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70 회: Part 5. 오염된 자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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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리프 카파키의 일지 - 12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의사로서 누군가가 살아 깨어났다는 것을 기뻐해야 했지만 이번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가 차라리 고통 없이 평온하게 세상을 떠나주기를 바랐었다.
우리가 [세타]라고 이름을 붙였던 그 남자 사제는 먼저 세상을 떠난 카히나의 뒤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았다. 두개골이 파열되고 뇌손상이 심해 소생불가라고 판정되었던 그 사제는 놀라운 의지력으로 결국 다시 눈을 떠서 우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렇지만 기뻐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카히나의 죽음 이후 생존자 수색을 사실상 포기했던 코메트들은 전면 철수를 채 열흘도 남기지 않고 갑작스레 눈을 뜬 그를 가리켜 복권이라고까지 불렀다. 하지만 그들에겐 복권이었는지 몰라도 저승 문턱에서 돌아온 본인에겐 끔찍한 재앙이었다. (나머지 생존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는 의식이 들기가 무섭게 병상에서부터 손발을 자르겠다는 협박을 당했고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끌려나가 반나절이나 매질을 당했다.
그가 카히나처럼 꿋꿋이 고문을 버티어내지 못했다고 나무랄 수는 없다. 아니, 그 몸으로 반나절이나 버틴 그가 놀라웠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만큼이나마 버틸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그저 카히나가 목숨까지 내던져 지키려 했던 생존자들이 결국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저승사자들의 손에 내던져진 것이 분통할 뿐이다.
몇몇 공통된 어휘를 빼면 우리는 그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코메트들이 심문을 하는 데는 그리 많은 어휘도, 복잡한 문법도 필요치 않았다. 몸도, 마음도 모두 약해진 그에게 종이와 펜을 들이대고 윽박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자신을 [투르]라고 밝혔고 나이는 98살이라고 했다. (세상에, 그의 외모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30대 이상으로는 안 보이는데!!!) 특별한 눈동자 색을 가진 사제들이 나이를 다르게 먹는 건 분명해 보인다. 바로 그 이유가 위대한 현신께서 애타게 찾으시는 것 아니던가!!!
그의 말에 따르면 9달 전 우리를 피해 이 마을을 떠났던 생존자는 총 331명이었지만 그 중 100명 가까이가 1년을 못 버티고 죽은 모양이었다. 30여명의 아이들이 새로 태어났지만 아기들은 거의 죽었다고 한다. 이렇게 사망자가 많은 건 식량부족과 우리와의 충돌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은 20대 중반이면 바깥 활동도 못 할 만큼 늙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검은 철성 주변에서 기거했지만 우리의 공격 직전, 카히나의 지시를 받은 ‘파란기스’라는 사제 일족 여자를 따라 철성에서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코메트들은 다시 원정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소수의 수색대가 먼저 출발했고 무장한 본대가 곧 출발할 예정이다. 이제 코메트들의 목표는 오직 영생하는 오팔 샘플 생체뿐이다. 남자 오팔은 구했으니 이제 여자 샘플을 구하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카히나는 죽었고, 또 다른 사제 일족인 파란기스가 이제 그들의 목표인 것 같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도 꼭 따라가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큰 죄악을 저지르는지, 나는 반드시 보고 기록에 남기려 한다.
이마 388년, 바유의 달, 20일 02시.
구조단 총단장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마스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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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시여, 당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왜 이런 혐오스런 일을 벌하지 않고 보고만 계셨나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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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무자비한 학살자들의 껍질 안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을까 벗겨보고 싶었다. 동굴 안에 들어간 2백여명의 코메트들은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다. 차라리 임무를 거부하고 군법재판을 택한 몇 안 되는 병사들이 정상인이었다.
그들은 이미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2천여 병력이 총동원되어 바위산을 완전히 포위했고, 공중에서는 셔틀과 프리깃이 총동원되어 혹시 모를 비상 탈출구로 빠져나오는 생존자들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아이와 노파들이 절반 이상인 200명도 안 되는 민간인을 잡기 위해서 우리는 이 미친 짓을 저질렀다.
