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860화 (855/1,132)

< -- 860 회: Part 5. 오염된 자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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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리프 카파키의 일지 10

그날 우린 저주를 받은 게 분명하다. 카히나가 그 심판자였다.

검은 철성의 입구를 막고 선 카히나는 우리가 먼저 공격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공식 기록엔 그렇게 남지 않겠지만) 그는 우리에게 제발 공격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외쳤다.

그런데도 먼저 공격한 건 우리였다. 신의 이름을 걸고, 분명 우리 쪽이었다. 코메트들이 쏜 볼트가 거한들이 든 철판의 방벽을 때리며 따닥거리는 소리가 먼저 울렸다.

그 잠시 뒤, 계단 꼭대기의 카히나가 든 ‘긴 기계’가 무시무시한 천둥소리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귀를 찢는 소음과 번쩍번쩍하는 노란 불꽃이 소낙비처럼 우리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의기양양하던 코메트들은 순식간에 붕괴했다. 굉음에 겁먹은 병사들이 귀를 막고 자리에 주저앉았고, 후미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도망을 치기까지 했다. 먼저 도망친 자들이 차라리 옳았다. 카히나가 ‘불꽃’을 쏟아 부은 곳은 도살장이 되었다. 우리들의 방패와 갑옷은 무기력하게 찢겨나갔다.

선두의 테번은 사격을 명하던 자세 그대로, 사타구니와 팔에 그 ‘불꽃’을 명중당해 쓰러졌다. 주먹만큼의 살점이 뭉텅이로 찢겨 공중에 흩어지는 모습에 나는 그가 즉사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공격을 명했던 총사령관의 팔과 다리가 절반 남게 떨어져나간 채 살점에 매달려 너덜거리는 것을 본 병사들이 겁먹고 패닉에 빠진 걸 어찌 탓할 수 있을까.

한 병사는 머리가 터져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하게 되었고, 누군가는 발목을 잃은 채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몇 가닥의 근육과 피부에 겨우 매달린 팔을 질질 끌며 기어 도망가던 병사는 바닥을 타고 튕긴 ‘불꽃’에 턱을 맞고 즉사했다. 테번의 참모 하나는 자신의 배에서 쏟아지는 창자를 쥐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비록 짧았지만 공포, 공포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500명이 타죽었던 수로의 참상이 이곳보다 차라리 나았다.

신의 은총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구석 쪽에 있던 우리 단원들은 모두 큰 화단 뒤로 숨을 수 있었다. 아무도 고개를 내밀지 못했다. 나 역시도 무서워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지만 상황이 너무도 궁금했다. 용기를 내어 쳐다본 계단 앞에는 수십,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병사들이 시체가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운 좋게 일찍 몸을 피한 자들이 간헐적으로 반격을 했지만 그저 무기만 내밀어 위협사격만 할 뿐 앞을 제대로 보고 쏠 만큼 용감한 자도 없었다.

그때, 갑자기 천둥소리가 뚝 멎으며 기계 헛도는 소리가 났다. 나는 화단 너머로 다시 카히나 쪽을 확인했다. 그는 기계 밑에 끼웠던 상자를 빼 내버리고는 목에 걸고 있던 금빛 벨트를 다시 기계에 끼우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때가 반격의 기회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이미 공포에 사로잡힌 병사들 백에 아흔 아홉은 살아 도망칠 유일한 기회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와 비슷하게 생각한 또 한명이 그 자리에 있었다.

카히나가 무기를 다시 들려던 순간, 헤네티 출신의 한 중사가 시체더미 밑에서 튀어나와 카히나를 향해 석궁을 쏘았다. 볼트는 계단 중간에서 그를 지키는 거한들의 두꺼운 철판 사이를 교묘하게 스쳐 카히나의 갈비뼈 사이에 꽂혔다. (내가 왜 그때 비명을 질렀는지 모르겠다. 정작 카히나는 약간 휘청거렸을 뿐 꿋꿋이 버티고 있었는데.)

부상을 입은 카히나도 즉시 그 중사를 쏘았다. 하지만 급소가 아닌, 무기를 든 팔이었다. 그는 용감하게 나서서 자신을 쏜 중사가 죽지 않은 채 신음하는 모습을 분명 보았지만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도망치는 코메트 병사들의 등을 향해 다시 천둥 같은 불꽃을 난사했다. 볼트에 맞은 상처 위로 피가 번지고 있었고, 기계의 반동이 그의 어깨를 사정없이 흔들었지만 카히나는 고통스러운 표정 그대로 계속 기계를 들고 있었다.

