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52 회: 파트 15. 고향으로 가는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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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임달 9번 행성의 분견대 본부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구조를 요청하는 로켓을 내보내고 5일이 지났고, 큰 문제가 없다면 로켓은 지금쯤 상급부대가 있는 하임달 5번 행성에 거의 도착했을 터였다.
하지만 분견대장 세하 비장과 간부들, 그리고 베흔 일행은 계속해서 주변을 조여 오는 코런덤의 수색대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이들은 이미 기지 주변에 수십 스타디아의 감지선을 설치하고 부비트랩을 묻었지만 적의 숫자는 너무 많고, 상당수가 X인데다가 무기도 월등했다. 게다가 이쪽에 X는 베흔과 자이납 둘뿐이고, 군사훈련을 받은 일 없는 유골 발굴단 20여명까지 보호해야 했다.
지형적인 이점도 제한적이었다. 산 중턱의 불쑥 솟은 바위 꼭대기의 분견대 기지는 날씨만 좋다면 산 주변 일대를 다 둘러볼 수 있는 천혜의 요새지이지만 사방을 커튼처럼 막은 모래폭풍 때문에 지금은 그저 바위 아래 약간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발굴단이 함께 있는 것이 실상 꽤 도움이 되었다. 20여 발굴단들은 절반이 의사와 그 비슷한 분야의 전문가들이고, 굴착장비나 탐사장비를 운용하는 기술자들이 절반이었다. 기지 주변에 참호를 파고, 모래주머니와 흙벽돌을 만들어 담을 쌓고, 펜스를 보강하는 일은 그들의 기술, 장비와 분견대원들의 완력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전투가 벌어진다 해도 최소한 부상자 처리만은 황실군 어느 부대보다 든든했다.
분견대원들은 한편으로는 제식 석궁을 강화형으로 고쳤고, 전문가인 프레소의 조언을 받아 방패도 마우저를 조금이라도 약화시킬 수 있도록 고쳤다.
하지만 숫자에서 열세인 이상, 일단은 안 부딪치는 게 최우선이었다. 세하는 정규군 병사들의 정찰은 최소화하고, 한편으로는 30여명의 작업팀을 교대로 투입해 무너진 철성 진입 교량을 다시 확보하려 애쓰고 있지만 언제 적과 마주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쉽지는 않았다.
이곳 지리에 익숙한 병사 한두 명과 베흔 혹은 자이납은 교대로 정찰을 나가 혹 인계선이 손상된 것은 없는지를 확인했다. 처음 왔을 때는 익숙지 않은 모래폭풍과 날씨에 적응을 못 해 X의 이름값도 못 했던 둘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이제 병사들을 이끌고 직접 정찰을 나갈 정도의 수준은 될 수 있었다.
지휘관 세하 비장은 부하들에게 지금의 어려운 처지를 솔직히 알리고 황실에서 곧 지원군을 보낼 것이라며 그들의 기운을 북돋워 주었지만 어차피 이곳의 70여 장병들은 당장은 본토에서 대규모 지원군을 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사실상 이끄는 20여 명의 베테랑들―죄수부대와 특무대 시절부터 오르마즈를 충성스럽게 따랐던―과 그들을 따라 이 일에 자진해 뛰어들어 장기근무를 지원해 온 30여명의 고참병들 모두가 뜻을 같이하기로 다짐했다.
이곳에 온지 몇 년 되지 않은 병사들 몇은 처음에 불안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황제의 특사’라고 정체를 밝힌 코나와 선임들의 단호한 태도에 그들의 분위기도 단호한 항전 쪽으로 기울었다. 황제가 이곳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곧 이곳에 오실 것이라는 말 한 마디로 그들의 사기는 바로 꼭대기로 올랐다. 군대에서 세나우스 4세, 카렐 황제의 존재감과 믿음은 제후군과는 다른 황실군과 친위군의 자존심 그 자체였다.
여느 날 아침처럼 산토스 상등병과 함께 정찰을 나갔던 자이납은 기지 주변 바닥에 일부러 뿌려 놓은 방사성 물질이 벗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놈들 발자국 맞습니다.”
산토스가 스코프의 대역을 조절하며 입가를 씰룩거렸다. 그들의 발자국은 기지가 있는 가파른 산비탈을 비스듬히 빗나가 동쪽의 다른 골짜기를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발자국을 조금 더듬어간 산토스가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이놈들 아무래도 철성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접근로 공사하고 있는 작업팀이 걸리면 큰일인데요.”
“기지가 걸렸으면 더 큰일이지.”
