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868화 (863/1,132)

< -- 868 회: Part 5. 오염된 자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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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 손대지 마라!”

부조종석에 있던 쿠마르가 마하 대군의 목에 칼을 대고는 페로와 베아트릭스에게 악을 썼다.

“씨이.”

페로가 입가를 씰룩거렸다. 셔틀 꼬리 쪽에는 칼을 든 베아트릭스와 카이가, 조종석이 있는 머리 쪽에는 마하를 인질로 붙든 쿠마르와 의사들이 모여 있었고 그 딱 중간에서 페로가 바닥에 쓰러진 아트위야를 짓뭉갠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난 마구스를 잡았고, 너흰 대군을 잡았군? 누가 더 유리하지?”

페로가 아트위야의 목에 댄 칼끝에 살짝 힘을 주었다. 창백해진 아트위야가 더듬거리며 그를 달래려 했다.

“제발, 진정해요, 페로. 난…….”

“닥쳐, 이년아! 누가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으랬나!”

아트위야의 턱을 움켜쥔 페로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트위야가 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페로의 눈을 가까스로 돌아보았다.

“다, 당신은 날 못 죽여요……그렇죠?”

아트위야가 억지로나마 미소를 지으며 가슴 위 이 거친 남자의 분노를 달래려 했다.

“당신은 이미 나한테…….”

페로의 눈을 올려보던 아트위야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핏발이 선 이 남자의 눈빛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 이오타를 유혹하려다 마주했던 그 단단한 벽처럼, 이 남자의 뭉개진 자존심과 무서운 분노는 그의 유혹으로도 뚫리지 않았다. 그는 상황이 훨씬 어려워졌음을 직감했다.

‘이런.’

“허, 내가? 너한테?”

페로가 늑대처럼 이를 드러내며 그의 뺨에 닿을 듯 입술을 가져갔다.

“내가 조강지처 마누라까지 독 먹여 죽이라고 했던 천하의 악질이라는 건 몰랐나?”

페로의 음산한 웃음소리에 아트위야의 눈앞이 아찔해졌다. 셔틀은 페로 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지만 양쪽의 대치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타협하지.”

궁지에 몰린 아트위야가 마지막 수를 내놓았다.

“닥쳐, 네년을 내 남쪽 안채에 쳐넣고 평생 손님들에게 몸이나 팔게 해 줄 테니까.”

“황제를 계속 밤마다 발작하게 놔두고 싶냐?”

‘황제’라는 말에 페로의 정신이 일순간 확 돌아왔다. 페로가 아트위야의 멱살을 움켜쥐며 물었다.

“뭐라고?”

“이 셔틀을 조종하고 있는 건 내 신도야. 내 한마디면 바닥에 내리꽂고 다 끝장이지. 그러면 황제 손목의 잔딕을 빼는 키는 영영 못 찾을걸.”

“잔딕?”

페로가 순간 숨을 멎었다. 카렐이 30년간 필사적으로 쫓아다녔던 그 끔찍한 병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네가 황자들 머리에 박으려 한 게…….”

“황제는 간뇌에 해당하는 기관이 손목에 있거든. 그래서 손목에 박았지.”

아트위야의 대답에 페로는 무언가로 꽝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네놈들이 그걸 왜…….”

“잔딕을 멋대로 뽑아내면 즉사해. 천하의 오르마즈 그놈도 결국은 자기 머리에서 못 제거했지.”

페로의 칼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는 상대가 그저 마구스 행세를 하는 사이비 교주 정도로 생각했지만 오르마즈까지 들먹거린다면 그 이상의 어떤 조직일 것 같았다.

“네년……대체 누구냐.”

“아참, 하나는 고쳐줘야겠군, 난 숨어 살긴 했어도 가짜 마구스는 아니라네, 젊은이. 유학자들이 알면 종교전쟁이라도 일으키자고 제국을 뒤집어엎었을 테니 똑똑한 황제가 아마 알면서도 비밀로 했을 게야. 자네도 유학자 아닌가.”

아트위야가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말문이 막힌 페로는 더 이상 뭘 물어야 할지, 이 여자를 대체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봐, 조종사, 안전장치 끄고 아무 곳이나 들이박아라.”

아트위야가 파란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씨익 웃었다.

“알겠습니다.”

조종실에서 들려 온 서슴없는 대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건 페로였다. 정말로 그리했다가는 자신은 물론이고 이곳에 있는 황자들과 베아트릭스, 그리고 ―이들의 말이 맞다면―카렐의 목숨까지 공중분해시키는 꼴이었다.

“그만! 그만!”

셔틀이 갑자기 앞으로 머리를 숙이자 당황한 페로가 악을 썼다.

“우훗, 귀엽기도 해라. 옛날에도 그리 예쁘더니.”

