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22 회: 파트 13. 과거로의 길을 누가 열 것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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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들 사이에 파묻혀 광장의 흙바닥에 쭈그리고 있던 자이납은 근위대 가디언이 고개를 돌리는 것 같은 느낌에 얼른 몸을 움츠렸다. 그는 자신을 의심어린 눈으로 쏘아보는 한 어린 소년에게 능글하게 씨익 웃으며 친한 척을 했다. 다행히 소년은 그의 웃음에 경계를 풀고 옆에 있는 엄마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근위대가 쳐 놓은 통제선 안에서 차가운 맨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 감시를 받으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성을 차지한 근위대들은 혼란을 부채질하는 민간인들을 양떼몰이하듯 광장 동쪽으로 집결시켰고, 집안에 머물던 민간인들도 모두 강제로 끌어내 광장에 모아놓았다.
“내 꼴이 이게 뭐람.”
자이납이 한숨을 내쉬었다. 근위대들의 공격으로 성 안이 아수라장이 되고 통신까지 끊기면서 패닉에 빠진 민간인들은 이 성에서 좁은 계단 말고는 딱히 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너도나도 몰려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선택은 옳기도 했고, 틀리기도 했다. 너무 대응이 빨랐던 주민들은 부서진 구름다리에서 포격에 맞아 몰살당하거나 인파에 밀려 절벽에서 추락사했고, 너무 느렸던 주민들은 근위대들이 지른 화재로 불타는 집 안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죽거나 골목골목의 전투 와중에 흥분한 근위대의 손에 살해당했다. 이곳에 모인 주민들 사이에선 죽은 민간인이 5백 명이 넘을 거라는 흉흉한 이야기가 벌써부터 돌고 있었다.
“뭐야, 이 손 놓지 못해!”
갑자기 민간인들 사이로 쳐들어온 근위대 4명이 웬 가족 하나를 사람들 사이에서 끌고나가기 시작했다. 집에 숨어 있다가 조금 전 끌려나온 엄마와 아이들 둘이 거친 군인들 손에 끌려 어딘가로 사라지고 있었다.
“군인 가족인가 봐.”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자신들의 집에서 쫓겨나 이곳에 짐짝처럼 던져진 민간인들은 흥분한 근위대들이 자신들의 집을 뒤지고, 중요한 물건을 약탈하고, 낙오한 공무원이나 군인, 혹은 그 가족들을 걸러내어 끌어내가는 모습을 그냥 무기력하게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라스를 쫓다가 얼떨결에 인파에 휩쓸려 방향을 잃고 탈출도 못 한 자이납도 그들 사이에 숨죽이고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감시하는 근위대들은 이 많은 사람들을 한 명, 혹은 한 가족씩 불러내 신분을 확인하고 다른 어딘가로 이동시키는 중이었지만 이 많은 사람들을 다 확인하려면 한나절은 더 걸릴 듯했다.
“제발! 제발요! 항복할게요!”
또다시 터진 비명에 사람들의 어깨가 일제히 움츠러들었다. 이번에 걸린 남자는 부상을 입고 낙오한 제후군 병사였다. 훔친 민간인 옷으로 갈아입고 사람들 속에 숨어 있던 그 병사는 군용 속옷과 핏자국을 들키면서 여지없이 붙들려 광장 한쪽으로 끌려 나갔다. 그리고 채 변명할 기회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도끼에 무참히 목을 잘렸다.
“군복을 벗고 민간인 틈새에 숨어 있는 군인은 포로로서의 자격이 없다.”
근위대 장교가 피가 뚝뚝 흐르는 병사의 잘린 머리를 들고 인파 앞으로 와서 흔들어대며 쩌렁쩌렁 소리를 쳤다.
“지금이라도 자수하면 포로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해 주겠다. 허나 숨어 있다가 붙잡히면 이 꼴이 될 거다! 알면서 숨겨준 자는 같이 처벌한다! 숨어있는 군인 놈은 당장 자수하거나 신고해라!”
겁에 질린 민간인들이 더 움츠러들었다. 엄마들은 충격을 받고 울어대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고, 사람들은 혹시 주변에 군인이 없는지 겁에 질린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미치겠네.”
