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77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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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르의 공략군이 비엔 5번 행성을 공격할 무렵, 중위도의 델루지 종가에는 바로 이틀 전, 마누엘과 정식 혼례를 올린 알리야 아야톨라 부인이 사실상 안주인 역할을 맡고 있었다.
마누엘은 그간 가문의 실무를 담당해 온 하디 델루지를 견제하게 위해 서둘러 혼례를 올린 것이었지만 남편의 경계심과는 달리 정작 둘은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알리야는 하디에게 가문의 중요한 일을 그대로 맡겨놓았고, 하디 역시 가시를 잔뜩 세우리라는 주변의 염려와는 달리 가문의 사실상 종부가 된 알리야에게 깍듯이 그 대우를 그대로 해 주었다. 이미 수백 년이나 최고제후가 종부 역할을 했던 알리야는 새 자리에도 바로 적응을 했다.
여기에 비엔의 방어군 지휘를 위임받은 테나스 이그나토 장군과 슈라까지 도착하면서 각자의 분야에서는 나름 손색이 없는 이들이 비엔을 책임지고 있었다. 황실군의 기습 소식에 종가 회의실로 서둘러 모인 이들 사이에도 딱히 살벌하다거나 경쟁심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 같은 건 없었다.
칼데아 군의 출정식으로 밤늦게까지 눈도 못 붙이고 있던 하디 델루지는 플라칼 가에 황실군이 나타났다는 어처구니없는 소식에 뒤이어 이번엔 더 큰 불똥이 자신의 지역에 떨어졌다는 다급한 보고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똑똑하고, 정치나 경제 분야에선 수많은 경력을 지닌 남자이지만 자신이 주연급이 되어 군사 문제에 관여하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별빛밖에 보이지 않는 깜깜한 자정의 밤하늘을 몇 번째 올려보고 있었다.
“추정되는 황실군의 규모는 10만 안쪽이라고 합니다.”
하디가 가져온 보고에 기계 눈 너머 테나스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군대 경험이라고는 경리장교로 있던 것이 전부인 이 깡마른 회계사가 자신의 참모라고 붙은 것이 내심 맘에 들지 않았지만 델루지 가의 손님 처지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디도 그런 테나스의 시선을 읽은 듯 어색하게 웃었다.
“문외한인 제 의견이 아니고 카나르 공……황제의 의견입니다.”
바로 저자세를 보이는 하디의 모습에 테나스는 내심 두려움을 느꼈다. 저 남자는 현실적이다 못해 비굴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속에는 여우를 백 마리는 넘게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행성 에너지장벽이 여길 지켜주고 있는 천금 같은 시간을 놓치지는 말아야지. 외곽의 황실 파견군 기지는 포위했소?”
“5만이 포위 중이고 명령만 주시면 공격 개시합니다.”
테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델루지 가에 사실상 종속되어 있었던 이그나토 가의 일원으로 수십 년간 할아버지의 가문인 델루지 가에서 인질 생활을 해왔었고, 이곳에서 파견장교 생활도 수십 년을 했었다. 그에게 델루지 가의 군대를 지휘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긴 웬만해선 먼저 건드리고 싶지 않아.”
테나스가 기계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델루지 가 본토를 방위할 책임을 맡은 그에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종가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황실 파견군 사령부였다. 카렐 황제는 자신의 어머니와 황비가 최고제후로 있는 북부와 서부의 파견군을 절반으로 줄이고 그만큼의 병력을 남부파견군으로 충원해 이제는 무려 3만이나 되는 대군이 파견군으로 들어와 있었다.
“첩자 말이 1만 8천이 사령부와 주변 보루에 주둔해 있답니다.”
하디가 지도를 가리키며 걱정스레 말했다. 파견군 3만 중 1만이 이번 황실군 기동훈련에 동원되어 있지만 카렐 황제는 약삭빠르게도 델루지 종가 주변의 사령부 병력은 기동훈련에 한 명도 동원하지 않았다. 결국 칼데아 제국을 선언하면서 델루지 가는 바로 안방 옆에 적군을 끌어안게 된 꼴이었다. 마누엘이 여기를 비우며 그토록 걱정한 이유였다.
