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884화 (879/1,132)

< -- 884 회: Part 6. 저승길에 남겨놓은 발자국 -- >

.

.

.

“저쪽엔 뭐가 있지?”

코나가 두 개의 차 궤적을 노려보며 우베에게 물었다.

“아무 것도요. 원래 호수였던 곳인데 지금은 꽝꽝 얼었습니다. 우린 어느 쪽을 따라가죠?”

우베가 카렐의 눈치를 힐끔 보았지만 그는 무언가 다른 데 정신이 팔린 듯 보였다. 눈밭을 노려보고 있는 그의 눈초리가 어딘지 심상치 않았다.

“뭐 보이십니까?”

“모르겠다. 내가 뭘 느끼고 있는 건지.”

“예?”

“차 세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잔딕을 쫓아야…….”

“밖으로 빠져나간 한 대는 내가 뒤따라가마. 너흰 잔딕을 따라가.”

카렐은 달리는 차의 문을 다짜고짜 확 열어젖혔다. 방한복을 벗고 히터에 속 편히 몸을 녹이고 있던 자이납이 갑자기 밀어닥친 찬바람에 비명을 질렀다. 그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루스탐이 얼른 그를 붙들었다.

“자, 잠깐만요, 어떻게 따라가시게요! 스캐너라도…….”

“필요 없다.”

루스탐의 손을 떨쳐낸 카렐은 달리는 차에서 훌쩍 뛰어내리더니 어둠 속으로 휙 사라져 버렸다.

“맙소사, 저 양반 왜 저러셔.”

자이납이 차창에 얼굴을 대고는 밖을 내다보았다. 흰 망토를 뒤집어쓴 카렐은 얼어붙은 호수 위를 쏜살같이 달려 멀어져가고 있었다.

“설마?”

자이납은 스캐너를 힐끔 쳐다보았다. 도로에서 벗어나 멀어지고 있는 교단 일당의 차가 바로 카렐이 달려가고 있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했다.

“세상에, 눈으로 보일 거리도 아닌데, 저 방향을 어떻게 알고 가시는 거지?”

깜깜한 눈벌판을 가로질러 한참을 차를 몰아 온 헤네티는 망원경으로 주변을 확인하고는 문을 확 열어젖혔다. 동시에 온몸이 오그라들 만큼 끔찍한 찬 공기가 차 안에 몰아쳐 들어왔다.

“이, 이이익.”

방한복에 외투까지 모두 빼앗기고 숄과 얇은 원피스 하나만 걸친 밀리타가 밖에서 몰아치는 칼바람에 짧은 비명을 지으며 몸을 움츠렸다. 헤네티 한 명이 차 안의 컵에 든 따뜻한 물을 공중에 힘껏 뿌리자 바로 얼음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날씨 좋은데.”

두툼한 방한복을 입은 헤네티 둘이 밀리타에게서 마지막 남은 숄을 거칠게 빼앗고는 차 밖으로 확 밀어냈다.

“아악.”

맨손이 얼음에 닿은 순간 찌릿한 고통을 느낀 밀리타가 몸서리를 치며 일어나 다시 차로 돌아가려 했지만 헤네티들은 안에서 매정하게 문을 쾅 닫아버렸다.

“열어! 빨리 열라고!”

살을 에는 추위를 견디지 못한 밀리타가 문을 마구 쳤지만 그들은 밀리타를 혼자 놔둔 채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1시 34분이야.”

밀리타를 밖으로 밀어냈던 헤네티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밖을 보니 눈밭에 팽개쳐진 밀리타가 어둠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들은 밀리타가 어둠 속에서 보지 못할 위치에 적당히 떨어진 채로 차를 멈췄다.

“10분쯤 후에 도로 태우면 되겠지?”

“그쯤이면 겁주기는 충분하지.”

함께 탄 동료 헤네티가 킬킬거리며 대답했다.

“그때쯤이면 제정신이 아닐걸.”

“그 사이에 죽으면 어쩌지?”

“고작해야 손발가락 좀 잘라내는 정도겠지. 그 정도는 상관없댔어.”

