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972화 (967/1,132)

< -- 972 회: 파트11. 내가 죽을 수 없는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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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온과 세데스 일행을 보내놓고 강가 모래톱에 남은 니사는 불릿 입구에 걸터앉아 혼자 숲을 뒤적이며 노는 마리안만 할일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저 꼬마를 보는 것만도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황제의 막내딸인 저 8살 꼬마는 늦게 자라는 혈통 때문에 보통 아이 6살 정도로 작은데다가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다른 곳에 가 있을 만큼 빨라서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움직이지 않는 건 중간중간 주머니에서 빵을 꺼내 먹을 때뿐이었다.

“어디 가셨습니까?”

잠깐 할룩스를 보는 새 꼬마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자 당황한 니사가 벌떡 일어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금 전까지도 수풀 속에서 꽃을 뒤지던 마리안이 감쪽같이 사라져 보이지를 않았다.

“옹주 마마!”

당황한 니사는 큰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사방을 둘러보며 고함을 질렀다.

“저요?”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이 셔틀 밑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바짓자락을 덥석 잡자 화들짝 놀란 니사는 하마터면 밑으로 굴러 떨어질 뻔했다.

“튤립하고 히아신스 알뿌리예요. 색깔 예쁜 거 골랐으니까 심어보세요.”

마리안이 환하게 웃으며 니사의 손에 밤톨만한 구근 두 개를 덥석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옷자락을 붙들려는 니사의 손을 쏙 빠져나가 모래톱 주변 꽃밭을 다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휴.”

십년감수한 니사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저 짧은 다리로 풀숲을 콩콩거리며 뛰어다니는 마리안을 보면서 ‘망아지 같다’는 말이 무얼 뜻하는지를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었다. 어두워진 강변에서 아이가 무서워서라도 어른 옆을 파고들 법 싶었지만 갑갑한 황궁을 벗어나 처음으로 야생의 꽃밭을 본 꼬마는 여기저기 신기한 꽃과 씨앗을 뒤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니사는 마리안이 준 보랏빛의 흙투성이 구근을 만지작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듣기로는 저 꼬마의 미래 꿈도 황제의 어릴 때처럼 ‘황궁 정원사’라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황제가 정원사로 위장을 하고 정원 손질을 나갈 때마다 할아버지 네피가 손수 만들어 준 장난감 나무 수레에 모종삽과 소품을 가득 싣고 그 뒤를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이 꼬마의 모습을 매번 볼 수 있었다. 황제도 생김새는 물론이고 관심사까지 똑같은 어린 막내딸을 데리고 다니며 꽃에 관해 가르쳐주고 함께 손에 흙을 묻히면서 어느 때보다 행복해한다는 소문이었다.

“저 빠른 꼬마를 내 다리로 어떻게 잡아.”

니사는 꼬마를 잡아 안에 들어앉히는 걸 포기하고 다시 문가에 앉았다. 그때, 숲에 흩어져 주변을 감시하던 보안국 요원 하나가 달려와 니사에게 화를 버럭 냈다.

“아니 주변에 적이 있을지 모르는데 이렇게 소리를 크게 내시면 어떡합니까.”

“옹주께서 갑자기 사라지셨는데 그럼 어쩌라고?”

요원의 짜증에 니사도 맞받아 버럭 화를 냈다. 코리온에게 세뇌된 요원은 이제 옹주와 셔틀을 지킨다는 2가지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어보였고, 할룩스가 와도 받지 않았다.

“어, 잠깐.”

요원 때문에 잠시 한눈을 팔았던 니사는 조금 전 마리안이 놀던 덤불 쪽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미쳐, 또 어딜 간 거야?”

니사의 짜증이 막 폭발하려는 때, 이번엔 전혀 엉뚱한 풀숲에서 아이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무슨 소리 안 나요?”

