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25 회: 파트 14. 우리의 생명 vs 그들의 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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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본부에 연락하지 않고 뭐 해!”
나름 큰 것을 노리고 판을 벌여 놓은 헤크마는 무언가 이상한 조짐을 읽었다. 살려달라며 지도자인 어머니에게 연락해 싹싹 빌 줄로 알았던 에르네스토는 속았다는 데 분노해 할 테면 해 보라며 아내 파란기스가 뜯어말리는 가운데 몸부림을 치고 있고, 1급 지명수배자는 혼자서 이해 못 할 말만 떠들고 있고, 코메트의 실권자라는 바에자는 본부에 연락할 생각도 않은 채 자리에 앉아 실실 쪼개며 과일만 까먹고 있었다.
얼떨결에 판돈이 되어버린 그들 모두가 헤크마의 ‘경매’에는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바에자가 다 먹은 바나나껍질을 테이블 위에 던지며 물었다.
- 이봐, 이자의 대가리엔 뭘 걸면 좋을까? 마잔다란? -
“이 집 한 채도 아까운데?”
- 내가 이자를 잡을 테니 넌 마잔다란을 내주고 네 주인과 함께 퇴각해라. 그럼 공평하지? -
오르마즈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에겐 이 인간 말종을 혼내주는 것보다, 이 계륵 같은 마잔다란을 사수하는 것보다 에르네스토와 파란기스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차피 헤크마 이자와 척을 진다면 마잔다란은 포기해야 하는 셈이었다.
무슨 ‘거래’가 오가고 있는지 여전히 모르는 헤크마는 자신의 제안에 아무런 반응도 없는 양쪽 지도자들을 보며 어느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두 상대가 훨씬 고단수라는 것까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 네 부하들을 좋은 위치에 두었군. 내 부하들을 엄호해 다오. -
그때, 헤즈비 소령이 헤크마의 귀에 대고 뭐라 말을 전했다. 일부러 억양을 세게 한 타르서스 방언이라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조심해야겠다.’라는 내용만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혼란스러워진 헤크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술잔을 따르는 척 하고 있던 오르마즈는 아버지의 귀에서 막 입술을 뗀 헤즈비 소령의 이마를 술 항아리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꽝 소리가 나며 깨진 항아리가 테이블 주변으로 쫙 흩어졌다.
“꼼짝 마!”
벌떡 일어선 헤크마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번개처럼 빠른 동작으로 빼든 바에자의 석궁 끝이 그의 이마 중간을 겨누고 있었다.
“쏘지 마! 쏘지 마!”
헤크마의 경비대장이 고함을 질렀다. 오르마즈의 헤즈비 기습에 놀라 잠시 정신이 팔렸던 수십의 경비병들은 정작 주군인 헤크마의 이마에 코메트 장군의 볼트가 겨누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벌벌 떨고 있는 헤크마의 옆에서는 바에자를 이곳까지 데려온 그의 둘째아들이 이미 목에 첫 발을 맞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헤크마는 물론이고 오르마즈도 난생 처음 본, 어마어마한 속사(速射)였다.
순식간에 두 명을 쓰러뜨리고 정자 안쪽을 장악한 오르마즈가 바깥의 와헷과 이트닌에게 고함을 질렀다.
“다리를 막고 경호원들을 들여보내!”
와헷과 이트닌이 양쪽 다리를 재빨리 막아서자 바에자와 에르네스토를 따라온 경호원들이 재빨리 정자로 뛰어들어와 각자의 주인을 지키고 섰다. 오르마즈는 이마가 깨진 채 뒤로 벌렁 자빠진 헤즈비의 목을 비틀어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안하지만 배신자를 믿느니 차라리 적을 믿으라고 했거든?”
헤크마의 장남 헤즈비를 인질로 확보한 오르마즈는 아내 파란기스를 안고 있는 에르네스토에게 다리를 건너 나가라며 눈짓했다.
“북쪽으로요! 빨리!”