그들은 옷까지 모두 빼앗기고 거의 패닉 상태가 된 밀리타가 칼바람이 몰아치는 눈밭 위를 방향도 없이 헤매는 모습을 적외선 시야로 지켜보며 계속 시계만 확인했다. 방향도 없이 두리번거리며 떠돌던 밀리타는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어딘가로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매도 없는 홑겹 원피스 한 장으로 버티기엔 추위가 너무 혹독했다.

“아으으윽.”

발가락이 굳어 자리에 주저앉았던 밀리타는 결국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대신 넋 나간 사람처럼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계속 움직일 뿐이었다. 그는 중간중간 울기도 하고 신음소리도 내어 가며 추위에 버티려 애를 썼지만 바닥을 짚은 손가락까지도 이미 검붉게 죽어가고 있었다.

“아버지. 그때처럼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요.”

손마저도 굳어버린 밀리타가 바닥을 짚은 채 하늘에 대고 울부짖었다. 순간 그는 가슴에서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며 눈밭에 맥없이 얼굴을 처박고 말았다. 한때 의사였던 만큼, 그는 자신의 몸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고 있는지를 바로 깨달았다.

“안 살려줄 거면……차라리 지금 그냥 데려가요.”

죽음의 냄새를 맡은 그는 갑자기 가빠진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미쳐 날뛰는 심장이 제대로 피를 뿜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눈밭에서 경련으로 바들바들 떨던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어둠 속을 응시했다. 언젠가 경험해 보았던 느낌이었다.

“아버지…….”

그는 까맣게 죽은 손을 버둥거려 마지막으로 기기 시작했다. 그때, 등 뒤에서 웬 불빛이 번쩍 하며 그의 앞을 비추었다. 그의 귓가에 ‘그만 하고 다시 태워.’라는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그는 넋 나간 듯 가던 방향으로 계속 기었다. 바로 뒤에서 구세주 같은 차가 돌아오고 있었지만 지금 밀리타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딜 가는 거야!”

방금 전 그를 이곳에 던졌던 헤네티가 차에서 뛰어내려서는 바닥을 기어가는 밀리타를 일으키려 했지만 그는 자신을 도로 구해주겠다는 손길을 비명까지 지르며 떨쳐냈다.

“꺼져! 꺼져!”

“너무 추워서 미쳤나!”

당황한 헤네티는 발악을 하는 밀리타를 억지로 어깨에 번쩍 짊어졌다. 밀리타를 지고 휙 돌아서던 그는 비로소 인기척을 느낀 듯 등 뒤의 어둠 속을 휙 돌아보았다. 무언가 반짝 하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우읍!”

눈 중간에 도끼가 꽂힌 헤네티는 어깨에 밀리타를 짊어진 채 그대로 언 눈바닥에 꼬꾸라졌다.

“뭐지!”

동료의 즉사에 차에 남아있던 헤네티 둘이 혼비백산해 나오다가 멈칫거리며 물러섰다. 호수 중간 바위가 있던 불룩한 언덕 너머에서 웬 희고 큰 형체 하나가 번쩍 튀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움직임이 워낙 빨라 그들의 날카로운 눈으로도 잠시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호랑이야?”

주춤거리며 물러서던 헤네티 한 명은 코앞까지 날아온 도끼날을 뒤늦게 보고는 칼집으로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그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뒤로 벌렁 넘어가 차 문짝에 사정없이 부딪쳤다. 튕겨난 도끼에 맞은 차 유리가 박살이 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젠장!”

한 방에 적을 죽이지 못한 카렐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문짝에 부딪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적에게 재빨리 달려들어 이마를 짧은 칼로 힘껏 내리찍었다. 쩍 소리를 내며 적의 두개골이 쪼개지고 치명상을 입혔지만 끝이 아니었다. 옆에서 들려온 엔진 소리에 카렐이 고개를 휙 돌렸다.

“으윽!”

카렐은 무언가 강력한 것에 가슴을 들이받혀 뒤로 붕 날아가 떨어졌다. 얼음 위에서 급회전하는 차 옆면에 받혀 아주 충격이 크지는 않았지만 아직 완전치 못한 몸에 강타를 당해 정신이 얼떨떨했다. 유리가 깨진 채 옆이 우그러진 차는 다시 방향을 돌려 쓰러진 카렐에게 돌진해왔다.

“뭐 이리 많아.”

