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59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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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이 양반은 어디 갔어?”
베흔이 차 뒤에 몸을 숨긴 채 소리를 질렀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그의 눈에 머리 위 절벽을 휙 기어 올라가는 2개의 긴 다리가 보였다.
“저 양반이 어딜 가는 거야!”
마우저를 등에 짊어진 카렐은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 길 왼쪽의 절벽에 막 매달린 참이었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마우저를 보았을 때, 카렐은 적이 어떻게 자신의 예민한 감각을 속여 넘겼는지를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움푹 들어가 있는’ 길의 바로 위쪽, 바위절벽이 눈썹처럼 튀어나와 있는 곳에 소리 없이 매달려 올라갔다.
그가 얼마 올라가지 않아 그곳의 수직 바위에 줄을 박아 넣고 위장포로 감싼 채 줄줄이 매달려 있는 헤네티들을 발견했다. 카렐이 저들을 볼 수 없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저것들이.”
카렐은 마우저를 쳐들고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자와 그들의 몸을 매고 있는 줄을 겨누었다. 저들은 여전히 발밑에 마우저를 겨눈 채 분견대가 튀어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카렐은 철크덕 하고 회심의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탄은 나가지 않았다.
“엇!”
당황한 카렐의 눈빛과 동시에 절벽에 매달려 있던 사카의 시선이 일제히 카렐에게로 휙 움직였다. 이곳의 지독한 먼지를 먹어 급탄 불량이 난 마우저가 문제였다. 카렐은 즉시 뒤춤에서 도끼를 뽑아 그들을 매달고 있는 줄을 향해 휙 날렸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쏜 마우저 탄이 카렐이 짚고 있는 절벽의 돌덩이를 산산조각 부숴놓았다.
“이크!”
손을 놓친 카렐이 그대로 미끄러져 바닥으로 뚝 떨어졌고, 도끼에 줄이 끊어진 5명의 헤네티들도 공중에서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대장을 보호해!”
헤네티들의 고함과 함께 분견대에 쏟아지는 사격이 갑자기 맹렬해졌다. 절벽에서 굴러떨어진 헤네티들은 그새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서, 혹은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길 오른쪽의 자갈밭 내리막으로 헐레벌떡 도망쳤다.
“퇴각! 퇴각해!”
절벽 위에 숨은 헤네티들이 노출되어 추락하면서 궁지에 몰린 적병들 쪽에서 날카로운 사카의 고함이 들려왔다. 절벽에서 떨어진 헤네티들과 자갈밭에 숨었던 적병들이 가파른 자갈밭을 타고 몸을 날려 도망치고 있었다. 퇴각은 하고 있지만 그들로서는 대성공이었다. 이미 다리는 끊었고, 뒤를 쫓아오는 수백의 교단 추격대가 이미 뒤통수 바로 뒤까지 다다라 있었다.
“젠장, 다리! 다리는!”
절벽에서 떨어져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카렐이 끊긴 다리 쪽을 돌아보며 울부짖었다. 마르텔로는 그때까지 다리에 매달려 버둥대고 있던 2명의 병사들을 끌어올려 토닥여주고 있었지만 힘겹게 완성해가던 다리는 이미 회복 불능이었다.
그때, 차량 행렬의 제일 후미 쪽에서 갑자기 부릉거리는 엔진소리가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카로운 고함이 들려왔다.
“거기 바닥의 상판을 들어 주십시오! 제가 넘어가 보겠습니다!”
카렐은 바이크의 출력을 올리며 부릉거리고 있는 사에나 쪽을 휙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그가 말하는 ‘상판’이 무언지 두리번거렸다. 다리가 끊긴 낭떠러지 바로 앞에 부서진 옛 다리에서 떨어진 넓적한 상판 한 장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널브러져 있었다.
카렐은 그 순간, 사에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협곡에 걸쳐졌던 다리는 건너편 한쪽이 끊겼을 뿐 아직 이쪽 절벽에는 정상적으로 ‘매달려’ 바람에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이납이 출렁거리는 그 끝과 연결된 줄을 아직 붙들고 버티는 중이었다.
“맙소사, 나보다 미친 거 아냐?”
말로는 그러면서도 카렐의 다리는 상판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베흔! 내 옆으로 와라!”
카렐의 부름에 베흔은 영문도 모른 채 그와 함께 바닥의 상판 쪽으로 달려갔다. 후미 쪽에서 사에나가 바이크에서 굉음을 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카렐이 줄을 잡고 있는 자이납에게 고함을 질렀다.
