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12 회: 파트 8. 어머니와 딸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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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밧줄 하나로 연결된 모녀는 어두운 길을 따라 계속 길을 재촉했다. 좁은 길목에서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던 아지드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기척에 걸음을 딱 멈추었다.
“잠깐.”
엄마가 멈춰 서자 뒤따라오던 오르마즈도 얼른 자리에 멈췄다. 어리기는 해도, 이런 외진 길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짐승도, 낙석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 뒤에 꼭 붙어 있어.”
아지드는 8년 전 자신이 죽인 대신관 딸에게 빼앗은 호신용 석궁을 더듬더듬 찾으며 바위 틈새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제발 그것을 쓸 일이 없기만 바랄 뿐이었다. 낭떠러지를 낀 좁고 가파른 길목이라 누군가 악의를 품고 앞뒤를 막기라도 했다가는 달아날 곳도 없이 끝장이었다.
“으잇.”
어두운 바위틈에서 나타난 시커먼 형상 둘에 아지드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마르고 너저분한 외모의 두 남녀 손에는 낫과 큰 식칼이 들려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엄마.”
공포를 직감한 어린 오르마즈가 엄마의 손을 부서져라 꽉 붙들었다. 아지드는 석궁을 번쩍 들어 낯선 자들의 머리를 겨누었다.
“죽기 싫으면 구석으로 물러나.”
예상치 못한 무기에 그들이 화들짝 놀라 낫과 칼을 뒤에 감추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저, 저기 서쪽 언덕에 벌통 놓은 양봉꾼인데……오해하신 모양입니다.”
상대의 무기에 당황한 두 사람은 순순히 절벽 한쪽의 바위틈으로 물러났다.
“따라와, 얘야.”
그들을 절벽 구석에 몰아놓은 아지드는 한 손엔 석궁을, 나머지 한 손으로는 딸의 손을 꼭 붙들고는 좁은 길목을 조심조심 걸어 강도들 옆을 지나갔다. 작은 호신용 석궁은 두 발까지 쏠 수 있으니 이들 정도는 충분히 묶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이 정말 양봉꾼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이곳은 외지인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던 선량한 농부가 다음 순간 칼을 들고 강도로 돌변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곳이었다.
“엄마, 뒤에!”
오르마즈가 엄마의 손을 더 꽉 잡았다. 뒤에서 튀어나온 또 한 명의 남자가 못이 박힌 긴 몽둥이를 들고 모녀의 등 뒤로 달려들고 있었다.
“악!”
놀란 아지드가 휙 돌아서서는 남자를 향해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다. 윗가슴에 볼트를 맞은 괴한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지만 이젠 처음 마주쳤던 남녀가 문제였다. 아지드가 방향을 돌려 동료를 쏘는 새, 그들 중 남자가 낫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앗!”
남자가 휘두른 낫에 팔을 벤 아지드가 석궁을 떨어뜨리며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엄마!”
“이 꼬마 붙잡아!”
엄마에게 매달리려는 꼬마를 식칼을 든 여자가 덥석 낚아냈다. 어른에게 목이 졸린 오르는 엄마의 손을 놓치고 뒤로 질질 끌려갔다.
칼을 든 여자가 아이를 붙들고 있는 동안, 낫을 든 남자가 쓰러진 아지드의 숨통을 끊으려 낫을 힘껏 내리찍었다. 하지만 아지드도 성한 한쪽 팔을 계속 저으며 강도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가진 거 다 줄 테니 보내 줘요! 제발요!”
아지드가 낫을 휘두르려는 남자의 한쪽 팔을 끌어안고 급소만은 찔리지 않으려 발악을 했다. 그가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어린 딸의 운명도 끝장이었다. 그는 몇 번을 찔리고 베이면서도 상대의 팔을 죽어라 놓아주지 않았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 놔 줘요!”
여자에 붙들린 어린 오르마즈도 그자의 팔을 마구 치며 울부짖었다.
“시끄러! 가만히 있지 못해!”
그 강도가 오르마즈의 얼굴에 녹슨 칼날을 들이대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런 오르의 뺨을 타고 무지개빛 눈물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먼 옛날, 그의 다른 분신이 눈앞에서 어머니의 끔찍한 죽음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그날처럼.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던 오르마즈가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엄마.”
