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44 회: 파트9. 그의 마지막 꿈이 있는 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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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밤이 또 지나고 세네피스는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데이가 머리 위에 덮은 나뭇잎들을 치워내자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하늘이 보였다. 다행히 지난밤엔 비도 내리지 않았고, 잘 만들어진 지하비트는 더위를 피하는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그렇지만 저 불친절한 사내와 손바닥만한 공간에 함께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잠들기 어려웠던 건 매한가지였다.
퀭한 눈을 갓 뜬 세네피스에게 데이가 숟가락이 꽂힌 비상식 캔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먹고 바로 출발합니다.”
말없이 캔을 받아든 세네피스는 억지로 한 숟갈을 떠 입에 넣었다. 먹고픈 맘은 별로 없었지만 도착하기 전에 쓰러져 죽지 않으려면 다른 도리가 없었다. 세네피스는 앞에서 말없이 같은 비상식을 먹고 있는 데이를 힐끔 쳐다보았다.
‘저놈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
생각해 보니 저 남자는 오는 내내 그에게 치근덕댄 일도, 쓸데없이 몸을 접촉한 일도, 심지어 짜증 한 번 퍼부은 일도 없었다. 맘만 먹는다면 오는 동안 세네피스의 몸을 몇 번이고 범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무관심하다 못해 냉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피다이들에게 하룻밤 몸을 내준다.’는 조건으로 이곳까지 왔으니 어쩌면 오늘밤 있을 ‘진짜 파티’를 위해 일부러 기회를 아껴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피다이들의 대장이라 했으니 지금까지는 본색을 감추었어도 오늘밤엔 자신의 몸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
오늘밤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입에 넣는 음식이 차마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았다. 지금껏 참고 참던 눈물이 갑자기 터진 것도 이때였다. 데이는 먹다 말고 힐끔 눈길을 주었을 뿐 위로도, 그렇다고 핀잔도 하지 않았다. 세네피스는 눈물과 절반 섞인 죽을 억지로 삼키며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으음?”
웅크린 채 울고 있던 세네피스가 고개를 번쩍 들고 호수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가에는 기뻐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번지고 있었다.
“이런.”
갑자기 정신이 퍼뜩 든 세네피스는 남은 죽을 거의 부어넣듯 입 안에 넣고는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빨리 가자.”
데이는 그의 재촉에 놀란 표정이었지만 곧 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큰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비트 밖으로 기어나가 세네피스에게 손을 뻗었다.
“올라오십시오.”
그의 도움을 받아 비트에서 기어 올라온 세네피스는 자신의 황당한 몰골을 잠시 쳐다보았다. 옷은 이미 진흙과 이런저런 얼룩으로 말도 아니었고, 며칠간 씻지도 못한 몸 위로는 마치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올라가면 씻을 수 있으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데이가 앞장서며 입을 열었다. 그를 따라가던 세네피스는 지난밤에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아라무트 산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회색의 거대한 바위산이 정글 중간에 뚝 떨어진 거대한 탑 모양 바윗덩이처럼 이질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길은 셋입니다.”
데이가 손끝으로 산을 가리켰다. 산의 북쪽은 칼로 뚝 잘라낸 듯 말 그대로 수직의 절벽이지만 남쪽 면은 가팔라도 그나마 ‘아주 약간은’ 기운 모양새였다.
“남쪽 길은 개중에 완만하고 오르기 용이하지만 많이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폐하 걸음으론 대여섯 시간은 걸릴 겁니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그리로 옵니다. 서쪽 길은 그보다 좁고 험하지만 서너 시간이면 올라갈 겁니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길이 셋이라며?”
세네피스의 물음에 데이는 산의 북쪽 면을 흘끔 돌아보았다.
“나머지 하나는 못 올라가십니다.”
데이의 단호한 대답에 세네피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럼 빠른 길로 가라.”
데이는 아무 말 없이 앞장서서 산으로 걷기 시작했다. 세네피스도 지금까지처럼 두말없이 그를 따랐다.
빠른 걸음으로 정글을 빠져나온 그 둘의 앞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정글이 끝나는 지점에는 아라무트 산의 서쪽을 이루는 4,000척(1,200m) 높이의 수직절벽이 구름을 뚫을 기세로 하늘까지 솟아 있었다. 하늘은 이제 새벽의 어스름을 떨치고 조금씩 환해지고 있었다.
