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57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
.
.
“우와아.”
망원경으로 언덕 밑을 내려다본 자이납의 입이 쩍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 기지를 에워싸고 당장이라도 총공격을 해올 듯 기세등등했던 교단의 진영이 불릿이 일으킨 한바탕 거대한 토네이도에 온통 난리가 따로 없었다.
“이런 멋진 광경이라니, 나도 나중에 셔틀레이스 구경 다녀야겠다.”
자이납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불릿은 지독한 난기류에 여기저기 흔들리며 10척(3m) 가까운 공중에서 호버링을 시작했다.
“에이, 씨, 이건 뭐 호드르 산보다 더하잖아!”
굵은 욕지거리와 함께 불릿의 문이 열리더니 황소만한 덩치가 불릿에 싣고 온 짐을 말 그대로 짐짝처럼 마구 내던지고는 제일 먼저 훌쩍 뛰어내렸다. 네피는 투덜투덜거리며 뒤늦게 주머니에서 고글과 마스크를 꺼내 서툴게 쓰느라 쩔쩔 맸다.
“아휴, 소리 좀 그만 질러요!”
네피에 뒤이어 친위군 제복 차림의 가디언 카토가 코리온의 곡예비행에 반쯤 사색이 되어 아직도 끙끙대고 있는 니사를 어깨에 짊어지고 훌쩍 뛰어내렸다. 가디언들이 계속 나타나자 분견대 장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그 뒤에 내린 힐러가 뒤따라 나오는 사에나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괜찮다며 손을 젓고는 가디언에 못지않은 날랜 몸놀림으로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가만히 있어.”
코나가 사에나에게 얼른 다가와 방풍망토와 마스크를 씌워주었다. 여느 때처럼, 반갑다는 포옹이나 인사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사에나는 열심히 옷깃을 여미어주는 코나를 묵묵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코나가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확인하며 물었다.
“어디 안 다쳤고?”
“응. 넌?”
“괜찮아. 토시하고 각반 떠 놨어. 바람 불 때 필요할 거야.”
“고마워.”
둘의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옷매무새를 정돈한 사에나는 얼른 셔틀을 향해 돌아섰다.
“학장 빼고 다 내렸나?”
검은 망토를 두른 장신의 전사가 가슴에 세네피스를 안고 나타난 순간, 분견대 장병들은 ‘누군가?’하며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꼭 여민 그의 옷깃 속에서 반짝거리는 눈을 살짝 드러낸 세네피스를 본 순간, 그들 중 몇몇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흙바닥에 훌쩍 뛰어내린 카렐은 세네피스를 내려준 후 불릿의 원격 조종장치를 켜들고는 안쪽에 대고 손을 저었다.
“빨리 내리시오, 적 수송선이 가까우니 빨리 내보내야 하오!”
조종간을 놓고 문가에 나온 코리온은 생각보다 높은 위치에 당황해 멈칫거렸다. 하지만 카렐이 두 팔을 들어 보이며 괜찮다고 손짓을 하자 결국 눈을 감고 훌쩍 몸을 던졌다.
“이크!”
카렐이 공중으로 살짝 뛰어올라 그의 허리를 덥석 받아주었다. 무심결에 카렐의 머리를 꽉 끌어안았던 코리온은 민망한 표정으로 얼른 팔을 풀었다. 하지만 카렐은 코리온을 바로 내려주지 않고 두 팔로 높게 붙든 채로 그냥 실실거리고 웃고만 있었다.
“근데 우째 뭔가 그림이 좀 뒤바뀐 것 같지 않아요?”
자이납이 막 도착한 네피의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뭐 하시는 겁니까.”
코리온의 난처한 상황을 ‘구출’해 준 건 세네피스였다. 붉으락푸르락해진 세네피스의 모습에 얼른 코리온을 내려놓은 카렐은 불릿의 자동비행을 작동시켰다. 사람을 모두 내려놓고 무인기가 된 불릿은 그대로 공중으로 솟구쳐 사라져버렸다.
