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990화 (985/1,132)

< -- 990 회: 파트 12. 血浴齋戒 (혈욕재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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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잡아!”

볼토의 고함에 그를 따라온 세 명의 경호원 사관들이 허겁지겁 마하를 뒤쫓았다. 어차피 긴 복도 구조로 된 곳이라 갈 수 있는 길은 뻔했다. 셔틀 도크의 복도 맨 끝까지 도착한 마하는 문고리를 덥석 붙잡았다.

“익!”

마하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고, 안에서 걸어 잠그는 빗장이 밑으로 휘어져 있었다. 방금 들어온 볼토 일당들이 뒤쫓는 추격대들이 못 들어오게 일부러 휘어놓은 것이 분명했다.

“엄마야.”

마하는 휘어진 빗장을 힘으로 풀어보려 했지만 뒤쫓는 붉은 제복 경호원들이 이미 너무 가까이 있었다.

“어쩌지? 어쩌지?”

발을 동동 구르던 마하는 출입문 바로 옆의 [원격조종실]이라 쓰인 손바닥만한 방에 뛰어들어 문을 잠갔다. 프리깃 외부 스페이스로 혹처럼 툭 튀어나와 있는 유리 상자 모양의 작은 방은 이곳에 도킹하는 셔틀들을 인도하는 일종의 미니 관제소였다. 가로세로 5척(1.5m) 정도의 작은 방 안에는 복잡한 계기판과 의자가 있고 천장부터 바닥, 벽까지 모두 투명해 밖이 훤하게 보였다.

뻥 뚫린 바닥을 본 마하는 무심결에 철렁하며 놀라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열어요! 여십시오!”

한 발 늦은 경호원들이 조종실 밖에서 철문을 거세게 걷어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에서 걸어 잠근 단단한 철문은 그들의 힘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겁에 질린 마하는 계기판 의자 밑에 재빨리 웅크렸다.

“안되겠다! 놓아두고 와! 그냥 떠나!”

맘이 급해진 볼토가 함장실에서 미리 챙겨 온 황제 전용 아르다가 셔틀의 자동키로 출입문을 열며 고함을 질렀다. 조종실 철문을 두들기던 자들도 결국 포기하고 헐레벌떡 그를 따라 황제의 셔틀이 있는 7번 게이트로 되돌아갔다.

“휴우.”

계기판 위로 고개를 빠끔히 내민 마하는 원격조종실의 창밖으로 프리깃 밖에 결합된 황제 전용 아르다가 셔틀에 불에 들어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저놈들이?”

발끈한 마하의 눈에 불이 켜졌다. 이유는 몰라도 누군가 황제의 셔틀―그것도 황제가 자신에게 줄 선물이 실려 있는―을 훔쳐 달아나는 꼴을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는 앞에 있는 불 꺼진 계기판을 서둘러 확인했지만 뭐를 눌러야 할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되는대로 그럴싸한 버튼을 마구 눌러보았지만 아예 계시판에 불도 들어오지 않았다.

떠날 준비를 마친 볼토 일당은 셔틀의 게이트 문을 막 잠그고 있었다.

“어어?”

급해진 마하는 제일 외진 곳에 있던 붉은 버튼을 다짜고짜 비틀어 보았다. 순간 번쩍 하며 버튼들에 기능이 나타났다. 하지만 셔틀에 관해선 전혀 아는 것이 없는 그에겐 온통 생소한 단어들뿐이었다.

그때, 7번 게이트를 나타내는 부분에서 갑자기 파란 불이 꺼지고 [잠김 해제]를 뜻하는 붉은 불이 들어왔다. 정확히 뭘 뜻하는지는 몰라도 셔틀이 이 프리깃에서 이탈할 준비를 하고 있다 생각한 마하는 재빨리 그 옆의 [잠김]을 다시 눌러 파란 불로 돌려놓았다.

“또 바뀌기만 해 봐라.”

마하가 새파란 눈을 부라리며 셔틀의 작은 움직임을 노려보았다. 자세히 보니 셔틀을 프리깃에 고정시키고 있는 작은 고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도 같았다.

