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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1040화 (1,035/1,132)

< -- 1040 회: 파트 15. 고향으로 가는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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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은 천천히 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직 모든 것이 멍멍하지만 의식만은 분명했다. 그는 18시간 동안 기억을 업데이트했고,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에시마 궁의 실험실 안에는 자신이 50여일 전까지 머물렀던 관 모양의 캡슐 5개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9번]부터 [13번]까지를 담고 있었다. 아직 근신경 조절력이 덜 발달된 [9번]은 전극을 꽂고 근육을 단련하는 중이었다. 그는 흰 천장을 올려보며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생각보다 빨리 나왔나.’

그가 합성된 건 19년 전이었다. 제위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8여 년 전 만들어진 1번에서 5번은 바에자의 외모는 닮았지만 사소한 습관 입력이 제대로 되지 않아 폐기되었고, 22년 전 만들어진 6, 7번은 성공적으로 만든 최초의 케이스였다. 그 뒷 번호인 [8번] 자신은 원래 3년쯤 더 성격 교정과정을 거칠 예정이었지만 대역이 하나도 남지 않은 현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찍 나갈 수밖에 없었다. 복제 둘을 항상 데리고 다녔던 바에자도 그들 둘이 한 달 간격으로 죽어버리는 상황은 미처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었다.

비록 직접 말로 듣지는 못했지만, 바에자를 대신해 카히나 성의 중앙바위에 올랐던 [7번]이 피다이에게 끔찍하게 목이 ‘썰려’ 죽었다는 건 연구원들의 귀엣말을 훔쳐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호드르 산의 발전소에서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파편’을 모아야 했던 [6번] 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했다.

둘 다 바에자가 실험삼아 내보낸 첫 번째 실전에서 그리 되었기에 바에자의 실망은 더 컸다. 연구원들은 ‘두 번 목숨을 건지신 겁니다.’라고 달래려 했다지만 자존심 센 바에자는 ‘내가 나갔다면 안 당했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었다.

“멍청하게.”

[8번]은 무능한 전임자들을 비웃었다. 그도 진짜 바에자라면 그런 한심한 꼴로 죽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에 과도한 자신감을 지닌 바에자가 유성생식을 통한 후계자를 낳는 대신 이런 기상천외한 방법을 통해 만일을 준비하는 것도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그는 바에자가 참 좋은 방법을 생각했다고 여겼다.

‘정말 제대로 카피됐군.’

바에자의 능력은 물론이고 생각과 자신감, 심지어 후계가 끊기는 공포까지도 그대로 공감하는 자신을 보며 [8번]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웃음을 멈춘 그는 왼쪽 손등을 힐끔 보았다. 원래대로라면 마구스 팔찌가 있어야 할 그 자리는 자신과 바에자의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바에자의 이곳 손등엔 그의 ‘군단장으로서의 마지막 전투’였던 타르서스의 마잔다란 전투에서 오르마즈와 함께 군벌 헤크마를 납치하다가 얻은 긴 흉터가 남아있었다. 바에자는 분신들에게 자신의 흉까지 모두 똑같이 따르도록 했지만 현명하게도 그 흉터 하나만은 남겨두었다. 그것만 아니면 둘을 뺀 세상 그 누구도 겉모습으로 차이를 구분해내지 못했다.

‘아참, 또 있지.’

[8번]은 깜박 놓쳤던 것을 생각해냈다. 마구스가 된 딸 바에자의 극진한 효도와 보살핌을 받고 있는 일리안의 신전장―정확히는 대리모―만은 이런 흉터 따위를 보지 않고도 신기하게 보자마자 자신의 딸을 구분해내어 [8번]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연구원이 들어와 그의 몸을 조이는 벨트를 풀고 전극과 파이프를 빼 주었다.

“이식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빨리 준비하십시오.”

[8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손발을 움직여 보았다. 18시간이나 이 끔찍한 곳에 누워있었다 보니 곳곳이 뻐근했지만 딱히 문제는 없었다. 그는 충분히 이 몸에 적응했고, 몸도 마음도 완벽한 바에자의 분신이었다.

