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788화 (783/1,132)

< -- 788 회: 3부 : 신이여, 당신 자손의 심장을 거두소서 - [서문] -- >

예고한대로, 3부의 연재를 재개하려 합니다.

그동안 연중기간이 길었던 관계로 잠시 떠났던 독자님들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좀 소요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편수에 거품이 좀 있는 것 같아서 그동안 연재한 편들 중 몇몇 공지처럼 별 소용이 없어진 편들을 여러 개 삭제했습니다. (조회수와 추천수 줄어드는 것을 눈물을 머금고 감내했습니다. 도로 늘려주세요.......ㅠ.ㅜ)

그래서 편수 숫자가 크게 바뀌면서 선작하신 분들의 선작 리스트에서 New가 좀 엉뚱하게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지나면 곧 정상화될 겁니다.

잠시 비우셨던 독자분들도 돌아오셔야 하고, 앞편들과의 조회수를 어느 정도 맞추기 위해 한동안은 연재간격을 좀 길게 잡으려 합니다.

어쨌든 오늘은 첫 연재로 서문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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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그저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한 곳이다. 때도 없이 짙은 모래바람이 휘몰아치고, 해는 보이지 않으며, 동식물은 거의 절멸했다. 정체불명의 미세입자가 빛을 차단하고 있어 마스크가 없이는 숨도 쉴 수 없다. 어느 때는 살갗을 태울 듯 뜨겁고, 어느 때는 살을 베어낼 듯 차갑다.

대기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곳의 공기는 생명체가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오염된 것 같다. 공기를 채운 미세입자는 다행히 그 자체로는 위험한 물질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절대 마시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도 인간의 벌레만큼이나 끈질긴 생존력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로 놀랍다.

나는 구조단으로 이곳에 왔지만 1달여간 아직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교단에서는 콜로니로 데려가 돌보아줄 대상을 ‘심신이 건강한 인간’에 한정지었기 때문이다. 아직 발견도 못 했지만 이런 곳에 그런 인간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나머지 사람들을 위한 구조시설을 이곳에 따로 지을지는 전적으로 마구스들의 결정에 달려있지만 그럴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누가 이런 곳에 와서 자신의 여생과 후손의 운명을 희생시켜가며 머문단 말인가. 두터운 보호복 속의 나조차도 하루하루 내 DNA가 멍들어가는 악몽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지옥이 이런 곳이라면, 나는 평생 빌어먹는 한이 있어도 착한 일만 하고 살 것 같다.

이들이 언제 두 번째의 ‘대멸망’을 당했는지, 그 멸망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곳의 생존자 중 그것을 기억하고 증언할 사람도 남아있지 않다.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 인간들(이들을 이렇게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은 첫 번째 대멸망 이후 이미 수십 세대 동안 변종을 거듭해 온 괴물들이다. 이 저주받은 땅에서 두 번째 멸망은 사실상 몰락해가던 ‘그나마 정상인 비슷한 인간들’의 완전한 절멸 사건에 불과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정체불명의 ‘사건’이 최소한 2년 전에 벌어졌다는 것이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전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이후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말 그대로 괴물들 뿐이기 때문이다.

생존자들은 둘 중의 하나다. 이미 죽었거나, 미쳐버렸다. 생존자들의 뱃속에는 수십 명은 넘을 다른 생존자들의 고기가 들어 있으며, 아이들은 더 이상 생명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괴이한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다. 저런 자들에게 고통 없는 죽음의 자비를 주고 그 살덩이를 수확하는 건 성직자로서, 과학자로서 나의 기쁨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볼 때마다 정체불명의 무기를 휘둘러댔고, 우리는 그때마다 혼비백산하며 도망쳐야 했다. 저런 몸뚱이로, 저런 꼴로 과연 살고 싶은 것일까.

단장은 저들을 향해 ‘하는 만큼 되돌려 받을 것’이라며 저주를 퍼부었다. 본토에서 이곳을 토벌할 무장조직을 편성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에도, 이곳 생존자, 아니 생물체들은 살려 둘 일말의 가치가 없다.

이마 387년, 스루바라의 달, 1일.

제5구조단 서기,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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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다.

그저 동물적인 직감이지만, 지금 이곳, 우리 캠프 주변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런 느낌은 나뿐만이 아니다. 5구조단 30여명의 단원 모두가 알 수 없는 공포에 떨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두 장님이나 마찬가지다. 빛은 없고, 랜턴을 비추어도 고작 몇 발짝 앞까지 비출 뿐이다. 탐사기계가 주변을 바삐 돌아다니며 지형을 파악해 전자 지도를 만들고 있지만 그 기계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우리 주변에 또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들 중 누구도 그 존재를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그저 본능으로 직감할 뿐이다.

밖에 내보냈던 탐사기계 5대 중 1대가 오늘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마저 실종이 확인되면 이번으로 4번째다. 탐사기계는 생명체의 접근을 자동으로 감지하게 되어 있지만 첫 번째 기계가 실종되었을 때를 제외하면 한 번도 접근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기계를 찾으러 나갔던 겁먹은 동료 중 하나는 돌연변이들이 우리를 지켜보며 따라오고 있는 것 같다는 섬뜩한 말까지도 했다.

