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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723화 (718/1,132)

< -- 723 회: 파트 10. 오팔에 핏빛이 드리울 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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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동료들이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에 코런덤의 헤네티들이 움찔거렸지만 지체하는 건 적에게 더 좋은 표적이 되어 준다는 뜻이었다. 몇몇은 불이 붙은 채 계속 나아가려 버둥거렸지만 몇 발짝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나머지는 쓰러지는 동료들을 남겨둔 채 그 무시무시한 불의 벽에 달려가 지휘관의 명령대로 최대한 빨리 그 위를 뛰어넘으려 했다.

“이거 뭐야!”

선두에서 불의 벽을 뛰어넘은 헤네티가 경악을 하며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이곳까지 달려오며 ‘젖은’ 신발과 바지에 눈 깜짝할 새 불이 옮겨 붙어 이들의 몸을 태우고 있었다. 이곳까지 달려오면서 별 생각 없이 그대로 첨벙첨벙 건넌 웅덩이나 냇물들에 저들이 물 대신 강력한 인화물질을 채워놓았던 것이 분명했다.

“제기랄! 안 꺼져! 그냥 가!”

몸에 붙은 불은 최대한 빨리 돌진해야 할 헤네티들의 하체를 마비시키고 발목을 붙들었다. 몇몇은 악을 쓰고 계속 달리려 했지만 푸른 불꽃은 살아있는 괴물처럼 허리까지 기어올라 몸에 달고 있는 인화물질에 순식간에 옮겨 붙였다.

선봉인 2중대 중 적의 코앞에서 자살공격을 했어야 할 코런덤들 중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 채 허망하게 불에 쓰러지는 자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젠장! 계속 가!”

불이 안 옮겨 붙거나 아주 작게만 붙은 운 좋은 몇몇은 크바르나에게 악을 쓰고 돌진했지만 그 무모한 용기도 몸에 날아와 정확히 꽂히는 불 붙은 볼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래도 운도 좋고, 강단까지 있던 헤네티 십여 명이 어찌저찌 동맹군 진영까지 쇄도했지만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크바르나 역시 상대를 잘 아는 같은 헤네티였다.

“온다!”

정면으로 적을 마주하게 된 크바르나 병사들은 조금 전 벗어 바닥에 흘려놓았던 검은 망토를 확 뒤집어 안감의 은색이 드러나도록 재빨리 몸에 뒤집어썼다. 그들은 망토로 몸을 가리고는 돌격해오는 상대를 얼른 몸으로 저지했다.

“사격!”

방염재로 앞을 가린 상대에게 일단 저지당한 코런덤은 바로 집중 사격 대상이 되었다. 끝까지 돌격했던 자들마저 결국 불꽃 속에서 사그러지면서, 2중대의 이 무모한 돌격은 상대방에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못했다. 2중대 300명이 적의 앞까지 가 보지도 못한 채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맙소사.”

‘검은 사신’ 부대의 전과에 놀라고 당황한 건 적 뿐만이 아니었다. 황제에게 진행상황을 전달해 주던 제네르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잠시 하던 말을 잊고 말았다.

“명불허전이라더니……저런 부대가 있었나.”

“얼마나 저지했나.”

잠시 넋을 놓았던 제네르는 황제의 물음에 더듬더듬 대답했다.

“중앙으로 오던 선봉대는 거의 잡았지만 양측면과 중앙의 두 번째 부대가 그 뒤로 다시 접근하고 있습니다.”

카렐이 눈가를 잔뜩 찡그린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금 그의 시력으로는 주변의 명암과 큰 윤곽,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형상 정도 보이는 게 고작이다보니 전장의 세세한 전황은 순전히 제네르가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것에 의존해 머릿속에서 장기 말처럼 직접 그리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으로 접근하는 다른 소부대가 없는지도 살펴라.”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제네르로서는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가디언 5명 정도에게 주변과 후방을 정찰하라고 눈짓했지만 적의 기세가 아직 살아있는 상황이니 황제 주변에서 그 이상 병력을 내보내는 건 위험할 듯 보였다.

2중대는 실패했지만, 전원이 간부로 키워진 만큼, 코런덤은 앞 부대의 실패를 반복할 미련한 부대가 아니었다.

“정지한다. 모두 엎드려!”

위기를 절감한 각 단위부대장의 명령으로, 그들은 일제히 바닥에 엎드리며 일단 돌격을 중단했다. 그들의 머리 위로 크바르나의 사격이 쏟아졌지만 2중대처럼 돌격하다가 몰살당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통을 뒤로 돌려 메고 신발을 벗어라. 크바르나 놈들과 접근전을 벌여라.”