그때, 또다시 그 불이 [잠김 해제]로 돌아가며 고리가 빠지려 했다.

“이놈들!”

마하도 질세라 재빨리 다시 [잠김]을 눌러 셔틀을 이탈시키려 버둥거리는 볼토의 혈압을 꼭대기까지 올려놓았다. 무언가 적을 계속 붙들어놓을 다른 기능이 있을 것도 같지만 이 급박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마하는 저들이 다시 [잠김 해제]를 시도하기를 기다렸지만 이번엔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방금 닫혔던 게이트 문이 도로 열리더니 붉은 제복의 경호원 셋이 셔틀 안에서 달려 나오는 모습이 안쪽 창으로 보였다.

“익.”

놀란 마하가 몸을 움츠렸지만 여전히 기가 죽지는 않았다. 다시 [잠김 해제]가 켜지자 그는 아랑곳없이 [잠김]을 다시 눌러 숨바꼭질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저년 좀 죽여!”

눈에 불을 켜고 원격조종실 앞으로 달려온 경호원들은 조금 전 그에게 ‘대군마마’라고 부르며 인사하던 충성스런 경비병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벽에 달린 소방용 도끼를 뜯어낸 그들은 원격조종실의 작은 창문을 내리찍어 단숨에 박살을 내 버렸다.

“으, 으악!”

부서진 창 안쪽으로 덥석 들이민 경비병의 우악스런 팔에 놀란 마하가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몰려났다. 야속하게도 또다시 [잠김 해제]가 켜졌지만 마하의 손이 닿을 위치가 아니었다. 마하가 순간 꾀를 내어 셔틀을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다.

“셔틀이 당신들만 놓고 출발하려고 해요!”

그 말에 지레 놀란 병사들이 7번 게이트 쪽을 휙 돌아보았다. 마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계기판에 달라붙어 [잠김]을 눌렀다.

“이 꼬마 년이!”

흥분한 경비병이 이번엔 석궁을 빼들고 안에 대고 마구 쏘아대기 시작했다. 마하는 의자로 몸을 가리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방 곳곳에 타탁거리며 박히는 볼트 소리와 밖에서 거칠게 문을 쾅쾅 두들기는 소리에 그의 심장도 철렁철렁 내려앉았다. 그때 갑자기 우지끈 하며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야.”

드디어 문이 끝장난 것으로 생각한 마하가 머리를 감싸쥐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지만 눈앞의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석궁을 쏘며 문을 거칠게 두들기던 경비병들도 갑자기 잠잠해졌다.

“어?”

마하가 슬쩍 고개를 든 순간, 이번엔 방금 전보다 훨씬 큰 굉음이 울리더니 이 원격조종실 바깥에서 비명이 울렸다.

“이 새끼들, 여기 있었구나!”

너무도 반가운 베아트릭스의 목소리에 마하가 엎드려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마하를 위협하던 3명의 경비병들은 대장군의 모습에 파랗게 질려 도망치려 했지만 베아트릭스가 날린 자리드와 볼트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한 명은 자리드에 허벅지를 찢겨 그대로 바닥에 굴렀고, 한 명은 가까운 거리에서 날아든 강화 볼트에 옆구리 갑옷을 명중당하고는 충격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신님! 대신님! 열어주십시오!”

마지막 경호원 한 명이 가까스로 7번 게이트 앞에까지 도망쳐 문을 열어달라며 두들겼지만 볼토가 숨어있는 문은 안에서 잠겨 열리지 않았다.

“마하 대군?”

경호원들을 쫓아낸 베아트릭스가 원격조종실 문을 열고 들어와 안에서 떨고 있던 마하를 꼭 안아주었다.

“저기, 저 셔틀 안에 이부대신 들어있어요! ……잠깐, 잠깐만요!”