“자이납! 그 줄 끝을 사에나 경에게 줘!”
“예?”
그때까지도 절벽에 늘어진 다리와 연결된 케이블 끝을 붙들고 버티고 있던 자이납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바이크에 탄 사에나가 무서운 속도로 절벽을 향해 달려오고 있고, 절벽 끝에선 카렐과 베흔이 바닥에 뒹굴던 상판 한쪽을 비스듬히 세워 오르막 경사로 비슷한 모양을 만드는 중이었다.
“뭐에요? 뭐 하자는 거예요!”
자이납은 영문도 모른 채 일어나서는 무서운 속도로 바이크를 몰아 달려오는 사에나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휙 내민 그의 오른손에 줄 끝을 덥석 건네주었다.
“까짓 거, 한번 가 보지!”
사에나는 바이크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자이납은 바이크에 줄을 매고 카렐이 어깨로 급조해 세운 ‘경사로’를 향해 폭음을 내며 질주하는 사에나의 뒷모습을 보며 비로소 그의 ‘미친 계획’을 알 수 있었다.
“엄마야, 저 양반 정말 미쳤나봐!”
“이익!”
바이크의 폭음이 가까워지자 카렐과 베흔이 상판을 받친 등에 힘을 꽉 주었다. 속도를 최대한도로 올린 바이크는 그 둘이 어깨와 두 팔로 받치고 있는 경사로를 박차고 협곡 위 공중으로 붕 날아올랐다.
“기분 최고네!”
마르고 가벼운 사에나를 실은 바이크는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200척의 허공에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순식간에 가로질렀다. 그리고는 반대편의 땅바닥에 꽝 소리를 내며 착지했다.
“우와우!”
분견대 장병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올렸지만 착지는 그리 매끄럽지 못했다. 바이크의 완충장치가 박살이 나며 사에나와 함께 옆으로 중심을 잃고 죽 미끄러졌다. 바닥을 한참 미끄러져 굴러간 사에나는 바닥을 더듬으며 가까스로 자리에 멈추었다.
흙투성이에 상처투성이가 된 그는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바이크를 다시 세웠다. 완충장치가 부서졌지만 못 움직일 만큼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었다.
“당기겠습니다!”
사에나는 다리의 케이블을 이미 만신창이가 된 바이크에 단단히 연결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작 바이크로는 아무리 초경량교라고 해도 200척이나 되는 긴 다리를 잡아당기긴 무리였다. 그는 몇 번이나 다리를 끌려 시도했지만 케이블과 연결된 와이어로프 다리는 긴 절벽에 U자를 그리며 매달려 더 이상 팽팽해지지 못했다.
“자이납! 줄 타고 건너가서 당겨!”
“엄마야, 왜 또 나야.”
황제의 명령에 자이납이 기겁을 했다.
“네가 가디언 중엔 제일 가벼우니까 그렇지!!! 윈치 2개 가져가!”
카렐이 자이납을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다리 위로 휙 떠밀었다. 자이납은 줄을 조이는 수동식 윈치 2개를 등에 짊어지고 강풍 속에 U자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다리에 거꾸로 매달려 배추벌레처럼 어기적어기적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긴,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네. 난 왜 이리 잘났을까.”
자이납은 다리 위에서 고개를 바싹 내밀고 그를 뚫어지게 살피고 있는 카렐의 모습에 혼자 한 번 히이 하고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반대편에서 사에나가 바이크 엔진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협곡 반대편으로 끈질기게 나아갔다.
“제가 가요!”
그때, 강풍이 다시 휘익 불어 자이납이 매달린 케이블이 크게 휘청거렸다.
“엄마아!”
무심결에 까마득한 낭떠러지 밑을 내려다보았던 자이납은 비명을 지르며 이번엔 바퀴벌레처럼 후다다닥 기어 올라갔다. 눈 깜짝할 새 건너편에 도착한 자이납은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리의 기둥에 윈치를 걸어 힘껏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U자로 축 늘어졌던 다리가 비로소 다시 조금씩 팽팽해지며 건너편에 이어졌다.
다리 모양새가 대충 비슷해지자 마르텔로를 비롯한 몇 명의 덩치 좋은 병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다리를 건너가 함께 윈치를 당겼다. 잠시 끊어졌던 다리는 사에나의 미친 짓 덕분에 다시 모양을 찾아갔다.