10대가 넘는 화염방사기의 불꽃이 이 끔찍한 학살극의 시작이었다. 병사들에게 주어진 명령은 하나였다.
- 파란기스를 빼고 모두 죽이고 태워라. 다음번 현신을 죽인 오염된 자들이다. -
그들이 원하는 건 본토에서 원하는 ‘오팔 눈동자의 살아있는 샘플’ 뿐이었다. 나머지 생존자 따위는 안종에도 없었다. 난 우리 단원들에게도 뒤따라 들어가라고 했다. 내 명령은 하나였다.
- 샘플이라는 핑계로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살려라. -
말리는 병사들을 뿌리치고 동굴로 들어간 우리는 그 안에서 지독한 연료의 악취와 살점 탄내를 맡았다. 그곳에서 우리를 맞아준 건 입구를 지키던 소년의 까맣게 탄 시체였다. 신참 단원 하나는 그 자리에서 놀라 까무러졌고, 또 하나는 더 못 들어간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난 그들의 멱살을 쥐고 동굴 안으로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우리의 미친 짓을 똑똑히 보고 기억해 두라고 윽박질렀다.
동굴은 복잡한 미로 같았다. 수십 개의 갈래길이 있고 넓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하며 우리의 방향감각을 앗아갔다. 곳곳엔 이들이 만들다 만 것으로 보이는 방어벽과 새로 파던 굴들이 보였고, 벽에는 정체불명의 검은 칠이 되어 있었다.
안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개인 소지품들과 식량, 옷가지와 침구류들이 그대로 남아 이곳 주민들이 얼마나 다급하게 도망을 쳤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은 사제 일행의 몰살로 자신들은 일단 살 수 있을 것으로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이 복잡한 동굴 구조도 그들을 지켜줄 수는 없었다. 화염방사기의 무시무시한 붉은빛 혀가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그곳에서 가지를 친 수많은 동굴들 전체가 모조리 불지옥으로 변했다. 그리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채 공포에 떨던 생존자들의 찢어지는 비명과 끔찍한 탄내가 우리의 감각을 타고 머릿속까지 아찔하게 뒤흔들었다.
(빌어먹을, 성직자라는 인간이 이런 곳에 있어야 한다니!!!)
이유는 몰라도, 이 안에서는 할룩스도 먹통이었고, 소리조차 멀리까지 나가지를 못했다. 암흑천지의 동굴 속에서 동료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병사들은 더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불안감에 사로잡힌 그들은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구멍에는 무조건 불부터 쏘아대며 광기어린 학살극을 벌였다. 몇몇 생존자들은 자진해 나타나 자비를 애원했지만 화염방사기는 그들에게도 예외 없이 불꽃을 뿜어댔다. 비명소리가 쉴 새 없이 동굴을 울렸고, 그런 구멍마다 불탄 시체가 군데군데 남아 우리를 저주했다. 그렇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병사들의 불안감과 광기는 도리어 점점 더해갔고, 그들은 두려움만큼 더 잔혹해졌다.
그렇지만 반격은 없었다. 기습을 당한 그들은 도망갈 곳도, 저항할 수단도 없는 상태였다. 동굴 거의 끝까지 내려가서야,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에 거대한 공간이 나타난 순간, 병사는 반사적으로 화염방사기부터 당기려 했다. 그곳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나는 몸을 날려 그자를 막고 뺨을 때렸다. 그리고 안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직도 만족 못 하셨소. -
발음이 약간 어색했지만 분명 우리말이었다. 맘껏 화염방사기를 쏘아대던 병사도 그 말에는 움찔하며 바로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뒤이어 도착한 병사들이 동굴 안에 랜턴을 켜자 상황이 좀 더 확실해졌다. 널찍한 지하 공간에는 출구가 양쪽으로 2개 있었고, 반대편 구멍에서도 우리와 반대방향에서 출발해 거의 동시에 도착한 다른 팀의 병사들이 석궁을 겨누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이 끝이었다.