마하가 베아트릭스의 품을 떨치고 나가 다시 [잠김]을 재빨리 눌렀다. 거의 달아날 뻔했던 셔틀은 마하의 기지에 다시 도망을 못 가고 그대로 묶여버렸다. 그새 7번 게이트 앞으로 달려간 시종들이 그곳에서 울부짖던 마지막 경호원을 때려눕히고 문을 열려 했지만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장군님! 안에서 잠갔습니다! 황상의 전용셔틀인데 문을 부숴야 할까요?”

베아트릭스의 손을 붙들고 원격조종실을 나선 마하가 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문 열어드릴게요, 대신 황상한테는 꼭 제가 저놈 잡았다고 해 줘요.”

베아트릭스는 이 약삭빠른 대군의 태도가 한편으로 기특하고 한편으로 기가 막혔다. 지난번에도 기막힌 순간에 14번 잔딕을 훔쳐냈던 그 특유의 기지가 이번에도 아이를 살린 모양이었다.

“그 말 안 해도 대군이 잡은 것 맞아.”

“히이이.”

마하가 후다닥 달려가 게이트에 달린 인식장치에 홍채와 얼굴을 들이대고 [잠김 해제]를 눌렀다. 이제 탈출극도 끝장난 셈이었다.

“볼토 트라우제, 반역죄로 체포한다.”

문이 열리자마자 칼을 빼들고 아르다가 셔틀에 뛰어든 베아트릭스가 고함을 지르며 조종석으로 달려갔지만 그곳에 앉아있는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놈이?”

조종석을 확인한 베아트릭스의 얼굴은 일순간 굳어버렸다. 낙담한 그는 뒤따라온 시종들에게 힘없이 말했다.

“마하 대군을 데리고 나가라.”

베아트릭스가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반역도당의 진짜 우두머리를 잡아낼 수 있었을 중요한 끈 하나가 독약을 마신 채 입에서 피를 흘리며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그리도 귀족이 되고 싶었던 평민 출신 황실 대신 볼토 트라우제는 살아서 황제의 형틀에 서는 끔찍한 운명만은 피해가는 정도로 그의 원대한 꿈을 결국 접어야 했다.

탈출정에 갇혀 있는 배신자들 가운데서 친척들의 모습을 확인한 아메스는 무언가에 쫓기듯 7층의 함교로 올라왔다.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무서운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는지를, 진짜로 믿어야 할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비로소 깨달은 아메스의 두 눈시울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7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순간, 아메스는 함교와 이어진 복도 바닥을 온통 적시고 있는 붉은 핏자국에 멈칫거렸다. 복도에 흩어진 몸뚱이는 한두 명의 것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부터 복도를 죽 따라 수십 개나 되는 의전대 경호원의 머리와 손발, 터진 몸뚱이들이 엽기적인 장식물처럼 사방에 널려 있었다. 이런 흔적을 남기고 지나갈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멋진 풍경이군.”

아메스는 바닥에 쏟아져 있는 누군가의 내장을 일부러 발로 꾹 밟으며 피칠갑이 된 복도를 걸어갔다.

멀리에 통째로 뜯겨나간 함교의 출입문이 보였고 그 밑에 팽개쳐진 누군가의 공포에 질린 머리가 보였다. 이곳을 지키던 의전대 경호원들이 그 무서운 ‘침입자’를 마주했을 때 느꼈을 공포를 그자의 표정이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메스는 부서진 문을 지나 함교에 들어섰다. 창은 탁 트여 있었고, 정면의 스크린엔 수베르까지 이어진 프리깃의 정상 궤도와 현재의 상태가 파란 불로 표시되고 있었다. 그 중간에 켜 있는 [정상 운항 중]이라는 푸른 불빛이 정말로 반가웠다.

아메스는 부서진 투구를 벗고 함장석을 올려보았다. 그곳에 앉아 혼자서 프리깃의 키를 잡고 있던 한 사람이 온화한 눈길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피로 범벅이 된 칼이 기대어 세워져 있었고 결혼반지에 박힌 무지개빛 오팔보다 더 아름다운 두 개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루스탐까지 다 저희에게 보내시고 혼자 돌파하신 겁니까?”

“내 원래 그런 거 모르셨소.”

