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881화 (876/1,132)

< -- 881 회: Part 6. 저승길에 남겨놓은 발자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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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 헤네티가 아지드의 소지품들을 받아들고 성큼성큼 앞장섰다. 조금 전의 수다스런 가게 주인장과는 달리, 이번 헤네티는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고 아지드도 마찬가지였다.

“여깁니다. 비스 모간님.”

지독히도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난 후, 헤네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아지드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도착해 있었다. 피라미드 꼭짓점을 칼로 뚝 잘라낸 것 같은 사각의 옥상에는 작은 제단과 함께 집 한 채가 위치해 있었다. 직사각형의 밋밋한 단층 주택이지만 금빛의 전면 반사유리 벽 덕분에 밖에서는 마치 금으로 지은 것처럼 보였다.

살짝 긴장한 아지드가 침을 꿀꺽 삼키며 그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단의 최고 기밀 자료를 정리하는 특별한 자리에 있는 그이지만, 이곳은 그에게도 자주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처음 왔을 때는 ‘성스런 대리모를 맡을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을 받았던 것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 문에 들어선 아지드는 대신관 측근을 지키는 4명의 크바르나 헤네티들 앞에서 멈춰 섰다.

“이곳에서 알현시의 규정은 아시겠죠?”

“물론.”

아지드는 4명의 남자 크바르나들과 늙은 시녀가 보는 앞에서 속옷까지 모두 벗었다. 그들은 아지드의 불룩한 배에 약간 놀란 듯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지만 대화는 없었다. 그들은 혹시라도 몸 속에 감춘 무기라도 없는지 확인하려 강력한 초단파 스캐너를 집었다.

“이 안에 귀한 태아가 있는데 무슨 짓이냐.”

아지드가 손으로 배를 감싸며 화를 버럭 냈다. 그제야 움찔한 헤네티 하나가 안쪽에 급히 달려 들어가 확인을 하고 되돌아 나왔다.

“죄송합니다. 무식한 저희들의 실수이옵니다.”

헤네티 대신 늙은 시녀가 몸을 확인하고는 단추도 없는 포대자루 같은 원피스를 입혀주었다. 머리장식이라도 있다면 그것도 모두 풀고 산발을 해야 했겠지만 삭발을 한 아지드에게는 다행히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들어가십시오.”

늙은 시녀가 문을 열어주자 아지드는 비로소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맨발을 조심조심 디디며 안쪽에 드리워진 흰 베일에 다가갔다. 유리벽 밖에서 들어오는 환한 햇빛이 베일 너머까지 새어 들어가 옥좌에 앉은 당당한 남자의 형상을 비추고 있었다.

“다하카르의 종, 아지드 비스, 위대한 현신께 문안 올리나이다.”

아지드는 두 팔을 가슴 앞에 모으고 바닥에 이마를 댔다. 포대자루 같은 원피스를 질질 끌고 들어간 아지드는 두 팔을 가슴 앞에 모으고 바닥에 이마를 댔다. 외모를 따지는 사람이라면 수치스럽게까지 느껴질 이 호들갑이 경호 목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혈기 넘치는 남자 현신이 밀실의 독대에서 여신도의 외모에 자칫 판단력을 흐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병원에 다녀왔다지.”

아지드가 바닥에 얼굴을 댄 채 차분하게 답했다.

“예, 잘 크고 있다고 하옵니다. 제 눈으로도 확인했습니다. 태동도 제법 강하옵니다. 위험한 시기는 다 넘겼으니 이제 출산일만 기다리면 되옵니다.”

베일 안쪽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안쪽에 있던 남자가 베일 한쪽을 슬쩍 들쳐보였다. 당황한 아지드가 얼른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예? 어, 어쩌라는…….”

“들어와 봐라.”

잔뜩 긴장한 아지드는 고개를 잔뜩 숙이고 베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나름 교단 핵심에 가까이 있는 그이지만, 그 역시도 지금까지 대신관의 목소리만 들었을 뿐, 얼굴을 직접 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숨까지 멎은 채 시선을 땅바닥에 고정시키고 마치 절벽 끄트머리에서 걷듯 살금살금 베일 안에 들어섰다. 곧 그의 눈앞에 옥좌가 놓인 높은 단과 그 위의 비단신, 대신관의 금색 머플러자락 끝이 보였다.

“후우.”

아지드가 마지막으로 숨을 가다듬었다. 엷은 베르가못 향과 별로 싫지 않은 남자의 체취가 느껴졌지만 그는 차마 고개를 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멍하니 서 있던 아지드는 남자의 손이 다가오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 말았다. 그리고 난생 처음 대신관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다른 뜻이 아니니 오해는 말아라.”