하지만 절대 그럴 리는 없다. 저들은 애당초 그런 호기심을 가질 자들도, 우리의 보안요원까지도 따돌려 가며 출몰할 정도로 똑똑한 생명체가 아니다. 지금까지 수십 명의 돌연변이들에게 마취약을 꽂고, 그들 모두를 표본으로 거두었지만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머리가 정상인 것으로 보이는 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오늘 붙잡은 돌연변이는 목에 마취약 주사가 박히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가 준 미끼를 정신없이 뜯어먹고만 있었다. 심지어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후까지 무의식중에 계속 저작운동을 해 자신의 혀를 씹어댔다. 대응이 늦었다면 소중한 생체 표본을 완전히 망칠 뻔했다.

지금까지처럼, 전신 마취된 상태에서 해체를 하고 표본을 채취했으니 이자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평온한 죽음을 얻은 셈이다. 부디 신의 곁에서는 온전한 몸으로 태어나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사고(思考)를 한다고? 이런 혐오스러운 생명체가 우리의 눈을 따돌리고 따라올 만큼의 지적 능력을 지녔을 리가 없다. 절대로. 절대로…….

그런데, 마치 추적당하는 것 같은 이 기이한 느낌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마 387년, 스루바라의 달, 29일.

제5구조단 서기,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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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결국 동료 하나가 돌연변이의 손에 죽음을 당했다.

그간의 공포가 현실로 드러난 것일까? 아니, 아니라는 의견이 아직은 더 많다. 그저 사고였을 거다. 분명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료의 죽음은 끔찍하다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껏 여러 번 위험한 일을 겪었지만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꼬마가 다 큰 어른을 죽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처음으로 본 ‘온전한 모양새의’ 어린아이였기에 우리의 충격은 더 컸다. 천사같이 보였던 아이가 순식간에 피에 굶주린 혐오스러운 악마로 돌변할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바위 뒤에 숨어 있었던 그 작은 괴물은 처음에는 두려워 떠는 듯 보이며 우리를 기만하려 했고, 동료 역시 상대가 어린아이라는 데 너무 긴장을 풀었던 것 같다. 그 괴물은 바위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손과 목을 순식간에 물어뜯었고, 비명을 지르는 그의 손에서 마취약 주사기를 빼앗고 목을 꺾어버렸다. 모든 상황이 너무도 순간적으로 벌어져 우리들 중 누구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 어린아이를 쇠사슬로 묶어 처음에는 나무상자 안에 가두었다. 하지만 작은 괴물의 발악에 나무상자는 얼마 가지 못했다. 내가 목숨을 걸고 다가가 동물용 마취약을 5방이나 쏘아 진정시킬 때까지 그 아이는 거의 10분이 넘도록 미친 짐승처럼 날뛰어댔다. 바로 눈앞에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괴력이었다.

단원들의 분위기는 흉흉하다. 다른 돌연변이들처럼 마취를 하고 해체하자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저 아이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겉으로는 완벽한 사람의 형상이다. 성직자로서, 저 작은 몸을 조각조각 가르고 표본을 채취하는 것에 어딘지 모를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저 꼬마는 어디서, 어떤 돌연변이의 피를 받아 태어났을까? 이번엔 어린아이여서 운이 좋았지만 그 부모도 저런 괴물이라면 우리가 과연 제어할 수 있을까?

이곳은 수십 수백, 아니, 인간 비슷한 생명체 머릿수에 해당하는 만큼의 무수한 돌연변이들로 넘쳐나는 산 실험장이다. 그 대부분은 물론 도태되었겠지만, 그들 중 행운의 선택을 받은 일부는 이 지옥에서 살아남는 무기를 선물받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저 어린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생각을 좀 더 해 보아야겠다. 겉모양이 사람 생김새와 다를 바가 없으니 ‘첫 생존자’로 판정하고 데려가야 할지, 아니면 폭력성을 주체 못 하는 괴물로 판정하고 다른 돌연변이들처럼 살덩이와 유전자만 거두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총 단장은 이 위험한 돌연변이를 일단 죽여 DNA샘플만 가져가자고 말했다는 것 같다.

저들은 우릴 죽일 수 있지만, DNA는 우릴 죽일 수 없으니.

최소한 지금 당장은 말이다.

이마 387년, 하오마의 달, 12일.

제5구조단 서기,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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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조단에서 이상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괴상한 정신병자 소년을 붙잡았다고 연락을 받았다. 그 소년(이렇게 불러도 되는 걸까?)은 우리의 말과 억양을 그대로 흉내 내고, 심지어 우리의 캠프 구조와 탐사 기계의 구조까지 세세하게 그려진 쪽지까지 갖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 인기척을 느꼈을 때, 어둠 속에서 들려 온 소년의 대답이 너무 유창해서 안전요원조차 다른 구조단 동료로 착각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아니면 피곤해 졸고 있던 안전요원의 유치한 변명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암흑 속에서 이 소년 말고 다른 인기척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도 믿을 수 없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2구조단 말로 이 소년이 겉으로는 아주 정상이라고 하지만 신빙성이 없는 것 같다. 이곳에 고작 3달밖에 머물지 않은 우리의 말을 저 돌연변이 괴물이 알아듣고 흉내까지 낸다니 어디 말이 되는 소리란 말인가.

겉모양이야 멀쩡할지 몰라도 그 소년도 속으로는 어떤 큰 결함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분명 그럴 것이다.

아니, 제발 그래야만 한다.

이마 387년, 하오마의 달, 13일.

제5구조단 서기,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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