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43 회: 파트9. 그의 마지막 꿈이 있는 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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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기랄!”
뭍에서 200척(60m)쯤 떨어진 둔덕에서 뒷부분이 박살난 보트에 두 가디언들과 위험천만하게 매달린 세데스는 사방에서 위협해 오는 악어들에게 석궁을 쏘아대며 악을 쓰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놈들을…….”
뒤늦게 되돌아온 베흔도 배가 모두 부서진 상황에서 저들을 구할 도리가 없었다. 물 깊이는 웬만한 어른 가슴 정도는 되어보였고, 저런 깊이의 물에 함부로 뛰어들었다가는 제아무리 가디언들이라도 악어밥이 될 판이었다.
물에서 악어들과 씨름하고 있던 세데스도 그제야 뭍에 있는 베흔을 발견했다. 지금껏 근위대장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그로서는 기겁할 일이었지만 당장은 베흔의 존재가 문제가 아니었다. 세데스는 이곳에서 엉뚱하게 황제 일행을 만난 것을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저승사자를 만난 것에 낙담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뭐가 그리 급한가.”
베흔을 뒤따라 되돌아온 카렐이 겹겹이 양 어깨에 짊어지고 온 헤네티들의 시체와 짐을 바닥에 던져놓으며 버럭 짜증을 냈다.
“먼저 와 버려서 다 혼자 들고 와야 했잖아.”
“짐이야 그렇다 치고, 시체는 왜 가져오셨습니까? 유전자 샘플만 챙기시면…….”
카렐은 대답 없이 시체 한 구를 세데스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악어무리 사이에 힘껏 던졌다. 시체를 본 악어들이 주변에서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악어는 자르는 이빨이 없어서 혼자서는 큰 먹이를 못 먹거든.”
카렐은 두 번째 시체를 이번엔 반대편의 악어 무리 중간에 붕 던져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를 세데스 바로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악어들 앞에 힘껏 던졌다. 맹그로브 숲의 수십 마리 악어들이 세 개의 공짜 먹이 주변에 모여들면서 세데스의 주변은 잠깐이나마 악어들이 모두 사라졌다.
“죽이지 않을 테니 빨리 나오게, 세데스 델루지 경.”
황제의 외침에 잠시 머뭇거리던 세데스는 양옆의 가디언들의 표정을 살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려 감이 물 속에 뛰어들 엄두를 못 낼 판이었다.
“악어들의 파티 두 번째 코스요리가 되느니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변명하는 게 나을 거야.”
“젠장! 따라와!”
세데스는 성치도 않은 몸으로 물에 풍덩 뛰어들었다. 나머지 가디언도 부상을 입은 동료의 옷자락을 쥐고 그 뒤를 따라 헤엄치기 시작했다.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 다른 악어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어차피 빠져나갈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물은 탁했고, 중간중간 물풀과 맹그로브 가지들이 손발을 붙들어 제대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 다친 옆구리와 계속 피가 흐르는 팔도 계속 그를 붙들었다.
고통을 참으며 정신없이 물을 헤엄쳐 나가던 세데스는 뭍에서 기다리던 베흔이 갑자기 석궁을 자신을 향해 번쩍 쳐드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젠장, 내 이럴 줄…….”
절망하고 있는 세데스의 얼굴 옆으로 베흔이 쏜 석궁이 휙 스치면서 큰 물보라가 일었다. 그리고는 그의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던 악어 한 마리가 머리가 박살난 채 물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악어의 시체를 보고 공포에 질린 세데스는 허겁지겁 속도를 붙여 기를 쓰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빨리 오지 않고! 썩을! 그 따위 것도 수영이라고! 어떤 놈한테 배운 거야!”
몰려드는 악어들 모습에 급하고 답답해진 베흔이 탁한 맹그로브 늪 속에서 제대로 속도를 못 내고 버둥거리는 손녀에게 고래고래 악을 썼다.
“또 저기!”
카렐이 가리킨 곳을 향해 베흔이 다시 한 발을 갈겼다. 조금 전보다 더 큰 놈이 가디언의 뒤를 따라붙다가 코 부분이 찢기며 다시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좀 쏴요!”
기진맥진해진 세데스가 물에 가까워지자 베흔은 석궁을 들입다 카렐의 손에 떠넘기고는 얕은 물에 무작정 뛰어들었다. 세데스는 그 와중에도 베흔의 도움은 싫다며 손을 떨치려 했지만 베흔은 거부하는 손녀의 어깨를 거칠게 힘으로 낚아채 땅 위로 질질 끌고나왔다.
“끄윽.”
더러운 짠물을 잔뜩 먹은 세데스는 나오자마자 입 속의 물을 게워내며 바닥에서 부르르 떨었다. 그는 황제에게 마지못해 절을 올렸지만 속이 계속 안 좋은지 일어나지도 못한 채 흙바닥에서 헐떡거리기만 했다. 베흔이 그의 등을 두드려 주려 했지만 짜증을 내며 그의 손을 거칠게 떨쳐내 버렸다.
