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809화 (804/1,132)

< -- 809 회: [3부] 파트2. 작은 여신의 무지개빛 눈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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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일대가 아수라장이 된 그 시각, 정문을 뭉개버리고 일을 더 키웠던 문제의 폭주 화물차는 여전히 컴플렉스 안쪽, 창고 건물에 처박힌 채 흉물스럽게 전복되어 있었다.

“유후.”

컨테이너 아래쪽의 작은 문이 살금살금 열렸지만 용역들과 난입한 시위대의 대결로 온통 관심이 쏠린 판에 이미 쓰러진 화물차 따위에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문 안에서 까만 눈동자 두 개가 빠끔히 튀어나와 주변을 재빨리 살폈지만 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차가 부딪친 창고도 벽 한쪽이 조금 무너져 속살을 드러내고 있지만 당장 무너질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건 아니었다.

“다 됐나?”

눈동자의 주인공은 아무도 이곳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무너진 창고 쪽으로 슬금슬금 기어나갔다. 그리고는 [노에누스 가 산업부] 문장이 붙은 유니폼에서 먼지를 급히 툭툭 털어냈다.

“휴, 뒈지는 줄 알았네.”

가방을 짊어지고 안에서 기어 나온 자이납은 뻐근한 허리를 두들기며 재차 주변을 살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그는 컴플렉스 안에 들어와 있었고 그의 손에는 이곳 주인인 노에누스 가 관청에서 뒷구멍으로 복사해 온 조잡한 컴플렉스 도면이 들려있었다.

“완충장치 없었으면 정말로 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을걸요?”

자이납을 따라 기어 나온 건 자그만 키에 앳된 얼굴의 한 청년이었다. 그 청년은 바지 뒤에 끼워놓았던 작은 쿠크리가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고는 자이납에게 씨익 웃음을 지었다.

“헤헤, 방금 차 구를 때 저 안아주신 거 맞죠?”

“닥쳐, 굴러서 골로 갈 것 같으니 잡은 거지.”

“저한테 맘이 있어 그러신 거 다 알아요.”

“으휴, 닥치랬다.”

자이납이 더 떠들려는 그 청년의 입을 확 막아버렸다.

“쳇.”

청년이 입을 삐죽거렸다. 자이납의 귓가에 겨우 닿을 둥 말 둥한 자그만 체구에 미남도 아니고 우람한 체구도 아니다보니 최소한 외모로는 이 눈 높은 바람둥이 아가씨의 눈에 들기는 한참 함량미달이 분명했다. 물론 까무잡잡한 피부에 작아도 단단한 체구, 가늘지만 근육이 박힌 팔뚝에는 황제의 가슴에 새겨진 것과 똑같은 용 문신까지 있었지만 언뜻 보아서는 왜소하지만 성깔 있고 거칠기로 유명한 보통의 타르서스 남자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설치 잘 했지?”

“그럼요, 제 전문인데.”

청년이 냉큼 대답했다.

“그럼 닥치고 따라오기나 해.”

자이납이 청년의 귀를 질질 잡아끌고 조금 전 온 공무원 사찰단인 것처럼 안쪽으로 태연히 걸음을 재촉했다. 작업복 입은 사람들로 가득한 이 광산 안에서 분명 이질적인 복장이었지만 여러 명의 노에누스 가 공무원들과 협상단이 방문을 와 있는 상황에서 딱히 있어서는 안 될 모양새는 아니었다.

“양쪽 모두에서 다 주기장을 확인하라는 말이 들어온 거 보니 그쪽이 뭔가 이상하긴 한가 보네.”

자이납이 할룩스를 품에 감추고 급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할룩스로는 코나가 가 있는 협상장에서 조합 대표들이 ‘밖에서 무슨 일이냐’며 거칠게 항의하는 소리, 관리들이 ‘당장 군대를 부르겠다’며 호들갑을 떠는 꼴사나운 모습과 소리가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컴플렉스 대표로 보이는 깡마른 여자가 나름대로 침착한 표정으로 관리들에게 ‘군대는 필요 없다’며 열심히 설득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우습게도 그 자리에서 제일 겁에 질려 있는 건 이번 충돌의 당사자들이 아닌 관리들이었다.

“하이고, 협상이랍시고 정말 볼만하네.”

자이납이 눈에 낀 스코프 한쪽에 나타나고 있는 화면에 줄곧 키득거렸다.

“근데 저 노예운동가님 방금 뇌물로 받은 수표 우리 용돈으로 써도 되겠죠?”