초중년 특유의 중후함이 느껴지는 미남자가 단 위에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남자다운 얼굴에 짧게 친 갈색 머리칼, 짙은 눈동자가 매력적이었다. 지금은 의자에 앉아 있지만 키도 꽤 클 것 같았다. 지금껏 그가 들어 온 다하카르 대신관 가문의 외모와는 딴판이지만 야푸르 대신관이 이전 대신관들과 외모가 좀 다르다는 건 그도 익히 알고 있었다.

“무, 무, 물론이옵니다, 대신관님.”

아지드는 대신관이 배 위를 짚고 있는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신관은 태동이라도 느껴보려는 듯 한참을 그러고 있었지만 야속한 아기는 이번에도 긴장한 엄마 때문에 얼음땡이 된 모양이었다. 다행히 대신관이 막 손을 떼려던 순간, 움찔하며 강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수고했다, 아지드 비스 모간.”

야푸르 대신관이 비로소 그에게서 손을 떼었다. 잔뜩 긴장한 채 호흡까지 멎고 있던 아지드도 휴우 하고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태동을 느낀 대신관의 표정은 어딘지 어두웠다. 그가 자신보다 더 기뻐할 줄로 알았던 아지드로서는 뭔가 당혹스러웠다.

“뭐……문제라도 느껴지십니까.”

대신관은 대답도 않은 채 옥좌에 몸을 깊숙이 기대앉으며 아지드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아주 건강한 것 같구나. 지나치리만큼.”

아지드는 굳어지려는 표정을 애써 숨기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대신관의 부리부리하게 뜬 매서운 눈과 굳게 힘을 준 입술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졌다.

“듣자하니 전에 투르케스크 카파키를 만났었다지?”

순간 아지드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대신관이 그의 이전 행적들까지 모조리 뒷조사를 한 게 분명했다. 그는 바닥에 엎드리며 얼른 상황을 해명했다.

“흐, 음, 아시다시피…… 역사학도로서 순수한 연구 목적이옵니다. 다른 뜻은 없사옵니다.”

아지드는 대신관에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소인 최고 기밀 취급 허가를 얻어 고향 행성 관련된 비밀 장서고의 역사자료를 정리하고 있사옵니다. 투르케스크는 그곳 생존자의 원형을 복원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건 알아. 그런데 그자가 요즘 제니안의 이교도들과 어울린다는 건 알고 만난 것이냐?”

아지드가 멈칫했다. 눈앞의 이 대신관의 별명이 ‘남극의 도살자’라는 것을 안다면 누구라도 떨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더군다나 성직자라는 여자가 이교도와 잠자리까지 했다면 오금이 저리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알고 있사옵니다. 소인은 그저…….”

“그자도 그대가 성직자라는 것을 아느냐?”

“아닙니다. 가난한 고아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부랑자 차림을 하고 성직자 표식을 감추었습니다. 그자에게 유전적인 특징이 없을지 파악하고 고 타리프 카파키 신관이 생전에 일지에 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을까 하는 호기심에 딱 세 번 만났을 뿐입니다.”

아지드는 또다시 거짓말을 했다.

“그 남자와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옵니다. 새 생명을 포태한 이후로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말이 사실이라는 것에 그나마 안도하며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얼떨결에 딱 하룻밤 잠자리를 하기는 했지만 여자로서 투르케스크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정체는 물론이고 할아버지 타리프가 아들에게 억지로 입양시킨 양자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아버지’ 빌루이가 왜 자신을 자식 취급도 않고 홀대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아지드의 눈에는 그런 그가 환경 때문에 엇나가버린 불쌍한 반항아로만 보였다.

사실 이번 일에 그가 자신의 몸을 희생한 것도 억울한 오명을 쓰고 끔찍하게 죽어간 마지막 그레이오팔 사제를 자신의 몸으로 부활시킨다는 뿌듯함과 학자로서의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알았다면 상종도 하지 않았겠지. 그것도 최고 기밀을 취급하는 자리에 있는 여자라면.”

대신관의 빈정대는 듯한 말투에 아지드가 재차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황공하옵니다.”

“그놈을 당장이라도 잡아 종교 재판소에 쳐 넣을 수 있지만 지금 있는 놈들로 머리가 아파 잠시 자제하고 있을 뿐이다.”

아지드가 두려움에 다시 몸을 떨었다. 이교도들이 소위 ‘13선지자’라고 부르는 골수 유학자들이 종교재판에서 거열형 선고를 받은 이후로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바로 눈앞의 이 대신관이 그들의 수장 리 리쿠에게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을 명했던 당사자였고, 이미 수백의 이교도와 이단들을 남극성당에서 태워 죽인 주역이었다.

