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872화 (867/1,132)

< -- 872 회: Part 5. 오염된 자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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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대로, 코메트들은 생존자들을 ‘박멸’하는데 성공했다. 보통의 생존자들은 모두 죽었고, 이제 남은 건 그들의 통제 하에 있는 두 어른 생존자와, 내가 데리고 있는 두 아기뿐이다.

아니, 잘못 썼다. 이젠 어른 생존자는 하나뿐이다.

남자 사제 투르는 고문에 굴복해 동족들의 은거지를 실토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학살을 마친 코메트들이 마을로 돌아오고 있을 오후 무렵, 여전히 병상에 있던 그는 추가심문을 하러 온 정치장교에게서 ‘토벌작전 최종완료’ 소식을 전해 들었다 했다. 그는 말을 듣는 내내 아무 반응이 없이 굳어 있었다고만 한다.

하지만 한 시간 후, 의무병이 경보에 놀라 달려왔을 때, 그는 더 이상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외상도, 먹은 약물도 없었다. 그는 볕이 드는 창에서 고개를 돌린 채 멍하니 눈을 뜨고 있었고, 숨이 끊기기 직전 흘린 눈물로 베개와 담요는 흠뻑 젖어있었다.

머리가 부서지고, 모두가 죽음을 예상했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강인한 사나이였지만 결국 끔찍한 자책감 앞에서 허무하게 자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코메트들의 실망감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필 오늘 저녁, ‘남녀 한 쌍’의 오팔을 비밀리에 데려오라는 아케메니아의 전문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멍청한 짓은 또다시 일을 그르쳐 놓았다. 이제 오팔은 우리가 데려온 두 여자 아기들 뿐이다.

이마 388년, 바유의 달, 20일 20시.

구조단 총단장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마스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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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보고서를 쓰던 도중 부단장과 잔딕의 처리를 놓고 다투었다. 잔딕을 처음 구했을 때부터 계속 있었던 해묵은 갈등이다. 난 잔딕을 보통의 샘플들과 함께 공동연구물 리스트에 넣었지만 다하카르 교단 출신인 그자는 대신관께 바치는 [특별 공물]에 넣자고 계속 우기고 있다.

작동 원리도 전혀 모르는 낯선 장치인 이상 당연히 연구가 우선 필요한 대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형벌 도구라는 이유로 계속 억지를 부리고 하마피타 소속 단원들까지 모두 한패거리로 나를 압박하니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난감하다.

하지만 설사 설득에 실패한들, 물러나지는 않을 생각이다. 놈의 속셈은 빤하다.

어쨌든 단장은 나고, 결정은 내가 내린다.

지금까지 본토나 코메트들과 사소한 의견 충돌은 있었지만, 구조단 내부에서의 이런 갈등은 처음이다. 빌어먹을 잔딕이 원흉이다. 순수해야 할 성직자들까지도 유혹에 빠져들게 하다니, 악마의 저주받은 물건이 분명하다.

이마 388년, 바유의 달, 21일 17시.

구조단 총단장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마스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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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충돌로 코메트와 우리의 사이는 냉랭하다. 아기들이 오팔이었고, 결과적으로는 구조단의 행동이 본토의 뜻에 부합된다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동굴 안에서 있었던 몸싸움의 앙금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지만 감정은 감정이고, 윗사람들 사정은 또 다르다. 난 ‘코메트들이 오팔 아기도 못 알아보고 태워 죽이려 했던 것을 교단에 통보하겠다.’라고 병상의 테번을 협박했다. 자신의 앞날에 문제가 생길 것을 두려워한 그 젊은이는 결국 우리에게 파란기스를 넘겨주었다.

생존자들을 모두 죽인 코메트들도 파란기스를 꼭 데리고 있어야 할 이유를 잃은 것 같다. 사제들이 ‘늙지 않는 이유’를 찾아내는 건 이제 우리 학자들의 몫이다. 파란기스는 오팔이 아니지만 그런 딸을 낳았으니 수명을 연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는 충분하다. 그도 오팔의 인자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미 분노에 사로잡힌 그 여인의 맘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혹시라도 딸을 인질로 삼을 경우를 대비해 하루 한 번만 아기를 만나게 한 조치가 그의 화를 북돋웠는지도 모르겠다.

아기라도 엄마의 맘을 열어 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마샤나그와 세네피스에게 온 정성을 쏟았다. 두 아기를 하루 한 번씩 직접 목욕시켜 주었고, 숙소에서 직접 이유식도 만들어 둘을 함께 앉히고 먹여주었다.

다행히 아기에게 필요한 그 이상의 애정은 단원들이 해결해 주었다.

본토의 처자식을 오랫동안 보지 못한 기혼자들은 물론이고 외로움에 지친 젊은 총각 단원들도 인형처럼 예쁜 돌박이 여자 아기들 앞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실실 웃음을 흘리곤 했다. 그들은 서로 아기를 돌보겠다며 제비뽑기를 했고, 걸핏하면 ‘애정도 테스트’를 한답시고 직접 만든 조잡한 장난감에 젖병을 흔들어대며 누구에게 걸음마가 향하는지 유치한 내기를 벌이곤 했다.