“언제?”

“3시간 후에 출발하실 모양입니다.”

생각보다 빠른 계획에 [8번]이 낯을 찡그리며 마지못해 일어나 바닥을 디뎠다. 그는 바에자가 즐겨 입는 계급장 없는 군복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는 연구원이 내민 문둥이 마스크를 일부러 헐렁하게 얼굴 위에 걸쳤다.

이 마스크를 볼 때마다 화가 치밀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는 무심결에 목 뒤를 더듬었다. 직접 만져지지는 않지만 헤네티들이 쓰는 발화장치가 이 안에 있다고 들었다. 바에자는 자신을 똑같이 닮은 이 분신이 제멋대로 나다닐 수 있도록 용납할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뻐근하니 산책이라도 하고 와야겠어. 현신께선 어디 계시냐?”

“잠시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아직 몸이 완전치는 않으셔서 푹 쉬고 나가시려는 모양입니다.”

“하긴, 그러실 때군.”

시계를 본 [8번]은 혼자 병실에서 터벅거리며 나섰다. 그는 곧 투입될 작전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멍하니 복도를 걸었다. 그는 오늘 작전에서 처음 실전감각을 익힐 참이었다.

사실 바에자는 강제 입력된 기억과 감각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자신을 따라다니며 감각을 익혔던 6번과 7번이 죽어서 바에자도 아마 맘이 많이 편치 않을 듯했다. 이번 작전도 그저 ‘감을 익히러’ 나가는 것이지 딱히 화끈한 싸움 같은 것을 하게 되지는 않을 듯했다.

잠시 후, 그는 각 궁의 블록이 연결되는 작은 브리지에 서 있었다. 전창을 넘어 들어오는 타르서스 사막의 햇빛과 함께 누렇고 황량한 사막 풍경이 옆에 드러났다. 멀리 지평선 가까이에 예나 지금이나 저개발지역을 못 벗어나고 있는 마잔다란 시내의 풍경이 희미하게 보였고, 훨씬 가까이에는 자신의, 아니 바에자의 에시마 교단 본부 블록의 육중한 엔진이 보였다. 에시마 교단의 블록도 1천 명을 넘게 태우는 큰 규모이지만 다하카르 교단의 크테시폰 궁 메인 블록 옆에 붙어있으려니 엄마 등에 업힌 아기 같았다.

1스타디아쯤 떨어진 선수(船首) 쪽에는 양쪽으로 나란히 붙은 샤마시와 스루바라 교단 블록도 보였다. 곧 있을 하임달의 총 공세를 위해 6개 하마피타 교단 모두의 블록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황제가 이들 모두 자신의 코밑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마 뒷목을 잡고 쓰러지고 싶어질 듯했다.

주변을 슬쩍 두리번거린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문둥이 마스크를 슬그머니 벗어버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지만 대담해진 그는 어차피 아는 척할 사람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햇빛 아래 얼굴을 훤히 드러내 보았다. 이런 때가 아니면 자신의 이 아름다운 맨얼굴에 햇빛을 쐴 날이 없을 듯했다.

바에자의 기억과 습관까지 모두 이어받은 만큼, 그가 전투 투입 직전 몇 시간씩 꼭 잠을 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웬일이십니까, 현신이시여.”

마스크를 벗은 채 딴생각을 하던 [8번]은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에 지레 화들짝 놀랐다. 그의 대담함, 아니 무모함은 여기서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의 코앞엔 웬 키 큰 근육질의 미남자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록 얼굴 한쪽과 오른팔에 화상 붕대를 감고 몸 곳곳이 자잘한 상처투성이였지만 잘생기고 서글서글한 인상과 환한 웃음은 그대로였다. [8번]의 가슴이 쿵쾅거리고 뛰기 시작했다.

“바람 좀 쐬러. 루토 네 몸은 좀 괜찮아졌느냐?”

[8번]이 애써 둘러댔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걸어왔다고 했던 길이 지난 카히나 성에서 부상을 입고 후송된 루토의 병실로 향하는 복도였다. 지난 전투에서의 부상이 큰 루토는 한동안 작전에서는 빠질 예정이었다.