“여기나 플라칼 가나 꼴이 똑같이 되었네 그려. 아니, 여기가 더 나쁜가.”
플라칼 가도 종가 옆에 주둔시켰던 칼릴 출신 3군단이 등을 돌렸다는 보고서를 보며 테나스가 픽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지, 이 종가에서 파견군까지는 차로 5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니까. 잘난 황제 덕분이지.”
테나스가 투덜거렸다. 한때 남부 파견군 사령관이었던 황제는 델루지 종가 부근 지리와 사령부의 입지에 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제위전쟁에서 승전을 거둔 직후, 황제는 이전 자신이 근무했던 종가 남쪽, ‘풍광 좋은’ 파견군 사령부를 [황실군 남부 휴양소]로 격하시켜 연대 규모 주둔지로 바꿔버리고, 대신 델루지 종가에 훨씬 가까운 그 반대편 북쪽에 새 사령부를 만들어버렸다.
“그땐 패전 직후라 가문에서도 찍 소리를 할 처지가 아니었으니까요. 위협적인 입지라는 건 알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군사전문가는 아니지만, 하디의 대답은 아주 정확했다. 종가에서 고작 30스타디아(4.5㎞) 남짓 북쪽의 외진 언덕에 세워진 새 황실군 사령부는 농가와 목장이 있는 평야에 위치한 이전 사령부처럼 멋진 목초지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근사한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대신 델루지 종가를 일거수일투족 관찰할 수 있는 언덕 위에, 그것도 굽이치고 지나가는 강을 삼면에 끼고 있는 천혜의 요새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덕분에 날씨가 좋은 날은 종가 경비병과 멀리 언덕 위의 황실군 경비병들이 서로 망원경을 향한 채 손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남쪽의 휴양소는?”
테나스가 다시 하디에게 물었다. 옛 사령부, 그러니까 남부의 목장들 사이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언덕에도 연대 규모, 거의 5천에 달하는 황실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제후군과 2대 1 정도로 간주되는 황실군의 전력을 생각하면 만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솔직히 둘 다 신경 쓰여.”
테나스는 지도를 펼쳐놓았다. 델루지 종가는 북쪽 산지의 황실군 사령부와 남쪽 평야의 휴양소 사이에 딱 끼어있는 모양새였다. 사령부에서 시작된 강줄기가 종가 옆을 흘러 휴양소까지 이어지니 아주 높이서 보면 세 곳은 강을 따라 점점이 이어진 모양새였다. 테나스는 종가 일대 지도 위에 바쁘게 부대 깃발을 늘어놓았다.
“아마 놈들은 단기전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 남부 사람들의 집결력이나 동원력을 생각하면 황실이 아무리 지랄을 해도 여기서 장기전을 치르지는 못할걸.”
테나스는 적군을 표시하는 깃발을 들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넓디넓은 비엔이지만 어차피 황실군이 단기간에 승부를 내려 할 때 칠 만한 곳은 몇 없었다.
“삼각루트 통제소가 있는 슈발트발트는 워낙 깊은 숲이라 놈들이 치기 힘들어. 수송선 착륙도 안 되고 셔틀로 소부대를 들여보내도 헤네티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으니 어림도 없지,”
“황실군들이 아무리 잘났어도 그 숲을 다 점령하려면 족히 몇 달은 각오해야 할 겁니다. 그맘때면 황실은 이미 박살이 나 있겠죠.”
참모들이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놈들은 아마도 종가 부근 도시 중 하나를 노리거나……, 우리 종가 남북에 있는 황실군 사령부나 휴양소에 있는 우군에 합류하려 들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이번엔 네 역할이 크겠는데.”