그 둘에게 먼저 다리를 건너게 한 오르마즈는 버둥대는 헤즈비의 턱을 팔꿈치에 끼고 급소를 가린 채 그 뒤를 재빨리 따라갔다. 바에자도 석궁 앞에서 바싹 얼어붙은 헤크마의 긴 턱수염을 사정없이 움켜쥐고 부하들의 보호를 받으며 뒤이어 다리를 건넜다.
“제발! 제발요!”
민병대와 코메트 사이에 싸움을 붙이려다가 도리어 자신이 인질이 되어버린 헤크마는 바에자의 우악스런 손에 턱수염이 붙들린 채 추접스런 비명을 지르며 질질 끌려갔다. 이 고급스런 저택 내부엔 수십의 경비병들이 있지만 누구도 감히 주인과 주인의 맏아들을 인질로 데리고 있는 이들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북문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 오르마즈와 바에자 일행 주변을 동그랗게 에워싼 채 계속 따라왔다.
“빨리 문 열어! 문 열지 못해!”
정원을 가로질러 나간 오르마즈는 여전히 잠겨 있는 북쪽 문을 보고는 주변을 에워싼 헤크마의 경비병들에게 고함을 버럭 질렀지만 경비병들은 눈치만 볼 뿐 쉽사리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사실상 성벽이나 마찬가지인 벽돌담은 이대로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볼트 한 발이 에르네스토와 파란기스의 코앞을 덮쳤다.
“부장님!”
놀란 오르마즈가 그들에게 다가가려다가 헤즈비의 거친 저항에 휘청거렸다. 뒤이어 또다시 날아든 볼트가 뒤꿈치를 스치면서 오르마즈가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바에자가 담 위에 숨어 오르마즈에게 볼트를 쏘고 있는 장교 한 명을 겨누고 서슴없이 한 발을 날렸다.
“저 새끼가!”
그의 일격에 입술을 명중당한 장교는 이가 부서지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입을 움켜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면에!”
오르마즈는 그 틈에 바에자를 쏘려던 다른 경비병의 이마를 향해 헤즈비를 겨누고 있던 단검을 힘껏 던졌다. 머리에 단검이 꽂힌 경비병이 석궁을 떨어뜨리며 뒤로 벌렁 넘어졌지만 그 순간, 기회를 잡은 헤즈비가 오르마즈의 턱을 향해 팔꿈치를 힘껏 휘둘렀다.
“우읍!”
턱이 휙 돌아간 오르마즈는 헤즈비를 붙들고 있던 왼팔을 놓치며 뒤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헤즈비는 넘어진 오르마즈를 걷어차고는 헐레벌떡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오르마즈 덕분에 목숨을 건진 바에자가 도망치는 헤즈비의 뒤에 대고 한 발을 쏘았다. 그가 쏜 볼트가 헤즈비의 등에 명중하면서 헤즈비는 비명과 함께 화단 너머로 벌렁 엎어져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자가 죽었는지 아닌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뒤이어 들린 고함이 알아서 답을 해 주었다.
“내가 책임진다! 일제 사격해!”
헤즈비의 명령이 주인을 인질로 붙들고 있는 자들을 쏠지 말지 머뭇거리던 경비병들의 고민을 덜어주었다. 헤즈비의 명령을 받은 경비병들 중 십여 명 가까이가 오르마즈와 바에자 일행을 향해 일제히 볼트를 쏘기 시작했다.
“썅! 저 미친 놈들!”
에르네스토의 경호원 중 한 명이 옆구리에 볼트를 맞고 주저앉았고, 엉덩이에 볼트가 스친 와헷도 비명을 지르며 대추야자 나무 밑으로 몸을 날렸다. 이 화려한 저택의 작고 고급스런 정원은 순식간에 볼트가 사방으로 난무하는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담의 흉벽 너머에서, 지붕 위에서, 화분 너머에서 마구 볼트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 새끼들 어디다가 쏘고 지랄이야! 당장 멈추지 못해!”
아들의 ‘배신’에 놀란 헤크마가 몸부림을 치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장남 헤즈비에게 더 충성하는 몇몇 경비병들은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운명을 건 듯했다.
“누가 문 좀 열어!”
