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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1069화 (1,064/1,132)

< -- 1069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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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스 네코는 이미 며칠째 송풍로 복원공사현장에 상주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분견대 놈들은 다 도망갔고, 분견대 기지 밑의 임시 숙영지는 어차피 풍비박산이 났고, 이젠 이 송풍로 공사장 하단에 본부를 차려놓고 모든 사활을 걸고 있었다. 그는 까마득한 송풍로 밑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허, 이거 웬만한 놈은 폐소공포증 걸리겠네.”

이전엔 수로라고 여겼던 이 공기터널은 아마 멀리서 본다면 아주 길게 잡아 늘인 거대한 나팔 모양일 것 같았다. 지금 그가 있는 산 7부 능선에서 송풍로는 ―바닥까지 다 파내려간다면―10층 건물 하나가 들어앉을 100척의 어마어마한 깊이에 사람 서너 명이 가까스로 지나갈 정도의 좁은 폭이었다. 말 그대로 거인이 큰 칼로 땅을 찍어 칼집을 낸 듯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분지 가까운 저지대로 내려갈수록 깊이가 점점 얕아지고 나팔처럼 폭이 점점 넓어져 이전 하임달 전장이 있던 부근까지 가면 거의 5스타디아(750m)가 넘는 어마어마한 넓이까지 그리며 끝나는 듯했다. 꼭대기의 검은 철성에서 뿜어 내리는 차고 강한 바람이 분지 전체로 고루 퍼질 수 있게 만든 세심한 구조였다. 하지만 가는 모래층은 이 정밀한 구조물을 집어삼킨 것으로도 모자라 그 위로 사람 키 정도 높이를 더 덮어 이미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였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언제쯤 꼭대기에 닿겠냐?”

네코는 송풍로를 메운 가는 흙을 퍼내고 있는 거대한 드릴과 펌프를 가리키며 엔지니어와 야투 박사에게 물었다. 이번에 본토에서 가져온 대형 장비까지 합류하면서 전진에 제대로 속도가 붙은 상태였다. 통로의 폭이 워낙 좁아 굴착기가 직접 들어갈 수 없다보니 대신 대형 드릴로 바닥까지 구멍을 뚫은 후 마치 강바닥 준설하듯 펌프로 흙을 ‘뽑아 올리는’ 중이었다.

“지금 철야작업까지 해 가며 총력을 다 하고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일단 철성이 있는 고원 바로 밑까지 길을 내는 건 2일 정도면 끝날 것 같습니다.”

야투 박사는 송풍로 밑에 있는 대형 펌프 3대를 가리키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펌프는 깊이별로 계단 모양으로 담당 구역을 나누어 계속 흙을 파내며 같은 속도로 전진을 하고 있었다. 장비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송풍로 밑에서는 마스크와 보호 장비를 갖춘 작업자들이 수십 척 밑에 쌓여있던 흙을 무너뜨려 펌프의 흡입구에 바삐 밀어 넣고 있었다. 거대한 펌프를 타고 올라온 흙은 불도저가 송풍로 양옆에 조심조심 쌓아놓았다.

덕택에 송풍로 양옆엔 마치 일부러 모래로 장성을 쌓은 듯 흙더미가 2마리 뱀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다.

네코는 이곳의 옛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야투 박사에게 버럭 짜증을 냈다.

“남부 놈들이 오기 전엔 끝내 놔야 내 체면이 사니까 그렇지. 철성까지 길만 뚫는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초조해하고 있는 네코의 앞에서 야투 박사가 들으란 듯 히죽거렸다.

“어차피 송풍로를 정상 가동하려면 철성 안에 있는 터빈을 틀어 줘야 합니다. 터빈의 강한 바람으로 불어내면 밑에 남은 모래도 밑으로 싹 쓸려 내려갈 겁니다.”

“분지 전체가 깨끗해지려면?”

