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21 회: 파트 10. 오팔에 핏빛이 드리울 때. -- >
.
.
.
“저 앞에 크바르나 놈들입니다.”
“맞을지는 가 봐야 알지.”
“예?”
코런덤 여단장인 헤네티 X-1-1 ‘사카’는 옆에 선 참모의 물음에 눈가를 찡그렸을 뿐 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참모 역시 지나치리만큼 과묵한 이 사나이가 꼭 필요한 때 외에는 입을 열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크지 않은 키, 검은 눈동자와 머리칼의 이 남자는 여느 때처럼 굳게 팔짱을 낀 채 상대편 동맹군 진영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크바르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
“그럼 적 황제는…….”
“자존심이 있으니 깃발에서 멀리 있지는 않을 거다. 정통은 아니지만 그 고귀한 피가 어디 가겠나.”
참모는 여단장이 웬일로 말을 길게 한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그에게는 연설문을 읊는 만큼이나 긴 문장이었다.
“적 경기병은 중장기병대가 뚫어 줄 테고, 가디언들이 그 뒤의 보병들을 붙잡아놓으면 우리가 측면으로 파고들어 크바르나에게 돌진할 겁니다. 퇴로를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쉽고 단순하지요.”
“특임대는?”
“지시하신 대로 1중대와 함께 선봉에서 길을 뚫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특임대 대신 4중대가 마지막에 적 황제에게 돌격할 겁니다.”
“맘에 안 드는군.”
어지간해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 남자가 대놓고 싫다는 표현을 하자 참모들이 순간 당황했다.
“특임대와 1중대는 신체가 11, 12번 창고에 가 있어서 황제에게까지 돌격시킬 시간이 없습니다. 4중대도 믿음직하니 안심하십시오.”
“4중대 신체는?”
사카가 이번에도 짧게 물었다.
“5중대와 함께 아케메니안 궁 뒤뜰에 잘 ‘묻혀’ 있습니다.”
사카는 눈을 씰룩거렸을 뿐 무어라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아스탈에게서 가장 신임을 받는 충성스럽고 똑똑한 무장이었지만 지나치게 말이 없는 성격 때문에 ‘저놈하고는 말하기도 답답해 죽겠다’는 불평도 함께 듣고 있었다.
헤네티들이 평소에는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들이었지만 대장이 워낙에 말이 없다보니 필요한 때 먼저 떠들어야 하는 건 그보다 ‘덜 과묵한’ 아랫사람의 몫이었다.
“19번째 육체와도 이제 안녕이군요. 이번엔 꽤 오래 쓰셨죠?”
참모의 물음에 사카는 마주선 참모의 투구에 비치는 자신의 나이 든 얼굴을 문득 돌아보았다.
“18번째다.”
계급이 계급이다 보니 위험한 일에 직접 투입될 일이 없었고, 그의 이번 몸도 50년 정도를 사용한 것이었다. 비록 수명개조 이전 사람들보다 노화가 느리기는 했지만 지금 그의 몸은 그때로 치면 40살이 훌쩍 넘은 중년의 상태였다.
지금까지는 딱히 체력이 문제가 된 일은 없었지만 훈련시간에 젊은 몸의 부하들과 몸과 칼을 부딪치면서 그도 요즘은 부쩍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19번째 젊어진 몸으로 일어나시면 기분이 새로우시겠습니다. 대신관께서 최고로 좋은 몸을 준비해 두셨을 겁니다. 미녀들도 기다리고 있을 테고요.”
“그러시겠지.”
사카는 이젠 더 이상 못 보게 될 자신의 나이 들고 익숙한 모습에서 말없이 시선을 거두었다. 어차피 남는 육신이 없어야 하니 이번엔 여단장인 그 역시도 몸에 인화물질을 두르고 있었다.
초조한 얼굴의 코런덤 헤네티들은 서북쪽 저지대에 보이는 표적을 노려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1500명의 헤네티들이 준비를 마치기가 무섭게 전방의 중장기병대에서 진격 나팔이 울렸다. 평소라면 기세 싸움도 벌이고 한바탕 분위기를 잡은 후에 전투를 벌이겠지만 지금은 한가롭게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돌격!”
지휘관의 외침에 5백의 연합군 중장기병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앙과 동쪽에도 병력이 나와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그쪽 동맹군이 못 움직이게 견제하려는 의미일 뿐 공격할 태세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 임무는 전면의 적 경기병들을 흩어놓는 거다! 괜히 모험하지 말고 흩어지지 마라!”
지휘관들이 기병들의 역할을 상기시켰다. 그들의 역할은 그저 후미의 가디언들과 자살부대가 돌격할 수 있게 길을 뚫어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기병을 뒤따라 가디언들이, 그리고 제일 후미에서 온몸에 인화물질을 두르고 망토로 정체를 감춘 코런덤이 돌격을 시작했다.
