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95 회: [3부] 파트1. 인동초 향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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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리프 카파키의 일지 2.
본토에서 무장단 선발대가 도착했다. 당초 헤네티들이 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휘관 몇을 빼면 아무래도 범죄자나 부적응자 중에서 긁어모은 잡병들 같다.
저런 자들이 나중에 2천까지 증원된다고 하니 함께 행동하는 것이 든든하기는 고사하고 더 불쾌하기까지 하다. 구조단의 여자 동료들은 저 무뢰한들이 걸핏하면 던져대는 무례한 추파에 바깥출입조차 두려워할 정도다. 저런 자들과 어떻게 공동 수색작업을 할지 눈앞이 캄캄해진다.
저들에게 붙은 ‘코메트’라는 이름은 분명 과분해 보인다. 아니, 트라카의 종으로서 왜 하필 우리 신의 상징물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따 갔는지, 불쾌하기까지 하다.
자하크 대신관님의 결정은 요즘 부쩍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누군가 불손한 세력이 아직 젊은 대신관님의 눈과 판단을 흐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 걱정까지 들 정도다.
물론 이런 저주받은 땅의 더러운 생명체를 없애는 데 신심 깊은 헤네티를 동원하는 건 분명 낭비가 맞다. 하지만 최소한의 자질은 갖춘 자들이 왔어야 할 것 아닌가!!!
이 멍청이들은 첫 임무부터 일을 완전히 망쳐놓았다. 그네들은 2구조단에서 어렵게 생포한 소년을 심문 도중 죽여 버리고 말았다. 어렵게 얻은 성한 표본을 그 멍청이들이 매질로 버려놓았으니 이젠 DNA샘플밖에는 얻을 것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 소년이 정말로 우리말을 흉내 낸 것인지도 이제 알 수 없다.
놈들이 소년을 죽여 알아낸 것이라고는 이곳 고향행성 전체를 통틀어 ‘정상이든 아니든’ 생존자의 숫자가 무려 2만으로 추정되며, 그 중 가장 크고 건재한 ‘오팔’이라는 생존자 집단이 가까이에 있다는 정도가 전부다. 그나마도 무지개빛 보석 이름을 말하는지, 아니면 매 맞아 죽어가던 소년의 신음소리를 멋대로 받아 적은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내게 놀라운 건 저 머저리 잡병들이 그 소년을 ‘심문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소년이 우리 공용어를 정말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몸짓발짓으로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했다는 것인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우리와 이곳 사람들의 문화가 갈라진 건 무려 7백 년 전이고 완전히 소통이 끊긴 것이 4백 년 전이다. 그 정도면 역사적인 관점에서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다. 이곳에 있던 최후의 정상 생존자들이 보냈다는 ‘마지막 구조요청’은 지금의 우리말과도 많이 흡사했다.
그렇다면 ‘조금 덜 미친’ 자들이 우리 말 비슷하게 흉내 내는 정도는 가능했던 것일까? 그래서 죽은 소년과 어설프나마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일까?
어쨌든 내일 5개 구조단 모두가 그 ‘오팔’ 무리가 모여 있다는 ‘판지셰르 낙원’라는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머저리 코메트들이 우리를 호위한다고 하지만 미덥지는 않다. 이번에 맞닥뜨리고 있는 돌연변이들은 이전과는 무언가 다른 것 같다.
우리를 추적하던 정체불명의 존재, 사라진 탐사기계들, 지난번 동료를 죽이고 나무상자를 때려 부수던 무서운 괴력의 꼬마(지금은 DNA 조각으로 변해 캡슐 속에 들어가 버린), 우리말을 따라하던 이상한 소년까지……이 모두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토당토 앉은 짐작인지 몰라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어떤 특별한 존재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어떤 개인이든, 알 수 없는 집단이든, 혹은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존재일지는 몰라도…….
나를 비롯해 모든 구조단원들은 지금 실체도 없는 공포에 떨고 있다.
이마 387년, 하오마의 달, 30일.
제5구조단 서기,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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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 돌연변이들의 근거지라는 ‘판지셰르’를 열흘이 넘도록 찾아 헤매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멍청이 코메트들만 사방을 들쑤시고 있을 뿐 우리 구조단 학자들은 모처럼 빈둥거리는 중이다.
오늘은 죽은 소년이 고문당하고 죽기 직전에 썼다는 메모가 내 손에 들어왔다. 그것이 여러 사람 손을 떠돌고 내 손에까지 들어온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아무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판지셰르가 어디냐’라는 추궁에 소년이 남긴 대답은 지도나 장황한 설명문이 아니고 4자리의 숫자들이었으니 당연할 법도 싶다.