자이납은 얼른 기지와의 가리를 어림해 보았다. 이자들이 7스타디아(1.05㎞)만 서쪽으로 지나갔다면 기지가 있는 오름과 딱 만났을 위치였다.
산토스가 그동안 자신들이 써 온 지도를 꺼내보였다. 검은 철성―이젠 길이 막혀 자이납은 가 보지도 못했지만― 이 위치한 산은 주변으로 죽 이어진 웅장한 산맥은 접어놓고 그 한 놈만 봐도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산의 주 능선은 동서 방향으로 거의 200스타디아(30㎞)에 달했고, 검은 철성이 있는 정상의 고도는 분지 바닥을 기준으로 해도 30스타디아(4,500m)가 넘었다. 6백여년 전, 처음 이곳을 왔던 코메트 토벌대가 생존자 수색에 왜 그리 고생을 했었는지 지도만 봐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건 단순히 웅장한 산의 크기뿐만이 아니었다. 산이 수백, 아니 어쩌면 천 년 이상 모래가 섞인 맹렬한 동풍을 맞았다보니 서쪽은 전문 등반가도 혀를 내두를 가파른 암릉이 되어 있고, 반대편은 미세한 모래와 화산재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게 가득 쌓여 한 발짝만 잘못 짚어도 줄줄 흘러내릴 정도라 도리어 더 위험했다. 종종 비가 오기 시작했다는 적도와는 달리 이곳은 거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내가 본 게 맞는다면 말이지.”
자이납이 산토스의 지도를 보며 물었다.
“아주아주 옛날에 코메트 토벌대랑 타리프 카파키 신관이 검은 철성에 올라갈 때는 무슨 이상한 인조석으로 된 통로 비슷한 걸 이용했다던데 거기로 접근할 수 없는 거야?”
“아, 그 통로는…….”
산토스는 지도에 있는 검은 철성에서 기지 동쪽으로 죽 내려오고 있는 점선을 가리켰다.
“원래 이 자리에 있었다는데 그 일대는 산사면 전체가 아주 고운 모래하고 화산재에 완전히 파묻혀서 흔적도 안 남았어요. 그 통로는 지금쯤 땅 밑으로 10척 넘게 파 들어가야 나올 겁니다. 저희도 올라가려고 해 봤는데 위에서 쏟아지는 모래 때문에 두 발짝 가고 다섯 발짝 밀려나는 황당한 곳이에요. 그거 다 걷어내려면 중장비로 싹 파내야 할걸요. 우리 능력 밖이죠.”
“그렇다면 저놈들은 가능할지도 모르지.”
자이납의 말에 갑자기 표정이 굳은 산토스가 자이납을 빤히 올려보았다.
“설마, 그 자리를 찾기도 어려울걸요.”
“설마가 사람 잡아.”
자이납과 산토스는 방사성 발자국을 쫓아 폭풍 속을 조심조심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자국이 엷어지면서 둘의 표정이 점점 초조해졌다. 그렇게 십여 분을 나아간 둘은 발자국 방향이 갑자기 왼쪽으로 돌자 크게 당황했다.
“이런 염병할.”
방사성물질을 묻혀놓은 적군의 발자국은 바닥에 흩어져 있는 인조석과 자잘한 건축용 철물, 끊어진 케이블의 주변을 맴돌고는 산 쪽으로 조금 움직이다가 끝내 사라져버렸다. 며칠 전 강풍과 산사태에 무너진 다리의 잔해가 강풍을 타고 여기까지 쓸려 내려온 것이 분명했다.
“이 길대로 올라가면 우리 복구팀들 일하고 있는 곳인데요?”
창백해진 산토스가 발자국이 향하고 있는 골짜기 위쪽을 올려보았다. 골짜기 중턱쯤에는 산사태로 무너진 검은 철성 다리가 위치해 있었다.
“복구팀하고 지금 연락 돼?”
자이납의 물음에 산토스가 얼른 할룩스를 확인했지만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처럼 역시나 불통이었다.
“다리 있는 곳까지는 안 됩니다. 음영지역이라 원래 연결이 잘 안 됩니다.”
“젠장, 본대에라도 연락해! 니미럴, 또 똥개훈련이냐.”
자이납과 산토스는 우베와 병사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산의 동쪽으로 헐레벌떡 달려가기 시작했다.
“언제쯤 통과가 가능하겠나?”