카렐은 쑤신 몸으로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지막 한 명이 동료가 공격을 당하는 사이 차에 올라 돌격한 것이 분명했다. 차에 탄 헤네티는 그의 시야를 방해하려 어둠 속에서 헤드램프를 최대한 밝게 켜고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놓치면 끝이다.’

카렐은 공포를 머릿속에서 쫓아내며 차가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빛이 완전히 눈을 가린 순간, 차 높이보다도 훨씬 높게 공중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엇!”

차롤 몰아 돌진해온 헤네티는 표적이 코앞에서 순식간에 번쩍 사라지는 모습에 무언가 헛것을 본 것 같았다. 그는 그때까지도 손에 쥐고 있던 할룩스에 대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도 가디언, 아니 그보다…….”

그때, 귀를 찢는 굉음이 그의 머리 위를 울렸다.

“설마?”

고개를 번쩍 든 헤네티는 차 지붕을 뚫고 들어온 솥뚜껑만한 큰 손에 얼굴을 통째로 덥석 붙잡히고 말았다. 더 이상 할룩스로 이곳 상황을 알릴 수 없게 되어버렸다.

“우, 우우윽!”

그는 할룩스와 조종간을 놓고 버둥거리며 이 큰 손을 쳐내려 했지만 상대의 무지막지한 악력이 그의 두개골을 으깨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짧았다. 차창과 조종간이 피와 살점으로 물들면서 무섭게 가속을 하던 차도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차 지붕에 매달렸던 카렐도 앞으로 휙 튕겨나가 차 한참 앞에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학, 학.”

얼어붙은 눈 위에 떨어진 카렐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극한까지 치솟은 아드레날린의 힘으로 억지로 싸움을 끝냈지만 차에 받힌 관절과 근육이 부서질 듯 아파왔다. 지독한 고통이 관절 사이로 스며들어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그때, 옆에서 느껴져 온 갑작스런 열기에 그가 고개를 휙 돌렸다.

“이런.”

두 번째로 죽였던 헤네티의 몸에서 갑자기 불꽃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동시에 그 주변의 두꺼운 얼음까지 무서운 속도로 녹아들어가기 시작했다. 카렐은 방염포를 찾았지만 이미 써 버린 후였다.

“뭐야, 이거!”

꽁꽁 언 바닥을 허겁지겁 기어 도망을 치려던 카렐은 첫 번째 쓰러뜨린 적의 밑에 웬 여자가 깔려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안 돼, 안 돼.”

급히 방향을 돌린 카렐이 다시 여자에게로 허겁지겁 기어갔다. 타고 있는 시체 주변은 이미 얼음이 녹아 움푹하게 팬 구덩이가 되어 있었다. 열기가 점점 강해지고 주변의 두꺼운 얼음층이 순식간에 녹으면서 쓰러진 여자 주변도 물로 변해 질척거리고 있었다. 파랗게 질린 카렐이 여자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이봐요! 이봐!”

거의 동시에, 맹렬히 타들어가던 헤네티의 시체 밑의 얼음이 푹 꺼지면서 호숫물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물속에서도 여전히 타고 있는지, 구멍 난 얼음 주변이 쩍쩍 소리를 내고 갈라지며 꺼지기 시작했다. 여자의 몸도 갈라진 얼음 틈새의 찬 물로 조금씩 빨려들었다.

그때, 무언가 쿵 하는 소리가 다시 얼음을 뒤흔들었다. 약해진 얼음이 육중한 승합차를 버티지 못하고 또 다른 방향으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차가 얼음을 뚫고 물속으로 빨려드는 충격에 카렐이 바닥을 짚은 손 옆의 얼음까지 쩍 갈라졌다.

“씨발, 이게 뭐야!”

소스라치게 놀란 카렐이 얼른 바닥에 몸을 엎드리고는 여자를 힘껏 잡아당겼다. 얼음 틈새로 빨려들어 거의 허리까지 잠겨 있던 여자의 손에서 미세하나마 맞잡으려는 힘이 느껴졌다.

“힘내라고!”

카렐이 몸을 굴려 흠뻑 젖어 있는 여자를 물 밖으로 힘껏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행여 얼음이 꺼질까 바닥에 누운 채로 그를 품에 꽉 안고는 한 팔로 필사적으로 기어 구멍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학, 학.”