석궁 사이에서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간 오르마즈가 화단 밑에 바싹 웅크린 에르네스토와 파란기스를 몸으로 감싸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철판과 두꺼운 생나무를 몇 겹이나 대서 만든 육중한 출구 앞에는 이미 큰 방패를 든 덩치 큰 경비병 둘이 자리를 잡고 올 테면 와 보라는 식으로 길을 막고 있었다.
“다들 무사한 거야?”
문을 향해 공격해야 할 에르네스토의 경호원 셋 중 둘이 이미 쓰러졌고, 한 명은 부상을 입어 야자수 아래를 엉금엉금 낮은 포복으로 겨우 기어가는 중이었다. 바에자의 경호원도 넷 중 한 명이 쓰러졌고, 두 명은 분수 뒤에 숨어 고개도 못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상사 계급의 한 명은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태세로 문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크바르나?”
그자의 눈빛을 본 오르마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에자를 따라온 경호원 중 한 명에게선 보통의 시민이 아닌, 크바르나, 혹은 X에게서만 전해지는 특유의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마구스 혹은 후계자들만을 지키는 ‘크바르나’가 왜 코메트 장군인 바에자의 곁에 정규군으로 위장한 채 경호원으로 붙어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트닌! 와헷! 문 앞의 두 놈들 잡아 봐!”
오르마즈의 고함에 화단 밑에 웅크리고 있던 와헷이 고개를 슬쩍 들었다. 하지만 그가 채 석궁을 들어 그쪽을 겨누기도 전에, 무언가 쿵 하며 무너지는 굉음이 들려왔다.
“엉?”
오르마즈와 바에자가 동시에 대문을 돌아보았다. 단단히 잠겨 있던 대문이 안쪽으로 움푹하니 배가 불러 있었다. 그때, 또 한 번의 굉음이 울리더니 육중한 문 한쪽이 안쪽으로 향해 우지끈 부서져 내렸다. 의기양양하게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경비병들은 무너지는 나무문에 깔려 나뒹굴었지만 그들의 끔찍한 운명은 이제 시작했다.
“어쩐지 재수가 없다 했어!”
베흔이 모는 육중한 불도저가 부서진 문짝과 그 밑에 깔린 경비병들을 인정사정없이 바퀴 밑에 짓밟으며 정원으로 밀고 들어왔다. 불도저의 운전석과 뒤쪽에는 조금 전까지 경비탑 공사를 하고 있던 인부 2명의 시체가 장식품처럼 걸려 있었다.
“와헷! 옆을 보고 이트닌은 뒤를 맡아!”
오르마즈가 잔뜩 웅크린 에르네스토와 파란기스를 두 팔에 감싸고 헐레벌떡 불도저로 달려갔다. 헤크마를 인질로 붙잡은 바에자와 부상을 입은 그의 경호원들도 허겁지겁 불도저의 엔진 옆에 몸을 숨겼다. 불도저가 정원에 들자마자 유리창이 2발, 3발의 볼트에 맞아 순식간에 박살이 나자 놀란 베흔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뭐야, 여긴 또 왜 이래?”
일행이 다 탄 것을 확인한 베흔이 불도저를 후진시키려 했지만 난생처음 잡아 본 중장비에서 여차저차 전진까지는 시켰던 그도 후진 기능까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씨, 이거 어떻게 뒤로 돌려!”
그의 서툰 운전솜씨에 기계가 제자리만 맴돌면서 잘 가꾸어진 정원의 화단과 화분들, 작은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부서지고 우그려졌다.
“내가 할 테니 이분들 지켜!”
죄수부대 시절 공사장을 전전하며 웬만한 중장비를 다 다루어 보았던 오르마즈가 서툰 베흔을 옆으로 밀어내고는 대신 조종간을 잡았다. 불도저는 이미 한 번 짓밟혀 보기에도 처참한 꼴이 되어버린 경비병 둘의 시체를 또 한 번 깔아뭉개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바에자의 손에 꼴사납게 수염이 붙들린 채 부하들의 일제사격까지 받은 헤크마는 이미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베흔 넌 말 끌고 따라와! 시가지를 돌파한다!”
