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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730화 (725/1,132)

< -- 730 회: 파트 10. 오팔에 핏빛이 드리울 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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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구름다리 위에 선 코리온은 다른 출구가 없는지를 재빨리 살폈지만 따로 눈에 띄지 않았다.

거대한 극장처럼 생긴 에아 신전은 깊은 수로를 경계로 널찍한 ‘청중석’ 부분과 극장 무대만한 ‘제단’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고, 이 구름다리는 양쪽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청중석 쪽’ 출구에는 가디언 2명이 있지만 작업자들이 하나 둘 모이는 모습이 영 심상치 않았다.

경비부대에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을 보낸 코리온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얼마 전 황제와 함께 잠깐 가 보았던 카타콤베 입구가 들어왔다. 입구는 단단한 새 보안출입문을 달기 위해 한창 공사 중에 있었다.

황제는 ‘온 김에 둘이 안에 함께 들어가 보자’고 말했었지만 코리온은 묘한 거부감―혹은 황제와 단둘이 저런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터였다.

“따라와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코리온은 이곳 공사장을 둘러보는 척 루토를 비롯한 가디언들과 함께 제단 쪽으로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곳의 현장 사무소 격인 제단 쪽에는 서너 명의 엔지니어들이 있었지만 청중석 쪽에 비해서는 어쨌든 적이 적은 것이 사실이었다.

“잠깐 이리로들 모이게나.”

코리온은 청중석 쪽에 있던 2명의 가디언, 그리고 다른 곳에서 현장을 감시하던 몇 명의 에키트 족 보병들을 손짓해 불렀다. 한 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저들을 저 위험한 곳에 두느니 일찌감치 곁에 불러들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제게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코리온이 황후 아메스를 가까이 잡아끌었다. 이들이 구름다리를 건너 제단 쪽으로 가는 모습에 100명이 넘는 이곳 작업자들이 일제히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수로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군.”

코리온의 말에 루토가 바로 그의 뜻을 깨달았다. 물이 빠진 수로는 폭도 넓은데다가 깊이는 15척(4.5m)이나 되니 다른 장비가 없는 한 건너기는 불가능했다. 물이 빠진 수로 밑에는 거대한 파이프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물을 바깥의 욱리하로 빼내고 있었다.

“같이 따라가야 하지 않나.”

루토는 사역대 장교의 뒷덜미에 바싹 붙은 채 그를 제단 쪽으로 위협적으로 밀어냈다. 그새, 출구에서 황급히 달려온 2명의 가디언과 8명의 에키트 전사들이 합류해 이 작은 구름다리를 재빨리 막아섰다.

작업자들을 떼어놓은 새, 가디언 한 명이 카타콤베 앞으로 달려가 문을 열려 했지만 단단한 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도록 문고리에 비밀번호와 열쇠로 2중으로 잠긴 견고한 잠금장치가 되어 있었다.

“비밀번호가 뭐냐?”

루토가 조금 전 붙잡은 사역대 장교의 허리띠에서 열쇠꾸러미를 빼앗으며 작지만 위협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장교가 눈동자를 살짝 움직여 루토를 돌아보았다. 조금씩 가늘어지는 그자의 기이한 눈동자에 이 잔혹한 가디언의 표정도 조금씩 굳어갔다.

“비밀번호가 뭐냐고?”

그 장교가 갑자기 입가에 활짝 웃음을 지었다.

“못 말한다면요?”

“뭐?”

순간, 이 장교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번쩍 빼들고 루토에게 휘둘렀다.

“이놈들이 달아나려 한다!!!”

신전에 흐르던 팽팽한 긴장감은 장교의 고함과 동시에 우르르 무너져 버렸다. 작업자들은 일제히 무기를 빼들고 일부는 출입문으로, 일부는 구름다리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학장님과 황후 폐하를 지켜!”

가디언들이 재빨리 스크럼을 짜고 구름다리를 막아섰고, 에키트 전사들도 방패를 들고 코리온과 황후, 슈벨 부총리의 앞을 막아섰다. 제단 위에 있던 엔지니어들이 숨겨놓았던 석궁을 빼들려 했지만 먼저 달려든 가디언과 에키트 전사의 도끼에 머리가 쪼개지며 맥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새끼가 감히!”

격분한 루토가 저항을 하려 든 사역대 장교를 단칼에 죽여 버리려 했지만 코리온이 그의 손목을 얼른 붙들었다.

“내게 맡겨라.”

코리온이 장교의 목을 덥석 붙들고는 그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당장 이 문 열어라.”

트라카의 무서운 눈동자를 코앞에서 마주한 장교가 악을 쓰며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코리온이 그자의 턱을 붙들고 억지로 자신에게 돌려놓았다.