“적 수송선 좀 놀려주고 나서 위성에서 좀 쉬고 있으라지.”
카렐은 불릿이 사라진 하늘을 올려보았다. 힘든 착륙에 비해 이륙은 어렵지 않았다. 뒤쫓아 온 수송선이 뒤늦게 방향을 돌려 쫓기 시작했지만 빈 몸으로 일단 이륙한 불릿은 프로그램된 대로 수송선과 일정한 거리로 유지하며 대기권 밖으로 멀어져갔다.
“저 찰거머리 수송선이 좀 멀어질 때까지 몇 분 걸릴 테니 그동안 여길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카렐은 그제야 주기장 주변에 둘러선 분견대 장병들을 돌아보았다. 이번에 도착한 ‘지원군’이 정확히 누군지 아직 알지 못하는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카렐은 지금껏 외모를 철저히 감춰왔었고, 이들 중 누구도 황제를 실제로 본 일은 없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카렐은 고글과 마스크를 벗고 검은 재가 섞여 몰아치는 거친 바람에 그대로 얼굴을 드러냈다. 고글 없이는 장님이 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고글을 벗으니 도리어 눈앞이 확 트이고 더 잘 보였다.
“여기가 카히나가 잠들어있는 곳이구나.”
“보스……?”
놀란 세하 비장이 말꼬리를 흐렸다. 카토가 그의 옆에 서며 무기를 잡아보였다.
“세나우스 4세 카렐 대제시다.”
오르마즈를 그대로 연상케 하는 마스크와 무지개빛 눈동자, 그리고 옛 보스보다 도리어 더 크고 당당한 체구에 기지의 상등병들이 하나 둘 무릎을 꿇었다. 톱날 세하 비장과 망치 마르텔로, 수도승 산토스가 카렐의 앞에 꿇어앉아 어린애처럼 눈물을 뚝뚝 흘렸다. 카렐은 세하 비장에게 작은 소리로 일렀다.
“내가 여기 온 걸 아직은 적이 모르는 게 낫다.”
“알겠습니다. 오늘만을 기다려왔습니다.”
세하 비장이 고글을 벗고 눈물을 훔쳐냈다. 카렐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오늘을 기다려?”
“그분께서 이곳에 다시 오게 되실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세하 비장의 대답에 카렐이 눈꼬리를 살짝 찡그렸다.
“짐은 그 양반의 핏줄을 이을 뿐 제국의 황제인 카렐이다. 오르마즈 경이 내게 무슨 말이라도 남겼느냐?”
“세네피스 황태후와 검은 철성을 지켜 달라 하셨습니다.”
카렐은 내심 실망했다. 그 정도는 그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고, 새로울 것도 없었다.
“방금 말한 것 말고는 또 알릴 게 없냐?”
“나머지는 프레소……아니, 네포프 칼리 경이 이미 황태후께 전해드린 것으로 압니다. 그걸로 황금탑을 열기 위해 오신 것 아니십니까?”
“네포프 칼리라니?”
카렐은 무심결에 목걸이를 덥석 잡았다. 그 안에는 그가 ‘네포프 칼리의 시체’라고 생각했던 자의 유품에서 거둔 사제의 키가 들어있었다.
“그자가……살아있었다고?”
카렐뿐만이 아니고 일행들 모두가 당황한 얼굴로 서로 마주보았다. 사에나가 평소처럼 냉담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마스터 케스난의 예상이 맞은 듯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진 네포프 칼리의 유품이 모두 조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내가 가진 키도.”
반쯤 패닉이 된 카렐에게 베흔이 다가와 속삭였다.
“네포프 칼리가 프레소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숨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적에게 사로잡혀간 상태입니다.”
카렐이 옆에 있는 세네피스를 돌아보았다.
“그나저나 그자가 어머니에게 뭘 전해드렸다는 거냐??”