오르마즈가 모는 불도저는 문 바로 바깥 공사장까지 짓밟으며 헤크마의 저택을 바로소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언덕 밑으로 방향을 돌려서는 민병대 수뇌부와 코메트 1사단장이라는 기묘한 일행을 태운 채 폐허가 된 시가지로 속도를 붙였다. 헤크마를 붙든 바에자가 그를 엔진 위에 끌어올려 보란 듯 세우자 진입 도로를 지키던 경비병들이 놀라 얼른 무기를 거두고 도망을 쳐 버렸다.
저택 주변을 빠져나온 불도저는 수로에 걸린 다리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최고속도로 전진해 나아갔다. 계속된 무리한 질주에 엔진이 요란한 소음을 냈지만 그런 것 따위를 따질 여유는 없었다. 곧 저들의 경비병들이 목숨을 걸고 따라올 테고, 이편도, 저편도 아닌 골목골목의 무장 세력들이 소동에 놀라 너도나도 무기를 갖고 몰려나와 앞뒤 안 가리고 공격을 퍼부을 터였다. 오르마즈가 운전석 바로 뒤에서 웅크리고 있는 에르네스토 부부를 돌아보았다.
“다리 두 개만 건너가면 얼마 전 포격으로 다 비워버린 곳이니 괜찮을 겁니다!”
“자네가 잘 하겠지.”
에르네스토가 아내를 꼭 안으며 억지로 웃어보였다. 파란기스도 남편의 품 안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떨고 있지만 이번에도 상황에 비하면 놀랄 만큼 침착했다.
“잠깐! 잠깐만!”
첫 번째 다리에 접어들자 바에자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오르마즈가 급히 불도저를 세우자 그는 경호원들에게 다리에 걸린 4구의 불탄 시체를 가리켰다. 경호원들 중 중상을 입은 한 명을 뺀 4명이 햇빛 아래 매달려 미라가 되어가던 군납업체 직원들 4명의 시체 있는 곳으로 기어올랐다. 시간 없다고 불평을 할까 말까 고심하던 오르마즈는 대신 뒤에 탄 에르네스토의 경호원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시간 없으니까 너희도 도와!”
오르마즈의 지시에 그들도 마지못해 다리에 기어올라 밑에서 시체를 받아주었다. 일행은 눈 깜짝할 새 4구의 시체를 싣고 다시 귀청을 찢는 엔진음을 내며 시가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못 지나가!”
몇 시간 전까지 아이들이 뛰놀던 골목에 어느새 모래무더기로 방벽을 쌓아놓은 무장 세력들이 불도저를 향해 화염병을 휙 던졌다. 하지만 날아오던 두 개의 화염병은 바에자의 2연발 속사에 박살이 나며 도리어 던진 자들의 머리 위로 불벼락을 쏟아놓았다.
“어딜!”
오르마즈가 불도저의 버킷으로 그들이 쌓아놓은 모래주머니를 무너뜨리고는 그대로 짓밟고 넘어가버렸다. 무너진 4층 건물의 폐허로 딱 막혀 있는 골목을 내다본 에르네스토가 큰 소리로 물었다.
“불도저가 더 갈 길이 없지 않나?”
“없으면 만들어야죠!”
오르마즈는 버킷을 살짝 들어올리며 사람이 안 살 듯한 반쯤 무너져가던 흙벽돌집 몇 채를 그대로 무너뜨리며 그대로 쓸어내고 나아갔다. 흙벽돌집이 무너지면서 사방이 온통 흙먼지로 뒤덮여 앞이 분간조차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엔진 위에 강제로 앉혀진 헤크마의 검은색 수염이 어느새 뽀얗게 변해 있었다. 에르네스토는 무너지는 민간인들의 집이 안타까운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지만 오르마즈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계속 가속레버를 올려 두 번째 다리 앞까지 나아갔다.
“어허, 저긴 만만치 않겠는데.”
바에자가 불도저 천장 위로 고개를 내밀며 중얼거렸다. 멀찍이 보이는 두 번째 다리에는 이미 열 명이 훨씬 넘는 무장 폭도들이 방어태세를 잡고 있었다. 이 다리만 건너가면 뒤쪽은 교전 중인 민병대와 코메트가 ‘중립지역’으로 선언한 옛 공원 터가 있었다.
