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52 회: 파트 10. 오팔에 핏빛이 드리울 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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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의 ‘미심쩍은’ 보안국 요원들과 함께 좁고 어두운 엘리베이터에 갇혀버렸지만 법무대신 아리아노는 일단 당황한 티를 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는 희미한 비상등을 올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비상용이 아닌 일반 엘리베이터다보니 동력이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는 이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동력 관리하는 개새끼 내 손에 걸리기만 해 봐라.”

아리아노는 양쪽에 함께 선 3명의 휘하 수사관들을 힐끔 돌아보았다. 이 상황도 교단의 소행이라면, 그리고 저 ‘보안국 요원’들이 예상대로 변장한 코런덤들이라면 곧 자신을 공격할 것이 분명했다.

아리아노는 엘리베이터 판넬을 더듬는 척 손을 움직였다.

“으음?”

바로 옆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던 수사관들은 같은 현역 수사관 출신의 이 선배 상관이 손끝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바로 알아냈다.

-가스로 선제공격해-

‘가스’라는 말에 수사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들이 사용하는 가스발사기는 범인을 체포할 때 쓰는 용도다보니 딱히 치명적인 살상무기는 아니었지만 같은 공직자인 보안국 요원들에게 쓴다는 건 어쨌든 적대행위를 한다는 뜻이었다.

“그게…….”

눈치 없는 수사관이 머뭇거리는 새, 이상한 눈치를 먼저 챈 건 보안국 요원들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성질 급한 아리아노의 대응이 더 빨랐다.

“시키면 좀 하라고!”

아리아노는 수사관의 허리에서 가스통을 뽑아 보안국 요원의 얼굴에 확 들이댔다. 요원들도 재빨리 석궁을 뽑아들려 했지만 아리아노는 뒤에 선 수사관의 몸을 방패삼아 대각선 방향 요원의 얼굴에 먼저 가스를 확 뿌렸다.

“이크!”

붉은 잉크가 섞인 매운 가스를 얼굴에 뒤집어쓴 요원이 깜짝 놀라 눈을 가리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날아오는 칼날이나 볼트라면 어떻게든 피하거나 막아냈겠지만 갑옷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변변히 움직일 공간도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는 이 ‘별것도 아닌 근거리 무기’가 더 치명적이었다.

“뭐야!”

아리아노가 가스를 쏘는 사이, 다른 요원이 그에게 볼트를 쏘려 했지만 공간이 워낙 좁다보니 수사관 한 명의 몸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피하십시오! 대신님!”

요원이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지만 강하게 날아간 볼트는 수사관의 옆구리를 스치고 날아가 아리아노의 허벅지까지 찢어내고 벽에 꽂히며 파르르 떨었다.

“으윽!”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은 아리아노가 부르르 떨며 가스통을 떨어뜨렸다. 그는 순간 끝장이라고 생각했지만 같은 순간, 함께 있던 다른 수사관이 쏜 가스가 다시 그 요원의 얼굴을 덮쳤다. 얼굴에 매운 벼락을 뒤집어쓴 요원이 석궁을 쥔 채 주춤거리며 물러나자 아리아노가 얼른 발로 그자의 석궁을 차냈다.

“죽일까요? 체포할까요?”

“그냥 놔둬! 아예 접근하지 마!”

부하 수사관이 칼을 빼들고 달려들려는 것을 아리아노가 얼른 말렸다.

“아무 곳이나 열어! 빨리!”

바닥에 떨어진 이들의 석궁을 재빨리 빼앗아 든 아리아노가 악을 썼다. 매운 가스가 엘리베이터 안에 번지면서 이 좁은 공간 안은 눈도 뜨기 힘든 지경이었다. 아리아노가 눈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얼굴을 가리며 벽을 더듬었다.

“아무 문이나 좀 열라고!”

아리아노가 왜 이리 서두르는지 알 리가 없는 수사관들은 엘리베이터 위쪽의 정비용 구멍을 무작정 열고 기어올랐다. 휑하고 썰렁한 엘리베이터 코어가 머리 위로 까마득하게 높이 뻗은 채로 이들의 거친 숨소리를 웅웅거리며 울렸다.

