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894화 (889/1,132)

< -- 894 회: Part 6. 저승길에 남겨놓은 발자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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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생각이요.”

투르케스크의 태도는 아지드의 예상보다도 더 싸늘했다. 그는 문가에 서 있는 아지드에게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은 채 버럭 화부터 냈다.

“그날 나와 함께한 게 설마 이러려는 거였소? 대체 내게 뭘 바라고 온 거요?”

아지드의 속에서 뭔가가 욱하고 솟구쳤지만 이번만은 참기로 했다. 아기를 낳은 후 누군가에게 맡기고 자수를 하려면 이 아기를 친자식으로 생각해 줄 이 카파키 가 남자가 꼭 필요했다. 아지드의 생각이 맞는다면 타리프 신관이 정말로 가문에 품고 싶었던 사람은 자신의 뱃속에 있는 이 아기였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배란유도제를 먹은 것도 아닌데…….”

아지드가 분을 삭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끔 문제가 생기는 건 알잖아요…….”

“젠장, 왜 그걸 이제 알리냐고!”

서원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던 투르케스크는 아지드가 창백해진 얼굴로 멈칫거리자 마지못해 그에게 들어오라 손짓했다. 그렇지만 배란유도제 타령을 하는 아지드의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저 명문가 재산을 탐내어 고의로 사생아를 임신한 사기꾼 정도로 보는 게 분명했다.

“제기랄, 이제 어쩌라고.”

투르케스크가 이마를 싸쥐고 계속 고개를 저었다. 황당함과 당혹감에 정신을 반쯤 놓았는지, 그는 무거운 짐을 끙끙대며 지고 들어오는 아지드를 빤히 보면서도 ‘어쩌지’ 소리만 연발하고 있었다. 유학자들은 성관계에 교단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으니 이번 일이 알려진다면 아직 젊은 유학자인 그로서는 집단에서 완전히 매장당할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처음엔 그냥 혼자 낳아 기르려 했는데……생각해 보니 아기한테 아빠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이제 와서? 당신 바보요? 낙태주사 맞는 것도 몰라요? 내가 그 속 모를 것 같소?”

“…….”

“멋대로 임신했으니 낳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시오! 난 책임질 생각 없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난 투르케스크는 정리해 놓은 책을 휙 내던지며 성질을 이기지 못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지드는 구석에 쭈그려 앉은 채 그의 분노와 황당함이 가라앉기를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성을 내는 데 지쳐버린 투르케스크는 구석의 장에 숨겨 놓았던 술병을 꺼내 한 모금을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잔뜩 불러 있는 아지드의 배를 힐끔 쳐다보았다.

“……출산이 언제요?”

“열흘 이내에 낳을 것 같아요. 딸이고……나보다는 당신 많이 닮았어요.”

“허, 시간여행이라도 하고 왔소? 그걸 알게? 빌어먹을.”

투르케스크는 입 속으로 혼자 욕을 수십 번 뇌까리며 다시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지드에게 뭐라 더 쏟아내려던 그는 불룩한 배를 보고는 마지못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디서 낳을 거요?”

“……없어요. 두 달째 걸인 생활만 했어요. 이대로는 길에서 낳아야 해요.”

“미치겠군.”

또다시 술을 벌컥 마신 그는 빈 병을 휙 내던지고는 벽에 혼자 몇 번이나 이마를 찧어댔다.

일단 분노를 죽인 그는 쪽지에 뭐라 장황하게 써서는 약간의 돈, 열쇠와 함께 아지드에게 불쑥 내밀었다.

“코윈 산골에 있는 내 집 주소와 열쇠요. 가문에서 구해 준 집인데 전에 숨어 살다가 지금은 비었소. 구질구질한 동네지만 대충 살만은 할 거요.”

“이 집을……어쩌라고요?”

“이 꼴로 길거리에서 낳지 말고 거기 가 낳으라고요. 촌구석 동네니 적당히 도움 얻던지.”

어처구니가 없어진 아지드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날보고 아이를 혼자 낳으란 말인가요?”

“그럼 지금 날보고 남편 노릇이라도 해 달라는 거요? 이 이상 더 뭘 해 달라고? 내 전 재산 다 털어주는 거요! 가문이 부자지 난 빈털터리 서생일 뿐이요.”