“오르마즈 그놈 때 생각해 보면 하루이틀 터빈을 세게 돌려주면 송풍로 출구 가까운 분지 귀퉁이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네코가 한숨을 내쉬었다. 터빈을 다시 돌린다 해도 아마도 실제 군사작전이 가능한 곳은 제플린 산 밑자락의 얼마 안 되는 평원이 될 것이 뻔했다. 바로 하임달의 결전이 있었던 바로 그 장소였다.

“듣자하니 어마어마하게 큰 터빈도 하나 있다던데? 그걸 돌리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1번 터빈은 우리 코메트 토벌대가 왔을 때 이미 카히나 무리가 꺼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 뒤로 한 번도 작동된 일이 없습니다. 작동될지도 의문이고, 작동해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네코가 입가를 씰룩거렸다.

“이놈의 송풍로가 제대로 굴러가야 빌어먹을 이 마스크를 벗는데.”

네코는 갑갑한 마스크를 괜히 좌우로 흔들어 보았다. 검은 철성까지 올라가는 것 자체는 지면까지만 딱 파내도 무방하지만 문제는 최대한 빨리 철성의 정화장치를 다시 돌려 이 지긋지긋한 재를 걷어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전에는 남부제후군이나 교단 병력 모두 이곳에서 눈 뜬 장님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레이오팔의 황제 앞에서 함부로 전술이네 뭐네 하며 작전을 펼치는 건 자칫 ‘생 쇼’가 될 가능성도 컸다. 그가 무리를 해서라도 송풍로를 바닥까지 박박 다 파 가며 전진하는 이유였다.

네코는 다시 뒤로 돌아섰다. 지금껏 힘겹게 파내며 전진해 온 칼자국처럼 긴 송풍로가 직선으로 죽 이어져 있는 장관이 그저 보기에도 흐뭇했다. 모래폭풍 때문에 끝까지 보이지는 않지만 수백 년을 묻혀 있었던 이 송풍로는 이제 분지 아래까지 시원하게 뻥 뚫려 있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그의 시야에서 짜증나게 만드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나도 이제 너 계속 끌고다니기 지겹거든?”

네코는 발치에 꿇어앉은 채 흐느적거리고 있는 네포프의 턱을 칼집으로 툭툭 쳐서 들게 하고는 다시 물었다.

“너 죽이고 싶지도 않아. 그러긴 너무 쓸모가 많거든. 어차피 철성을 움직일 때도 네 손이 필요할 테고.”

네코가 네포프의 손을 지그시 밟았다. 그가 이곳 공사에 항상 네포프를 데리고 다니는 건 이 송풍로와 검은 철성에 관해 지금 당장으로서는 가장 잘 아는 놈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엔지니어들이 송풍로의 형태와 깊이, 구조에 관해 알아낸 것도 이자의 입에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굴복한 건 아니었다. 그는 단 하나만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네가 사제의 키를 갖고 도망친 것까지는 알아. 그러다가 갑자기 근위대에 투항한 것도 알고, 궁금한 건 그 뒤야.”

네코가 네포프의 얼굴을 좌우로 툭툭 치며 눈을 부라렸다.

“한 몇 달 근위대 앞에서 딸랑이 역할 잘 했지? 그러고 콜의 감옥을 갔다가 그 뒤엔 어디로 갔냐?”

네포프는 거친 숨만 내쉴 뿐 대답이 없었다. 비록 직접적인 고문은 당하지 않았어도 네코의 협박 속에서 이미 수십 번이나 패닉을 오간 네포프는 얼굴의 핏기도 잃고 몸까지 비쩍 말라 있었지만 이 물음에만은 쉽사리 답을 주지 않았다. 네코와 눈이 마주친 순간, 탈진한 네포프는 그대로 몸을 떨며 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며칠을 식사까지 제대로 못 한 굶은 몸에서 토해 봤자 신물만 계속 뱉어낼 뿐이었다.

“젠장! 더럽게 진짜!!!”

더러워진 바지에 깜짝 놀란 네코가 짜증을 내며 그의 얼굴을 확 걷어찼다. 그의 발길질에 밀린 네포프가 맥없이 바닥을 굴러 송풍로 귀퉁이에 털썩 쓰러졌다. 그는 대뜸 버둥거리며 까마득한 송풍로로 몸을 내밀었다.