테나스는 시쳇말로 ‘좀비부대’라고 하는 5만의 [페스트 군단]을 이끌고 함께 온 슈라를 힐끔 돌아보았다. 그들은 지난 페스트의 폭동 당시 교단에 투항한 3만의 폭도들을 주축으로 수명개조가 깨지면서 공포감에 교단에 자진 투항한 전직 군인들, 카히나 성을 빼앗으며 그곳과 그 일대에서 사로잡은 군인들을 모두 모아놓은, 따지고 보면 잡탕의 부대였다. 그들 중 페스트 출신들은 길어야 10년 남짓밖에 쓰지 못할 새 몸뚱이를 받은 상태이고, 나머지는 이번에 ‘어떡해서든 공을 세우고’ 죽어야 다시 태어나 새 몸을 받을 수 있는 절박한 처지들이었다.
“이참에 네 부하들 몸을 싹 다 바꿔주는 게 어떻겠어?”
테나스의 농담에 슈라가 킬킬대고 웃었다. 이들 페스트 군단 5만이야말로 남부를 침략한 황실군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황실군이 10만이라고 치고, 여기 본토 방어병력이 총 10만에 내가 데려온 페스트 군단까지 합치면 솔직히 막고도 남을 거다. 일단 남부보병대는 종가 일대에 집결시켰으니 페스트 군단은 기동부대로 후방에 둔 다음에 황실군이 우리 영지 어디를 치는지 봐서 뒤를 제대로 한 방 날려 줘야지.”
테나스는 시계를 보았다. 황실군이 행성 에너지장벽에 공격을 시작한지 이제 30분 남짓 지난 상황이었다.
“지금쯤 새끼들 스페이스에서 에너지장벽 언제 사라지냐고 똥줄이 타고 있겠네. 그럼 야전군들은 방금 말한 대로…….”
여유만만하게 회의를 접고 자리에서 막 일어나던 테나스와 하디, 알리야는 갑자기 종가 전체에 울리는 날카롭고 짧은 사이렌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특히나 실전 경력은 전무한 하디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맙소사.”
하디가 반사적으로 알리야를 돌아보았다.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면, 언젠가 네페티가 종부로 있던 먼 옛날 마지막으로 들었던 사이렌이었다. 바로 누군가 종가를 직접 공격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20여 대의 초소형 강하용 셔틀에 나눠 타고 행성 에너지장벽을 통과한 200여 명의 113대대 친위군 가디언들은 델루지 가 사람들이 생각했던 파견군 사령부도, 휴양소도 아닌, 심야의 델루지 종가로 바로 접근하고 있는 중이었다. 친위군 가디언부대는 가디언들로만 구성된 만큼, 같은 대대여도 정규군 부대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다.
“꽉 잡으셔야 합니다!”
줄 하나에 의지해 가디언의 밑에 매달린 세데스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바람을 가르는 행글라이더에서 행여 떨어질까 겁에 질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제네르에게 ‘행글라이더 부대 200명을 달라’며 큰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 자신, 그리고 그의 심복들이 행글라이더를 전혀 탈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행글라이더는 애당초 가디언 한 명이 밑에 군장이 든 배낭을 달고 타면 딱 맞도록 되어 있고, 강하하는 동안 속도가 너무 올라가지 않도록 받쳐주는 정도의 역할밖에 못 하는 작은 날개만 달려있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제대로 날아가기나 해!”
남은 건 자존심 하나뿐인 세데스는 이 상황에서도 두려운 티를 내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세데스에게 운 없이 낙점된 작은 덩치의 이 가디언은 자신의 군장을 분대 동료들에게 나눠 들게 하고 그 자리에 세데스를 매달고 힘겹게 날아가는 중이었다.
“배낭은 착지가 잘못됐을 때 밑에서 완충 역할도 한단 말입니다! 제 배낭 역할 하고 싶지 않으면…….”
“알았어! 알았으니까 앞이나 제대로 보라고!”
세데스가 악을 썼다. 그의 야간시력은 일반인보다는 낫지만 그렇다고 가디언들만큼 또렷한 것도 아니었다. 둘이 타서 무거워진 행글라이더는 몇 번이나 불안정하게 이리저리 흔들리느라 비엔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밤풍경 따위는 즐길 새도 없었다. 세데스 일행이라는 ‘짐덩이’들을 태우지 않은 정상적인 행글라이더 수백 개가 이미 저만치 앞에서 델루지 종가를 향해 날고 있는 것을 보기는 충분했다.