“당장 열라고 했다.”

눈빛과 함께 무섭게 이글거리는 코리온의 압박에 장교가 빠득 이를 갈며 저항했다. 그 사이, 사방의 헤네티들이 날린 볼트가 따닥 소리를 내며 코리온 일행을 보호하는 전사들의 방패를 때렸다.

“공격해서 가디언들을 무너뜨려!”

광신도들이 구름다리를 건너 우루루 몰려들며 가디언들의 견고한 스크럼에 몸을 날렸지만 그들의 필사적인 희생도 상대의 무지막지한 전투력 앞에서는 별 소용이 없었다. 처음 달려들었던 십여 명은 채 칼도 휘둘러보지 못한 채 못 몸이 토막 나 쓰러지고 말았다.

“빨리 열지 못할까.”

다급한 마음에 힘이 잔뜩 들어간 코리온의 손에 핏줄이 온통 곤두섰다. 하지만 그때, 그 광신도 장교의 입에서 침인지 토사물인지가 피와 섞여 주르르 흘러나왔다.

“으읍.”

충격을 받은 코리온이 파르르 떨며 손을 떼었다. 입 속의 캡슐과 혀를 동시에 깨물어버린 장교는 그대로 숨이 끊어진 채 바닥에 축 늘어져버렸다.

“뭐 이런 놈들이!”

루토가 기겁을 하며 이 광신도의 시체를 차냈다. 맞는 열쇠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비밀번호를 모르니 소용이 없었다.

“또 온다!”

청중석 쪽에서 날아온 집중 사격에 뒤이어 또다시 수십 명이 몸으로 우루루 달려들며 가디언들을 몰아붙였다. 잠긴 문 때문에 코리온 일행은 카타콤베로 나가지 못한 채 제단 위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었다.

그때, 코리온의 할룩스에 사에나로부터 두 번째 메시지가 들어왔다.

- 에아 신전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계단에서 적들에게 차단당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돌파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도대체 언제 온다는 거야!”

마음이 급해진 루토는 옆에 뒹굴던 큰 작업용 해머를 들었다.

“젠장! 계속 몰려오니 차라리 부수겠습니다!”

루토는 해머로 문고리를 불꽃이 튕기도록 힘껏 후려지만 워낙에 굵고 견고한 문고리는 구석이 약간 찌그러진 것이 전부였다.

그는 망치를 양손으로 잡고 온 체중을 실어 몇 번이나 계속 내리찍었다.

“젠장! 좀 부서지라고!”

거구의 루토가 악을 쓰며 온 힘을 다해 수십 번 후려진 끝에 결국 끝까지 버티던 문고리가 불꽃을 튕기며 날아갔다.

“됐다!”

루토가 힘으로 문을 밀어 열려는 순간, 지금껏 그가 기를 쓰며 열려 했던 문이 갑자기 카타콤베 안에서 저절로 확 열렸다.

“엉?”

멍한 표정의 루토는 안에서 문을 연 자의 얼굴과 딱 마주쳤다. 상대는 마찬가지로 당황한 얼굴이었고 화려한 투구에 낯선 형태의 진줏빛 갑옷을 걸친 중키의 여자였다.

“뭐냐?”

영문을 모르는 둘 사이에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지만 어차피 오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이구나!”

루토가 반사적으로 휙 휘두른 망치에 바에자의 어깨 갑옷과 투구 한쪽이 꽝 소리를 내고 박살이 나며 옆으로 날아가 버렸다. 특수 제작된 갑주와 옆에서 잡아당긴 헤네티가 아니었다면 머리가 통째로 부서졌을 판이었다.

“가디언입니다! 피하십시오!”

머리와 턱을 다친 바에자가 경호 헤네티에 밀려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설마 문 바로 앞에 적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바에자는 쓸데없는 객기를 부렸다가 저승 문 앞까지 갔다 온 셈이었다.

놀라고 당황했기는 루토도 마찬가지였다. 어두운 카타콤베 안쪽, 빛이 닿는 곳은 온통 적들로 꽉 차 있는 모습에 그는 온몸이 전율하는 것 같았다.

“여긴 틀렸습니다! 이 안에 적들이 버글거립니다! 누구 좀 여기로 좀 와서 도와줘!”

루토가 이 작은 문을 몸으로 막아섰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루토는 황궁 쪽에서 진입하는 청중석 쪽 출구가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저곳으로 들어와 주어야 할 사에나의 병력은 아직 감감무소식이었다.

“쉐너 중랑장은 도대체 언제 들어오는 거야!”

또다시 쏟아진 일제사격에 놀란 루토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이 혼란스런 와중에도 코리온은 바닥에서 무언가를 급히 챙기고 있었다.

“학장님, 뭐 하십니까?”