- 파란기스? -
우리를 막아선 그 여자는 보통 키에 어깨까지 늘어진 검은 머리칼을 한 야무진 인상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20대 후반 혹은 30대 중반 정도였지만 사제 일족이라면 그보다 훨씬 오래 세상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여윈 얼굴에 살도 붙고 제대로 씻고 꾸민다면 20대의 미녀처럼 보일 것도 같다.
하지만 코메트들에게는 퍽이나 실망스럽게도, 오팔 눈동자는 아니었다.
- 그럼 이제 만족하시오? -
중간에 서 있던 파란기스는 이 마지막 굴 구석에 모여 떨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곳엔 누추한 모습을 한 노인과 아이, 병자들 1백여 명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끌어안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동굴 곳곳에 숨거나 도망을 다니며 살려는 시도라도 벌일 수 있었지만 그들도 이제 몰살당했고, 마지막 남은 이들은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는 어린아이들과 노약자뿐이었다.
눈에 익은 모습도 여럿 보였다. 몇 달 전, 마을 부근에서 식량을 가져가다가 공격당했던 그 무리에서 보았던 사람들이었다. 얼굴과 팔을 크게 데인 채 어른의 품에서 울던 꼬마는 이제 제법 커져 다른 아기를 돌보고 있었고, 팔이 잘린 채 동료들에게 업혀갔던 남자는 어머니로 보이는 한 노파의 품 안에서 서로의 얼굴을 만지며 흐느끼고 있었다.
- 이 정도 목숨을 갖다 바치면 만족하겠냐고! 이 살인마들아! -
파란기스가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화염방사기를 노려보며 울부짖었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 있던 한 아기가 난데없이 아장아장 걸어 나와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 엄마. -
감정이라고는 거세된 듯 보였던 병사들의 표정이 그때 처음으로 흔들렸다. ‘엄마’라는 단어는 우리와 저들이 똑같이 쓰는 몇 안 되는 단어였다.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꼈는지, 아기는 파란기스의 다리를 껴안고 계속 엄마를 부르며 울고 있었다.
카히나가 왜 이 여인에게는 다른 사제 일족을 떠나 홀로 목숨을 지키도록 했는지 그 이유가 이제 분명했다.
- 마샤나그 -
파란기스가 공포에 질려 울고 있는 아기를 안아들었다. 나는 아기의 눈부터 보았다. 아기는 엄마의 검은 눈동자와는 완전히 다른 회색빛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뒤편 구석에서 웬 노파가 안고 있는 좀 더 작은 아기의 눈동자도 회색이었다. 그저 느낌이었을까, 뒤쪽에 있는 작은 아기의 얼굴은 어딘지 카히나를 닮은 것 같았다. 그 아기 역시 오팔은 아니었지만.
아기를 안은 어머니 앞에서, 병사들도 차마 화염방사기를 당기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그때, 동굴 뒤쪽에서 지켜보던 코메트 장교가 말했다.
- 파란기스만 빼고 다 소각해. -
맘이 흔들렸던 병사들도 결국 자신의 임무로 돌아가고 말았다. 장교 중 누군가가 ‘빨리’를 외치면서 차마 보고 싶지 않았던 끔찍한 광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사관 한 명이 달려나가 파란기스를 칼집으로 때려 쓰러뜨리면서 마지막 학살극이 시작되었다. 생존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고, 무기를 든 병사들이 그들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저항도 못 하는 민간인들을 향해 볼트가 꽂혔고, 즉사하거나 부상을 입고 쓰러져 못 움직이는 그들 위로 화염이 쏟아져 남은 목숨을 마지막으로 끊어냈다.
갓난아기도, 노인도, 젊은이도 구분하지 않았다. 칼집으로 파란기스를 쓰러뜨린 사관은 아기를 빼앗아 옆에 동댕이치고는 엄마만을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 저 미친 놈들! -
격분한 내 단원들이 결국 들끓기 시작했다. 화염방사기의 열기가 잠시 주저하게 했지만 성직자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나도, 우리 단원들도 그 이상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 아기를 구하라고 하지 않았냐! -
내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분노를 이기지 못한 젊은 신입 동물학자 단원이 화염방사기병을 뒤에서 밀어 쓰러뜨리고는 제일 먼저 굴 안에 난입했다. 그리고는 화염에 타 죽을 뻔했던 파란기스의 아기를 껴안았다.