루토는 붉어진 얼굴로 둘러대는 [8번]의 변명에 짐짓 속아주는 척 재차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그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다른 건 속이셔도 심장이 그렇게까지 뛰는 건 X인 제 앞에서 못 속이십니다.”

- 대충 좀 넘어가 주지. -

[8번]은 바에자에게서 받은 기술을 처음 써 보았다. 그의 넉살에 루토가 다시 능글하게 속삭였다.

“겉은 이래도 거긴 멀쩡합니다. 제 병실은 비어있고요.”

[8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루토가 그의 손을 살짝 잡아 자신의 왼쪽 가슴 안에 살며시 집어넣었다. 불룩하고 단단한 근육과 터질 듯 뛰고 있는 심장이 그 안에서 느껴졌다.

루토가 그의 귓가와 목덜미에서 코를 대고 그의 체취를 맡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오늘 다시 출정하신다 들었습니다. 현신의 은총을 너무 오래 못 느꼈습니다. 제발 떠나시기 전에 한 번만 품을 허락해 주십시오.”

“하지만…….”

루토의 굵은 팔이 [8번]을 품 안으로 꼭 잡아끌었다. [8번]은 루토의 넓은 어깨에 턱을 걸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상황에 넘어가선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몸은, 그리고 본능은 말을 듣지 않았다. 바에자가 그렇듯, 그도 이 남자의 품이 너무나 좋았다.

머뭇거리던 [8번]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 너무 오래 안 걸렸으면 좋겠다. -

나중에야 어찌 되건,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눈의 부상으로 한동안 직무를 쉰 후, 시력이 그럭저럭 회복되어 황궁으로 첫 출근한 페로는 지난번 카렐이 말했던 동부에서의 살인사건 자료가 도착했다는 말에 황제 알현실이 있는 133층으로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곳에는 제네르의 남편 네자드 경이 동부에서 가져온 파일과 큼직한 상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건에 관해 슈트란 가에 자료를 요청하고 고작 사흘이 지난 후였다.

하임달의 결전이 끝나고 2년 후, 슈트란 종가 앞에서 있었다는 그 사건은 누가 봐도 미심쩍었다. 사실 페로는 속으로는 당시 오르마즈에게 지원군을 보내지 않아 이후 비난을 한 몸에 받던 슈트란 가에서 마찬가지로 사방에서 욕을 먹던 네포프를 무슨 이유엔가 죽이고 사건을 은폐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너무도 순순히 자료를 보내오자 그로서는 도리어 머쓱해졌다.

아버지인 최고제후 다히르 경의 심부름으로 이곳까지 달려온 네자드 경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저희도 그 사건은 처음 봤습니다. 치안군에서 그런 사건을 넘긴 일이 있는 줄도 몰랐고요. 가문 보안청 서류 수발 목록에도 없었거든요.”

네자드는 자신이 가져온 파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보안청 서고를 다 뒤졌더니 신기하게 사건자료는 있더라고요. 치안군에서 넘겨받은 사건 파일하고 당시에 죽은 남자가 소지하고 있던 물품도 그대로 남아있었고요. 아마 이첩되는 과정에서 서류 착오로 누락되었던 모양입니다. 원래 그런 일이 많지 않습니까.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애꿎은 슈트란 가를 의심했던 페로가 무안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뭔가 찜찜하긴 해도 기관에서 기관으로 서류를 넘기다가 착오가 생기는 건 흔한 일이니 무조건 몰아붙이기도 뭣했다.

회의를 서둘러 끝낸 황제가 주치의 니사, 재무대신 밀리타와 함께 조금 늦게 도착하자 네자드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며 허리를 굽혔다. 카렐 못지않게 니사와 밀리타 역시 ‘사제의 키를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특히나 밀리타도 키만 찾으면 바로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고했네, 이건가?”

살짝 흥분한 카렐은 네자드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파일부터 펼쳐보았다. 네자드가 가져온 파일에는 지난번 알리야 부인이 준 치안군 자료의 원본이 고스란히 들어있었고 심지어 당시에는 검색이 불가능했던 피살자의 유전자 샘플도 들어있고, 살인범이 당시 슈트란 가 근위병으로 이후 영내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는 구체적인 기록까지 들어있었다. 네자드가 자료들에 관해 얼른 해명했다.