카렐이 함장석 아래로 긴 팔을 내밀자 아메스는 그의 손을 꼭 잡고 함장석에 올랐다. 카렐이 그의 찢긴 입술을 더듬었다.

“입술을 어쩌다 다친 거요?”

“괜찮습니다, 폐하.”

아메스는 적의 피로 물들어 있는 카렐의 손등에 얼굴을 부볐다. 그리고는 죽음을 위장하느라 그의 손목에 붙여 주었던 피 주머니를 풀고 방금 코나에게서 돌려받은 황제 직인을 대신 매어주었다.

아메스는 함장석 뒤 기둥에 벌벌 떨며 매여 있는 시녀장과 함장을 한 번 흘끗 째려보고는 황제의 무릎 위에 살며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허리를 당겨 안아주는 황제의 손길이 너무도 푸근했다. 그의 품이 이렇게까지 편안했었나 싶었다.

“계속 이리 있어도……되겠는지요?”

“짐의 황후 아닙니까?”

황제의 입술이 아메스의 이마에 와 닿았다. 그동안 별 느낌도 없던 ‘황후’라는 호칭이 이토록 가슴 아리게 다가오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조금 전 욕실에서 황제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메스가 그간 먹어온 엉터리 약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불륜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황제는 격분하는 대신 눈물 한 방울을 보였을 뿐이었다. 황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속으로 얼마만큼의 분노를 삭였을지는 바들바들 떨리고 있던 손끝만으로도 알 수 있었지만 그는 왜 그랬는지, 상대가 누구였는지 따지지 않았다. 그가 물은 건 ‘아직 날 사랑합니까?’ 이 한 마디뿐이었다.

용서를 빌며 황제의 품에 안겼던 아메스는 가슴 속으로 흐느끼고 있던 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더 미안했다. 무슨 이유엔지, 아버지 페로의 손에 죽은 엄마 마리안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고맙습니다.”

아메스가 카렐의 품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자신의 병과 오만, 심지어 ‘용서하기 어려운 실수’까지도 모두 견디고 용서해 준 이 너그럽고 든든한 이에게 비로소 웃음을 보였다. 설사 황제가 정말로 얼마 못 살 운명이라 해도, 정말로 ‘그 날’이 올 때까지 절대 그 사실을 믿지 않기로 했다.

수베르의 비옥한 초원 삼각주에 위치한 황실군 사령부는 심야의 고요함에 빠져 있었다. 수베르의 하늘을 비추는 3개의 달도 오늘은 공교롭게 모두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어 따로 조명이 비치는 곳을 제외한 주변은 온통 베일을 드리운 듯 깜깜했다.

30만의 황실군 총 지휘부인 이 거대한 ‘토로 기지’는 그 자체로 작은 도시였다. 방어가 용이한 삼각주에 세워진 이곳은 7만에 가까운 대군과 그 가족, 군무원을 합쳐 20만 넘는 사람들이 상주하는 중간 크기의 도시였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사령부 북쪽에는 군대, 아니 사람이 가는 곳이라면 꼭 따라다니는 돈을 노리고 함께 이주한 상인, 농업 이주민, 정착을 원하는 유목 원주민들까지 하나 둘 모여 이젠 인구 50만 가까운 같은 이름의 민간 도시도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토로 시와 강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거주지들이 또다시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었다.

애당초 카렐 황제가 아케메니아 기득권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과거 황무지였던 이곳에 황실군 사령부를 옮기며 생각한 것도 수베르를 황제령 아케메니아와 비슷한 수준의 새로운 거주지, 제2수도로 만들려는 백년대계의 시작점이었다.

황제는 그 상징으로 제위전쟁 마지막 날 황궁에서 무너진 황실 주 행사장 아스트라이아 홀을 원래 자리가 아닌 이곳에 재건했다. 그리고 제국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쓸모없는 행궁들을 매각한 대금 중 일부로 타르서스, 사오시안트에 이은 제국의 세 번째 공식 별궁인 [수베르 별궁]을 세워 이곳이 단순히 군사기지가 아닌, 행정 중심지라는 사실까지 대외에 알렸다.

