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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811화 (806/1,132)

< -- 811 회: [3부] 파트2. 작은 여신의 무지개빛 눈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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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들은?”

카렐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해져 있는 자이납에게 바로 본론부터 물었다. 자이납이 얼떨떨한 얼굴로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이 수직갱도 중간께에 뻥 뚫려 있는 굴 입구가 보였다.

“알았다.”

카렐은 얼굴을 가린 마스크와 모자를 단단히 확인하고는 다시 그 구멍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근데 그 버러지가 문제라면 이제 다 밝혀진 거 아니에요? 이까짓 컴플렉스 따위는 친위군 한 1개 연대만 동원하면 싹 쓸어버리는 거 일도 아닐 것 같은데요?”

단순한 자이납이 ‘고작 두 명’뿐인 지원군이 불만인 듯 입을 씰룩거렸다.

“지금이 뭐 옛날처럼 힘이 없어서 몸을 사릴 판국도 아니고…….”

“이곳 기자재들 상당수는 이미 어딘가 빼돌린 것 같다며? 사람들도 많이 떠났고.”

카렐이 앞장서 달려가며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보아하니 끝물만 남은 연구시설인데 남은 걸 뒤져서 뭐에 쓰려고?”

“예?”

“어디론가 자리를 옮겨서 다른 걸 획책하는 것 같으니 이젠 그걸 잡아야지.”

카렐은 이들이 주기장이 있는 머리 위를 힐끔 올려보았다.

“그래, 이놈들 여기 말고 뭔가 다른 게 있어. 분명히.”

연구원들이 들어갔다는 문제의 굴 옆에는 [폐갱도 - 외부인 출입금지] 라는 허름한 팻말만 덩그러니 붙어있었다. 견고한 문이나 시건장치라도 되어 있다면 도리어 관심을 끌었겠지만 이곳에는 흔한 폐갱과 마찬가지로 덜커덩거리는 허름한 철조망 문짝만 달려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철창 문 안에는 지나가는 사람들도 얼굴 한 번 찡그리고 그냥 지나가버릴 음침한 굴이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카렐이 팻말을 올려보며 말했다.

“우리가 다쳐서는 안 되지만 안에서 누굴 해쳐서도 안 된다. 일을 키우지 마.”

헐떡거리며 카렐을 쫓아온 자이납이 숨을 고르며 물었다.

“이놈들이 계획을 들킨 걸 절대 모르게 해야 하니까.  출혈열 뒤쫓을 때 같은 실수를 또 저질러서 다 놓칠 수는 없지.”

치안군복과 눈에 낀 렌즈까지 매무새를 얼른 가다듬은 카렐은 루스탐에게 밖을 지키고 있으라고 손짓하고는 잠긴 문을 힘으로 확 잡아 뜯었다. 그리고는 랜턴도 켜지 않은 채 그 안에 성큼 들어섰다.

“누구야.”

불도 없는 깜깜한 굴을 앞장서 들어가던 카렐은 어둠 속에서 들려온 위협적인 목소리에 일단 멈춰 섰다. 뒤이어 두 개의 랜턴 불빛이 카렐의 얼굴을 똑바로 비추었다.

“누, 누구요?”

굴 안쪽을 지키던 2명의 용역들은 상대의 치안군 복장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카렐은 이미 화재가 나서 검은 연기가 차 있는 바깥을 가리켰다.

“폭도가 여기에 불을 지르고 돌아다녀서 하나하나 갱도들을 확인하는 중이다. 여기 누구 안 들어왔나?”

“여긴 아무도 안 들어왔습니다. 여긴 안 쓰는 폐광입니다.”

용역이 더듬더듬 대답했지만 카렐의 의도적인 덫에 걸린 대답이었다. 카렐이 기다렸다는 듯 그들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아무도 없어? 방금 흰 옷 입은 놈들이 들어오는 거 보고 쫓아온 건데?”

“아, 그네들은 여기서 일하는…….”

“방금 안 쓰는 폐광이라며? 폐광에서 누가 일을 해?”

카렐은 미끼에 걸린 이들의 말꼬리를 재빨리 잡아채며 눈을 무섭게 부라렸다. 카렐은 관청에 신고되어 있는 이곳의 공식 도면을 보란 듯 펼쳐들고 살피는 척 했다. 그는 뒤따라 들어온 공무원 차림새의 자이납에게 ‘내 뒤를 지키고 있어.’라며 수화를 보냈다.

“혹시 미신고 불법 채굴장 아니냐?”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카렐은 대답을 못 하고 어물거리는 이 용역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무섭게 몰아붙였다.