“감히 날 배신한 병신새끼들!”
세데스가 발밑에 대고 침을 뱉었다. 둘의 밑으로 델루지 종가 남쪽의 빼곡한 숲이 스치고 있었다. 숲에 있던 많지 않은 남부제후군, 아니 칼데아군 장병들은 수풀로 가득 덮인 머리 위를 넘어 종가로 바로 접근해가는 수백 개의 행글라이더를 멍한 눈으로 올려보고만 있었다. 일부에선 셔틀을 잡는 자기 와이어와 장애파 장치를 행글라이더를 향해 겨누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었지만 세데스는 그들을 놀리며 그들의 견고한 방어망을 놀리듯 휙 넘어가버렸다.
“보기에 멋지긴 하네. 여기에 얼마만이냐.”
세데스는 무서운 티를 내지 않으려 일부러 여유 있는 척 딴소리를 했다. 한때 종가의 주인이었던 만큼, 세데스는 그 누구보다도 종가의 주변 지리와 방어 시스템에 관해선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곧 에너지장벽이 켜질 텐데 그 전에 장벽은 넘어가야 해! 우리가 접근하는 걸 알았으니 이제 곧…….”
“지금 누구 때문에 속도를 못 내고 있는데요!”
신경이 곤두선 가디언은 중심을 앞으로 옮기며 행글라이더에 더 속도를 붙였다. 지금까지 내내 태연하려 했던 세데스는 놀라 결국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이 속도를 낸 건 의미가 없지 않았다. 발밑을 휙 스치는 종가 에너지장벽에 붉은 예열 빛이 켜지는 광경이 둘의 눈에 짧게 들어왔다가 뒤로 멀어졌다. 몇십 초만 늦었더라면 에너지장벽에 그대로 들이받았을 판이었다.
“휴우.”
세데스의 일행을 태워 속도가 느려진 행글라이더는 빠른 속도로 앞서간 다른 가디언들을 따라 큰 떡갈나무가 버티고 있는 작은 언덕을 휙 넘어갔다. 언덕을 넘은 순간, 이들의 눈 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저 앞이다!”
몇 달 만에 되돌아온 자신의 생가를 본 순간, 세데스의 눈에서 빛이 확 뿜어 나왔다. 푸르른 숲과 강으로 둘러싸인 완만한 언덕의 ㄷ자 모양 길고 웅장한 4층의 석조건물은 그가 이곳 주인이 최고제후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변의 풍요로운 땅을 오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본채의 앞뒤로는 폭이 10스타디아가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정원과 잔디밭, 언뜻 강이나 호수처럼 보이는 거대한 인공연못이 이 한밤중까지 곳곳의 조명 분수에서 물을 내뿜으며 화려한 색색을 뽐내고 있었다. 본채와 별채들, 거대한 규모의 정원까지 합치면 종가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도시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근사한 장관은 멀리에서만 보기 좋을 뿐이었다. 미처 예상 못 했던 황실의 기습에 이미 종가는 아수라장이었다. 종가의 경비병과 많지 않은 가문 가디언들은 사방에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건물 안에서 어수선하게 쏟아져 나오는 중이었다. 종가 주변에만 수만의 대병력이 주둔하고 있지만 정작 종가 마당으로 바로 내리꽂히는 200여개의 행글라이더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1중대는 나와 함께 본채 옥상으로 진입한다! 2중대는 정면을 차단하고 3중대는 후미 정원에 있는 자기와이어하고 장애파 장치를 덮치고! 4중대는 본채 양옆 숲에 매복해서 측면으로 진입하려는 경비부대를 차단하고 강의 선착장을 선점해! 들어가면서 내 가디언들을 앞세우고 내 이름 외치는 걸 잊지 마라!”