까마득한 협곡 모퉁이에 프레소와 함께 선 베흔과 우베는 건너편을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그는 망원경을 눈에 대고 이 협곡 건너편을 보려 했지만 짙은 모래폭풍밖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한때 이곳에 다리가 있었던 잔해가 남아있지 않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낭떠러지의 끝으로 알고 돌아섰을 그런 곳이었다. 다리가 있는 부근은 곳은 내내 바람을 맞고 있는 서쪽 사면이라 사방이 온통 바위와 절벽, 낭떠러지뿐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이번에 산사태가 난 길은 꼭대기가 안 보이는 까마득한 수직 암벽의 측면을 따라 난 좁고 아찔한 산길이었다. 프레소가 이끄는 30여 명의 복구팀은 언제 또 산사태가 날지 모르는 그 좁은 길에서 지난 5일간 바위를 치우고 길을 내며 가까스로 무너진 다리가 있던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명 조금 넘는 병사들과 7명의 발굴단 인부들로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글쎄요.”
프레소는 낭떠러지로 다가가 케이블 다리를 받치는 철제 기둥이 있던 움푹한 구덩이를 발로 툭툭 쳐 보았다. 절벽 위에서 떨어진 낙석에 다리 전체가 멀리 산 아래로 날아가 버린 후였다.
“이 다리를 어떻게 복구하느냐가 문제죠. 협곡의 폭이 200척(60m) 가까이 되는데……자재나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넘어갈 방법도 없고.”
“건너편에 석궁이나 리프트 같은 걸 쏘던지……아니면 누가 절벽을 타고 내려가서 바닥에서 다시 반대편 절벽을 기어오르면 일단 매달려 건너갈 줄 정도는 걸 수 있지 않을까?”
“이전에도 해 봤었는데 단단한 한 덩어리의 화산암이라 리프트의 앵커가 박히지 않더군요. 절벽을 타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도마뱀붙이를 갖다놔도 이 절벽은 못 오를 겁니다.”
“다리를 처음엔 어떻게 놨는데?”
“그야 날씨 좋은 날 셔틀로 케이블을 걸었었죠.”
우베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낭떠러지 밖을 내다보며 물었다.
“그럼 여기 말고 협곡을 넘어가는 다른 길은 없어요?”
“그나마 여기가 폭이 제일 좁은 지점입니다. 나머지는 몇 배씩 넓죠.”
“그럼 건너편에 넘어가는 다른 수가 없는 거예요?”
우베의 물음에 프레소도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름 고심을 하고 있는 간부들의 한쪽에서 바위를 치우고 길을 닦고 있던 병사 한 명이 돌이 잔뜩 담긴 수레를 힘껏 밀고 길 바깥쪽 비탈에 다가갔다. 산사태를 제대로 맞은 비탈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뒤섞여 아찔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모래폭풍 때문에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지만.
그 위에 막 돌을 쏟아 부으려던 병사는 밑에서 들린 돌 무너지는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지?”
돌을 끌어안은 채 몸을 앞으로 바싹 기울였던 병사는 무언가에 가슴을 정통으로 얻어맞고는 뒤로 붕 날아가 떨어졌다.
“우읍!”
베흔과 프레소, 그리고 작업을 하던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마우저에 가슴을 맞은 그 운 없는 병사는 부서진 돌덩이를 끌어안은 채 가슴에서 피를 쏟으며 파르르 떨었다. 뒤이어 쥐색 방풍망토를 뒤집어쓴 거의 20여 명의 정체불명의 적병들이 마우저 혹은 칼을 쥐고 절벽 밑에서 튀어 올라왔다. 모두 망토와 고글로 몸을 다 가리고 있어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산사태로 바위가 쌓여 있는 산사면을 타고 몰래 밑에서 접근해 올라온 게 분명했다.
“적이다!”
베흔이 플람베르주를 확 뽑아들었다. 그 운 없는 병사를 쓰러뜨리고 나타난 건 한 손에 마우저를, 한 손에 칼을 든 사카였다. 그는 실수로 돌을 밟아 소리를 낸 부하 쪽을 돌아보며 이를 갈았다.
“저 멍청이!”
그 자의 몸놀림에서 바로 정체를 읽어낸 베흔은 미리 준비해 놓은 방패를 앞장세우고 돌진했다. 작업에 열중하던 30여명의 병사와 작업자들은 도구를 내던지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염병할, 도대체 뭐 풀리는 게 없어!”
순간 사카가 쏜 마우저가 베흔이 든 방패 전면에 명중하며 찢어지는 굉음을 냈다.
“으익!”
베흔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프레소의 조언을 받아 기존 방패 위에 강화섬유를 얼기설기 엮은 주머니를 붙인 무거운 방패는 첫발까지는 일단 막아냈다.
“이 비겁한 새끼가!”