구완 슈벨 부총리가 엔지니어들의 시체와 흩어진 도면들을 뒤지는 코리온의 모습에 당혹스런 얼굴로 물었다. 코리온은 장교의 시체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해진 이곳 신전 도면을 꺼내 바닥에 펼쳐놓았다.

“우리가 모르는 출구라도 있을지 혹시 아느냐. 그러니…….”

코리온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도면을 살폈지만 그가 원하는 ‘다른 출구’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했다.

“이런.”

놀란 코리온이 눈을 크게 뜨며 입을 가렸다. 도면에는 이곳 에아 신전의 수로가 깊숙한 땅속 어딘가로 이어진 단면이 그려져 있었고, 그곳에서 물을 빼내는 파이프도 그려져 있었다.

“이놈들 황궁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구나…….”

“뭐라고요?”

옆에서 듣던 아메스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코리온이 펼쳐 보인 도면에는 황궁 지하, 기초 아래를 지나가는 거대한 지하수층이 나타나 있었다. 그 수맥은 이 에아 신전의 수로와 연결되어 있었고, 수로에 설치한 거대한 파이프가 지하에서 이 지하수층에서 물을 계속 빼내고 있었다.

“이 지하수층이 황궁의 기초를 받치고 있는데 이렇게 물을 빼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순간 아찔해진 아메스는 머리 위를 먼저 쳐다보았다. 지금 빠져나가고 있는 물은 무려 170층짜리의 이 괴물같은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초나 마찬가지였다. 구완 경이 루토에게 수로 아래의 파이프를 손짓했다.

“당장 펌프를 멈추고 수로를 다시 열어라. 욱리하 물이 들어와 지하수층을 다시 채울 수 있게 말이다.”

그때, 황궁 지상에서 내려오는 계단에서 무언가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반대편 청중석 쪽에서 붉은 망토를 두른 중무장 병사들이 광신도와 몇몇 헤네티들을 거칠게 발로 차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뒤로 사에나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같은 순간, 카타콤베 문을 막고 있는 가디언들 쪽에서도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물러나십시오!”

힘으로 몰아붙이며 끝도 없이 몰려나오는 헤네티들을 당해내지 못한 2명의 가디언들이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짓밟히고 난도질당하는 끔찍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루토는 어떻게 되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얼굴에 피를 뒤집어쓴 채 격분한 모습으로 제일 앞에서 달려나온 바에자가 수로 옆에 있는 코리온 일행을 발견했다. 방패를 든 에키트 보병들은 청중석 쪽에 몰려있었고, 뒤쪽은 미처 가리지 못한 상태였다.

“맙소사!”

헤네티들이 들고 있는 석궁에 놀란 구완 슈벨 부총리가 황후 아메스를 몸으로 가리며 테이블 뒤로 밀어붙였다. 순간 그의 뒤로 막 몰려나온 헤네티들의 일제사격이 쏟아졌다.

“악!”

등과 허리에 3발의 볼트를 맞은 구완 경이 온몸이 굳으며 바닥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구완 경! 날 잡아!”

중상을 입은 구완 경을 한 손으로 붙잡고 테이블 뒤로 잡아당기려던 아메스는 손이 미끄러지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몸도 작고 체중도 적게 나가는 그로서는 한 손만으로 덩치 큰 어른 남자를 당기기는 역부족이었다.

“황후 폐하, 폐하.”

아메스는 아직 숨이 붙은 채 살려달라며 뻗어오는 구완 경의 손을 다시 움켜잡았지만. 이미 바에자의 석궁이 쓰러진 구완 경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다 죽어!”

피를 보고 격분한 에시마 마구스의 석궁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그가 날린 볼트는 아메스의 손을 막 붙든 슈벨 부총리의 관자놀이를 정확히 꿰뚫었다.

“으읍!”

머리에 볼트가 꽂힌 노대신은 더 이상 도움을 요청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잔뜩 주름진 그의 얼굴에는 카파키 가의 몰락 이후에도 끝까지 충성을 버리지 않고 뜻을 지켜 왔던 오랜 세월이 묻어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구완 경? 구완 경!”

놀란 아메스가 발로 바닥을 짚고 한 팔만으로 발버둥을 치며 그를 잡아당겼지만 그가 뒤늦게 구한 건 산 사람이 아니고 그냥 시체일 뿐이었다.

“빌어먹을, 나, 나 때문이야, 다 나 때문이야.”

아메스가 굳어있는 왼손을 보며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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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편 후 카렐과 베흔이 나오는 사오시안트에서의 결전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개인지 작업과 병행하다보니 연재분 탈고가 좀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생업과 병행하다보니 요즘 수면부족으로 살이 쪽쪽 빠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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