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96 회: [3부] 파트1. 인동초 향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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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 대군의 하관식 취소와 남부 총괄대사 피살로 차가운 긴장감이 깃든 하루가 지나고 황궁에도 어쨌든 새 아침이 찾아왔다. 카렐은 갓난 아들을 잃고 상심한 황비 네페티의 곁에서 밤을 보냈지만 2번이나 이어진 자식들의 죽음에 겹쳐 지독한 발작을 겪은 그의 몸과 마음도 성한 건 아니었다.
“여전히 안 좋으시군요.”
먼저 잠에서 깬 네페티는 다리를 베고 모로 누워 있는 황제의 어깨와 긴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검은 용 문신이 휘감고 있는 그의 넓고 당당하던 어깨가 오늘은 유독 움츠러들고 힘이 없어보였다. 네페티는 이전보다 더 단단하게 다듬어져 있는 그의 어깨 근육 위에 살며시 입을 맞춰주었다.
“분명히 힘도 더 좋아지셨고, 훈련하고 몸 관리도 그리 열심히 하시는데 왜…….”
그제야 눈을 가늘게 뜬 카렐은 눈꺼풀을 힘없이 껌벅거리며 그의 작고 고운 손을 만지작거렸다.
“잘 주무시었소? 황비.”
“…….”
“하긴, 괜한 걸 물었군.”
“아뇨, 상께서 곁에 있어 주셔서 정말 든든했습니다.”
네페티가 황제의 뺨과 어깨에 재차 입을 맞춰주었다.
네페티의 가슴에서 느껴진 비릿한 젖내음에 카렐이 살짝 눈동자를 움직였다. 젖을 빨 갓난아기가 없어지면서 침대 옆에는 지난밤 소리 없이 몰래 울면서 짜낸 모유가 병에 담겨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젖이 불어서 또 짜야겠네요.”
“움직이기는 싫고 배는 고픈데 아까운 거 버리지 말고 나나 주시구려.”
“푸훗.”
카렐의 농담에 네페티가 아이를 잃은 이후 처음으로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정말로 병을 건네주었다.
“가디언 아기들에겐 엄마가 없으니 내겐 이런 호사도 없었지요.”
병을 훌쩍 비워버린 카렐이 네페티의 가슴에 코끝을 대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황제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네페티가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결과는 나왔나요? 사인(死因)이 뭐죠?”
네페티의 불은 젖가슴을 만지던 카렐이 멈칫했다.
“알고……싶습니까?”
카렐의 물음에 네페티가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검을 명한 것도 모자라 그 끔찍한 자리에 직접 들어가기까지 한 황제에게 어제만 해도 ‘피도 눈물도 없냐’며 불같이 화를 냈던 그였다.
망설이던 카렐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더군요.”
놀란 네페티의 눈이 확 커졌다.
“갓난아기 심장에요?”
“면역체계가 자기 몸을 공격해서 갑자기 그리 된 것 같소.”
“자가면역이라고요?”
네페티가 입술을 꽉 깨물며 다시 물었다.
“설마 장태자나 크낙스 공주와 같은 건가요?”
“아마도.”
카렐이 네페티의 시선을 피하며 힘없이 대답했다.
“다 나 때문이요.”
“병은 병일 뿐이지 누구 탓이 어딨습니까.”
네페티가 고개를 저으며 황제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카렐은 자세히 설명을 해 주고 싶었지만 용기가 잘 나지 않았다.
“모렌 박사 말이 내 유전자가 너무 별난 게 원인인지도 모르겠다고 합디다. 남은 황자들도 면역 반응검사를 하라고 일렀습니다. 다행히 넷은 지금까지는 건강하지만…….”
“의사들이 곧 해결책을 찾아낼 테니 걱정 마세요.”
이번엔 네페티가 황제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위로를 해 주었다.
“그러면 좋지만…….”
카렐이 말꼬리를 흐렸다. 모렌 박사는 ‘폐하와 일반인의 2세에서 이종교배 비슷한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걱정스레 언급했지만 차마 그 말까지는 꺼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의사들이 아니고 내가 해결책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소.”
“예?”
황제의 뺨을 쓰다듬던 네페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카렐은 그를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었다.