“겁나면 지금 돌아가십시오.”
데이가 절벽 초입의 길을 가리켰다. 말은 길이지만 절벽 측면으로 갈라진 바위들이 조금씩 튀어나와 지그재그를 그리며 꼭대기로 이어져 것이었다. 폭은 절벽에 붙어 가까스로 발만 디딜 정도의 아찔한 곳부터 대여섯 뼘 정도 되는 곳까지 들쑥날쑥했고 난간이나 밧줄도,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었다.
“저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데이가 절벽 아래 평지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제법 많은 뼛조각들을 가리켰다. 그 주변에 널린 부서진 돌조각, 곰보처럼 움푹 팬 지면과 버려진 소지품들만 보아도 분명 끔찍한 추락의 흔적들이었다.
“열흘 전에도 피다이 지원자 하나가 죽었습니다.”
데이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썩어가고 있는 시체조각을 가리켰다. 옷의 흔적을 보니 오래된 것 같지는 않지만 벌레나 짐승들이 거의 먹어치워 이젠 살점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더 겁 줄 필요 없다. 시간 없으니 빨리 가라.”
세네피스가 거추장스런 정글 장화와 망토를 벗어 내던지며 입을 굳게 닫았다. 데이는 세네피스의 몸에 대충 밧줄을 감고는 좁은 길을 앞장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를 뒤따라 길에 들어선 세네피스의 표정은 초조함, 긴장에 굳어있지만 중간 중간 뜬금없이 웃음 비슷한 것도 번졌다. 지금 처지에서 분명 미쳤다고밖에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그는 분명 웃고 있었다.
아침까지 정글에서 데이와 세네피스의 도착만 기다렸던 사카의 헤네티 일행이 서쪽 절벽 아래에 도착한 건 이들이 절벽을 오르기 시작하고 이미 2시간 가까이 흐른 후였다.
절반을 먼저 남쪽 길을 통해 위로 올려 보내고 나머지를 데리고 이곳으로 수색에 나섰던 사카는 바닥에 남은 두 사람의 발자국과 장화, 찢어진 우비와 망토를 발견하고는 허탈함에 할 말을 잃었다.
“이 새끼 아주 똥개훈련을 제대로 시키고 있네요.”
격분한 부하들이 씩씩거리며 서쪽 절벽 위를 올려보았다. 이미 아찔한 높이까지 올라 있는 두 사람의 형상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초행이라 길도 잘 모릅니다.”
“글쎄. 대충 밟을 곳 따라가면 되겠지.”
사카가 별로 자신 없이 대답했지만 그는 이미 옷자락의 늘어진 곳을 단단히 여미고 배낭에서 꼭 필요한 것들만 챙기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호수 건너편에 남았던 세 놈이 아직 도착 안 했다.”
그들이 카렐 손에 죽었다는 것을 아직 까맣게 모르는 사카가 걱정스레 호수가 있는 서쪽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도 부하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좀 늦어지나 봅니다. 녀석들 어차피 남쪽 절벽 밑으로 올 테니 어제 데려오신 부상자하고 한두 명 남아 짐 지키고 나머지는 일단 다 오르는 게 좋겠습니다.”
“서둘러라. 어둡기 전에 도착해야 하니까.”
사카는 꼭 필요한 물과 비상식량, 무기 정도만 챙겨들고는 세네피스, 데이를 따라 서쪽 절벽 좁은 길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나머지 헤네티들도 대장을 따라 이 위험천만한 길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았다.
갑자기 불어온 강한 바람에 하마터면 밀려날 뻔했던 세네피스는 옆에 튀어나온 돌을 붙들고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무심결에 까마득한 밑을 내려다보았던 그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벽에 납작 달라붙어 숨을 가다듬었다. 발 디딜 자리는 서너 뼘 남짓 폭의 뜨겁게 달궈진 바위면 뿐이었다.