마리안이 이 모래톱을 내려다보고 있는 낭떠러지 위를 가리켰다. 깜짝 놀란 니사가 얼른 망원경에 눈을 대고 그쪽을 보았지만 야시 기능이 달린 망원경에도 딱히 보이는 건 없었다.

“글쎄요,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요.”

“어, 방금 소리 났는데.”

색색의 튤립 구근 몇 개를 작은 손에 꼭 움켜쥔 마리안이 총총걸음으로 셔틀에 달려왔다. 꼬마는 셔틀 안의 종이봉투에 구근을 소중하게 담아놓고는 다시 밖으로 나가 귀를 쫑긋 세우고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럼 잘 들어보세요.”

마리안이 황제의 예민한 감각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것을 잘 아는 니사는 함께 있는 요원에게도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고는 그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기 맞아요, 저기 절벽 위에요, 굽어진 소나무 바로 오른쪽 옆 덤불이에요. 저기 뭐 사람 같은 게 움직였는데요?”

“정말입니까?”

요원은 강물에 쓸려온 고목덩이 뒤에 몸을 숨기고는 마리안이 처음 ‘소리가 난다.’고 했던 절벽 위를 일단 겨누었다. 하지만 스코프를 썼어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귀를 기울이던 마리안이 이번엔 떡갈나무가 우거진 제법 먼 숲을 가리켰다.

“어, 저기에도 누가 걸어오는 소리 나요. 우리 편 언니 아니에요.”

“이크.”

니사가 화들짝 놀랐다. 강변으로 접근하는 길목인 저곳엔 보안국 여자 요원이 감시하러 나가 있었다. 니사가 얼른 할룩스를 들고 그 요원을 음성으로 불러냈다.

“이봐요, 그쪽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조심해요.”

“예?”

“혹시 모르니 일단 돌아오라고요.”

“예, 알겠습…….”

사무적으로 대답하던 요원의 목소리가 딱 끊어졌다. 깜짝 놀란 니사가 허둥지둥 달려나가 여전히 바깥에 우두커니 서 있던 마리안을 번쩍 안아들고 셔틀 안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고속의 물체가 니사의 뒤통수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익!”

머리를 다친 니사는 마리안을 한 팔에 안은 채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뒷머리를 스친 ‘발사체’는 모래톱에 명중하며 엄청난 위력으로 모래먼지를 사방에 날려놓았다. 궤적조차 없이 워낙 빠르게 스쳐 대체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분명 마리안을 노린 것이었다.

“마우저입니다!”

잘 훈련된 보안국 정예요원도 마우저가 떨어진 거의 같은 순간 마리안이 처음 가리켰던 절벽 위에 대고 무조건 방아쇠를 당겼다.

“죽었나?”

적이 그곳에 있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니사가 마리안을 껴안은 채 쓰러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두 번째 사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니사의 품에서 기어 나온 마리안이 절벽 위를 가리키며 외쳤다.

“방금 비명소리하고 뭐 부서지는 소리 났어요!”

“안되겠습니다, 빨리 달아나야겠어요.”

니사가 황황히 일어섰다. 마우저에 정확히 맞거나 탄에 직접 비껴 맞은 것도 아니고 그저 조금 떨어진 곳을 스친 것인데도 그 충격만으로 뒷머리가 얼얼했다. 방금 절벽 위를 쏜 요원도 허겁지겁 무기를 챙겨 니사와 마리안을 뒤따라 셔틀로 달렸다.

그런데 니사가 막 사다리를 올라 셔틀로 뛰어든 때, 할룩스에서 방금 전 연락했던 여자 요원의 신음소리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저, 바, 방금 공격을 받았습니다. ……일단 쓰러뜨렸지만 저도 다리를 다쳤습니다.”

조종석의 비상탈출용 붉은 버튼 뚜껑을 열고 막 누르려던 니사가 멈칫했다. 요원은 어디에 얼마나 큰 부상을 입었는지 숨이 절반쯤 넘어간 듯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불규칙하게 내딛는 발소리와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그대로 전해졌다. 적에게 잡힐지 모르니 영상까지는 전송할 수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니사는 붉은 버튼 위를 이미 짚고 있지만 명색이 성직자로서 차마 누를 수가 없었다.