“내겐 돈이 필요한 게 아니고 옆에서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갑자기 설움이 북받친 아지드가 투르케스크의 멱살을 와락 붙들었다. 투르케스크가 적어 준 곳은 서원 부근도 아니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낯선 주소였다. 귀찮은 모녀를 떠안고 체면까지 구기느니 눈에 안 띄는 멀리로 보내버리려는 게 분명했다.

“당신도 원해서 나하고 잤잖아요! 자기 핏줄에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져 보라고요! 이 아이는 카파키 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요!”

아지드가 투르케스크를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아주 옳은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기가 남자의 일족이라는 사실에 그는 자신의 거짓말을 속으로 애써 합리화시켰다.

투르케스크가 그런 아지드를 다시 거칠게 밀어냈다.

“난 가문에서 쫓겨났으니 덕 볼 생각은 집어치시오. 미안하지만 계산 잘못 했소.”

그가 모질게 입가를 씰룩거리는 모습에 아지드의 가슴이 와르르 무너졌다. 자신에게 ‘속아 넘어가’ 주기만 한다면 정말로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때 했었지만 그 일말의 기대마저도 허황된 것이었다.

“난 이 서원 책임자요, 자리를 못 비워요. 내게 배우는 아이들이 몇 명인지 아시오?”

“그래요? 당신 같은 사람이 부모자식의 도리니 책임감을 애들한테 참이나 잘 가르치겠군요!”

“뭐?”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투르케스크의 손이 어깨 위로 확 올라가려 했지만 차마 임산부에게 휘두를 만큼 뻔뻔하지는 못했다.

“빨리 나가, 거기서 딴 놈 꿰차고 살든, 집 팔아먹고 돈 챙겨 도망치든 신경 안 쓸 테니 알아서 해. 난 할 만큼 했으니까. 꼴도 보기 싫으니까 빨리 꺼지라고!”

아지드는 투르케스크가 내민 돈을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 안에 꽉 움켜쥐고는 무거운 짐을 다시 둘러메고 서원에서 돌아 나와야 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뒤뚱뒤뚱 내려오던 그는 혹시라도 그가 자신을 쫓아 나와 ‘미안하다’라고 말하지나 않을까 하는 미련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서원 문은 굳게 닫힌 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투르케스크의 집이 있는 ‘주르반 마을’은 코윈의 다른 여느 곳처럼 황량한 설산에 위치한 작은 오지 고산마을이었다. 작은 사금(砂金) 하천을 중심으로 가난한 사금 채취꾼들과 가족들이 사는 판잣집, 천막 50여 채가 가파른 골짜기를 따라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말 그대로 철저히 오지였다.

노선차량도 안 들어오는 이 고산 오지에 오려 아지드는 차를 세 번이나 얻어 탔고, 가파르고 좁은 산길을 고산병에 시달려 가며 꼬박 이틀을 걸어야 했다. 이 험악한 곳이 홀몸인 투르케스크에겐 나름 좋은 곳이었을지 모르지만 당장 아기를 낳아야 하는 아지드에겐 한숨부터 팍팍 나오는 끔찍한 환경이었다.

“후우.”

사람이 없는 낮 시간을 골라 찾아온 아지드는 지붕의 기와도 다 떨어지고 유리창도 깨진 허름한 흙집 앞에서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또 내쉬었다. 서원에서 당한 일을 생각하면 그 남자의 흔적이 있는 곳엔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았지만 뱃속의 아기를 위해선 지금은 자존심도, 분노도 모두 접을 수밖에 없었다.

“길거리보다는 낫지.”

그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있으나마나한 자물쇠를 따고 안에 들어섰다. 방도 따로 구분되지 않은 집안에는 낡은 침대와 먼지만 앉은 난로, 더러운 그릇 몇 개가 전부였다. 그래도 50여일 동안 제대로 된 지붕 밑에서 자 본 기억조차 없는 판국에 침대와 담요까지 있는 집이 너무도 반가웠다.

“그래, 이게 어디야.”

아지드는 시내에서 주워 온 전단지, 신문지로 부서진 창을 묵묵히 막기 시작했다.

짧은 낮이 지나 어두워지고 강가에서 돌아온 주민들 몇이 불이 켜진 이 빈집에 무슨 일인지 찾아와 아는 척을 했다. 물론 아지드는 창밖으로 머리만 내밀고는 투르케스크의 아내라 대충 둘러대고 ‘갓난아기가 있어 집 안에 못 들여 미안하다.’며 그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넌 이미 태어난 거야.”