그는 밑을 내려다보지 않으려, 겁을 먹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지만 두 시간 전, 데이가 ‘누가 쫓아오는군요.’라는 말을 한 이후로는 제대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은 그는 조심스레 다시 밑을 보았다. 데이가 말한 십여 명의 헤네티 ‘추격자들’이 바위에 옹기종기 달라붙어 움직이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못 따라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데이가 세네피스를 재촉하듯 그를 묶은 끈을 툭툭 잡아당겼다. 실제 저 추격자들 하나하나의 움직임은 꽤나 날래어 보였지만 쉽사리 거리를 붙이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그재그 길의 중간중간 꺾이는 모퉁이엔 ‘어느 쪽이 진짜인지’ 혼동되는 갈래들이 여기저기 나 있고, 자칫 엉뚱한 바위를 밟고 나아갔다가는 막다른 곳을 만나기 십상이었다.
길안내를 맡기로 했던 데이가 없는 상태에서 저들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무작정 따라 올라올 수밖에는 없었다. 세네피스는 다시 용기를 내어 바위를 딛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오늘도 짧은 해는 이미 중천을 넘어간지 오래였고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은 조금씩 더 세어졌다. 가뜩이나 초조해하는 스스로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할 것 같은 맘에 그는 묵묵히 앞만 보고 나아갈 할 뿐 일부러 위를 올려보지 않고 있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데이의 말에 세네피스는 처음으로 고개를 쳐들고 위를 올려보았다. 맑고 새파란 하늘이 보였고, 끝도 없을 듯 높았던 바위의 형상은 조금 위에서 끝나고 있었다. 세네피스는 공포도, 기대도 모두 머릿속에서 지우고 다시 묵묵히 좁은 바위틈을 밟고 올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지금까지 눈앞을 막고 있던 단단한 바위가 요술처럼 사라지고 탁 트인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후우.”
무려 4시간 가까운 공포 끝에 비로소 평지를 디딘 순간, 세네피스는 온몸에서 맥이 탁 풀리면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라무트 산의 정상 부근은 지금까지 지나 온 절벽과는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웬만한 광장 못지않게 넓은 평지가 있고, 그 너머엔 푸른 코발트빛 타일로 화려하게 장식된 야트막한 담이 보였다. 산 꼭대기를 가로지르고 있는 담의 길이로 보아 규모도 어마어마해 보였다. 그렇지만 안에 있는 건물은 이곳에선 보이지 않았다.
“안 오십니까.”
그쪽을 향해 성큼성큼 걷던 데이가 재촉하듯 세네피스를 돌아보았다. 세네피스는 지친 다리에 다시 힘을 주고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그 까마득한 절벽도 올라온 마당에 담까지 올라가는 완만한 비탈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폐쇄적이고 비밀스럽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절벽 위는 물론이고 담 주변에도 경비병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성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담 중간엔 규모에 비해 너무 옹색해 보이는 작은 문 하나만 뚫려 있었다. 데이가 문에 다가서자 푸른 로브 차림의 덩치 큰 청년 둘이 안쪽에서 불쑥 모습을 나타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들 둘이 양 옆으로 비켜서며 데이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잠깐.”
그들은 데이를 따라 들어서는 세네피스를 멈춰 세우고는 머리에 큰 자루를 씌웠다. 그리고는 움찔하고 있는 그를 어깨에 불끈 짊어지고는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세네피스의 온몸이 얼어붙었지만 쓸데없이 저항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어딘가로 성큼성큼 빠르게 걸었다. 비록 앞을 볼 수는 없지만 자신을 짊어진 청년의 움직임과 자루 밖에서 스며드는 냄새, 소리로 바깥의 상황을 어렴풋이 넘겨짚을 수는 있었다.
그가 처음 느낀 건 여러 사람들의 고함과 무기 부딪치는 소리, 짙은 땀 냄새였다. 그 다음엔 물 위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도 같았고, 그 다음에는 흙과 풀 냄새, 새소리가 들려오는 정원을 지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공터를 지나는 듯했다. 바닥에 흙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더 그보다 더 강하게 그를 이끈 건 정체 모를 짙은 피 냄새였다.
어딘지 소름끼치는 그 공터를 지나, 다음엔 마치 구름다리처럼 바닥이 심하게 흔들리는 곳에 접어들었다. 걸을 때마다 좌우로 흔들거리고 바람까지 거세게 부는 것을 보아 제법 높은 절벽에 드리운 다리인 듯했다.