멍청이 잡병 무리들이 헛소리를 적었다며 광분해서 소년에게 더 매질을 퍼붓지만 않았다면 무슨 뜻인지 설명이라도 들을 수 있었겠지만 그 무뢰한들은 결국 소년을 때려죽여 결국 제 무덤을 파고 말았다. 그 머저리들은 이 숫자가 단순 좌표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는 그럴싸한 지역을 모조리 뒤져대며 시간을 허비했지만 아무 것도 건진 건 없었다. 정말 어울리고 싶지 않은 무식한 무리들이다.
소년이 휘갈겨 쓴 메모는 (분석이라고는 털끝만큼도 모르는) 머저리 코메트 수뇌부를 돌고 돌아 결국 우리 구조단 학자들의 손에까지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들이라고 막연하게 숫자 4개로 어떻게 위치를 찾아낸담?
나 역시도 그 피투성이 메모를 받고 잠시 당황했다. 메모에 있는 건 25176 - 63854 - 55266 - 7134 라는 네 개의 숫자가 전부다. 숫자가 4개니 2차원 좌표도, 3차원 좌표도 아니다. 게다가 좌표라는 건 기준점이 있어야 하는데, 기준점이 없는 상태에서 좌표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오늘 밤은 모처럼 학생 시절로 돌아가 이 숫자와 씨름을 좀 해 봐야 하겠다. 이 숫자들이 정말로 의미가 있는 무언가라면 말이다. 쪽지에는 소년이 고문을 당하며 중얼거렸다는 토막 난 단어들이 몇몇 적혀 있다. 가라앉는 재, 천상의 불, 낙원, 사제 카히나, 희생…… 이런저런 단어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덧 : 이 숫자를 멋대로 엮어가며 2자리 2차원 지표면 좌표를 유추해 낸 코메트들의 창의성에 정말 경의를 표한다.
이마 387년, 드르바스파의 달, 9일.
제5구조단 서기,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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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막 누워 잠을 청했던 나는 문제의 4자리 숫자에서 ‘무언가 익숙한 것’ 하나가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나는 잠자리를 박차고 나가 급히 자료를 뒤졌고, 역시 그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4자리 중 마지막 숫자, [7134]는 우리가 첫 번째로 잃었던 탐사기계의 고유코드였다. 탐사기계는 10초마다 한 번씩 위치코드를 송출하게 되어 있는데, 앞의 세 자리는 상공에 있는 중계셔틀과의 3차원 좌표, 마지막 자리에 고유 코드가 표시된다. (이 4자리 숫자는 기계 윗부분의 작은 모니터에 표시된다.)
그렇다면 죽은 소년은 탐사기계가 자기 위치를 송출하는 방법대로 우리에게 위치를 알려준 것이라는 뜻이 된다.
맙소사. 그렇다면 실종된 우리 탐사기계를 훔쳐 간 것이 저 소년이었다는 말이 되나? 게다가 저들이 기계 위 모니터에 나타나는 (우리 공용어로 쓰인) 숫자를 읽을 수 있다는 뜻이며, 그것이 본부에 송출하는 위치 좌표라는 사실까지 파악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아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사라진 기계가 마지막으로 보냈던 영상에는 범인의 영상도 남아있지 않았다. 큰 개만한 크기의 무거운 탐사기계를 어린 소년이 혼자 가져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무서운 시나리오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 아니 어떤 무리가 우리 탐사기계를 영상 장치에 잡히지 않게 교묘하게 납치했고, 모니터에 나오는 4개의 숫자 좌표가 현 위치라는 사실까지 파악해서 발신 장치를 그 자리에서 의도적으로 차단한 뒤 자신들의 본거지까지 가져갔다면?
이게 어디 말이 되나???
어쩌면 이 돌연변이들 모두가 사고능력을 상실한 괴물들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상상도 못 할 만큼 영민하고 잔혹한 존재일 수도 있다. 유전자들의 그 수많은 확률놀음 속에서 어떤 개체가 태어날지를 어찌 우리 따위가 감히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보고를 받은 총단장은 내가 밝혀낸 곳으로 내일부터 이동하겠다고 했다. 대충 계산을 해 보니 지금 여기서 남서쪽으로 340스타디아(51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우리 동료가 그 살인마 꼬마에게 죽음을 당한 곳에서 멀지 않다.)