“베흔!”
불도저를 세운 오르마즈가 뒤에서 말을 타고 따라오고 베흔과 와헷, 이트닌에게 전진하라며 손짓했다. 바에자도 그에 질세라 아직 성한 3명의 경호원들에게 전진을 명했다. 3명의 정예병들이 무기를 빼들고 번개처럼 다리로 접근하는 동안 오르마즈와 바에자가 불도저 양옆으로 몸을 내밀고 다리 위의 무리들을 향해 석궁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이 둘의 정확한 사격에 폭도들이 감히 머리도 못 내밀고 있는 동안, 다리 위로 제일 먼저 뛰어든 건 바에자의 ‘크바르나 같은’ 경호원이었다. 그 경호원은 폭도들의 리더 격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에게 달려들어 대뜸 목을 비틀고 다리 밑에 인형처럼 동댕이쳐버렸다.
뒤이어 베흔이 적진을 돌파해 중간을 갈라놓자 처음으로 민병대 전사로서 ‘싸움다운 싸움’에, 그것도 오르마즈의 눈앞에서 공을 세울 기회를 얻은 와헷은 도끼를 휘두르려는 폭도의 가슴에 폴암의 날을 푹 꽂아 넣으며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쓸 만한 부하들을 뒀군.”
바에자가 엄호사격을 접으며 한 차에 탄 오르마즈를 힐끔 쳐다보았다. 오르마즈는 대답을 생략한 채 방금 그가 모험을 해 가며 엔진 위에 옮겨 실은 4구의 불탄 민간인 시체들을 돌아보았다. 사실 바에자가 이끄는 1사단은 잡병 투성이인 코메트 내에서는 나름 군계일학이었다. 그들은 민간인에게 가장 우호적이었고, 포로에 대해서도 ―물론 코메트의 기준에서―그나마 가장 너그러웠다. 그래서 민병대 내에서도 ‘기왕 포로로 잡힐 바엔 1사단에 잡히는 게 낫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오르마즈의 시선을 눈치챈 바에자가 시체를 지키고 있는 부상 경호원에게 떨어지지 않게 잘 잡으라고 눈짓했다.
“우리가 고용한 업자들이니 우리가 책임져야지.”
둘 사이에 짧은 탐색전과 대화가 오가는 동안, 다리를 공격한 6명은 임무를 끝내놓았다. 베흔이 휘파람을 불며 다리를 앞장서서 건너가자 오르마즈도 과열로 툴툴거리기 시작한 불도저를 다시 앞으로 전진시켰다.
불도저가 다리를 느릿느릿 다 건너 중립지역에 접어들었을 즈음, 마잔다란 시내를 폭주하며 가로지른 불도저 엔진은 공중으로 시커먼 연기를 풀풀 내뿜고 있었다. 오르마즈가 에르네스토와 파란기스를 데리고 불도저 왼쪽으로 내려섰고, 바에자도 헤크마를 부하들에게 맡기고 불도저의 오른쪽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짧은 협력은 이제 이것으로 끝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오르마즈와 베흔이 에르네스토와 파란기스 앞을 얼른 막아섰다. 바에자 역시 ‘크바르나 같은’ 경호원과 나란히 서서 석궁의 안전장치를 푼 채 여전히 한 손에 꽉 쥐고 있었다. 짧은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양쪽 경호원들이 부상자와 시체를 불도저 위에서 끌어내렸다.
“약속을 지키겠지?”
바에자가 먼저 물었다. 당장이라도 서로에게 달려들어 싸움을 벌여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지만 그러기엔 오르마즈는 너무 큰 거물을 모시고 있었다.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목숨을 걸고 싸움을 벌이는 건 현명치 못했다. 오르마즈 쪽에서 한 발 물러났다.
“마잔다란에 더 있을 이유도 없다.”
“현명한 선택이야.”
바에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솔직히 소령과 전장에서 또 만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언젠간 그리 될 것 같군.”