“솔직히 할아버지가 개입된 사건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맘때 네포프 칼리 경은 남부와 근위대를 빼면 사람 취급을 해 주려 하지 않았으니 할아버지도 그런 자와 공개적으로 만나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종가 부근에서 정말로 상급귀족이 피살된 것이라면 의심의 눈총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텐데 정말로 그러신 건지는 좀 의문입니다.”

“이때 죽은 사람이 정말로 네포프 칼리 그 사람일까?”

페로가 상자 안에 있던 피살자의 유전자 샘플을 만지작거리며 카렐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글쎄, 카파키 가에서 미리 받아 온 네포프 칼리 그 사람의 유전자 샘플이 있으니 당장 확인해 보면 알겠지.”

카렐은 피살자의 유전자 샘플을 함께 도착한 보안국 요원에게 넘겼다.

“이전 네포프 칼리의 자료와 당장 비교해서 알려다오. 당장.”

황제의 명령을 받은 요원은 즉시 바깥으로 사라졌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카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직 확답은 어렵지만 여기 있는 서류만 보아선 네포프의 죽음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럼 이걸 볼까.”

페로는 네자드 경이 가져온 큼직한 상자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서는 너무 오래되어 피딱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비단포와 신발이 제일 먼저 나왔고, 색이 잔뜩 바랜 남극성당 교과서가 나왔다. 이것만으로도 카렐의 표정을 굳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네포프 경의 의복인지 혹시 알아보겠나?”

카렐은 뒤따라온 니사와 밀리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둘 다 서로 눈치만 볼 뿐 바로 대답을 못 했다. 페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것까지 다 기억하기는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났지. 발현자도 아니고.”

페로는 밑에 있던 가방과 지갑 같은 소품들을 꺼냈다. 페로가 제법 두툼한 지갑을 열자 정체불명의 아기 주먹만한 작은 주머니가 툭 떨어졌다. 주머니를 살짝 주물러 본 페로는 카렐의 눈치를 힐끔 보았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한 단단한 무언가가 안에서 잡혔다. 페로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내용물을 손바닥에 쏟았다.

“흐음.”

페로와 카렐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이 흘러나왔다. 안에서 나온 건 손가락 한 마디만한 납작한 쇳조각이었다. 한쪽 면에는 둥근 오팔 조각이 박혀 있고 반대편은 만들다 만 조각품처럼 울퉁불퉁한 면 그대로였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놀랍게 녹이나 빛바랜 곳 하나 없었다. 니사의 눈이 확 커지자 카렐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이건……뭔지 알아보겠나?”

“예.”

니사가 목에 메는지 짧게만 대답하고는 계속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거……같습니다.”

카렐은 재무대신 밀리타 쪽도 돌아보았다.

“자넨 본 일 있나?”

“아뇨. 전 실물을 본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제가 본 스케치와 똑같습니다.”

사람들이 잠시 침묵에 잠겼다. 이것이 정말로 사제의 키가 맞다면 이제 카렐은 33년을 들볶아 온 끔찍한 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밀리타도 머릿속의 잔딕을 뺄 수 있을 테고, 아들 주페의 머리에 박힌 16번 잔딕을 뽑는 것도 7부 능선을 넘는 셈이었다. 카렐에겐 말 그대로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카렐은 흥분을 죽이고 숨을 가다듬었다. 심증까지는 굳어졌지만 아직은 확인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이미 확보한 10번, 12번, 14번, 15번 잔딕이 차례대로 들어있었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밀리타의 얼굴을 힐끔 쳐다본 카렐은 잔딕 하나를 꺼내들었다. 마치 마우저의 실탄처럼 생긴 잔딕에는 양옆으로 다른 잔딕의 뾰족한 부분을 꽂을 수 있는 구멍이 두 개 나 있고, 뭉툭한 끝부분에도 무언가를 꽂을 수 있도록 별 모양의 구멍이 얕게 나 있었다.

