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1074화 (1,069/1,132)

< -- 1074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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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만 대군이 남부 비엔에서 하임달로 이동하는 건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대작전이었다. 남부연합군이 직접 보유한 수송선으로 한 번에 이동시킬 수 있는 병력이 그 절반밖에 되지 않다보니 상황은 더 심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수송선에 일단 절반을 태웠고, 케스난이 보낸 12척의 대형 수송선에 10만여 명을, 나머지 병력과 군수품은 민간에서 징발한 수송선에 모두 실었다.

규모가 워낙 거대하다보니 [40만 가까운 남부연합군이 곧 어딘가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남부의 이상동향을 일찌감치 알아챈 아케메니아의 황실도 [죄 없는 동부나 서부에 명분 없는 공격을 가하면 황실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공갈포를 연일 날리며 눈에 빤히 보이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고 있지만 그것도 하임달과는 아무 관련 없는 황제령에서 벌이는 말 그대로 헛짓에 불과했다.

공격을 준비하는 남부제후들은 자신들의 대군이 하임달 9번을 치려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임달 9번은 바로 얼마 전 황제가 ‘새로운 황제령’으로 선포한 상태이고, 어느 제후도, 심지어 남부제후들도 그 자리에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그저 선언일 뿐 하임달 9번에 대한 황제의 실효적인 지배력은 그곳에 주둔하는 고작 몇 십의 분견대가 전부였다.

교단이 건네준 정보대로라면 황제령-하임달을 직접 연결하는 삼각루트는 제후들까지 다 불러놓고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바에자의 기습으로 제어장치가 망가지면서 도로아미타불이 된지 오래였다.

황제는 삼각루트의 도움 없이 하임달 9번 행성으로 가기 위한 장거리 수송선 2척을 쿠트라스에서 열심히 건조하고 있지만 그들이 접한 정보대로라면 공정도 늦을뿐더러 설사 조기 완성해서 보낸다 해도 그것으로 실어 나를 수 있는 고작 몇 백의 병력은 이들의 대군 앞에서는 먼지밖에 되지 못했다.

어느 모로 보아도, 사통팔달인 하임달이 황제의 손 밖에 나와 있는 지금이야말로 남부연합군에게는 그곳을 전격 점령하고 남부의 땅임을 선포할 절호의 기회였다. 출발을 코앞에 둔 비엔의 임시 집결지에선 황제령 침공과 동시에 독립국을 선포하고 새 국명을 발표할 준비도 착착 이루어져가고 있었다.

“[칼데아 제국]이요? 지금 제국은 그냥 ‘제국’인데 궁색해 보이게 이름은 왜 붙이셨답니까?”

하임달 원정 기간 동안 남부 본토의 방위를 돕기 위해 막 도착한 테나스 이그나토 장군이 출정식 겸 개국 선언식 행사장에 걸리고 있는 국명을 보고는 빈정거렸다. 행사장 겸 병영이 내려다보이는 탑 위에서 황제를 뜻하는 자줏빛 망토를 걸치고 선 카나르 공이 그런 테나스에게 살짝 눈을 흘겼다.

“‘남부연합군’이라는 건 제국 일부라는 말인데 이제 독립 제국의 명칭은 필요할 것 아니냐.”

“네에, 그럽지요, 칼데아 황제 폐하.”

테나스의 빈정거림에 카나르 공이 얼굴을 다시 살짝 찡그렸다. 듣고 보니 ‘그냥 황제’인 카렐에 비해 뭔가 급이 좀 낮아 보이긴 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제 그대도 ‘남부연합군’이니 하는 소리 말고 [칼데아군(軍)]이라 불러.”

카나르는 표정을 가다듬고는 비엔의 넓은 평원을 차지하고 앉은 수많은 수송선들을 내려다보았다. 지난 며칠간 이곳을 빼곡하게 채웠던 막사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젠 그 자리를 수송선과 배웅을 나온 수십만의 군인 가족, 친지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훈련에 열중하던 신병들도 이젠 모두 수송선에 올라 곧 자신들이 공격하게 될 곳에 관해 설왕설래 중이었다. 물론 저들도 자신들이 곧 가게 될 곳이 어딘지는 모르고 있었다.