“어디 손을 대. 아까 나한테 뭐라고 욕했지? 감히 나한테 욕설을 해?”
베흔을 모질게 쳐낸 세데스는 함께 온 가디언들부터 찾았다.
“이봐, 이봐. 괜찮냐.”
위험천만한 늪을 건너 온 두 가디언들도 먼저 도착한 제후의 옆에 맥없이 축 늘어졌다. 세데스는 바닥을 기어가 발을 다친 부하의 상태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후우.”
카렐은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베흔을 힐끔 쳐다보았다. 감성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사내이지만 지금은 허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카렐은 배낭에서 주먹만한 작은 통 하나를 꺼내어 불쑥 내밀었다. 별 생각 없이 통을 받아 열어 본 베흔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게 뭡니까? 드시지도 못하시면서.”
“어머니 술 워낙 좋아하셔서 만나면 위로차 한잔 드리려고 갖고 왔는데, 생각해 보니 별 필요 없겠어.”
“저기요오…….”
그때, 일행의 뒤쪽에서 다 죽어가는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뒤를 돌아본 카렐은 통째로 쓰러져 있는 나무 밑에서 애처롭게 흔들고 있는 손 하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 밑에서 자이납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언제 꺼내주실 거예요?”
부상이 심한 2명을 데리고 보트에 탄 사카는 낮 내내, 그리고 해가 진 후까지도 힘겹게 노를 저어 호수를 건넜지만 고속보트를 타고 떠난 데이는 아무리 애를 써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골절로 한쪽 팔을 못 쓰는 헤네티까지 나서서 나머지 한쪽 팔로 최대한 노를 저어 보았지만 사람의 힘으로 엔진이 달린 보트를 잡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긴 악어 없겠죠?”
어둠이 드리운 동쪽 호수변은 반대편의 맹그로브 덤불과는 달리 자갈밭으로 되어 있었고, 지도에도 딱히 선착장이 나와 있지 않았다. 사카는 아라무트 산으로 갈 수 있음직한 적당한 자갈밭을 골라 일단 배를 대고 주변을 확인했다. 깜깜해진 상황에서 계속 물 위에서 떠돌 수도 없었다.
“있으면 보이겠지.”
사카는 팔뼈가 부러진 헤네티의 어깨에 자신의 짐을 맡기고 중상을 입은 부하를 어깨에 불끈 짊어지고 일어섰다.
“10스타디아(1.5km)만 가면 본대가 있을 테니 힘내.”
사카는 부하를 짊어진 채 길도 없는 심야의 원시림을 다시 헤치며 접선지인 산 남쪽 절벽 밑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대로 길만 있다면 먼 거리가 아니지만 장정 하나를 짊어지고 정글을 헤치며 나아가는 길은 헤네티인 그에게도 쉽지는 않았다.
“뮤-세네피스도 우리 본대 있는 곳에 와 있겠죠? 오랜만에 볼 수 있으시겠군요.”
짐을 메고 헐떡거리며 따라오던 부하가 가볍게 물었지만 사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지지난 몸을 죽였던 것이 바로 세네피스였으니 그의 기억에도 썩 좋게 남아있는 여자는 아니었다. 아니, 그저 보통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보자마자 목을 베어 죽였을 터였다.
“지 자식 구하는 줄로 알고 제 발로 졸졸 따라왔다가 우리들을 만나서 얼마나 황당해하고 있을지, 펄펄 뛰는 꼴 보는 것도 재밌겠습니다.”
“선대 현신의 관에 넣을 여자일 뿐이다.”
사카가 평소보다 더 무뚝뚝하게 답했다.
“그 이상의 관심 보이지 마라.”
사카가 딱 잘라 말했다.
그는 부하들이 세네피스에게 과도하게 관심이 쏠리는 것을 내심 경계하고 있었다. 헤네티들 모두 누구보다 왕성한 남자들이다 보니 보기 드문 미모에 당당함까지 갖춘 이전 대신관의 딸을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이 유독 많았다. 사카는 그들의 이런 호기심이 이상한 방향으로 왜곡되는 것을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게다가 R끼리만큼은 아니어도 유사형인 S, X들도 일반인보다 서로에 훨씬 쉽게 끌리는 것도 문제였다. 그가 부하들 앞에서 세네피스에 유독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때, 앞에서 인기척을 느낀 사카가 멈칫거렸다.
“늑대.”
익숙한 암구호에 사카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추격자.”
“남쪽에 잘 오셨습니다.”