청년이 이를 드러내고 웃어보이자 자이납이 그를 휙 돌아보며 혀를 끌끌 찼다.

“어떻게 네놈은 하는 짓도 모자라서 생각하는 것도 쌩판 본 적도 없는 네 아버지하고 똑같냐? 이름 물려받은 것도 모자라? 우베 주니어?”

자이납이 청년의 이마를 세게 쥐어박았다.

“아이, 씨, 왜 나만 갖고 그래.”

젊은 우베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오래 전 죽은 아버지와 똑같은 톤으로 투덜거렸다. 어쨌든 이 둘은 이번에 온 당국 실사팀인 양 가방을 들고 컴플렉스 안쪽으로 태연히 걸어 들어갔고, 이들의 양옆으로는 정문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가는 광부들과 용역 지원군들이 계속 스쳐 지나갔다.

“그 양반 제발 밖에 조용히 계셔야 하는데.”

자이납이 얼굴을 찡그리며 정문 밖 시위대를 돌아보았다. 싸움은 점점 커져서 정문 밖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압도적인 숫자의 시위대에 정문이 돌파당하면서 수십, 혹은 그 이상의 시위대들이 컴플렉스 내부까지 하나 둘 뛰어들고 있었다.

함께 걷는 청년 우베가 그의 말에 냉큼 끼어들었다.

“결국은 성질 못 이기고 안에 들어와 한판 벌이신다는 데 10골드 걸게요. 얼마 거실래요?”

“내기도 의견이 달라야 뭐가 되지.”

자이납이 손을 저으며 짜증스레 대꾸했다. 그때, 그들이 떠나 온 화물차에서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붉은 불꽃이 번지기 시작했다. 화물차 밖으로 피어오른 붉은 화염이 바로 옆의 건물에까지 조금씩 옮겨가면서 이미 혼란통에 빠져 있던 출입문 부근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소방대! 소방대 불러!”

정문으로 달려가던 광부들이 불꽃에 놀라 급히 걸음을 멈추고 화재 현장 주변에 모여들었다. 컴플렉스 전체에 ‘작업 중단’을 알리는 날카로운 경보음이 계속 울리는 가운데 이곳 작업자들이 평소 소방훈련을 받은 대로 손에 손에 소화기나 각자의 장비를 들고 우루루 몰려나오면서 이 거대한 컴플렉스 전체가 마비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흐미.”

불타고 있는 차와 창고를 돌아본 우베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앞장서는 자이납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급히 건물들을 가로질러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저기다.”

자이납은 철조망 너머, 몇 대의 셔틀이 세워져 있는 주기장을 가리켰다. 그곳에 용역들이 버글거리며 모여 있는 것을 본 자이납이 함께 오던 우베를 덥석 잡아끌어 시선이 없는 건물 뒤로 일단 몸을 감추었다.

“셔틀이 왜 저리 많지?”

자이납이 철조망 너머를 다시 확인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두 대 내려앉는 데나 적당할 크기의 셔틀 주기장에 3대나 되는 덩치 큰 화물셔틀이 자리를 하고 있다 보니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부딪혀 사고라도 날 듯 보였다. 게다가 주기장 주변은 이사라도 가는 것처럼 큰 짐들로 그득하게 들어차 있었다.

“저놈…….”

자이납은 어딘지 익숙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셔틀 주기장 입구에서는 자그만 체구의 한 사내가 연신 시계를 보며 초조함에 계속 자리를 서성거리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한시가 급한데 저놈의 불청객들 때문에…….”

그 남자가 투덜대며 고개를 든 순간, 벽 너머에 숨어 그곳을 쳐다보던 자이납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맙소사.”

자이납이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30년 전 이 주먹에 맞아 죽었던, 자이납이 평생토록 잊지 못할 얼굴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왜요? 저게 누군데요?”

뒤에 선 청년 우베가 그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자이납은 ‘네 아버지 죽인 놈’이라는 말을 차마 이 자리에서 할 수가 없었다.

“교단 놈.”

자이납은 더 물으려는 우베의 입을 막으며 다시 그쪽을 확인했다. 주기장에 선 쿠마르도 컴플렉스 입구에서 벌어진 소동과 화재에 당황했는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계속 할룩스만 만지작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용역 한 명이 달려와 쿠마르에게 상황을 전했다.

“소요 사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관리들까지 와 있으니 더 문제입니다. 이디나 부장이 데려간 노에누스가 가 관리들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치안군을 투입하겠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곧 치안군 셔틀이 여기로 올지 모릅니다.”