그들의 할룩스로 지휘관 사카 여단장의 침착한 지시가 내려왔다.

“너희가 싸울 동안 우리가 뒤에서 불로 덮치겠다.”

사카의 임기응변에 6백 조금 넘는 헤네티들이 재빨리 인화물질 통을 등으로 옮기고 신발도 벗어 내던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 순간이 약점이 노출되는 타이밍이었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손에 석궁을, 한 손에 방패 대신 망토를 쥔 크바르나 헤네티 5백여 명이 일제히 악 소리를 지르며 불의 벽을 뛰어넘어 이들에게 먼저 달려들어왔다.

“적이 내려온다! 전열은 일어나서 적들을 막아!”

장비를 바꾸던 병사들이 허겁지겁 일어나 크바르나를 막으려 했지만 그런 그들의 얼굴 혹은 가슴에 석궁의 볼트가 명중하며 그대로 뒤로 나동그라졌다. 아직 미처 인화물질을 벗지 못한 병사들은 그대로 불에 휩싸이기도 했고, 몇몇은 볼트에 맞은 채로 저항하려 했다.

“놈들이 불을 못 붙이게 일격에 죽여!”

몸소 앞장서 달려 나온 아샤드 경이 볼트에 맞아 휘청거리는 코런덤의 목을 단숨에 공중으로 날려버리며 쩌렁쩌렁 고함을 질렀다. 그때, 옆에서 불꽃이 이는 것을 느낀 아샤드 경은 들고 있던 망토로 막 불타오르려는 시체를 확 덮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적에게 시체는 주지 마라!”

무참하게 무너지는 전열에 당황한 코런덤의 사관과 장교들이 목이 터져라 악을 썼다. 여단장의 명령대로, 일단 접근전을 벌이게 된 건 사실이었지만 전세는 압도적이었다. 인화물질을 진 코런덤은 몸이 무거웠고, 무장도 빈약했다. 이들의 당초 목적은 인간폭탄이 되려 온 것이었지 이렇게 접근전을 벌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모래언덕의 불의 벽을 등지고 싸우는 이 처절한 접근전은 애당초 크바르나의 압승이 예상된 것이었다.

모래언덕 남쪽에서 크바르나가 코런덤을 무참히 도륙하고 있는 동안, 50여명을 거느린 여단장 사카는 모래언덕 북쪽을 빙 돌아 카렐이 있는 곳으로 소리 없이 접근해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잘 풀리는군.”

사카의 엉뚱한 한 마디에 조금 놀란 부관이 새삼 전장을 돌아보았다.

“서, 설마……일부러 본대를 미끼로 내 주신 겁니까? 자리에서 장비를 바꾸라고 해서요?”

사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동맹군 입장에서는 자살공격대 본대를 차단했으니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사카의 입장에서는 본대가 일부러 약점을 보이게 해서 크바르나를 황제에게서 멀리 끌어냈으니 그것으로도 성공이었다.

이것이 아니어도 어차피 모두 죽어야 할 병력이었다.

“저 불이 지금 우리에게 나쁜 건 아니다.”

사카의 짧은 말을 ‘해석’해야 하는 건 이번에도 아랫사람들 몫이었다.

“하긴, 저것 덕분에 우리가 안 걸리겠군요.”

크바르나가 질러놓은 불 때문에 전면의 자살공격이 차단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짙은 연기 때문에 언덕 위에 있는 적의 시야가 크게 제한되어 있었고, 달도 없는 잔뜩 흐린 밤하늘은 이들을 완벽히 가려주고 있었다. 덕분에 사카 일행이 지휘부에 꽤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적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경기병들 몇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눈을 피해 어느 정도까지는 충분히 접근할 수 있을 듯 보였다. 그들 뒤로 창을 든 중장기병들이 20여기 있고, 가디언과 에키트 족 전사들 50여명이 황제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검은 위장포로 온몸을 가린 50여명의 사카 일행은 양쪽 두 갈래로 나뉘어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모래언덕을 살금살금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 뒤쪽이라 불이 안 붙은 곳도 있었지만 사카는 일부러 불이 있는 쪽으로 접근해갔다.

동맹군 지휘부의 관심은 온통 정면에서 도륙당하는 병력에만 쏠려 있고, 처음의 인화물질을 그대로 두른 이들 중 단 몇이라도 지휘부 내에 파고들 수만 있다면 동맹군에 치명타를 줄 수 있을 터였다.

그때, 제네르의 명령으로 망원경을 들고 후방에 나와 주변을 살피던 정찰 가디언들이 불꽃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형상을 발견했다.