팔꿈치가 해질 때까지 결사적으로 기어서 호수 바위였던 곳에 도착한 카렐이 여자를 내려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봐요.”

카렐은 뻐근해진 어깨를 쥐고 억지로 일어나 여자의 어깨를 흔들었다. 알 수 없는 느낌에 무작정 쫓아왔지만 아직 그 정체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는 온몸이 젖은 채 간헐적으로 떨고 있는 얇은 원피스 바람의 검은머리 여자를 바닥에 제대로 눕혔다. 여자의 살갗을 적신 물기는 이미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약간의 물도 이런 기온에서는 거의 살인도구였다.

“젖어 있으면 안 되는데……엇.”

여자의 얼굴을 처음 본 카렐이 기겁을 하고 놀랐다. 얼굴은 분명 그가 알던 누군가와 무척이나 비슷했다.

“밀리타?”

카렐이 믿어지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분명 익숙한 얼굴이지만 머리도 짧게 쳐 버렸고 살이 빠져 마르고 홀쭉해진 얼굴이나 몸매에도 이전의 육감적이고 매혹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왜 그레이오팔이지?”

두툼한 방한복 밖으로 드러난 카렐의 무지개빛 눈동자와 조금씩 빛을 잃어가던 밀리타의 같은 색 눈동자가 30년만에 처음 서로를 마주했다. 검게 죽어가던 밀리타의 눈에서 짧게 빛이 스쳤다.

조금씩 가늘어지는 밀리타의 그레이오팔에 마지막 눈웃음이 번졌다. 이미 온몸이 완전히 얼어붙은 그는 반가움의 말 한 마디 남기지 못한 채 카렐의 가슴 위로 천천히 기울며 마지막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런, 맙소사!”

외모는 달라졌지만, 이제 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카렐은 입고 있던 방한복을 허겁지겁 벗기 시작했다.

“베네루스! 베네루스! 빨리 와! 어디 있든지 빨리 오라고!”

카렐은 할룩스를 빼들고 다짜고짜 전용셔틀 조종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예? 지금 잔딕을 가진 일당을 쫓고 있는 중입니다만…….”

“젠장! 그건 코나한테 맡겨놓고 여기로 오라고! 씨발!”

“아, 알겠습니다.”

황제의 격한 욕설에 놀란 베네루스는 허겁지겁 조종간을 돌리며 대답했다.

“제발! 제발!”

거의 속옷만 남기고 다 벗어던진 카렐은 벗은 옷으로 얼어붙은 밀리타의 몸에서 물기와 살얼음을 닦아내고 방한복으로 감싸 품에 꽉 껴안았다. 하지만 물기가 닿으면서 더 차갑게 얼어붙은 그의 몸은 이미 푸르죽죽하게 변해 있었고, 심장박동도, 호흡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카렐은 힘없이 벌어진 그의 입에 깊은 숨을 힘껏 불어넣었다.

“제발 좀 살아나라고!”

그의 피로 젖은 손이 밀리타의 가슴을 쉴 새 없이 압박했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만큼 계속 숨을 불어넣었다. 카렐의 필사적인 응급처치에도 밀리타의 숨결은 야속하리만큼 반응이 없었고, 셔틀의 엔진소리도 한참이나 들려오지 않았다. 1분 1초가 그의 애를 바싹바싹 태워놓았다.

결국 베네루스의 셔틀 소리가 하늘을 울릴 때까지도, 밀리타는 숨을 되찾지 못했다.

“여기다!”

카렐은 여전히 축 늘어진 그를 자신의 방한복으로 돌돌 감싸고는 셔틀로 헐레벌떡 달려갔다.

“아니, 어떻게 된 겁니까?”

“빨리! 아무 데나 가까운 큰 병원으로 가!”

“알겠습니다.”

문을 쾅 닫은 카렐은 셔틀에 있던 응급처치 키트를 꺼내왔다.