세데스가 출발 전 이미 지시한 내용들을 몇 번째 재차 확인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강조한 건 단순히 가문에 대한 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문에는 그가 종장이었던 시절 고용한 자들과 아직 자신에게 미련을 가진 인물들이 있을 터였다. 자신의 가디언과 이름을 앞세우고 진입하는 건 ‘황실의 침략’이라는 거부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그저 명분에 불과했다.
어둠을 뚫고 날아간 2백의 가디언들은 50명 정도씩 나뉘어 각각의 위치에 거의 정확하게 우르르 착륙했다. 그런데 문제는 세데스의 심복 가디언과 사관들을 밑에 매달고 착륙해야 했던 20여대의 무거운 행글라이더였다. 워낙 제대로 훈련받은 일도 없이 말로만 대충 설명을 듣고 탔던지라 몇몇은 제대로 착륙을 못 하고 바닥에 구르거나 부서진 행글라이더와 뒤엉켜 꼴사납게 나동그라졌다. 그나마 단단한 갑옷을 입은 덕분에 죽은 자는 없었지만 온전하게 내린 경우도 거의 없었다.
“일어나! 뒈지려면 점령한 다음에 뒈져!”
신음하는 세데스의 심복들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거나 들쳐 업은 친위군 가디언들이 일제히 종가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200명의 친위군 가디언과 세데스의 경비부대원들이 종가 곳곳에 개미떼처럼 흩어지는 데는 경계 사이렌이 울리고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제일 후미에서 행글라이더를 타고 진입한 세데스도 넓은 마당과 정원에 비하면 착륙이 가장 까다로운 5층 옥상의 좁은 공간에 어렵사리 발끝을 디뎠다. 하지만 한 번도 훈련을 제대로 받은 일 없는 세데스와, 이렇게 무거운 ‘짐덩이’를 달고 날아 본 일 없는 가디언은 옥상의 포석에 발을 딛자마자 앞으로 중심을 잃고 함께 옥상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이크!”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옥상 경계까지 주르르 밀려간 세데스와 가디언은 반대편 난간까지 밀려나가 5층에서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으이익!”
바닥까지 떨어지는 줄로 알았던 세데스와 가디언은 부서진 난간 안쪽에 붙어있던 옥상의 조명 케이블에 행글라이더가 걸려 뒤집어지며 건물 뒤쪽 3층 남짓 창문에서 한 번 크게 출렁하고 흔들렸다. 반쯤 정신을 잃을 뻔했던 세데스가 밑을 내려다보니 건물 아래에 경비병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둘은 행글라이더 줄에 매달린 채 3층 높이의 벽에서 흔들리는 중이었다.
“못 내려갑니다!”
역시 반쯤 얼이 빠진 가디언이 허리춤의 전투망치를 꺼내 창을 힘껏 부수었다. 그리고는 두 번째 흔들릴 때 행글라이더와 이어진 줄을 끊고 그 안에 무작정 몸을 던져 넣었다. 세데스와 가디언은 얼떨결에 내부에 함께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뭐어……, 그냥 좀 빨리 들어왔네.”
얼떨떨한 정신을 애써 차리고 고개를 든 세데스의 입에서 악 소리가 날 뻔했다. 어차피 그는 옥상에 상륙해 와이어를 타고 3층에 진입할 참이었으니 이렇게 빨리 들어온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진짜 문제는 그가 들어온 곳이 경비병 숙소라는, 그리고 바로 문 하나 너머의 무기고에서 20명 넘는 경비병들이 갑옷과 무기를 챙기고 있었다는 참이었다.
“뭐야, 저건?”
열린 문 너머 경비병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전 종장’ 세데스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고옹…….”
경비부대 근위사관이 제일 먼저 칼을 쳐들었지만 목구멍에서 바로 ‘공격’ 이라는 고함을 지르지는 못했다. 그가 머뭇거리는 새, 세데스가 선수를 쳐 찢어져라 고함을 질렀다.
“반역자들을 처단하러 되돌아왔다! 나를 따르라!”