“이놈이!”

투신하려는 네포프의 뒷덜미를 헤네티가 덥석 움켜잡았다. 헤네티는 축 늘어진 네포프를 다시 바닥에 질질 끌고 와 네코의 발밑에 던져놓았다.

“죽은 마누라 따라 뒈지고 싶으면 아는 거나 불고 가던지.”

네포프가 도무지 입을 열지 않자 네코는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다시 공사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면서 가뜩이나 모래폭풍으로 시야가 나쁜 공사장에는 어둠이라는 베일까지 또 덧씌워졌다.

“조명!”

곳곳에서 기사들이 조명을 켜고 뛰어다녔다. 낮에도 시야가 최악인 곳에서 그나마 빛까지 사라졌지만 이들로서는 공사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공사장 곳곳에서 조명이 켜지면서 야간작업에 들어간 송풍로 안쪽과 주변을 밝혔다. 하지만 조명을 켰어도 워낙 짙은 모래폭풍 때문에 조명의 초점이 맞춰진 일부 부분만 밝혀질 뿐 나머지 지역은 여전히 깜깜했다.

3교대로 8시간 꼬박 작업을 하고 난 장비 기사들과 작업자들이 야간 교대시간을 알리는 조명을 보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맨몸으로 하기도 힘든 작업을 무거운 방호복과 고글, 마스크까지 쓰고 몇 시간째 해오면서 거의 녹초가 다 되어 있었다. 지친 작업자들은 한숨 자고 나온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며 자신의 장비와 자리를 내주었다.

그런데 이들은 머리 위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는 아직 알지 못했다.

송풍로의 꼭대기에서 와이어와 방패를 타고 조심조심 내려온 카렐과 가디언들이 이들의 굴착현장에 도착한 건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카렐과 나머지 6명은 위쪽에서 줄줄이 연결하며 내려온 와이어로프에 체중을 기대고 가파른 사면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중이었다. 이 줄이 아니면 고운 흙을 타고 줄줄이 미끄러지거나, 아니면 무릎까지 빠지는 흙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지난 며칠 지켜봤더니 지금이 하루 중 제일 정신없는 시간이더군.”

방패를 당겨 브레이크를 잡은 카렐이 뒤따라온 가디언들에게 송풍로 밑을 가리켜보였다. 5척 남짓 폭의 좁은 송풍로 양옆으로는 밑에서 퍼 올린 흙무더기가 산 밑에서부터 길게 산맥을 이루며 쌓여 있고, 교대 작업자들 수십이 흙무더기와 깊은 송풍로 사이로 낸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한 줄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허어, 까딱 중심이라도 잃어서 송풍로 쪽으로 미끄러져 떨어지면 볼 것도 없이 끝장이네.”

베흔이 광학망원경을 눈에 대고 중얼거렸다. 날씨만 맑다면 이 정도는 맨눈으로도 손바닥처럼 보일 거리지만 이곳에선 가디언들의 감각도 제한적이었다.

“훅 불어서 우수수 떨어뜨려 볼까?”

네피가 또다시 농담으로 분위기를 흐려놓았다. 기존 작업자와 교대 작업자가 몰리면서 송풍로 밑으로 내려가는 사다리 주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들었다.

카렐은 눈에 광학망원경을 대고 사다리에서 조금 떨어진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모래폭풍에 어둠까지 덧대어지면서 보통 사람의 시력으로는 그냥 까맣게만 보일 테지만 어둠이 깔린 지금 이 순간부터는 그레이오팔인 그의 세상이었다. 재와 어둠 속에서 이 거리의 일반인 혹은 가디언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마치 도깨비불처럼 공중에 점점이 켜져 있는 공사장 조명뿐이었다.

“송풍로 왼쪽, 5번째 조명 밑에 네코 놈이다.”