아지드가 배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교단의 ‘무단출산 단속’에 이곳의 가난한 사금 채취꾼 1년 수입보다 많은 1천 다리크의 포상금이 걸린 상황에서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찬바람을 막은 그는 오래된 담요와 침대도 털고 시커멓게 된 바닥을 물걸레로 닦아냈다. 오랜 여행길 피로가 갑자기 몰려와서 온몸이 어디하나 가릴 곳 없이 쑤셨지만 아기가 처음 볼 세상이 더러운 먼지구덩이로 기억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후우.”

아지드는 걸레를 쥐고 비틀거렸다.

“긴장이 풀려서야. 괜찮아, 아지드.”

아지드가 고개를 저었다. 위험천만한 고산 바위틈에서 노숙을 할 만큼 힘든 상황에도 충분히 익숙해 있다고 생각했지만 집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이상하게 몸이 더 무겁고 힘들었다.

집에서 대충 흉한 꼴만 지워낸 그는 난로를 켜려 했지만 얼마 안 남은 석탄덩이를 보고는 그마저도 포기하고 일어섰다.

기진맥진해진 그는 싸늘한 냉기가 도는 매트리스에 몸을 뉘였다. 그래도 바위틈에서 잔 어젯밤에 비하면 그에겐 천국이었다. 아직 예정일도 아닌데 배가 살살 아프고 이상하리만큼 무거웠다.

“너도 힘들지?”

아지드는 여느 때처럼 배를 만지작거렸지만 근 며칠 동안은 아기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그는 덜컥 걱정이 들었지만 깊이 생각할 새도 없이 지독한 피곤함이 정체모를 통증과 걱정까지 쫓아내고 그의 눈을 감기게 만들었다.

“아읍.”

몇 시간 동안 아랫배의 무거운 통증으로 잠을 설친 그는 어느 순간 정신을 퍼뜩 차리며 잠에서 확 깨어났다. 표독스럽게 생긴 노인이 배를 마구 밟아대는 끔찍한 꿈에 한참을 시달렸던 그는 계속된 복통이 처음엔 꿈 때문인가 싶었다. 하지만 깨어난 후에도 이어지는 통증은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7시…….”

자신이 4시간 넘게 잤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배를 만지작거리며 시계를 보았다. 짧게 이어지는 규칙적인 진통이었다. 비록 아기를 낳아 본 일은 없지만 지금 자신의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짧은 진통이 지난 후, 손으로 자궁이 얼마나 열렸는지 조심스레 확인하고는 묵묵히 일어나 석탄으로 난로에 불을 붙이고 물을 올렸다. 그리고 가위를 꺼내 소독을 하고 미리 사 놓았던 깨끗한 기저귀감 면포 묶음도 꺼냈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며칠이나 준비하고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짜 놓았던 것이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두려움이 먼저 그의 가슴을 엄습했다.

“제발, 무사히만 나와 다오.”

그는 깨끗한 천을 침대에 두툼하게 깔고 그 위에 앉아 시계를 보며 숨을 가다듬었다. 의학교 시절 배웠던 지식들, 봉사의 시절 분만을 도왔던 기억에 의지해 이젠 혼자서 다 해야 했다. 그는 불을 끄고 조용히 숨을 가다듬으며 아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또다시 진통이 엄습하자 그는 이번엔 짧은 비명을 내고 말았다.

외로운 출산의 시작이었다.

침대머리에 기대어 꿇어앉은 아지드는 수건을 입에 꽉 물고 자리에서 파르르 떨었다. 이웃 사람들이 다 집에 있을 새벽3시에 비명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누군가 그의 신음소리나 비명을 듣고 신고한다면 아기도, 그도 모두 끝장이었다. 초산인 그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도 가혹했다. 집 안은 여전히 추웠지만 그의 뺨으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홀로 산고와 싸운지 벌써 9시간째지만 아직 그는 아기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고통은 더해갔지만 아기는 정수리만 조금 내민 채 한참을 애만 끓이며 나타내지 않았다.

“아읍.”

또다시 몸을 조이는 진통에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침대 틀을 움켜쥐었다. 아기도 더 나오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빨리, 빨리 좀.”