“적군이 보여!”
후미를 지키던 네피의 고함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건너편에서 숨이 넘어갈 듯 윈치를 당기는 자이납의 손놀림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빨라졌다.
“됐어! 차량들부터 보내! 한 대씩만!!!”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한 화물차량이 조심조심 다리에 접어들었다. 다리가 워낙 가볍다보니 계속 바람에 흔들리며 첫 번째 차를 모는 산토스의 심장을 바싹 쪼그라들게 했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계속 가속을 내어 건너편 땅을 밟았다.
“다음!”
두 번째 차를 내보낸 베흔이 헐레벌떡 후미로 달려갔다. 그곳엔 이미 네피와 힐러, 카토가 50여 명의 병사들과 함께 방어선을 짜고 교단의 추격대에 석궁을 퍼붓는 중이었다.
“조금씩 물러나! 다리가 완성됐으니까!”
베흔과 네피가 각각 후미에서 양쪽을 맡아 엄호하며 퇴각을 지켰다. 15대의 차량과 분견대 장병들은 하나 둘 다리를 건너 근 한 달 가까이 밟아보지도 못했던 낭떠러지 건너편에 다시 발자국을 찍었다.
카렐 행렬이 다리를 건너가고 있는 모습에 가장 크게 당황한 건 조금 전 이곳에서 물러났던 사카였다. 다리를 당기는 결정적인 케이블을 끊어 위험을 없애버렸다고 생각했던 그는 다리가 완성되어 있는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저격은 안 되겠나?”
사카가 조금 전 단 두 발로 저들의 케이블을 끊었던 명사수를 불러내 물었지만 그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다리가 이미 완성이 된 상태라 어렵습니다. 조금 전처럼 다리를 당기는 가는 케이블이라면 몰라도 저 정도 다리의 강화 와이어로프를 끊으려면 수십 발은 맞춰야 합니다.”
“대체 어떻게 완성한 거냐.”
막막해진 사카는 카렐 일행이 후미를 굳건히 지키며 하나 둘 다리를 건너가는 광경을 무기력하게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는 50여 명을 다시 자갈밭으로 우회시켜 측면을 치려했지만 그곳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카렐의 견제사격에 제대로 접근도 못한 채 자리에 묶여있었다.
“적의 마지막 차량이 건너갑니다!”
부관의 보고에 사카가 턱에 힘을 꽉 주었다. 워낙에 과묵함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이번엔 그저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헤네티들은 차에 이어 다리를 도보로 건너는 정규군들을 향해 마우저와 볼트를 마구 쏘아댔지만 큰 섬유주머니를 매단 방패로 옆을 가리고 앞뒤로 서로 줄을 엮은 병사들은 중간 중간 바닥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거나 볼트에 맞아 쓰러지는 동료들을 추슬러가며 느리지만 끈질기게 다리를 건넜다. 보병들을 먼저 보낸 후 세네피스를 한 팔에 안은 카렐, 여전히 울며불며 못 간다고 비명을 지르는 니사를 안은 카토, 마지막으로 힐러와 네피, 베흔이 다리를 건너갔다.
카렐 일행을 쫓은 사카와 헤네티들이 다리에 도착했을 때 뒤에 남은 건 무수한 바퀴자국과 바닥에 밤송이처럼 꽂힌 볼트, 마우저에 맞아 곰보처럼 변한 바위면 뿐이었다.
“건너가지 마!”
사카는 가디언들을 쫓아 다리에 뛰어들려는 부하들을 서둘러 저지했다.
“예에?”
동료들에게 뒷덜미를 잡힌 헤네티들이 기겁을 하며 발을 뺀 순간, 다리는 마지막에 지나간 베흔과 네피가 뿌려놓은 인화물질에서 내뿜는 고열의 화염에 순식간에 휩싸였다. 단 20여분 남짓 사용된 다리는 망연자실해하는 헤네티들의 코앞에서 짧아도 너무 짧은 수명을 다하고 불꽃 속에 사라져버렸다.
지독한 연기가 사라진 후, 그들의 앞에 남은 건 1시간 전과 똑같은 풍경의 협곡과 몰아치는 누런 모래폭풍 뿐이었다.
15대의 차량들은 잠시 내렸던 장병들을 모두 싣고 조금 전보다 더 짙어진 모래폭풍을 뚫고 다시 언덕을 꾸역꾸역 오르는 중이었다. 다리에서 적을 따돌리면서 이젠 병사들도 한결 맘이 가벼워진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었다.