여느 군부대의 밤 시간이 그렇듯, 이 ‘토로 캠프’의 외곽지역도 군데군데 경비탑의 불빛과 야간 순찰조의 걸음소리, 야간 훈련을 받는 몇몇 운 없는 군인들의 고함 정도만이 두드러질 뿐 쥐죽은 듯 고요했다.

하지만 오늘 밤, 황실군의 핵심 시설이 있는 기지 중심부는 외곽의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일 아침 황제를 영접할 중앙 연병장과 주기장 주변에는 3천에 가까운 정예병들이 구석구석 배치되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기지의 북쪽에 위치한 아스트라이아 홀도 내일의 제국회의가 있게 될 장소이니만큼 삼엄한 경계태세에 들어가 있었다. 그 외에도 경비병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곳은 지난 저녁 황제에 앞서 도착한 황실 고관들과 각지 제후들이 머무는 처소, 그리고 내일부터 황제가 머물 ‘수베르 별궁’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황제 암살 시도가 있었던 만큼, 별궁의 경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삼엄했다. 원래 60층 규모의 병 모양 탑으로 설계했던 수베르 별궁은 황실의 예산 부족과, 이후 확장 가능성을 고려해 지금은 그중 딱 3분의 1 정도만 지어놓고 대충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지금은 깨진 유리병 마냥 만들다 만 어정쩡한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갖출 기능은 다 갖추고 있었다. 그곳엔 수베르 지역 전역을 관할하는 행정청과 황제의 처소, 그리고 이 토로 기지를 방어하는 육상, 수상, 공중의 방어 시스템을 통제하는 통제실과 유사시 황제가 제국 전역을 손바닥처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컨트롤센터까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녁 내내 조용하던 이 별궁에 갑자기 불이 켜진 건 자정이 막 넘어간 한밤중이었다. 그와 함께 몇몇 사람들이 조용히 모여들었다가 굳은 얼굴로 이곳저곳에 흩어졌다. 무언가 심상찮은 움직임이 있었지만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리지 않았고 영내에는 그 어떤 경보도 울리지 않았다.

황제 경호대장 카토, 법무부 수사관들과 함께 느닷없이 별궁 주변으로 나온 법무대신 아리아노 라자루스 경은 멀찍이에서 그런 별궁과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면면을 망원경으로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병부대신 제네르가 한밤중에 보낸 긴급한 메시지가 찍혀 있는 할룩스를 힐끔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와 또 내 팔자야.”

그는 봉투 하나를 들고 건들거리며 영내 숲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기지 중앙의 떡갈나무 언덕 공원에 들어선 그는 여자 젖가슴처럼 둥그스름한 언덕을 느릿느릿 올라서는 그 꼭대기에 있는 경비탑을 올려보았다.

“누구십니까?”

경비탑에 있던 병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 말단 초병은 뜬금없이 나타난 법무대신의 모습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임무를 잊지는 않았다. 병사가 석궁을 겨누며 큰 소리로 경고했다.

“오늘의 암구호를 말씀하십시오. 그 이상 접근하시면…….”

“오늘 암구호가 [수난극]이라는 건 알아. 그러니까 너 나하고 자리 좀 바꾸자.”

“예에?”

황당해하던 초병은 대신의 뒤에서 눈짓을 보내는 황제 경호대장 카토의 모습에 기겁을 하며 헐레벌떡 짐과 무기를 챙겨 내려왔다.

“옛다, 자릿세다.”

아리아노는 봉투에서 술병과 육포 한 뭉치를 꺼내 초병에게 불쑥 내밀었다. 어리둥절한 얼굴의 초병은 카토, 그리고 아리아노를 여기까지 호위하고 온 수사관들과 함께 언덕을 내려가 멀어졌다. 혼자가 된 아리아노는 봉투를 입에 물고 높은 경비탑의 사다리를 혼자 올라갔다.

“히야, 이거 완전 명당자리네.”