아트위야가 페로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짐짓 여유만만하게 웃었다.

“추락은 보류해라. 자, 조건을 말해 보시게나, 자이센 총리.”

아트위야가 능숙하게 상황을 리드했다. 페로의 칼이 목에 들어와 있지만 그는 겉으로는 전혀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직감한 페로가 질세라 그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제거하는 법을 말해주고 키를 넘겨준다면, 네 일행을 보내주마. 그럼 됐나?”

“국구이며 제국 총리의 이름으로 말이냐?”

“네가 갖고 있는 게 황제를 살릴 수 있다는 걸 믿을 수 있다면.”

“아까 잔딕 막대를 봤었지? 황빈?”

아트위야가 이번엔 베아트릭스 쪽을 쳐다보았다. 카이를 지키던 베아트릭스는 그의 난데없는 물음에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그게 뭐 어땠다고?”

“막대에는 각각의 번호가 있다고 했었지? 막대 옆에는 작은 구멍이 두 개 나 있고?”

“질질 끌지 말고 빨리 말하지 못해, 이년아! 황상을 어찌한 거냐고!”

초조해진 베아트릭스가 격하게 소리를 지르자 카이가 진정하라며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이런, 이런, 저 눈물겨운 애정이라니, 그렇게 황제를 사랑했으면 14번 막대를 우리에게 돌려주지 말았어야지.”

아트위야의 낮은 비웃음이 셔틀 안을 울렸다.

“뭐?”

“황제의 손목엔 13번이 들어있고, 그걸 안전하게 빼려면 앞의 12번과 뒤의 14번을 양쪽 구멍에 꽂아줘야 하거든.”

아찔해진 베아트릭스가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조찬 석상에서 잠시 그의 손에 들어왔다가 저들 손으로 도로 빠져나갔던 그 금빛 막대가 바로 황제의 생명줄이었다.

“더 화를 낼 것 같아 미안하지만, 우리가 왜 14번과 15번을 황자들에게 설치하려 했었는지 좀 생각해 보라고.”

“이익.”

순간 페로와 베아트릭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13번을 가진 황제가 지 살려고 자식을 죽여 막대를 꺼내야 할까? 아니면 자식이 지가 살자고 황제와 형제에게 칼을 겨눌까? 결과가 재밌지 않겠는가, 하긴, 황제야 자식들이 다 크기도 전에 먼저 죽을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말이야.”

이들의 소름끼치는 계획을 비로소 깨달은 페로의 이에서 빠드득 하고 긁히는 소리가 났다.

“배를 갈라 창자를 씹어 먹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이년아.”

“지금 못 하면 어차피 영영 못 할걸 뭔 소리는 못 하겠나? 총리.”

아트위야가 앞니를 드러내며 미심쩍게 웃었지만 페로로서는 이자의 말을 무조건 불신할 수도, 덮어놓고 믿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이 여자가 중간중간 중얼거리는 바람어도 영 귀에 거슬렸다.

“어떻게 수술하는지도 알려줘야지?”

페로가 아트위야의 목에 칼을 더 바싹 들이댔다. 아트위야는 하심에게 가방을 빼앗기고 온 멍청한 의사를 힐끔 노려보았다가 다시 페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 건 너희가 빼앗아 간 가방에 있으니 확인해 봐라. 난 거짓말한 게 없네. 마구스로서 명예를 걸고 말일세.”

아트위야가 계속 여유를 부렸다. 그가 이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셔틀은 3번 도시의 경계를 벗어나 남쪽의 대사막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인질 신세를 못 면하고 있던 마하 대군이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허튼 짓 하지 마.”

쿠마르가 마하의 목을 꽉 조르며 무섭게 말했다.

“정신 차렸다는 거 아니까 연기할 생각 따위는 집어 쳐.”

“왜 그러세요, 우리 엄마는 카이 오빠 엄마만큼 강골이 아니시라고요.”

마하가 혀 풀린 소리로 느릿느릿 대답했다.

“저 정말로 힘들어 죽겠어요.”

마하가 훌쩍거리는 모습에 쿠마르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 푸른 눈 소녀는 어른인 그가 봐도 가슴이 설렐 만큼 말 그대로 인형 같아 차마 험한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어쨌든 닥쳐.”

“연기하는 건지 아닌지 10골드 내기 하실래요?”

“알아, 아니까 닥쳐.”

“저 정말로 찌르실 건 아니죠?”

마하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파란 눈동자를 크게 뜨며 쿠마르를 올려보았다. 입 다물라고 소리를 지르려던 쿠마르는 이 아름다운 소녀의 눈에서 당장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물방울에 놀라 막 하려던 말을 꾹 삼켜버리고 말았다.

“가, 가만히만 있으면.”

“약속하기에요. 저 상처내면 꼭 10골드 받을 거예요. 안 주면 더한 거라도 가져갈 거예요.”