그때, 어딘가에서 날아온 또 한 발의 볼트가 카히나의 손등에 맞았다. 두 군데나 상처를 입고 휘청거리는 그의 모습에 몇몇 병사들이 환호성을 올렸지만 난 그 광경이 내게는 너무도 괴로웠다.

무게중심은 이제 다시 기울고 있었다. 처음 몇 초간 수많은 병사들이 죽었지만 살아남은 병사들은 그 사이 피할 곳을 찾았고, 카히나와 생존자들은 더 갈 곳이 없었다. 상황에 익숙해지고 혼란이 수습되면서 도망치지 말고 돌격하라는 장교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누군가는 화염방사기를 찾았다.

그때 장교 한 명이 수십의 병사들을 동원해 정원에 있던 큰 철제 구조물(아마도 공장에서 썼던 화학약품 탱크였던 듯)을 앞세우고 카히나에게 전진하는 모습도 보였다.

- 저놈들 이제 끝입니다. -

단원들이 철제 구조물을 앞세우고 전진하는 병사들에게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지만 나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천둥 같은 굉음도 이젠 똑똑 끊겨가며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소리가 갑자기 뚝 멎어버렸다.

- 돌격이다! -

코메트들의 함성이 들렸고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숨어있던 화단 너머로 다시 머리를 들었다. 사격전이 끝나면서 이젠 도끼와 칼의 시간이었다. 계단에서는 지금껏 방패로 카히나를 지키던 거한들이 무수하게 몰려드는 코메트들과 간헐적으로 날아드는 사격을 이겨내며 계속 자리를 버티는 모습이었다. 그들 뒤쪽에서는 카히나가 옆구리와 손에서 피를 흘리며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 반짝거리는 걸 쏘는 거였나 봅니다. 그런데 이제 거의 떨어졌네요. -

누군가 그의 살인기계를 가리켰다. 기계에 꽂힌 ‘금빛 벨트’는 고작해야 한두 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천둥 같은 울림을 쉼 없이 쏟아낼 수는 없을 터였다.

-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텐데. -

내 혼잣말에 단원들은 아마도 쓰러진 병사들 중 누군가를 가리킨 것이라 짐작했겠지.

거한들은 분명 힘도 세고 몸도 빨랐지만 카히나 하나를 빼면 무장도 부실했고 이쪽의 숫자가 수십 배는 많았다.

그때, 동료들의 방패에 에워싸여 전열에 조심조심 접근한 한 화염방사기병이 그들의 대오 중간에 무서운 불꽃을 한 번 뿜어냈다. 이미 몇 발의 볼트를 맞고 몸에 불까지 붙은 거한 하나가 힘을 잃고 쓰러지면서 그들의 단단한 벽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헤네티 출신들이 화염에 쓰러진 자들을 짓밟고 중앙을 돌파하면서 난 그들의 저항도 이제 막판에 다다랐음을 깨달았다.

떼로 몰려드는 병정개미들에게 뜯기는 사마귀처럼, 거한들도 코메트들의 숫자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하나 둘 쓰러져갔다. 그들은 어마어마하게 강했고, 수많은 병사들을 죽였지만 분명 무적은 아니었다. 거한들이 거의 쓰러지고, 결국 카히나의 앞이 뚫리면서 그를 향해 병사들이 일제히 사격 자세를 취했다.

나는 옆에 있던 단원의 응급함을 빼앗아들고 무작정 앞으로 나섰다. 단원들이 말렸지만 나도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난 무기도 없이 싸움이 벌어지는 곳으로 달려가는 미친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 안 돼. -

내가 지른 비명이었다. 그때는 누군가 듣는다 해도 아무 상관없었다.

카히나의 옆에서 통역과 조언을 하던 긴 머리 아름다운 청년도 적들이 자신의 사제를 겨누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그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카히나 앞에 몸을 날렸다. 그는 수많은 볼트 대부분을 몸으로 막아내고는 카히나를 안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건 자살행위였다. 청년은 카히나의 가슴 위에 길고 까만 머리칼을 흘뜨린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뒷머리와 목, 등 뒤에는 온통 고슴도치처럼 볼트가 박혀 있었다.

청년은 외모처럼 그저 곱상하고 약해빠진 남자가 결코 아니었다. 내 생각 때문일까, 카히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굳어버린 그 젊은이의 생애 마지막 표정은 마치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허벅지와 어깨에 한 발씩을 맞은 카히나는 자신을 지키고 죽은 청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무언가 중얼거렸다. 그는 보좌하던 또 다른 젊은이의 부축을 받아 다시 일어났지만 주변은 온통 피에 흥분한 코메트들 뿐이었다.