카렐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십여 명의 병사들 가운데 언젠가 이디나와 함께 있다가 만났던 곱상하게 잘생긴 금발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발밑에 쓰러져 있는 또 한 명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며칠간, 카렐은 네코가 저 남자를 끌고나와 들볶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 발밑에 있는 녀석이 프레소……, 아니 네포프 칼리인 것 같다.”

“여기까지 뚫었으면 이제 놈들로서는 거의 다 올라온 것 아닙니까?”

사에나가 마우저의 탄창을 확인하며 물었다.

“맞아, 2, 3일 정도만 더 파 올라가면 아까 우리가 나온 구멍까지 닿겠지.”

“이제와 놈들의 작업을 막기는 너무 늦은 것 아닙니까?”

“막아? 왜 막나? 우리가 할 일을 대신 해 주고 있는데 밥은 못 먹여줘도 훼방은 놓지 말아야지.”

카렐의 엉뚱한 대답에 가디언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카렐이 망원경을 눈에서 떼며 입술에 야무지게 힘을 주었다.

“하긴, 이제 부려먹을 만큼 부려먹었으니 쫓아낼 때도 되긴 했지만.”

해가 완전히 지고 깜깜해지자 카렐 일행은 몸을 바싹 낮추고 와이어를 조금씩 풀며 조심조심 더 내려가며 공사장에 접근했다. 카렐은 바로 뒤에 있는 사에나에게 공사장 주변을 밝히고 있는 20개 가까운 조명들을 가리켰다.

“내가 자넬 왜 데려왔는지 알겠나?”

“알겠습니다.”

사에나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 뒤에 있던 네피가 입을 삐죽거렸다.

“그럼 우리들은 뭐 하라고?”

“여기 안 그래도 팍팍 빠져서 싸우지도 못 할 텐데요. 설마 이 방패를 타고 싸우라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똘똘이 힐러까지 불평을 늘어놓았다.

“못 할 것도 없지 않나. 적을 죽일 필요도 없다. 내가 네포프를 구할 동안 그냥 후질러 놓기만 하면 돼. 시간이 관건이다. 5분 내에 다 끝내고 이리로 돌아와야 한다.”

카렐은 고글을 내리고 썰매 겸 타고 온 방패의 앞쪽을 들어 올리며 당장이라도 내려갈 태세를 갖추었다.

“이거 쓰실 수 있으십니까?”

사에나가 오늘 카렐의 무기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카렐의 손에는 평소 쓰던 나즈라, 아니 야푸르의 검 대신 코나에게서 빌려 온 프레일이 쥐여있었다.

“저 뒤에 있는 어떤 양반이 고맙게도 무기라는 무기는 다 쓰게 만들어줘서.”

카렐이 피식 웃었다. 그가 고글을 쓰고 무기를 바꾼 건 적에게 자신의 눈과 정체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카렐은 송풍로 밑에서 퍼 올린 가는 모래흙을 송풍로 양옆에 차곡차곡 쌓고 있는 불도저를 가리켰다.

“저거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설마 하나는 있겠지?”

낮은 한숨과 함께 솥뚜껑만한 큰 손이 쑥 올라왔다.

“내 또 저걸 다루게 될 줄이야.”

베흔도 투덜거리며 방패 앞쪽을 추켜올렸다.

“내가 유일하게 제대로 볼 수 있을 테니 내가 앞장선다. 베흔은 다른 가디언들이 후지를 동안 저 불도저로 몸빵하고 있고.”

멀리 경비병들을 발견한 카렐은 가디언들에게 수화로 각각의 임무를 지시했다. 제일 먼저 사에나가 사정거리가 긴 마우저로 가까운 조명탑을 겨누었다.

- 출발하는 즉시 쏴. -

카렐이 지금까지 위치를 버티어주던 와이어를 놓고 방패에 체중을 실은 채 미끄러운 모래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뒤따라 5명의 가디언들도 가는 모래를 박차고 밑으로 일제히 속도를 붙였다. 모양새는 그리 멋지지 않지만 이곳에선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머리 위를 사에나가 날린 마우저 탄이 휙 소리를 내며 날았다.

