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42 회: 파트9. 그의 마지막 꿈이 있는 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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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들 못 도망가게 해!”
사카가 부하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지난밤 세데스의 기습에 타격을 입었던 그는 부상을 입은 셋은 세데스의 바로 뒤를 쫓게 했고, 경상자 한 명과 성한 한 명만 데리고 정글을 빙 돌아 막 이곳에 도착해 있던 터였다. 간발의 차로 데이와 세네피스를 놓친 건 아까웠지만 생각 외의 먹이가 바로 그 뒤에서 튀어나왔으니 그에겐 공짜 점심이었다.
“또 옵니다!”
나무 뒤에 숨은 세데스의 가디언이 방금 나온 정글 속을 가리켰다. 세데스 일행의 뒤를 밟아 쫓아오는 또 다른 헤네티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다른 가디언과 함께 맹그로브 틈새에 숨은 세데스가 얼른 물었다.
“어제 그놈들 여섯이었지?”
“오기 전에 나가서 맞서 싸워보…….”
“안 돼, 저 무기 때문에 못 당해, 일단 도망가는 게 낫겠다.”
세데스는 나무 뒤에 숨은 가디언에게 선착장의 배를 가리켰다. 손짓을 받은 가디언은 동료 가디언과 세데스가 엄호사격을 하는 사이 번개처럼 선착장에 뛰어들어 달리기 시작했다.
“사격!”
사카와 헤네티들이 맹그로브 숲 사이 선착장을 가로질러 달리는 가디언을 향해 마우저를 쏘아댔지만 그는 잔뜩 우거진 가시투성이 맹그로브 사이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마우저가 아무리 정확해도 전속력으로 달리는 2등급의 베테랑 가디언들 잡아내기는 행운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젠장!”
그때, 사카는 세데스의 엄호사격이 갑자기 약해진 것을 느꼈다.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발밑 조심해!”
사카가 물 위로 비죽 나온 나뭇가지 위에 서 있던 부하에게 소리를 질렀다. 헤네티들이 선착장을 세데스의 가디언을 쏘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맹그로브 덤불에 숨은 또 다른 가디언이 던진 큰 도끼가 공중을 휙휙 돌며 날아올랐다.
“앗!”
헤네티가 얼른 몸을 움츠렸지만 도끼는 그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육중한 힘으로 날아든 도끼는 그가 매달려 있던 나뭇가지 중간을 쩍 소리를 내고 갈라놓았다. 꺾이는 나뭇가지와 함께 위에 서 있던 헤네티도 그대로 물로 곤두박질쳤다.
“이, 이크!”
물에 풍덩 빠지는 줄로 알았던 헤네티는 얕은 물 밑의 푹신한 늪에 철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휴우.”
진흙투성이가 된 헤네티는 내심 다행이라 안도하며 고개를 들었지만, 실상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고개를 든 순간, 눈앞에 무언가 큼직한 통나무 같은 것이 물 밖으로 확 튀어나왔다.
“뭐야, 이건!”
헤네티가 번개처럼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나무에서 떨어지며 무릎까지 빠진 한쪽 발이 쉽사리 빠져나오지를 않았다. 옴짝달싹못하게 된 그는 마우저를 번쩍 들어 쩍 벌어진 익어 입에 대고 쏘려 했지만 그 정밀한 기계는 하필 이 순간 진흙이 속까지 파고들어 작동을 하지 않았다.
“이런.”
짧은 탄식과 함께, 그 거대한 악어가 자리에서 못 움직이고 있는 마우저를 든 헤네티의 팔부터 가슴까지 한입에 덥석 물어버렸다.
“빨리 나와!”
악어에 물린 동료의 비명에 놀란 헤네티가 그쪽에 대고 마우저를 당겼다. 마우저의 일격에 헤네티를 문 악어의 머리와 목 절반이 뚝 잘려나갔지만 이젠 주변 다른 악어들까지 몰려들고 있었다. 마우저를 든 그 헤네티가 급한 나머지 위기에 처한 동료를 구하러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헤네티들의 곤경을 본 세데스의 눈이 확 트였다. 마우저를 든 둘이 다 발이 묶였으니 빠져나갈 절호의 기회였다.
“가자!”
세데스는 조금 전 자신을 구해 준 가디언의 등을 탁 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막 물을 박차고 일어나려던 그 가디언도 갑자기 낯빛이 창백해지며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의 다리 아래를 본 세데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 빌어먹을!”