버둥대던 오르마즈가 작은 입을 악 벌리고는 눈앞에서 식칼을 쥐고 흔드는 여자의 엄지손가락을 온 힘껏 깨물었다. 칼날에 뺨이 깊숙이 베였지만 지금의 그에겐 눈에 보이는 것도, 아픔도 없었다.
“우악!”
엄지손가락이 통째로 떨어져나간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꼬마를 동댕이치고 물러났다. 강도의 손에서 풀려난 오르마즈는 엄마에게 낫을 휘둘러대던 난폭한 강도에게 성난 짐승처럼 돌진했다.
“뭐 하는 거야! 꼬마 하나 제대로 못 잡고!”
아지드를 쓰러뜨린 남자 강도는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달려오는 조그만 꼬마를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여유도 잠깐이었다. 이 정신 나간 꼬마는 절벽을 등지고 막 일어서는 강도의 가슴을 체중을 실어 온 힘껏 들이받았다.
“어, 엇.”
달려오는 꼬마를 붙잡으려던 남자는 아차 하는 새 중심을 잃고 깎아지른 낭떠러지 밖으로 휙 밀려났다.
“아, 아아아악!”
아지드를 난도질하던 강도는 골짜기를 타고 메아리치는 긴 비명을 남긴 채 아찔한 어둠 속으로 추락해 사라져버렸다. 끔찍한 비명소리는 빡 하고 땅을 울리는 큰 소리가 한 번 울린 후에야 완전히 조용해졌다.
“어, 엄마!”
마구잡이로 돌진했던 오르도 등에 멘 무거운 짐 때문에 미처 멈춰 서지 못하고 길목 모퉁이에서 바닥에 고꾸라졌다. 일순간 그의 눈앞에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낭떠러지가 번개처럼 스쳤다. 강도에 뒤이어 추락할 뻔했던 오르는 바닥에 늘어져 있던 밧줄을 덥석 붙잡았다.
“으웁!”
줄이 갑자기 팽팽해지면서 바닥에 쓰러져 있던 아지드의 짧은 비명이 울렸다. 그의 허리에 맨 밧줄 끝에 딸아이가 매달려 버둥대고 있었다. 밧줄 덕분에 상체는 가까스로 낭떠러지 모퉁이에 걸렸지만 두 다리는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지드가 낫에 베어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딸과 이어진 밧줄을 꽉 붙들었다.
“놓치지 마! 거기 있어!”
하필 그때, 조금 전 오르에게 손가락을 물어 뜯겼던 여자가 칼을 쳐들고 달려들어왔다.
“저 미친 꼬마년 같으니!”
여자 강도의 악에 받친 고함소리는 탁 하는 석궁의 짧은 타격음에 그대로 끊겨버렸다. 광기에 사로잡혀 달려오던 여자 강도는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옆으로 휙 돌며 벌렁 자빠졌다.
겁을 먹고 땅바닥에 얼굴을 박았던 어린 오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지드가 쏜 석궁에 겨드랑이를 명중당한 강도는 비틀거리며 일어나서는 쓰러진 한패거리를 놔둔 채 피를 철철 흘리며 혼자서 어둠 속으로 도망을 쳐 버렸다. 저 상태로는 어차피 몇 발짝 더 도망가지도 못할 터였다.
“썩을 년, 감히 누굴 해치려고.”
텅 비어버린 석궁을 내던진 아지드가 밧줄을 쥐고 엉금엉금 기어와 절벽에 매달려 있던 딸을 힘껏 끌어올렸다. 하지만 온몸을 낫에 베이고 피투성이가 된 아지드는 딸을 끌어올리자마자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축 늘어지고 말았다. 지금 같아서는 도망간 강도를 따라갈 수도, 이번 일로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따위는 생각할 형편도 아니었다.
가까스로 지상에 오른 오르는 조금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는 남자 강도의 모습에 지레 놀라 방금 도망친 여자강도의 칼을 얼른 주워들었다. 처음 아지드에게 돌진했다가 가슴에 볼트를 맞았던 자였다.
“엄마 가만히 있어.”
한 손에 칼을 꽉 쥔 어린 오르는 까치발을 하고는 그 남자에게 살금살금 다가갔다. 윗가슴이 피투성이가 된 그 덩치 큰 남자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발로 남자를 툭툭 차 본 오르는 살아있는 사람의 느낌과는 무언가 다른, 마치 물건처럼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녀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느꼈다.
“이 사람은 죽었나봐.”