이런 생각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그 두 아기는 생존자들을 구해내지 못한 단원들의 죄책감을 무마시켜 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안 그래도 마찰을 빚던 부단장이 ‘표본에 너무 정을 주지 않는 게 좋다.’라며 젊은 단원들을 꾸짖었지만 난 이 아기들이 그들에게서라도 듬뿍 정을 받기를 내심 바랬다. 아니, 솔직히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저 아기들에게서 ‘아빠’라는 말을 듣는 상상에 빠지곤 했다.

돌아가는 대로, 현신께 세네피스를 내가 입양할 수 있도록 간청해 볼 참이다. 전부터 딸을 갖고 싶어 했던 시린도 기뻐할 것 같다.

그렇지만 파란기스의 닫힌 맘은 그리 쉽게 열리지 않았다.

결국 3일째 되는 날, 난 그동안 함께 들어오던 코메트 장교들과 단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그와 단둘이 마주했다. 전면 철수까지 얼마 남지 않아 이젠 더 머뭇거릴 수 없었다.

나는 카히나에게서 받은 오팔 조각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때까지 억지로 무심한 척 하던 파란기스는 그때만은 내 앞에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여인은 카히나의 최후에 관해 물으며 처음 눈물을 내비쳤다.

카히나에 관한 내용으로 우리는 처음 말문을 틀 수 있었다. 그의 대답에 따르면, 카히나는 순수한 ‘오팔’이며, 지난번 우리 손에 난도질당해 죽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최고사제 ‘카히나’에 올랐다고 한다.

카히나는 검은 재가 내뿜는 파장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재가 짙어도 대낮처럼 다닐 수 있었고, 특수한 성대 때문에 거칠고 갈라진 목소리를 타고났지만 대신 어느 곳에서든 멀리 퍼질 수 있는 특수한 음역의 발성이 가능하다고 했다.

오팔은 어린아이 상태에서 오랫동안 몸이 자라지 않으며, 일단 그 단계만 넘기면 눈 깜짝할 사이에 성장해 어른의 몸을 갖게 된다고 한다. 내가 본 카히나가 짧은 기간 변신을 한 것이 그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아직 20살이 채 되지 않았고, 불문율에 따라 남자를 한 번도 맞은 일이 없는 처녀였다고 했다.

(이 부분을 쓰면서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는 카히나의 아버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저 큰 키와 다부진 체구, 일반인 남자보다도 훨씬 강한 체력으로 보아 수호자들 중 하나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도 철성 앞에서 방패를 들고 결사적으로 그를 지키던 거한들을 말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는 아버지의 죽음까지도 눈앞에서 지켜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에 구한 아기 세네피스가 카히나와 왜 그리 닮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는 (아마도 아버지는 다른?) 카히나의 동생이라고 했다. 그 말에, 세네피스를 더 입양하고 싶어졌다.

나는 그에게 고향 행성이 왜 멸망했는지, 어쩌다가 이런 지옥으로 변했는지를 물었다. 그렇지만 파란기스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부분적인 내용만으로도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 원인이 무슨 상관이죠? 미치광이가 사용한 최종심판의 무기든, 지각활동이나 운석이나 지축의 역전 같은 자연재해든, 과도한 탄소든, 유전적인 오염이든 결과는 마찬가지에요. 우린 너무 많은 것들을 임계치 위에 올려놓고 있었어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앙의 가능성이 널려 있었지만 그 모두 개별적인 확률은 낮다는 이유로 안심하고 있었죠. -

- 내 말은. -

- 재해는 질병과 전쟁을 불러오고, 통제에서 벗어난 공장, 발전소, 무기, 실험실의 세균들은 또 다른 재난의 씨가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죠. 뭐가 먼저인지는 중요치 않아요. 어차피 하나가 터지면 다 터져요. 수많은 임계치의 칼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던 세계가 400년의 무정부상태 후에 이 꼴이 된 게 그리 이상한가요? -

파란기스의 뒤이어진 대답은 냉소적이면서도 소름이 끼쳤다.

- 그렇게 보면 당신네 조상들은 운이 좋았죠. -

- 이곳에서 일찍 빠져나간 게? -

- 살겠다고 빠져나간 탈출행렬이 200건이 넘었지만 당신들을 빼고는 모두 우주 쓰레기로 변했으니까. 400년 전의 기술로는 타계로의 이주는 무모하고 멍청한 짓이었죠. -

난 그 순간, 우리를 삶의 길로 인도해 주신 신들께 또다시 감사를 올렸다. 그렇지만 뒤이어진 파란기스의 말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 그런데 패닉에 빠진 겁쟁이 도망자들이 탈출을 위해 귀중한 자원을 쓰레기로 갖다 바친 덕분에 남겨진 자들의 상황이 더 나빠졌으리라는 건 생각해 보셨나요? 재난을 수습하고 재건할 자원조차 없어 속수무책으로 멸망의 길을 밟았으리라는 거는요? -

순간, 난 그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말문이 막힌 나는 그에게 카히나가 남겨준 오팔 조각의 의미를 물었다. 내 물음에 그는 당황하는 빛을 보였다. 무언가 그가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이 오팔 조각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난 그에게 무조건 묻는 대신, 내가 짐작한 것을 먼저 물었다.