세데스는 단검을 빼 부하의 발을 물고 있던 악어의 단단한 정수리를 정통으로 내리찍었다. 그리고는 악어의 입을 벌려 발을 빼내고는 그를 부축하고 일어섰다.
“엄호해!”
가디언을 어깨에 번쩍 둘러멘 세데스는 선착장의 배에 숨어 있는 가디언에게 목이 찢어져라 외치며 배로 달리기 시작했다. 세네피스가 지나갈 때만 해도 더도 없이 평화로웠던 맹그로브 숲은 세 명의 가디언과, 세 명의 헤네티, 그리고 수많은 악어들이 뒤엉켜 순식간에 피로 범벅이 된 싸움터가 되어 있었다.
“저기 간다!”
사카가 달려가는 세데스를 뒤쫓기 시작했지만 달음박질 하나는 어마어마하게 빠른 그를 바로 쫓아가 잡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마우저도 없었다. 급해진 사카는 손도끼를 대신 빼들었다.
“씨발놈! 쫓아오지 좀 말라고!”
가디언을 멘 세데스는 삐거덕거리는 나무 선착장 위를 결사적으로 달렸다. 먼저 배를 차지한 가디언이 엄호사격을 해 주며 그에게 빨리 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악을 쓰며 내달리던 세데스의 등 뒤로 사카가 던진 손도끼가 날아들어 배낭을 후려쳤다.
“우읍!”
충격을 받은 세데스는 앞으로 벌렁 넘어지면서도 등에 진 가디언을 놓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를 붙드느라 오른손에 들었던 석궁이 악어로 우글거리는 물에 풍덩 빠져버렸다.
“지긋지긋한 놈!”
바닥에서 엉금엉금 일어난 세데스는 가디언을 질질 끌고 보트에 몸을 던졌다.
“출발해! 빨리!”
이젠 세네피스 황태후와 데이를 따라잡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노를 잡은 가디언은 장대로 바닥을 힘껏 밀어 배를 일단 출발시켰다.
“호수 중간으로 가지 말고 일단 남쪽으로 가!”
세데스가 이곳보다 맹그로브 숲이 더 우거진 곳을 가리키며 악을 썼다. 맹그로브가 없는 탁 트인 넓은 물로 나갔다가는 ‘나 좀 쏴주세요.’식의 사격 표적이 될 것이 뻔했다. 혼자 노를 잡은 가디언은 가능한 맹그로브가 빽빽한 남쪽 습지로 배를 움직였다.
“우잇! 조심해!”
세데스가 부상을 입은 가디언의 얼굴을 가슴에 꽉 끌어안으며 몸을 움츠렸다. 그새 악어 입에서 동료를 구해낸 헤네티가 이제 다시 마우저로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그자가 쏜 마우저가 배의 측면을 박살을 내고 지나갔다.
“이런! 빌어먹을!”
세데스가 얼른 손으로 그 부분을 틀어막았지만 수많은 악어들에 둘러싸인 사이에서 배 안에 점점 물이 들어차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가 탄 배는 사카와 헤네티 일행들에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젠장!”
거의 잡을 뻔했던 세데스를 코앞에서 놓친 사카가 바닥의 진흙을 차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사카가 씩씩대며 두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그 녀석은 어때?”
“괘, 괜찮습니다.”
악어에게 한쪽 팔을 물렸던 헤네티가 억지로 웃음을 지었지만 보이는 몸 모양새는 그렇지 못했다. 어깨까지가 온통 너덜너덜해져 저 상태로는 싸움은 고사하고 당장 후송이 시급한 판이었다. 이대로는 새벽에 당한 불의의 패배의 설욕이라고도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그때, 세데스의 뒤를 쫓아 온 세 명의 헤네티들이 정글에서 뒤늦게 헐레벌떡 모습을 나타냈다.
“이런, 놓쳤습니까?”
“응.”
사카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따라오라 손짓하고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이곳에 세워져 있던 노 달린 쪽배 3척 중 1척은 세데스가 타고 달아났고 이제 2척만 남아있었다.
“아라무트 산 밑에 본대가 와 있을 테니 난 지금 건너가야 한다.”
사카는 부하들 중 상태가 나은 셋을 골라 보트 하나를 가리켰다.