둘의 칼과 방패가 쾅 하며 맞부딪쳤다. 문제는 주변 상황이었다. 베흔의 방패와 어깨를 맞대고 몸싸움을 하던 사카는 병사들 뒤쪽에서 주춤거리고 물러나고 있는 기술사관 차림새의 프레소를 대번 구분해냈다.
“네포프 놈이다! 저놈을 사로잡아!”
“네포프?”
베흔은 이들이 자신이 아니고 프레소를 노리자 깜짝 놀랐다. 거의 십여 명의 적병들이 프레소 하나만을 노리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헤네티로 보이는 한 명이 프레소를 겨냥해 줄에 매단 갈퀴를 휙 던졌다.
“으잇!”
싸움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기술사관인 프레소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갈퀴에 놀라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순간 상등병 두 명이 그를 몸으로 덮쳐 쓰러뜨렸다.
“우읍!”
두 병사들에 깔려 넘어진 프레소가 짧은 비명을 냈다. 그를 대신해 등을 갈퀴에 찢긴 상등병 한 명이 줄을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그때, 이들의 뒤에 있던 우베가 품에서 작은 공 하나를 끄집어내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피해요!”
우베가 던진 기화탄이 바닥을 한 번 퉁 하고 튕겨 프레소에게 달려들던 적병들의 중간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우베가 프레소를 껴안고 바닥에 엎드린 새, 영문을 모르고 있는 적병들 사이에서 붉은 불꽃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우악!”
망토와 고글에 불꽃을 뒤집어쓴 적병들이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몇몇은 망토자락에 불이 붙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몸부림을 쳤다. 갑주는 방화처리가 되어있지만 모래폭풍을 막기 위한 망토와 고글은 그렇지 못했다.
“도망쳐! 돌아가!”
베흔이 사카를 어깨로 힘껏 밀어내며 구석에 몰려 있는 복구팀원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들을 상대로 협곡을 사수하는 건 어차피 불가능했다. 분통이 터져도 일단 이곳을 내주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군인들이 뒤에서 지키고 인부들 먼저!”
부상을 입고 쓰러진 동료들을 서둘러 챙긴 복구팀원들은 적병들이 불길에 놀라 혼란에 빠진 틈을 타 헐레벌떡 길을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갑옷을 안 입은 인부들이 프레소, 우베의 지시를 따라 앞에서, 무장을 한 베흔이 군인들을 이끌고 뒤에서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이놈 어딜!”
사카가 후미를 지키며 도망치려는 베흔에게 계속 달라붙으려 했지만 그런 그의 코앞을 서슬퍼런 플람베르주 날이 휙 돌았다. 칼끝에 턱을 벤 사카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빨리! 빨리, 이 굼벵이들아!”
베흔이 중상을 입은 동료를 짊어지고 허둥지둥 돌아가는 병사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악을 썼다. 고작해야 차 한 대 가까스로 지나갈만한 가파른 바위 절벽길은 도망치는 분견대 병사들의 비명과 고함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오른쪽은 수직의 절벽이 벽을 치고 있고, 왼쪽은 산사태가 난 자갈과 돌멩이가 가득 쌓여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가파른 사면이었다.
“지독한 놈들!”
제일 후미에서 도망치던 베흔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몇 발짝 뒤로는 사카가 요행히 불길을 피한 병사들을 서둘러 추슬러 쫓아오고 있었다. 다행히 적병 십여 명은 불길에 옷이 타고 마스크와 고글이 깨져 모래폭풍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허우적대고 있었다.
“2소대! 당장 덮쳐!”
사카가 베흔 일행이 도망치고 있는 길 바로 밑의 산사면에 대고 찢어져라 고함을 질렀다. 놀라 앞쪽으로 고개를 돌린 베흔은 산사태로 크고작은 돌이 가득 쌓여 있는 가파른 산사면 밑에서 우르르 몰려올라오고 있는 거의 50명에 달하는 적병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뭐야, 뭐가 저렇게 많아!”
모래폭풍 속에서 보이는 희미한 실루엣이지만 베흔과 복구팀원들의 머리털이 바싹 곤두서기는 충분했다. 저들은 정면에서 이 좁은 길을 막으려 하는 듯했다. 이대로는 앞뒤로 영락없이 포위당할 판이었다.
“저놈들은 또 어떡하라고!”
당황한 베흔이 막 속도를 붙이려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마우저 탄이 적병들이 허우적거리며 올라오고 있는 산사면 위쪽에 위험천만하게 걸려있는 바윗덩이의 밑동을 정확하게 때렸다. 마우저 탄에 바윗덩이의 밑동이 부서지면서 가파른 사면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던 바위가 푹 주저앉아 밑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피해! 옆으로 피해!”
