네티들을 놔둔 채로 허겁지겁 도망쳤다.

도망쳐오던 베흔과 교차한 순간, 그의 짧은 한 마디가 들려왔다.

“저놈 내게만 집착한다.”

가디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끼가 될 테니 원거리 공격해.”

지시를 받은 가디언은 베흔을 쫓아 자신의 정면으로 달려오는 무시무시한 가짜 베흔과 잠시 맞섰다. 베흔만을 노리던 이 괴물도 느닷없는 방해물에 잠시 멈추어야 했다.

“비켜!”

그 가짜 베흔이 이 방해물에게 지르는 고함이 쩌렁쩌렁 공기를 울렸다.

“나나 쫓아 봐!”

짧게나마 시간을 번 가디언은 베흔이 자신을 뒤쫓던 2명의 헤네티들에게 달려드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이 가망 없는 대결을 포기하고 재빨리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베흔의 말대로, 이 가짜는 그를 뒤쫓는 대신 또다시 베흔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자신의 쌍둥이에게서 도망치던 베흔은 마주오는 2명의 헤네티들을 향해 칼을 똑바로 겨누며 이를 갈았다.

“젠장, 오르마즈 놈의 방법을 내가 쓰게 되다니.”

그의 뒤로 가짜 쌍둥이가 쫓아오고 있었지만 그는 일단 그자의 존재를 잊기로 했다.

“살을 주고 뼈를 얻는다더니!”

애당초 방어 따위를 포기하고 무작정 돌격한 베흔의 거대한 플람베르주가 꽝 하고 굉음을 내며 공중에 금빛 궤적을 그렸다. 제아무리 헤네티라고 해도 1대1 정면대결에서는 어차피 베흔에게 상대가 아니었다.

“아아악!”

베흔의 일격에 헤네티 한 명의 가슴이 대각선으로 조각나며 손쓸 새도 없이 두 토막이 나 버렸고, 측면으로 돌격해 온 또 다른 헤네티가 큰 공격으로 빈틈이 드러난 베흔에게 칼을 내질렀다.

“이크!”

베흔이 재빨리 몸을 돌렸지만 애당초 ‘급소만 피하자’였지 공격을 완전히 막는다는 건 포기한 상태였다. 그는 칼이 날아오는 같은 방향으로 등을 돌리며 킬을 힘껏 올려쳐 두 번째 적에게 일격을 가했다. 언젠가 오르마즈가 X 2명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썼던, 위험천만한 방법이었다.

“젠장!”

등과 날갯죽지, 뒷머리를 잇따라 베인 베흔이 움찔했지만 어쨌든 적의 칼은 치명적인 급소를 벗어나 공중으로 핏방울과 함께 휙 솟구쳤다. 그리고 동시에 베흔의 플람베르주가 적의 팔과 머리를 단번에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하, 악.”

헤네티 2명을 순식간에 쓰러뜨렸지만 그 대가로 중상을 입은 베흔이 칼을 짚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젠 그를 노리고 뒤에서 달려드는 ‘가짜베흔’의 시간이었다.

“끝이다!”

표적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을 본 그 쌍둥이는 이미 반쯤 이성을 잃었고, 다른 적이 뒤에 있다는 것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쓰러진 베흔을 향해 칼을 휘두르려던 그 가짜 베흔은 무언가 휘익 하며 바람 가르는 소리를 뒤늦게야 들을 수 있었다.

“으응?”

베흔에 대한 병적인 공격본능에 사로잡혀 있던 그 괴물은 그제야 처음으로 시선을 다른 곳에 돌렸다.

“읍!”

두개골이 깨지는 짧은 파열음 외에는 큰 비명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뒤로 도망갔던 가디언이 날린 손도끼가 이 쌍둥이 베흔의 왼쪽 이마에 깊숙이 박히며 그의 강철 같은 목을 뒤로 휙 꺾어놓았다.

“네놈은 그래서 안된다니까!”

쓰러져 있던 베흔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려 이 쌍둥이의 턱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다친 왼쪽 날갯죽지 때문에 저 무거운 양손검은 이제 더 이상 휘두를 수 없지만 아직 오른손과 다리만은 움직일 수 있었다. 둘은 서로 끌어안은 채 공중으로 붕 솟구쳤다가 흙바닥에 내리꽂혔다.

“우욱!”

머리가 쪼개진 채로 바닥에 동댕이쳐진 이 쌍둥이 베흔은 이 와중에도 바로 죽지 않고 베흔을 밀어내려 처절하게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를 깔아뭉갠 ‘쌍둥이 형’은 같은 유전자를 지닌 이 아우에게 자비나 동정심 따위를 품을 인간과는 애당초 거리가 멀었다.

베흔은 한손에 단검을 확 빼들며 이를 갈았다.

“네놈 생긴 거 더럽게 기분 나쁘거든!”

베흔은 이미 도끼가 박힌 그의 얼굴에 침을 퉤 뱉고는 단검으로 미간을 힘껏 내리찍었다. 그리고는 그것으로도 만족 못했는지 자신과 똑같이 생긴 그의 얼굴과 목을 미친 사람처럼 마구 찔러댔다.