“이봐, 나도 광부 출신이야. 정확한 갱도 숫자하고 채굴량을 정확히 신고해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건 안다고. 보석 광산에서 탈세 빈번한 거 누가 모르나? 신고도 안 하고 세금 안 내는 불법 갱도 아니냐고?”

“그, 그건.”

계속 몰아붙이는 치안군에 당황한 용역은 카렐에 뒤따라 들어오고 있는 관청 공직자 차림새의 자이납의 눈치까지 번갈아 살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지금 같아서는 차라리 탈세를 위한 불법 갱도라면 더 나을 판이었다.

“저어, 잘 아시는 분께서 왜 그러십니까. 윗분께 알렸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서로 좋게 해결할 수 있을 테니…….”

선임인 듯 보이는 용역이 뇌물의 냄새를 슬쩍 풍기며 이를 내보이고 웃었다. 뒤에서는 다른 녀석이 윗사람에게 급히 연락을 하는 모양이었다. 카렐은 그를 옆으로 휙 밀쳐내며 두말없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닥쳐, 탈세 시설물이라면 당연히 단속 대상이다.”

카렐은 일부러 용역들에게 등을 보이며 갱도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어쩌지?”

치안군이 비밀 시설에 들어가는 모습에 완전히 패닉이 되어버린 2명의 용역들은 잠시 눈짓을 주고받았지만 이젠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저 ‘앞뒤 꽉 막힌 장신의 치안군’은 몸통만 가리는 얇은 갑주만 입었을 뿐이고, 앞에서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는 ‘키만 홀쭉하니 큰 여자 공무원’은 싸움과는 별 관계도 없어 보였다.

‘됐지?’

재차 눈짓을 주고받은 그들 중 한 명은 자이납에게, 그리고 또 한 명은 등을 보인 카렐의 뒤통수에 석궁을 번쩍 겨누었다.

“이크!”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던 자이납은 자신에게 석궁을 겨누려는 용역의 손을 순식간에 낚아채 옆으로 휙 비틀었다. 카렐을 향한 석궁도 이미 막 발사되려는 참이었지만 무언가 시커먼 것이 그자의 얼굴을 향해 먼저 날아들었다.

“웁!”

눈 사이에 돌멩이를 제대로 맞은 용역의 고개가 뒤로 휙 꺾였다. 방아쇠도 못 당긴 채 벌렁 나동그라지는 동료의 모습에 다른 용역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뭘 봐?”

자이납은 버둥대는 그의 턱을 꽉 붙들고 벽에 머리를 확 처박아 앞을 못 보게 했다.

“감히 공권력에 저항을 해!”

그때, 출입구를 지키던 루스탐이 안에서 들려온 소음에 놀라 허겁지겁 뛰쳐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뭡니까? 무슨 소리입니까?”

“공권력에 저항하려 한 놈들이다.”

카렐이 엉뚱한 소리를 하며 이마에 혹이 난 채 까무러쳐 있는 용역을 발로 툭 걷어찼다.

“탈세 시설이 분명해. 안을 확인해야겠어.”

카렐이 용역들 들으라는 듯 계속 능청을 부렸다.

“저 철문은 잠긴 것 같은데요?”

자이납이 쓰러진 용역들의 손목을 묶으며 굴 더 안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마치 거대한 금고문처럼 번쩍거리는 묵직한 자동식 철문이 굳건히 막아서고 있었다.

“어떻게 열죠? 저건 힘으로도…….”

자이납이 말끝을 얼버무렸다. 저 정도의 문이라면 카렐이 10명이라도 힘으로는 도저히 열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의 말이 막 끝난 순간, 뜻밖의 협력자가 문 안쪽에서 나타났다.

“무슨 소리야?”

밖에서 난 소동에 어리둥절해진 연구원 한 명이 안에서 문을 열며 머리를 쑥 내미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카렐도 스프링처럼 그쪽을 향해 확 튀어나갔다.

“엉?

이 불운한 연구원은 ‘사람의 수준을 넘을 정도로 빠른’ 적이 눈 깜짝할 새 문 앞에까지 쇄도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터였다.

“이런!”

코앞으로 돌진해오는 시커먼 형상에 놀란 연구원이 반사적으로 문을 닫으려 했지만 카렐도 하늘이 준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막 닫히려는 문을 카렐이 힘껏 들이받으면서 이 침입자를 막을 수 있는 짧은 기회마저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으, 으앗! 치안군이야!”

연구원이 주춤거리며 다급히 문을 잠그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카렐은 미처 닫지 못한 문을 어깨 힘으로 무지막지하게 밀어젖혔다. 힘에 밀려 나동그라진 연구원 2명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고, 부서진 문 개폐장치의 철물 조각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동시에 카렐의 코앞에 바깥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큰 공간이 갑자기 정체를 확 드러내 보였다.