“올라오십시오! 대신님!”

먼저 올라간 수사관이 아리아노에게 손을 뻗었지만 그는 부상을 입은 동료를 등에 업은 부하 수사관을 먼저 밀어 올렸다. 그때, 얼굴에 가스를 뒤집어쓴 채 허우적거리던 보안국 요원의 손이 아리아노의 발에 슬쩍 와 닿았다.

“이익!”

온몸에 소름이 쫙 돋은 아리아노가 반사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석궁을 그대로 쏘아 갈겼다. 볼트가 발사된 순간, 아리아노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이런, 젠장!”

아리아노는 펄쩍 뛰어올라 위에서 손을 뻗고 있던 수사관의 손을 힘껏 맞잡았다. 같은 순간, 석궁에 머리를 맞은 ‘요원’의 몸에서 푸른 불꽃이 확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 뜨거운 열기가 옷자락과 신발에 옮겨 붙자 아리아노가 기겁을 하며 공중에서 버둥거렸다.

“맙소사!”

당황한 수사관이 옷과 다리에 불이 붙은 채 버둥거리는 아리아노를 엘리베이터 카 밖으로 힘껏 끌어올렸다. 엘리베이터 카 위에 기어오른 아리아노가 불붙은 외투를 얼른 벗어 내던졌지만 발에 붙은 불은 도무지 꺼지지를 않았다.

“제발 가만히 계십시오!”

수사관이 옷을 벗어 그의 다리를 확 감쌌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아리아노를 다른 수사관이 꽉 붙들어 꼼짝도 못 하게 했다.

잠시 후, 열기가 가라앉자 수사관이 그제야 조심스레 옷을 들쳐보았다. 불꽃의 열기가 얼마나 강했던지 한쪽 발과 발목이 속살까지 훤히 드러나 있었다. 2명의 요원들이 불타고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살점이 타는 끔찍한 악취와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뜨거운 열기가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다.

옆구리에 부상을 입은 수사관이 아리아노에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이놈아, 이게 괜찮아 보이냐!”

아리아노가 겉으로는 버럭 화를 내며 그를 확 밀어냈다.

“빨리 나가야 돼, 다 탈 거라고!”

아리아노가 다친 발로 절룩거리고 일어서서는 부하들을 재촉했다. 덩치 큰 2명의 수사관들이 목마를 타고 공중으로 올라 어느 층인지도 모를 엘리베이터 문에 매달렸다. 그리고는 문을 더듬거려 비상 장치를 풀고 가까스로 열 수 있었다.

“20층 재무부입니다.”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되어 엘리베이터 코어를 빠져나온 아리아노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코어를 다시 되돌아보았다. 여전히 불타고 있는 엘리베이터는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며 코어 전체를 뜨겁게 달구어놓고 있었다. 그때, 그의 할룩스에 익숙한 이름과 함께 누군가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본 순간, 아리아노는 하마터면 아랫사람들 앞에서 울컥할 뻔했다.

- 보안국장 쿠마르 놈이 수우를 납치한 것 같소. 1개 분대 정도를 거느리고 지금 22층을 통해 도망치고 있는데 그대의 수사관들로 탈출로를 막아 주시오. -

“쿠마르, 쿠마르.”

죽은 남편을 떠올리며 아리아노가 이를 갈았다.

“잘 걸렸다, 이놈.”

아리아노는 말리는 수사관들도 뿌리치고는 불편한 걸음으로 계단을 비틀비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황급히 뒤따라오는 부하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법무부에서 싸울 줄 아는 놈들 다 불러내, 씨발.”

10명이 넘는 코런덤들과 함께 사무실을 가로질러 반대편 계단으로 달아나던 쿠마르는 갑자기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진 것을 느꼈다. 바로 조금 전까지도 ‘무슨 일이냐’라는 식으로 무심하게 자신들을 쳐다보던 양옆의 공무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잠깐.”

거의 끝까지 도착한 쿠마르의 앞을 웬 랜턴 불빛과 육중한 그림자 몇 개가 불쑥 막아섰다. 딱 보기에도 험상궂은 인상에 웬만한 사람들은 한주먹에 때려잡을 정도의 황소만한 거구들이었다.