“오렌은 보냈지만 다시는 황비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 없게 할 겁니다.”
“웬일인가? 이 시간에?”
황비 처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평소처럼 아침 일찍 집무실에 든 카렐은 미리 와 기다리고 있던 보안국장 사에나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항상 음지에서 일하는 이 여자는 사람들이 황제를 잘 찾지 않는 늦은 저녁 무렵에나 소리 없이 스리슬쩍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지 이런 바쁜 아침 시간에는 웬만해서는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부 총괄대사 피살 건인가?”
“아닙니다.”
사에나가 짧게 대답하며 몇 장의 서류를 내놓았다.
“한 번에 갑자기 여러 일이 몰려 정신이 없으시겠지만…….”
“차라리 정신없이 바쁜 게 나아. 명복을 빈다느니 힘내라느니 하는 말은 이제 듣기도 지겨우니 그만 하고.”
카렐이 자리에 털석 앉으며 굳은 표정으로 바로 대답했다.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하던가요.”
차갑게 그늘이 드리운 황제의 얼굴을 힐끔 돌아보았던 사에나는 이미 죽은 아기 이야기를 괜스레 꺼내는 건 별로 현명치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어제 북부 코윈의 스페이스를 표류하던 화물셔틀 한 대가 북부 파견군 프리깃에 발견되었습니다.”
“북부길드가 또 밀수라도 하다가 잡혔나?”
“아닙니다. 보석류 원석을 황제령 타르서스로 싣고 오던 등록된 정규 화물셔틀입니다. 소행성으로 추정되는 물체와 충돌사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력과 기압조절 장치가 파손되어 승무원 3명은 모두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카렐은 뭐 그런 일로 호들갑을 떠냐는 얼굴로 돌아보았지만 사에나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캐빈의 화물을 점검하던 도중에……숨겨져 있던 시체 두 구를 발견했습니다. 자루에 담아 사출구 부근에 놓았던 것을 보아 스페이스에 무단 투기하려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평범한 저자거리 살인사건 따위를 시시콜콜 보고하는 건 물론 아니겠지?”
여전히 신경이 날카로워 있던 카렐이 눈을 가늘게 떴다. 사에나가 복잡한 기호가 쓰인 서류 한 장을 더 내밀며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다.
“유전자 검사로 신원을 확인했는데 민간인이 아니었습니다.”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카렐의 표정이 바싹 얼어붙었다.
“근위대 8군단 소속이었다고?”
“아시다시피 사오시안트에서 종전 직후 실종된 부대입니다.”
“허.”
순간 표정이 더 굳어진 카렐은 받은 서류를 모두 들고 일어서는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으며 집무실 안을 빙빙 돌았다.
“30년 전 사오시안트에서 퇴각 직후 없어진 부대의 병사들 중 둘이 북부 코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네, 그렇습니다만 북부 여러 지역을 모두 돌며 원석을 픽업한 후라 시체가 정확히 어느 지역에서 실린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시체와 각종 증거물들을 분석해서 범위를 최대한 좁히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밝혀낸 건? 그러니까 죽은 놈들이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었는지 추정할만한 것들 말이야.”
카렐이 서류를 읽다말고 이 보안국장을 진지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둘 다 영양 상태는 매우 좋습니다. 근육과 체지방도 충분하고 뱃속에도 소화가 덜 된 굴과 소시지, 볶은 쌀, 채소와 과일이 충분히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기근에?”
카렐이 눈가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근골계나 각질 상태를 보아 사망 전까지 반복적인 육체노동에 종사한 것 같습니다만 중노동을 했거나 가혹행위를 당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치아나 다른 부분들도 의료기관에서 주기적으로 관리를 받은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 드리긴 뭣하지만……웬만한 북부 노동자보다 몸 상태가 훨씬 좋습니다.”
“그럼, 군인은 아니었다는 말인가?”
카렐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에나가 이번 질문에는 아주 분명하게 대답했다.
“이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현역군인의 몸 상태가 절대 아닙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그때 없어진 놈이냐? 아니면 그냥 탈영병?”
카렐이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물론 탈주병일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단순 탈주병은 이후에 자수를 받아주었으니 큰 사고를 친 것이 아니라면 굳이 도망생활을 할 이유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어쨌든 이들을 보아서는 우리 예상처럼 근위대가 반군 조직으로 지금까지 존속해 있으리라는 예상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그럼 생각 외로 별 문제 아닐 수도 있겠군?”