자이납은 한숨을 내쉬며 사람들 사이에 몸을 더 깊이 숨겼다. 다행히 그는 사복 차림에 군용 속옷이나 인식표도 없었다. 심지어 유전자 검사를 한다 해도 황제가 만들어준 가짜 민간인 신분이 나올 테니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빌어먹을 라스 이 새끼 어딨는거야?’
주변에 라스가 없는 것을 확인한 자이납은 눈에 띄지 않게 살금살금 오리걸음으로 몇 걸음을 움직여 성문 쪽으로 조금 내려갔다. 근위대들이 움직이지 말라며 중간중간 협박을 했지만 그런다고 얌전히 있을 자이납이 아니었다. 그는 감시하는 근위대 병사들의 눈을 피해 광장부터 천천히 성문 쪽으로 움직이고 있던 차였다.
‘아우, 다리야.’
성문 밑에 도착한 자이납은 오리걸음으로 저린 다리를 두드리며 목을 거북이처럼 잔뜩 움츠렸다. 그때, 그는 몇 사람 어깨 너머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웬 익숙한 얼굴의 여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안 어울리게 큼직한 코트 안쪽으로 레즐린 가 제후군의 군복 옷깃이 살짝 보였다. 잘 기억해 보니 군 식당에서 배식을 하던 취사병 중 한 명이었다. 그도 자이납을 알아본 눈치였지만 못 본 척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휴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자이납은 또다시 오리걸음으로 사람들을 헤치고 슬그머니 몇 걸음을 더 내려가 성문을 벗어났다. 성문 밖은 구름다리가 있는 골짜기까지 약간 내리막의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
“으익.”
성문 밖 풍경을 본 자이납이 기겁을 했다. 성문 안쪽도 근위대의 방화로 아수라장이었지만 성문 바깥의 참상만큼은 아니었다. 서부 발리스타를 두들겨 맞은 이곳에는 포격으로 타죽은 시체들과 죽어가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겁이 질린 성한 사람들이 뒤엉켜 있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1스타디아쯤 너머로는 포격으로 무너진 구름다리의 잔해가 절벽에 흉물스럽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뭐야.”
자이납이 부르르 떨며 다시 사람들을 헤치고 슬쩍 내려갔다. 그때, 민간인들을 감시하던 근위대 분대장 가디언이 갑자기 뒤를 휙 돌아보며 자이납을 가리켰다.
“너! 일어나!”
“예?”
가디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자이납은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주변사람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자이납에게 쏠렸다. 자이납은 얼굴을 옷깃 사이에 잔뜩 감추고 슬며시 일어났다.
“꼼짝 않고 어딜 두리번거려!”
“죄송해요, 나오다가 동생하고 헤어져서 혹시 여기 있나 해서 보는 중이었어요. 용서해 주세요.”
자이납이 굽실굽실거리며 머리를 최대한 숙여붙였다.
“멋대로 움직였다간 저 밑의 절벽에 던져버릴 줄 알아.”
한 번 협박으로 주변 민간인들 모두에게 약발이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가디언은 다시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자리에 쪼그려 앉은 자이납은 조금 아래쪽에서 누군가 슬며시 손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작은 체구로 사람들 사이에 푹 파묻혀 있어 잘 분간이 되지는 않지만 사람들 등판 사이로 보이는 나뭇결의 색깔만은 분명했다.
“라스?”
자이납이 재빨리 주변을 다시 살폈다. 여전히 상자를 진 라스는 발리스타 포격의 검은 재로 뒤덮인 공터 중간께에서 사람들에 파묻혀 있었다. 코리온을 피해 도망치다가 인파에 휩쓸려 얼떨결에 여기까지 밀려온 모양이었다. 포격에 맞아 타죽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대충 200척(60m), 절대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근위대들의 감시 속에서 100명 가까운 사람들을 헤쳐야 갈 수 있는 지금의 자이납에겐 북극에서 남극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잠깐만요.”
자이납은 또다시 사람들을 헤치며 라스 쪽으로 슬그머니 다가가려 했다. 그때, 성 안쪽에서 수십의 근위대원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나오는 모습에 자이납은 부리나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안 움직인 척했다. 자이납의 예민한 귀에 근위대 장교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어왔다.