그는 처음으로 아기가 너무너무 밉다고 생각했다. 아니, 자신을 이렇게 만든 대신관이, 무심한 투르케스크가, 심지어 그레이오팔을 콜로니에 데려온 타리프 신관까지도 미치도록 미웠다. 눈앞에 있으면 모두 뺨을 때려주고픈 심정이었다. 바닥은 이미 그가 흘린 양수와 피로 범벅이었다.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아악.”

조금 전보다 훨씬 극심한 고통에 무심결에 입을 벌리고 소리를 냈던 그는 수건을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 당황한 아지드는 허겁지겁 수건을 다시 집어 깨물었다. 흥건한 땀 위로 눈물까지 벌컥 쏟아져 얼굴이 축축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며 힘을 주었다.

“제발, 빨리 좀 나오라고.”

그는 미운 아기에게 윽박지르듯 말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그는 몸을 반으로 찢어내는 것 같은 아찔한 고통에 다시 비명을 지를 뻔했다. 무언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더듬더듬 밑을 만져보았다. 분명 아기의 머리가 만져지고 있었다. 의사였을 때는 산모에게 호흡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도 일상처럼 했었지만 정작 지금 스스로는 정신이 혼미하고 두 손이 떨려 어느 것도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다행히 아기는 이미 엄마 몸을 빠져나가려 스스로 몸을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잘 했어, 잘 하는구나.”

그는 손으로 아기 머리를 받치고 다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뒤이어진 고통에 아지드는 침대머리에 머리가 깨질 듯 꽉 붙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순간 정말 죽고만 싶었다. 왜 이런 선택을 했었는지, 모든 것이 후회스러웠다.

“끄으윽.”

참지 못한 그는 결국 입을 벌리고 비명소리를 냈다. 수건이 다시 바닥에 툭 떨어졌지만 이번엔 다시 집어 물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학, 학.”

힘겨운 숨을 몇 번 몰아쉰 아지드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다리 사이를 내려다보았다. 제일 힘들게 했던 어깨가 쑥 빠지면서 아기의 작은 몸이, 손과 발이 그의 몸 안에서 뒤따라 빠져나왔다. 작게 콜록거리는 소리와 희미하고 짧은 울음소리가 어둡고 침침한 방 안을 울렸다.

“아가야?”

아지드는 자신의 몸과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작은 아기를 보며 잠시 꿈인가 싶은 느낌에 빠졌다. 지난 열 달을 그와 함께하며 죽음의 위협도 겪어내고, 참담한 걸인 생활까지 모두 함께하며 힘을 주었던 소중한 생명이 이제 세상의 공기로 숨을 쉬고 있었다.

아지드는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아기를 흰 면포로 닦아내고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갓 태어난 아기답지 않게 선명한 이목구비가, 뽀얀 얼굴이, 엄마의 체온을 느끼고 더듬거리는 작은 손끝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13시간이 넘는 산고의 기억과 짧은 원망마저 아기의 예쁜 얼굴을 본 순간 머릿속에서 싹 사라져 버렸다.

그는 머리맡의 작은 램프를 켜고 희미한 불빛에 아기의 얼굴과 몸을 구석구석 확인해 보았다. 어디 하나 잘못된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제대로 뜨지도 못한 아기의 눈꺼풀을 살짝 벌려 보았다.

“카히나, 오르마즈.”

아지드의 입가에 행복한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아기의 말똥말똥한 옅은 회색 눈동자에는 아주 희미한 무지개빛이 보일 듯 말듯 비치고 있었다. 분명한 그레이오팔이었다.

“101년 만에 세상에 돌아왔구나.”

아지드는 할딱거리는 작은 아기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끙끙거리며 가슴을 더듬거리는 아기가 너무나도 예뻐 미칠 것 같았다.

“내가 네 엄마란다. 오르마즈. 오르마즈 카파키.”

아지드는 아기의 뺨과 이마에 몇 번이나 입을 맞춰 주고는 떨리는 손길로 가위를 집었다.

“제게 이 아기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위대한 현신이시여.”

그는 손에 힘을 주어 아기의 탯줄을 잘라냈다. 이후 기원 원년으로 기록될 해의 추운 늦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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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6. 저승길에 남겨놓은 발자국]은 이번 편으로 끝을 맺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파트7. 그들처럼 될 수는 없기에] 가 이어집니다. 제목 그대로, 교단에 대한 카렐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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