마하가 마치 우는 것처럼 작은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그 와중에도 그의 큰 눈은 조종사의 손이 왔다갔다하는 계기판의 각종 레버와 스캐너를 훑고 있었다.

“빨리 12번과 14번 막대 내놓으라고! 마하 대군도!”

페로의 쩌렁쩌렁한 고함이 다시 셔틀 안을 울렸다. 짧은 침묵 속에서 조종사가 긴장한 듯 레버를 신경질적으로 똑똑 두드리는 소리와 아트위야가 중얼거리는 바람어 혼잣말이 가끔 들려왔다.

“그 빌어먹을 잡소리 좀 집어치고!”

아트위야는 옆에서 풀죽은 채 서 있던 의사에게 무언가를 가져오라 손짓을 보냈다. 조금 전 가방을 빼앗기고 돌아와 고개도 못 들고 있던 그는 현신의 부름에 즉시 고개를 숙이고는 부조종석의 쿠마르에게로 달려갔다. 마하를 붙들고 있던 쿠마르는 입을 씰룩거렸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는 조종석 선반 위에 있던 가방에서 금빛 막대가 든 튜브를 꺼내 건네주었다.

의사는 아트위야를 내리누르고 있던 페로와 적당한 거리로 다가가 막대를 내보였다. 분명 아침에 봤던 그 막대였다.

“먼저 현신님에게서 물러서시오. 마하 대군은 셔틀에서 내릴 때 풀어주겠소.”

페로는 그제야 아트위야에게서 칼끝을 떼고 몸을 조금 일으켰다.

“허튼수작 부려 봤자 어차피 우리 손바닥 안이니 알아서 해라.”

막대를 받기 전, 페로가 조종석 쪽에 모여 있는 의사들에게 으르렁거렸다. 이쪽에 어른은 페로와 베아트릭스뿐이지만 둘 다 내로라하는 무장들이니 싸움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의사들을 몰살시키기는 충분했다.

페로에게서 풀려난 아트위야가 저린 다리를 질질 끌며 의사들이 있는 곳으로 급히 물러났고, 막대를 든 의사가 페로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있는 막대는 달랑 하나뿐이었다.

“왜 하나야?”

눈을 부릅뜬 페로에게, 그 의사가 갑자기 기이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런!”

그자의 표정을 읽은 페로가 아트위야 쪽을 휙 돌아보았다. 그새 뒤로 물러난 그 여자는 좌석에 있던 끈을 허리에 재빨리 채우며 씨익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잘 가게, 총리.”

“뭐?”

페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완충장치 해제]를 알리는 날카로운 경보음과 동시에 셔틀이 공중으로 머리를 들며 무서운 속도로 가속을 시작했다.

“우, 우앗!”

갑작스런 관성에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중심을 잃고 일제히 뒤쪽으로 확 쏠렸다. 변변히 잡을 것도 없는 셔틀 캐빈 중간에서 중심을 잃은 페로도 의사의 옷자락을 덥석 붙잡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는 의사와 함께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셔틀 꽁무니 쪽 베아트릭스가 있는 곳으로 튕겨나갔다.

“각하!”

벽을 붙든 베아트릭스가 넘어져 굴러오는 페로를 붙잡았다. 그렇지만 셔틀 뒤쪽의 해치 문이 다시 열리면서 페로는 강풍에 밀려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저 개 같은 년이 날 속였어!”

무서운 속도로 가속하는 셔틀의 뒷문까지 열리면서 내부는 날아다니는 물건들과 바람, 사람들의 비명으로 아비규환이 연출되었다.

“뭐 저런 미친 년이!”

벽 모서리를 붙든 페로가 비명을 질렀다. 장태자를 한 팔에 껴안고 버티는 베아트릭스도, 억지로 매달린 페로도 눈조차 뜰 수 없었다. 안쪽에 있는 의사들도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 매달렸지만 문 바로 옆에 있는 페로 일행보다는 나았다.

“씨발! 당장 문 닫지 못해!”

페로가 앞으로 나아가려 악을 썼지만 돌아온 건 더 강한 가속으로 또다시 뒤로 밀려난 것뿐이었다. 조금만 더 밀려났다간 밖으로 빨려나갈 판이었다. 해치 문이 점점 크게 열리고, 셔틀이 좌우로 마구 흔들리며 그들을 더 끔찍한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한 손에 잔딕 막대를, 한 손에 의자를 붙든 페로는 등 뒤로 열리는 큰 문을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당장 닫아!!!”

조종석에 가까운 곳도 정도만 다를 뿐 아수라장이 되었기는 마찬가지였다. 쿠마르도 자신의 몸에만 허둥지둥 좌석벨트를 맸을 뿐 인질로 잡힌 꼬마까지 친절하게 챙겨주지는 않았다. 놀라 버둥대는 마하를 한 손으로 끌어안고 거칠게 윽박질렀다.