“맞을까?”

카렐은 방금 꺼낸 오팔 박힌 쇳조각을 잔딕의 움푹한 끝부분에 조심조심 밀어 넣어 보았다. 구멍 모양은 딱 맞았다. 그때, 안에서 무언가가 딸깍 하고 걸리려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란 카렐이 얼른 조각을 뽑아냈다.

“큰일 날 뻔했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카렐이 자세히 보니 쇳조각 끝에는 일단 안쪽에 박히면 빠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이빨이 달려있었다. 양쪽 마구리를 확인한 카렐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가만, 이거 한 번 박으면 빠지지 않게 되어 있는데? 쓰고 나면 어쩌라는 거지?”

카렐이 니사를 힐끔 돌아보았다.

“자네 이거 제거수술 해 봤나?”

그제야 움찔한 니사가 평소 눈치도 보지 않던 밀리타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뇨, 죽은 사람에게서는 빼내봤지만 산 사람에게선……잔딕은 타리프 신관이 고향행성에서 가져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다하카르 교단 쪽이 훨씬 앞서갔으니 그 문제는…….”

카렐이 이번엔 밀리타를 돌아보았다. 밀리타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당시 신경외과 최고 권위자였던 타바리스 델루지 박사가 죄수를 상대로 몇 번이나 시행착오를 거쳐 설치법과 제거법을 알아낸 걸로 압니다. 타바리스 신관이 구체적인 수술 기록을 남기지 않고 죽어서 저희도 앞뒤 두 개의 잔딕과 사제의 키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만 알지 그 이상은 모릅니다.”

“잔딕을 부수지 않는 한 뺄 수가 없어 보이는데? 그 사람은 쓰고 나서 어떻게 빼냈다는 거지?”

카렐은 잔딕 한쪽에 있는 3개의 아주 작은 이빨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빼는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글쎄, 그런가?”

카렐이 돋보기까지 대고 잔딕과 쇳조각 여기저기를 살폈지만 잔딕에도, 사제의 키로 추정되는 쇳조각의 마구리에도 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쓸모가 없다면 잔딕을 부수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이게 과연 맞을까?”

카렐이 페로와 밀리타, 니사를 번갈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그 호기심을 풀어 줄 보안국 요원이 헐레벌떡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모두가 눈을 크게 부릅뜨며 그 요원의 입만 바라보았다. 요원은 자신에게 쏠린 그 많은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더듬거리며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네포프 칼리 경의 유전자가……맞습니다.”

“폐하…….”

밀리타가 울음을 터뜨리며 카렐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카렐은 감정을 못 이기고 있는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한 손으로는 그 쇳조각을 만지작거렸다.

“그럼 이제 수술에 필요한 건 다 구한 건가?”

카렐이 니사를 힐끔 쳐다보았다. 옆에 있던 페로가 니사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이라도 수술 준비를 하도록 해. 그리 어려운 수술도 아닌 것 같은데 하루라도 빨리 그 흉물을 빼야 하지 않겠나!”

“허락만 해 주신다면 수술에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밀리타까지 카렐의 왼쪽 손목을 꼭 잡으며 애원했다.

“가만, 가만.”

카렐이 자신보다도 더 흥분해 있는 주변 사람들을 급히 저지했다.

“다행히 난 아직 죽을 지경으로 나빠진 건 아니야. 흥분들 하지 말고 내가 준비가 될 때 수술에 들어가는 게 낫겠다.”

카렐은 차가운 쇳조각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아직 물어봐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있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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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갑자기 빛의 속도로 놀랄만큼(???) 빠르게 진행됩니다~ ㅎㅎㅎ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지는 않겠죠?? ~~~( ̄∇ ̄)ブ~~★

아참, 그리고 교보문고의 전자책을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전자책 호환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epub와 pdf파일을 모두 제공하는 조건으로 곧 교보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할 것 같습니다.

pdf제작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이번달 혹은 늦어도 다음달중으로 지금까지 나온 전자책들을 모두 교보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출판본 종이책 주문게시판 http://www.vein.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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