“적이, 적이 쫓아옵니다.”

요원이 거의 울먹이며 다시 소리를 전했다.

“그냥…… 가십시오, 의도적인 것 같습니다.”

니사가 당혹스런 표정으로 다른 요원을 휙 돌아보았다. 일부러 죽이지 않고 살려둔 채 도망치게 해서 시간을 끌어 동료들이 못 떠나게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속셈을 빤히 알지만 쉽사리 비상탈출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앞에 있는 남자 요원을 멍하니 쳐다보던 니사는 뒤가 어딘지 허전한 것을 깨달았다.

“옹주마마!”

그 잠깐 한눈을 판 새 마리안이 또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셔틀 조종석 옆에 꽂혀 있었던 코리온의 지팡이―다리를 다쳤을 때 썼던―도 보이지 않았다.

“옹주마마! 돌아오세요!”

남자 요원과 니사가 스코프를 내리며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 나갔다. 작은 손에 코리온의 지팡이를 꼭 쥔 마리안이 다친 요원이 돌아오고 있을 방향의 풀숲으로 쏙 사라지고 있었다.

“이런!”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둘은 마리안을 쫓아 헐레벌떡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리안은 도망쳐 오는 여자 요원의 인기척 방향으로 풀숲을 헤치며 후다닥 달려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달릴 엄두를 못 낼 깜깜하고 조용한 숲속이지만 파장대가 훨씬 넓은 그의 눈과 귀에는 대낮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주변의 빛과 열이 없어 나무와 생명체들은 도리어 더 또렷하게 보였다. 희미한 빛만 뿜는 식물체들 사이에서 유난히 뜨거운 열을 뿜는 사람의 형상과 주기적으로 내뿜는 숨결, 주변의 난기류가 그대로 보였다.

“요원 언니?”

마리안의 눈에 제일 앞에서 비틀거리며 도망쳐오는 여자 한 명과 그 뒤를 멀지 않은 거리에서 쫓는 사람 셋의 형상이 점점 또렷해졌다. 마리안은 코리온의 지팡이를 쥐고 정신없이 달려가 ‘요원 언니’의 다친 허벅지를 다짜고짜 껴안았다.

“엇.”

베인 허벅지와 볼트가 박힌 등에서 많은 피를 흘리며 흥분해 있던 여자 요원은 눈앞으로 확 튀어나오는 꼬마아이의 모습에 놀라 하마터면 손에 쥔 칼을 휘두를 뻔했다.

“옹주 마마?”

“여기요.”

마리안은 허벅지를 다친 그의 손에 지팡이를 덥석 쥐어주고는 그의 다른 손을 꼭 붙들고 앞장서 뛰기 시작했다. 지금껏 생면부지였던 이 황자의 갑작스런 태도에 요원도 잠시 당황했지만 곧 지팡이로 다친 다리를 지탱하며 속도를 내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앞에, 앞에 또 누가 옵니다.”

“우리 편이에요. 빨리 와요.”

마리안이 휘청거리는 요원을 더 세게 잡아끌었다. 그새 마리안을 뒤따라온 남자 요원이 뒤에 남아 동료를 뒤쫓아오는 정체불명의 적들을 향해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다. 여자 요원의 뒤를 쫓던 적들 중 하나가 예상 못 했던 역습에 어깨를 맞고 뒤로 벌렁 쓰러졌다.

“내가 지킬 테니까 빨리 셔틀로 가!”

마리안과 부상을 입은 여자 요원은 다른 요원이 엄호를 해 주는 사이 허겁지겁 숲을 빠져나와 모래톱에 접어들었다.

마리안을 쫓아 나와 숲 모서리까지 와 있던 니사가 그들을 맞아주었다.