“7시 방향! 적이다!!!”

불꽃에 접근하는 정체불명의 형상이 적이라는 것을 발견한 가디언이 큰 고함소리로 황제 주변 지휘부를 뒤흔들었다.

“그냥 돌격해.”

기대보다 일찍 들통나자 사카가 얼굴을 찡그렸지만 어차피 크바르나는 다른 곳에 가 있고, 적에게 충분히 가까워진 후였다. 여단장의 명령을 받은 50여명의 코런덤 헤네티가 지휘부의 북서와 북동 양쪽에서 맨발로 불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 동맹군 지휘부로 바로 돌격해 들어갔다.

“중앙에 접근 못 하게 해!”

발 빠른 중장기병들이 제일 먼저 나와 이들을 맞았지만 상대는 그냥 보병이 아니었다. 선두에 선 헤네티들은 돌격해오는 기병들의 말 머리를 향해 손도끼를 뽑아 힘껏 던졌다. 헤네티들을 직접 상대해 본 일 없는 기병들은 이들의 위력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우앗!”

가디언에 못지않은 위력으로 바람을 가르고 날아든 도끼는 말을 보호하는 마갑의 존재를 비웃듯 말 머리를 단번에 두 쪽으로 갈라놓고 뒤에 있던 주인들의 가슴까지 덮쳤다. 흉갑, 혹은 가슴이 통째로 쪼개어진 기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발 뒤로 곤두박질쳤지만 헤네티들은 그들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목표는 하나다. 집중력을 잃지 마라.”

여단장 사카의 차갑고도 단호한 지시가 돌격하는 헤네티들이 지나치게 흥분해 휩쓸리는 것을 막았다. 그들 앞에는 당황한 가디언과 보병들이 황제와의 사이에 황급히 벽을 쌓으려 하고 있었다.

“폐하, 피하십시오!”

제네르가 황제의 말고삐를 대신 잡고 반대편으로 물러나려 했지만 적들은 양쪽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카렐이 쉰 목소리로 공기를 울렸다.

“밀집하지 마라! 원거리에서 잡아!”

앞을 잘 보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고 있었다. 달려드는 적과 맞서 싸울 수만 있다면 만만하게 물리칠 숫자였지만 문제는 저들과 칼을 맞대고 싸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도끼나 단검 던져!”

여기서 그나마 경험이 있는 카토가 제일 먼저 허리춤에서 도끼를 뽑아 헤네티 중 한 명의 머리를 겨누고 던졌다. 공중을 돌며 날아간 도끼가 딱 소리를 내며 헤네티의 머리와 골을 완전히 흩어놓았지만 그 와중에도 이 괴물은 바로 쓰러지지 않고 휘청휘청 몇 걸음을 더 다가오고서야 바닥에 쓰러지며 거대한 불길에 확 휩싸였다.

“괴물 새끼들 아냐!”

도끼를 잘 다루는 에키트 족과 가디언들이 주춤주춤 물러나며 가지고 있던 작은 무기라는 무기를 모조리 던졌지만 급소에 맞거나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기 전까지는 이 괴물들은 쉽사리 쓰러져 주지도 않았다.

“왜 저렇게 안 죽어!”

다급해진 제네르가 악을 썼다. 말 그대로, 좀비처럼 피를 뚝뚝 흘리며 계속 접근해오는 그들의 끔찍한 모습에 지휘부가 경악했다. 하나 둘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악!”

결국 몸에 4개나 되는 도끼가 박힌 채로 다가온 헤네티 한 명이 2명의 에키트 족 전사를 몸을 확 덮치면서 지휘부는 일순간 혼란에 빠져들었다. 뒤이어 불길에 휩싸인 전사들의 비명소리가 주변을 울렸지만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었다.

“젠장!”

제네르가 옆에서 타고 있는 긴 횃불을 번쩍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이미 부상을 입고 가슴의 인화물질 통이 깨져 범벅이 된 헤네티에게 바로 돌진했다.

“이 재수 없는 새끼들!”

최대한의 속도를 받은 순간, 제네르가 창처럼 휘두른 횃불이 헤네티의 가슴에 명중하며 불꽃을 사방으로 튀었다. 헤네티가 무기를 들어 제네르를 공격하려 했지만 그 순간 불꽃이 확 튀어 오르며 그자의 몸을 집어삼켰다.

“몸통에 부상을 입히고 나서 불로 공격해!”

이번에도 임기응변을 발휘한 제네르가 무시무시한 불길에 놀란 말을 급히 뒤로 돌리며 부하들에게 손을 저었다.

“상관없다. 계속 나가라.”