이젠 정말 무섭다. 판지셰르라는 그곳이 과연 저 멍청한 코메트들에게 목숨을 기대어 가도 되는 곳일까?
이마 387년, 드르바스파의 달, 10일 새벽.
제5구조단 서기,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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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x)펜지셰르 낙원’으로 가는 길은 끔직하다. 구조단 350명, 2천의 코마(x)메트 부대와 보급대까지 합쳐 어마어마하 행려이 고도 15스티디ㅏ(4,500m)가 넘는 느ㅇ선을 도보, 혹은 마차편에 늠느 광경을 누구ㅏ 위에서 본다면 왜 저런 생고생을 하냐며 혀를 첼(x) 찰지도 모르겠다. 낙원은 무슨, 빌ㅇ먹을.
하ㅣ만 이곳의 다러운 대기, 탁한 시야와 갈핏하며 벌어지는 오작동ㅔ 셔틀은 지상과 스페이스의 본부 프리긋을 오가는 것만도 목숨ㅡ 걸어야 하고, 차량은 1시간도 딜(x)달리지 멋하고 여지업시 고장을 일으킨다. 맏을 건 튼튼한 드2 다리뿐이다.
요즘 세사에 마차(馬車)와 당나귀를 쓴다는 게 반(x)본토 사람들에게는 어치구니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거ㅣ 이곳에서 고장을 일으키지 안는 유일한 운ㅇ소 수단이다.
여기는 고도 10스타디아고, 어(x)아직 갈 길은 만히 남아있다. 추위ㅔ 손ㅣ 구더 더 쓰ㅣ 어려다. 젠장.
생략.......14일 저녁.
이하 동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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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열흘간의 지독한 고생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우리는 한 마을을 발견했다. 높은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좁고 움푹한, 마치 거대한 사발처럼 생긴 이 분지에는 정말로 마을이 있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최근까지 사람이 산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충격을 받은 건 그곳 거주민들이 짐승 같은 돌연변이가 아니고 분명 ‘제대로 생각을 하는’ 사람 같다는 점이다. 집은 부실하고 허름하지만 지어진지 오래되지 않은 듯 보였고, 불을 피우고 요리를 한 흔적 (도대체 식량은 어디서 났을까?), 벽에 한 아이들의 낙서, 조잡하게 만든 기계, 심지어는 노트, 오래된 책까지도 발견되었다. (이것들을 ‘본래 용도’로 사용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버려진 물건들의 상태를 보아 이곳에 머물던 자들이 떠난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은 것 같다. 길어야 보름 남짓, 우리에게 이곳 위치를 알려준 그 ‘소년’을 붙잡은 때와 공교롭게도 일치한다. 상태로 보아 무척이나 서둘러 떠난 것이 분명하다.
마을을 구석구석 뒤져 유류품들을 찾아낸 코메트 대장은 이곳에 적어도 3백에서 4백 명 정도는 살았던 것 같다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그렇다면 이곳이 소년이 말했던 그 ‘판지셰르 낙원’이 분명하다.
이곳이 우리 콜로니에 비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 지옥의 다른 곳에 비해 공기도 좋고 일교차도 적다. 이곳에는 우리의 감각을 차단하고 공포에 떨게 한 ‘검은 재’도 거의 없다. 수치만 보자면 에어필터와 보호복이 없이도 살 수 있을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보호복을 벗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누가 골랐는지 몰라도, 이곳은 이 저주받은 땅에서 분명 가장 살 만한 곳임이 분명하다. 왜 이곳의 공기만 깨끗한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이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해도 분명 이해가 되지 않는 곳이다.
이들이 굳이 ‘낙원’이라는 말까지 붙인 것이 바로 그 때문일까? 그런데, 이곳에 살던 그 많은 생존자들은 대체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그리고 가장 큰 의문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한때 우리보다 높은 과학기술을 지녔던 이들이 어쩌다 이리 순식간에 멸망한 것일까?
이마 387년, 드르바스파의 달, 20일.
제5구조단 서기,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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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일지에 나오는 시기는 기원전 102년 무렵입니다. 현재 시점(기원후 450년)에서 약 550년 전입니다. 수명개조 이전이고, 성별간 체력 차이도 있습니다.
또한 야푸르의 아버지 자하크가 미모의 청년(?)이던 때이고, 이 시기 하마타 수장은 수나 마구스의 아버지인 미르 빈 트라카 마구스입니다.
(일지를 쓰고 있는 타리프 카파키는 40대를 앞둔 가장이고, 성직자 겸 유전학자입니다.)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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