“도망친 세 놈들 너희가 해결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둘이나 부상자인걸요.”
대장의 말뜻을 알아들은 세 헤네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데스의 배를 쏘아 부쉈던 헤네티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배에 구멍이 크게 났습니다. 어쩌면 이미 가라앉아 악어 밥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저흰 시체 확인하고 따라갈 테니 대장께선 이 친구들 데리고 먼저 가 계십시오. 마우저가 달랑 두 정 남았으니 하나 가져가십시오.”
그들은 악어에 물린 동료와 어제 나무에 깔려 팔뼈가 부러진 동료를 보트에 조심스레 태웠다. 교통수단도 없는 이곳에서 부상을 입은 동료들을 후송할 수도 없으니 영감의 궁에 보내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두워지기 전까지는 여길 출발해서 호수를 건너와라.”
마우저를 챙기고 혼자 노를 잡은 사카는 조금씩 기울기 시작한 해를 보며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머지 세 부하들의 걱정은 도리어 혼자 배를 저어야 할 대장이었다.
“배도 부실한데 부상자 둘을 태우고 혼자 노를 저으실 수 있겠습니까? 거리가 꽤 멉니다.”
“밤에는 도착하겠지.”
사카는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나무 쪽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사실 속으로는 마치 ‘따라오려면 와 봐라’는 듯 혼자서 편하게 고속보트를 타고 가버린 데이 그자가 얄미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럼 이따가 보자.”
그는 이곳에 남아 세데스 일행을 수색할 부하들 셋을 놔두고 호수 너머로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럼 도망친 친구들 사냥하러 나서 볼까나.”
남겨진 세 헤네티들은 마지막 보트에 올랐다. 그들 중 마우저를 쥔 한 명이 뱃머리에서 눈을 부릅뜨고 맹그로브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데스의 배는 부서졌고, 그렇다고 호수로도 못 나갔으니 맹그로브 숲 어딘가, 혹은 악어 뱃속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헤네티들의 기대와는 달리, 세데스 일행은 ‘아직까지는’ 악어밥이 아니었다. 마우저에 맞아 측면에 구멍이 난 그들의 보트는 맹그로브 숲 안쪽에 숨어 있었다. 그들의 배는 나뭇가지와 갖은 부유물들이 뒤엉켜 있는 작은 둔덕에 걸쳐진 채 빽빽한 맹그로브와 여러 마리 악어들 사이에 섬처럼 떠 있는 꼴이었다. 다행히 물은 더 들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는 나갈 수도 없었다.
“씨이.”
세데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칼을 꽉 움켜쥐었다. 이미 두 마리를 쏘아 죽였고 놀란 악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문제는 배에 난 구멍 때문에 빠져나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악어들은 물 속 멀찍이에서 맴돌며 이들이 인내심을 잃고 물로 뛰어들거나 배가 가라앉아 허우적거리게 될 때만 얄밉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 배낭이 아니었다면 두 번 죽었을 거야.”
세데스는 등 뒤의 배낭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마우저에 한 번 관통당하고, 도끼에서 그를 지켜 준 배낭은 내용물이 터져 나와 거의 누더기 꼴이었다.
“어쩌죠.”
다리를 다친 가디언이 마치 죄인처럼 풀 죽은 소리로 물었다. 뭍이 있는 곳과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중간엔 온통 악어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일단 물에 빠지면 저희들도 당하기가…….”
“걱정 마, 내가 책임지고 나갈 길 찾을 테니까.”
세데스는 주변을 떠다니는 악어의 머릿수부터 세 보았다.
“보이는 건 11마리밖에 안 돼. 뭐, 물속에는 좀 더 있겠지.”
“‘밖에’요?”
석궁을 들고 경계하던 가디언이 억지로 웃으며 되물었다. 그때, 부상을 입고 쓰러진 가디언과, 경계를 하던 가디언 둘이 동시에 고개를 쳐들고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누가 옵니다.”
“너희들 뭐 하자는 거야.”
세데스가 작은 소리로 짜증을 냈다. 한 명은 맹그로브 숲 바깥의 호수 쪽을, 한 명은 뭍이 있는 남쪽 정글을 각각 따로 가리키고 있었다. 두 방향 중, 그들에게 먼저 가까워진 건 호수 쪽이었다. 노를 젓는 듯, 물이 규칙적으로 찰랑거리는 진동이 맹그로브 숲 밖에서 가늘게 전해져왔다.