저들이 출발하고 약 워프에 들어가기 직전, 이곳에선 [칼데아 제국]의 공식 수립을 선언하고 카나르도 황제 자격으로 셔틀 편에 출발할 참이었다. 평소 병사들의 출정을 가족들에게 감추던 전통을 깨고 그들이 이곳까지 오는 것을 허용한 것도 [제국 출범]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행사를 더 크고 멋지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동원이었다.

“네코 마구스가 송풍로 작업을 미처 끝내지 못해 아직 그쪽 대기가 최악이랍니다. 병사들에게 지급된 건 고작 마스크뿐인데 괜찮겠습니까?”

함께 탑에 올라 있던 꼼꼼한 참모장 이렌느 경이 이번에도 걱정부터 드러냈다. 카나르 공, 아니 곧 카나르 황제가 될 그는 참모장의 이런 걱정에 짜증부터 냈다.

“철성인지 돌성인지가 문제라고 하니 도착하자마자 우리 사역부대 수천 수만 동원해서 머릿수 삽질로 밀어붙이면 그깟 송풍로가 문제겠소?”

“철성과 황금탑은 현신님들께 바치기로 약속하지 않으셨는지요?”

뒤에서 듣고 있던 테나스가 교단 사람 티를 확 내며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카나르와 이렌느가 동시에 그를 째려보고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알았으니까 우리가 그거 뚫어주면 당장 철성 나부랭이 좀 어떻게 해서 공기나 맑게 해 달라고 연락하구려.”

그때, 슈발츠발트의 통제소에 있는 엔지니어에게서 들어온 연락이 카나르의 할룩스에 나타났다.

- 개통까지 30분 남았습니다. -

카나르는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규모 선단에 깃발을 들어 신호를 해 보였다. 신호와 함께 35만 대군을 태운 100여 척의 어마어마한 선단이 남은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하나 둘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가족들도 자신들의 아들, 딸들이 얼마나 흉악스런 곳으로 가고 있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좀 더 남겨놓을걸 그랬나봐.”

카나르가 맘에 안 드는 듯 입가를 씰룩거렸다. 그가 서 있는 탑 밑에는 비엔에 남아 남부를 지킬 20만의 병력 중 5만이 이번 [제국 선포식]의 열병 행사를 위해 동원되어 있지만 40만의 대군으로 꽉 차 있던 연병장이 눈에 익은 탓인지 5만이나 되는, 열병 규모로는 어마어마한 대군도 왠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50만이 넘는 민간인들이 벌판을 꽉 채우고 있으니 최소한 제국 출범식으로서의 모양새는 그럭저럭 좋은 편이었다.

100여척의 선단이 떠올라 하나 둘 대기권 밖으로 사라지면서 엔지니어가 말한 30분도 거의 다 되어갔다. 카나르가 두 번째 깃발을 흔들자 탑 밑에서 큰 나팔소리가 풍요로 꽉 찬 남부 평원을 뒤흔들었다. 뒤이어 연병장에 동원된 5만의 보병들이 평원이 떠나가라 함성을 울려 분위기를 한껏 북돋웠다.

“비엔과 칼릴, 이베르와 클리코브, 루게의 시민들이여!”

카나르가 두 팔을 번쩍 쳐들며 그들에게 외쳤다. 앰프를 타고 커진 그의 목소리가 잠시 텅 비었던 평원을 다시 웅웅거리며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간 리쿠 가가 주장하는 자칭 제국의 곡창으로서, 최대의 생산력을 지닌 풍요로운 땅으로서 수탈만 당해 왔다는 것을 아는가!”

카나르의 첫 마디에 열병을 위해 모인 군인들과 군인 가족들의 표정에 일제히 긴장이 번졌다. 그의 말은 이번 출정이 단순히 다른 제후지역을 침공하기 위한 것이 아닌, ‘반역’을 위한 것임을 직감하기는 충분했다. 그렇다면 이번 출정의 위험도는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의미였다.

“우리가 대체 언제까지 더 이상 못난 자칭 제국민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

카나르는 그들의 긴장을 못 본 척 기수단에 손짓을 보냈다. 거의 200여 명의 기수들이 [칼데아]의 새로운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 깃발을 높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의 선동에 크게 반응하는 민간인들은 없었다. 비록 카나르는 희생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번 기근이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제국은 각자가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 관계였다.

“우리는 이제부터 아케메니아의 저 썩어빠지고 무능한 독재자를 거부하며, 대 제국 [칼데아]의 공식 수립을 선포한다! 황제인 나 카나르 플라칼은 지금 이 순간부터 그 누구도 우리의 풍요로움을 탐내지 못할 것임을 엄숙히 선언한다!”