그 제일 앞에 있던 사람이 침착하게 갑옷을 챙겨 입으며 물었다.

“법무부 수사국 3팀이요. 여긴 일반인 통제구역이니 누구인지 밝히시오.”

“뭐?……젠장, 보안국장 쿠마르 우펠루니까 빨리 비켜!”

다급해진 쿠마르는 뒤를 연신 확인하며 그들에게 비키라고 손짓했지만 수사국 사람들은 꿈쩍도 않은 채 그들이 짊어진 ‘자루’를 가리켰다.

“여긴 보안국이 아니니 저희 지시에 따라 주십시오. 그 자루 안에는 뭐가 들었습니까?”

쿠마르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계단에서 나온 베흔 일행과 크바르나들의 그림자가 그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젠장! 떠들 시간 없다니까!”

급해진 쿠마르는 그들을 힘으로 떠밀려 했지만 그 거구들은 통로를 단단히 막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의 숫자는 어느새 수십 명으로 늘어나 통로를 꽉 막고 있었다.

“빨리 자루를 열어 보여주십시오!”

“젠장! 길 뚫어!”

말이 통하지 않자 더 급해진 쿠마르가 코런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코런덤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었지만 그들도 미리 준비해 온 방패로 얼른 앞을 막으며 다급한 코런덤들의 걸음을 붙들었다. 이미 뒤에는 베흔의 가디언들과 크바르나들이 거의 뒷덜미를 잡을 듯 가까워져 있었다.

“싸울 시간이 없습니다!”

분대장의 손짓을 받은 코런덤 한 명이 쿠마르의 손을 붙들고 다른 쪽 계단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따르던 코런덤들도 급히 그 뒤를 쫓으려 했지만 발 빠른 근위대 가디언 한 명이 책상들 위를 겅중겅중 뛰어넘어와 코런덤들 중간을 대담하게 확 뛰쳐들었다.

“이놈!”

가디언이 자루를 멘 코런덤을 덮치려 했지만 상대가 재빨리 방향을 돌린 탓에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돌파 덕분에 코런덤 일행의 중간이 두 토막나 있었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앞서 도망친 쿠마르 일행이 이미 다른 쪽의 계단으로 도망치고 있었지만 중간이 끊기면서 수우를 짊어진 후미의 코런덤들은 하는 수 없이 반대편의 큰 창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창을 깨! 리프트 걸고 뛰어내려!”

코런덤들은 허리춤에서 일제히 도끼를 빼서는 큰 창문 쪽으로 힘껏 던졌다. 그리고는 도끼에 맞아 쩍 갈라진 창을 힘껏 몸으로 들이받아 박살을 내 버렸다.

“맙소사!”

크바르나들과 함께 코런덤들의 뒤를 쫓던 구르베스가 경악을 하며 입을 가렸다. 다른 코런덤들과 마찬가지로, 수우를 짊어진 자도 까마득하게 높은 밤하늘 속으로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남편이 떨어지는 모습에 절망한 그가 깨어진 유리창 앞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아직 죽을 팔자는 아닌 것 같으니 염려 마시오.”

구르베스를 안쪽으로 떠밀며 베흔이 입을 씰룩거렸다.

“리프트 케이블 걸고 내려가는 거니까.”

베흔의 말대로, 그들은 ―가디언들이 가끔 쓰는 방법처럼― 가는 케이블에 몸을 걸고는 멀리 지상으로 죽 내려가고 있었다.

“잠깐, 저게 뭐지?”

아래를 내려다본 베흔이 눈가를 찡그렸다. 육지 쪽에서 웬 중무장한 보병들이 다리를 건너 우루루 들이닥치고 있었다.

“남부보병?”

베흔이 기겁을 했다.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거의 1천은 되어 보이는 많은 남부보병들이 별궁에 몰려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수우를 데리고 내려간 코런덤들이 살 길을 찾은 것인지, 아니면 호랑이를 피해 사자굴에 들어간 것인지는 아직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제기랄, 도대체 누가 누구 편인 거야.”