단원을 쫓아가려던 나는 또 다른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곳에서는 조금 전 보았던 회색 눈동자의 아기를 안은 노파가 쓰러진 동료 생존자들의 시체 사이에서 엉금엉금 기어 도망치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막 고개를 들었던 그 노파 역시 얼굴에 볼트를 맞고 그대로 고개가 뒤로 꺾이고 말았다. 그때까지 찢어지게 울던 갓난아기도 쓰러지는 노파의 가슴에 안긴 채 바닥에 쿵 떨어졌다.
- 안 돼, 이건 아냐. -
난 말리는 단원들을 뿌리치고 시체와 부상자 무더기에 파묻힌 노파에게로 달려갔다. 아직 숨이 붙어있던 노파가 고함을 지르며 아기를 지키려 했지만 그 순간만은 다른 선택이 없었다. 난 힘으로 아기를 빼앗았고, 노파는 ‘세네피스’라는 말을 연발하며 아기를 다시 붙잡으려 버둥거렸다. 그때, 내 등 뒤로 어마어마한 열기가 느껴졌다. 놀란 나는 아기를 끌어안고 도망치다가 누군가의 몸에 발이 걸려 엎어졌다. 미친 코메트들은 내가 있건 없건 계속 화염방사기를 쏜 것이었다.
날 쫓아온 단원들이 몸에 불이 붙은 채 넘어진 나를 시체 구덩이에서 끄집어냈다. 내 신발과 옷자락은 불이 붙어 타고 있었고 한쪽 팔뚝은 고열에 시뻘겋게 익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픈 것을 전혀 몰랐다. 아니, 내 살이 탄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날 붙들던 노파와 그 주변에서 살아 꿈틀대던 생존자들까지 이미 시커먼 숯덩이가 되어 있었다.
- 구조단 놈들 쫓아내! 아기 빼앗고! -
소란을 듣고 코메트 고위 장교가 뒤따라온 병사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곳에 온 이후 묵히고 묵혀 온 코메트와 우리와의 갈등이 결국 물리적 충돌로 처음 번진 순간이었다. 단원들은 각자 구한 아이나 부상자들을 데리고 뒤따라 빠져나오려 했지만 병사들은 그들을 쓰러뜨리고 생존자들을 다시 빼앗아갔다.
나는 [마샤나그]를 안은 동물학자 단원과 함께 반대편 굴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다른 단원들이 우리를 막으려는 병사들을 붙들고 늘어지며 나갈 길을 뚫어주었다. 텅 빈 출구가 우리 앞에 입을 벌리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못 가십니다! 신관님! -
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그 뒤에 숨어 지키던 두 병사가 불쑥 나타나 우리 앞을 막아섰다.
- 아기를 돌려주십시오. -
나는 병사에게 울고 있는 아기를 내보이며 호통을 쳤다.
- 그래, 줄 테니까 꼭 네놈이 태워 죽여라! -
앞서 있던 선임병은 내 협박에 충격을 받았는지 머뭇거리며 내 품의 작은 아기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두 병사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그리고 그 병사의 팔 밴드에 꽂혀 있는 아내와 갓난아기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병사는 눈동자를 굴려 주변에 누가 없는지를 살피는 것 같았다.
- 트라카의 은총이 함께하길. -
난 병사의 종아리를 힘껏 걷어차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내 발길질은 서툴고 둔했지만 병사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중심을 잃은 척 옆으로 넘어졌고, 뒤에 있던 다른 병사도 젊은 동물학자 단원의 주먹질을 멍하니 서서 얻어맞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와 그 젊은 단원은 미로 같은 동굴을 정신없이 달렸다. 생존자들 모두를 살리지는 못했지만, 이 두 아기라도 살려내야 저승에서 신의 얼굴을 감히 올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동굴을 수색하던 병사들 몇을 마주쳤지만 안쪽에서 연락을 못 받은 그들은 아기를 안은 채 실성한 듯 달려가는 두 성직자들을 멍한 얼굴로 쳐다볼 뿐이었다.