이젠 누가 들어도 황실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이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카나르의 느닷없는 칭제에 박수보다는 당혹감에 젖어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자리에 모인 군인들이 미리 명령받은 대로 큰 환호성을 올리면서 ‘자의건 타의건’ 박수를 치고 함성을 올리기 시작했다. 카나르는 조금씩 함성이 커져가는 평원을 향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대 칼데아 제국은 제국의 가장 풍요로운 비엔을 수도로 정할 것이며, 플라칼, 델루지, 호지와 세닉 4개 가문이 우리를 따른다! 하지만 아케메니아의 무능한 가디언 출신 카렐 대신 진정한 황제 나 카나르에게 고개를 숙이는 자는 모두 칼데아 제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줄 것이며. 우리의 부를 함께 공유할 권리를 가질 것이다!”

카나르를 둘러싼 나머지 3가문의 대표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델루지 가의 마누엘이 뭣 씹은 듯 불쾌한 표정을 살짝 지었지만 안 그래도 맘처럼 제대로 달아오르지 않는 분위기에서 산통을 깰 만큼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새로운 제국의 첫 원정에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카나르가 창을 번쩍 쳐들었다. ‘신의 축복’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그저 습관적으로 박수를 쳤지만 그 밑에 숨은 의미를 눈치챈 사람들도 중간중간 보였다. 교단의 몰락 이후, 유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제국에선 ‘신’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제국의 성립에서, 그것도 수십만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대놓고 ‘신’을 언급한 것이었다.

헤즈는 아버지 카나르의 창에 칼데아의 문장을 새긴 큼직한 깃발을 매달았다. 그리고는 왕 중의 왕인 새 황제 카나르와 제후들을 태운 셔틀이 먼저 출발한 원정 선단을 따라 공중으로 멀어져갔다.

그들의 출발과 함께, 개국 이래 지금까지 내내 어딘지 주종관계를 유지해 온 ‘남부’ 아니 자칭 [칼데아]와 아케메니아의 리쿠 가 혈통 황제가 이끄는 [황실]은 이제 공식적인 교전 상태에 접어들게 되었다.

남부에서 카나르가 칭제를 하고 원정에 나섰다는 소식은 황제령 트라이앵글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 중이던 황실군 총사령관인 상장군 제네르의 귀에도 바로 들어갔다. 웬만해선 크게 웃는 일이 없는 그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허름한 천막 막사에서 먼지가 앉은 중갑주 차림으로 앉아있던 그는 이 ‘충격적인 소식’에 놀라거나 겁을 먹기는 고사하고 손뼉을 치며 깔깔대고 웃었다.

“한바탕 붙어달라고 아주 제사를 지내네. 유치하게 [칼데아군]이 뭐야.”

제네르와 함께 회의실에 앉아있던 시로는 항상 온화하던 그가 가족의 몰살 이후 약간 변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언제 남부와 전투를 치를 것인지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하루 종일 거의 갑옷조차 벗지 않았고, 평상시 아랫사람들에게 맡겨놓았던 군사훈련도 꼬박꼬박 참관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요, 남부연합군보다는 좀 때깔은 나는데요?”

제네르가 떠난 후, 하임달로 떠날 릴라크가 함께 낄낄거렸다.

“이제 슬슬 우리 점방도 정리해야겠다.”

제네르의 손짓을 받은 무장들은 테이블에 펼쳐져 있던 지도들을 주섬주섬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보고 있던 건 남부 비엔의 사실상 중심지인 델루지 종가 주변의 지도였다.

“황실군 보병대 준비 끝났습니다.”

“슈로 기사단 준비 끝났습니다.”

“슬레이프니르도 탑승 완료했습니다.”

제네르의 물음에 비엔 공략군으로 떠날 황실군 보병사령관 조페와 슈로 기사단 부사령관 발리, 슬레이프니르의 부사령관 루코프의 대답이 차례대로 울렸다. 이제 이곳의 황실군은 제네르가 지휘할 [비엔 공략군], 그리고 릴라크가 이끌고 떠날 [하임달 수비군]으로 갈라질 참이었다.

“병사들도 나만큼 신이 났으면 좋겠어.”

제네르가 마지막 지도를 탁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사령부 막사를 성큼성큼 나서서는 비탈 꼭대기에 우뚝 서서 황제령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트라이앵글 산맥의 황량한 고원 분지를 굽어보았다.