바에자는 헤크마를 데리고, 오르마즈는 에르네스토와 파란기스를 데리고 천천히 뒷걸음쳐서 서로에게서 물러났다. 배신자가 연출해 준 무대 덕분에 벌어진 양군 최고 영웅들간의 예상치 못했던 짧은 만남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현명하게도, 바에자는 그렇게 끌고 간 헤크마를 죽이지는 않았다. 그는 헤크마를 포로로 억류한 채 우두머리를 잃은 마잔다란을 맹공격해 단 하루 만에 장악해버렸다. 그리고는 헤크마에게서 거액의 몸값을 받아낸 후, [더 이상 적대행위를 않겠다.]는, ―어차피 안 지켜질 것이 빤한― 형식적인 각서만 받고 그를 다시 풀어주었다. 그가 보기에 헤크마는 적군인 민병대를 좀먹는 기생충이었고, 그가 앞장서서 ‘적의 적’을 없애 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에르네스토와 파란기스를 사지에서 구해낸 오르마즈의 [특무대 기동대]는 그날 저녁이 되기 전에 마잔다란에서 깨끗이 퇴각했다. 굳이 바에자와의 약속 때문은 아니었다. 헤크마와, 그리고 마잔다란의 이런저런 군벌과 자칭 사령관들과 등을 돌리게 된 이상, 그의 부대는 어차피 마잔다란에 계속 머물 수 없었다.
비록 오르마즈가 직접 패전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20년간 마잔다란을 장악해 온 군벌 헤크마를 몰아내고 도시를 점령했다는 명예는 무패의 명장 바에자의 몫이 되었다.
아버지가 잡혀간 동안 잠시 마잔다란을 장악했던 헤크마의 아들 헤즈비는 아버지의 석방 소식에 그대로 잠적해버렸고, 헤크마는 다시 자신의 군벌을 장악했다. 그는 풀려나기가 무섭게 뻔뻔하게도 민병대에 다시 한 편이 되자며 손을 내밀었다.
지도자 파냐드는 헤크마의 어처구니없는 배신 사건에 크게 분노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감정보다 계산이 더 앞서는 그는 아들과 온건파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적에게 바치려 했던 그 후안무치한 사내의 ‘연합 신청’을 결국 다시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온건파의 극심한 반감을 달래주기 위해 ‘마잔다란 탈출’의 주역인 오르마즈와 베흔, 이트닌과 와헷 모두에게 1계급 특진을 주었다. 동시에 이 4명을 따로 모아 특무대에서도 [엘리트 중 엘리트]에게 주어지는 암살팀의 이름을 주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 일은 민병대의 젊은 영웅으로 막 오르려는 오르마즈를 사람들의 눈 밖으로 사라지게 하는 결과가 되었다. 이후 민병대와 특무대의 전설이 된, 하지만 5년이라는 짧은 기간밖에 존재하지 못했던 [특무대 암살 1팀]은 그렇게 탄생했다.
한편 마잔다란 점령의 공훈을 인정받아 코메트와 교단에서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1사단장 ‘진주빛 마녀’ 바에자 장군 역시 오르마즈와 마찬가지로 얼마 후, 사람들 사이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거의 군단 규모였던 전설적인 1사단은 이름이 바뀐 보통 규모의 사단 4개로 나뉘어졌고, [코메트 1사단]이라는 이름은 이제 역사로만 남게 되었다.
그의 실종을 두고 누군가는 바에자가 민병대에 암살당했다고도 했고, 그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한 윗사람들이 제거했다는 둥 별의별 소문이 다 떠돌았다. 하지만 교단도, 코메트도 그에 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6년 후, 그가 에시마의 새 마구스가 되어 나타날 때까지는 심지어 교단 내부에서도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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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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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바에자와 오르마즈의 짧은 만남(?)이었습니다. ㅎㅎㅎ
다음회엔 다시 카렐이 다시 컴백합니다.~
1회에 보니 분량이 너무 많아 부담된다는 뉘앙스의 코멘트만 줄줄이 달린 걸 보니 너무 길어 외면받는 글이 되기 전에 하루빨리 연재 완결을 내긴 내야 할 것 같군요. 에궁궁~
가시기 전에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지 마시고요~~~( ̄∇ ̄)ブ~~★
♠ 전자책은 1부의 9, 10권을 1월중에 올려서 1부를 완결지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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