아리아노는 높은 경비탑 위에 혼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사령부의 딱 중심에 위치한 이 경비탑이 있는 언덕 주변으로 마치 도넛처럼 무성한 숲이 꾸며져 있었다. 이곳에 앉아있으니 북쪽의 별궁, 남쪽의 주기장, 서쪽의 강과 오른쪽의 군 막사가 한 번에 다 내려다보였다.

“왜 이런 데 술집은 안 만들까.”

그때, 경비탑 아래 산책로로 덩치 좋은 세 사람이 무언가 구시렁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 한밤중에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이모님?”

아리아노는 경비탑 밑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조카 릴라크 예리노프 대장군과 타슈카 라코타, 베레트라 알부르즈 두 장군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릴라크는 황실군 최대 기병대인 슈로 기사단장이고, 타슈카와 베레트라는 황실군 보병대의 핵심 멤버였다. 이 셋 다 황실군 내에서 가디언을 빼면 황제와 병부대신 제네르가 가장 신뢰하는 심복들이었다.

“황상께서 오시면 술의 ㅅ자도 못 꺼내잖나. 올라와, 자리 다 마련해 놨으니.”

아리아노의 검은 피부 덕분에 어둠 속에서 하얀 눈동자와 앞니만 유독 반짝거렸다.

“고작 이런 데서 술 먹자고 자고 있는 사람들 깨워서 나오라고 한 거예요? 아우, 내 팔자야.”

릴라크가 투덜투덜거리며 마지못해 사다리를 타고 경비탑 위로 올라갔다. 대장군이 앞장서는 마당에 나머지 두 장군들도 찍소리 못 하고 그를 따라 탑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웬만한 사람이라면 욕이 절로 나왔겠지만 대신들 중 서열 1,2위를 다투는 실권자 앞에서 함부로 험악한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정말로 저희한테 무슨 할 말 있으셔서 부르신 거 아니고요?”

자다 말고 불려나온 릴라크가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다시 물었다. 손바닥만한 탑 위에 올라보니 아리아노의 말대로 술병 몇 개와 육포, 치즈가 중간에 쌓여있었다.

“자네들 여기 온 걸 영광으로 알아.”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털썩 앉은 아리아노는 술 주변에 둘러앉은 그들 모두에게 잔 하나씩을 들려주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난 아무나 부른 게 아니라고.”

술자리를 펼쳐놓은 아리아노는 할룩스를 확인했다. 그곳엔 언덕 밑의 숲에 대기 중인 카토가 보낸 메시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 언덕 주변에 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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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면서 확인해 보니 다음편은 좀 길어질 것 같네요 ^^;;;

근데 16k 넘어가면 모바일로 볼 때는 짤린다던데 맞나요? 제 스맛폰에서 조아라 어플이 에러가 나 못 깔고 있어서 확인이 안 되네요.

*어쨌든....추천, 코멘트, 평점이든 좋은 발자국 한 번 남겨주고 가시는 분들께선 복받으실 겁니다. ( ̄∇ ̄)ブ~~★

몇몇 분들이 평점이 항상 같은 숫자라서 '고정'이 아니냐고 물으셨는데요, 그건 아니고요, 작가가 보는 통계엔 매일의 평점 평균이 나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좋은 평점을 주신 분들이 많아서 높은 평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옛날엔 4.98이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조금씩 변합니다. ^^;;;)

가끔은 1점 폭탄이 쏟아지는 날이 있어서 일일 평점이 굉장히 낮은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이 누적되면 또 빠지겠죠. 절망....( ..);;

(노블레스 연재는 누군가 제 연재 자체가 굉장히 맘에 안 드는지 매일매일 올리자마자 부지런히 1점을 주고 홀연히 사라지는 분이 계십니다;;; 덕분에 그쪽 평점은.....포기상태입니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 누군가 악감정 있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의욕은 떨어지네요.)

아참, 전자책 출판이 코앞입니다. 지금 1부 1~4권 호환성 테스트중입니다. 특히 3,4권은 연재분 미공개부분이 많아서 특히 강추입니다..... 흐흐흐~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출판본 주문게시판 http://www.vein.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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