“적이 온다!”
동맹군 최전방의 슬레이프니르 궁기병대를 이끌던 달리 플라칼 중랑장은 돌격해오는 남부 중장기병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중장갑으로 온몸을 감싸고 육중하게 전진해오는 저들은 이제 지긋지긋할 만큼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이번 싸움은 전과 달랐다. 저들의 목표는 황제 전방의 아군을 궤멸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그저 ‘쫓아내고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이전과는 달리 적도 잘 분산되어 집중사격은 별 의미가 없는, 까다로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적에게는 오르막에서 내려오는 지형적인 유리함까지 있었다.
거리가 적당히 가까워지자 달리는 ‘적과 절대 승부를 보려 하지 마라’는 황제의 명령을 떠올리며 고함을 질렀다.
“1격 발사!”
달리의 명령을 받은 궁기병들은 고지대인 성벽 쪽에서 내리막을 타고 무서운 기세로 돌격해오는 중장기병들을 향해 일제 사격을 퍼부었지만 이전과는 달리 적도 교묘하게 분산이 되어 있다보니 운 없는 몇 명을 낙마시킨 것이 전부였다.
“계속 돌격해! 놈들을 쫓아내라!”
남부 중장기병들 사이에서 장교와 사관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궁기병들이 재빨리 2격을 준비하는 새 적 기병들과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2격부터는 근거리에서 1대1로 맡아 쏘며 도망쳐!”
두 번째 사격이 공중에 포물선을 그렸고, 조금 전보다는 많은 남부기병들이 말에서 떨어졌지만 궁기병들은 이제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수가 없었다. 그들은 후방에서 대기 중인 가디언과 서부 보병대를 향해 물러나기 시작했다.
“조준사격!”
도망치는 궁기병들이 뒤를 쫓는 중장기병들을 사격했지만 워낙에 내리막이다 보니 뒤쫓는 중장기병들의 속도가 생각 외로 빨라 집중력이나 정확도는 크게 떨어졌다.
“젠장!”
상황이 생각보다 안 풀리자 달리가 욕을 내뱉었다. 경기병대는 남부중장기병의 채 1/4도 잡아내지 못했고 중장기병을 선두로 한 연합군은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황제가 있는 저지대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왜 하필 이런 곳에 와 계신 거야! 이젠 싸우지도 못하시면서!”
답답해진 달리는 지형상 불리한 저지대에 떡하니 들어앉아 이 상황을 우두커니 구경만 하고 있는 황제를 원망스레 쳐다보았다.
황제가 있는 곳은 얕은 개천 건너, 강과 바다가 만나는 삼각지 습지대의 작은 모래언덕 위였고, 당초 연합군이 ‘상륙 예상지’로 꼽았을 정도로 바다와도 가까웠다.
그렇다보니 아직 황제를 믿지 못한 몇몇 병사들이 ‘여차하면 배 타고 도망치시려는 모양’이라 수군거릴 정도였다.
“거창!”
기병대의 돌격을 마주한 서부경보병들이 장창을 일제히 앞으로 겨누었다. 북부보병 같은 정예병은 아니었지만 ‘발 빠른 다목적 부대’다보니 어느 상황에서도 적당히 써먹을 수 있는 색깔 없는 부대라는 게 강점이자 약점이었다. 기병을 상대로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만 애당초 견고한 부대는 아니었다.
“온다!”
땅을 울리는 중장기병들의 육중한 돌격에 그들의 표정에도 공포가 감돌았다. 궁기병들을 돌파한 남부 중장기병들은 잔뜩 겁에 질린 서부 보병대의 정면을 덮쳤다.
“그냥 부딪쳐!”
상대가 충분히 만만하다고 판단한 연합군 지휘관이 악을 썼다. 부러진 창, 운 없이 급소에 찔려 절명한 말과 기병들이 공중으로 튕겨 올랐고 말에 짓밟히고 들이받힌 보병들이 바닥을 뒹굴며 보병대 전면 2, 3열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막아! 더 이상 못 들어오게 막아!”
보병대 지휘관과 사관들이 악을 썼다. 명색이 훈련받은 정규군이었고, 경험 많은 병사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상황이었다. 다른 유명한 부대만큼 견고하지는 못해도 ‘얼마간만이라도’ 자리를 지킬 수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어차피 황제가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후미가 나가서 자리를 메워! 빨리! 가디언들은 어딨어!”
성한 병사들이 다친 동료들을 발로 밀어 뒤로 보내며 앞으로 몰려나와 급히 대오를 복구했다. 하지만 중장기병들의 뒤에는 더 무서운 적이 다가오고 있었다.