아기는 그 와중에도 계속 울었다. 괴물의 울부짖음 같은 화염방사기 소리가 동굴을 타고 울려올 때마다, 이 작은 아기는 자신의 몸이 타고 있는 듯 파르르 떨면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더 크게 울어 나를 당황하게 했다.
- 제발 울지 마라, 아가야. -
난 아들 녀석이 어릴 때를 되새기며 아기를 달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 제발, 세네피스. -
난 울다 못해 숨이 넘어가버린 아기의 등을 만져주며 이름을 불렀고, 그 한 마디에 울음소리가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세네피스]가 이 아기의 이름이 분명했다.
- 세네피스. 예쁜 이름이구나. 착하지, 울지 마라, 아가야. -
난 아기의 여윈 뺨에 내 까칠해진 얼굴을 부볐다. 할딱거리며 작게 새어나오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내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아기에게 울지 말라고 쉴 새 없이 다독이면서도, 정작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짙은 살점 탄내가 병사들보다 앞장서 내 뒤를 쫓아와 숨을 막히게 했다.
- 저기 입구입니다! 다 왔습니다! -
단원이 외쳤다. 나는 비로소 흐릿하나마 햇빛을 보았다. 심장이 터지고 다리가 풀려 쓰러질 것 같았지만 난 동굴 주변에서 어리둥절한 눈길로 우리를 쳐다보는 병사들 사이를 기를 쓰고 달렸다. 저들이 실상을 알고 날 막아서기 전에 반드시 그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두 아기들은 햇빛 아래에서 그제야 울음을 멈추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둘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울음을 멈추고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조랑말에 올랐다. 그리고 햇빛 아래서 처음으로 아기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이 아기는 카히나와 너무 많이 닮았다. 아니, 혹시 가족 중 하나일까? 더 놀라운 것도 발견했다. 햇빛이 아기의 동공에 반사되며 아주 희미하게 무지개빛이 보였다.
- 설마, 오팔이 뒤늦게 나타나는 거였나? -
난 단원이 안고 있던 마샤나그도 급히 확인했다. 조금 더 자라서일까, 마샤나그의 무지개빛은 세네피스보다 약간 더 선명했다.
- 세상에, 둘 다 오팔입니다! 현신께서 원하시던 그 오팔이라고요! -
젊은 단원이 듣기에 거북할 만큼 격앙된 어조로 말했지만 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조랑말을 출발시켰다. 그리고는 과하게 흥분해 있는 그 젊은이에게 일부러 냉담하게 답했다.
- 아니라고 해서 목숨의 가치가 달라지는 건 아니라네, 아프라스 야투 군. -
이마 388년, 바유의 달, 20일 13시.
구조단 총단장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마스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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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분들이 문의를 주셔서 덧붙입니다. [파란기스]는 페르시아 전승에서 위대한 왕 카이 쿠스로우를 낳은 전설적인 태후의 이름입니다. 역사적인 인물의 이름입니다.
아참, 이번주 금요일 (13일) 저녁 9시 30분에 팬카페에서 이전처럼 정팅이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석해 주세영
<12일부터 3부 1, 2권 출판본 예약을 시작합니다. ^^ >
예약공지는 그 전날쯤 이곳과 팬카페, 주문게시판에 동시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전에 주문주신 분들께는 메일로도 통지됩니다. 예약메일을 보내면 되돌아오는 메일이 많은데, 혹시 이전에 출판본을 주문하셨는데 예약공지가 가지 않는다면 새 메일주소를 작가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아참, 그리고 출판본 교정작업을 도와주실 분들을 4분만 모십니다. 출판본을 조금 먼저 볼 수 있는 기회(?)와 출판본 한 권 가격을 할인해 드릴 예정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 작가쪽지로 보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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