“나도 이렇게 가슴이 설레기는 처음이거든.”

황제를 따르는 50여명의 최고 무장들을 거느리고 선 그의 앞에는 자칭 칼데아군보다 숫자는 적지만 훨씬 신형의 검은빛 군용 수송선 20여 척이 거친 돌밭을 가득 채우고 세워져 있었다. 수송선 안에는 지난 며칠간 남부와 기온이 비슷한 수베르와 황제령에서 대규모 기동훈련을 치르고 상장군 특명으로 이틀간 훈련 없이 달콤한 휴식을 취한 황실군 6개 군단과 파견군까지 합쳐 총 13만의 정예군이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들 비엔 공략군이 떠난 후, 릴라크가 이끄는 황실군 5만과 친위군 2만의 하임달 공략군은 해발고도 24스타디아(3,600m)에 육박하는 이곳에 남아 훈련을 계속한 뒤, 황제령과 하임달과의 통로가 완성되기를 기다려 황제와 합류할 참이었다.

사실 비엔 공략군에 비하면 후발대인 하임달 공략군이 맞상대해야 할 적이 훨씬 많고 강력했다. 릴라크는 황제의 수하에서 싸우게 되는 행운 혹은 불운으로 2배가 넘는 적과 맞서야 했지만 여전히 낙천적이었다.

“너무 빨리 짓밟아서 전쟁 재미없게 만들지 마시고요. 잘 다녀오시지요.”

제네르가 픽 웃으며 20여 척의 수송선 행렬 앞에 나섰다. 수송선에 탄 장병들은 자신들이 다음 훈련지로 간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정확히 어디인지는 아직 듣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발리가 헐레벌떡 달려와 아내이자 상관인 제네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상장군님, 삼각루트의 비엔-하임달 코스 개통되었습니다. 10분 전 출발했다고 합니다.”

제네르의 손짓에 황실군의 선봉대이고 비엔의 지리를 제일 잘 아는 남부파견군이 탄 001호 수송선이 제일 먼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럼 우리도 빈집털이 출정이다. ‘다른 곳’에선 이미 출발했을 테니까 우리도 서둘러야지.”

제네르의 입가에 이전의 그답지 않은 웃음이 감돌았다.

“칼데아인지 나발인지를 역사에서 제일 빨리 무너진 반역도당으로 만들어버려야겠다.”

역사상 처음, 비엔의 본토를 디딜 황실의 대군을 태운 육중한 수송선이 지휘부의 머리 위를 스쳐 날아가며 일으킨 거센 바람에 제네르의 금발머리가 요란하게 흩어졌다.

카나르 공이 칭제를 하며 하임달로 떠나며 축제 분위기인 그 시각, 플라칼 가의 근거지인 비엔 6번 행성의 플라칼 종가에는 그곳과는 사뭇 다른 살벌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종장이 떠나면서 군권을 위임받은 군 원로 안드레이 플라칼 대장군은 종장실에 앉은 첫날부터 본가 무장들의 텃세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종장님의 뜻을 모르지 않으실 텐데요.”

뒤를 옹위하고 선 야전 무장들의 창백해진 표정과 앞에 선 본가 근위무장들의 의기양양한 표정 속에서 안드레이 경은 몇 분째 아무 표정이 없었다.

“대장군님.”

근위무장들의 재촉에도 하얀 구레나룻 사이 안드레이의 얇고 거친 입술은 일자로 굳게 닫힌 내내 미동이 없었다. 그는 정치 같은 것에 별 관심 없이 거의 평생을 전쟁터와 변방만 떠돈 뼛속까지 군인이었다. 선제 시대와 카렐 황제 시대를 통틀어 거의 대부분의 기간을 변방 칼릴에서 근무했다보니 오랜 기간 그를 따라 온 측근 상당수는 이번에 반란이 있은 칼릴 원주민 출신들이었다.

그의 앞에 놓인 서류는 그가 칼릴에서 3군단을 데리고 본토로 올 때 함께 데려온 그곳 출신 측근 30여 명에 대한 체포영장이었다.

“협조를 안 해 주셔도 도리가 없습니다.”

내내 침묵을 지키는 안드레이 경을 보다 못한 근위장교들이 헌병들에게 그들을 끌어내라고 손짓했다. 헌병들이 그들 중 한 명에게서 무기를 빼앗으려 하면서 잠시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졌다.