“이건 뭐야?”

작은 실내 체육관만한 큰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자 카렐이 움찔거리며 멈춰 섰다.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이리저리 분해해놓은 기계 장비, 그리고 별의별 약품이 가득 든 병과 통들이 어지럽게 널려 지금은 마치 쓰레기장 같은 분위기였다. 지금 꼴만 보아서는 원래 무엇을 하던 곳이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뭐죠?”

까무러진 용역 둘을 질질 끌고 뒤를 따라온 자이납과 루스탐도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음?”

멈칫거리던 카렐은 조금 전 우베가 보여주었던 ‘벌레 병’ 몇 개가 구석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곳에서 해체 작업을 진행하던 십여 명의 연구원들, 그리고 20여명의 작업자들은 갑자기 난입한 치안군의 모습에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누, 누구시죠?”

작업자들 중 하나가 구석에 있던 쇠파이프를 슬며시 집으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정문 앞에서 시위대 조합원들과의 몸싸움에 휘말렸던 나딘은 긴급 투입된 노에누스 가 치안군 수백이 양쪽 사이를 막아서면서 비로소 한숨 돌리고 뒤로 물러나올 수 있었다.

“젠장,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거야, 아닌 거야.”

나딘이 컴플렉스 주변에서 시위대를 몰아내고 있는 치안군들을 노려보았다. 저들 덕분에 저 많은 시위대가 모두 무단 난입하는 것만은 일단 막을 수 있었지만 이미 안에 난입한 자들이 몇이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몇 놈이나 들어갔지?”

숨을 고른 나딘이 부하 용역에게 물었다. 그는 시위대와 싸우는 내내 허리춤에 찬 ‘발사 무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차였다. 지금까지 이 무기로 시위대 몇 놈을 쏴 죽이고픈 맘에 손이 수십 번도 더 갔었지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어렵게나마 자제할 수 있었다.

“20명에서 30명 사이인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이 넓은 데서 어떻게 다 찾아.”

나딘이 이를 갈며 넓은 컴플렉스 전체를 휙 둘러보았다. 조금 전 정문을 돌파한 화물차는 여전히 불꽃을 뿜으며 타들어가고 있었고, 차가 들이받은 창고도 함께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그때, 그 너머 멀리에 또 다른 검은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잠깐, 저긴 또 뭐야? 또 화재야?”

나딘이 얼른 스코프로 확대해 보았지만 연기는 지상에서 무언가가 타면서 나는 건 아닌 듯 보였다. 그의 할룩스가 울린 건 그때였다.

그는 다급한 표정으로 나타난 쿠마르에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뭐냐?”

“3번 갱에 폭도가 들어온 것 같습니다. 우리 시설물에 불을 질러서 지금 광부들이 소화작업 중입니다. 치안군 4명이 조금 전에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3번 갱에 치안군이 갔다고? 그걸 들여보내?”

나딘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죄송합니다. 도저히 막을 명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놈들이 실험실이 있는 굴에 간 모양입니다. 혹시 몰라서 방금 이디나 과장이 내려갔습니다.”

“뭐? 대표단 놈들이나 제대로 간수하지 여긴 또 뭣 하러 와?”

나딘이 버럭 화를 내자 쿠마르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아무래도 공무원들은 적당히 뇌물 좀 줘서 설득으로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설득? 설득이라고 했냐? 이디나 과장이?”

무능한 여동생이 사고를 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딘이 불안감에 발을 동동 굴렀다. 혹시라도, 정말로 혹시라도 그들이 갱도에 있는 실험실 냄새라도 맡는 상황을 생각하니 눈앞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컴플렉스 안을 폭주하듯이 내달린 그는 얼마 걸리지 않아 문제의 3번 수직갱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둥지둥 차에서 내려 난간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본 그는 밑에서 올라오고 있는 연기와 악취에 얼른 입을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게 뭐야!”

“위험하니까 물러나십시오, 부장님!”

소화기를 들고 서성거리던 광부 한 명이 말렸지만 나딘은 그를 밀어내며 계단에 무작정 뛰어들었다.

그는 계단을 달려 내려가며 허리에 찬 ‘발사무기’의 안전장치를 슬며시 풀어놓았다.

“군인이든 누구든 절대 봐선 안 돼.”

나딘은 뒤를 따라오는 부하들에게도 단호하게 명령했다. 폭도든, 치안군이든, 설사 불을 피해 우왕좌왕거리다가 멋모르고 뛰어든 광부나 직원이라고 해도 이곳의 비밀을 알아낸다면 바깥세상에 그 사실을 영원히 알리지 못하도록 만들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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