그는―자식들에게 이상하리만큼 약한 것을 제외하면― 자비라고는 전혀 모르는 남자였지만 강력한 리더쉽으로 콜로니를 이끄는 일에 있어서만은 역대 그 어떤 대신관보다도 유능하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지금이 그런 모험을 할 때가 아니라는 건 알겠지?”

“물론입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앞으로는 절대 허가 없이 그자를 만나지 않겠사옵니다.”

아지드를 노려보던 대신관이 뜬금없이 이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15년 전 타르서스에서 여자 성직자 한 명이 타 죽은 일이 있다.”

“예?”

“살점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아 처음엔 유전자 검사도 불가능했다. 누군가 연료를 끼얹어 의도적으로 완전히 소각한 게 분명했지. 뱃속의 6개월 된 아기까지.”

놀란 아지드는 행여 아기까지 겁을 먹을까 무심코 배를 짚었다. 그렇지만 대신관은 그런 그에게 모질게 말을 이었다.

“바로 그대의 전임자였다.”

창백한 얼굴로 주춤거리며 단 아래로 물러나던 아지드는 하마터면 다리를 헛짚고 단에서 구를 뻔했다.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아 말을 안 해 줬었는데…… 이젠 알아야 할 것 같다.”

“외람되오나, 그런 이야기를 제게 왜…….”

“카히나의 부활을 원치 않는 자들이 그대의 존재를 안 것 같다.”

야푸르가 다시금 입술에 힘을 꽉 주었다.

“같은 일이 그대에게도 생길 수 있다.”

아지드는 이렇게 배가 불러 찾아온 자신에게 이제와 고작 저런 말을 하는 대신관이 내심 야속했다. 대신관은 ‘카히나의 부활을 원치 않는 자’들이라 돌려 말했지만 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는 말이 더 정확했다. 그리고 그들 중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대신관 자신의 자녀들이었다.

그저 소문인지는 몰라도, 대신관이 자녀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교단 핵심부의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아지드가 다룬 기밀사항들 중에는 자식들이 아버지 대신관의 약점을 움켜쥔 채 다른 하마피타 마구스들과 어울린다는, 언뜻 믿어지지 않는 음모론을 연상케 하는 것까지도 있었다.

그 진위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후계자 ‘아르잔’이 대신관 후계자가 관례적으로 거치는 종교재판소장에도 선임되지 않았고, 중요한 정책결정에 모습을 드러낸 일도 없는 건 분명 미심쩍었다.

아버지와 고모들 간의 근친혼으로 태어난 그의 자녀들은 그레이오팔이 절반 섞인 자신의 아버지보다는 훨씬 ‘정통’ 다하카르 혈통에 가까웠고, 그레이오팔이 가문을 더럽혔다며 증오한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일족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그레이오팔 밀리타까지도 철저히 따돌림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콜로니의 하늘을 보지 못한 유일한 그레이오팔, 그것도 살인귀로 낙인찍힌 자까지 세상에 되살리겠다며 나선 아버지의 생각에 발끈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소인 이제부터 바깥출입도 최대한 자제하고…….”

“그런 말이 아니야.”

야푸르가 버럭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이자 아지드는 뱃속의 아이까지 자신과 동시에 놀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잠시 흥분했던 야푸르가 표정을 가다듬고는 그에게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지금 당장 남극성당으로 가라. 내 명령이 있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고 있어.”

“뭐든지 하겠나이다. 아기를 위해서라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숨어있겠습니다.”

쪽지엔 남극성당 바로 앞의 한 여관 주소가 적혀 있었다. 생각 없이 쪽지를 챙기려던 아지드가 움찔했다.

“저, 어, 내일 남극성당에서 거열형이 있지 않습니까. 여긴 처형장이 훤히 내다보이는……구경꾼들도 많이 모일 텐데…….”

“그래서? 태교에라도 안 좋다는 거냐? 아니면 내 판결이 맘에 안 든다는 거냐?”

예민해진 야푸르가 다시 화를 냈다. 창백해진 아지드는 얼른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용서하시옵소서. 말씀하신대로 가겠습니다.”

대신관은 그제야 그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 베일 안쪽에서 주춤주춤 물러나온 아지드는 무심결에 뒤를 다시 돌아보았다. 입술을 꾹 다문 채 이마를 괸 대신관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정확히는 몰라도 그가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것이, 그리고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은 것이 분명했다.

‘별 수 없지.’

아지드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다. 아마도 이곳을 거쳐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은신처로 보내주려는 의도로 보였다. 하지만 임산부의 몸을 하고 대대적인 처형으로 하루 종일 들썩거릴 곳에 가 있어야 한다는 정말 내키지 않았다. 뱃속의 소중한 아기에게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끔찍한 죽음의 기운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음악 칩이라도 사서 하루 종일 들어야겠어.’