“근위대 가디언들이다!”
저들에 비하면 차라리 지금 상대하고 있는 기병들이 나았지만 경보병들도 믿을 구석에 없는 건 아니었다. 후미에 대기 중이던 동맹군 가디언들이 근위대 가디언의 접근에 발맞춰 재빨리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전 도망쳤던 궁기병대도 재빨리 돌아와 주변에서 지원사격을 시작했다.
- 위치를 사수하지 말고 조금씩 뒤로 퇴각해서 개천까지 물러나라 -
서부 보병대에 황제의 전문이 도착했다. 힘겹지만 자리를 사수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물러나라는, 그것도 개천을 등지고 배수진을 치라는 황제의 명령이 조금 의아했지만 일단은 명령대로 보병대가 한 발 두 발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궁기병대와 서부보병, 남부 중장기병과 가디언간의 혈전이 벌어지면서 동맹군 우군 전선이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정작 중군의 장갑보병대와 좌군의 남부보병대는 발바닥이 땅에 붙은 것처럼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이미 다른 연합군 부대가 대기 중이었고, 다른 모든 회전에서처럼 섣부른 움직임으로 약점을 노출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그 사이, 제일 후미의 코런덤 1500명은 위장 처리된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전투로 아수라장이 된 동맹군 우군과 중군 사이를 돌아 후미로 접근해가기 시작했다.
웬만한 중장기병에 맞먹는 어마어마하게 빠른 주력에 해가 지고 어둠까지 이들의 모습을 흐릿하게 만들었지만 어차피 투명인간이 아닌 한 가까이 있는 동맹군 장병들의 육안까지 속이기는 불가능했다.
“저기 다른 적들이 간다!”
몇몇 동맹군들은 용병들을 가리키며 무어라 소리만 질렀지만 그들은 전혀 아랑곳없이 동맹군 후미만 바라보고 계속 돌진했다. 퇴각과 생존을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이들로서는 적보다 몇 개의 패는 더 쥐고 유리한 룰로 시작하는 게임이었다. 그저 목표지점까지 갈 수만 있다면 끝이었다.
어차피 죽으려고 마음먹은 자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법이었다.
적이 후방으로 파고드는 모습에 당황한 궁기병과 몇몇 부대가 그들을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각 부대 지휘관들에게 황제의 짧은 명령이 하달되었다.
- 후방으로 들어오는 용병에게 접근하지 마라. 궁기병대도 사정거리 경계에서 사격만 해라. -
명령은 전문 형식이었고, 명령을 보냈다는 것을 뜻하며 황제기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아 황제가 몸소 보낸 전체 명령이 틀림없었다. 몇몇 지휘관들이 당황했지만 일단 명령이니 따라야만 했다. 궁기병들이 멀찍이에서 투창을 쏘았지만 기병에 맞먹을 정도로 발 빠른, 게다가 작은 표적인 헤네티들을 잡기는 어차피 역부족이었다.
이번 작전은 지금까지의 다른 공격과는 달리 황제가 도무지 ‘내막’을 밝히지 않아 지휘관들을 더더욱 의아하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카렐로서는 정보력이 우월한 교단을 상대로 어쩔 수 없이 택한 고육지책이었다.
“놈들이 왜 공격을 안 하지?”
동맹군의 반응에 당황한 건 코런덤을 이끄는 여단장 사카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면 적이 양쪽에서 몰려들며 전진을 저지해야 했지만 적은 진로를 그대로 열어 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좋아해야 마땅했지만 빨리 죽으라고 전방에 배치한 특무대와 1중대가 할 일을 잃고 더 초조해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들이 우리 계획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미심쩍다는 것을 눈치 챈 참모들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차마 ‘공격을 중단하고 상황을 살피자’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젠장, 시간이 없으니 중단할 수도 없고.”
사카가 검은 연기가 오르는 사오시안트 성벽 뒤를 돌아보며 이를 갈았다. 특히 지금쯤이면 이미 ‘죽어 다른 몸에서 깨어났어야 할’ 선봉의 특무대 병사들이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적이 계획을 알고 있든 아니든, 시간에 쫓기는 이들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별 수 없다. 특무대와 1중대는 왼쪽으로 빠져서 서부보병대 측면을 선제공격해라. 나머지 부대는 계속 적 황제를 노린다.”
다급해진 사카는 남부기병대, 가디언들과 한참 어울려 싸우고 있는 동맹군 서부보병대를 가리켰다.
“특무대, 1중대 좌측으로!”
중대장의 명령에 500여명의 헤네티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서부보병대 후미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좌측에 용병들이다!”