다리를 건너고 잠시 더 나아간 후, 그의 코에는 부드러운 과일 향기와 음식 냄새가 느껴졌다. 동시에 분수의 물소리와 여러 사람들이 밝은 말투로 재잘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공용어가 아니다보니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자신이 무섭고 위압적인 공간에 와 있지 않다는 건 분명했다.
청년은 이곳에서 비로소 멈춰서는 세네피스를 다시 내려놓았다. 어지럼증에 잠시 휘청거렸지만 그는 억지로 중심을 잡고는 최대한 당당한 태도로 자리에 우뚝 서 보였다. 주변에 누가 있든 이곳에서 기죽고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후, 누군가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다가와 그의 머리에 씌운 자루를 벗겨냈다. 예상대로, 그는 화사한 인공연못과 분수대가 있는 작은 정원에 서 있었다. 정원 주변을 에워싼 열주(列柱) 회랑에는 웃통을 훤히 벗고 있는 매끈한 몸매의 미소년들과 가슴을 훤히 드러낸 관능적인 미녀들이 기둥 뒤에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 속닥거리고 있었다. 세네피스는 이곳의 햇볕이 너무 따갑다고 느꼈다.
“수고 많으셨소, 뮤 세네피스.”
세네피스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회랑 안쪽의 작은 홀에서 구부정한 노인 한 명이 느릿한 걸음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하얗게 센 머리 위에는 한때 13교단 사바브의 상징석이던 검은 오닉스가 달린 서클렛이 얹혀 있고, 흰 로브 위로는 바깥의 담 색깔과 비슷한 선명한 코발트빛 머플러가 땅에 끌릴 만큼 길게 늘어져 있었다. 비록 초면이지만 소개 따위가 없어도 누군지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영감이 계단 위에서 세네피스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오시는 길 혹여 힘들지 않으셨소?”
그의 어처구니없이 빤한 물음에 세네피스는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이럴 때 즐거웠다고 대꾸해 주는 센스가 아쉽구려.”
세네피스가 뚱한 얼굴로 대답을 하지 않자 영감은 금으로 때워 넣은 앞니를 드러내며 조금은 천박하게 웃어 보였다. 차림새는 요란스럽지만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것만 빼면 정말 매력적인데, 쯧쯧.”
“고작 암살단 수장 따위에게 매력적으로 보여 뭐 하지?”
세네피스의 감정 섞인 첫 한 마디에 영감이 뜬금없이 또 웃기 시작했다.
“저러니 또 매력 있긴 하군.”
영감은 세네피스를 향해 능글능글하게 말을 툭 던지고는 그를 데려온 데이에게 손을 뻗었다.
“데이, 이번에도 훌륭히 해냈구나.”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데이가 얼른 계단을 올라가 영감의 앞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댔다. 그 둘의 번갈아 쳐다보던 세네피스는 어딘가 닮은 것 같다는 느낌을 문득 받았다.
“후훗.”
세네피스의 눈빛을 읽어낸 영감이 반지가 몇 개나 끼워진 쭈글쭈글한 손으로 데이의 거친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역시 내 아들답구나. 수고했다.”
데이는 영감, 아니 아버지의 오닉스 반지 위에 입을 맞추고 엉금엉금 뒤로 물러났다. 순간 창백해진 세네피스는 지금껏 자신을 데려오고 이제 퇴장하는 저 무뚝뚝하고 차가운 사내의 얼굴을 새삼 뚫어지게 다시 쳐다보았다.
“내가 두 번째 데이였을 때 모습도 저랬을까나.”
다시 히죽거리며 홀 안쪽으로 돌아선 영감이 마르고 긴 손가락을 까딱거려 세네피스에게 따라오라 손짓했다.
“지금 그대의 표정이 죽을 상이 아닌 걸 보니 내 생각보다 훨씬 똑똑한 듯하오.”
회랑 주변에 있던 미녀들과 미소년들이 손에손에 무언가를 들고 세네피스의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십시오.”
세네피스의 뒤에 있던 청년이 들어가라며 그를 슬쩍 밀어붙였다. 영감이 느리고 둔한 걸음으로 어두운 홀 안으로 사라지며 마지막으로 지시했다.
“큰 손님께서 오신다.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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