- 혹시 이게 검은 철성 안에 있는 금색 탑을 여는 거요? -

순전히 짐작이었지만 그의 당혹해하는 모습은 무언의 긍정인지도 모르겠다. 카히나가 고통을 무릅쓰고 이것을 자신의 상처 안에 넣어 감춘 건 그 탑 앞에서였으니 무언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일 뿐이었다.

- ‘사제의 키’는 최고사제만의 권한을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

- 그게 뭐길래요? -

- 검은 철성을 움직일 수 있는 힘. -

- ‘잔딕’이라는 것을 설치하고 제거하는 것도? -

- 그것도 사제의 특권이죠. -

파란기스는 그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아기를 얼러주며 끊임없이 한숨만 내쉬었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질문을 이을 수 없었다. 밖으로 쫓아냈던 코메트 장교가 ‘약속 위반’이라며 문밖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기 전, 마지막으로 물었다.

- 당신은 몇 살이요? -

파란기스는 날 바라보며 한참만에 대답했다.

- 100살 이후로 세지 않았어요. -

이마 388년, 바유의 달, 25일 20시.

구조단 총단장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마스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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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장이 거의 20명 가까운 하마피타 출신들을 데려와 내 숙소 앞에서 자정이 넘어갈 때까지 소동을 벌였다. 그들은 잔딕 13개와 아기들, 파란기스는 이번 원정을 최종 승인한 대신관께 바쳐야 한다며 3시간 가까이 난동을 피웠다. 그들은 내 숙소에 당장이라도 난입할 듯 문과 창을 흔들어댔고, 누군가는 돌멩이를 던지기까지 했다. 평소 나를 따르던 하마타 연구원들 대부분은 공교롭게도(!) 대부분 단층 조사를 나가 그 긴장된 순간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기를 돌보던 당직 연구원은 잠에서 깨어 울어대는 두 아기들을 껴안고 밤을 새야 했고, 나도 겁에 질린 파란기스의 곁을 계속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연구원들은 혹시라도 밖에서 돌이 날아들거나 힘으로 난입할 때를 대비해 유리창에 합판과 담요를 대고 각목을 든 채로 위험한 곳들을 지키고 서 있었다.

부단장은 보고서 내용을 바꾼다는 약속을 받기 전에는 물러나지 않겠다며 계속 버텼고, 나도 문을 굳게 닫은 채 일체의 대응을 하지 않았다. 결국 자정이 넘고 기온이 살을 베어내는 듯 낮아지면서 추위에 지친 그들이 하나 둘 돌아가기 시작했다.

난동을 피우던 무리들이 거의 사라진 후, 부단장이 갑자기 나와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단원들이 말렸지만, 난 기꺼이 밖에 나가 그자와 얼굴을 마주했다.  부단장 뒤에는 지난번 나와 함께 아기를 구해냈던 아프라스 야투 군이 마지막까지 남아 서 있었다. 한때 좋아할 뻔했던 그 청년의 선택이 정말로 실망스러웠다.

부단장은 야투 군을 노려보고 있는 내게 협박조로 말했다.

- 계속 숨기려 하시면 그게 단장님의 목을 죌 겁니다. -

- 숨기다니, 뭘? -

- 무사히 귀환해서 고향의 처자식을 보고 싶으시다면 잘 생각하십시오. -

그자는 그대로 휙 돌아가 버렸다. 내가 대체 뭘 숨긴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말하지도 않았다. (설마 카히나의 일과 사제의 키를 아는 건 아니겠지?)

어쩌면 그저 의미 없는 협박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렇게 난동을 피운 것을 보니 언젠가는 그 이상의 짓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다.

제발, 빨리 돌아가고만 싶다. 겨우 이틀 남았다.

이마 388년, 바유의 달, 26일 02시.

구조단 총단장

트라카의 선택을 받은 자, 마스모간 타리프 카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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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ron Vein 개인지 주문게시판 : http://www.tasawwuf.pe.kr

어제의 정팅은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참석했던 분들이 카페에 후기를 올려놨으니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참고해 주시고요,

3부 출판본 예약이 어제부터 시작되었으니 주문게시판을 참고해 주세요.

이번엔 출판본 진도가 연재본보다 약간 추월하게 될 것 같습니다. ^^;;

이전에 한 번이라도 구매하셨던 분들께는 안내 메일을 보내드렸으니 혹시 메일을 못 받으신 분들께선 제게 새 주소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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