난생 처음 본 시체에 놀란 오르마즈가 침을 꿀꺽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쇄골의 동맥이 찢기고 피를 많이 흘린 강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
엄마에게서 대답이 없자 오르마즈가 뒤를 휙 돌아보았다. 온몸 곳곳을 베이고 피를 많이 흘린 아지드가 흙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얕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창백해진 오르마즈가 허둥지둥 엄마의 짐을 벗기고 목을 꼭 껴안았다. 죽은 강도처럼 엄마도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에 아이가 일순간 이성을 잃었다.
“엄마, 빨리 일어나, 응? 엄마는 죽지 마.”
딸의 무릎 위에서 눈을 뜬 아지드는 피와 눈물에 흠뻑 젖은 딸의 무지개빛 눈동자를 본 순간 정신이 퍼뜩 드는 것 같았다. 아이는 겁에 질려 있었다. 이미 죽은 강도처럼, 엄마도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아이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나 배고프다고 안 할 게. 공부도 열심히 할게, 엄마 제발 죽지 마.”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음’을 눈앞에서 본 아이가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눈가를 더러운 소매로 닦으며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 놔두고 죽지 마, 엄마.”
“엄마 안 죽어.”
아지드가 아이의 눈가를 손으로 닦아주고는 품에 꼭 안았다. 목을 껴안은 아이의 작은 손으로 전해지는 체온이, 할딱거리는 아이의 숨소리가 이대로 쓰러지려는 그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에 또다시 이렇게 딸의 무릎 위에 쓰러진다면 그때는 어쩌면 살아서 눈을 뜰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문득 들었다.
“엄마 절대 안 죽어. 네 앞에선…… 안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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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돌아온 이후로도 카렐은 한동안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도 떠지지 않았고 손발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감각기만 희미하게 살아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을 여전히 혼수상태로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참을 멍하니 누워있기만 했다.
그동안 의사로 짐작되는 누군가가 그에게 주사를 놓아주었고, 또 다른 누군가가 옷을 벗기고 얼굴을 정성껏 닦아주는 것도 느꼈다. 다른 사람이 없을 때, 그 ‘누군가’가 몰래 그의 침대에 들어와 그의 몸을 더듬고 옆에서 잠시 함께 누워 있다가 나갔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가 몇 시간 만에 비로소 몸을 움직였을 때도, 그 ‘누군가’는 여전히 곁에 있었다. 그것도 불 꺼진 어두운 침실에서, 같은 침대 안에 누워있었다. 그는 비빈 혹은 허가받은 시녀가 아니면서도 황제의 몸에 맘대로 손을 대고도 처벌을 받지 않을 유일한 사람이었다.
“어머니.”
카렐의 어눌하게 불렀지만 깊이 잠든 세네피스는 깨지 않았다. 그는 카렐의 침대 한쪽 구석에 웅크린 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꿈이라도 꾸는 듯 입가에 웃음을 가득 품고 있었다.
“루스탐, 내 명령을 어겼군.”
카렐이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 한쪽 구석을 말없이 지키던 루스탐이 개미만한 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자네 생각은 아니었을 텐데?”
“……황궁 내의원에서 치료를 받던 니사 라말라 박사를 불러왔습니다.”
“라말라 박사가 어머니도 모셔오라고 했나.”
“하루가 넘어도 안 깨어나셔서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깨어나셔서 기쁩니다.”
고개를 돌린 카렐은 잠든 세네피스의 어깨를 살짝 짚었지만 그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 발작 직후 깨어날 때마다 그를 괴롭히던 온몸의 지독한 통증이 이번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깊이 잠드셨군.”
카렐이 세네피스의 고운 갈색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제부터 30시간을 넘게 안 주무시고 폐하 곁을 지켰습니다. 많이 피곤하실 겁니다. 다른 방에서 주무시라고 했지만 곁에서 함께 주무시겠다고 고집하셔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여기가 어디냐?”
“이트닌 캠프의 빈 장교 관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추운가.”
고개를 조금 돌리자 2층의 넓은 창 너머로 자작나무 숲의 썰렁한 밤 풍경이 내다보였다.
“갓 깨어나셔서 체온 조절이 안 되어 그럴 겁니다. 좀만 더 누워 계십시오.”
“등이 너무 아파.”
카렐은 한 침대에 누운 세네피스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몸을 일으켰다. 루스탐이 부축해 주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카렐은 잠든 어머니를 가리키며 움직이지 말라고 손짓했다.