네포프가 키를 줬다는 말에 가장 당황한 건 세네피스 자신이었다. 그도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저었다.
“아무 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날 들어와 뭐라고 말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카렐은 목걸이 주머니에서 ‘사제의 키’를 꺼내 세하 비장에게 내보였다.
“그자가 어머니에게 줬다는 게 혹시 이것이냐?”
“어, 이것 맞습니다. 그 마지막 날……프레소가 감방에 다녀와서는 할 일이 다 끝났으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럼 이건 어디서 나신 건지요?”
“난 아무 것도 받지 않았어!”
세네피스가 씩씩대며 강하게 부정했다. 지금껏 황제기 살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그 키를 찾아다녔는지 잘 아는 그는 이런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저건 내가 갖고 있던 게 아니고 동부에서 발견된 네포프 칼리의 시체에서 나온 거야! 너희가 데리고 있던 자가 네포프 형부가 맞기나 한 거냐?”
“예에?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포프 칼리 경은 그분의 명을 받아 저희가 계속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워낙에 옛날 일입니다. 혹여 잊어버리셨다 해도 허물이 아니니…….”
카렐이 자신을 다시 돌아보자 당혹스러워진 세네피스가 목소리를 더 높였다.
“정말 받은 일 없다니까요! 내 다른 건 몰라도 황상에 관한 걸 잊겠습니까!”
세네피스가 워낙 강경한 반응을 보이자 세하 비장이 당혹스런 얼굴로 마르텔로와 산토스를 돌아보았다. 그들로서는 저렇게 정색을 하며 안 받았다는 세네피스에게 계속 뭐라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프레소가 우릴 속인 건 아니겠지?”
“설마요, 우릴 속여 놓고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 곁에 계속 있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며칠 전, 프레소의 손에 목숨을 건졌던 산토스가 거칠게 고개를 저었지만 차마 황태후에게 잊어버린 게 아니냐며 더 몰아붙일 엄두까지는 내지 못했다.
난처해하는 그들의 심기를 읽어낸 코리온이 대신 변호를 해 주었다.
“거짓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프레소라는 자가 거짓을 말했거나, 황태후께서 잊어버리셨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카렐은 코리온의 말에 붉으락푸르락해진 세네피스를 힐끔 돌아보았다. 정말로 세네피스가 무언가를 안다면, 그것이 카렐의 목숨이 걸린 사제의 키라면 하늘이 무너져도 잊어버리거나 감췄을 리가 없었다.
“어머니께선 네포프 경을 만났을 때 심하게 앓고 계셨다고 했죠.”
카렐의 침착한 물음에 세네피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쩌면 잊어버리신 게 아니고……애당초 기억을 못 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네피스도 이 말에만은 뭐라 반박을 하지 못했다.
카렐이 사에나를 손짓해 불러들였다.
“본토와 통신이 언제부터 가능하다고 했지?”
“오늘 우리가 놈들 얼을 쏙 빼놓는 동안 비컨을 설치한다고 했으니 오늘 저녁이나 내일 중으로 가능할 겁니다.”
“혹시 모르니 어머니 감방이었던 자리를 다시 샅샅이 수색하도록 지시를 내려야겠다. 그때 이후로 폐쇄되어 아무도 손을 안 댔으니 혹시 그곳에 버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존명하겠습니다.”
사에나가 가슴에 손을 가져가며 뒤로 물러났다.
“어쨌든 지금은 이런 논쟁을 할 때가 아니고 포위망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아까 지시한 대로 이동 준비는 끝났느냐?”
카렐은 여전히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바깥을 힐끔 쳐다보았다. 불릿에 한바탕 풍비박산에 난 적 진영에서는 병사들이 뛰어다니며 사방에 흩어진 보급품과 부상자들을 모으느라 여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아직 셔틀과 화물차에 짐을 싣는 중입니다. 5분 이내로 완료하겠습니다.”