“상태가 어떤가?”
카렐이 2번째 차량의 화물칸에 매달려 고개를 디밀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선 비명을 지르느라 지쳐 뻗어버린 니사를 대신해 코리온과 발굴단장 살람이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첫 전사자들입니다.”
코리온이 차량 안쪽에 얼굴을 가린 채 누워있는 두 명의 분견대 병사들을 가리켰다. 조금 전, 자갈밭에 숨어있던 적 매복조의 마우저 사격에 처음 쓰러졌던 두 명이 결국 시체가 되어 누워있었다.
“이곳의 첫 공신들이구나.”
시체를 직접 확인한 카렐은 동료들의 전사에 침울해진 다른 부상병들의 어깨를 한 번씩 만져주며 굳건한 미소를 보였다.
“수고 많았다.”
“부상자 5명은 저희가 돌보겠습니다.”
코리온이 카렐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카렐은 그와 함께 부상자를 돌보고 있는 발굴단장 살람의 귀 밑에 새겨진 트라카 문장을 힐끔 보았다. 코리온이 원했건 아니었건, 그는 이곳에서 니사와 살람까지 2명의 성직자들을 거느린 ‘트라카 마구스’가 된 셈이었다.
카렐은 달리는 차에서 다시 뛰어내려 1번차로 달려갔다. 모래바람은 더 짙어졌고, 바람은 더 거세어져 가끔은 차에 부딪치는 강한 바람소리만으로도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하지만 바람이 짙어질수록 카렐의 눈에 보이는 푸른 물결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이젠 정말 앞이 거의 안 보입니다.”
산토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 거리가 10척 내외로 줄면서 차는 이젠 거의 걷듯이 가까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상 운전이 불가능해진 산토스를 대신해 결국 카렐이 차의 조종간을 잡았다.
“잃어버리지 말고 따라오라고 해. 화물칸에 한 명씩 랜턴 들고 후미 차량이 떨어지지 않게 계속 신호 보내고.”
카렐이 속도를 살짝 높였다. 15대의 차는 가파른 절벽 모서리를 타고 난 길을 갈지자로 계속 올라갔다. 고도가 높아지며 몇몇 병사들이 가벼운 고산증세를 보인다는 보고가 들어왔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산을 꾸역꾸역 올라가던 카렐은 왼쪽 절벽 위를 무심결에 힐끔 올려보았다. 사람 손을 탄 일이 없어 보이는 가파른 언덕 위에 돌과 진흙을 섞어 쌓은 듯한 벽 하나가 보였다. 자연적인 모습 그대로인 지형에서 그 구멍 혼자 어딘지 어색했다.
“혹시 저기가…….”
카렐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세하 비장이 먼저 대답했다.
“이곳 마지막 원주민들이 몰살당했다는 굴입니다. 저희가 왔을 때 이미 코메트들이 저렇게 해 놓고 떠난 후였습니다. 오르마즈 경께선 언젠가 저곳의 유골을 직접 거두겠다고 하셨습니다만 미처 못 끝내고 떠나셨습니다.”
카렐은 동굴의 위치만 일단 기억에 담고 차에 계속 속도를 붙였다. 일단은 검은 철성과 그곳에 있다는 워프루트 통제소에 닿는 게 관건이었다. 남부의 삼각루트는 이제 며칠 이내로 개통될 테고, 그에 비해 한 달 가까이 뒤처진 삼각루트 개통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려면 이곳에서도 함께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무리를 해 가며 분견대 기지를 떨치고 나온 이유가 그것이었다.
모래폭풍은 올라갈수록 점점 짙어졌고, 산소도 점점 희박해졌다. 저지대에서 비교적 온화했던 기온은 고도가 높아지며 점점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으로 변해갔다. 화물칸에 탄 병사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거적을 씌웠다.
“타리프 신관이 왔던 550년 전엔 이보다는 좀 따뜻했을 겁니다. 그래도 엄청나게 추웠겠지만요.”
방한복을 챙겨 입은 세하 비장이 몸을 움츠리며 부르르 떨었다.
“위도와 고도로만 봐선 여긴 아예 사람이 못 살 정도로 끔찍하게 추워야 정상이지.”
카렐이 가벼운 고산 증상에 얼굴을 찡그리며 앞을 올려보았다.