답어와 함께 경계를 서던 본대 부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 하나 다치지 않은 건강한 전사들의 모습에 사카의 불안감도 싹 달아나는 것 같았다. 절벽 아래 야영을 하고 있던 20여명의 부하들도 대장의 등장에 비로소 힘을 얻은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뮤하고 데이는? 우리하고 여기서 만나기로 했잖나?”
사카가 부하들 사이를 둘러보았지만 데이도, 세네피스도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이번엔 부하들이 도리어 정색을 하며 사카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냐, 우리보다 한참 앞서서 도착했어야 하는데.”
사카가 당혹스런 얼굴로 온 길을 돌아보았다.
“오다가 무슨 사고라도 당한 것 아닐까요?”
“누구 고감도 스캐너 가진 사람?”
병사들 중 하나가 배낭에서 제법 큰 기계를 빼들었다.
“산 위의 궁전에서 나오는 방해파가 심해서 아주 가깝지 않으면 검색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1시간쯤 전에도 시도했지만 뮤 R-3-3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병사는 스캐너를 켜고 주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궁전에서 나오는 방해파 때문에 화면이 계속 지직거렸다.
“역시 안 잡힙니다. 무슨 일일까요. 분명 남쪽 루트 초입에서 만나기로 했는데요.”
사카가 얼굴을 찡그렸다.
“해가 뜨려면 얼마나 남았지?”
“3시간쯤 남았습니다.”
“주기가 짧아서 도무지 적응이 안 됩니다.”
옆에 있던 다른 병사가 끼어들며 투덜거렸다. 사실 사카도 빠르게 도는 밤낮에 잠도 못 자고 강행군을 했던 덕분에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병사 하나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이 정도니 뮤는 버티기 더 힘들 겁니다. 어디선가 지쳐서 한숨 자고 있을 겁니다. 약속시간은 내일 아침까지니 기다려 보죠.”
“그럼 다행이고.”
탈진한 사카는 배낭을 불가에 던져놓고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뉘였다.
“너희도 돌아가며 자고 환해지면 깨워라.”
바닥에 누운 그의 눈에 깎아지른 수직절벽으로 빙 둘러싸인 아라무트 산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내일은 저길 올라 아라무트 궁에 입성한다.”
“또 주무세요?”
낑낑대며 노를 젓던 자이납은 작은 보트를 길게 가로질러 누운 채 얼굴에 모자를 덮고 있는 황제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카렐은 그의 말을 들은 척 만 척 꿈나라에서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까 걷다가도 깜박깜박 주무시는 거 봤어요? 정말 이분 틈날 때마다 주무시는 기술 하나는 예술이라니까요, 끄응.”
자이납은 별이 총총히 뜬 하늘을 올려보며 허탈한 얼굴로 다시 힘을 주어 노를 당겼다. 일반인 네댓 명 타게 만들어진 조각배에 덩치도 괴물만한 장정 6명이 탔으니 미어터지는 건 참는다손 쳐도 배가 가라앉지 않는 게 용할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노를 젓는 3명이 모두 힘이 장사라는 정도였다.
“때운 데는 물 안 새죠?”
자이납이 뱃머리에 앉은 세데스에게 물었다.
“조금 흘러들지만 심하지는 않다.”
죽은 헤네티에게서 노획한 석궁을 쥐고 웅크려 앉은 세데스가 냉담하게 대답했다. 베흔의 석궁에 구멍이 난 배를 자이납이 해적 시절 배운 임기응변으로 대충 때우기는 했지만 워낙 과적을 한 상황이라 맘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격분한 베흔이 배를 벌집을 만들어 못 쓰게 하기 전에 카렐이 말려 구멍이 하나뿐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래서야 언제 건너편에 도착한담.”
자이납이 무겁게 겨우겨우 나아가는 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까지만 도착하면 된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세데스가 입을 열었다.
“황태후 때문에 어두울 때는 어차피 못 움직여.”
“아이고, 아침은 무슨 아침이요, 벌써 하늘 한쪽이 밝아오는데.”
자이납이 노를 당기며 툴툴거렸다. 먹통이 된 추적 장치를 계속 만지작거리던 세데스는 기계를 짜증스레 꺼버렸다. 지난 저녁까지만 해도 잘 잡히던 데이의 신호가 어찌된 일인지 이젠 잡히지 않았다.
“상륙하면서 신호가 끊겼죠?”
지금껏 말 거는 것을 삼가고 있던 베흔이 노를 젓다 말고 조심스럽게 세데스에게 물었다.
“그래.”
“아라무트 궁에서 나오는 방해전파 때문입니다. 궁 부근에 있는 한 안 잡힐 겁니다.”
“그랬군.”
세데스가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스캐너를 짐 속에 쑤셔 넣었다.
“황태후께서 어디로 가실지는 대충 파악했습니다. 피곤해 보이시니 황상 옆에서 잠깐 눈 붙이십시오.”