“민간인들 검문 최대한 서두르라는 지시야! 당장 군인이나 옷에 피 묻은 놈 혹시 숨어있는지 확인해서 끌어내래. 아참, 나무상자 멘 녀석 혹시 있는지 확인하고.”
“나무상자라니?”
“내가 아나? 어쨌든 대충 2척 정도 폭의 나무상자 멘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무조건 잡아내래.”
명령을 받은 근위대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인파 사이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바닥에 쭈그려 앉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얼굴과 손의 굳은살, 소지품을 확인하고 속에 입은 속옷까지 모두 들쳐 혹시 군용 물품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런 니미럴.”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자이납은 라스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 라스는 사람들 사이로 목을 쭉 빼고 인파 중간에서 자이납을 찾고 있었다. 자이납이 기겁을 하며 그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손짓했다.
그 때, 방금 자이납이 지나 온 성문 부근에서 여자의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방금 전, 자이납과 눈이 마주쳤던 그 취사병이 결국 걸린 모양이었다.
“제발 살려줘요! 나, 난 전투병도 아니고 취사병이라고요!”
병사가 악을 썼지만 코트 속에 빤히 보이는 군복을 발견한 근위대들은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들은 몸부림을 치는 여자를 바닥에 팽개치고는 발목을 질질 끌고 목을 베는 모루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검붉은 피로 흥건히 젖은 모루가 점점 가까워지자 병사가 공포에 질려 마구 몸부림을 쳤다.
“저기, 저 밑에 높은 장교도 있다고요! 중랑장은 놔두고 왜 나 같은 쫄따구를 끌고 가요!”
“뭐?”
병사를 끌고 가던 근위대들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그리고 멀리서 듣고 있던 자이납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근위대 사관이 방금 붙잡은 병사의 멱살을 덥석 붙들었다.
“살려줄 테니까 빨리 말해! 어디야!”
“저기, 저쪽, 누런 재킷하고 바지 입은 검은 머리 키 큰 여자요!”
궁지에 몰린 병사의 손끝이 자이납을 막 향했을 때, 그 눈치 빠른 중랑장은 이미 사람들을 훌쩍 뛰어넘어 구름다리가 있던 절벽 쪽으로 번개같이 튀는 중이었다.
“쏴! 못 도망가게 해!”
순식간에 멀어지는 자이납의 빠른 발에 당황한 근위대들이 반사적으로 그를 향해 석궁을 쏘았지만 괜한 역효과만 내고 말았다.
“석궁이다!”
자이납의 질주와 근위대의 사격에 놀란 민간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헐레벌떡 일어나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조용히 질서가 지켜지던 분위기는 일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놀라 일어난 민간인들 중 한 명이 근위대의 석궁 오발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소리에 사람들의 혼란이 더 커졌다.
“저 망할 물귀신 년!”
자이납은 파랗게 질려 있는 한 일가족을 훌쩍 뛰어넘어 라스를 향해 내달렸다. 여전히 등에 상자를 멘 라스는 근위대의 사격에 놀라 뛰어다니는 인파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라스!”
자이납이 라스의 손을 덥석 붙잡고 근위대가 놓은 임시다리 쪽으로 달리려 했지만 이미 근위대 가디언들이 그쪽은 가로막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그는 무너진 구름다리가 있는 절벽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딱히 도망칠 방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사방에서 몰려드는 근위대들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도망치는 자이납의 귀 옆으로 석궁 한 발이 휙 스쳐 날아갔다.
“우악!”
그때, 라스가 중심을 잃고 앞으로 벌러덩 엎어졌다. 라스의 비명에 자이납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볼트는 라스의 살점을 직접 찌른 게 아니고 등에 멘 상자를 관통해 비스듬히 박혀 있었다. 자이납은 정신 못 차리고 휘청거리는 라스를 질질 끌고 놀라 흩어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필사적으로 달렸다.
“저쪽은 절벽이야! 못 달아나! 쓸데없이 쏴서 난장판 만들지 말고 포위해!”
근위대 장교가 고함을 질렀다. 장교의 말대로, 구름다리가 끊긴 절벽은 어차피 막다른 길이었다. 근위대들도 절벽을 향해 내달리는 자이납과 라스를 큰 호를 그리며 포위해 좁혀가기 시작했다.
“이크!”