“엇?”

공사장 주변을 지키던 헤네티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직감한 순간, 머리 위의 거대한 조명이 펑 소리를 내고 깨지며 그들의 머리 위에 유리와 부품의 파편을 와장창 쏟아놓았다.

“기습이다! 기습이다!”

경비병들의 고함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채 2, 3초도 지나지 않아 바로 그 옆의 또 다른 조명이 박살이 났다. 조명에 기대어 야간작업을 강행하던 작업자들과 경비병들이 일시에 아수라장에 빠져들었다. 당황한 경비병들은 대충 언덕 위쪽에 대고 마구 석궁을 쏘았지만 가디언들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 고글 안쪽 눈을 부릅뜨고 방패를 타고 돌진한 카렐은 엉뚱한 곳에 석궁을 겨누고 있던 헤네티 경비병의 허리를 단번에 박살내고 계속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충격에 붕 날아오른 경비병의 시체가 터진 배에서 피보라를 뿜으며 공중으로 휙 날아올랐다가 바닥에 내리꽂혔다.

방패를 타고 최대한 속도를 붙인 카렐은 저들이 공사를 하며 수북하게 쌓아놓은 흙더미를 타고 공중으로 붕 날아올랐다. 흙더미 너머는 이미 적이 모래를 걷어낸 곳이었다. 카렐은 밑에 깔고 앉았던 방패를 순식간에 휙 걷어 올려 왼팔에 걸고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네포프를 데리고 있는 네코는 송풍로 건너편, 1스타디아 정도 더 내려간 곳에서 대여섯 명의 호위를 받으며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비켜!”

카렐은 앞을 막는 헤네티 경비병의 턱을 방패 모서리로 후려쳐 한 방에 쓰러뜨리고는 계속 돌진했다. 주변에서 베흔, 네피가 앞장서 돌진하는 가운데 2개의 조명이 또 깨지고 공사장은 어둠 속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적이야! 도망가!”

작업 교대를 위해 사다리로 내려가던 작업자들과 밖으로 막 나오던 작업자들은 사다리 중간에서 뒤엉키고 몸싸움에 아귀다툼이 벌어졌고, 송풍로 양쪽 좁은 통로를 메우고 내려가거나 올라가던 작업자들까지 우왕좌왕하면서 공사장 전체가 통제불능에 빠져들었다. 거기에 깜깜한 어둠까지 겹치면서 사람들의 비명과 혼란은 더해갔다.

“이씨, 뭐 이리 많아!!!”

이 상황이 카렐에게 모두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유리한 시력 하나를 믿고 네코와 네포프에게 다가가려던 카렐 역시 통로에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작업자들 때문에 진로가 막혀버렸다. 사제의 키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려면 반드시 네포프를 확보해야만 했지만 앞에서 아귀다툼 중인 작업자 수백을 다 때려죽이고 쫓아갈 수도 없었다.

“어디로 내려가지?”

공사장이 혼란에 빠진 사이, 최대한 빨리 돌파해 가디언들과 함께 네코, 네포프를 덮치려 맘먹었던 카렐은 계획을 바꿔 다른 수를 내야 했다. 그때, 카렐의 눈에 펌프의 파이프를 고정하기 위해 깊은 송풍로 위에 드문드문 걸쳐져 있는 철골과 발판들, 아래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펌프의 굵은 동력선이 들어왔다.

“다들 어디 있나!”

카렐은 뒤를 돌아보았다. 적을 덮친 네피와 카토가 경비병과 작업자들을 사방으로 쫓아내고 있고, 힐러가 장비들에 불을 지르는 동안 베흔이 자이납의 엄호를 받으며 불도저로 달려가고 있었다. 공사장은 이미 아수라장이고, 저대로라면 최소한 몇 분간은 적이 그를 쫓지 않을 듯했다.

“꺼지지 못해!”