“빨리, 빨리!”

니사도 다친 요원을 함께 부축해 불릿으로 향했다. 그는 불릿 문에 건 사다리를 타고 먼저 올라 요원에게 손을 뻗었다. 등과 다리를 다쳤다보니 흔들거리는 사다리를 제대로 오르지 못했다.

“자요! 내 손 잡아요!”

피를 많이 흘려 기진맥진해진 요원은 니사의 손을 덥석 잡았지만 워낙에 체구가 작은 니사 쪽에서 도리어 그의 체중을 못 이기고 밑으로 떨어질 뻔했다.

“빨리 들어가! 빨리!”

마지막까지 엄호를 해 주었던 동료 요원이 숲에서 서둘러 도망쳐오며 셔틀 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동료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때, 뒤에서 날아온 볼트 한 발이 불릿의 동체 곡면에 비껴맞고 팅 소리를 내며 미끄러져 날아갔다. 마우저였다면 기체가 크게 손상되었을 판이었다.

“맙소사!”

놀란 니사가 양손으로 요원을 붙들고 악 소리를 지으며 셔틀 안으로 힘껏 끌어올렸다.

“엉?”

셔틀 문에 일단 상체만 걸쳐 안으로 기어오르려던 여자 요원이 갑자기 시선을 셔틀 뒤쪽의 좌석 틈새로 움직였다.

“음?”

요원이 돌아본 순간, 좌석 틈새에 숨어있던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확 튀어나와서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니사를 덮쳤다. 일행들이 마리안을 쫓아 모두 셔틀을 비웠던 그 짧은 순간, 위장포로 온몸을 가리고 안에 숨어든 것이 분명했다.

“으, 으악!”

니사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그 순간, 쓰러져 있던 요원이 코리온의 지팡이를 휘둘러 달려오는 적의 정강이를 힘껏 후려쳤다.

“우압!”

세차게 돌격하던 적이 정강이를 얻어맞고 중심을 잃으며 바닥에 엎어졌다. 놀란 니사가 허둥지둥 조종석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어딜 가냐!”

괴한은 자신의 종아리를 후려친 여자 요원의 얼굴을 힘껏 걷어차고는 셔틀 안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니사를 향해 다시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아직 오지 마세요!”

얼굴을 얻어맞은 채 의식이 혼미해지던 여자 요원은 영문도 모른 채 뒤따라 셔틀로 올라오려는 마리안을 발길질로 힘껏 걷어차 바닥에 떨어뜨렸다.

“위험하니 이따가 오십시오!”

여자 요원은 상처입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미 피를 많이 흘린데다가 머리에 충격까지 받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못 움직이는 사이, 괴한은 자그만 체구의 니사를 이미 조종석 계기판까지 몰아붙여 우락부락한 손으로 턱을 붙들고 있었다.

“우, 우아아아악.”

니사는 나름 필사적으로 몸싸움을 하며 버티려 했지만 상대가 되지를 않았다. 계기판 위에 등을 댄 채 꼼짝도 못하게 된 니사는 자신의 목을 비틀려는 남자 괴한과 눈이 딱 마주쳤다.

“빛의 신이시여, 이 종이 곧 그 너른 품에 안길 것이오니…….”

죽음을 각오하며 눈을 감았던 니사는 자신의 목을 비틀려던 상대가 멈칫하는 것을 느꼈다. 눈을 번쩍 떠 보니 그자는 자신의 귀 밑에 있는 성직자문을 보고 있었다. 그때, 그 괴한의 뒤에서 웬 그림자가 휙 나타났다. 인기척을 눈치 챈 괴한이 고개를 휙 돌렸다.

“어딜 봐!”

니사는 상대의 경계가 풀린 기회를 놓치지 않고 턱을 쥔 그자의 손을 꽉 깨물어버렸다.

“악!”