그는 마지막으로 대신관을 다시 돌아보았다. 조금은 엉뚱하지만, 대신관을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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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다.”

승합차에서 내내 시계를 보던 코나가 창을 열었다가 칼바람에 깜짝 놀라 얼른 도로 닫았다.

“오늘도 여전히 춥다. 눈까지 오고.”

코윈 대부분의 지역은 극단적인 일교차와 지독한 추위로 밤 시간에는 외부에 머물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카파키 가 추모 묘지가 있는 적도는 최소한 낮에는 다른 곳보다 날씨가 좀 나아서 침엽수도 군데군데 볼 수 있지만 이런 밤엔 살을 베어내는 것 같은 찬 공기가 여전했다. 게다가 저녁 무렵부터 내린 눈까지 지면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일반인 방문객들이 다 떠난 추모 묘지 부근도 침엽수를 빼면 뭐 하나 볼 것 없는 황량한 풍경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일행이 탄 차는 짙은 어둠으로 휩싸인 나무들 사이에 교묘하게 감춰져 있었다.

“말씀대로 정말 쉽게 들어갈 수 있을까요.”

루스탐이 검은 복면을 턱 밑까지 바싹 눌러쓰며 새삼 차 주변을 다시 확인했다.

“보안국에서 사전 작업을 해 놨다고 하니까. 상께서도 어디선가 보고 계실 테고.”

코나가 두터운 방한복 매무새를 확인하며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황실에서 부여받은 계급도 없는 일개 ‘노예’이지만 황제는 그의 옛 헤네티 헌병대 시절 계급을 존중해 장군에 준해 대하곤 했고, 황제가 빠진 이 자리에서도 두말할 나위 없는 리더였다.

“우베 넌 여기 남아서 계속 상황을 체크하고 우리 셋이 들어간다. 보안국이 알아서 순찰팀을 묶어놓았겠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지질조사차 왔다가 장비 놓고 갔었던 거라고 해.”

“하긴 무시무시한 얼음여왕 국장님 짝지께서 들어가시는데 어련히 알아서…….”

이번에도 쓸데없이 입방정을 떨던 자이납은 우베가 옆구리를 꼬집는 느낌에 깜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 눈을 슬쩍 흘겼던 코나는 엿 먹어 보란 듯 문을 확 열어젖혔다.

“다 나와.”

“엄마야.”

아직 방한복도 다 챙겨 입지 못한 채 뭉개던 자이납이 몸서리를 치며 그제야 허둥지둥 옷을 여미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빨리 따라오지 않고 뭐 해.”

코나가 시계를 가리키며 굼뜬 일행들에게 버럭 화를 냈다. 휴대용 굴착기와 삽, 곡괭이와 이런저런 온갖 장비들을 짊어진 이 3인조 도굴범 일당은 이미 보안장치가 해제되어 있는 담을 기어 넘어 묘지 안으로 숨어들었다.

자정의 짙은 어둠에 싸인 묘지는 침엽수들이 자라고 있지만 달리 몸을 숨길 건물도 거의 없고 눈에 난 발자국 때문에 누군가 감시라도 한다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보안국에서 미리 손을 써 놓은 덕분에 묘소를 순찰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두꺼운 방한복으로 온몸을 돌돌 감싸고 얼어붙은 눈 위를 달리는 이들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는 흡사 곰처럼 보였다.

“아휴, 뛰는 게 아니고 무슨 구르는 것 같네.”

두꺼운 방한복이 갑갑해진 자이납이 복면 틈새로 잠시 입을 내밀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날이 어찌나 추운지 어깨에 멘 휴대용 굴착기 구석에 입김이 바로 얼어붙어 하얀 얼룩을 그릴 정도였다.

“흐미, 여기에 비하면 서부 사막은 천국일세. 이래서야 땅 파는 것도 장난이 아니겠네.”

자이납이 끝도 없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갈 길은 꾸역꾸역 앞장서 잘 나아갔다. 그들의 옆으로 지난 291년, 카파키 가의 몰살 때 죽은 수백 기의 묘가 죽 늘어서 있었다.

“이런 데서 얼어 죽었다며 이런 데 또 묻히고 싶었을까? 나라면 날씨 따끈따끈하고 좋은 황제령이나 남부에……아, 거긴 안됐겠구나.”

“시끄러우니 조용히 좀 해.”

듣다 못한 리더 코나가 결국 한 마디 쏘아붙였다.

“뭐 어차피 누구 보라고 하는 건데요, 뭘.”

자이납이 넉살을 떨며 주변을 재차 확인했다. 황제의 기대대로라면, 교단의 누군가가 자신들의 뒤를 밟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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