“아직도 안 했어! 빨리 끝내지 못해!”
카렐은 마치 수십 년은 지휘했던 상관마냥 다짜고짜 분견대 장병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베흔 일행들 앞에서는 이런저런 잔소리가 많았던 이들은 카렐 앞에서는 찍 소리도 못한 채 그대로 고개부터 숙였다.
“듣자하니 검은 철성으로 가는 길이 폐쇄되었다고?”
“예, 길은 2개뿐인데 서쪽의 절벽 길은 다리가 끊어졌고 동쪽의 수로, 아니 송풍로는 이젠 완전히 파묻혀서 저들의 병력 수백이 화산재를 파내는 공사 중입니다. 어차피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더 기다릴 수는 없겠다. 놈들이 안정을 찾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아직 바깥의 적병이 7, 8백 명은 됩니다.”
“워프루트 통제소가 검은 철성에 있다며? 언제까지 포위당한 채로 있으려고? 지금처럼 빠져나가기 좋은 때가 어딨냐? 장애파 장치도 다 망가뜨려 놨다.”
카렐은 거의 쓰레기장에 가깝게 변해버린 절벽 아래를 가리켰다. 지금 무엇보다 급한 건 남부보다 뒤처져 있는 삼각루트를 단 며칠, 아니 단 몇 시간이라도 빨리 개통시키는 일이었다.
“이 기지는 어떡하실 겁니까??”
“지금까지 날 기다린 걸로 역할은 다했다.”
카렐은 세하 비장이 들고 있는 지도를 마치 자기 것인 양 휙 낚아채서는 살피기 시작했다.
“너희가 말한 서쪽 길을 통해 검은 철성으로 간다. 놈들 수송선이 불릿을 쫓아갔으니 장거리 셔틀도 함께 움직인다.”
“하지만 이미 다리가 끊겼고……산 일대는 흙먼지가 짙어서 셔틀도 접근 못합니다.”
세하 비장이 걱정스레 말했지만 어차피 카렐이 그 정도도 고려 안 했을 리가 없었다.
“웬만한 건 베흔이 전해서 알고 있으니 잘난 체 마라. 긴 다리는 연결할 수 있도록 임시부교를 가져왔으니 걱정 마라. 그리고 앞이 안 보이는 문제는……나와 어머니. 리쿠 학장 셋이서 해결한다.”
카렐은 이 기지가 있는 언덕에서 산의 서쪽을 빙 돌아 정상이 있는 북쪽으로 죽 길을 그렸다.
“너희 비밀통로가 있다 했으니 나와 가디언들이 먼저 나가 적을 좀 더 헤집어놓겠다. 저 구형셔틀은 마우저 한 발만 맞아도 끝장이니 함부로 적에게 접근해선 곤란하다. 예비분 보급품 최대한 싣고 적이 혼란에 빠지는 즉시 탈출해 행성의 외진 곳에서 대기해라.”
카렐은 한쪽에 있는 셔틀 조종사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직접 지시했다. 그리고는 세하 비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런 차량은 몇 발 맞아도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적 사이를 맷집으로 돌파해 바로 서쪽 길로 올라간다. 알겠나?”
황제의 대담한, 아니 무모한 계획에 세하 비장이 기겁을 했지만 카렐의 원래 스타일임을 잘 아는 네피는 옆에서 맘에 든다며 자이납과 킬킬대고 있었다.
“그럼 당장 준비 안 하고 뭐 해! 적이 정리 끝낼 때까지 기다릴 거냐!”
분견대 장병들과 발굴단원들은 차량에 실린 물품과 장비에 빠진 것이 없는지를 바쁘게 확인했다. 정밀한 전자기 장치가 달린 차량은 걸핏하면 고장이 나는 이곳에서 이들이 쓰는 차량은 원시적인 내연기관과 유압으로 움직이는 화물차 12대와 발굴단이 쓰던 그보다 작은 차량 3대까지 총 15대였다.