베흔이 다시 말을 건넸지만 세데스는 뱃머리 구석에 불편하게 쭈그려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노를 젓던 그의 휘하 가디언이 보다 못해 발을 조금 움직여 황제 옆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피곤해 보이십니다. 조금만이라도 쉬십시오.”
카렐이 이미 중간의 명당자리에 팔까지 벌리고 널브러져 누워있다 보니 누울 곳은 그의 양옆에 하나씩 딱 붙어 자는 것뿐이었다. 악어에 종아리를 물렸던 가디언은 카렐이 직접 상처를 꿰매 준 덕분에 한결 상태가 나아졌는지 이미 그의 오른쪽 어깨를 베고 모로 누워 침까지 흘리며 쿨쿨 잠들어 있었다.
“후우.”
세데스는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황제의 왼팔을 베고 일단 누울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육지에 도착해도 탈진해 걸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엇.”
원하든 원치 않았든, 난생 처음 황제의 몸과 닿아 본 세데스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뒤에서 노를 젓던 자이납이 킥킥대며 웃었다.
“차갑죠? 나도 처음에 겁나게 놀랐다니까요.”
세데스가 황제의 팔을 다시 툭 건드려 보았다. 마치 시체 같은 단단하고 찬 느낌이 확 들었다. 자이납이 계속 떠들어댔다.
“심장이 거의 안 뛰어도 저승 가 계신 건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어쩐지, 오르자마자 주무시더니. 오는 내내 육포 드신 걸로는 부족하셨나, 또 에너지 절약모드 들어가셨네. 혹시 기름덩이 많은 고기 좀 가진 거 없어요?”
세데스는 못 들은 척 황제에게서 등지고 누워 몸을 잔뜩 웅크렸다. 고기만 찾는 황제를 보니 갑자기 감방에 있을 그 아들 주페 태자 생각이 났다. 그나마 고기를 넣어줬던 자신이 없어졌으니 이제 그 소년은 또 부실한 식사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모조리 남기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때, 카렐이 뒤척이듯 팔을 움직여 갑자기 그의 목을 안았다. 깜짝 놀란 세데스가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목과 가슴을 조인 단단한 팔은 그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아들 주페는 잘 있나.”
뒤척이는 척 고개를 돌린 카렐이 세데스의 뒤통수에 입을 댄 채 아주 작은 소리로 물었다. 순간, 그의 입술이 닿은 뒷목에서부터 온몸으로 차가운 전율이 흘렀다.
“내 딸 마리안의 감각은 아무도 못 속이거든. 더군다나 친오빠의 냄새라면.”
“…….”
“자네 옷에 어쩌다 그 애의 체취가 배었는지 정말 궁금한걸……그 애를 무기로 그대를 협박했나.”
세데스는 여전히 돌아누운 채 아무 대답도 못 했다. 황제의 입김조차 너무도 차가웠다. 체온은 고사하고 냉방기에서 나오는 냉풍 같았다.
“자네가 이리 저질렀으니 그 애가 위험하겠어.”
다시 주페를 떠올린 세데스는 갑자기 울컥해졌지만 지금은 뒤에서 속삭이고 있는 황제에 대한 공포가 더 컸다.
카렐이 마치 그의 마음속을 읽고 있는 듯 계속 속삭였다.
“지금 어디 잡혀있는지 알고 있지?”
세데스의 숨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졌다. 빠르게 들썩이는 그의 가슴만으로도 카렐이 답을 알기에는 충분했다.
“지금이라도 용서받고 싶다면 그 애를 구할 수 있게 날 도와라.”
세데스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다. 황제는 그의 목에 팔을 감은 채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 원한다면 황제는 지금 당장이라도 목을 으스러뜨려 죽일 수 있음직한 기세였다.
“내 말에 따르려면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면 돼.”
황제를 더 이상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세데스는 결국 고개를 천천히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그제야 다시 뒤척이는 척 그의 목을 조른 팔을 풀어주었다. 목을 죄던 단단한 팔도, 얼음처럼 찬 그의 입김도 비로소 그에게서 멀어졌다.
“헉, 헉.”
세데스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황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황제는 눈 위에 모자를 덮은 채 눈 깜짝할 새 천연덕스럽게 쿨쿨 잠들어 있었다. 칼날처럼 예리한 턱선과 칼귀, 강하게 선 콧날이 당장이라도 상대의 속까지도 베어낼 듯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그는 황제의 얼굴을 보며 무심코 소년 주페가 다 자랐을 때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었다.
‘그놈이 어떻게 자라든 알 게 뭐람.’
세데스는 다시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이제 문제는 주페를 구하면 정말로 자신이 완전히 용서받을 수 있을지일 뿐 그 꼬마가 나중에 어떻게 자랄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상황에서 그게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그때, 카렐이 갑자기 무언가에 얻어맞은 사람처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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