“가만히 있지 못해!”

안드레이 경의 사자처럼 굵은 목소리가 집무실 안을 쩌렁 울렸다. 그의 기세에 놀란 근위무장들이 얼른 한 발 물러났다. 이 노장은 워낙 나서기를 싫어하고 정치와는 철저히 거리를 두었을 뿐 무능해서 드러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안드레이의 할룩스에는 [원정군 워프비행에 들어갔습니다.]라는 문장이 깜박이고 있었다.

“혐의가 뭐라 했지?”

안드레이가 다시 물었지만 이들의 의도를 몰라서는 아니었다. 33년 전 제위전쟁 당시에도 연합군을 자멸하게 한 건 결국 내분이었다는 것을 플라칼 지도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황실이 적이 되었고, 칼릴이 이미 반란으로 엉망이 된 상황에서 종장 카나르가 이들을 믿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몇 달 전, 칼릴 출신이 대부분인 3군단을 본토로 내보낸 후 대신 진주한 칼릴 진압군은 수천의 칼릴 민간인을 학살하면서 이곳에 와 있는 3군단 장병들의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어차피 도망갈 친구들은 아니다. 조사에는 협조하겠으나 아직 인수인계가 끝나지 않았으니 혐의가 분명해질 때까지는 영내로 활동을 제한하고 이후 체포해라.”

“하지만 대장군님!”

“뭐가!”

이 사자만한 노인이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젊은 무장들이 반사적으로 부동자세를 잡았다.

“불만 있냐? 종장께서 떠나셨으니 내게 전권이 있다.”

안드레이 경이 수염을 씰룩거리며 근위장교의 앞에 우뚝 섰다. 그는 우물쭈물거리는 장교들을 뒤에 놔둔 채 칼릴 출신이 절반 섞인 참모들을 거느리고 집무실을 성큼 나섰다.

어색한 종장 집무실을 나온 그는 전장에서 탔던 건장한 군마 대신 대형 승용차량에 올라 자신이 이끌었던 3군단 사령부로 향했다. 칼릴 현지인이 대부분인 2만의 3군단은 칼릴에 반란이 일어나자마자 본토인 6번 행성으로 퇴각해 몇 달째 이방인으로 더부살이를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번 ‘간부 청소’가 끝나는 대로 부대를 정비해 하임달로 가는 후발대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되돌아보면 칼릴 현지인들로 구성된 2, 3군단 중 2군단이 후스를 따라 반란군이 되었으니 3군단이라도 건져낸 카나르 공의 결정은 대단히 시기적절했다. 3군단마저 가문에 등을 돌렸다면 아마도 칼릴은 ‘반란이 난 곳’ 정도가 아니고 칼데아의 심장인 비엔을 겨누는 황제의 칼끝이 되었을 것이 뻔했다.

3군단장 안드레이 경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요로운 밀밭과 푸른 숲을 쳐다보며 입가를 씰룩거렸다. 그는 차라리 원정군이 되어 하임달로 가는 편이 속편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조카이며 종장이고 통수권자인 카나르가 원로인 자신에 대한 군부의 신뢰로 방패를 쳐 놓고 자리를 비웠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왜 이 따위 일을…….”

그는 자신을 가장 하기 싫어하는 [정치]라는 구덩이에 던져 넣고 가버린 카나르가 원망스러워 화가 치밀었다. 때마침, 그의 ‘공무용 할룩스’가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 칼릴에서 3군단에 들어오는 장비가 도착했습니다. 진입을 허락해 주십시오. -

안드레이는 습관처럼 [승인]을 눌렀다. 3군단이 하임달 원정군에 참여하기 위해 칼릴의 원 주둔지에 두고 왔던 각종 공격 장비와 물품들을 막 가져오는, 예정된 수송 작업이었다.

그의 승인과 동시에 2시간 전, 칼데아 건국 선언이 있기도 전, 반란지인 칼릴에서 출발한 4척의 수송선이 아무 저지도 받지 않고 ‘공식적으로’ 플라칼 가의 영토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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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부터 진정한 [신들의 전쟁]에 들어갑니다. ㅎㅎㅎ

안드레이 경은 개인적으론 굉장히 좋아하는 캐릭입니다. 하지만 편이....

그나저나 제네르의 호언장잠도 있었지만....칼데아 제국의 지속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면 미워요~~~( ̄∇ ̄)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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