“여기에? 지금?”

쿠마르가 기겁을 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여기에 공권력이 투입된다고?”

“밖에서 소동이 커지지 않았습니까. 이디나 부장이 만류하고 있지만 소요사태가 너무 커져서 공권력 투입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바깥이 이미 아수라장이니 그쪽으로 많이 가겠지만 일부는 이쪽으로 투입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젠장! 짐들 치워! 안 보이는 데로 치우라고! 다른 데는 괜찮아도 여긴 절대 안 된다고 해!”

당황한 쿠마르의 명령에 용역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주기장을 가득 채운 큰 장비와 짐들을 안 보이는 곳으로 허겁지겁 치우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서두르다보니 몇몇 사람들은 시험관 같은 실험도구들을 바닥에 쏟기도 했고, 정밀 장비들도 대충 거적만 덮은 채 가까운 건물 아무 곳, 혹은 주기장에서 바로 눈에 띌 수 없을만한 곳에 마구 쑤셔 넣어 감추었다.

“제가 가방끈이 긴 건 아니지만요, 저기 있는 물건들 아무래도…….”

우베가 뒷주머니의 작은 망원경으로 그 광경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때, 자이납이 우베의 뒷덜미를 덥석 잡아서는 옆 건물의 창문 안으로 무작정 몸을 쑤셔넣었다.

“아쿠.”

가슴 위로 떨어지며 비명을 지르는 우베의 입을 자이납이 우악스럽게 틀어막았다. 수레에 한 무더기의 상자를 실은 용역들이 조금 전까지 이 둘이 숨어있던 구석에 그것들을 허겁지겁 쌓아놓고 황황히 되돌아갔다.

“이 멍충아, 뒤에서 누가 오고 있는지는 알아야지.”

석회 포대 위에 떨어졌던 자이납은 옷에 묻은 허연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는 다시 일어서서는 슬금슬금 밖으로 기어나갔다.

“헤헤, 느낌 좋은데요?”

자이납은 뒤따라 나오며 능글맞게 웃는 우베의 입을 다시 꽉 틀어막고는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박았다.

“닥쳐.”

자이납은 눈물을 찔끔거리는 우베를 내버려둔 채 방금 전 용역들이 놓고 간 상자들을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광산에 무슨 지하농장이라도 꾸미시려고 이러나?”

자이납이 꺼내 든 큰 병 안에는 밀과 보리, 쌀의 표본들이 차곡차곡 들어있었다. 우베도 그 옆의 다른 상자를 슬쩍 열어 웬 불투명한 병을 꺼내들었다. 그는 주먹만한 갈색 병의 뚜껑을 조심조심 비틀어 열었다.

“우, 우압.”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던 우베는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느라 병을 바닥에 뚝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크!”

자이납이 얼른 몸을 날려 바닥에서 받지 않았더라면 병이 바닥에 떨어지며 이 두 불청객의 존재를 사방팔방에 광고했을 판이었다.

가까스로 병을 받아낸 자이납이 발끈하며 우베를 꾸짖으려 했다.

“정신 좀 차리고 있……으엑.”

무심코 병 안을 들여다보았던 자이납도 하마터면 병을 내동댕이칠 뻔했다. 그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병 뚜껑을 확 막아버렸다.

“뭐, 뭐야, 이거 도대체.”

자이납은 온몸에 돋아난 소름을 손바닥으로 쓱쓱 문지르며 부르르 떨었다.

“뭐 잘못 본 건 아니지?”

그는 뚜껑을 살며시 열고 안을 슬그머니 들여다보았지만 보이는 건 여전히 소름이 끼쳤다. 우베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수십 개의 비슷한 병들을 세어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벌레 아니에요? 맙소사, 쌀알만한 벌레가 버글버글하다고요.”

“알아, 아니까 좀 닥치고 있어.”

자이납이 호들갑을 떠는 우베에게 버럭 짜증을 냈다.

“저게 무슨 벌레인지 알아요?”

“곤충학자도 아닌데 내가 알 게 뭐야.”

“그 분께선 아시지 않을까요? 지금이라도 할룩스로 알릴까요?”

“그럼 빨리 알리든가. 어쨌든 광산에 있을만한 물건이 아니라는 거 하나는 분명하니까.”

자이납은 크게 놀랐던 가슴을 달래며 다시 주변을 확인했다.

“빌어먹을, 이놈의 광산 도대체 정체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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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쇠고 오느라 연재가 좀 늦었습니다.

이 글 보시는 모든 분들께 소띠해 힘찬 기운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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