그 동안 카렐은 가디언들, 선봉대를 지원한 10명의 상등병들과 안내를 맡은 마르텔로를 따라 지휘관실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줄사다리 터널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내가 너 같은 놈하고 같이 싸우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냐.”
큼직한 도끼를 멘 네피가 바로 밑에서 내려가는 베흔의 머리 위에서 일부러 마구 신발을 털어댔다. 베흔이 곱게 빗은 머리를 서둘러 털며 째려보았지만 저 겁 없는 덩치에겐 어차피 소용도 없었다.
마르텔로가 랜턴을 끄며 조근조근 말했다.
“이제부터는 아무 말씀도 하지 마셔야 합니다.”
카렐은 대답 대신 황실군 수화로 [알았다.]며 표시했다.
일행은 굴을 타고 일렬로 천천히 나아갔다. 다행히 지상에 있는 자이납에게서 [그쪽에 아무도 없습니다.]라는 연락이 전해져왔다. 저들은 아직까지 불릿이 저질러놓은 아수라장을 수습하는 데 온 정신이 쏠려있는 게 분명했다.
선두에서 나아간 마르텔로가 벙커 틈새로 난 작은 구멍에 눈을 들이댔고 뒤따라간 네피도 그의 옆에서 함께 주변의 안전을 확인했다. 구멍으로 확인한 적진은 쓰레기와 흩어진 보급품들을 주워 모으느라 정신이 없었다. 구멍은 적군이 분견대 기지를 포위하고 있는 주 포위망 바깥이고, 주력군은 기지에서 내려오는 언덕 초입에 몰려있었다. 이곳은 후방 기습을 하기에 완벽한 위치였다.
[셋에 나간다.]
네피가 뒤따라올 병사와 가디언들에게 수화로 전달했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 둘을 펴고는 마지막에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바위를 밀고 튀어나갔다.
“돌격!”
비밀구멍 안에서 특등급 가디언을 선두로 마르텔로와 10명의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까지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어리둥절해 있던 교단 병사들은 누런 잿빛 폭풍 속에서 육중한 도끼를 휘두르며 돌격해 오는 거구들에 놀라 혼비백산해 흩어졌다. 뒤따라 나온 황실군 상등병들은 가디언들에 놀라 도망치는 적병들을 향해 강화형으로 개조한 석궁을 일제히 발사하기 시작했다.
“흩어지지 말고! 본대가 나올 수 있도록 적 포위망 후미를 공격해!”
거친 고함과 함께 마지막으로 나온 한 명은 이들에게 말 그대로 저주를 선물했다. 평소 쓰던 칼을 감추고 대신 적군이 쓰는 마우저를 손에 쥔 카렐은 짙은 재 속에서 도망치는 적군 하나하나를 쏘아 거꾸러뜨리기 시작했다. 시야가 제한된 적병들은 어디에서 뭐가 날아오는지도 모른 채 뒤에서, 혹은 옆에서 위력적인 일격을 얻어맞고는 바닥에 뻗었다.
말 그대로 장님과 저격수의 싸움이었다.
“준비! 시동 걸어!”
기지가 있는 언덕 모퉁이에서 망원경으로 적진을 살피고 있던 자이납은 언덕 주변 적이 흩어지기 시작했다는 세네피스의 말에 손을 크게 저으며 수신호를 보냈다. 그의 손짓을 확인한 12대의 육중한 구식 내연기관 화물차량이 부릉거리며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가슴 높이 정도의 얄팍한 장갑 난간으로 옆쪽이 가려져 있는 차량 안에는 백여 명의 사람들이 있고 중요한 보급품도 가득 실려 있었다.
“셔틀부터 출발해!”
1번 차량에 탄 세하 비장이 손을 저었다. 그동안 이곳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던 장거리 셔틀이 예비용 보급품을 가득 싣고 먼저 이륙해 적 수송선과 장애파 장치가 고장 난 틈을 놓치지 않고 기지를 빠져나갔다.