“…… 아참 교단 병원은 절대 안 된다! 보안국 불러서 응급실 폐쇄하고 시라즈에 병원셔틀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셔틀 레이서 출신 베네루스가 거의 폭주하다시피 병원으로 내달렸고, 밀리타의 목숨을 건 사투는 셔틀이 병원 주기장에 내리는 순간까지도 계속되었다. 셔틀이 땅에 닿고 문이 열리자 미리 대기하던 의료진들이 이미 숨이 멎은 밀리타를 데리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의료진에 밀리타를 넘긴 카렐은 그들을 따라가려 했지만 어지럼증에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다치고 지친 몸으로 한참을 대신 숨을 불어넣어 주느라 그의 숨이 거의 바닥나 있었다.

“제가 가 있을 테니 여기 계십시오. 곧 보안국에서도 올 겁니다.”

눈치 빠른 베네루스가 쓰러진 카렐을 대신해 얼른 나섰다.

“응급처치만 하고 시라즈로 옮겨. 알았냐. 의사들은 아무도 믿지 마라.”

카렐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예, 물론입니다.”

황제의 걱정을 아는 베네루스가 헐레벌떡 병원으로 멀어져갔다.

“후우.”

셔틀 문짝에 기대앉은 카렐이 멍투성이가 된 몸을 주무르며 혼자 숨을 가다듬었다. 뼈골 쑤시는 아픔도 눈밭에 죽도록 버려져 있던 밀리타를 눈앞에서 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분노로 뒤바뀌어 있었다. 사실 밀리타를 눈물겹게 사랑했던 것도 아니었고, 한때 그를 귀인으로 맞으려 했던 것도 순전히 정치적인 계산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납치를 당해 저 꼴이 되었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그 새끼들이 감히 황제의 여자를…….”

카렐이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때, 할룩스가 그의 신경을 긁어놓았다.

“뭐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카렐은 생각 없이 큰 소리를 냈다가 급히 도로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화면에 나타난 건 차 밖에서 서성대는 코나의 모습이었다.

“어찌된 거냐.”

“가짜 잔딕을 가진 자들을 놓쳤습니다.”

코나가 허공을 가리켰다.

“뭐라고?”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모양의 셔틀이 나타나 싣고 가 버렸습니다. 추격을 눈치를 챈 것 같았습니다.”

카렐의 표정이 확 굳었다. 조금 전 싸움 마지막에 차에서 머리를 부숴 죽였던 헤네티의 보고가 그들에게 전해진 게 분명했다.

코나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셔틀이 얼마나 빠른지 정찰하던 보안국 셔틀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황빈과 장태자가 페로관에서 보았다던 은색의 정체불명 셔틀 같습니다. 코윈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만 포착한 뒤 항로를 놓쳤습니다.”

“혹시 그때 그놈들은 아니고?”

“셔틀에 오를 때 자이납이 확인했습니다. 인상착의로 보아 지난번 페로관에서 잔딕 설치 시도를 했던 현신 같습니다. 오드아이는 트라에타오나 마구스 가문만의 특징입니다.”

카렐은 코나의 ‘현신’이라는 표현이 영 맘에 들지 않았지만 헤네티 시절 철저히 머리와 입에 밴 골수 광신도의 말버릇을 이제와 뜯어고칠 생각까지는 없었다.

“아트위야 빈트 트라에타오나?”

“트라에타오나 교단 근거지는 하임달 5번 행성입니다. 이곳을 나갔다면 하임달에서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미끼를 물고 있으니 우리 손에서 못 벗어납니다.”

카렐이 눈가를 찡그렸다. 이쟈크 가의 영토인 하임달 5번 행성은 하임달의 결전이 있었던 인근의 9번 행성과는 달리 유인 행성인데다가 중화학과 첨단 수제 셔틀 제조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년이 매번 별난 셔틀을 타고 도망 다니는 걸까?”

“트라에타오나 교단은 12개 교단 중 기계학에 가장 뛰어납니다. 콜로니 시대에도 가장 많은 중공업조합을 가진 교단이었습니다. 그 괴이한 셔틀도 그 교단 전문가들의 작품일 겁니다.”

“하임달 5번 행성은 거주지가 많지 않으니 당장 보안국을 동원해서 뒤지도록 해. 하루 이틀 이내에 잔딕의 위치를 잡아낼 수 있을 거다.”

+++++++++++++++++++++++++++++++++++++++++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The Iron Vein 개인지 주문게시판 : http://www.tasawwuf.pe.kr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