손을 물린 괴한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거의 동시에, 숲에서 필사적으로 되돌아온 남자 요원이 조종실로 몸을 날려 괴한의 목덜미에 단검을 푹 찔러 넣었다. 요원과 뒤엉킨 괴한이 계기판 위로 우당탕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앗! 조심해요!”

당황한 니사가 고함을 질렀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니사가 이미 열어놓았던 ‘비상탈출용’ 붉은 버튼이 옆으로 엎어지던 괴한의 어깨에 꾹 눌려버렸다. 거의 동시에 불릿의 엔진이 작동되는 진동음이 발밑에서 느껴져 왔다.

“옹주마마! 빨리 올라오세요!”

니사가 허둥지둥 조종석 밖으로 달려 나갔을 때, 이미 사다리가 자동으로 걷히고 문이 닫히기 시작하는 참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셔틀 밖에 있던 마리안은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진 사다리와 닫히는 문에 놀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꼬마는 빨리 타라는 니사의 고함에 일단 펄쩍 뛰었지만 어른 키보다 높은 문까지는 손이 닿지를 않았다.

“안 닿아요! 어떡해요!”

“문 좀 어떻게 해 봐!!!”

니사가 자동으로 닫히는 문을 다시 열어보려 비상 열림장치를 비틀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완전 자동모드로 들어간 불릿은 어떤 입력도 듣지 않았다.

급해진 니사가 천천히 닫히고 있는 문 틈새로 몸을 내밀어 손을 뻗었다.

“잡으세요!”

작은 몸으로 훌쩍 뛰어오른 마리안이 손에 매달리자 니사가 있는 힘을 다해 끌어올렸다. 아이의 팔이 불릿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미 셔틀 문은 아이 머리와 몸통이 통과하긴 너무 좁아져 있었다. 셔틀은 아이를 대롱대롱 매단 채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떡해요, 나 어떡해요.”

문 밖에 매달린 꼬마는 닫히는 문에 팔이 낄 것 같은 공포에 셔틀 밖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니사도 셔틀 문이 어린 소녀의 팔을 으스러뜨려 끊어내는, 상상하기도 소름끼치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니사는 하는 수 없이 마리안의 손을 셔틀 밖으로 힘껏 밀어버렸다.

“저항하지 마세요! 제발이요!”

불릿에서 밀려난 마리안은 부드러운 모래톱에 철퍽 소리를 내고 떨어져 몇 바퀴를 굴렀다. 공중으로 떠오른 불릿은 숲에서 날아오는 몇 발의 볼트 속에서 야속하리만큼 자연스레 방향을 돌려 남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둑어둑해진 물가 모래톱에 혼자 남겨진 어린 소녀는 반쯤 넋이 빠진 얼굴로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엄마, ……엄마, 나 어떡해.”

공포에 질린 마리안은 어딘가로 움직이는 것도 잊은 채 모래톱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새 날은 깜깜해져 보통의 눈으로는 하나도 보이지 않을 암흑만 깔려 있었다.

“엄마아.”

무서운 물을 등지고 선 마리안이 소매로 눈가를 가리고 바들바들 떨었다. 주변은 온통 낯설고 시커먼 숲 뿐이었고 지켜 줄 어른은 이제 없었다. 아니, 숲 쪽에서 야수처럼 자신을 노려보며 다가오고 있는 정체모를 크고 무서운 어른 4명만 보였다.

“저 꼬마는 뭐지?”

어른들이 멀리서 주고받는 대화가 마리안의 귀에 그대로 들어왔다.

“어느 놈 자식인지 진짜 예쁘네, 아까 보니까…….”

“몰라, 일단 데려가 봐. 대장이 알아보겠지.”

마리안은 그제야 니사가 마지막에 외쳤던 ‘저항하지 마세요.’라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사냥꾼 차림을 한 4명의 어른들이 사방에서 마리안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눈에 끼고 있는 스코프의 붉은 반사광 때문에 마리안의 눈에는 그들 모두가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 겁에 질린 마리안이 주춤주춤 물가로 물러났다.