운 없는 헤네티들 몇이 다시 불길에 휩싸였지만 이미 헤네티들은 지휘부 깊숙이까지 들어와 있었다. 살아남은 헤네티들이 남아있는 에키트 보병들과 가디언에게 계속 달려들면서 일순간 지휘부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황제 카렐과 옆에 선 ‘백마를 탄 사람’ 이 제일 마지막에서 달려오던 사카와 2명의 헤네티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걸렸다!”

사카는 검은 시알피에 올라 있는 황제를 바로 알아보았다.

“더러운 가짜의 피에 저주를 주마!”

사카는 한 손에 짧은 검을 뽑아들고 거친 고함과 함께 황제에게로 돌진했다. 그때, 그 흰 망토의 사람이 느닷없이 앞으로 나서며 망토의 후드를 확 벗었다.

“이놈들! 너희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 아나!”

언덕을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에 헤네티들의 발걸음이 일순간 얼어붙었다.

“엉?”

무심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올려보았던 사카는 아차 싶었다.

“쳐, 쳐다보지 마라…….”

사카가 입으로는 중얼거렸지만 그 역시도 수나 마구스의 검은 눈동자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의 옆에서 함께 돌격하던 헤네티들이 다리가 꺾이며 자리에 주저앉았지만 사카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수나를 계속 노려보았다.

“굴복하지 말라니까.”

사카는 옆에서 쓰러져 버둥거리는 부하들을 의식하며 팔과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그리고 관록으로 주름 진 눈가에 더 힘을 주어 자신의 의식을 무섭게 빨아들이는 저 무시무시한 마구스를 노려보았다.

“배은망덕한 놈, 널 만든 게 누구냐?”

상대가 계속 저항하자 수나가 이를 드러내며 그에게 위협적으로 말을 몰아 다가갔다. 하지만 사카 역시 질세라 이 무서운 상대를 노려보며 굳어가는 근육에 필사적으로 힘을 넣었다.

“관심 없다!”

사카가 갑자기 비명처럼 고함을 지르며 쥐고 있던 칼을 힘껏 던졌다.

“앗!”

수나는 이 사나이에게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사카가 던진 큰 칼은 공중을 빙빙 돌아 수나가 탄 백마의 목을 도려내고 그의 오른쪽 팔과 가슴을 덮쳤다. 수나는 목이 잘려 쓰러지는 말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사카는 나머지 칼을 뽑아들며 어깨 아래가 통째로 잘린 채 모래밭에 쓰러진 수나에게 바로 돌진했다.

“내겐 오직 한 분 뿐이다!”

평소의 냉정함까지 모두 잃어버린 채 괴물처럼 악을 쓰며 돌진하던 그는 갑자기 눈앞에서 무언가 번쩍 하는 것을 느꼈다.

“네 잘난 주인은 중간에 임무를 잊어버리지 말라고도 안 가르쳤더냐.”

사람의 것인가 싶은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방금 전 그의 옆을 스치고 지나간 검은 말이 또각거리며 옆으로 돌아서는 소리가 들렸다. 사카는 쇄골 옆에 말뚝처럼 깊숙이 박힌 불붙은 횃불 자루를 움켜쥐었지만 뽑아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사카는 멍한 눈으로 검은 말 쪽을 돌아보았다. 반쯤 벗겨진 검은 망토 후드 안쪽으로 잘 보이지도 않을 흐릿한 그레이오팔 눈동자가 그를 향하고 있었다. 꺾인 나무자루 따위로 갑옷과 사람의 몸을 단번에 관통할 정도의 괴력을 가진 건 저 사람뿐이었다.

“감히 황제인 짐의 앞에서 망발을 지껄인 대가다.”

나무의 불꽃이 어깨와 가슴의 인화물질에 옮겨 붙으면서 사카의 늙은 몸이 뜨거운 불길에 휩싸였다. 사카는 고작 나무막대 하나에 자신이 못 움직인 것이 나이든 몸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다시 받게 될 더 젊고 강한 새 몸을 생각하며 이 최후를 기뻐하기로 했다.

“곧 나를 다시 볼 거다.”

사카가 불꽃 너머 황제를 저주했다. 그리고 주변에 흩어진 다른 코런덤들의 시체처럼 한 줌의 재로 조금씩 변해갔다. 1500명은 이렇게 모두 죽었지만, 끝은 아니었다. 더 이상 자살공격만 못 할 뿐, 그저 싸움터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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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중으로 개인지 2부 5,6권 출판공지가 있을 예정입니다. 원래 9월중에 하려 했는데 사정으로 며칠 늦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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