“거기 있어.”
카렐은 흐느적거리는 세네피스의 머리를 손으로 받치고 자신이 누웠던 침대 중간 자리에 살며시 눕혀주었다. 세네피스는 카렐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다시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냈다.
세네피스를 눕혀놓고 일어난 카렐은 그의 어깨까지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고는 침대 모서리에 힘없이 걸터앉아 찬물 몇 모금을 들이켰다. 발치에 놓인 난로 위에서는 세숫물이 데워지며 따뜻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고, 그의 옷가지들도 차곡차곡 정돈되어 있었다. 조금씩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비로소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일어서실 수 있으십니까.”
루스탐의 물음에 카렐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기 몸을 둘러보았다. 검은 용 문신이 휘감고 있는 몸 곳곳엔 누군가 억지로 내리누르고 묶은 듯 크게 피멍이 들어 있고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었을 때보다 조금 여윈 듯 보였다.
침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카렐은 침대머리에서 끈적한 액체가 가득 담긴 큰 컵을 발견했다.
“뭐냐?”
“라말라 박사가 만들어 놨습니다. 깨어나시면 바로 드시게 하라고요.”
“그럴 줄 알았지.”
카렐은 코를 막고는 이 구역질나는 음료도 한 번에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벽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가로 향했다. 루스탐은 미리 데워놓은 세숫물과 양치물을 얼른 창가의 탁자에 놓아주었다.
“그 동안 별일 없었나?”
카렐이 아직 잔뜩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호드르의 토벌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우리 피해는?”
“적잖이 발생했지만 예상하신 범위 수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자이납이 보고서 갖고 아래층에 와 있으니 직접 만나보십시오.”
세숫물에 얼굴을 한 번 푹 담갔다 꺼낸 카렐은 잠든 세네피스가 끙끙대는 소리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먼저 나가 있어라.”
“예?”
“10분 후에 따라 나가겠다.”
“알겠습니다.”
루스탐은 방에 있던 짐들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급히 방을 비워주었다.
세네피스와 단둘이 남은 카렐은 침대 쪽을 돌아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갔습니다.”
10분 후에 나오겠다던 카렐은 거의 30분 가까이 지나서야 1층 거실에서 기다리는 아랫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깨끗한 옷으로 싹 갈아입고 부스스한 머리도 깔끔하게 다듬은 황제는 혈색도 훨씬 나아보였고 그새 걸음도 온전히 내딛고 있었다.
루스탐은 황제가 왜 이제야 나온 것인지 퍽이나 궁금했지만 그가 말을 해 주지도 않았고, 덮어놓고 물을 수도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엉뚱한 질문을 대신 했다.
“황태후께선……안 내려오십니까?”
“조금 더 주무실 거다. 깨시면 헌병들 시켜서 남극성당에 모셔다드리게 해.”
카렐은 느릿느릿 계단을 내려와 거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괜찮으십니까?”
자이납, 루스탐과 함께 거실에서 황제를 기다리던 니사 라말라 박사가 주춤거리며 일어나 교단 윗사람에게 절을 하듯 가슴에 손을 모으고 바닥에 이마를 댔다. 두 팔을 등받이에 걸고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은 카렐은 절하는 트라카 2신관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영양 음료’는 드셨나요?”
“다량의 지방과 단백질, 약간의 탄수화물과 미네랄이 이상적으로 배합된 최상의 황제용 꿀꿀이죽 말인가. 느글느글한 맛도 환상적이고.”
30년 전, 그가 주치의였을 때 했던 말을 마치 녹음이라도 한 듯 그대로 읊어내는 황제에게 니사가 다시 웃음을 보였다.
“마스모간 니사 라말라. 날 챙겨주느라 수고했네.”
자신의 정식 호칭을 불러주자 니사의 얼굴이 발그스레하게 달아올랐다.
“황태후께서 순순히 돌아가겠다고 하시던가요?”
니사의 밑도 끝도 없는 물음에 카렐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가끔은 자네가 내 어머니에 관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실제로도 그런가?”
“글쎄요.”
니사가 다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실은 폐하 덕분에 제가 10골드 땄습니다.”
“음?”
“폐하께서 10분을 넘기실 건지 아닌지 루스탐이랑 내기를 걸었었거든요. 30분을 넘기셨다면 20골드 땄을 텐데.”
“후훗. 그래?”
니사의 묘한 웃음에 카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소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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