카렐이 여전히 신중한 태도로 물었다.
“그렇지만 시신 상태가 미심쩍습니다. 둘 다 발에 심한 찰과상이 있고 남자는 특히 심합니다. 분석 결과 사망 직전 탈진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무언가에서 도망치던 중이었다?”
“그런 추정이 가능합니다. 둘 다 정체미상의 고속 물체에 머리와 목을 관통당하고 즉사했습니다. 남자는 다리에도 같은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아 무기의 일종인 것 같은데 아직 분석이 되지 않습니다.”
‘분석이 되지 않는 무기’라는 말에 카렐의 굳어있던 표정이 더 창백해졌다.
“이자들 근무기록은?”
카렐이 계속 자리를 서성거리며 계속 물었다.
“여자는 황제령 4번 도시 출신 11년차 보병, 남자는 서부 테나토 출신 8년차 발리스타병으로 둘 다 평균적인 학력의 평민 기혼자입니다. 근무성적도 평균치 혹은 그 이상으로 양호했고,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군내 전과도 없습니다.”
“친분이 있던 자들인가?”
“아닙니다. 출신 지역과 학교, 소속 대대도 다르고 원 주둔지도 다릅니다. 소속 군단 외에는 전력에서 일치하는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다만?”
카렐의 눈이 갑자기 반짝 빛을 뿜었다.
“군내 클럽활동으로 유학을 공부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둘 다 군 제대자 특기생으로 콜로니 아카데미나 남극성당 진학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속 클럽은 역시 다릅니다.”
“평민, 유학자 지망생, 근위대 8군단, 북부, 정체불명의 무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집무실 안을 빙빙 맴돌던 카렐이 초조한 표정의 사에나에게 짧게 말했다.
“자네가 무얼 말하고 싶어하는지 알아.”
“아무래도 지난번 출혈열 바이러스 추적하실 때 북부에서 보셨던 무기와 어떤 공통점이…….”
카렐은 별 대답 없이 목 옆을 만지작거렸다. 슬쩍 들쳐 본 그곳에는 아직 지우지 않은 긴 흉터가 꿰맨 자국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때 내가 입은 상처와 비슷하던가?”
“폐하와 일반인과는 근섬유의 조직과 강도가 달라 확답은 어렵습니다만 사진상으로는 유사해 보입니다. 사견이지만 이 근위대원을 죽인 자들과 지난번 출혈열 사태를 벌인 자들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충분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최대한 신중하려 애쓰던 카렐이 비로소 진지한 표정으로 지시를 내렸다.
“‘시라즈 별궁’에 비상대기를 명해라. 시체도 그리로 가져와 봐. 어쩌면 문틈으로 삐져나온 쥐꼬리를 운 좋게 붙잡은 것인지도 모르지. 지난번처럼.”
황제의 비유에 하마터면 웃을 뻔했던 사에나가 얼른 평소같은 냉혹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알겠습니다.”
카렐은 서랍에서 작은 파일 하나를 꺼내들었다. 필름으로 잘 포장된 그 파일 안에는 불에 절반쯤 타다 만 보고서 한 장이 들어있었다. 많은 내용이 타서 사라졌지만 군데군데 토막이 난 문장이 몇 개 흔적만 남아있었다.
1. **********오메가의 현 스트레스 상태는 발병 후 3단계******* 추정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는 1,275. 계산상 치사 도달 시점**********
2. S와 R의***********세대에서 자가 면역 결함이 발생한다면 타리프의 **** 가설이 증명되나****의 결함이니**** 절제를 통해****가능******. 헤테로 혹은 호모는 결함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으며 ****** 근친혼이 필요합니다.
3. 2차 프로젝트는***************여부에 따라 서부와 동부를 목표로 7년 이내 가능할 것으로 *****************
4. 3차 ************하임달 ******* 여사제 ****카히나의 R코드 중 암호를 파악********* 소각로 작동**********필요할 경우 658샘플로 시험 가능합니다.
5. ***********************************************************************
오직 하나*** 지고하신 현신께 *************
아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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