베흔이 짜증을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방금 먼저 도망간 보안국장 새끼는 어디 갔어?”

베흔을 피해 도망치던 쿠마르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느낌이었다. 어찌저찌 도망을 치기는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행은 흩어져 몇 토막이 나 버렸고 그의 곁에는 그의 손을 붙들고 도망친 부분대장 하나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베흔이 수우 쪽을 쫓아가고 있다는 정도였다.

“계단입니다!”

그의 앞에 다시 또 다른 계단이 보였다. 수우를 메고나온 일행들은 운 좋게 창밖으로 몸을 날려 도망을 쳤지만 그의 앞에는 몸을 날릴만한 큰 창도 없었고―물론 그는 이 높이에서 몸을 날릴 만큼 훈련받은 군인도 아니었다.― 그가 갈 곳은 저 계단뿐이었다.

막 계단에 뛰쳐든 그는 헐레벌떡 계단 아래로 뛰었다. 계단 아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그저 이곳을 지나가는 민간인이려니 생각하며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아래에서 올라오던 ‘민간인들’이 갑자기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열댓놈이라더니, 고작 두 놈?”

흑인종 특유의 탁하고 걸걸한 여자 목소리가 침침한 계단실 안을 울렸다.

“누구야?”

쿠마르가 놀라 움찔거렸다. 계단실은 어둡기는 했지만 비상 조명 덕분에 상대를 아주 분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동시에 쿠마르의 뒤편에서도 위협적인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어디로 도망갔어?”

부하 가디언들과 함께 달려온 베흔이 22층에서 불쑥 모습을 나타냈다. 계단 중간에 선 쿠마르는 자신이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도망갈 수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를 데려온 코런덤은 앞을 지켜야 할지, 뒤를 지켜야 할지 당황하며 양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4품 주제에 어디다가 감히 반말이냐, 이 빌어먹을 사교도 새끼야.”

아리아노의 손에 쥔 석궁에 볼트가 장전되며 철크덕 하는 소리가 울렸다. 쿠마르와 함께 있던 코런덤도 얼른 석궁을 빼들었지만 석궁을 겨눈 아리아노의 앞에는 3명의 덩치 큰 수사관들이 몸으로 벽을 쌓고 있었다.

“잔챙이는 내가 치워주지.”

베흔이 부하 가디언과 함께 계단 아래로 바로 몸을 날렸다. 아무리 정예 코런덤이었지만 2명이나 되는 가디언들을 한 번에 당해낼 수는 없었다. 붕 소리를 내며 공중을 날아간 베흔의 무자비한 플람베르주 날이 어떻게든 쿠마르를 지켜보려던 코런덤의 뒷덜미를 사정없이 덮쳤다.

“으, 으읍…….”

자신을 지키던 코런덤의 목이 계단 아래로 데굴거리며 굴러가는 모습에 쿠마르가 파랗게 질린 채로 주춤거리며 뒷걸음쳤다.

“이제 직접 해결하시구려, 아리아노.”

베흔이 계단 아래의 아리아노를 쳐다보며 한 발 물러났다.

“나, 난 어차피 죽어도…….”

둘 사이에 낀 쿠마르가 벌벌 떨며 어렵게 입을 열었지만 아리아노는 그가 말을 끝맺을 여유도 주지 않았다.

“너도? 오호, 다행이야. 한 번밖에 못 죽이면 섭섭할 뻔했어.”

아리아노가 번들거리는 검은 얼굴 사이로 하얀 이를 살짝 드러냈다.

“태어날 때마다 이렇게 해 줄 수 있다는 거지?”

아리아노의 웃음과 동시에 한 발의 볼트가 공중을 날았다. 그 일격에 그때까지도 벌벌 떨고 있던 쿠마르의 고개가 옆으로 홱 꺾이며 힘을 잃은 그의 몸이 계단에 동댕이쳐졌다. 머리를 관통한 강력한 볼트에 살점과 골이 산산이 부서져 계단에 흩어졌다.

동맹군과 연합군을 오가며 아스탈의 눈과 손 역할을 했던 ‘특별한 헤네티’ 쿠마르 우펠루가 비로소 사라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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