“산 밑의 지역은 원래는 바다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옛날엔 분지가 아니고 만(灣)이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산맥도 원래는 대양 한가운데의 거대한 섬이었거나 군도(群島)였겠군.”
주변을 둘러보는 카렐의 눈이 가늘어졌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위쪽 어딘가에서 하늘과 만나고 있었다.
“그럼 저 위가 옛 육지일까?”
육중한 화물차가 한 번 덜크덩 하며 마지막 고개를 힘겹게 넘었다. 그리고 동시에 가파른 절벽과 산악이 뚝 사라지고 올라올 때보다 훨씬 완만한 경사가 진 고원이 마술처럼 확 모습을 드러냈다.
“흐음.”
카렐이 차를 정지시키고 잠시 내려섰다. 몰아치는 거센 모래폭풍에 그의 방풍망토가 펄럭이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얼어붙은 고원 중간에 거대하고 육중한 정방형 구조물이 희미하게 보였다.
“저것이로군.”
카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자신들을 몰살시킨 이주민들의 황제가 되어 돌아온 카히나의 후손과, 1천년을 넘게 이곳을 꿋꿋이 지켜 온 검은 강철 구조물이 걷기도 힘들만큼 몰아치는 차갑고 거센 폭풍 속에서 서로를 한동안 마주보았다.
차에서 내려선 세네피스와 코리온, 가디언과 병사들도 황제에게서 약간 물러선 채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앞장서겠다. 흩어지지 말고 따라와라.”
카렐은 차량에 따라오라고 손짓하고는 두 발로 그곳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호기심에 찬 눈길로 그 뒤를 조심조심 따랐다.
몇 걸음을 내디딘 카렐은 바닥에 무언가가 깔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닥을 까맣게 덮은 모래를 발로 대강 치워내고 보니 그 밑에는 오랜 세월에 닳고 닳아 거울처럼 맨들맨들해진 포석이 바닥에 꼼꼼하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포석 양옆의 경계석 너머로는 자잘한 자갈이 박힌 검은 물질이 넓은 폭의 길을 따라 바닥에 깔려 있었다. 언젠가 이곳에도 사람과 바퀴가 드나들며 발자국을 찍었던 흔적이었다.
“문명의 흔적이구나.”
카렐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 ‘길’은 멀리 검은 철성까지 죽 이어져 있었다.
카렐은 고원의 먼 옛날 포석이 깔린 길을 따라 계속 접근해갔다. 어느 순간, 그의 발치에 오래된 쇳조각 하나가 걸렸다. 다리 두 개가 달린 것이 한때 이정표로 쓰였던 듯했다. 카렐은 타리프의 일지에서 언급했던 이정표를 떠올렸지만 그때보다 550년이 더 지난 지금, 갈색으로 온통 삭아버린 철판은 이젠 오래된 고생물의 화석 비슷한 흔적만 남아 전혀 읽을 수조차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람에 쓸려 흙이 날아가면서 서너 조각이 난 채 흙 밑에 파묻혀 있던 검은 석판이 살짝 노출되어 있었다. 노출된 부분은 이미 완전히 마모되어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카렐은 바닥에 완전히 얼어붙어 꿈쩍도 않는 육중한 석판을 힘껏 뒤집어 퍼즐놀이를 하듯 대강의 그림을 맞춰보았다.
- Zeppelin Seed Vault - 13
- NyAlesund GeoEngineering HQ
처음 이 석판을 세울 때 새긴 듯한 이 크고 세련된 폰트의 이 두 문장 밑에는 누군가 나중에 조잡하게 다시 새겨 못질로 덧붙여놓은 간판이 아직 달려있었다.
- The Institute of Biodivers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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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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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폭주족이 한건 올렸습니다. ㅎㅎㅎ
(문제는 저 손을 거치고 나면 남아나는 차가 없습니다;;;)
그나저나 카렐은 여기와선 이건 뭐 황제가 아니고 노가다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4가지 없는 베흔 이눔의 입에선 조금만 한눈 팔면 '황상'이 '이 양반'으로 변신합니다. ㅎㅎ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지 말고요~~~( ̄∇ ̄)ブ~~★
노블레스, 프리미엄도 그냥가심 밉고요~
이, 그리고 전자책 2부 5~8권(2부 완결)이 예스24등 대형서점에도 업데이트되었습니다.
그나저나 교보는 지금까지 나온 책 전송 검수 끝나서 한 번에 곧 다 올린다는데;; 언제;;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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