병사들에게 에워싸인 카히나는 청년을 도끼로 치려는 병사를 향해 몇 발 남지 않은 ‘불꽃’을 한 발 쏘았다. 조금 전 동료들을 학살했던 굉음이 또다시 울리고 누군가 다시 쓰러지자 놀란 병사들이 뒷걸음쳤다. 몸에 네 발이나 되는 볼트가 박혀 있지만 카히나는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난 무작정 그에게 달려가 병사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병사들이 말렸지만 그때의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카히나는 나를 향해 그 무기의 끝을 휙 돌렸다. 난 그제야 자리에 멈췄다. 고작 대여섯 걸음 앞에 카히나가 서 있었다.

- 젠장! 신관님을 겨누고 있잖아! 모두 움직이지 마! -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얼른 카히나에게서 떨어졌다. 병사들이 내게 피하라고 외쳤지만 내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미쳤다고 할는지 몰라도.......난 그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난 엎드리지도, 도망치지도 않은 채 우뚝 서서 카히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나를 겨누고 있는 그의 피 묻은 얼굴, 가쁘게 내쉬는 거친 숨결, 무지개빛 눈동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카히나는 나를 겨눈 채 눈동자를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계단은 이미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거한들은 모두 시체가 되었고, 오팔 눈동자의 사제들도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검은 철성’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는 이제 피투성이가 된 카히나와 그를 끝까지 지킨 통역 청년 둘뿐이었다.

- 타리프 카파키. -

나는 가슴을 치며 그에게 내 이름을 알렸다. 카히나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눈빛이 조금씩 흐려지는 것 같았다. 코메트 장교가 내게 말했다.

-무기 내려놓고 항복하라고 하십시오! 저 남자놈은 우리말을 알아듣습니다. -

난 못 들은 척 했다. 아니, 저들의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날 인질로 삼아 혼자만이라도 이곳을 빠져나가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는 이곳에 대한 카히나의 애착이 너무 컸던 것 같다. 그는 나를 겨눈 채 절룩거리며 공장 안쪽으로 한 발 한 발 뒷걸음쳤다. 그의 다리를 타고 흐른 피가 바닥에 길게 흔적을 남겼다. 그가 나를 제대로 조준하고 있을 수 있도록, 나도 그 뒤를 조심조심 따라갔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둘의 모습이 공장 내부의 어둠 속으로 휙 사라져 버렸다. 나는 구급낭을 짊어지고 소리를 지르며 뒤를 쫓았다. 그 상태로 놔두면 죽을 것이 뻔했다. 추격은 어렵지 않았다. 군데군데 남은 핏자국이 그가 간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 카히나! -

그를 살리려 외치는 내 고함소리와, 추격해 죽이겠다는 병사들의 거친 군화 소리가 혈관 같은 낡은 파이프로 얽힌 깜깜한 공장 안에서 동시에 메아리쳤다. 오래된 쇠의 녹내와 기름 냄새, 무언가 탄 것 같은 악취가 죽어버린 공장의 내장 사이를 꽉 채우고 있었다.

나는 카히나의 핏자국을 쫓아 공장의 중앙 통로를 마구 달렸다. 미로 같은 구조와 어둠이 내 걸음을 중간중간 붙들고, 나를 넘어뜨렸지만 난 군데군데 남은 핏자국을 따라 계속 달렸다. 그때, 어디선가 쿵 하며 육중하게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다시 소리가 난 곳으로 황급히 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갑자기 나타난 빛과 눈앞의 광경에 압도당해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엔 직경이 30척(10m)도 넘어 보이는 원형의 탑이 이 공장의 거의 꼭대기까지 솟아올라 있었다.

카히나는 탑 앞에 꿇어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짧은 도주극의 끝이었다.

뒤따라온 병사들이 주변을 에워쌌지만 카히나는 조금 전보다 훨씬 평온한 표정이었다. 함께 들어왔던 청년은 그의 무릎 위에 웃음을 띤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청년은 행복해 보였다. 목이 박힌 단검이 아니었다면 다정히 포옹을 나누는 연인으로 알았을 만큼.

카히나는 그의 목에서 칼을 빼내고는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저 청년을 왜 죽였는지, 아니, 저 청년이 왜 사제의 손에 생명을 내주는 마지막 은총을 갈구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탑 옆에 있던 큰 통에서는 무언가가 타고 있었다. 언뜻 들여다보니 그의 무기는 아니었다.