골짜기 끝까지 다다른 자이납이 기겁을 하며 멈춰 섰다. 그의 발밑으로는 바로 조금 전, 1백 명이 넘는 목숨을 삼켜버렸던 1스타디아 깊이의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축 늘어진 끊어진 구름다리의 강재 케이블이 이 고지대의 골짜기 바람에 힘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제기랄, 이건 타지도 못하겠잖아!”
자이납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앞쪽으로 기운 미끈한 화강암 절벽은 제아무리 카렐이 와도 쉽사리 타지 못할 모양새였다.
“어떡해요, 이제 어떡해요. 카메네이 중랑장님.”
낭떠러지 밑에 흩어져 있는 끔찍한 시체더미와 유해 조각들에 겁먹은 라스가 자이납의 팔을 껴안으며 울먹였다. 거의 2백여명의 근위대가 막다른 절벽에 몰린 이 둘을 둥그렇게 에워싸고 있었다.
“어허, 누군가 했더니 저년이구나.”
근위대들 사이로 말을 몰고 뚜벅뚜벅 나타난 건 테나스 이그나토였다. 그는 페스트의 평야에서 아버지 류한을 죽이고 자신을 이 꼴로 만들었던 그 무리의 일원을 바로 구분해냈다. 그의 손끝이 복수심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손에 제대로 걸렸구나.”
“니 손이건 자시건 넌 또 뭐 하는 흉물이냐? ……엉?”
적 무장의 괴상한 외모에 잠시 놀랐던 자이납도 곧 기억을 더듬어냈다. 사에나의 석궁에 양 눈을 맞고 죽은 줄로 알았던 테나스 이그나토의 목소리였다.
“맙소사, 저년도 좀비였어?”
당황한 자이납이 한 발 더 뒷걸음쳤다. 저 독한 여자에게 걸렸다가는 죽어도 곱게 죽지 못할 판이었다. 그때, 그의 눈앞에, 아니, 먼 하늘에 무언가 반짝하는 것이 보였다.
“에이, 씨발, 죽어도 내가 알아서 죽어야지!”
자이납은 다짜고짜 라스를 끌고 끊어져 늘어진 구름다리에 무작정 매달렸다.
“저년 미쳤나!”
근위대들이 일제히 구름다리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라스를 등에 업은 자이납은 부서진 구름다리의 강재와 케이블, 상판을 더듬더듬 짚어가며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저놈 제정신이야?”
근위대 가디언들까지 고함을 꽥 질렀다. 발리스타 포격에 박살이 난 다리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흔들거렸지만 자이납은 아랑곳없이 계속 내려갔다. 그의 등에 매달린 라스는 무서워서 눈도 뜨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뭐야! 쏴서 떨어뜨려!”
“쏘지 마라! 내용물이 부서지면 어쩌라고!”
누군가가 석궁을 겨누었지만 뒤늦게 달려온 테나스의 호통에 얼른 무기를 거두었다.
“그럼 어떡하라는 말씀이십니까!”
테나스나 근위대도 마땅히 답을 못 내놓고 허둥대고 있는 사이, 거의 다리 끝까지 다다른 자이납은 축 늘어진 구름다리의 강재 케이블을 붙들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어떡하시려고요, 중랑장님!”
겁에 질린 라스가 사시나무처럼 떨며 울먹였다. 둘은 기댈 곳 없이 절벽, 그것도 앞으로 아찔하게 기울어 있는 절벽에 줄 하나에 기대어 그냥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이제 더 내려갈 데도 없잖아요!”
그들에겐 디딜 곳도 없고, 케이블은 어차피 바닥까지 닿기는 턱도 없이 짧았다. 이렇게 매달려 있어 봤자 결국 언젠가는 떨어질 판이었다.
“꼭 매달려 있어!”
줄이 바람에 흔들리자 자이납이 목을 안은 라스에게 소리쳤다. 그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발, 제발, 우리 두고 그냥 가지 말아요.”
자이납이 눈을 꼭 감으며 귀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쉬이잇 하고 들릴 듯 말 듯 가늘게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자이납이 눈을 번쩍 뜨고 서쪽을 돌아보았다. 공중을 한 바퀴 크게 선회한 반짝거리는 은색 빛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요! 여기요!”