작업자 몇 명을 옆으로 밀어버린 카렐은 깊이 100척의 까마득한 송풍로 위로 그대로 몸을 날려 그 위에 걸친 철골을 밟고 다시 공중으로 붕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 할 40척(12m)이 넘는 거리를 단숨에 훌쩍 뛰어넘어 다음번 철골에서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멀리서는 네코가 십여 명의 호위를 받으며 네포프를 데리고 황급히 도망치고 있는 중이었다.

“가긴 어딜!”

두 번째 철골을 디디며 몸을 바싹 움츠린 카렐은 이번엔 그보다 훨씬 먼 다음번 철골로 날아올랐다. 그의 점프와 때맞춰 뒤에서 저격을 하는 사에나의 마우저에 카렐이 착지할 곳 바로 옆의 조명이 쨍 소리를 내고 박살이 나 흩어졌다. 세 번째 발판을 밟은 카렐의 머리 위로 부서지는 조명의 유리조각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짙은 모래폭풍과 깨진 조명 때문에 네코를 호위하고 도망치는 헤네티들도 유령처럼 공중을 날아 추격해오는 그 괴물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도망가 봤자지!!!”

이제 네코가 있는 곳까지는 반 스타디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다음번 발판까지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먼, 거의 100척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카렐은 아랑곳없이 몸을 날렸다. 이번에는 바닥을 디디는 대신, 좁은 송풍로 밑으로 무섭게 곤두박질쳤다. 그의 손이 송풍로 밑으로 늘어진 동력 케이블을 덥석 붙든 순간, 내리꽂히는 힘은 바로 추진력으로 바뀌었다. 그는 줄을 붙들고 송풍로의 깊은 수직벽을 타타탁 타고 디디며 마치 중력을 놀리듯 옆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네코와 포로 네포프를 호위해 달려가던 6명의 헤네티들은 바로 머리 위의 조명이 꽝 소리를 내고 깨지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멈칫거렸다.

“조심하십시오!”

빛을 잃은 헤네티들은 자칫 중심을 잃을 뻔했던 네코를 덥석 붙들었다. 바로 옆에 까마득한 송풍구를 바로 옆에 끼고 어둠 속에서 전력으로 달리는 건 헤네티들에게도 자살행위였다. 허둥지둥 랜턴을 켜든 그들은 바로 옆의 좁은 송풍로 얕은 밑에서 누군가 발을 타타탁 딛는 소리에 기겁을 하고 놀라며 옆으로 휙 돌아섰다.

“뭐지?”

송풍로를 확인하려 고개를 내밀었던 헤네티는 밑에서 휙 솟구쳐 오르는 검은 물체에 턱과 얼굴을 얻어맞고 뒤로 붕 날아가 떨어졌다. 순식간에 땅을 디디고 솟구쳐 오른 카렐은 앞을 막는 헤네티의 얼굴을 프레일로 단숨에 짓뭉개 송풍로 안으로 내던져버렸다.

하지만 상대는 코런덤의 헤네티이고, 시각을 쓸 수 있는 근거리에선 만만치 않았다. 나머지 4명은 그 잠깐 새 네코의 앞을 몸으로 감싸고 있었다.

보강재를 붙인 방패로 앞을 가린 카렐은 그들과 마주서며 프레일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사제의 키의 비밀이, 네포프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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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카렐은 벽 타고 달리기 솜씨 발휘하며 몸 푸는 중이고.... 베흔은 또다시 불도저 기사로 데뷔했고....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지 마시고요~~~( ̄∇ ̄)ブ~~★

아참, 전자책 3부 1,2권과 무료 미리보기 책이 지난 29일 유페이퍼에 업데이트되었고요, 예스24, 교보, 인터파크 등 다른 서점에도 곧 업데이트가 될 겁니다. 3, 4권은 이번달 중순경 업데이트 예정입니다. ^^

(3부 미리보기엔 연재본에 들어가지 않은 마지막 과거 이야기 에피소드 하나도 담겨있습니다. ^^)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출판본 종이책 주문게시판 http://www.vein.pe.kr

전자책(eBook) 서비스 : 유페이퍼, 예스24,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알라딘, 리브로, 인터파크, 올레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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