“남쪽의 대양저 해령 사이에 숨어 있어라. 검은 철성이 착륙 가능한 상태가 되면 알릴 테니. 며칠 걸릴 거다.”
“알겠습니다.”
충성스런 셔틀 조종사는 차량에 미처 싣지 못한 나머지 보급품을 가득 싣고 남쪽으로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뒤이어 차량들도 속도를 붙여 언덕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불릿에 뒤이어 후방에서까지 기습공격을 받아 적이 혼비백산해 있는 이 타이밍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때 한쪽에서 귀에 익은 엔진소리에 자이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 그건 제 꺼…….”
긴 코트자락을 늘어뜨린 폭주족 사에나가 코나를 뒤에 태운 채 자이납의 그 ‘바이크’에 부릉거리며 시동을 거는 중이었다.
“잠깐만요, 그거 잘못 타면 넘어지는데…….”
자이납의 핑계, 혹은 공연한 걱정은 저 스피드광 앞에서는 별 소용이 없었다. 사에나는 등 뒤에 시커먼 연기와 흙먼지를 뭉게뭉게 일으키며 화물차를 무서운 속도로 추월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타 보는 게 맞기나 한 것인지 믿어지지를 않았다.
“우이, 씨, 내가 얼마나 힘들게 길을 들여 놨는데!”
자이납이 구시렁거리며 세네피스를 업고 마지막으로 나가는 화물차에 아등바등 매달렸다.
“엎드리세요!”
자이납이 세네피스를 몸으로 꽉 내리누르고는 이번에 새로 만든 강화 방패로 앞을 가리고 차량 짐칸 난간의 총안 틈새로 밖을 내다보았다.
“황상께선?”
세네피스가 엎드린 채 애타게 물었다.
“밖에서 싸우고 계십니다! 염려 마세요!”
자신의 마우저를 카렐에게 내준 자이납은 ‘코리온 몫’인 트라카의 석궁을 들고 총안 밖으로 마구 쏘아댔다. 12대의 군용차량과 3대의 발굴단 차량은 불릿이 일으킨 토네이도와 가디언들의 후방 공격으로 완전히 와해되어 있는 적 진영 중간을 그대로 가로지르며 최대속도로 거친 땅 위를 내달렸다.
바이크를 몰고 차량 행렬의 선두에 질주하는 사에나는 이번에도 또다시 폭주족의 본능을 맘껏 발산하며 놀라 도망치는 십여 명의 교단 병사들 사이를 휙 소리를 내며 갈랐다. 뒤에서 그의 허리를 꽉 껴안고 앉은 코나가 탈취한 마우저를 사방으로 쏘아대며 미친 여자처럼 깔깔거리고 웃었다.
뒤따라 내려온 차량들은 그가 갈라놓은 사이를 무서운 엔진 소음과 속도를 내며 부릉거리며 갈랐다. 몇 대의 차량에 적이 쏜 마우저가 명중하며 짐칸 난간이 떨어져나가고 군데군데 비명도 울렸지만 당장 달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
.
.
<사정이 있어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올립니다. ^^;;>
이젠 폭비족에서 폭주족에게로 바통이 넘어갔습니다.
예스24, 알라딘등 대형서점에 2부 5권~8권 업데이트 곧(-_-;;) 처리된다고 연락왔고요,
교보문고 전자책은 처리에 들어갔으니(이제야...-_-;;) 조만간 판매 개시되기를 고대해 봅니다;;;
초장인데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면 미워요~~~( ̄∇ ̄)ブ~~★
노블레스, 프리미엄도 그냥가시면 역시 밉습니다~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출판본 종이책 주문게시판 http://www.vein.pe.kr
전자책(eBook) 서비스 : 유페이퍼, 예스24, 교보문고(예정)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알라딘, 리브로, 인터파크, 올레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