“낮춰.”
셋은 체열 노출을 피하려 숨을 죽이고 보트 안쪽으로 몸을 감추었다. 사람 키보다 훨씬 큰 맹그로브 너머로 물 위를 미끄러져가는 보트가 희미하게 보였다. 노를 젓는 한 명과 석궁, 마우저를 든 헤네티 둘이 보트 위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 저 무기 쏘면 끝장이다. -
세데스가 이미 절반 부서진 배를 가리키며 수화로 속삭였다. 배에 숨은 셋은 숨도 멈춘 채 그들이 지나가기만 바싹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운이 이들 편이 아니었다.
“아우, 내가 정말 괜히 나왔다니까. 제국회의가 코앞인데 이 고운 얼굴 또 타면 학장님 앞에서…….”
큼직한 배낭을 등에 멘 까무잡잡한 피부의 웬 키 큰 여자 하나가 짜증 섞인 말투로 투덜대며 조금 떨어진 뭍의 정글 안에서 모습을 휙 나타냈다. 그 소리에 놀란 보트 위 헤네티들의 시선이 일제히 맹그로브 숲 안쪽으로 휙 돌았다.
‘저년은 또 뭐야.’
아찔해진 세데스가 얼굴을 싸쥐었다. 세데스의 부서진 보트는 하필 호수의 헤네티들과 정글의 그 여자 딱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내 정말 다시는 이런 데에…….”
아무 경계 없이 건들거리며 물가로 다가오던 그 키 큰 여자도 비로소 인기척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멈칫했다. 배를 돌리던 호수의 헤네티들과 그 여자는 숨죽이고 있는 세데스 일행이 있는 둔덕 너머로 서로를 발견했다.
“엄마야!”
배 위에서 누군가 마우저를 겨눈 모습에 기절할 듯 놀란 그 여자가 정글 덤불 속으로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하지만 마우저에 명중한 굵은 나무줄기가 쩍 소리를 내고 꺾이면서 쏟아지는 가지더미 밑에 그대로 깔려버리고 말았다.
“사, 살려줘요!”
그 수다스런 여자를 일단 쓰러뜨려놓은 헤네티들이 급히 배를 몰아 맹그로브 늪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접근해 오면서 이젠 둔덕에 숨은 세데스 일행이 난리가 날 판이었다.
“빌어먹을 저 년 때문에!”
하는 수 없어진 세데스가 보트 위에 서 있는 헤네티들을 향해 선제공격을 날렸다. 헤네티들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날아드는 볼트에 놀라 급히 몸을 낮췄다. 세데스가 낮게 쏜 볼트는 선체에 맞아 파르르 떨리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씨이!”
세데스가 화를 버럭 냈다. 마우저였다면 선수를 박살냈겠지만 위력이 약한 석궁으로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한계였다. 그리고 이젠 적의 반격 차례였다.
“숙여!”
세데스와 가디언들이 보트 안쪽으로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렇지만 마우저의 위력 앞에서 보트는 별반 쓸 만한 방벽이 되어주지 못했다. 마우저에 명중당한 보트 뒤쪽이 산산조각 흩어지면서 물 속에 더 깊이 푹 빠져들었다. 눈치를 챈 악어들이 슬금슬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맞아죽나 악어에 물려 죽나!”
세데스가 뱃머리 쪽으로 기어가며 악을 썼다. 그때, 헤네티들이 탄 보트 앞쪽이 쾅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으앗!”
배가 흔들리자 세데스를 쏘아대던 헤네티들이 휘청거리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뱃머리 쪽의 나무판이 갈라지면서 이젠 그들의 배로 물이 새어들고 있었다. 세데스가 가진 부실한 일반 석궁의 위력이 아니었다.
“어떤 놈이야! 배 육지에 붙여! 빨리!”
몰려드는 악어에 놀란 헤네티들이 허겁지겁 배를 뭍으로 돌렸다. 이젠 세데스 일행을 잡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 정글 속에서 튀어나온 베흔이 눈을 부라리며 이번엔 보트 측면에 대고 다시 개조된 석궁을 겨누었다.
“누구 친척 악어가 식사하는 거 전부터 보고 싶었거든.”
“그만, 놔둬. 배가 필요해.”