“꼼짝하면 죽을 줄 알아!”

“내가 뭘 어쨌다고요.”

마하가 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정말로 그는 잡히고 나서 단 한 번도 저항도 하지 않았고 신경질을 낸 일도 없었다. 이 꼬마는 이름 그대로 순한 양 같은 순종적인 아이였다.

그때, 셔틀이 옆으로 크게 흔들리며 중심을 잃은 마하가 비명을 지르며 쿠마르의 몸 위로 나동그라졌다.

“이크!”

잔뜩 긴장하고 있던 쿠마르가 지레 놀라 비명을 지르며 꼬마를 확 밀어냈지만 그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없었다. 도리어 상처가 난 건 쿠마르가 반사적으로 휘두른 칼에 팔을 베인 마하 쪽이었다.

“안 벤다고 해 놓고!”

셔틀이 또다시 크게 흔들리고 사람들이 한쪽으로 확 쏠린 순간, 지금까지 내내 기회만 엿보던 마하는 자신의 멱살을 쥐고 있던 쿠마르의 손을 이로 꽉 물어버렸다.

“아악!”

손을 물린 쿠마르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놓치고 말았다. 그의 손에서 풀려난 마하는 강풍과 무서운 가속 압력을 뚫고 옆의 조종석에 와락 매달렸다. 당황한 쿠마르가 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무슨 일인지 버클이 풀리지를 않았다.

“뭐야!”

그제야 버클을 본 쿠마르는 저 꼬마가 방금 몸 위를 덮쳤을 때 좌석벨트 버클 틈새에 무언가를 몰래 쑤셔 넣은 것을 발견했다. 얼떨결에 의자에 묶여 못 빠져나가게 된 쿠마르가 마하를 가리키며 비명처럼 고함을 질렀다.

“꼬마 잡아!”

쿠마르가 악을 썼지만 이 아비규환에서 마하를 잡겠다고 쫓아올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종사가 한 팔을 휘둘러 마하를 쫓아내려 했지만 이 꼬마는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캐빈 문을 닫는 레버를 확 내리고는 틈새에 종이 뭉치를 꽉 쑤셔박았다.

“이년이!”

마하를 발로 차낸 조종사가 다시 레버를 올리려 했지만 속에 낀 종이 때문에 움직이지를 않았다. 문이 닫히면서 바람이 약해지고 있었다.

궁지까지 몰린 아트위야가 조종사에게 악을 썼다.

“안되겠다. 그냥 떨어뜨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셔틀이 공중에서 옆으로 핑그르 돌며 바닥으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비명이 다시 울렸고, 바닥을 몇 바퀴 구른 베아트릭스와 페로, 카이도 가까운 의자 다리에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중력과 무중력을 오가는 엄청난 압력에 방향감도 마비되어 정신도 차릴 수 없었고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셔틀 내부에 ‘추락 위험’을 알리는 날카로운 경보가 귀를 찢듯이 울리며 이 아수라장을 더 정신없이 뒤집어 놓았다.

“떨어져요!”

창밖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누런 지면을 보며 카이가 비명을 질렀다. 가까스로 빈 자리에 엉덩이를 댄 베아트릭스가 장태자를 품 안에 힘껏 끌어안으며 몸을 최대한 움츠렸다.

“움직이지 말아요! 카이!”

“마하! 마하! 어딨니!”

카이의 피 끓는 절규가 캐빈 안을 울렸다. 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조종석 쪽에서 도망쳐 나오려던 마하가 중심을 잃으며 벽 뒤로 쑥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마하!”

흰색의 거대한 풍선이 각 좌석 주변에 연속적으로 터지며 카이와 베아트릭스를 에워쌌다. 땅에 떨어지기 직전 자동으로 조각조각 흩어지는 셔틀의 동체도, 아트위야에 대한 저주를 퍼부으며 멀어지는 페로의 모습도 완충제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우앗!”

충격을 느낀 카이가 베아트릭스의 팔을 꽉 껴안았다. 수천 수만 개의 동체 조각이 황량한 대사막에 유리조각처럼 흩어졌고 각 좌석에서 터진 수십 개의 큰 풍선이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마지막으로 2개의 거대한 엔진이 굉음을 내고 지면에 꽂히며 추락사고도 끝을 맺었다.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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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짧게 자르려고 했는데 맥이 끊겨서 어쩔 수 없이 또 길어졌네요.

출판본 작업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서 손질해놓은 비축분이 얼마 남지 않아 다음 편부터는 어쩔 수 없이 짧게 자를 수밖에 없겠네요. ㅠ.ㅜ

조만간 3부의 첫 번째 출판공지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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