세데스의 기세는 좋았지만 정말로 그를 따르는 사람은 없었다. 어물거리며 2, 3초 양쪽 눈치를 보던 무기고의 경비병들은 결국 일제히 와아 소리를 지르며 세데스를 향해 칼을 들고 몰려들어왔다.
“으익!”
세데스와 가디언도 비명을 지르며 무기고와 자신들이 있는 방 사이의 문으로 내달렸다. 중간의 옹색한 문 하나를 지키느냐에 둘의 운명이 걸려있었다.
“들어오지 마!”
세데스는 그대로 몸을 날려 선두에서 막 숙소로 들어오려는 경비병 3명을 두 발로 날아 차 거꾸러뜨렸다. 가디언의 어마어마한 힘에 그 뒤로 오던 경비병 대여섯 명이 도미노처럼 한데 뒤엉켜 뒤로 우르르 무너졌다.
“문 닫아!”
경비병들을 무더기로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볼썽사납게 나동그라진 세데스가 가디언에게 고함을 질렀다. 명령을 받은 가디언은 무기고의 철문을 힘껏 닫았지만 뒤이어 몰려든 경비병들이 다시 몸으로 힘껏 들이받아 열려 했다. 문은 미처 잠기지 못한 채 양쪽의 힘 사이에서 삐거덕거리며 찌그러들었다.
“으익!”
체구가 작은 가디언이 뒤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제아무리 가디언이지만 20명 넘는 건장한 군인들이 앞뒤로 몸을 포개고 힘을 합쳐 밀어붙이는 것을 당해내기는 쉽지 않았다.
“저 새끼들 힘만 세 가지고!!!”
세데스도 헐레벌떡 일어나 문짝에 등을 대고 기를 쓰며 버텼다. 이 문이 밀리고 경비병들이 밀려들어오면 그가 아무리 베흔의 피를 받은 가디언 핏줄이라고 해도 버티기는 어려웠다.
“야, 이 새끼들아! 내가 복직하면 죄다 찢어죽일 줄 알아!”
문을 등진 채 등과 어깨로 문을 결사적으로 버티고 선 세데스가 자신을 밀어붙이는 문 너머 경비병들을 향해 악을 쓰며 고함을 내질렀다. 문 건너편에서 질세라 고함이 들려왔다.
“밀어! 잡기만 하면 신세 고치는 거다!”
세데스 자신은 아직 모르고 있지만, 숙부 하디는 ‘혹시라도 세데스가 다시 기어든다면’ 그를 잡는 근위병에게 5만 골드라는 어마어마한 포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해놓은 상태였다. 20년 치 봉급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포상금이 눈이 먼 근위병들은 막 걸치려던 갑옷도, 챙겨 나가야 할 무기도, 자신이 맡은 경비구역도 까맣게 잊은 채 이 대어 하나만을 노리고 미친 듯이 몰려들어 문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실내에서, 그것도 자그만 문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비병들이 좁은 공간에서 아무리 많이 모여도 결국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은 한계가 있었다.
“젠장! 마구잡이로 밀지 말고 구령에 맞춰 밀어!!!”
생각 외로 빨리 뚫리지 않자 맘이 급해진 사관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이들이 여기에서 세데스를 잡는데 몰두하는 동안, 정작 이들이 지켜야 할 종가 내부의 각 지점들에 구멍이 나고 있다는 것까지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의식했다고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임무’를 하느라 대박의 기회를 내버리고 여길 나갈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그저 ‘누군가가 대신 지키고 있겠지.’를 생각할 뿐이었다.
그 사이, 옥상에서 내려온 113대대 1중대 50여 명은 종가 곳곳에 바이러스처럼 흩어지며 이곳에 머물던 델루지 가 사람들과 직원들, 미처 대응 못 한 군인들을 휩쓸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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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데스를 불쌍하다고 해야할지 자업자득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지 말고요~~~( ̄∇ ̄)ブ~~★
3부 3,4권의 대형서점 업데이트가 늦어지고 있네요;; 지난번엔 비교적 빨리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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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본 종이책 주문게시판 http://www.vein.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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