자이납이 한 손으로 체중을 받친 채 나머지 한 손을 크게 흔들었다. 은빛은 점점 가까워지며 화살촉 모양의 불릿으로 변해갔다.
낯선 비행체에 당황했기는 근위대들도 마찬가지였다. 불릿을 생전 처음 보는 대다수 근위대원들은 갑자기 절벽 밑으로 날아드는 은빛 비행체에 어리둥절해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었다. 당황한 테나스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빌어먹을! 저건 셔틀이야! 떨어뜨려!”
“예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근위대들이 급한 대로 석궁이라도 쏘려 했지만 앞으로 기운 절벽 밑으로 눈 깜짝할 새 쏙 들어가 버렸다. 테나스와 근위대들이 석궁이든 마우저든 쏘려 했지만 위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위치에 들어가 버렸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다리 건너가서 쏴! 저걸 보내면 안 된다!”
테나스의 손짓에 근위대들이 불릿을 볼 수 있는 위치로 헐레벌떡 달려가기 시작했다.
“빨리! 흔들어서 이 위로 뛰어내려!”
베흔이 불릿 위쪽의 작은 정비창을 열어 몸을 내밀고는 손을 흔들었다. 머리 위에서 사격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이납 바로 밑에 불릿을 댈 수는 없었다.
“라스! 꽉 잡아!”
자이납은 줄에 매달린 채 그네를 타듯이 앞뒤로 몇 번을 흔들흔들 방향을 잡고는 절벽 안쪽으로 몸을 힘껏 날렸다. 그리고는 두 발로 불릿의 동체 천장을 확 디뎠다.
“어, 어!”
생각 외로 미끄러운 유선형의 동체 천장에서 뒤로 중심을 잃은 자이납이 비명을 질렀다. 그대로 라스를 업은 채 미끄러져 추락하려는 순간, 불릿의 동체가 살짝 그의 뒤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뒤로 넘어질 뻔했던 자이납은 앞으로 벌렁 엎어지며 불릿의 안테나를 덥석 움켜쥘 수 있었다.
“빨리 들어와!”
보다 못해 동체 밖으로 기어 나온 베흔이 자이납의 손목을 덥석 잡아 안으로 휙 잡아당겼다. 그의 힘에 끌려간 자이납과 라스는 불릿 천장의 작은 정비창을 통해 안쪽으로 쏙 빨려들어갔다.
“출발한다.”
조종석에 앉은 코리온의 짧고 냉담한 목소리가 일행들에게 이렇게 반갑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때, 임시다리가 있는 뒤쪽에서 몇 발의 볼트가 명중하며 팅팅 소리가 났지만 그 정도로는 손상을 입히지 못했다. 하지만 뒤이어 쿵 하는 제법 큰 충격이 불릿을 때리며 동체가 크게 흔들렸다.
“빌어먹을, 저 이상한 눈탱이 년이 쏜 마우저에 맞았나봐!”
우베가 뒤쪽 스크린을 확인하며 소리를 꽥 질렀다.
“추진기 한 쪽이 죽었지만 날 수는 있을 거다.”
막 출발하려는 계기판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코리온은 아랑곳없이 출력을 높이고 가속을 밟았다. 뒤이어 엄청난 중력가속도가 안에 탄 사람들을 짓눌렀다.
“우읍!”
불릿은 쉿 소리를 내며 근위대들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평소 같은 빠른 비행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불릿은 얼마 못 가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카히나 성을 포위하고 있는 3만여 근위대와 이스마엘 가 제후군의 머리 위를 순식간에 휙 넘어 카즈빈 마을로 기수를 돌렸다.
그들은 끝까지 자이납과 라스를 버리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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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이납과 코리온 편애(?)가 여실히 드러나는 편입니다~~( ..);;
(오늘 내일 다른 일이 있어 좀 일찍 올립니다. ^^;;)
자이납과 라스가 예뻐 죽겠는 분들께선 가시기 전에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지 마시고요~~~( ̄∇ ̄)ブ~~★
여전히 활개를 치고 계신 1점 테러범(?)께는 경의를 표하고요....
♠ 전자책은 1부의 9, 10권을 1월중에 올려서 1부를 완결지을 예정입니다. 2부의 1,2권도 함께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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