“봐봐, 겁먹었어, 놀라게 하지 마.”

그들 중 하나가 앞장서 접근하려는 동료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리 오렴. 해치려는 거 아냐.”

제일 앞의 덩치 큰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석궁을 허리띠 뒤로 숨기고는 마리안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우린 여기 사냥꾼들이란다. 나쁜 어른들 아냐. 마을에 데려다줄게. 이름이 뭐니?”

무심결에 이름을 말할 뻔했던 마리안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들이 정확히 누군지는 아직 모르지만 어쨌든 방금 ‘요원 언니’에게 석궁을 쏘며 뒤쫓던 나쁜 어른들이라는 건 분명했다. 니사는 분명 저항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런 나쁜 어른들에게 옹주인 자신의 이름을 알려줘선 안 될 것 같았다.

“엄마, 어떡해.”

마리안은 다시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바닥에 물이 밟혔다. 오후에 내린 비로 물살이 제법 빨랐다. 더 물러났다가는 그 빠른 물살에 휩쓸려갈 판이었다. 여자가 그새 더 바싹 다가와 마리안에게 손을 뻗었다.

“같이 마을로 가자, 엄마아빠 찾아줄게.”

여자의 손끝이 당장이라도 마리안의 옷깃을 잡을 만큼 바싹 다가왔다.

“어, 와요.”

마리안은 갑자기 놀란 듯 방금 셔틀이 사라진 쪽을 휙 돌아보았다. 이 4명의 자칭 ‘사냥꾼’들도 덩달아 무기를 빼쥐며 그쪽을 휙 돌아보았다.

“뭐가?……엇!”

여자가 하늘을 보느라 아차 한 그 짧은 사이, 이 콩알만한 꼬마가 어른들 사이를 휙 스쳐 숲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잡아!”

그제야 속은 것을 깨달은 어른들이 필사적으로 마리안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승마복 차림의 그 콩알만한 꼬마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른 걸음으로 숲 속으로 쏙 사라져버렸다.

“쫓아가! 빨리!”

4명의 괴한들이 허둥지둥 숲에 뛰어들어 꼬마를 쫓았다. 스코프를 켜고 보니 조금 떨어진 가파른 풀숲 언덕으로 허겁지겁 기어 올라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

그들은 석궁을 쳐들고 결사적으로 꼬마를 쫓았다. 그런데 스코프의 야시경에 보이는 아이의 형상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뭐야, 내 스코프 고장났나봐!”

“어, 내 것도 그런데?

그들은 점점 흐려지는 꼬마의 형상을 쫓아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젠장, 위장포 쓴 거 아냐?”

“무슨 소리야, 아무 것도 없었어!”

그들은 이런저런 모드로 바꿔가며 계속 아이를 쫓았지만 조금씩 흐려지는 아이의 모습은 나중엔 주변 배경과 거의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저게 가디언도 아니고 무슨…….”

여자가 욕을 내질렀다. 스코프에도 잡히지 않을 만큼 바이탈 사인을 감출 수 있는 건 메타볼릭을 제어하는 훈련을 따로 받는 가디언이나 피다이 뿐이었다. 그들은 아이가 헤치고 간 덤불의 흔적과 발자국을 쫓아 얼마간 더 추격을 이어갔지만 결국 얕은 개울 앞에서 막히고 말았다.

“학, 학, 봤어? 어디로 갔어?”

그들이 가쁜 숨을 고르며 숲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더 이상은 달아난 꼬마를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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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개인 사정상 조금 일찍 올립니다.

이번편은 마리안의 원맨.....아니 원걸쇼입니다. ^^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출판본 주문게시판 http://www.vein.pe.kr

(근데 찔끔찔끔 자주 올리는 것보다는 5일 간격이어도 지금처럼 왕창 올리는 편이 좀 낫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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