뒤이어 바위에 쓸린 다른 돌덩이들까지 하나 둘 연쇄반응으로 무너지면서 길을 막으려 뛰어올라오던 적병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위에서 쏟아져 내린 바위가 몰려 올라오던 사카의 2소대 머리 위를 덮치면서 올라오기는 고사하고 비명과 함께 도로 바위에 쓸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빨리요! 빨리요!”
자이납이 마우저로 바위를 굴려 적 2소대를 잠시 지체시킨 사이, 산토스 상등병이 파랗게 질린 프레소를 얼른 몸으로 감싸고 후방으로 밀어붙였다.
“빨리 내려가요! 대장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댔으니까!”
사카의 기습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30여명의 복구팀들은 베흔과 자이납의 엄호를 받으며 헐레벌떡 기지가 있는 산 아래로 향했다. 하지만 일단 뒤에 달라붙은 사카 일당은 달아나는 그들 뒤를 계속 쫓아왔다 베흔과 자이납이 후미로 물러나 쫓아오는 자들에게 마우저와 석궁을 쏘며 속도를 늦추려 했다. 하지만 갈 길이 빤한 산길에서 부상자까지 끌어안은 정규군들이 도망쳐 봤자 늦추는 건 불가능했다.
“자이납! 저길 쏴!”
베흔의 손끝이 가리킨 건 머리 위 깎아지른 절벽 중간, 산사태로 무너져내리던 돌이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곳이었다. 바로 그 밑으로 복구팀 병사들이 헐레벌떡 도망치고 있는 중이었다. 쫓아오는 적군과의 거리를 재빨리 어림한 자이납은 그들이 채 다 빠져나가기 전에 먼저 한 발을 쏘았다.
“빨리, 빨리!”
마우저에 맞은 바위 모퉁이가 부서지면서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던 육중한 돌더미가 머리 위로 우르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 밑을 지난 직후, 베흔과 자이납도 머리를 감싸고 그 밑을 바람처럼 달려 지나갔다. 그들의 뒤로 어마어마한 돌더미가 쏟아져 순식간에 길을 가로막았다.
“어딜!”
헤네티들의 선두에서 달려온 사카가 코앞으로 떨어지는 집채 만 한 바위를 번개처럼 피해서는 코앞에 떨어져 있는 키 높이의 바위를 순식간에 훌쩍 뛰어넘었다. 자잘한 돌덩이 몇 개가 그의 옆을 스쳤지만 그는 아랑곳없이 무너지는 바윗돌 무더기 사이를 번개처럼 가로질러 돌파해냈다.
“학, 학.”
작은 산사태를 가까스로 지나 온 사카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특유의 빠른 몸놀림으로 거의 묘기처럼 빠져나왔지만 뒤따라오는 부하들은 그렇지 못했다. 바윗돌이 산더미처럼 쌓여 이미 길을 가로막았고, 부하들은 그 뒤에서 무사하냐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저 한심한 놈들.”
사카가 이를 갈았다. 프레소와 30여명의 복구팀이 베흔과 자이납이 뒤를 지키는 가운데 모래폭풍 너머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지금 저들을 놓치면 이 넓은 분지 어디에서 또 놈들의 기지를 찾아야 할지 막막해질 판이었다.
“빨리 알아서 건너와.”
부하들에게 투덜거리며 지시를 내린 사카는 망토로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감추고는 몸을 최대한 낮추고 이번엔 저들의 뒤를 혼자서 조심조심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할룩스로 후방에 있을 본대에 재빨리 메시지를 전송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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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트도 이제 서너 편밖에 안 남았네요;; 과거편을 빼니 진도가 확실히 빨랐습니다.
다음 파트는 혈맥의 마지막 파트가 될 듯합니다. ^^
(물론 한 파트 치고는 상당히 긴 파트가 될 듯합니다만 거기도 과거편이 빠져서 생각보다 빨리 진행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출판본이 연재되는 프리미엄은 다음주초에 1부가 완결될 예정입니다. (관심 부탁드리고요;;;....조회수에 초연하려 하지만 연재본에 비해 너무 낮으니...쩝;;;) 참고로 1부 10권 엔딩엔 출판본에 들어가며 연재 중단되었던 제 단편 [그노시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면 미워요~~~( ̄∇ ̄)ブ~~★
이번 주말경에 2부 전자책을 8권까지 완결 예정입니다. 유페이퍼에선 바로 판매시작되겠지만 대형서점의 판매까지는 또 며칠 걸릴지 모르겠네요,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출판본 종이책 주문게시판 http://www.vein.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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