뒤따라 나온 카렐이 베흔의 석궁을 얼른 치워내고는 손에 칼을 빼들고 그들의 보트가 밀려가는 방향을 향해 호수 경계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배가 점점 가라앉자 초조해진 헤네티들은 육지를 향해 필사적으로 노를 저었다. 카렐은 왼손으로 칼집을 꽉 움켜쥐고 그들이 떠내려가는 방향을 따라 바위와 나무를 날짐승처럼 뛰어넘어 계속 쫓아 달렸다.
“빨리 뭍으로 가! 내려가서 싸우면 돼!”
당장 배가 가라앉고 괴물 같은 악어 구덩이에 빠지게 된 상황에서 헤네티들 눈엔 육지에서 자신들을 추격하며 긴 다리로 달리고 있는 시커먼 차림새의 ‘육지괴물’이 문제가 아니었다. 맹그로브를 가로질러 가까스로 뭍 가까이에 배를 댄 그들은 악어가 없는지 확인하고 헐레벌떡 배에서 뛰어내려 가까스로 육지를 밟았다.
“니미럴! 악어한테 뒈질 뻔했잖아!”
그때, 그들을 추격해 온 시커먼 형상이 바위와 쓰러진 나무를 표범처럼 훌쩍 뛰어넘어 그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럼 이 악어는 어떠냐?”
그들이 재빨리 마우저와 칼을 빼들었지만 상대는 채 방아쇠를 당길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칼집을 튕기며 튀어나온 파란색 투명한 칼날이 공중을 휙 가르며 제일 앞에 있던 헤네티의 목을 단칼에 동강내 공중으로 날렸다. 이 정글에서의 첫 전사자였다.
“어, 엇!”
너무 근거리라 발사무기를 쓸 수 없음을 깨달은 나머지 두 헤네티들이 칼을 쥐고 카렐의 앞뒤에서 동시에 달려들었다. 카렐은 앞에서 달려드는 헤네티의 칼을 옆구리로 흘려내며 왼손으로 목을 덥석 붙들었다. 거의 같은 순간, 뒤에서 달려들던 헤네티도 움직임을 딱 멈추었다.
“맙소사.”
헐떡거리며 뒤늦게 쫓아온 베흔이 놀라 고개를 저었다. 칼을 뒤로 내질러 헤네티의 목을 관통시킨 카렐이 칼날을 힘껏 빼냈다. 정확히 목젖을 꿰뚫은 칼날이 빠지면서 공중으로 피가 확 솟구쳤다. 급소가 뚫린 헤네티는 카렐의 등 뒤에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카렐이 이번엔 목을 움켜쥔 앞쪽의 헤네티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를 데려가는 그 작자를 어디서 만나기로 했나.”
목이 으스러져 움직일 수 없게 된 그 헤네티는 얼굴을 바들바들 떨고만 있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코런덤 첫 포로가 되느니 죽고 싶겠지?”
대답도 없는 적을 향해 카렐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악마처럼 웃기 시작했다. 목 뒤를 뚫고 들어간 그의 손가락이 숨골에 붙은 발화장치를 이미 깨어버린 후였다. 이 헤네티는 이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처지였다. 헤네티의 등줄기를 타고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카렐은 온몸이 마비되어버린 그자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작은 소리로 다시 물었다.
“너희가 알아들을 어휘로 말하마. 서른 두 번째 위대한 현신의 이름으로 다시 묻겠다. 뮤 세네피스를 어느 길로 데려갈 참이냐.”
“주, 죽여주십시오, 제발.”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헤네티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나, 남쪽절벽의 오솔길 앞에서 만난다고 들었습니다.……제발 죽여주십시오.”
“어차피 데려가지도 못해.”
아드득 하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그 헤네티의 숨골이 순식간에 으스러졌다. 그리고 즉사한 헤네티의 시체가 축축한 정글 바닥에 축 늘어졌다.
“호수 건너서 남쪽 절벽 아래로 가자.”
헤네티 셋을 눈 깜짝할 새 죽여 버린 카렐은 칼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뒤로 돌아섰다. 그는 바위 위에서 멍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베흔에게 태연히 물었다.
“세데스 경은 왜 버려두고 왔어?”
“아차.”
그제야 정신을 퍼뜩 차린 베흔이 헐레벌떡 세데스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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