- 무기는 어디 있소? -

나는 그가 우리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작정 물었다. 달아날 때만 해도 그의 손에 있던 무시무시한 무기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카히나의 눈동자가 탑으로 짧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비록 우리말은 몰라도, 그는 내 물음의 의미를 눈치 챈 것이 분명했다.

탑 앞쪽에는 금고문처럼 생긴 육중한 문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손잡이에는 누군가 피로 젖은 손을 댄 듯 붉은 얼룩이 있었다. 우리가 뒤쫓아 달려오는 새, 그는 저주스런 무기를 저 안에 봉인해 버린 것 같았다.

- 타리프 카파키? -

카히나는 나를 향해 엷게 웃어 보였다. 처음 본 그의 미소에 내가 기뻐할 새도 없이, 그는 대뜸 칼끝으로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 자신의 급소를 겨눈 그의 일격은 정확했다. 그렇지만 손을 베는 것도 아랑곳없이 칼날을 움켜쥔 나의 무모함이, 우리의 의술이 그의 마지막 선택을 빗나가게 만들어 버렸다.

카히나를 그때 처음 안아보았다. 고된 삶 속에서 여위고 뼈와 근육만 남은 그의 몸은 보들보들하고 살집이 오른 본토 여인들과는 딴판이었지만 그를 안았던 짧은 순간이 내겐 천국 같았다. 내 손으로 그의 목에서 흐르는 피를 막아주고, 상처를 감싸주었다. 그리고 나를 의사로 만들어 주신 위대한 신들에게 무한히 감사했다.

하지만 목숨을 건진, 아니, 죽는 데 실패한 카히나는 내 손 안에 계속 있을 수 없었다. 군인들은 겨우 응급조치만 끝낸 카히나를 도살장의 죽은 짐승처럼 질질 끌고 가 버렸다.

병사들의 관심이, 심지어 내 시선까지도 카히나의 뒷모습에 쏠려있을 때, 날 따라온 단원 한 명이 탑 옆에서 타고 있던 불 속에서 손을 데어가며 몇 개의 내용물을 끄집어냈다.

- 신관님 이거 보십시오. -

난 그 녀석의 무감각함을 순간 증오했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것을 본 순간 그 생각을 잊고 말았다.

- Zandiq -

언뜻 중간이 끊긴 원형 고리로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각각 숫자가 새겨진 열댓 개의 새끼손가락만한 막대가 마디를 이루어 줄줄이 연결된 것이었다. 마디 중 몇 개는 심하게 탔고 일부는 온전했다. 얼마 전 죽은 3명의 생존자들이 자신들의 머리에 박혔다고 증언했던 바로 그 [잔딕]이 분명했다.

나는 신음소리를 내며 끌려가고 있던 카히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는 자신들의 선조가 물려줬다는 이 끔찍한 처벌 도구를 없애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소원대로 이 잔딕 고리를 도로 불 속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본 사람이 너무 많았다.

단원들은 이 짧은 마디를 어떻게 떼어내야 하는지, 이것을 어떻게 머리에 심는다는 것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며 벌써부터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적당한 희생물만 찾아낸다면, 당장이라도 그자의 머리를 열고 저 막대를 꽂을 것 같은 분위기에 난 온몸이 오싹해졌다.

난 그제야 무언가 크게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카히나를 살려준 것이 어쩌면 내 이기적인 욕심 때문은 아니었을지, 그가 없애려 한 것을 말없이 불구덩이에 도로 처넣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지. 손에 무기만 안 들었을 뿐, 내 단원들도 코메트들과 똑같은, 아니, 어쩌면 더 위험한 존재들이 아닐까.

모르겠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어쩌면 카히나가 원하던 시나리오 결말대로 맺어주는 것이 정말로 그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를 살린 내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이마 388년, 다하카르의 달, 21일 16시.

구조단 총단장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마스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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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도 내용을 중간에 끊지 않으려다보니 또 길어졌네요;;; 오르마즈와 카렐, 황손들에게 벌어진 일의 정체가 슬슬 과거와 연결되기 시작하는 중요한 부분이라 끊기가 뭣하네요. ^^;;

* 잔딕(Zandiq)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이교도를 뜻하는 단어였지만 한편으로는 반역을 저지른 일부 이단에 대한 극단적인 처벌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산 채로 껍질을 벗긴 후 참수해서 살점은 개에게 먹이고, 벗겨낸 살점 안에 짚을 채워 성벽에 매달아놓는 방법으로 행해졌습니다.

특히 페르시아는 왕권 수호를 위한 법 집행이 엄격해서 뇌물을 받은 법관과 관료 같은 귀족들에게도 이 처벌이 행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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