갑작스런 측면 돌격에 놀란 건 5천여 서부 경보병들이었다. 전면의 남부 중장기병, 근위대 가디언들과 싸우느라 악전고투하고 있던 그들에게 측면 공격까지 가해진 끔찍한 상황이었다.
“퇴각도 못 합니다! 뒤에 물입니다!”
조금 전, 황제의 직접 명령으로 물을 등지고 물러났던 이들로서는 더 물러날 곳도 없었다. 경보병인 이들로서는 측면이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었고 발이 푹푹 빠지는 개천변의 질척한 습지는 이들의 걸음을 더 더디게 붙들었다.
“굳이 이럴 필요까지 없었잖아!”
몇몇 고참병과 무장들이 엉뚱한 명령을 내린 황제를 원망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창으로만 싸우고 근접전을 벌이지 마라. 밀어붙이면 그냥 물로 물러나 줘라. -
황제의 두 번째 명령이 들어왔고, 검은 망토 차림의 적들도 코앞으로 쇄도해 들어왔다.
“맞서 싸우지 말고 막기만 해! 뒷사람이 앞사람 밀리지 않도록 어깨로 받치고!”
장교들의 명령에 보병들이 방패를 최대한 앞으로 내밀어서 측면으로 돌격해 오는 적들을 겨누었다. 검은 망토 차림의 용병들이 일제히 옷 속에서 무기를 뽑아들며 괴성과 함께 보병대 측면으로 달려들었다. 몇몇 병사들이 1회용 투창을 적 선두에 던졌지만 그들은 부상 따위는 전혀 아랑곳없이 눈을 부릅뜨고 몸을 날렸다.
“우악!”
방패도 없이 오직 칼만 뽑아든 특무대 헤네티들은 경보병들의 창과 방패를 박차고 대오 안으로 거칠게 뛰어들었다. 몇몇 견고한 열은 이들의 돌격을 버티어냈고, 몇몇 열은 뚫리며 우루루 무너져 내렸다. 500명이나 되는 헤네티들이 차례차례 대오와 충돌하면서 경보병대의 측면이 순식간이 붕괴되었다.
그때, 라인 한쪽에서 첫 번째 불꽃이 공중으로 튀며 주변의 병사 두셋을 함께 집어삼켰다. 뒤이어 여기저기서 폭발음과 함께 수십의 동맹군들이 불꽃에 휩싸였지만 축축한 습지이고, 많은 병사들이 창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던 덕분에 불꽃을 바로 뒤집어쓰는 최악의 경우만은 피할 수 있었다.
“뭐야! 이 새끼들!”
불꽃에 놀란 보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다급하고 초조한 헤네티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은 채 동맹군 사이에 뛰어들며 무조건 몸에 불부터 질렀다. 사방에서 적과 동맹군 보병들이 뒤엉킨 채 불에 타들어가고 있었고, 다른 곳에서도 무서운 기세로 불꽃이 솟구치며 피아의 병사들 모두를 집어삼켰다.
“굴러! 구르라고!”
헤네티의 바로 옆에 있던 불운한 병사들은 끔찍한 운명을 피할 수 없었지만 동료를 구하려다가, 혹은 옆에 있다가 운 없이 불이 옮겨 붙은 병사들이 놀라 젖은 바닥에 구르며 짙은 수증기와 살타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비록 습지 때문에 위력은 반감되었어도 주변에 있는 병사들 여럿을 함께 태워버리기는 충분했다.
“불이 잘 안 꺼집니다!”
“젠장, 안 꺼지면 물에라도 던져 넣으란 말이야!”
사방에서 병사, 사관들이 악을 썼지만 마른 땅과는 달리 최소한 다른 동료들이 꺼 주거나 질질 끌고 바로 뒤의 개천에 밀어 넣을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검은 연기와 짙은 수증기, 살점이 타는 악취가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경험 많은 사관들과 고참병들은 왜 유연하고 빠른 경보병을 배치했는지, 개천변 습지까지 물러난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맙소사, 완전히 미친 놈들이야!”
불꽃 속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충격과 고통 속에서 울부짖었다. 언뜻 보기에도 죽은 동맹군만 수백, 아니 어쩌면 천 단위가 넘어 보였고 부상자까지 합치면 서부 경보병대는 거의 절반 가까이가 쓰러진 듯 보였다. 이 정도면 궤멸이라도 해도 될 정도의 치명타였다.
하지만 당초 기대했던 만큼의 위력적인 첫 돌격은 아니었다. 이제 나머지 헤네티들에게는 황제가 이끄는 부대와의 두 번째 대결이 남아있었다.
+++++++++++++++++++++++++++++++++++++++++++++++++++++
추석연휴를 앞두고 있어 길게 한 번에 올립니다. ^^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The Iron Vein 개인지 구매사이트 : http://vein.zi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