“대장, 대장, 그만 해요.”

가디언이 베흔을 말리려 했지만 싸우고 있는 동안 억눌러두었던 적개심이 일시에 폭발하면서 이번엔 ‘진짜 베흔’이 괴물로 돌변해 있었다. 보다못한 가디언이 얼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가짜 베흔’의 시체에서 베흔을 힘껏 떼어냈다.

“씨이, 재수 없는 새끼, 파냐드 그년 때문에 내 꼴이 이게 뭐야, 씨발.”

베흔은 여전히 화가 안 풀린 듯 바닥에서 마구 발버둥을 치며 이 쌍둥이의 뭉개진 얼굴에 마구 흙을 뿌렸다. 가디언이 가져간 구급낭에서 응급 테이프를 꺼내 그의 등에 난 상처에 꾹 눌러 붙였다. 그때까지도 날뛰던 베흔은 상처의 아픔에 움찔거리며 비로소 조용해졌다.

“상처가 깊은데요. 왼팔은 못 쓰실 것 같습니다.”

“젠장, 알아, 그 정도는. 안 뒈진 게 다행이지.”

베흔이 다시 침을 퉤 뱉었다.

“그런데 저놈 도대체 뭐죠? 대장하고 똑같이 생기기만 했지만 뭔가 다른 것 같은데요?”

베흔이 끄응 하고 몸을 일으키며 조금 전 내려놓았던 칼을 도로 집었다.

“아무래도 헤네티들은 용도가 나뉘어 있는 것 같아.”

“예?”

“주인 입장에서 우리 가디언의 문제점이 뭔지 아나?”

“예?”

“아무리 죽어라 세뇌를 시키고 팔찌까지 채워놨어도 배신할 놈은 배신을 한다는 거야. 심지어 가끔은 복원해서 새끼까지 두기도 하지.”

베흔은 자신의 말에서 약간은 양심의 가책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죽인 ‘가짜 베흔’과 헤네티들의 시체를 안 보이는 구석에 급히 숨기며 말을 이었다.

“자살공격을 하는 좀비 새끼들은 전투력은 가디언보다 떨어져도 최소한 머리는 극히 정상이야. 그런데도 아스탈에게 비이성적으로 충성하는 건 종교적인 믿음도 믿음이지만 자신을 재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절대자이기 때문이지. 그놈들은 죽는다 해도 재생되면서 의식과 경험까지 계속 축적되니 지휘관이거나 경호원이거나 특수부대 뭐 그런 간부급 용도겠지.”

“그럼 지금 이 놈은요?”

가디언이 막 상자 뚜껑을 닫는 베흔을 도우며 다시 물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휘관감은 아냐. 어쩌면 일부러 염색체에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체력은 강하지만 극히 공격적이고 명령에만 광적으로 집착하는 가벼운 정신병자를 만들었을지도 모르지. 이놈들은 사고가 단순하니 배신을 아예 할 수가 없는 것이고.”

베흔이 머리에 손가락을 대고 빙빙 돌려보였다.

“게다가 염색체 돌연변이들은 대개 불임이거든. 막 찍어낼 소모품 병사로는 그만한 게 없지 않겠나.”

자신도 가지고 있는 X의 원래 용도가 고작 ‘소모품 병사’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내심 자존심이 상한 가디언이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그러니  머리 멀쩡하고 가끔 배신도 하고 통제가 어려운 우리 가디언들이 저놈들에게는 도리어 ‘불량품’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헤네티들의 시체를 치워놓은 베흔은 부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11번 창고로 급히 달려갔다. 아스탈이 이쪽으로 도망을 갔으니 그를 잡아내야 했다. 하지만 한쪽이 불타고 있는 11번 창고 부근에는 이곳 작업자들과 경비병, 소방대가 이미 버글거리고 있었고, 아스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많이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보았다.

“에너지 장벽이 꺼졌군.”

“아군이 바깥에서 파괴한 것일까요?”

“아니, 황제의 선발대는 에너지 장벽 파괴 장비는 아예 가져오지도 않는댔어. 수비군 쪽에서 껐던지 그 교단 끄나풀 보안국장 놈이 무단으로 끈 게 틀림없어. 선제공격을 하려나보지.”

베흔이 얼른 할룩스를 켰다. 그의 군용 할룩스에는 이제 본대와 연락이 가능하다고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는 본대와 아리아노에게 급히 암호전문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창고에 불이 붙어서 어쩔 수 없이 선제공격을 하려나보지. 좀비 시체들을 되살리려면 지금 몸뚱이가 죽어야 하니 여기가 다 타서 계획 전체가 어그러지기 전에 황제를 노리고 자살공격을 시작할 것 같다. 놈들이 서두를 테니 미리 본대에 알려야겠다.”

베흔의 대답에 가디언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막을 수 있을까요?”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니 그 똑똑한 양반이 알아서 하겠지.”

베흔이 걱정을 감추며 짐짓 냉담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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